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의 감성사전 바퀴벌레 파리나 빈대 따위처럼 인간의 생활근거지를 주무대로 노략질을 하면서 살아가는 위생곤충으로 의복이나 음식물에 해를 끼친다. 주로 야행성이며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학자들에 의하면 지구상의 전 생명체가 멸종되었던 빙하기에도 죽지 않고 그 종족을 오늘날까지 보전 했다는 곤충이다. 살아있는 화석이라고도 지칭된다. 인간보다 먼저 지구를 차지하고 있었던 곤충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제 바퀴벌레에게 가느다란 벽 틈서리조차도 내어주려 들지 않는다. 눈꼽만한 과자 부스럭지조차도 내어주려 들지 않는다. 오직 다량학살만을 모색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바퀴벌레가 미워도 빙하기부터 지금까지 시간의 바퀴를 굴리며 종족을 보전해 온 생명의 불가사의에 대한 취소한의 경의는 표해야 한다. 신경통 날이 궃으면 뼈들이 먼저 알고 신음을 한다. 비바람이 몰아치면 뼈들이 먼저 알고 비명을 지른다. 비로서 사람과 하늘이 따로가 아님을 알게 된다. 성불구자 모든 불제자. 성불하기를 구하는 사람. 출근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자신을 인간에서 로보트로 전환시키는 행위. 직장을 가진 인간이라면 대부분 기상과 동시에 출근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세면장에 들어가 부품을 소제하고 에너지를 보충한 다음 서둘러 직장으로 달려가 출근부에 도장을 찍을 때까지 모든 작동을 빠르게 진행시킨다. 비애를 느낄 겨를조차 없다. 반드시 그렇게 살아야만 행복이 보장된다고 입력되어 있는 로보트처럼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출근은 보금자리로 돌아오기 위해서 보금자리를 일시적으로 떠나는 서민들의 습관화된 이별이다. 외로운 출발이다. 이 세상에 남들처럼 살아남아 있고 싶은 자로서의 소박한 희망이다. 희망에의 도전이다. 스트레스 가슴 밑바닥에 침전된 불만의 찌꺼기를 연소하지 못할 때 생겨나는 유독성 폐기물이다.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고 정신을 피로하게 만든다. 만병을 불러들이는 근원이 된다. 다량으로 침전되면 자체 내에서 폭발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경쟁의 과정에서는 스트레스가 따르고 모든 패배의 결과에는 스트레스가 증폭된다. 군자와 백치에게는 스트레스가 따르지 않는다. 능력이상의 욕망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어떤 경쟁에도 휩쓸림이 없기 때문이다. 호수 고여 있는 슬픔이다. 고여 있는 침묵이다. 강물처럼 몸부림치며 흐르지도 않고 바다처럼 포효하며 일어서지도 않는다. 다만 바람 부는 날에는 아픈 편린처럼 쓸려가는 물비늘. 기다림 끝에 흘리는 눈물들은 기다림 끝에 흘리는 눈물들끼리 한자리에 모여 호수가 된다. 온 하늘을 가슴에 담는 사랑이 된다. 음담패설 음담배설. 속물근성 천박한 자기수준을 끝끝내 개선하지 않은 채로 자신이 타인에게 가치 있는 존재로 부각되기를 바라는 습성. 모든 욕망의 나무를 자르지 못한 채 가지마다 공명심, 이기심, 질투심, 시기심 따위의 거추장스러운 과일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살아가는 습성. 아무런 철학도 없고 아무런 고뇌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장 요긴한 생활필수품. 소인배들의 전유물.
