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의 감성사전 여자 남자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난해한 학술자료다. 아무리 연구를 계속해도 그 본질이나 특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지 않는 존재다. 때로는 얼음같이 차갑고 때로는 불같이 뜨겁다. 때로는 가시처럼 날카롭고 때로는 솜털처럼 부드럽다. 때로는 풀잎처럼 연약하고 때로는 칡뿌리처럼 강인하다. 남자들에게 사랑의 열병을 앓게 만드는 독향을 간직하고 있다. 사랑에 약하고 질투에 강하다. 어머니가 되었을 때 가장 성스럽고 아내가 되었을 때 가장 철부지가 된다. 변덕이 심하다. 눈썹을 한 번씩 깜박거릴 때마다 변덕은 두 번씩 일어난다. 남자는 마음에 의해 자신을 변모시키지만 여자는 생각에 의해 자신을 변모시킨다. 그러나 그 어떤 문장으로도 여자를 확실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단지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는 점은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이 나이가 들면 할머니로 변하고 만다는 사실이다. 거울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더욱 아름답게 치장하기 위해 거울을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유리에 수은을 바른 거울을 말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세상만물이 저마다 하나의 거울이다. 시궁창도 고요하면 거울이 된다. 시궁창에도 하늘이 비치고 태양이 비친다. 구름이 흐르고 새들이 난다. 어둠이 깔리고 별똥별이 떨어진다. 마음도 고요하면 거울이 된다. 그 속에는 삼라만상이 모두 비친다. 다른 거울들은 그 존재의 외면만을 들여다 볼 수 있지만 마음의 거울은 그 내면까지를 선명하게 들여다 볼 수가 있다. 메아리 소리의 그림자. 박꽃 달이 들 무렵 초가지붕에 청사의 혼으로 피어난다. 눈이 부시도록 희디흰 소복차림이다. 서슬 푸른 정절에 달빛조차 무서리로 내린다. 바람이 불면 나지막히 흐느끼다 달이 지면 같이 진다. 그 자리에 박이 열린다. 보름달이 열린다. 달 얼굴은 비추어지지 않고 마음만 비추어지는 천상의 해맑은 거울. 미국인들은 수많은 인력을 동원하고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여 달에다 유인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발자국을 찍고 성조기를 꽂았다. 한국인들은 아직도 툇마루에 홀로 앉아서 값싼 막걸리를 마시며 달에다 계수나무를 심는다. 옥도끼로 찍어내고 금도끼로 다듬어서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 년만 년을 살고 싶어서다. 어느 문화가 형이상학적인 문화인가는 시인詩人들이 그 천상의 거울에 비추어지는 마음을 시詩로써 증명해 보일 수가 있을 것이다. 귀뚜라미 밤이면 벽 속에서 달빛으로 가느다란 소리의 사슬을 엮어 새도록 소야곡을 연주하는 가을의 작은 전령.
Board 추천글 2025.04.02 風文 R 12
마음의 작은 표현들 - 이해인 며칠 전에 오랜만에 바닷가에 나갔다가 모래 속에 깊이 묻혀 있는 아주 작은 조가비들을 주워 왔고, 오늘은 솔숲길을 산책하다 깨끗한 모양의 솔방울과 도토리들을 주워 왔습니다. 나는 이것을 한동안 소식이 뜸했지만 마음으로 가까운 어린 시절의 벗에게 편지와 함께 보내려고 상자에 담아 두었습니다. 요즘처럼 좋은 물건들이 넘쳐나고, 돈만 주면 못 사는 것이 없을 만큼 풍요로 워진 시대일수록 상점에서 흔히 살 수 있는 선물보다는 주는 이의 정성과 따스 한 마음이 담긴 요란하지 않은 선물이 오히려 더 반갑고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아주 작은 메모쪽지 하나라도 때로는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음을 여러 차례 경험하게 됩니다. 여권과 비행기표마저 잃어버리고 상심해 있던 몇 년 전의 여행길에서 누군가 나뭇잎에 `굿 나잇`이라고 써서 내가 머무는 방에 놓아 주고, 박하사탕 한 개와 함께 놓고 간 격려의 말은 힘든 중에도 작은 위로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나는 특히 해외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친지들에게 고국을 느끼게 하는 그림옆서나 나뭇잎, 현재의 사회적 상황이 잘 요약된 신문의 만화, 미담, 아름다운 시들을 오려 보내곤 하는데 긴 글을 못 쓴 채 보내더라도 다들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릅니다. 나의 서랍엔 지금도 친지들이 보내 준 각종 편지, 카드 엽서, 메모지들이 가득합니다. 축일이나 기념일, 어떤 강의 끝에 우리 자매들이 정성을 다해 한마디씩 짤막하게 이어서 쓴 글은 아름다운 모자이크나 조각보처럼 여겨져서 선뜻 버릴 수가 없습니다. 무선전화기와 호출기 사용자가 늘어나고, 편지도 컴퓨터로 찍어 모사전송으로 보내는 이들도 많아지는 요즘엔 친필편지 받아 보기도 그리 쉽지 않은 듯합니다. 나도 가끔은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할 때가 있지만 그럴 때라도 꼭 친필로 쓸 여백만은 남겨 두곤 합니다. 기계로 찍힌 글씨와 비록 악필일지라도 손으로 직접 쓴 글씨를 받아 볼 때의 느낌은 크게 다르기 때문이지요. `친구야, 편지 한 번 안하는 무심함에다 세상에 없는 천하태평이라구? 하지만 내 편에선 늘 너를 짝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소식이 없어도, 안 봐도 넌 늘 내 가장 가까운 마음의 친구이다. 너무 유명(?)한게 흠이긴 하지만 친구야. 너를 늘 생각하고 사랑한다.` 며칠 전 열다섯 살 때의 글씨 그대로인 중학교 친구 혜숙의 쪽지를 오랜만에 받은 나는 그가 불쑥 전화로 얘기한 것보다 더 찡한 감동을 받고 행복했습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나는 벗과 친지들에게 건강한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지만 의미 있는 사랑과 기쁨의 표현을 부지런히 하고 사는 소박한 부자가 되자며 강조하곤 합니다. 생전엔 거의 발표되지 않고 있다가 사후에 출판된 에밀리 디킨슨의 1700여 편이나 되는 제목 없는 많은 시들은 그가 생일이나 기념일을 맞은 그의 가족 친지들에게 적어 보낸 카드나 편지글들을 정리한 것이라고 합니다. 새봄을 맞아 우리는 가족, 친지, 이웃에게 적어 보낼 좋은 생각과 좋은 글귀들을 많이 모아 둘 수 있는, 그래서 열기만하면 언제라도 작은 보물섬이 되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문집 한 권을 준비하면 어떨까요? 시. 의미있는 그림이나 만화, 격언, 감동적인 체험담 등을 열심히 모아서 꾸미다 보면 그 자체가 기쁨이 되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하고 싶어도 선뜻 쓸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엔 좋은 길잡이 노릇을 해줄 것입니다.
