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미사 (3) 어떤 접미사는 조사나 의존명사와 혼동될 때가 있다. 각각을 정확히 구분하지 않으면 띄어쓰기나 철자 표기에 오류가 생길 수 있으므로 잘 새겨둘 필요가 있다. “나는 친구들을 만났다.”에서 ‘-들’은 복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이다. “방에서 놀고들 있어.”에서 ‘들’은 문장의 주어가 복수임을 나타내는 조사이다. 이 둘은 앞말에 붙여 쓴다. 한편, ‘따위’나 ‘등(等)’과 비슷한 뜻을 가진 의존명사 ‘들’도 있다. “과일에는 사과, 배, 감 들이 있다.”에서 ‘들’은 그 밖에 같은 종류의 사물이 더 있음을 나타내는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써야 한다. ‘호랑이님, 달님, 해님’에 쓰인 ‘-님’은 어떤 대상을 인격화해서 높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이다. ‘해님’을 ‘*햇님’으로 잘못 적는 일이 많은데, ‘*햇님’은 문법적으로 불가능한 표기이다. 사이시옷은 명사+명사 합성어에서만 나타나고 접미사 앞에서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홍길동 님, 길동 님’에 쓰인 ‘님’은 사람 이름 뒤에 쓰여 그 사람을 높여 부를 때 쓰는 의존명사이다. 이때는 앞말과 띄어 써야 한다. ‘김씨’와 ‘김 씨’는 뜻이 다르다. “우리나라에는 김씨가 가장 많다.”에서 ‘김씨’는 ‘김이라는 성 그 자체’를 나타내며, 여기에는 접미사 ‘-씨’가 쓰였기 때문에 붙여 써야 한다. “방금 김 씨가 떠났어.”에서 ‘김 씨’는 ‘성이 김인 사람’을 가리키며, 여기에는 의존명사 ‘씨’가 쓰였기 때문에 띄어 써야 한다. ‘앞말이 가리키는 만큼의 분량임’을 나타내는 말로 ‘-쯤’과 ‘-가량’이 있다. ‘-쯤’은 붙여 쓰고 ‘-가량’은 띄어 쓰는 경우가 많은데, 둘 다 접미사이므로 “한 시간쯤 걸었다.”, “한 시간가량 걸었다.”와 같이 붙여 써야 한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5.02.11 風文 R 3
장애는 불편할 뿐 불행하지 않습니다 장애는 단지 불편한 것일 뿐인데 마치 불행한 것처럼 장애를 비하하는 표현들이 사용되고 있어 순화가 필요하다. ‘맹인’ ‘장님’ ‘봉사’ ‘애꾸눈’ ‘외눈박이’ 등의 표현은 ‘시각장애인’으로 순화해야 하고, ‘절름발이’ ‘불구자’ ‘앉은뱅이’ 등의 표현은 ‘지체장애인’으로 순화해 사용해야 한다. 또한 ‘정신박약아’ ‘저능아’ 등은 ‘지적장애인’으로, ‘벙어리’ ‘말더듬이’ 등은 ‘언어장애인’으로, ‘귀머거리’는 ‘청각장애인’으로, ‘문둥이’는 ‘한센인’으로 순화해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장애를 비유적으로 사용한 표현들이 속담이나 관용구의 형태로 남아 일상 언어에서 사용되고 있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꿀 먹은 벙어리’ ‘귀머거리 삼 년에 벙어리 삼 년’ ‘절름발이 행정’ ‘장님 코끼리 만지기’ ‘눈 뜬 장님’ 등이 대표적인 장애 비유 표현들이다. 또한 장애를 비유한 말들이 표준어로 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의자 없이 바닥에 앉아서 쓸 수 있게 만든 낮은 책상’이라는 뜻으로 ‘앉은뱅이책상’이 사전에 등재되어 있고 ‘엄지손가락만 따로 가르고 나머지 네 손가락은 함께 끼게 되어 있는 장갑’이라는 뜻으로 ‘벙어리장갑’이 역시 사전에 올라와 있다. 또한 ‘밀가루에 설탕, 달걀, 버터 따위를 섞어 반죽해 표면을 오톨도톨하게 구워 낸 빵’이라는 뜻으로 ‘곰보빵’이 사전에 등재되어 있는데, ‘곰보’는 얼굴이 얽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앉은뱅이책상’ ‘벙어리장갑’ ‘곰보빵’ 등 장애를 비유한 말들은 ‘좌식책상’ ‘엄지장갑’ ‘못난이빵’ 등의 말로 순화할 필요가 있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5.02.11 風文 R 5