Board 추천글 2025.02.07 風文 R 6
어느 소년의 미소 - 이해인 `...자주 만나지 않아도 마음속에 있는 사람, 우리는, 우리형제들은 - 이제는 태고적 같기만 한 어린 날로부터 그대와 한 형제 되어 한 줄기 강물을 타고 흐르는 여정이 되었다네. 눈감아도 보이는 그 강물은 언제나 그리움 그 자체, 잊을 리가 있겠는가, 그대를... ` 지금은 이름난 화가로 활동중인 진의 언니의 엽서를 받고 나는 문득 옛 생각에 잠긴다. 나를 열 살 먹은 소녀로 돌아가게 하는 한 소년의 그리운 모습도 함께 떠오른다. 그의 삼형제의 이름 가운데에 `진`자가 들어가므로 나는 그들을 묶어서 `진형제`라고 부르기도 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 나는 늘 새침하고 조용한 아이, 책 속에 파묻혀 꿈을 꾸는 아이였다. 4학년 때 나는 5반 부반장이었고 소년 진은 3반 반장이었는데, 그애는 공부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외모도 이국적이어서 여학생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반은 달랐어도 나 역시 호감을 갖고 있던 차에 한 번은 3반 담임선생님이 편찮으셔서 며칠 결근을 하셨는데 그 반의 반장과 임원들이 문병을 가고 싶어도 집을 몰라 못 간다는 얘길 전해 들었다. 마침 나는 그 여선생님과 한 동네에 살고 있었고, 그의 여동생과도 친구여서 내가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을 방문하던 날, 우리는 그 댁에서 준비한 맛있는 과자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 이후로 나는 장난기 가득하지만 따뜻하고 인상적인 소년 진의 미소를 기억하며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때, 혜화동 성당에서 함께 첫영성체를 받은 친구임도 알게 되어 집에 와 사진을 보니, 하얀 너울을 쓰고 잔뜩 긴장해 있는 내 옆에 푸른 띠를 두르고 손을 모은 그 소년이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있었다. 5,6학년 때 그는 사생대회에서 입상을, 나는 백일장에서 입상을 해 나란히 상을 받는 영광도 안게 되었다. 서로 반이 달라 접촉할 기회가 없던 우리는 졸업 전에 꼭 한 번 길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 짧은 순간을 두고두고 잊지 못했다. 비원 돌담길을 끼고 나는 친구 집을 향해 걷고 있었고, 그는 반대편에서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는데 우리는 새삼 반가우면서도 서로 아무 말 못하고 그냥 웃음만 교환했다. 참으로 따스하고 정감 어린 표정으로 미소짓던 진의 모습은 어린 내 가슴을 콩콩 뛰게 만들었고,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걷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후론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문득문득 그가 궁금하고 보고 싶기도 했으나 알 수가 없었다. <빨강 머리 앤>의 남자 주인공인 길버트의 모습에서 자주 그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중학교 3학년이 끝날 무렵 하루는 우리집에 자주 놀러오던 오빠의 성당 선배인 B아저씨가 당신의 먼 친척뻘 되는 댁이라며 나를 데려가셨는데 그 집이 바로 진형제들의 집이었고, 나는 뜻밖의 반가움 속에 모든 가족들과도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중학생이 된 소년은 더 멋져 보였고 수줍은 듯하면서도 내가 늘 좋아했던 그 미소로 정답게 대해 주었다. 나를 포함해 그와 그의 누나들, 그리고 다른 젊은이들에게도 정신적인 스승 역할을 했던 B아저씨의 영향으로 우리는 성직자, 수도자를 가장 아름다운 미래의 꿈과 이상으로 지니게 되었다. 