깨가 쏟아지는 우리 선인들 이야기 - 이훈종
내 뜻을 잊지 말아 주오
조선조 후기에 이창운이라는 장군이 있었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어영대장 총융사에까지 오른 분이다. 당시의 법이, 대장이 되면 조정의 아무라도 좋으니, 한 사람을 종사관으로 뽑아 쓸 권한이 주어져 있었다. 이미 왕조도 사백년이나 되고 보니 문벌에 얽매이고 정실에 좌우되어, 자신을 가지고 나갈 수 없을 만큼 해이한 때였건만, 이런 제도가 살아 있었다는 것은 갸륵한 일이라 하겠다. 이장군은 당대의 인물로서, 다른 이 아닌 원로대신 김육의 자제로 문과에 급제한, 신진기예의 김재찬을 지명하였다. 아니나다를까 김재찬은 콧방귀를 뀌었다.
“제까짓 것이 나를 데려다 수하에 두겠다고?”
문무가 모두 양반이건만 문관들은 무관가문을 얕보는 것이 당시 하나의 풍조였다. 몇 번을 불러도 아니 오니까 대장은 강권을 발동하였다. 상관의 명을 거역한 죄로 군법을 시행하겠다고, 군사를 풀어 잡으러 보낸 것이다. 김재찬이 다급해진 나머지 아버지께 들어가 사뢰었더니,
“꼴 좋다. 네가 조정의 체통을 무시하고 잘난 체 하더니, 그사람 성품에 넌 죽어!” “그렇기로 아버님! 이걸 어쩝니까?”
애걸하듯이 받아낸 아버지의 편지를 품에 지니고 군사들을 따라갔더니, 좌기를 차리고 않아 호령이 추상같다.
“내 오늘 나라의 기강이 어떠한가를 보여 주리라!”
아비의 서신이 있노라고 애걸했으나, 대장은 곧이 듣질 않는다.
“그 대감이 아들의 목숨 구하려고 그 따위 편지나 쓰실 그런 어른이 아니니라.”
그래도 안 받으려 드는 것을 주위에서 하도 권해 받아 펴보니, 이게 웬 일인가? 그냥 백지다.
“그 어른 편지는 미상불 잘 쓰셨네, 자식을 똑똑히 못 가르쳐 할 말이 없으시다는 거여.”
그리하여 죽음은 면했지만 옥에 내려 가두고 덜커덕 자물쇠로 걸어 잠갔으니 그 꼴이 뭐람? 그날 저녁 대장은 옥으로 그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밤이 이슥토록 평안도의 지리와 물산.교통로.군비 등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후 매일 저녁 찾아와서는 전날 가르친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다음 과정을 가르쳐, 김재찬은 40여 일 만에 평안도 40여개군의 실정을 그 고장 다스리는 사람보다도 더 소상히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지독한 밀봉교육이 끝나는 날, 대장은 그의 손을 잡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조정이 서북사람을 차별대우해서 불평이 쌓일대로 쌓였는데, 나라 안이 군사를 모른 지 벌써 200년이요. 이 늙은 것이야 쉬 죽을 것이지만, 일후에 대란을 치를 일을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이니, 부디부디 내 뜻을 잊지 말아 주오.“
그뒤 세월은 흘러 김재찬이 정승 지위에 올랐는데, 아니나 다를까 일세의 풍운아 홍경래가 반기를 들었다. 당시 서울에는 인왕산과 낙산, 남산에 봉화대가 있어서, 서북방과 함경도 및 남해안의 경보를 전해 받는데,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전했다. 무사할 때는 한 가닥씩 올리는 제도라 도성사람들은 밤새 뜰에 내려 보아, 세 군데 봉화가 한 개씩 켜져있으면 안심하고 잠자리에 들곤 했었는데, 인왕산의 봉화가 둘이 떴다, 그러더니 이내 셋이 되고 넷이 되고, 이젠 다섯 가닥이 올랐다. 사태가 불안할수록 한 개씩 늘려, 적과 접전이 벌어지면 마지막으로 다섯 개를 다 피워서 알리는 것이다. 온 도성이 발칵 뒤집히고 조정은 돌발사고에 정신을 못차렸다.
“약현대신 빨리 들라 하라.”
약현은 김재찬의 사는 곳, 지금의 서울역 뒤 중림동 일대다. 그는 부름을 받고 집을 나서는데 말을 타도 좋고, 달리 걸음 빠른 가마도 있건만 일부러 평교자라고 낮은 가마를 탔다. 그리고는 벽제소리도 구성지게 `에이, 물렀거라! 비켰거라` 마냥 노라리조로, 서대문으로 질려갈 수도 있건만 일부러 남대문을 들어서서 장안대로를 헤치면서 예궐하였다. 평교자란 노재상을 편안히 모시기 위해 본래 슬금슬금 다니게끔 만든 가마인 것이다. 그러자 막상 피난보따리를 꾸려 지고 거리가 메워지게 뛰쳐나왔던 도성안 백성들은 제 눈을 의심하였다.
“저거 약현대신 행차 아냐? 저렇게 갈짖자 걸음으로 언제나 대궐에 도착하지?” “아녀! 다 마련이 있길래 저렇게 겉지, 대책이 없어봐. 허둥지중 먼지를 일구며 달려갈 거 아닌가베.”
백성들은 수근거리면서도 마음이 진정되어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리니 거리는 평소처럼 조용해졌다. 조정에 도착하니, 온 정부가 펄펄 뛴다. 뭘 하기에 이제 들어왔느냐는 것이다.
“오면서 한 가지 일을 하고 오느라고요.”
유들유들 대답하며 자리에 앉자 사태 수습을 일사천리로 지휘하였다. 예기꾼의 표현을 빌자면 소매자락에서 비파소리가 나게 지휘하였더란다. 명령을 받은 관원들도 이리 뛰고 저리 달리고 하여 며칠이 안 가 난리는 평정되었다. 흔들리는 민심을 행차 모습만으로 수습을 하고 난리 또한 간단히 평정한 그의 능력에 대한 주위의 칭송도 들은둥 만둥 그는 어금니를 주근주근 깨물면서,
“그때 이장군이 명인이지!”
그러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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