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잎새(The Last Leaf:1905) - 오 헨리 - 해설 오 헨리가 남긴 270여 편의 작품 가운데에서도 가장 많이 읽혀지고 있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과학을 초월한 정신력과 숭고한 사랑을 나타낸 단편 소설로서 짜임새 있는 구성과 간결하고 탄력성 있는 문체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작품이다. 어휘가 풍부하고 적절하며 사건의 종말에 가서는 급전법, 반전법을 사용하여 독창적인 문학적 기법을 개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가 약전 오 헨리의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ydney Porter)이다. 은행원으로 있을 때 공금 횡령의 혐의로 3년 간의 감옥 생활을 하는 동안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원래가 그는 사교적인 성격은 못 되었다. 사람들 앞에서 될 수 있으며 명랑하게 보이려고 애썼지만 음성적이고 내향적인 성격이 역력하였다. 또한 수줍고 변덕스러웠다. 누구에게도 자기의 마음을 터놓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법이 없었다. 고집스럽고 완고해 보이리만큼 철저하게 자기 세계를 지켰으며 그 내부로는 누구도 발을 들여 놓을 수 없게 하였다. '뉴욕 월드'의 편집장인 윌리엄 존스턴은 오 헨리와는 작가의 관계 이상으로 가까운 사이였지만 "그를 감싸고 있는 견고한 벽만은 끝내 뚫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술회하였으며 오 헨리의 친구였노라고 자칭하는 인물들의 회고문이 발표되어질 때마다 "나는 그의 영혼이 천국에서 하이볼 잔을 기울이며 차갑게 비웃고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고 오 헨리에게 진정한 친구는 없었다고 쓰고 있다. 이 자기 폐쇄적인 성격의 경향을 그의 공금 횡령 사건과 결부시켜 혹 그가 전과가 알려지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교제를 꺼리는 것이 아닐까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마도 그것은 타고날 때부터 그가 형성해 온 성격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그는 1909년 극작에도 손을 댔지만 성공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같은 해에 폴 암스트롱이 그의 단편 "개심 뒤에 오는 것"을 각색하여 상연하였더니 그것이 전국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한편 건강을 해치게 된 오 헨리는 1909년 일단 아내와 딸이 있는 내시빌로 돌아가 약 1년쯤 요양을 했다. 이듬해 9월에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 그로부터 죽기까지의 마지막 석 달 동안 누구도 만나지 않고 전화 수화기조차 내려놓은 채 굳게 닫혀진 아파트 안에 들어박혀 병과 싸우며 집필을 계속했다. 특히 그가 병원으로 옮겨지기까지의 며칠 동안을 어떻게 지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다만 그의 침대 밑에 빈 위스키 병이 9개나 뒹굴고 있었을 뿐이다. 그의 임종 때에는 의사 한 사람만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숨을 거둔지 하루만인 1910년 6월 6일자 '뉴욕 트리뷴'지는 오 헨리의 죽음을 알리면서 사인은 간경화증이라고 밝히고 다음과 같은 의사의 말을 첨부하고 있었다. "그의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어 있었다. 소화기관은 못 쓰게 되고 신경도 도저히 손 댈 수 없는 상태였다. 심장 역시 작은 충격에도 견뎌 내지 못할 만큼 약화되어 있었다" 그의 장례식은 그가 생전에 가장 사랑했던 매디슨 스퀘어에서 가까운 "순경과 찬송가", "정신 없는 브로커의 로맨스" 등에 나오는 '모퉁이를 돌아 가서 있는 조그만 교회'에서 거행되었다. 