진 역시 사제직을 지망하여 소신학교에 들어갔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 중도에 포기하고 일반대학에 들어가 철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나는 생각보다 빨리 대학도 포기하고 수녀원에 입회하게 되었다. 그와 나는 열심히 편지를 주고받았으나 내가 수녀원에 오고 나서는 몇 번의 연락을 끝으로 자연 멀어지게 되었다. 가끔 그의 누나들로부터 그가 프랑스 유학중에 아리따운 아가씨와 사랑에 빠져 공부가 채 끝나기도 전에 결혼을 했으며, 아이도 셋이나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그의 행복을 빌어 주었다. 그는 캐나다 퀘벡시의 유능한 도시환경 건축가가 되어 한국을 다녀갔고 텔레비전에 출연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의 누나들은 내게 가끔 얘기하곤 했었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흰 눈 내리던 어느 겨울날, 동생이 마당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줍고 있어서 살펴보니 강아지가 다 뜯어 놓아 읽을 수 없게 된 내 편지봉투 속의 시 조각들을 하나라도 더 찾으려고 낱말을 맞추고 있었는데, 그 정성스런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항상 나의 시를 제일 먼저 읽는 독자가 되어 주고, 어른이 되면 제일 먼저 나의 시집을 묶어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싶다고 말하던 친구, 수도자로서 멋있게 살려면 판에 박힌 고루한 사고방식을 가져선 안되며 생각의 폭을 더 넓혀야 한다고 충고하던 친구, 때로는 조개껍질과 도화지에 아름다운 그림도 그려 주고, 수녀원에 뜻을 둔 내가 나를 좋아하던 다른 소년 때문에 괴로워하며 다른 생각을 할라치면 정색을 하며 “그도 나도 널 좋아하지만 벨라뎃다(필자의 세례명) 소녀는 하느님 외의 누구의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너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우리는 마음이 아프더라도 슬픔을 견뎌야 하고, 너도 마찬가지야” 하고 짐짓 오빠라도 된 것처럼 단호히 말해 주던 좋은 친구를 나는 수녀원에 와서 더욱 고마워할 때가 많았다. 나의 첫시집을 보면 그가 제일 기뻐할 것 같기에 간단한 사연과 함께 우편으로 보낸 일이 있는데 돌아온 답은 뜻밖에도 `시집은 간데없고 웬 반공서적만 봉투 안에 몇 권 들어 있더라`는 것이었다. 번번이 훼방꾼이 나타나는 것도 심상치 않아 난 그후로 아예 연락을 안하는 게 현명하겠다고 판단하고 열심히 수도생활에 전념했다. 못 만난 세월 동안 많이 변했을 그 친구를 종종 기도중에 기억하는 가운데 나는 어느새 중년의 나이로 수도서원 25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바로 그해 나는 우연히 수녀원의 심부름 겸 초청강의도 할 겸 캐나다 토론토에 갔다가 본래는 예정에 없던 몬트리올에서 강의 관계로 이틀을 묵게 되었다. 그곳 본당 신부님께 혹시나 하고 그의 이름을 댔더니 대뜸 잘안다며 그 자리에서 즉시 그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주셨으나, 아직 퇴근 전이어서 우리는 저녁미사에 들어갔다. 그 사이에 친구는 전갈을 보내 우리의 다른 일정을 취소하게 하고 그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자고 초대했다. 하도 오랜만이라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그 옛날의 소녀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프랑스풍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집의 현관 앞에서 친구도 이젠 중후한 아저씨가 되어 환히 웃는 얼굴로 두팔을 벌리고 나를 맞아들였다. “이게 분명 꿈은 아니겠지? 30년 만이야. 그렇지? 며칠 전엔 내가 코스모스꽃을 보다가 문득 네 생각을 했었는데... 정말 이상하다... 텔레파시가 통한 것 아닐까?” 