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이 북산을 보며 웃네 - 역사 속으로 찾아가는 죽음 기행 : 맹란자
제3장 죽음과의 악수
- 기독교의 죽음관과 성 이그니티우스, 예수, 죽음의 의미
이그니티우스는 크리스티교의 사도 교부의 한 사람으로, 안티오키아의 사제였다. 로마제국 공인의 신들을 승인할 것을 그는 거부했기 때문에 박해를 박고 체포당하였다. 로마의 원형극장에서 사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형이 내려졌다. 이 장면은 영화 쿼바디스 나 스팔타카스 에서 우리가 흔히 보았던 장면이다. 그는 스스로 순교를 택했으며 다가오는 사자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 짐승을 환대해 주기로 하자, 더욱 사나워졌으면 좋겠는데, 만일 나에게 덤벼들 의사가 없는 듯하면, 이쪽에서 먼저 도전하여 힘껏 끌어낼 것이다. 나는 신의 밀알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위한 잡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빵이 되기 위해서는 맹수의 이빨로 빻아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바 생명 이니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오히려 그들에겐 영광된 일이었다. 그리고 언제 죽는가 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죽음으로 부르는 때가 오면 기쁘게 응한다는 자세를 취한다. 왜냐하면 고통이 없는 나라, 하나님이 몸소 계시는 나라, 천국으로 가는 것이기에 기쁨과 희망을 가지고 죽음에 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깨달음의 죽음이 아니라, 어차피 그들의 죽음은 구원과 연결된 죽음이며, 부활과 영생이 약속된 죽음이기 때문이다.
예수, 죽음의 의미
예수의 죽음은 죄없는 죽음이었다. 아담과 하와가 범한 원죄를 속죄하기 위한 죽음이었으므로 대속의 의미를 갖고 있다. 중국의 오주혜박사는 그의 죽음으로 사의 본질이 죄라는 것을 알게 되며 이로써 창조주에게 다가가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예수가 자란 갈릴리는 헤롯안테파스왕의 지배하에 있었다. 로마황제는 식민지 분봉왕들을 감시하기 위해 시리아에는 총독을 보내고, 유태에는 지사를 파견했다. 그래서 유태지사 빌라도는 유월절을 감시하기 위해 가이사랴시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와 머물고 있었고, 갈릴리의 영주 헤롯안테파스 또한 성주에 머물고 있었다. 이때 제사장 가야바를 의장으로 한 중의회가 예수를 고발하고 나섰다. 죄목은 신성모독죄였다. 예루살렘의 웅장한 성전을 보고 그의 제자가 찬탄하자 예수는 이런 말을 했다. 마침내 이 성전이 무너지는 날이 오리니, 그때는 돌 위에 하나의 돌도 남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지은 성전 대신에 나는 사흘 만에 다른 성전을 세우리라. 예수의 이 말은 이튿날, 재판에서 성전모독의 발언으로 규탄되기에 이른다. 유월절을 앞두고 예수의 그룹은 당시 둘로 갈라져 있었다. 유다그룹이 떠나고 베드로와 얼마 안되는 제자들만이 남아 있었지만, 예수는 그들마저 자기를 저버릴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제사장 가야바는 성전 경비대를 올리브산 기슭, 착유소로 보냈다. 예수 일행이 거기에 있다고 일러준 것은 유다였다. 경비대원들은 손에 횃불을 들고 막대기와 칼로 무장하고 켓세마네로 향했다. 예수는 죽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겟세마네에서 지극히 번민하면서 그는 죽음의 잔일랑 제발 거두어 주십사 고 하느님에게 간구하였다(마가 14, 34-36). 죽기를 싫어하고 살고 싶어하는 예수는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누가복음>에 기록된 것처럼 예수는 죽음의 불안 때문에 괴로워 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하고 경비대원에게 순순히 끌려가야 했다. 제사장 가야바는 약속한대로 그들의 제자들을 체포하지 않았다. 베드로가 가야바의 관저에서 예수를 부인하고 난 뒤 자책감과 굴욕감 때문에 몹시 울었다는 얘기는 무엇을 뜻함인가? 가야바에게 매수된 유다도 30냥의 은화를 그의 관저 뜰에 내동댕이친 뒤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그의 제자들은 이렇듯 가야바에게 관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중의회는 예수를 계속 추궁하였다.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중의회는 판결에 필요한 수만큼의 증언을 성립시키지 못하자 하는 수 없이 고발 을 무효화시켜 버렸다. 