이 장례식에 대해서는 그의 작품과 거의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다. 유머와 위트와 페이소스, 바로 이것이 오 헨리의 작품의 훌륭함이라 할 수 있지만 더욱 경탄할 것은 그 착상의 기발함과 플롯의 교묘함에 있다. 풍부한 상상력과 앞뒤를 재는 구상력을 지닌 그의 단편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에는 '항상 뜻밖의 결말'이 있으며 작품마다. 예외없이 마음 속으로부터 솟아나는 따뜻한 미소와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 담겨 있다. 그것은 이 작가가 인간의 심리와 인정의 흐름을 잘 알고 있다는 것 또한 오 헨리 자신이 따뜻하고 정겨운 마음의 소유자라는 것을 입증한다. 작품에는 "20년 후", "순경과 찬송가", "마지막 잎새", "크리스마스 선물" 등이 있으며 작품집으로는 "캬베스와 왕", "400만 달러", "도시의 목소리", "서부의 혼" 등 13권으로 270여 편에 달한다. 전문 워싱턴 광장 서쪽 한 구역은 큰 길들이 제멋대로 뻗어서 플레이시스라 부르는 조그만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 플레이시스는 이상한 각도와 커브로 되어 있다. 하나의 골목길이 그 길 자체와 두세 번이나 교차된다. 어떤 화가가 일찍이 이 거리의 귀중한 가치를 발견하였다. 가령 어떤 수금원이 그림 물감과 종이와 캔버스 값을 받으려고 청구서를 가지고 이 거리를 돌다가는 대금 한 푼 받지 못한 채 오던 길로 되돌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얼마 안 되어 낡은 그리니치 마을에는 화가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어 북쪽을 행한 창과 18세기식 박공 지붕과 네덜란드 식 다락방과 값싼 집세를 찾아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들은 백납제 손잡이가 달린 잔과 한두 개의 식탁용 화로를 사들였다. 그리하여 하나의 '화가촌'이 형성된 것이다. 이 마을의 납작한 3층 벽돌집 꼭대기에 수우와 존시는 그들의 공동 화실을 차렸다. 존시란 조안나의 애칭이었다. 수우는 메인에서 왔고, 존시는 캘리포니아 출신이었다. 두 여자는 8번가에 있는 델 모니코 식당에서 만나 예술과 꽃상치 샐러드와 작업복의 긴 소매에 대한 두 사람의 취향이 같다는 것을 발견하고 마침내 공동 화실을 차리게 되었다. 그것이 5월의 일이었다. 11월이 되자 의사들이 폐렴이라고 부르는 차갑고 눈에 잘 띄지 않는 한 모르는 신사가 이 화가촌을 배회하면서 얼음 같이 찬 손으로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만졌다. 이 파괴자는 우선 동부 일대를 대담하게 활보하면서 수십 명씩 희생자를 내더니 끝내 그의 발길은 이 좁고 이끼 긴 플레이시스의 미로에까지 들어왔다. 폐렴 씨는 이른바 기사도 정신을 가진 노신사는 아니었다. 캘리포니아의 온화한 미풍에 핏기를 잃은 한 조그만 여자는 원래 저 붉은 주먹을 가진 신경질적인 말썽꾸러기의 적수가 아니었지만 그는 존시를 기어코 때리고야 말았다. 그리하여 처녀는 꼼짝도 못한 채 페인트 칠을 한 쇠침대 위에 누워 조그마한 네덜란드식 유리창을 통하여 건너편 벽돌집의 흰 벽을 바라보는 신세가 되었다. 어느 날 아침, 숱 많은 회색 눈썹을 가진 한 의사가 수우를 복도로 불러냈다. "저 아가씨가 회복될 가능성은...열에 하나밖에 안 됩니다" 그는 체온계의 수은을 털어 내면서 말하였다. "사람들이 이렇게 장의사만 기다리고 있으면 어떤 처방도 소용이 없습니다. 당신의 친구는 자기 병이 낫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분이 특별히 마음 속에 생각하는 것이 있나요?" "그 애는 그 애는 언제나 나폴리 만을 한 번 그려 보고 싶다고 했어요" "그림이요?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시는군 마음에 무슨 깊이 생각할 만한 것이 있느냐 말입니다. 이를테면 남자라든가..." "남자요?" 수우는 유태인의 하프 소리 같은 울음이 담긴 소리로 말하였다. "남자를 무슨 생각할 만한... 하지만 없어요. 