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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 그리고 죽음에 관한 단상 - 윤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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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 윤영환 |
절대고독찬가 2 – 윤영환
거울에 비친 나이 든 나를 본다
이곳저곳 깊게 팬 주름들 사이로 새겨진
희구한 사연들을 읽으며
거울 속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만
결코 바라볼 수 없는 동자의 흔들림
방대한 우주 속 홀로 섰는 작은 우주라는 나
그도 넓어 다 들여다보지 못하고 늙은 얼굴
나를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주변 은하수를 원망하지 않았다
장미보다 곱고 성인보다 성스런 너는
오로지 내 것
누구도 보지도 누리지도 못하는
드넓고 순수한 바다
밀려오는 성난 파도를 가슴 가득 안아
아기처럼 재우는
모든 일을 알고 모든 일이 가능한
우주 속 떠도는 이방인
네가 낸 길은 참으로 푹신하다
서로 안다
암흑물질 속에 드리운
동아줄 잡아 오르는 나는
비겁한 방관자로
널 위로하지 못한다는 걸
내 철저한 침묵의 사자여
네 안에서
널 통해
내가 존재할 때
나는 벅차다
2023.01.03. 04:25
네 시간 - 윤영환
한가지 계명만 아는 동그란 건반에
피를 담은 호스가 감겨있다
사정없이 찔러대는 두 개의 굵은 바늘이 만드는
동맥과 정맥의 하모니
짜릿한 피의 흐름은 엄지발가락을 돌아
다시 심장으로 올라오고
가끔 하늘을 향해 뻗치는 솜털들과
육신의 경련을 아랑곳하지 않는
저 기계의 냉정함에 몸을 내맡긴다
살아야 하니까
하루라도 더 살아야 하니까
힘겨운 네 시간에 이틀을 살고
이미 벌집이 된 팔을 들고 새벽바람 맞으며
모레도 기계 옆에 누워 네 시간을 온전히 바치겠지
살아야 하니까
하루라도 더 살아야 하니까
이어폰에서 흐르는 맑은 피아도 소리에 눈을 감으면
또르르 눈물이 흐르고 지난날을 후회로 몰아넣는다
자신을 스스로 구속한 무딤에 무너진 나약한 육신
무심히 돌아가는 무정한 저 기계와
유기체로 보내는 네 시간은 억울하다
강제로 들어오는 저 피는 내가 보낸 피
하지만 돌아올 땐
광견병에 걸린 유기견에게 피를 받는 느낌이다
스스로 내어준 위대한 나의 자유는
저 호스를 따라 사정없이 흘러간다
스르르 지쳐 잠이 들 때
저 호스 어느 보이지 않는 곳에
누군가 구멍을 내준다면 고요히 참 잘 잘 텐데
그날이 반드시 온다는 약속을 누군가라도 해준다면
찰나를 행복으로 비겁하게 장식하며 마저 살리라
2023. 01.03 03:44
아내에게 - 윤영환
같은 하늘 아래 산다면
너를 그리워하는 기쁜 매일을 살아가겠지
언젠간 볼 수 있다는 매일의 희망이
커피잔 위로 피어오르겠지
그렇게
아침을 웃으며 끌어안게 될 거야
가벼운 발걸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또 다른 내일의 너를 기다리며 잠들 거야
기약은 없어도 언제나 널 울어 댈 거야
그렇게
하루하루를 기쁘게 울며 살겠지
너는 아니?
커피와 함께 내려지며
뒤섞여 사라져 가는 눈물을
두 손을 곱게 받쳐 들며 마시는
검은 눈물을
하늘에선 어떠니
나 어찌 사는지
혹,
넌 보이니?
2023.01 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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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님에게 달린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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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네 곁에 - 윤영환
함박눈 내리는 어느 날
이마에 땀이 흐르거든
네가 털어내기 전 스며든 나일 게다
작은 새 한 마리 네 어깨 위로 날아와
떠날 생각 않는 건 내가 앉아 쉬는 게다
성당 종소리에 놀라
갈대숲 사이로 철새 한 마리 튀어 오르면
널 보고 있던 나일 게다
헤매던 길
없던 이정표가 보이는 것도
바람이 지날 때 목이 간지러운 것도
열차표를 잃어버린 날 처음 집어넣는 호주머니 속에서
손에 잡히는 열차표도 나일 게다
무거웠던 짐이 가벼워지면 내가 같이 들고 있는 것이며
꿈속에 내가 보이지 않는다면 네게 팔 베게 중일 게다
찾으려 애쓰지 마라
언제나 네 옆에 내가 있다.
그리움 - 윤영환
같은 하늘 아래 너와 내가 살아 있다면
이별이 아닐지도 몰라
서점에서 같은 책을 동시에 집어 든다면
같은 번호의 버스를 같은 정류장에서 기다린다면
같은 열차 앞 칸에 네가 앉아있다면
친구 결혼식 객석에서 널 본다면
모퉁이를 돌다 너와 부딪힌다면
아니면 훗날
너와 내가 같은 장소에 뿌려 진다면
새 한 마리 날아와 너와 나를 삼켜
한 몸속에서 너를 만난다면
그렇게
삶이 끝나 하늘 위에 너와 내가 산다면
이별이 아닐지도 몰라
이동식 레이더 - 윤영환
땅거미 숨는 잿빛 보도 위의 또각거림
오른 뺨으로 여나무개의 골목입구가 지나갔다
다음 모퉁이
아니,
그 다음 모퉁이
버스가 서자마자 번호도 읽지 않고 올라탄다
정차 횟수나 목적지는 의미없고 앉아 흔들거리다
너의 느낌이 오면 주저없이 내려 걷는다
밤의 시작을 알리는 가로등의 신호를 엉거주춤 바라보다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오른 뺨으로 여나무개의 골목입구가 지나갔다
곁눈질로 매 순간을 찍어대며
가까운 버스정류장을 향해 다시 쫓기듯 걷는다
우연히 마주치면 어떤 말을 할까
나는
널 찾아 다니며 산다 할까?