그는 몇 번이나 말하며 내게 포도주를 따라 주었고 옛이야기에 꽃을 피우는 우리의 모습을 내가 처음 보는 그의 부인과 아이들도 바라보며 함께 기뻐했다. 멋과 낭만이 넘치는 소설가이기도 하신 K신부님은 식사중에 우리의 만남을 축복하는 특별기도도 해주셨다. “너무 오랜만인데도 어색하지 않고 반말이 절로 나오네”하고 나도 친구에게 웃으며 이야기했다(`이런 자연스러움은 우리가 주님 안에서 참으로 순결하고 애틋한 우정을 나누었기 때문이겠지?`하고 나는 속으로만 말했다). 시종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또 물었다. “너, 수녀원에 간 것 후회 안하니?” “아니.” “수녀로서 행복하니?” “응.” “그럼 됐어.” 다정한 작은오빠같이 말하던 그는, 내가 떠나던 날 이른 아침 몬트리올 공항에 나와 그의 팀이 구상해서 만들었다는 도시 건축 예술관련의 불어 서적 한 권을 내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최근에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느낀 것, 그동안 체험한 자신의 인생, 신앙, 예술에 대해 짧은 시간이지만 담담하고 솔직하게 들려주었다. 30년 만의 만남이 이루어졌던 2년 전 가을, 캐나다에서 가져온 단풍잎 몇 개가 지금도 내 책갈피에서 고운 추억의 빛깔로 불타고 있다. 단풍잎 속에서 그 옛날의 소년 진이 빙그레 웃으며 다시 말을 건넨다. “생각나니? 네가 수녀원에 가기 전에 내게 주었던 그 빨간 노트 말이야. 내가 제일 소중히 생각하는 그 노트는 아마 누나가 갖고 있을 거야.” “그래, 그런데 넌 그 귀한 노트를 네가 대학에서 처음으로 사귄 여자친구에게 내 허락도 없이 보여 주었잖아. 그애가 너와 헤어지고 나서 이별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나한테까지 찾아왔던 일 너는 모르지? 자기는 떠나지만 날더러 요한의 영원한 친구로 남아 달라는 부탁을 하러 일부러 수녀원까지 왔다고 해서 나는 누군지도 모르고 면회실에 나갔다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 “그래? 그런 일이 있었구나. 미안해. 괜히 나 때문에 곤란하고 마음이 아팠겠네?” “아니야. 그래도 너에겐 고마운 일이 더 많아. 어린 시절에도 그토록 어른스럽고 절제 있게 행동한 네가 지금도 무척 기특하고 신기하게 생각될 때가 있어.” “고마워, 어쨌든 앞으로도 좋은 시 많이 쓰고 건강해. 알았지?” “응, 알았어. 나도 늘 너를 위해 기도할게. 그런데 있잖니. 비행기가 하늘로 뜨고 나서 이제 어쩌면 너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눈물이 나서 조금 울었어. 나 우습지?” “아니...” 아직도 투명한 그리움이 묻어 있는 캐나다의 빨간 단풍잎 속에서 친구가 웃으며 손을 흔든다.
꽃길 “포기 안 하려 포기해 버린 젊고 아름다운 당신의 계절, 여길 봐 예쁘게 피었으니까 바닥에 떨어지더라도 꽃길만 걷게 해 줄게요.” 꽃시절에 가시밭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를 생각하는 자식의 마음이 꽃처럼 예쁘다. 이렇게 노래한 가수에게 누군가 이런 글을 남겼다. “앞으로는 꽃길만 걸으시기를....” 이들에게 ‘꽃길’은 ‘꽃이 피어 있거나 꽃으로 장식된 길’이면서 ‘순탄하고 행복한 삶’이자 ‘승승장구하는 화려한 스타의 삶’이다. ‘꽃길’과 함께 떠올릴 수 있는 말로 ‘꽃보직’이 있다. “관직 생활 30년 동안 꽃보직으로 돌면서 꽃길만 걸어온 사람”은 별 어려움 없이 편안하고 화려한 관직 생활을 했을 것이다. ‘꽃보직’은 편안하되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만큼 화려하고 중요한 보직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꽃보직’은 편안하고 좋다는 뜻만을 지닌 ‘꿀보직’과는 다르다. 이처럼 우리말에서 ‘꽃’은 ‘화려함, 아름다움, 중요함’을 상기시킨다. 봄을 알리는 ‘꽃’은 신선함을 나타내는 데 쓰이기도 한다. ‘한창 젊은 여자의 나이’를 ‘꽃띠’라 하고, ‘젊고 활기 찬 시기’를 ‘꽃시절’이라 한다. 그런가 하면 ‘결혼한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함께 자는 잠’을 ‘꽃잠’이라고도 한다. 