선생님 도무지 없어요" "그렇습니까? 그것이 오히려 약점입니다" 의사는 말하였다. "좌우간 의학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보지요. 그러나 환자가 자기 장례식에 따라올 만치 수를 세기 시작하면 내 의술로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은 반으로 줄게 됩니다. 만일 당신이 그녀에게 이번 겨울에 입을 외투 소매의 스타일에 대해 의욕을 갖게 한다면 살아날 가능성은 5분의 1로 높아질 수 있다고 보장합니다" 의사가 돌아간 뒤 수우는 화실로 들어가 일본제 냅킨이 흠뻑 젖도록 울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화판을 들고 휘파람을 불면서 존시의 방으로 들어갔다. 존시는 침대 시트에 작은 주름 하나도 만들지 않고 가만히 누운 채 창을 향하여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수우는 그녀가 자는 줄 알고 휘파람을 그쳤다. 수우는 화판을 세워 놓고 어느 잡지에 실릴 소설의 삽화를 그리기 위해 펜화를 시작하였다. 신인 화가의 길은 무명 작가들이 등단하는 문학지에 삽화를 그리는 것이었다. 수우가 주인공의 모습에 얌전한 승마복 바지와 외알 안경, 그리고 아이다호 지방의 목동을 스케치하고 있을 때 나직한 소리가 몇 번이나 되풀이 되는 것을 들었다. 그녀는 창을 내다보며 무엇인가를 세고 있었다. '열 둘' 하더니 조금 있다가 '열 하나' 그리고 나서 '열', '아홉' 그리고 '여덟'과 '일곱'을 거의 한꺼번에 세었다. 수우는 걱정스럽게 창문을 건너다 보았다. 대체 거기에서 무엇을 세고 있는가? 거기에 보이는 것은 다만 텅 빈 마당과 20피트쯤 떨어져 있는 벽돌집의 흰담벽 뿐이고, 한 줄기의 늙고 늙은 뿌리마저 썩어 버린 담쟁이덩굴이 그 벽돌담으로 뻗어 있을 뿐이었다. 차디찬 가을 바람이 담쟁이 잎새를 때려 덩굴의 앙상한 가지만이 무너져 가는 담벽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대체 무엇을 하고 있어?" 수우가 물었다. "여섯" 존시는 거의 속삭임으로 말하였다. "지금은 더 빠르게 떨어지는군! 사흘 전에는 거의 백 개나 있었는데 그걸 다 세려면 머리가 아프더니 하지만 지금은 아주 쉽거든 또 하나 떨어지는군! 지금은 다섯 개밖에 안 남았어" "글쎄, 무엇이 다섯이야? 좀 가르쳐 주렴" "잎새 말이야 담쟁이 덩굴에 있는 저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나도 가는 거야. 사흘 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의사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 "아이 어쩌면 난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는 들은 적도 없어" 수우는 화를 내며 투덜거렸다. "글쎄, 늙은 담쟁이 잎새랑 네 병이 무슨 상관이야? 넌 저 늙은 덩굴을 사랑하는 모양이구나? 글쎄 바보 소리는 그만두어. 의사 선생님이 오늘 아침 나에게 말하기를 네 병이 나을 가능성은... 가만 있어.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병이 나을 가능성은 십중 팔구라고 하던데! 그야 뭐 우리가 뉴욕 시내에서 전차를 탈 때나 새로 지은 빌딩 아래를 지날 때에도 그만한 위험률은 있지 않아? 그러니 어서 맘 놓고 수프를 좀 마셔 봐. 그래야 나도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고 편집자에게 그것을 갖다 팔아서 아픈 너에게는 포도주를 사다 주고 먹성 좋은 나는 돼지고기를 좀 사다 먹지" "포도주는 사서 무얼하게?" 존시는 물끄러미 창문 밖을 응시하며 말했다. "또 한 잎이 떨어지고 있어. 나는 수프는 안 먹겠어 남아 있는 잎새가 꼭 네 잎뿐이로군 어둡기 전에 저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는 걸 보고 싶어 그 후엔 나도 죽게 되겠지" "존시!" 수우는 그녀에게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내가 일을 마칠 때까지 제발 좀 눈 좀 감고 창문을 내다보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지 않겠어? 