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산막을 떠날 때, 할매들이 마중나와 베낭에 백설기 한덩어리를 넣어주며 스님 언제 오요? 나두 몰라, 금방은 못 올꺼구마. 스님 안계시면 적적해서 우야노? 하고 눈물을 글썽이시기에 우야긴! 하고 손 흔들며 떠나왔지만 그 정들임들을 멀어져 나오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후포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장호에서 내렸다. 동해를 바라보며 한 시간을 걸어 해거름이 되어서야 노스님이 계신 절에 도착했다. 떠나기 전에 노스님께 인사도 드리고 삼척을 경유하여 첫 목적지인 태백으로 가는 아침 6시 20분 기차를 타면 그런대로 일정이 순조로울 것이라는 생각에서 였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새벽 예불을 마치자 마자 아침을 먹자시더니 기어이 차에 태워 적멸보궁인 정암사에 참배를 시키고 눈 덮인 함백산을 넘어 석탄박물관을 둘러 태백시내 한복판에 있는 황지 연못에 나를 내려주고는 총총히 삼척으로 돌아가셨다. 평생 기도와 일 밖에는 몰랐다고 하신 스님께서 거리에 나서는 후학을 보내는 마음의 배려셨다. 인과는 분명하여 일을 하면 일을 따라 인연이 만들어지고 공부를 하면 공부를 따라 도반을 만나게 되고 집착하면 집착을 따라 생사를 헤매게 되는 것이기에 중 물들이는 책(緇門)의 첫머리는 假衆緣而共成(많은 인연이 모여서 이루어진 실체가 없는 것) 이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가보다. 황지 황지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가 넘어서였다. 황지는 700리 낙동강의 발원지라기 보다는 도심의 공원 연못 같은 곳이었다. 깊고 적요하리라는 내심의 기대가 있었기에 도심 한가운데 700리 낙동강의 발원지가 있다는 것은 의외였지만 태백이 해발 700m의 고원도시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납득 할 수가 있었다. 공원 벤취에는 연로하신 어르신들께서 봄 햇살 속에 나와 계셨고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아이들 손을 잡고 가족 나들이 나온 젊은 부부들과 학생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공원 입구에는 붕어빵, 군 밤, 뽑기, 그리고 고무풍선과 장난감 장사 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어 마치 30-40년 과거로 돌아가는 느낌마저 들었다. 살아온 날들에 대한 기억 보다는 추억의 풍경들이 더 그리운 이유는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황지 못 앞의 팻말에는 '수온 11도, 수심 4m 익사, 심장마비의 위험이 있으니 수영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지만 눈으로 보는 황지의 수심은 1m 정도의 깊이 밖에 보이지 않았다. 태백지방의 가뭄 탓에 못의 수량이 줄은 데다 식수난이 극심하여 황지의 물을 퍼올려 지역에 공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황지 주변에는 여러 대의 급수차들이 일정량의 물이 차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에는 하루 5천 톤의 물이 (500만명이 1리터의 물을 한병 씩 먹을 수 있는 양이다) 황지에서 솟아난다고 하니 물의 깊이를 눈으로 재려는 것은 막대자로 땅의 깊이를 재려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현제 진행하고 있는 언론사와의 소송 중에 한방울의 물이 바위 밑을 뚫고 내려가는 데는 1억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고 했더니 '믿을 수 없는 수치'라고 반론하고 있다. 고작 100년의 삶을 사는 우리가 어떻게 억년의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증거하겠는가? 억년이라는 숫자는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시간의 깊이라고 이야기하면 또 어떻게 반론할지 모르겠다. 탄광촌 이야기 태백 지역을 지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는 탄광촌 이야기일 것이다. 80,90년대에 비하면 폐광이 된 곳이 많지만 탄광은 여전히 태백의 주요한 생산 수단으로 태백 주민들의 생활의 뿌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광산촌 문제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것은 - 석탄 박물관을 둘러 본 것이 유일무일이다. 같은 한 시대를 살면서 내가 몰랐던 세상의 이야기는 이상하게 가슴을 울먹하게 한다. 전시실에 설치 되어 있는 멀티비전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속에서 검은금맥을 캐는 사람들' '진폐증 환자' '막장' 같은 이야기가 나올 때 함께 가셨던 노스님께서는 연방 눈물을 닦으셨지만 나는 줄 곳 석유와 석탄의 고갈처럼 물이 고갈 된다면 어떻게 될까하는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가 먹는 모든 물은 지하수'라는 한마디가 내가 천성산 일을 시작했던 이유였고 '지하수 유출 거의 제로'라는 조선일보 기사를 본 후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었다. 무엇보다 물과 관련된 환경문제는 미래 세대의 눈으로 바라보아야한다는 것이 답이 없는 질문들로 향한 이유였고 지금 고단하게 물길을 걷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길을 걸으며 노트북에 문제가 생겨 글과 자료를 많이 올리지 못합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 영상자료로 만들어 홈피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지난번 메일을 드리고 난 후 함께 걷고 싶다고 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 걸으며 그동안 돌아보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관심을 가져 주셔 감사합니다. 물길에서 지을 합장 www.chorok.org