젊고 신선함이 곧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이 이 말에 담겨 있다. ‘꽃’은 대상의 화려함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꽃단장’은 얼굴, 머리, 옷차림 등을 꾸미는 단장(丹粧)의 정도가 화려함을 뜻한다. ‘꽃분홍’과 ‘꽃자주’는 꽃 색깔과 관련 있는 ‘분홍’과 ‘자주’에 ‘꽃’을 붙여 색채의 짙고 화사함을 강조한 말이다. 그 자체로 화려하면서 가까이 있는 것마저 돋보이게 하는 꽃. 그런 꽃의 매력을 이 말들에서도 발견한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5.02.07 風文 R 0
접미사 (1) 단어는 단일어와 복합어로 나뉘고, 복합어는 다시 합성어와 파생어로 나뉜다. ‘합성어’는 둘 이상의 단일어가 결합하여 하나의 단어가 된 것이다. 쌀밥(쌀+밥), 출렁출렁(출렁+출렁), 잡아먹다(잡다+먹다) 따위. ‘파생어’는 단일어나 합성어에 접사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단어를 가리킨다. 맨밥(맨-+밥), 시퍼렇다(시-+퍼렇다), 선생님(선생+-님), 빛깔(빛+-깔), 덮개(덮다+-개), 많이(많다+-이), 울음(울다+-음), 삶(살다+-ㅁ), 익히(익다+-히) 따위. ‘접사’는 다른 말에 붙어서 일정한 뜻을 더해 주는 요소인데, ‘맨-’, ‘시-’처럼 앞에 붙는 것이 ‘접두사’, 뒤에 붙는 것이 ‘접미사’이다. 접미사 중에는 ‘-님, -깔’처럼 뜻만 더하는 것이 있고, ‘-개, -이, -음/ㅁ, -히’처럼 품사도 바꾸는 것이 있다. 가령, ‘울다’는 동사지만 ‘울음’은 명사다. “어간에 ‘-이’나 ‘-음/-ㅁ’이 붙어서 명사로 된 것과 ‘-이’나 ‘-히’가 붙어서 부사로 된 것은 그 어간의 원형을 밝히어 적는다.” 한글맞춤법 제19항이다. ‘굳다’와 접미사 ‘-이’가 결합하면 [구지]로 소리 나지만 어간의 원형 ‘굳-’이 드러나게 ‘굳이’로 적으라는 뜻이다. 명사 파생 접미사 중에는 ‘-이’와 ‘-음/-ㅁ’이, 부사 파생 접미사 중에는 ‘-이’와 ‘-히’가 가장 널리 쓰일 뿐만 아니라 규칙성도 있어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손쉽게 분석해 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그 원형을 밝혀 주는 것이 쓰기에도 편하고 읽기에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접미사 ‘-이’, ‘-음/-ㅁ’, ‘-히’가 결합할 때는 어간과 접미사의 형태를 밝혀 적는 것을 원칙으로 삼은 것이다. 이것이 한글맞춤법 제19항의 취지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5.02.07 風文 R 1
이외수의 감성사전 삼각관계 재능없는 작가들이 일용할 양식처럼 울궈먹는 작품의 뼈다귀. 지하철 후진국에서는 일명 지옥철. 도시 서민들의 주된 교통수단으로 체형은 용과 흡사하지만 하늘을 날지는 못한다. 주로 지하에서 활동한다. 승차권을 소지해야만 탑승할 수 있으며 지정된 역에서만 정차할 수 있다. 신호등에 걸리지 않는다. 교통순경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정체현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승객을 기다려 주지도 않으며 승객을 기다리게 하지도 않는다. 역은 출퇴근 시간만 되면 전쟁터로 돌변한다. 지하철은 토막난 금속의 빵덩어리다. 배달되자 마자 허기진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옆구리에 달라붙어 발악적으로 뜯어 먹는다. 아침이 파괴되고 하루가 구겨진다. 그러나 지하철은 도시 서민들의 타임머신이다. 꿈 속에서는 언제나 시간의 바다를 건너 눈부신 행복의 미래로 질주한다. 장마비 여름 한 철 우기雨期를 기해 지속적으로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장마비다. 세월이 젖는다. 사랑이 젖는다. 방황이 젖는다. 꿈이 젖는다. 범람하는 황토빛 강물 위로 떠내려 가는 통곡의 세우러. 