내일까지는 이 그림을 갖다 주어야 하는데 밝아야 그림을 그리지! 그렇지 않으면 그만 커튼을 내리겠어" "다른 방에 가서 그릴 수는 없겠어?" 존시는 차갑게 말하였다. "나는 네 옆에 있고 싶어" 수우는 말했다. "그리고 나는 네가 그 쓸데없는 담쟁이 덩굴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일을 끝내거든 알려 줘" 존시는 눈을 감고 마치 석고상처럼 창백하게 누워 있었다.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는 걸 보고 싶어. 이젠 기다리기도 지쳤어.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털어 버리고 저 지친 잎새처럼 밑으로 가라앉고 싶어" "좀 자도록 해 봐" 수우는 말하였다. "나는 베어먼 씨를 불러서 그 늙은 시골 광부의 모델을 부탁해야 하니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잠깐만 기다려 줘" 베어먼 씨는 그들의 아래층에 사는 화가이다. 그는 예순 살이 넘었고 마치 산양신의 머리로부터 요정의 몸으로 굽실거리는 미켈란젤로의 '세상'에 나오는 모세의 수염을 하고 있었다. 베어먼 시는 예술가로서 실패한 사람이었다. 40년 동안이나 그림을 그렸으나 끝내 미의 여신의 치맛자락도 만져 보지 못했다. 그는 언제나 걸작을 그려보이겠다고 말하였으나 아직 한 번도 그런 그림을 그려 본 적이 없었다. 몇 해 동안 그는 어쩌다가 그리게 되는 상업용이나 광고용의 싸구려 그림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그려본 적이 없었다. 그는 이 화가촌에서 비싼 모델을 고용할 수 없는 젊은 화가들에게 모델을 서 주는 것으로 근근히 살고 있었다. 그는 술을 많이 마시면 여전히 미래의 걸작에 대해 아야기 했다. 그는 성미가 거칠고 왜소한 노인으로 누구든 상냥스럽고 다정한 것을 보면 심하게 조롱했으며 자기는 위층 화실에 있는 두 젊은 화가를 보호하는 사냥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수우는 아래층 희미한 등불이 켜 있는 굴 속 같은 방에서 심하게 술냄새를 풍기며 앉아 있는 베어먼을 발견하였다. 한쪽 구석에는 화가에 흰 캔버스가 덮여져 있었다. 그것은 25년 동안이나 걸작의 맨처음 선을 기다리며 있었던 것이다. 수우는 노인에게 존시의 망상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회미한 집착마저 사라져 정말 잎새와 같이 떨어져 버릴까봐 걱정이라고 말하였다. 베어먼 노인은 시뻘건 눈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존시의 어리석은 상상에 대해 경멸과 조롱을 퍼부었다. "세상에 아무리 어리석기로 그래 그 빌어먹을 담쟁이 잎새가 떨어진다고 해서 사람이 죽는다는 법이 어디 있담? 난 그 따위 소리는 난생 처음 듣겠군 듣기 싫어! 당신 같은 멍청이의 모델 노릇은 그만 두겠소 아 글쎄 어떻게 해서 그런 어리석은 생각이 존시의 머릿속에 들어가게 했느냐 말이오. 가엾은 존시..." "그 애는 병 때문에 약해진 거에요" 수우가 말했다. "몸이 아프니까 마음까지 병들어 이상한 공상만 머리에 가득 차게 된 거지요. 하지만 베어먼 씨, 그런 줄 몰랐는데 당신은 정말 무서운... 변덕쟁이 노인이로군요" "참 여자란 할 수 없군" 베어먼이 외쳤다. "누가 모델 노릇을 안 하겠다고 했나? 가십시다. 함께 가지요. 반 시간 전부터 모델 노릇을 하겠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맙소사, 이런 곳에 존시 같은 착한 아가씨가 병이 나서 누워 있다니. 나도 언젠가는 걸작을 그릴 테니, 그 때는 우리 모두 여길 떠납시다. 암 그래야지" 그들이 2층으로 올라왔을 때 존시는 자고 있었다. 수우는 커튼을 밑으로 잡아 내리고 베어먼에게 눈짓을 하여 다른 방으로 옮겼다. 거기서 두 사람은 두려운 마음으로 창밖의 담쟁이 덩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잠깐 동안 말이 없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발 섞인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었다. 