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의 감성사전 일기장 자신이 하루종일 시간에 멱살을 잡혀 끌려 다닌 흔적들을 날마다 문자로 정직하게 실토해 놓은 고백록. 외등 어둠 속에 박혀 있는 달마의 물기 어린 눈알 하나. 들국화 기러기 울음소리가 하늘을 청명하게 비우고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달빛을 눈부시게 만들면 바람에 실어보낸 그리움의 언어들은 그리움의 언어들끼리 모여 달빛에 반짝이는 시詩가 된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안타까운 사랑도 아무리 벽이 높아 닿지 못할 사랑도 가을 들녘에 모여 꽃이 된다. 바람이 전하는 한 소절의 속삭임에도 물결같이 설레이며 흔들리는 꽃이 된다. 이름하여 들국화다. 도자기 담는 마음을 배우기 위해서 만들어진 살림도구가 아니라 비우는 마음을 배우기 위해서 만들어진 예술품이다. 그 속에 일월이 뜨고 지고 그 속에 세월이 강물처럼 흐른다. 깨달음에 이른 자들은 그 속에 온 우주가 들어있음을 안다. 눈물 지상에서 가장 투명한 시. 시 석탄속에 들어있는 목화구름. 예술 술 중에서 가장 독한 술이다. 영혼까지 취하게 한다. 예술가들이 숙명처럼 마셔야 하는 술이다. 모든 예술작품은 그들의 술주정에 의해서 남겨진 흔적들이다. 거기에는 신도 악마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아름다움만이 존재할 뿐이다. 새치 검은 머리카락들 사이에 섞여 있는 소수의 은빛 머리카락. 젊음이 다했다는 경보신호. 노인이 되기 위한 예행연습. 세월의 또 다른 흔적. 지팡이 황혼의 동반자. 똥 대자대비의 표정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은 또 하나의 부처님. 새벽 매복하고 있던 어둠이 은밀히 살해당하고 빛의 첨병들이 낮은 포복으로 진군해 들어오면 새벽이다. 사물들이 어둠의 포박에서 풀려 나와 조금씩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면 청소부들이 살해당한 어둠의 부스럭지들을 비질하고 도시는 나지막하게 기침을 하며 잠을 깬다. 시간이 청명하게 세척되어 있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들은 바로 이 시간에 남을 위해 기도한다. 신이시여. 영혼의 어둠에서 고통받는 모든 이들에게도 당신의 새벽이 오게 하소서.
Board 추천글 2025.04.03 風文 R 16
복스러운 사람 - 이해인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많은 인사말 중에서도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은 가장 정겹고도 포근한 말이라 생각됩니다. 이말을 설날이 아닌 날에도 자주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복이라는 금박이 글자가 찍힌 저고리의 끝동이나 옷고름, 은이나 자개로 복을 새겨 넣은 밥그릇이나 젓가락, 복주머니 등을 보면 괜스레 즐거워지고 행복이 바로 곁에 머무는 듯 설레이곤 했습니다. 어쩌다 누가 자기에게 예기치도 않는 선한 일, 좋은 일을 하면 그 고마운 마음을 “복 받으세요”라고 표현하는 것도 매우 인상적이어서 나도 어른이 되면 꼭 그렇게 해야겠다고 결심한 적이 많습니다. 복을 생각하면 왠지 늘 뺨이 붉고 동그스름한 소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아마도 나의 어린 시절에 어른들이 총명하고도 통통한 아이들을 보면 즉시 “넌 참 복스럽게 생겼구나”라고 하는 말을 자주 들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나도 그애들처럼 좀 복스럽게 생겼으면 복을 많이 받을텐데...`하고 내내 거울을 들여다보며 부러워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우리 수녀원에도 복자, 복순, 복희, 복련, 순복, 등의 이름을 지닌 이들이 많은데 그들은 지금도 복스럽게 생겼지만 어려서의 귀여운 모습들을 떠올리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장수, 재물, 자손, 풍년, 나라의 안녕과 질서, 부부간의 해로, 우애, 화목, 기쁨, 평화, 사람, 좋은 만남 등등 그 무엇을 복으로 여기든지 간에 복은 그 자체가 이미 생명 지향적인 것이며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선한 것, 갖추어진 것을 지니고 싶어하는 인간의 솔직한 꿈이며 희망이라 여겨집니다. 어느 특정한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인간은 예로부터 어떤 신령한 힘에 의지하여 기도하며 마음으로 복을 빌어 왔습니다. 이런 마음을 `기복신앙`이라 하여 무조건 비난하기보다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인간이 자기 보다 더 높고, 위대하고, 능력 있다고 생각되는 누군가에게 가장 겸허하고 진실되게 복을 비는 것 자체는 곧 자기의 유한성을 인식한다는 뜻도 되며 매우 아름답고따뜻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새해엔 우리 모두 이기적으로 자신의 복을 구하고 챙기는 일에만 연연하지 말고, 우리 이웃과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도 복을 구할 수 있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지니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꾸 새로운 복을 달라고 조르기 전에 이미 받은 복을 잘 키우고 닦아서 보물로 만드는 노력과 지혜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무런 노력 없이 요행을 바라거나 안일하게 복을 구하는 태도를 지양하고, 우리 일상의 삶 안에서 꾸준히 복을 짓는 덕스러운 나날을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아름다운 의무라고 여겨집니다. 