이외수의 감성사전 가래침 감정대립시 상대방이 면상에다 뱉아주기 위해 목구멍 깊숙히 휴대하고 다니는 타액의 일종으로 일반적인 침보다는 접착력이 강하며 누우런 빛을 많이 띠고 있을수록 품질이 우수하다. 상대방에 대한 혐오감의 농도와 가래침을 뱉고 싶은 충동은 정베례하고 가래침에 대한 불쾌감의 농도와 상대방에 대한 자비심은 반비례한다. 장발족 머리카락에까지 한정 없는 자유를 부여해 주며 사는 봉두난발의 자연주의자들을 지칭하는 말로 머리카락이 길면 일단 장발족으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로 되어있다. 한국은 한때 유교의 영향을 받아 머리카락을 소중히 하는 것을 효도의 시초로 생각했던 적이 있으며 고종때 내정개혁에 의해 단발령이 내려지자 선비들은 도덕이 땅에 떨어졌음을 통탄하여 며칠씩이나 비탄의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근세에 이르러서는 제 삼공화국 시절에 장발이 남에게 혐오를 준다는 죄목으로 경찰관이 가위를 들고 다니며 거리에서 단속하거나 적발하여 재판에 회부하는 강권을 발동시킨 적이 있다. 머리카락과 자유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유를 최대한으로 통제 당하는 집단은 대개 머리카락을 짧게 깎는다. 노예, 스님, 군인, 학생 등이 그 한 예이다. 의학의 성인 이제마 선생은 사상의학을 통해 사람의 머리카락이란 울창한 숲과 같으며 숲의 산사태를 방지하고 땅을 기름지게 하듯이 머리카락을 기르면 그만큼 건강도 좋아지고 수명도 연장된다고 설한 바 있다. 대머리 어느 모임이든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자리를 빛내줄 수 있는 이동식 인간 서치라이트. 자가 동력장치에 의해서는 빛을 발할 수 없고 오직 다른 발광체에 의존해서만 빛을 발할 수 있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얼굴의 영역이 확장되어 있으므로 비누의 소모량이 타인보다 많은 편이다. 그러나 머리의 영역이 축소되어 있으므로 샴푸의 소모량은 타인들보다 적은 편이다. 헤어스타일을 다양하게 바꿀 수는 없지만 가발은 다양하게 바꿀 수 있다. 강대국 인도주의로 포장된 여러 가지 공해물질을 약소국가에 강매하는 나라. 자국의 문화 쓰레기를 타국에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 타국의 전통문화를 가장 많이 파괴시키는 나라. 평화를 가장 많이 부르짖는 나라. 그러면서 전쟁에 가장 많이 관여하는 나라. 피뢰침 뇌성벽력 속에 오직 고용함을 지키며 기다리다가 일순간에 천둥번개를 낚아채 버리는 원효대사의 낚시바늘. 3맹 세대 컴맹, 팝맹 햄맹 상태에 빠져 있는 세대를 말하며 컴퓨터와 팝송과 햄버거를 모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전쟁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다주기 위해 인류의 평화를 파괴시켜 버리는 정신질환적 집단 행위. 선진국 다른 나라보다 먼저 물질과 문명을 선택하고 자연과 인간을 버린 나라.