베어먼은 낡은 곤색 셔츠를 입은 시골 광부가 되어 뒤집어 놓은 남비를 바위 삼아 걸터 앉았다. 다음 날 아침 수우가 한 시간쯤 자고 눈을 떠 보니 존시가 기운 없는 커다란 눈으로 늘어진 녹색 커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커튼을 좀 올려 줘. 밖을 보고 싶어" 그녀는 가느다란 소리로 부탁했다. 그러나 보라! 밤새도록 비가 내리치고 사나운 바람이 불었는데 벽돌담 벽에는 담쟁이 잎새 하나가 그대로 붙어 있지 않은가 그것은 실로 담쟁이의 마지막 잎새였다. 줄기 가까이는 짙은 녹색을 띠었으나 잎새 가장자리는 약간 누런 빛을 띤 채 당당하게 지상 20피트 높이의 가지에 매달려 있다. "마지막 잎새야" 존시가 말하였다. "난 저 잎새가 간밤에 틀림없이 떨어졌으리라 생각했는데 바람 소리가 얼마나 요란했던지 아마 오늘은 떨어지겠지 그러면 나도 이 세상을 떠날 거야" "아니 그게 무슨 소리니?" 수우는 그의 창백한 얼굴을 존시에게로 돌리면서 "네 자신을 생각지 않겠다면 나를 좀 생각해 주렴 난 어떻게 하란 말이니?" 그러나 존시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것은 장차 신비한 곳으로 먼 길을 떠나려고 하는 사람의 영혼일 죽음에 대한 환상이 점점 더 그녀를 사로잡아 그녀로부터 친구와 현실을 멀리 떼어 놓은 것 같았다. 하루가 지났다. 저녁이 되었는데도 그들은 그 외로운 담쟁이 잎새가 담벽 위에 꼭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더니 밤이 되자 북풍이 다시 휘몰아치고 세찬 비가 창문을 들이쳐 나직한 네덜란드식 처마를 두드렸다. 날이 밝자 존시는 커튼을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담쟁이 잎새는 아직 그대로 있었다. 존시는 한참 동안 그것을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그녀는 가스 난로에서 닭고기 수프를 젓고 있는 수우를 불렀다. "내가 잘못했어, 수우" 존시는 말했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지를 가르쳐 주기 위하여 누군가가 저 마지막 잎새를 그대로 있게 한 거야. 죽기를 원하는 건 죄악이야. 수프를 좀 갖다 줘. 그리고 내 옆에 베개를 많이 쌓아 줘. 이렇게 앉아서 네가 요리하는 걸 구경하고 싶어" 한 시간 뒤에 그녀는 다시 말하였다. "수우, 난 나폴리 만을 꼭 한 번 그리고 싶어" 오후에 의사가 왔다. 그는 갈 때 수우를 복도로 불러 내었다. "회복할 가능성은 이제 80퍼센트입니다" 의사는 수우의 수척한 손을 잡고 말하였다. "간호만 잘하면 문제 없습니다. 그러면 나는 또 다른 환자를 보아야 하겠군. 무슨 베어먼인가 하는 사람인데 아마 화가인 모양입니다. 역시 폐렴이요. 그는 쇠약한 노인인데다가 급성입니다. 그는 살 희망이 없어요. 안정이나 할 수 있도록 입원을 시켜야겠습니다" 다음 날 의사는 수우에게 말했다. "아가씨는 고비를 넘겼습니다. 염려 놓으십시오. 이젠 영양과 간호만 잘하면 됩니다" 그 날 오후 수우는 존시가 누워 있는 대로 침대로 다가갔다. 존시는 짙은 푸른색 털실로 별 쓸모도 없이 보이는 어깨걸이를 느긋한 자세로 뜨고 있었다. "글쎄, 내 말 좀 들어 봐" 수우는 존시를 부둥켜안으며 말했다. "베어먼 씨가 오늘 병원에서 돌아가셨어. 병이 난 첫 날 아침에 그 노인이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을 문지기가 발견했대. 그의 신발과 옷이 온통 젖어서 몸이 얼음장같이 차더래. 그렇게 춥고 무서운 밤에 그가 어디에 갔었는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던 거야. 그런데 아직 불이 켜진 램프와 늘 놓아 두던 장소에서 꺼낸 사다리 흩어진 붓 몇 자루와 함께 녹색과 노란 색 물감이 섞인 팔레트가 발견되었대. 잠깐 저 밖을 좀 내다 봐. 저 벽에 남은 마지막 잎새를 보란 말야. 바람이 그렇게 몹시 불었는데 저 잎새가 어떻게 흔들리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았는지 이상하지 않았니? 글쎄, 그게 베어먼 씨의 걸작품이었거든!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던 날 밤에 그 잎새를 그려 놓았던 거야"