결국은 덕스러운 삶이 복스러운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새롭게 해보면서, 우리 각자는 잠시라도 이웃이 편히 쉬어갈 수 있는 작은 `복덕방`의 역할을 하는 복된 새해가 되길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아울러 새로운 한 해를 맞아 우리 모두 외모 못지않게 내면이 복스러운 사람이 되길 함께 기원하면서 나는 아래와 같이 다섯 가지의 소망을 하늘에 띄워 보내고 싶습니다 1.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더욱 열려 있는 사랑과 기도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2.일상의 소임에서 가꾸어 가는 잔잔한 기쁨과 감사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3.타인의 잘못을 받아들이는 이해와 용서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4.좀처럼 화를 내지 않고 잘난 체하지 않는 온유와 겸손으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5.옳고 그른 것을 잘 분별하고, 실천할 수 있는 지혜화 용기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다랗다’ ‘-다랗다’는 ‘그 정도가 꽤 뚜렷함’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이다. 그런데 때로는 ‘-따랗다’로 적어야 할 때가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는 ‘-다랗다’를 쓴다.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말들로는 ‘가느다랗다, 걸다랗다, 곱다랗다, 굵다랗다, 기다랗다, 깊다랗다, 높다랗다, 덩다랗다, 되다랗다, 두껍다랗다, 머다랗다, 작다랗다, 잗다랗다, 좁다랗다, 커다랗다’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일부는 ‘가느닿다, 곱닿다, 기닿다, 잗닿다, 커닿다’와 같이 줄여 쓸 수도 있다. “잗단 보수를 바라 이 굴욕을 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좁고 거북한 굴레를 벗어나 아무 데로나 넓은 세상으로 뛰고 싶다”(이효석 ‘수탉’). '넓다, 얇다, 엷다, 짧다’ 등과 같이 어간의 받침이 본래 ‘ㄼ’인 경우에는 ‘-따랗다’로 적되, ‘ㄼ’이었던 받침은 ‘ㄹ’로 바꾸어 적는다. 겹받침의 끝소리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는 소리 나는 대로 적도록 한 한글맞춤법 규정 때문이다. 즉, 겹받침 ‘ㄼ’의 끝소리인 ‘ㅂ’ 소리가 드러나지 않으므로 ‘널따랗다, 얄따랗다, 열따랗다, 짤따랗다’로 적어야 하는 것이다. “짤따란 두 다리로 아장아장 걸어가는 똬리골댁을 발견하면, 아이들은 소리를 맞추어 놀려 주는 것이었습니다”(권정생 ‘똬리골댁 할머니’). 이들 말고 ‘-따랗다’로 끝나는 말이 하나 더 있다. ‘참따랗다’가 그것이다. ‘딴생각 없이 아주 진실되고 올바르다’라는 뜻인데, ‘참땋다’로 줄여 쓸 수도 있다. “목련은 북쪽을 향해서만 꽃망울을 터뜨리고, 갈매기는 태양을 향해서만 앉으며, 진달래는 음지에서만 자란다는 사소한 세상의 이치를 터득해가며 그대 곁에서 참따랗게 늙어가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는 전부이다”(김형경 ‘민달팽이’).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5.04.03 風文 R 18
자음보다 모음을 먼저 익혀야 외국인들에게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가르칠 때는 자음보다 모음을 먼저 익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자음은 홀로 발음되지 못하고 별도의 이름이 있는 데 비해 모음은 홀로 발음되며 이름 그대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ㄱ’은 모음 없이 홀로 발음할 수 없고 별도로 ‘기역’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어 학습하기 어렵지만 ‘ㅏ’는 자음 없이 홀로 발음할 수 있고 이름 또한 발음과 같은 ‘아’이기 때문에 학습하기 쉽다. 이처럼 모음 ‘ㅏ’를 먼저 학습한 후에 자음 ‘ㄱ’을 익히면 모음 ‘ㅏ’에 자음 ‘ㄱ’이 결합해 ‘가’라는 글자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모음 ‘ㅏ’와 글자 ‘가’의 소리를 비교해 보면 모음 ‘아’에서는 ‘ㅇ’이 소리가 나지 않는 데 비해 글자 ‘가’에서는 자음 ‘ㄱ’의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 돼 자음의 소리를 익힐 수 있다. 자음을 학습할 때에는 ‘ㄱ, ㄴ, ㅅ, ㅁ, ㅇ’과 같이 발음할 때의 혀와 입술, 목구멍의 모양을 상형화해 자음이 만들어졌고, 여기에 획을 추가해 ‘ㄷ, ㄹ, ㅂ, ㅈ’이 만들어졌으며, ‘ㅋ, ㅌ, ㅍ, ㅊ, ㅎ’과 같이 획을 더해 격음을 표현하거나 ‘ㄲ, ㄸ, ㅃ, ㅆ, ㅉ’과 같이 기본자를 겹쳐 경음을 표현함으로써 총 19개의 자음이 만들어진 원리를 이해한다. 모음을 학습할 때에는 하늘과 땅과 사람을 형상화한 3개의 기본자 ‘ㆍ, ㅡ, ㅣ’를 조합하여 ‘ㅏ, ㅓ, ㅗ, ㅜ’ 4개의 모음이 만들어졌고 다시 ‘ㅑ, ㅕ, ㅛ, ㅠ’와 ‘ㅐ, ㅒ, ㅔ, ㅖ, ㅘ, ㅙ, ㅚ, ㅝ, ㅞ, ㅟ, ㅢ’의 이중모음이 만들어져 총 21개의 모음이 만들어진 원리를 이해한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5.04.03 風文 R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