얼룩진 엽서가 배달되고 약속에 금이 간다. 기억의 서랍 속에도 곰팡이가 피어난다. 유리창 속에는 도시가 흔들린다. 절망이 깊어진다. 시간이 침잠한다. 온 생애가 젖는다. 수세미 걸레는 죽어서도 걸레가 되는 꿈을 꾼다. 죽어서도 걸레가 되는 꿈이 수세미의 씨앗을 눈 뜨게 한다. 수세미는 온 세상을 닦아주고 싶은 소망으로 매달려 있는 초록빛 걸레뭉치다. 구름 때로는 하늘을 떠도는 풍류도인이다. 허연 수염을 나부끼며 세상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다. 때로는 슬픈 영혼의 덩어리다. 암회색으로 온 하늘을 지우고 깊은 우울 속에 빠져 있다. 때로는 범람하는 비탄의 강이다. 하늘 전체를 통곡 속에 잠기게 한다. 온 세상을 적시는 눈물로 소멸한다. 보신탕 음식문화가 가장 다양하게 발달해 있는 민족들에게만 볼 수 있는 영양식의 일종으로 인간에게 최후까지 자신을 보시하고 극락왕생하는 개들의 충정을 그리는 마음으로 보약처럼 복용하는 여름철의 음식이다. 서양 사람들은 보신탕을 먹는 동양사람들을 미개인으로 취급하지만 음식은 환경과 체질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들은 동물을 사랑하기에 보신탕을 경멸한다고 말하지만 진실로 그렇다면 그들은 칠면조를 요리하는 법도 모르고 있어야 한다. 그들은 단지 보신탕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비위가 좋은 체질을 갖고 있지 않을 뿐이다. 호박꽃 한여름 낮잠 드신 부처님 머리맡에 환하게 켜져 있는 조그만 황금등불.
Board 추천글 2025.02.06 風文 R 4
새 아줌마의 편지 - 이해인 항상 새를 좋아하고 사랑해 왔지만 나는 요즘 더욱 새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이젠 단순히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새들의 생태를 살펴보고 연구하는 일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책들을 뒤적이게 되었다. 이 모두가 몇년 전에 알게 된 일본의 와키타 가즈요 아줌마 덕분이다. 스스로 새에 미쳤다고 해서 내가 새 아줌마라는 별명을 붙였더니 편지를 쓸 때마다 새 아줌마라고 쓰고, 늘 대여섯 장 되는 편지를 새 이야기로만 가득 채우는 자칭 아마추어 사진작가 와키타 가즈요 아줌마를 나는 사진으로만 보았을 뿐 아직 만난 일이 없다. 일본어를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나에게 한국에 온 일이 없는 그가 하늘빛, 분홍빛 편지지에 한국말로 써 보내는 정성스런 편지는 맞춤법이나 문법이 어찌나 완벽한지 누가 읽어도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뜻있는 일본인들과 같이 한국어를 공부했고 그 동아리에서는 1년에 한 번 정도 각자가 좋아하는 한국시, 수필, 소설 등을 일어로 번역하여 돌려보기로 했으며, 그것을 문집으로 묶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한국문학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크리스천인 와키타 가즈요 아줌마는 문학을 통해 하느님을 잊고 사는 듯한 일본인에게 하느님을 전하고 싶고, 자신의 자그만 봉사가 늘 미묘한 한일관계를 우호적으로 증진시키는 데 한 몫을 하게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자기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준 어느 수녀님으로부터 나의 시집들을 선물받고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특히 `천리향`과 `수녀`라는 시를 좋아한다고 하였다. 상업적인 목적이 아닌 순수한 뜻으로 나의 시들을 번역하고 싶으니 꼭 허락해 달라는 편지를 받은 것이 인연이 되어 우리는 서로 연락을 하게 되었다. 산과 들로 다니며 직접 찍은 새들의 사진에 일일이 설명을 곁들여 나에게 보내 주고, 새들에게 먹이를 주는 법, 친해지는 법을 소상히 적어 보내 주는 와키타 아줌마께 나는 가끔 우리 나라의 새들이 그려진 우표나 크리스마스 실, 새에 대한 신문 기사나 시들을 모아 보내곤 한다. 