Board 추천글 2025.02.10 風文 R 3
튤립꽃 같은 친구 - 이해인 멀리 떨어져 살고, 한동안 소식이 뜸하더라도 어릴 적의 친구는 늘 따뜻한 아름다움과 그리움의 대상으로 살아온다. 어린 시절에도 빨간 스커트에 샛노란 스웨터를 즐겨 입던 나의 친구는 나이 쉰이 된 지금에도 빨간 원피스와 빨간 코트를 입고 내 앞에 나타났으나 조금도 어색한 구석이 없고 오히려 멋져 보였다. 그 친구를 볼 때마다 나는 빛깔이 화려하고 선명한 한 송이 튤립을 떠올리곤 했다. 편지를 쓸 때면 서두에 `좁은 문의 벗에게` `나의 그립고 사랑스런 벗에게`라고 즐겨 쓰며 끝에는 `나의 예쁜 벗에게, 꼬마 친구가`라고 쓰는 친구. “이 나이가 되어서도 네겐 예쁘다는 말밖엔 달리 할 수가 없구나”라고 되풀이하는 내 어릴 적의 친구. 바로 옆에서 소곤대는 것처럼 다정한 마음과 따스한 웃음이 넘쳐나는 그의 글들을 읽을 때마다 나는 문득 먼데 있는 그가 보고 싶어진다. 현재 캐나다에 살고 있는 내 어린 시절의 벗 현숙이가 퍽도 오랜만에 나와 연락이 된 후 보내 온 첫 편지의 몇 구절을 다시 읽어 본다. `...그리운 친구야. 반가운 손님이 집에 오면 맨발로 달려나가서 춤추고 싶은 심정처럼 이 편지도 신발을 신지 않은 상태의 너를 반기는 나의 춤이란다. 초등학교 때, 너의 집에 가면 너의 어머님이 고추에 밀가루를 입혀서 찐 반찬과 감자를 주셨던 생각이 난단다. 그리고 네가 나한테 예쁜 조가비를 비단 헝겊에 싸서 준 생각도 나는데 그 귀한 조가비가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예쁜 새들이 앞뜰에 와서 노래할 때마다 먼 곳에 있는 친구를 생각하게 됨은 언젠가 우리 둘도 정답게 앉아서 새들처럼 속삭이고 싶어서일 거라고 생각한단다. 정말 보고 싶구나. 네가 이곳에 올 기회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너의 시들이 내 마음에 닿으면 때로는 눈물이 되고, 때로는 사랑이 되고, 때로는 환희가 됨을 느낀다. 네가 옛날에 내게 써준 한 구절을 늘 기억하며 너를 그리워한단다. 너는 잊었을지도 몰라. `간밤에 별이 곱다고 주고받던 이야기, 깨고 나니 꿈이었구나`하는 구절을 말이야. ...나에겐 주은(June)이라는 키가 크고 예쁜 딸이 하나 있단다. 마음이 아주 착해. 그애가 영어로 쓴 시를 너도 한번 읽어 볼래?....` 앤(Anne)이라는 세례명을 지닌 내 친구 현숙이는 내가 창경 초등학교 5학년 때 강원도 원주에서 전학을 왔고, 6학년때도 한 반이었는데 환히 웃는 그의 하얀 얼굴과 귀여운 보조개가 인상적이었고, 늘 꾸밈없이 자연스럽고 구김살없는 밝은 성격이 내 마음에 들었다. 명랑하고 솔직한 그애에 비해 난 왠지 새침하고, 우울하고, 답답한 편이어서 더욱 그에게 매력을 느끼며 가까이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날도 난 다른 친구들을 제쳐두고 오직 현숙이하고만 학교 근방의 원남동, 동숭동 거리를 쏘다니며 졸업 후의 헤어짐을 아쉬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서로 다른 여학교에 들어가서도 우린 종종 연락을 주고받으며 각자 새로 사귄 친구들을 소개해서 함께 어울리기도 했다. 한 번은 어떤 사소한 일로 현숙이가 나 때문에 몹시 화가 났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확실히 알지도 못하고 그애의 이사간 집을 찾아 헤매다 눈물이 날 만큼 혼난 일도 있었는데, 일부러 화해의 먼 길을 달려온 나를 친구는 퍽도 감격하며 맞아들이던 생각이 난다. 