‘표’와 ‘촛불’ 선거에서 ‘표’는 유권자의 의사를 표현하는 도구지만, 후보자에게 ‘표’는 잡아야 할 목표이자 유권자 그 자체다. “젊은 표를 잡기 위한 공약을 내놓다”나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해 움직이는 표가 많다”는 표현에서 그런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도구’를 나타내는 말로 ‘그 도구를 지닌 사람’을 비유하는 용법은 특정 상황에서 ‘안경 쓴 사람’을 ‘안경’으로, ‘운전자’를 ‘차량 이름’으로 부르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런 비유적 의미는 대부분 국어사전의 뜻풀이에서 배제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표현이 일반화되어 새로운 표현을 파생하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표’에서 파생된 ‘표심’이 널리 쓰이자,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이를 “유권자의 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풀이했다. 이미 국어사전에서도 ‘표’를 ‘유권자’로 읽고 있는 것이다. ‘촛불’도 그런 변화를 겪고 있는 말이다. ‘촛불집회’란 말에서 ‘촛불’은 ‘촛불을 든 사람’을 비유하는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촛불집회’란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촛불’은 ‘촛불을 든 사람’보다 ‘초에 켠 불’이라는 도구의 의미로 먼저 읽혔다. ‘촛불’에서 ‘집회에 참가한 사람’이란 뜻을 먼저 떠올리게 된 것은 ‘촛불집회’와 ‘촛불시위’가 거듭되면서부터다. ‘촛불집회’의 신기원을 이룬 2016년엔 ‘촛불민심’ ‘촛불시민’ ‘촛불혁명’이란 말이 등장하였다. 새로운 표현이 등장하면서 ‘촛불’에는 ‘어떤 의지를 공유하는 사람 또는 그 의지’란 뜻까지 덧붙었다. 그런 뜻을 담은 ‘촛불’은 이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이 오늘도 켜졌다” “촛불들의 염원” "1000만 촛불의 뜻을 받들겠다" 등으로도 쓰인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5.04.02 風文 R 6
접미사 (4) 동사에 붙어서 다른 단어로 만들어 주는 접미사들이 있다. ‘-기-, -리-, -이-, -히-’는 능동사를 피동사로 만드는 접미사이다. 능동사는 주어가 제힘으로 행하는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를, 피동사는 남의 행동을 입어서 행하여지는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를 말한다. ‘안다-안기다, 뚫다-뚫리다, 깎다-깎이다, 부딪다-부딪히다’에서 앞엣것이 능동사, 뒤엣것이 피동사이다. ‘-구-, -기-, -리-, -우-, -으키-, -이-, -이우-, -이키-, -추-, -히-’ 등은 주동사를 사동사로 만드는 접미사이다. 주동사는 문장의 주체가 스스로 행하는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를, 사동사는 남에게 어떤 행동이나 동작을 하게 함을 나타내는 동사를 말한다. ‘솟다-솟구다, 맡다-맡기다, 살다-살리다, 깨다-깨우다, 일다-일으키다, 끓다-끓이다, 자다-재우다, 돌다-돌이키다, 늦다-늦추다, 앉다-앉히다’에서 앞엣것이 주동사, 뒤엣것이 사동사이다. ‘-뜨리-, -트리-, -치-’는 강조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이다. 더 강하거나 세찬 동작을 나타내는 말로 바꿔준다는 뜻이다. ‘-뜨리-’와 ‘-트리-’는 서로 교체해서 쓸 수 있다. ‘떨어뜨리다’가 표준어이면 ‘떨어트리다’도 표준어라는 뜻이다. ‘-치-’가 붙은 예로는 ‘넘치다, 밀치다, 부딪치다’ 등이 있다. 여기서 ‘부딪치다’는 부딪는 행동을 강조하는 말이고, ‘부딪다’의 피동사인 ‘부딪히다’과 구분해서 써야 한다. (손바닥을 부딪치며 노래를 불렀다. / 경제적 난관에 부딪혔다.) 동사를 형용사로 만드는 접미사로는 ‘-업-(미덥다), -읍-(우습다), -브-(미쁘다)’ 등이 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굳어진 말이기 때문에 접미사의 원형을 드러내지 않고 소리대로 적는 것이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5.04.02 風文 R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