Board 추천글 2009.03.14 바람의종 R 27448
한강 기억한다는 것은 흘러가는 물길을 거슬러 가는 것과 같은 일이지만 지난 1월 낙동강을 답사하고 돌아 온 후....한강변에서 자란 저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계속 마음을 헤매였습니다.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난 저를 등에 업고 서울로 올라가신 부모님께서는 왜 하필이면 한강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노량진 본동 산동네에 자리를 잡으셨는지.... 그러하기에 저는 줄 곳 한강을 보고 자랐지만 기실은 줄곳 한강의 변화를 지켜보며 자랐습니다. 눈에서는 지워 졌지만 마음에서는 지우지 못하고 있는 한강의 옛모습입니다. 우리들의 놀이터였던 백사장의 모래톱이 사라지는 것을 줄곧 지켜 보았고 모래톱이 사라지자 강가에 송사리떼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 보았으며 낚시꾼들이 사라지고 고기배들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스케이트를 타던 중도가 사라졌고 이후 더 많은 것들이 사라졌으며 더 많은 것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들어 왔습니다. 깊고 푸르고 물살이 빨랐던 한강은 편편하고 느리고 완만하여졌습니다. 물론 물이 더러워지고 더 이상 강에서 수영을 할 수 없다거나 고기 잡이를 할 수 없게 된 것이 누구의 탓은 아닙니다. 서울의 인구가 10 배나 불어났으니까요. 녹색 개발 지난 달 조선, 동아 소송심리에 참석하고 내려오는 길에 여의나루 쪽에서 잠시 들렀습니다. 어린시절 땅콩 서리를 하러 다니던 곳은 지금은 어디메라고 가늠하기 조차 어려웠고 강변은 공사중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추억을 꺼내는 것은 - 자랑거리가 아닌 나이를 꺼내는 것 이상의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조금 가까이 가서 보니 공사는 4 대강 정비사업 홍보 용지에 삽입되어 있는 수생 식물대를 만드는 작업인 듯 했습니다. 두 대의 포크레인이 자비를 베풀듯 열심히 그 커다란 손을 움직여 모래를 밀어내고 돌을 쌓고 있었습니다. 만일 멀리 건너다 보이는 희뿌연 아파트 숲만 아니라면 잠시 눈길을 주고 이 공사 현장을 가상스럽게 바라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 저는 그 공사현장과 빌딩 숲을 보며 이제는 사진첩에서나 볼 수 있게 된 한강 백사장과 낙동강가의 가없는 모래벌을 다시 가슴에서 꺼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낙동강 걷기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고 머리 숙였던 대통령은 '4대강 정비면 어떻고 대운하면 어떠냐'고 자문자답하고 그 뜻을 받든 대표는 '전 국토가 공사현장 처럼 느껴지게 건설의 망치소리 들리게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로인해 말과 질문을 빼앗긴 우리는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무기력한 분노의 극단까지 밀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답이 없다고 해서 그 끝이 어디 일까하고 묻기를 그 칠 수는 없으며 또한 답을 찾기를 게을리 할 수도 없기에 이제 그 질문들이 던져져 있는 곳으로 발걸음 해보려합니다. 당분간,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지난 3년 동안 열어 두었던 산막의 문을 닫고 낙동강을 도보하며 낙동강 이야기를 공명의 창을 통하여 소식을 전하고 이야기를 나누워 보려합니다. 아직은 구름이 깊지만 내일은 맑음이기를..... 낙동강 걷기를 떠나며 .... 지율합장 www.chorok.org
Board 추천글 2009.03.14 바람의종 R 22273
www.chorok.org 지난 년말과 년초 이틀 동안 저는 4대강 정비라는 이름으로 첫 삽을 뜬 안동-문경 구간을 답사했습니다. 지는 해와 뜨는 해를 바라보고 있을 만큼 마음이 한가하지 못했던 것은 뭔가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안동 강변은 제가 소송 때문에 서울을 다니면서 늘 지나게 되는 곳이었습니다. 제가 의심했던 것은 사전 환경성 인허가도 나오기 전에 왜 안동에서 첫 삽을 떴을까하는 것이었습니다. .. 마침 농한기라 트럭을 가지고 있는 귀농한 친구에게 하루만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그러나 하루만에 안동 수계를 돌아보기는 어려웠고 병산 서원의 모래늪에 빠진 승용차를 밀어주는라 시간이 지체되어 거리에서 해를 넘기고 말았습니다. 