친구가 대학을 졸업하고 혼담이 오갈 무렵 나는 이미 수녀로서 처음으로 서원을 한 후 서울에서 첫 소임을 하고 있었는데, 이름난 꽃꽂이 연구가인 친구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연구소에서 있었던 몇 번의 만남을 끝으로 친구는 캐나다로 이민을 가고 나는 필리핀으로 떠나게 되었다. 외국에서도 서로 한두 번 편지를 주고받긴 했으나 연락이 끊어졌다가 거의 20년 만에 다시 연결이 되어 편지를 주고받은 뒤 6년 동안은 또 무소식 속에서 지냈다. 그런데 1993년 5월 어느 날 밤, 느닷없이 친구는 자기가 다니는 회사에서 내 연락처를 알아냈다며 국제전화를 걸어 외동딸 주은이가 미스코리아 캐나다 대표로 한국에 가게 되어 동행을 하니 잠깐이라도 꼭 만나자는 것이었다. 친구가 늘 모범 남편이라고 자랑하던 과학자인 강 선생도 우리가 25년 만에 만나 서로 어린애처럼 얼싸안는 모습을 지켜보며 빙그레 웃었다. 우리 수녀원에서 함께 점심을 먹으며 친구는 내내 감동으로 목이 메인다면서 눈시울을 적셨고, 해인이란 이름에선 바다내음이 나지만 내 어릴 적의 이름 명숙이가 더 정겹다고 했다. 내겐 필요도 없는 알록달록한 팔찌를 풀어서 정표로 받으라던 친구는 예쁜 편지지와 카드도 선물로 잔뜩 놓고 갔다. 뜻밖에도 자기 딸 주은이가 잠시 한국에 와서 어떤 배우와 사랑에 빠졌는데, 그들의 사랑이 하도 아름다워 자신의 모습도 한 번씩 돌아보게 된다던 친구. 그 사랑을 꼭 축복해 주고, 언제가는 축시도 보내 달라며 내게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열심히 적어 보내던 친구다. 내가 다른 사람과 더 가까워 보이면 아직도 묘하게 질투심이 싹튼다고 고백하는 나의 `튤립꽃` 친구는 어제도 팩스로 편지를 보내 왔다. 열두 살에 만났던 친구이니 열두 살이 된 것 같은 마음으로 그의 편지를 읽으면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너를 안 지도 벌써 거의 40년이 되었지 않니? 반평생인 셈이야. 주님께서 맺어 주신 참으로 고운 인연이라 생각한다. 그동안 나는 사위를 맞고 이런 저런 복잡한 일들도 많았단다. 봄 숨결 속에 피어난 예쁜 꽃들이 여러 빛깔로 뒤뜰을 장식하고 있는데 왜 나의 마음엔 예쁜 꽃이 피지 않는 것인지.... 현실에서의 도피가 아니고 부산, 너 있는 곳에 뛰어가 옛 친구, 꼬마 때 친구와 그리운 우리들의 작은 동네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그런 마음이야. 네가 여길 다녀간 지도 두 해가 지났구나.` 친구의 딸 주은이가 약혼하기 두 달 전쯤, 나는 수녀원에 관계된 일로 2주 정도 캐나다에서 머물게 되었고, 특별 허락을 받아 친구집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같은 일이라며 내내 입을 다물지 못하고 기뻐하던 친구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꽃들이 많은 그의 정원에서 둘이 손을 잡고 사진도 여러 장 찍었는데, 친구는 그의 빼어난 미적 감각으로 실내장식이며 정원을 무척 아름답게 꾸며 놓아 시에서 주는 `가장 아름다운 정원상`도 받았다고 한다. 얼마 전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모래시계`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아 더욱 인기인이 된 사위 민수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동딸 주은을 위해 친구는 너더러 “나는 그들의 인간 엄마이니, 너는 천사 엄마의 몫을 맡을래?”라고 물어 왔다. 엄마는 너무 힘들고 이모 정도는 하겠다고 했더니 주은이는 이제 마음놓고 나를 이모라고 부른다. 친구는 요즘, 꽃잎을 안으로 오므린 튤립같이 사람들도 별로 만나지 않고 자신을 쓸쓸히 오므리고 사나 보다. 