그러나 제사장 가야바는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를 고발하고자 혈안이 되었다. 그는 교묘한 유도 심문을 생각해 냈다. 그대가 그리스도인가? 예수에게 물었다. 그리스도란 메시아 를 의미한다. 그 속에는 유대인의 제왕 과 구세주 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정치적 메시아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로마 점령하에 시달리는 유태인의 독립과 예전의 영광을 회복코자 하는 구세주이니 정치범으로 제소할 수가 있겠고, 정신적인 메시아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신성모독으로 처벌할 수 있는 아주 교묘한 함정이었던 셈이다. 예수는 가야바의 유도심문의 진의를 간파하고 있었다. 내가 말할지라고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않을 것이니라. 어차피 자신의 처형을 전제로 한 것임을 안 예수는 자신을 구세주 라고 말하였다. 예수의 대답에 가야바는 옷을 찢으며 의원들에게 이제 증인을 댈 필요도 없다. 며 유죄를 선언했고 의원들도 이를 인정하여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지사 빌라도의 승인이 필요했다. 가야바는 빌라도에게 예수의 사형을 요구했다. 죄목은 로마에 대한 정치적 반역이었다. 그와 같은 명목을 취하면 군중이 석방을 바라고 있는 제로테의 지도자인 바라바와 교환할 수도 있고, 중의회의 면목을 세우는 것도 가능했기 때문에 가야바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빌라도는 관저 앞에 모인 군중들에게 물었다. 둘중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는가? 군중들은 현실적인 혁명가 바라바를 원했다.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군중은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요구했다. 이 십자가형의 요구는 종교 이단자로서가 아니라 반로마 운동의 정치범으로 말살하려는데 그 의도가 있었다. 빌라도는 바라바를 감옥에서 석방하고, 예수를 매질하게 한 후 군병들에게 넘겨 주었다. 군병들은 예수를 병영에 끌고 가서 옷을 벗기고 붉은 겉옷을 입힌 다음, 병영 뜰에 자라고 있는 에다브라는 가시를 머리에 씌우고 오른손에 갈대를 잡게 하였다. 그에게 침을 뱉으며 조롱했다. 빌라도는 로마법의 관례에 따라 부하에게 죄표를 만들게 했다. 히브리오, 그리스어, 라틴어의 세 나라말로 쓰여진 유태인의 왕 나사렛 예수 라는 죄표를 목에 걸고 십자가를 짊어진 채 예수는 골고다 언덕을 향하고 있었다. 때는 한 낮이었다. 예수는 두 사람의 죄수와 더불어 어께에 기둥을 매고 걸어 갔다. 약 70킬로그램의 무게인 십자가를 메고 비틀거리면서 언덕으로 올라갔다. 처형자들은 자가가 운반해 온 십자가 횡목 위에 반듯이 뉘워졌다. 손에 못이 박혔다. 못 박히는 일이 끝난 다음 끈으로 매달려 졌다. 그리고 마지막 두 개의 못을 마저 쳤다.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 의식을 마취시키기 위해 신맛을 넣은 포도주를 먹이는게 당시의 습관이었는데, 예수는 이 포도주를 거절했다. 그리고는 고통을 감수했다. 그의 십자가 양쪽에는 두 정치범의 십자가가 더 세워졌다. 이 죽음의 목격자 속에는 중의원 의원, 제사장 가야바, 로마병과 백부장, 예수를 따라온 부인들, 구경꾼등이 있었다. 그러나 진짜 제자들은 사방에 흩어져 예루살렘 주변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 예수의 마른 입술에서 새어나온 말이었다. 대낮부터 오후 세 시까지 무더운 하늘의 해는 숨고 주위는 어두워졌으나(마태복음 27장 45절) 아무런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주여, 주여,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오후 세시, 예수는 마침내 십자가에서 목을 늘어뜨렸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다 이루었다. 예수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외친 두 마디였다. 그의 나이 서른세 살로 때는 서기 30년 4월 7일이었다. <마가복음>은 3일 뒤에 부활한 예수의 일을 적고 있다. 그의 죽음은 부활 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고, 그러한 부활과 승천을 근거로 창조주를 믿게 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해답의 열쇠를 제시하려 했던 것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요한복음 11장 25절). 예수의 이 한 마디 말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