밝은 마음, 밝은 말씨 - 이해인 겨울의 주일 오후, 나의 자그만 방에서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밝은 햇빛을 온몸에 받고 앉아 있으면 행복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어둡고 그늘진 지하의 방에 머물다가 얼마 전부터 햇볕이 잘 드는 방으로 옮겨 오니 나의 마음까지도 밝고 따스해지는 듯 기쁘고, 전에는 그저 무심히 받아 온 한 줌의 햇볕, 한 줄기의 햇살도 예사롭지 않은 큰 축복으로 여겨 집니다. 한 줄기의 따스한 햇살이 어둠을 밝게 해주고 추위를 녹여 주듯이 한마디의 따스한 햇살이 어둠을 밝게 해주고 추위를 녹여 주듯이 한마디의 따스한 말이 마음의 스산한 어둠을 밝혀 주고 고독의 추위를 녹여 준다는 사실을 오늘도 새롭게 기억하면서 또 한 번의 새해가 내게 내미는 하얀 종이 위에 나는 `밝은 마음, 밝은 말씨`라고 적어 봅니다. 요즘 내가 가장 부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밝은 표정, 밝은 말씨로 옆 사람까지도 밝은 분위기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이야기를 나눌 때 한결같이 밝은 음성으로 정성스럽고 친절한 말씨를 쓰는 몇 사람의 친지를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가 몹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음을 이쪽에서 훤히 알고 있는데도 여전히 밝고 고운 말씨를 듣게 되면 무슨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느냐고 묻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그러한 말은 마치 노래와 같은 울림으로 하루의 삶에 즐거움과 활기를 더해 주고 맑고 향기로운 여운으로 오래 기억됩니다. 상대가 비록 마음에 안 드는 말로 자신을 성가시게 할 때조차도 그리 무안하지 않도록 적당히 맞장구치며 성실한 인내를 다하는 이들을 보면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자기 자신의 기분보다는 오히려 상대방을 먼저 헤아리고 배려하는 사랑의 마음이 느껴지는 말씨, 이기심과는 거리가 먼 인정 가득한 말씨는 우리에게 언제나 감동을 줍니다. 자기가 속상하고 우울하고 화가 났다는 것을 핑계로 우리는 얼마나 자주 퉁명스럽고 불친절한 말씨로 주위의 사람들 까지도 우울하고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은지 모릅니다. 또한 다른 이들에게 충고한다고 하면서 얼마나 냉랭하고 모진 말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곤 하는지 이러한 잘못을 거듭해온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새삼 부끄러워집니다. 금방 후회할 줄 알면서도 생각 없이 말을 함부로 내뱉은 날은 내내 불안하고 잠자리도 편치 않음을 나는 여러 차례 경험하였습니다. 뜻 깊고 진지한 의미의 언어라기보다는 가볍고 충동적인 지껄임과 경박한 말놀음이 더 많이 난무하는 듯한 요즘 시대를 살아오면서 참으로 마음을 정화시켜 줄 고운 말, 밝은 말, 참된 말이 그리워집니다. 겉으로 긍정적인 것 같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가시가 숨어 있거나 교묘한 위선의 그늘이 느껴지는 이중적이고 복잡한 말이 아닌 단순하고 투명한 말씨, 뒤가 없는 깨끗한 말씨를 듣고 싶습니다. 하느님 안에 우리가 어린이처럼 맑고 밝은 마음, 고운 마음을 지니며 살려고 노력한다면 매일 쓰는 말씨 또한 조금씩 더 맑고 밝고 고와지리라 믿습니다. 새해를 맞아 내가 늘 사랑의 빚을 지고 사는 친지들에게 자그만 선물이라도 보내고 싶어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 한 줄기 햇살이 가만히 속삭여 줍니다. `친절한 말 한 마디가 값진 선물보다 더 낫지 않느냐? (집회서 18:17).`