하나뿐인 딸이 결혼해서 한국으로 훌쩍 떠나고 나니 가슴속엔 슬픈 거미줄이 쳐 있는 것 같다고 시무룩해 한다. 내가 가끔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멜라니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며 오늘도 기도를 부탁해 오는 나의 벗 현숙에게 나는 바쁘더라도 종종 동심으로 돌아가 새처럼 즐겁게 편지를 써야겠다. `...동무야, 잘 있었니? 내가 슬프고 우울할 때 가장 환한 기쁨과 웃음의 불을 켜서 당겨 주던 꽃. 튤립을 닮은 나의 동무야....`
비혼(非婚) “자신의 의지로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결혼을 생각 중이지만 아직 하지 않은 미혼자로 묶어 버리는 건 잘못된 거예요.” 결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면서부터 이처럼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과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구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생겼다. 그리고 접두사 ‘미(未)-’의 의미를 민감하게 의식하면서 ‘미혼’에 대응하는 새말인 ‘비혼’이 만들어졌다. ‘미-’에는 ‘아직 되지 않은’의 뜻이, ‘비-’에는 ‘아님’의 뜻이 있다. 이 차이를 되새겨 보면 이 접두사가 포함된 말을 새롭게 의식하게 된다. ‘비정규직’도 그런 말 중 하나다. 정규직이 되는 게 꿈인 세상에서 ‘정규직이 아님’의 뜻을 나타내는 ‘비정규직’이 ‘고용’에 대한 현재의 인식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을까? ‘미혼’에 대응해 ‘비혼’을 만든 논리라면, 어쩌면 ‘비정규직’에 대응해 ‘미정규직’이란 말을 만들어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비정규직’이라는 말만으로도 정규직을 꿈꾸는 고용 현실을 나타내는 걸 보면, ‘비혼’이란 새말을 만든 것이 ‘미-’와 ‘비-’를 구분해야 하는 언어적 필요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비혼’이란 말을 만든 것은 사람을 ‘미혼’과 ‘기혼’으로 나누는 틀을 깨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결혼이란 틀로 사람을 보는 게 문제의 핵심이란 말이다. ‘남녀가 부부 관계를 맺음’의 뜻인 ‘결혼’에는 ‘이룬다’는 뜻이 담겨 있다. ‘결혼’의 뜻이 이러니 ‘미성년, 미완성, 미해결’이 자연스럽듯 ‘미혼’이 자연스러울 수밖에. 그렇다면 ‘비혼’을 만든 의도를 제대로 살리려면 접두사 ‘비-’와 ‘미-’의 차이에 주목할 게 아니라 어근 ‘(결)혼’을 벗어나는 말을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Board 말글 2025.02.10 風文 R 0
접미사 (2) <표준국어대사전> 검색창에 ‘이’를 치면 모두 38개의 표제어가 나온다. 이 가운데 ‘-이29’부터 ‘-이33’까지가 접미사다. 