한 번은 우리 수녀원 뜰의 까치를 서툰 솜씨로 찍어 보냈더니 일본에선 거의 못 보는 새라며 반가워했다. `처음 보는 한국의 새 우표는 아주 멋이 있어서 감격했습니다. 거기 인쇄된 새들은 일본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이른바 진조들인데 그런 새들을 한국우표들을 통해서 만나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일본의 새 아줌마를 위해 귀중한 우표를 보내 주신 수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한국의 텃새라는 크리스마스 실을 보니 모두 이곳에서도 볼 수 있는 새들이기에 아주 기뻤습니다. 흔히 가깝고도 멀다고 표현되는 일한관계지만 먼 듯하면서도 실은 가까운 나라임을 새들이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수녀님과 마찬가지로 저도 마음만은 10대 소녀인가 봅니다. 방안은 새들의 사진, 달력, 공원에서 주운 깃털, 새 그림이 인쇄된 손수건, 방석 등 여러 가지로 어수선합니다. 남이 보면 웃을지 모르겠지만 저에겐 모두 소중한 물건들입니다. 요즘도 틈만 있으면 우리 남편과 함께 들이나 강가에 가서 새들의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새 이름에 관해서는 그러니까 수녀님보다 좀 많이 알고 있는 셈이지요. 새들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만 보고 많은 사람들은 새들을 크게 부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새들의 생활이란 수녀님께서도 쓰신 것처럼 자유로운 반면에 실로 고독하고 가혹한 조건에 차 있습니다. 병이 들어도 누가 도와 주는 것도 아니고 또 언제 무서운 적들의 먹이가 될지 모르는 데다 겨울에는 이사라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가 새들의 관찰을 통해 자연과 친해지게 되면서부터 제일 좋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세속적인 일이나 물질에 대한 욕망이 많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하루살이 생활을 하면서도 결코 욕심을 내지 않으며 필요 이상의 양식을 탐내지 않는 새들, 모든 것을 자연계에 의존하는 동시에 그 은혜를 다시 자연계로 환원할 줄 아는 그들에게 저희는 좀더 겸허한 마음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새들에 대한 아줌마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그의 편지들은 항상 자연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그리움을 담고 있다. 얼마 전에 그는 을숙도와 주남 저수지가 등장하는 한국 시인들의 신춘문예 당선작인 시들을 몇 장 복사해 보냈다. 아름다운 한국시들을 발견할 때마다 고생하며 한국말 공부한 보람을 느끼며, 특히 새가 등장하는 시들을 읽을 때마다 깊은 감동을 받는다고 했다. 날더러 더욱 새와 친해지고 새에 대한 시들을 많이 써달라고 주문하는 새 아줌마, 아직 한번도 만난 일은 없지만 새 이야기를 하면서 가까워진 와키타 가즈요 아줌마의 웃는 얼굴을 사진으로 들여다보며 언제나 삶에 대한 기쁨과 희망, 새에 대한 애정이 출렁이는 그의 최근 편지를 다시 읽어 본다. `...나무 위에서 혼자 쓸쓸히 우는 티티새 소리를 듣고 있으니 가슴이 뭉클해지곤 합니다. 철새들 중에는 아직 어린 새들도 있답니다. 아시면 웃으시겠지만 철새들이 이동할 시기에는 하느님께 기도할 때마다 맨 마지막으로 철새들의 안전과 무사함을 비는 것이 일과처럼 되고 있습니다. 작은 몸으로 있는 힘을 다 내어 날개치면서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날아가는 철새들. 그 목숨을 건 여행은 정말 감동적이고 눈물겹기까지 합니다. 어쩌면 이곳에서 날아간 철새들이 그곳 수녀원에서 잠시 놀다 갈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을 만나시면 안부 전해 주십시오. ...