갔나봐 - 윤영환
시계는 폐업했고
달력은 그날의 숫자만 보여준다
그마저 앗아 갈까
벽에 걸려 원을 그리고 있는 넥타이의 유혹을
가위로 끊으며 풀썩 주저앉는다
예나 지금이나
심장이 뿜어대는 대로 타들어 가는
붉은 연기를 넌 볼 수 없다
네가 원하는 하늘은 늘 푸른색이었고
아마도,
내가 늘 뱉어내는 담배연기랑 섞여 못 봤을 테니까
그래 그랬을 테야
흩날리던 체취
머문 자리 흔적들 쓸어 담아 가져간 후
이슬 되어 오를까 두렵다가도
네가 보는 푸른 하늘 구름 되겠지
우산 놓친 날 비되어 네게 스며들겠지 토닥이며
얼룩진 베게위로 잠든다
오늘더러 내일이어라 하며
그렇게 잠이 든다.
버드 님에게 달린 댓글
숫자 3 위에 검지를 대고 초침을 막았다
바늘서 주둥이 떼어 낸 붕어마냥 파닥거리는 초침
시간을 붙들고 싶었다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서
바늘 세 개를 모두 걷어 거꾸로 돌릴까하다 포기했다
지난 시간은 모두 사실이었으니까
초침만 막고 싶었다
왜 그랬을까
의미 없었는데
넘어가는 달력을 막아보려 했나
그렇지
앉아서 당하는 게 억울했을 테지
과거를 하나씩 버릴 때마다 미래가 두렵다.
엄마와 솜이불
아침에 부스스 일어나 거실 커튼을 젖히니 동네 나무들과 지붕들이 새하얀 눈으로 덮여있다. 소리 없이 내려 어둡던 시멘트 길도 화단도 눈부시게 덮어놨다. 눈발이 꽤 굵다. 발자국 하나 없다. 누군가 하늘에서 목화솜을 뿌리고 있는 듯하다.
가끔 이불가게를 볼 때면 솜틀집 생각이 난다. 이젠 솜틀집도 찾기 힘들다. 더군다나 이불들도 보온기능이나 디자인도 얼마나 예쁘게 나오는지 크고 무거운 목화솜 이불은 몇몇 장인들 외엔 만들지 않는다.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외진 골목에 있는 먼지 가득히 날리던 솜틀집에 이불을 맡기러 갔었다. 시간이 걸리니 엄마는 구멍가게로 데려가 과자 한 봉지를 사주시곤 했다. 다시 솜틀집으로 돌아오면 우중충하던 우리 집 솜이 크고 둥근 기계 사이로 눈이 부시도록 하얗게 되어 나오던 기억이 난다. 부풀 대로 부풀어 두세 배는 더 커진 솜이불을 고사리손으로 엄마랑 맞들며 집으로 오던 기억이 난다. ‘솜들의 미용실이 솜틀집인가 보다.’ 했었다.
솜틀집에서 틀어온 솜이불을 넣고 잔잔히 펴주면 밤늦도록 이불속에서 구르며 나오기 싫어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풀 먹여 다린 이불 홑청에서 들리는 바삭거리는 소리와 더불어 얼마나 푹신한지 구름 위에서 자는 듯했다. 아침이 되면 석유풍로 위로 풍기는 햅쌀 익는 냄새에 깨곤 했다. 하얀 쌀밥 한 수저 뜨면 그 위로 엄마 손이 왔다가 간다. 얹어주신 석유 냄새나는 그 김 한 장이 그토록 맛있었어도 식사가 끝날 때까지 내 엉덩이는 이불 위를 떠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뛰어가 엄마한테 손발검사를 받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나만의 놀이방을 만들었다. 숙제도 하고 장난감도 조립하고 한참을 놀다가 꼼지락거림 없이 잠잠해지면 엄마는 이불 속으로 들어와 나를 품어 재웠다. 항상 가족을 위한 공깃밥이 그 이불 속에 있었고 막걸리빵이나 식혜도 만들어져 나오는 참 신비한 이불이었다.
지금이야 이불가게를 찾기는커녕 스마트폰으로 이불을 사는 시대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때 그 시절 솜틀집 앞에 아주머니들이 그토록 줄을 서서 앉아있었는지 알 것 같다. 정작 뽀송뽀송한 그 이불 속으로 잘 들어오지 않는 삶. 발만 녹이고 다시 일하러 나가시던 엄마 생각이 난다. 스르르 잠들던 이불 속 엄마 냄새가 그리운 목화솜 내리는 아침이다.
아름다운 글입니다
힘내십시요
아프다고 불행한것만도
건강하다고 행복한것난도
아닌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