1시 1분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외국인의 경우 ‘1시 1분’을 이야기할 때 ‘1’을 고유어로 ‘하나’라고 하니까 ‘하나 시 하나 분’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1’을 한자어로 ‘일’이라고 하니까 ‘일 시 일 분’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하는데, ‘한 시 일 분’이 맞는 표현이다. 시간의 ‘시(時)’를 말할 때는 한자어를 사용하지 않고 고유어를 사용하는데, 이 때 고유어 수사가 아닌 고유어 관형사를 붙여 말한다. 즉 숫자 ‘1, 2, 3, 4’를 고유어 수사로는 ‘하나, 둘, 셋, 넷’이라고 하지만 고유어 관형사로는 ‘한, 두, 세, 네’라고 해서 ‘1시, 2시, 3시, 4시’를 ‘한 시, 두 시, 세 시, 네 시’라고 말한다. 한편 ‘5시, 6시, 7시, 8시, 9시, 10시’의 경우 고유어 수사와 관형사의 형태가 동일한데, 고유어 관형사를 사용해 ‘다섯 시, 여섯 시, 일곱 시, 여덟 시, 아홉 시, 열 시’라고 말한다. 한편 시간의 ‘분(分)’을 말할 때는 고유어가 아닌 한자어 관형사를 사용해 ‘1분’을 ‘일 분’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차례를 나타내는 접미사 ‘째’ 앞에는 어떤 말을 붙여야 할까? 과거에는 ‘두째, 세째, 네째’와 ‘둘째, 셋째, 넷째’ 등의 표기를 구분해 전자는 ‘차례’, 후자는 ‘수량’을 나타냈었는데, 현행 표준어 규정에서는 ‘둘째, 셋째, 넷째’ 등으로 표기를 통일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나타내게 했다. 다만 ‘열두째’와 ‘열둘째’는 예외적으로 그 구분을 유지하고 있는데, ‘열두째’는 ‘순서가 열두 번째가 되는 차례’를 의미하는 수사 혹은 관형사로 쓰이고 ‘열둘째’는 맨 앞에서부터 세어 모두 열두 개째가 됨을 이르는 명사로 쓰인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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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내 ‘달다’, ‘시다’, ‘짜다’ 등 맛을 나타내는 말은 냄새를 나타내는 낱말을 만드는 데 쓰이기도 한다. 맛과 냄새의 감각이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서 그런지 맛으로 냄새를 표현하는 게 자연스럽다. “감주 끓이는 구수한 단내가 풍겨 나고 있었다”에서 ‘단내’는 ‘달다’와 ‘냄새’로 이루어진 낱말로 ‘달콤한 냄새’를 뜻한다. ‘달다’와 ‘냄새’가 결합하여 ‘단내’를 만드는 것처럼 ‘시다’와 ‘짜다’도 ‘냄새’와 결합하여 ‘신내’와 ‘짠내’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맛을 나타내는 말과 ‘냄새’가 여러 뜻으로 쓰이는 만큼 ‘단내, 신내, 짠내’의 의미 폭도 넓다. 요즘 부쩍 많이 쓰이는 ‘짠내’는 ‘소금 냄새와 같은 짠 냄새’의 뜻으로만 쓰이는 게 아니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정말 짠내 나게 돈을 벌었다.”나 “그는 짠내 풀풀 나는 직장인들의 현실을 사실감 있게 연기했다.”에서 ‘짠내’는 어떤 뜻으로 쓰였을까? 나는 이 말에서 ‘고단한 삶과 고된 노동에서 비롯된 땀의 냄새’를 먼저 떠올렸다. ‘짠내’에서 ‘땀내’를 떠올렸던 것이다. 그런데 젊은 세대는 ‘짠내’에서 ‘애처롭게 눈물 흘리는 상황’을 먼저 떠올린다. ‘짠내가 난다’는 표현을 ‘눈물이 난다’로 이해하는 것이다. “짠내 나는 멜로드라마”나 “짠내 나는 짝사랑”이란 표현에서 젊은 세대의 언어 감각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눈물’에서 ‘짜다’는 떠올려도 ‘냄새’를 떠올리진 않는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 봤다. “‘짠내 나는 짝사랑’보다 ‘짠맛 나는 짝사랑’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그러다 곧 생각을 바꿨다. “공감하여 흘리는 눈물이라면 혼자 느끼는 ‘짠맛’보다 여럿이 함께 느낄 수 있는 ‘짠내’가 더 어울릴 것 같아.”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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