예상 대로 안동땜과 임하땜의 직하에 위치한 용담교에서 안동 대교까지 4km 구간의 투명하게 맑았고 하천정비가 잘되어있었으며 체육시설과 자전거 도로, 경비행장까지 잘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영상1 안동천 주변 (클릭하여 화면을 열어봐주시기 바랍니다.) .. ▲ 정부는 하천 정비가 잘 되어 있는 위와 같은 곳에 아래와 같은 시설을 투자한다고 합니다. - 4.07㎞ 구간에 409억원이 투입하여 수중보를 높이고 윈드서핑 등 수상레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고, 물고기가 서식하고 각종 식물이 자랄 수 있는 자연 식생군락지가 형성된다. 또 둔치에는 산책로와 자전거도로가 마련 돼 실개천을 따라 시민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되며 영가대교 상류에는 백조공원과 음악분수 등을 설치한다. (연합 2008년 2월29일) 저는 바로 이 뉴스를 접하고 곧바로 안동으로 달려 간 것입니다. 안동에서 문경까지 답사하면서 이곳에 무슨일이 일어날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낙동강, 굽이굽이 병든 1300리 물길' 이라는 중앙일보 기획기사를 보며 가슴을 쓸어 내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태산 같이 많았지만 마침 컴이 고장났고 이 이야기들을 어떻게 시작 해야 할지 애가 탔습니다. 낙동강, 굽이굽이 병든 1300리 물길 - 이대로 두는 건 보호 아닌 방치 큰 비만 내리면 홍수날까 한걱정 모래·흙 쌓이고 수질은 계속 악화 6조7000억원 투입해 재탄생 예고 ◆ 메마른 낙동강 상류 - 안동·임하댐에서 방류한 물이 잡목과 풀숲이 무성한 습지와 백사장 사이로 답답하게 흐르고 있다. 하회마을 소나무숲 앞 물굽이와 병산서원 앞에는 모래밭이 허옇게 드러나 겨울 가뭄을 말해 준다 일부 구간의 수심은 성인 남자의 허리춤 정도(1m 내외)로 얕아 마음만 먹는다면 걸어서도 강을 건널 수 있다. .....경북도립대 권기창(행정학) 교수는 “낙동강 상류는 쉽게 마르고, 쉽게 넘친다”며 “강바닥이 얕고 습지가 넓어 물을 받아낼 ‘그릇’이 작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환경보호를 명목으로 낙동강을 그대로 놔두는 것은 보호가 아니라 방치”라며 “강바닥을 긁어내는 준설을 통해 그릇을 키우면서 나루터나 생태공원 등 다목적으로 강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 2009년 1월 1일기획 특집 : 강을 살리자) 위 기사는 4대강 개발 (운하?) 의 목적이 가뭄과 홍수대책, 그리고 생태 복원이라는 정부와 개발업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위 기사를 보고 제 의문은 더욱 증폭되기만 했습니다. 만일 그들의 말데로, 강바닥을 준설하고 보를 쌓으면 상류의 모래층은 더 이상 흘러내리지 않을까요. 정말 홍수에는 안전하고 가뭄에 대한 대책이 될까요. 자연생태계는 과연 안전할까요. 물이 심하게 상처를 받는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무엇을 보기 위해 산에 오르고 강이나 바다에 가려할까요. 자연을 정복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문명은 과연 얼마나 지속 될까요. 어딘가 미지의 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견디지 못하는 듯 하지만 자연의 입장에서도 그러할까요. 자연은 우리에게 무엇을 빚졌기에 날마다 이렇게 가혹한 대접을 받아야 할까요. 골재 채취권은 관련 법령에 의거 골재자원 조사 등을 거치게 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조사는 충분했을까요. 국토부 장관은 골재 채취등의 인허가를 하기 위해 얼마나 오랫 동안 연구하고 조사했을까요. 이제 정부에서 지원하여 강의 모래를 퍼내고 나면 그 이익은 온전히 국민들의 몫이 될까요. 정부에서 이야기한 수 십 만개의 일자리는 창출될까요. 이 일로 노심초사하는 경기가 회복 될까요. 최악의 경우 강의 상류에 인위적인 시설들이 더 많이 들어서면 그들이 쓰는 물은 어디로 흘러들게 될까요. 만일 이 도전이 실패로 끝나버린다면 ... 되돌아 올 길이 있을까요. 자연의 복구는 가능할까요.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고 그 질문들을 지우는 일이 얼마나 큰 위험인지 저는 천성산을 통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허황한 수치인 2조에 매달리는 동안 천성산의 물줄기는 끊어져 버렸고 고속철은 년간 5천 억의 적자를 안고 달리는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생명의 땅이었던 새만금과 우리가 죽인 섬 을숙도 또한 아픔을 견디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은 미지의 강가에 서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연에 대하여, 강에 대하여 더 많이 모른다고 하는 싯점으로 하루 빨리 회귀하지 않으면 저 말없는 강은 우리에게서 자신의 신비를 영원히 감추어 버리고 말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 새해입니다.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고 상처 받지 않고 살아졌으면 합니다. 자연과 사람 모두에게 ..... - 산막에서 지율 합장 다음주에는 위 구간을 도보로 답사하고 좀더 상세한 자료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자전거로 4시간, 도보로 16시간 걸리는 거리이니 시간되시는 분들은 한번 답사하는 것도 강과 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지도 파일 첨부하여 올립니다. www.chorok.org
Board 추천글 2009.01.23 바람의종 R 24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