이곳에선 동백꽃이 하나둘 피기 시작했는데 그 꽃을 매우 좋아하는 동박새나 직박구리들은 오죽이나 기뻐하고 있을까 싶어 저도 즐거워집니다. 먹이가 적어지는 이 시기에 그 빨간 꽃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내려주신 크리스마스 선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들의 식사 풍경은 언제 보아도 흐뭇한 것인데 엄마새가 먼저 새끼들에게 큰 조각을 먹이고 자기는 작은 것을 아주 조금밖에 먹지 않는 모습을 보면 무언가 찡하게 가슴에 와닿습니다. 어떤 짐승이고 사람이 그들을 사랑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 주면 그들도 사람을 신뢰하고 편안히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날려 보내 주신 새들과 나비떼는 예쁜 꽃카드와 함께 현해탄을 건너 무사히 여기에 도착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선물을 독차지하는 것이 미안해 카드는 젊은 친구에게, 나비 실은 새에 미친 또 한 사람의 새 아줌마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둘이서 기쁨을 나누면 기쁨은 곱절이 된다고 말들을 하는데 저는 덕분에 세 배나 커진 기쁨을 맛보게 된 셈입니다. ...주님께서 수녀님의 시의 꽃밭을 축복해 주셔서 더욱더 향기로운 꽃들이 많이 피어나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안녀히 계십시오.`
쉬운 말과 글 1979년 겨울, 영국 리버풀에서 영세민 노인이 난방을 하지 못해 동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당시 영국에는 영세민에게 난방 보조금을 지급하는 복지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는데 왜 이런 사고가 발생한 것일까? 그 이유는 행정 관청에 난방비를 신청하는 서식의 문구가 너무 어려워 영세민이 문구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행정 서식이 어려워 난방비를 신청하지 못해 사람이 죽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하자 영국에서는 크리시 마허 여사가 중심이 된 민간단체 주도로 ‘쉬운 영어 쓰기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정부가 민원서류나 안내문, 설명문 등을 작성할 때 문장을 너무 길게 쓰지 말고 수동태 대신 능동태 표현을 사용하며 고어(古語)나 전문용어, 어려운 외래어 등을 쓰는 대신 쉬운 영어를 사용함으로써 일반 국민들이 정부 문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과거 법원의 소송문서나 판결문, 행정관청의 민원서류, 은행이나 보험회사의 약관, 제품의 사용설명서 등의 표현에 어려운 한자어나 외국어, 전문용어 등이 많아 국민들이 내용을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그리하여 지난 2005년 국민이 각 분야의 용어를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국어기본법’이 제정돼 행정 문서의 내용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표현하고, 일반화되지 않은 약어와 전문 용어 등의 사용을 피해 이해하기 쉽게 작성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행정은 공공기관이 국민을 상대로 정책을 집행하고 소통하는 행위이므로 무엇보다 국민과 원활히 소통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알기 쉬운 말과 글을 사용해 정책을 쉽게 이해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5.02.06 風文 R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