모양은 같아도 하는 일은 다른 접미사 ‘-이’가 다섯 가지라는 뜻이다. ‘-이29’는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다. ‘먹이, 재떨이, 멍청이, 딸랑이’ 등에 쓰인 ‘-이’는 ‘앞말이 가리키는 속성을 가진 사람이나 사물’이라는 뜻을 더하면서 앞말을 명사로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음(얼음), -개(날개), -기(모내기), -보(울보)’ 등도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다. ‘-이30’은 받침 있는 사람의 이름 뒤에 붙어서 어조를 고르는 접미사다. ‘갑돌이를 사랑한 갑순이’에서 ‘갑돌이, 갑순이’에 붙은 ‘-이’가 그것이다. ‘-이-31’은 피동 또는 사동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깎이다, 떼이다’에 쓰인 ‘-이-’는 ‘앞말이 가리키는 행동을 당하다’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고, ‘기울이다’, ‘높이다’에 쓰인 ‘-이-’는 ‘앞말이 가리키는 행동이나 상태가 되게 하다’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이처럼 피동 또는 사동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는 ‘-기-(쫓기다/맡기다), -리-(뚫리다/알리다), -히-(뽑히다/앉히다)’ 등이 더 있다. ‘-이32’는 부사를 만드는 접미사다. ‘많이, 같이, 집집이, 나날이’ 등에 쓰인 ‘-이’는 형용사나 1음절 명사 반복 구성 등의 뒤에 붙어서 ‘그러하게’ 또는 ‘그와 같게’의 뜻을 더하면서 앞말을 부사로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히(조용히)’도 부사를 만드는 대표적인 접미사다. ‘-이33’은 수를 나타내는 말 뒤에 붙어서 ‘그 수량의 사람’이라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친구와 둘이 영화를 보러 갔다’에서 ‘둘이’에 붙은 ‘-이’가 그것이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5.02.10 風文 R 0
재미있는 한글 이야기 한글의 재미있는 특징 중에 하나는 글자를 뒤집어도 다른 글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글자뿐 아니라 단어를 뒤집어도 다른 단어가 되는 경우도 있다. 먼저 한글의 자음 중에 뒤집으면 다른 자음이 되는 것으로 ‘ㄱ, ㄴ, ㄹ, ㅁ, ㅇ’ 등이 있다. ‘ㄱ’을 뒤집으면 ‘ㄴ’이 되고, ‘ㄴ’을 뒤집으면 ‘ㄱ’이 된다. ‘ㄹ, ㅁ, ㅇ’은 뒤집으면 똑같은 ‘ㄹ, ㅁ, ㅇ’이 된다. 한글의 모음 중에 뒤집으면 다른 모음이 되는 것으로 ‘ㅗ, ㅛ, ㅜ, ㅠ, ㅡ’ 등이 있다. ‘ㅗ’를 뒤집으면 ‘ㅜ’가 되고, ‘ㅛ’를 뒤집으면 ‘ㅠ’가 된다. ‘ㅡ’는 뒤집으면 똑같은 ‘ㅡ’가 된다. 또한 자음과 모음이 결합한 글자를 뒤집었을 때 다른 글자가 되는 것으로 ‘공, 농, 롱, 몽, 옹’, ‘굥, 뇽, 룡, 묭, 용’을 비롯해 총 125개 글자가 있는데, 예를 들어 ‘공’을 뒤집으면 ‘운’이 되고 ‘룡’을 뒤집으면 ‘율’이 된다. 그래서 ‘공룡’이라는 단어를 함께 뒤집으면 ‘율운’이 되고 ‘공군’이라는 단어를 뒤집으면 ‘곤운’이 된다. 이처럼 한글이 글자를 뒤집어도 다른 글자가 되는 이유는 한글의 위대한 창제 원리 때문이다. 한글의 모음은 하늘과 땅과 사람을 형상화한 ‘ㆍ’, ‘ㅡ’, ‘ㅣ’를 기본으로 만들어졌는데, 땅 위에 하늘을 둔 모양으로 ‘ㅗ’를 만들고, 땅 아래에 하늘을 둔 모양으로 ‘ㅜ’를 만들었으며 땅 위에 하늘을 두 번 합성해 ‘ㅛ’를 만들고, 땅 아래에 하늘을 두 번 합성해 ‘ㅠ’를 만들었다. 이처럼 땅을 기준으로 해서 그 위아래로 하늘을 합성해 모음을 만들었기 때문에 모음을 뒤집어도 다른 모음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5.02.08 風文 R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