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살리기 혹은 ? 최근 이틀 동안 운하문제에 대하여 귀가 아프게 들었습니다. 언론에 보도 된 바에 의하면 <4대강 살리기의 기본은 이상기후에 따른 홍수 및 가뭄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자는 것으로 노후 된 제방을 보강하고 중소규모댐, 홍수조절지 등을 건설한다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물을 2급수로 만들고 물 저장량을 늘리며, 노후 된 제방을 보강하고 중소규모의 댐과 홍수 조절지 등을 건설하는 일과 생태하천을 만들고 자전거 길을 만드는데 이의를 제기 할 수는 없습니다. . 그러나 저는 지금 강가에서 제가 보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사진 속의 풍경들은 갑문이 세워질 예정지인 낙동 부근입니다. 통행이 뜸한 도로는 도로 확장 깃대가 세워져 있고 곡물을 심은 논밭에는 온통 빨간 깃대가 꼿혀 있으며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는 둔치에는 어김없이 아래와 같은 안내판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강 주변에는 철거된 주택들이 눈에 띄고 강변의 둔치들은 국가에서 환수거나 보상이 끝났다고 합니다. 설마 통행량이 뜸한 이곳에 자전거 도로를 만들고 이 적막한 마을을 헐어 생태습지를 세우기 위해 빨간 깃대를 꼿아 놓지는 않았겠지요.... 제 머리속에는 알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많은 질문들이 가득한데 정부는 묻지도 않은 답지를 펼쳐놓고 이것이 답이라고 믿으라합니다. . 철새도래지라고 팻말이 붙은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는 모래 채취와 재방 공사로 분주하고 심지어 습지를 자갈로 덮어 둔치를 만들고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오탁수 보호막 하나 없이 강바닥은 파헤쳐지고 있고 흙탕물이 그대로 하류로 흘러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픔의 땅에서 소중한 것들이 무너져 가는 풍경속으로 걸어가며 눈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고 아픔의 땅에 서있는 일이 아득하고 서러웠습니다. 사월초파일 거리에 연등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40년 동안 맨발로 겐지스 강가를 걸으신 그 분이 이 땅에 오신날을 기리기 위함입니다. 공명의 창에 물길지도 편집하여 올려놓습니다. 오도송 많은 생을 윤회하면서 나는 치달려왔고 보지 못하였다. 집짓는 자를 찾으면서 괴로운 생은 거듭되었다. 집 짓는자여, [이제] 그대는 보여졌구나. 그대 다시는 집을 짓지 못하리. 그대의 모든 골재들은 무너졌고 집의 서까래는 해체되었다. 마음은 업형성을 멈추었고 갈애는 부서져버렸다. - 부처님의 오도송 ▶ 강가에서 the riverside
Board 추천글 2009.04.30 바람의종 R 23593
이 길에 마음을 담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 길은 선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 . 운문사 스님들과 함께한 2박 3일의 물길순례 일정을 뒤로하고 저는 다시 출발점인 안동으로 돌아왔으며 이번에는 자전거를 이용하여 물길순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운문사 스님들과 함께 물길을 걸으면서 2002년 겨울, 어깨띠를 두르고 처음 거리에 섰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세상에 들어서면서도 세상풍파가 제 속으로 들어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시절이었습니다. . 그러하기에 스님들의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는 일이 어떤 일인지 알면서도 저는 더 많은 스님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 주시기를 바라며 스님들 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물길 걷기에 동참하여 주기를 바랍니다. 옛말에 " 나쁜 사람이 바른 법을 쓰면 바른 법도 나빠지고 바른 사람이 나쁜 법을 쓰면 나쁜 법도 좋아진다 "고 하였습니다. 지금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강 사업이 <4대강 살리기> <녹색개발>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지고 있지만 저는 지난 한달 동안 물길을 걸으며 지금 우리의 강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았으며 은밀하고 지속적으로 자연을 상처 입히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 4대강 개발사업이 현제와 미래에 어떤 변화를 가지고 올지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정부에서 강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후 불과 두세달 사이에 우리의 강은 옛 모습을 잃고 깊은 시름에 잠겨 버렸습니다. 무엇보다 생태와 환경문제에 대한 깊은 인식과 세계관이 없이 경제를 운운하는 사람들에게 강은 맡겨져 있으며 우리의 무관심으로 인해 강은 크게 상처를 입고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운문사 스님들과 헤어지면서 저는 2박 3일 동안 우리가 보고 느낀 것을 날마다 한사람에게 이야기하여 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공명의 친구들께도 저는 같은 부탁을 드립니다. 지금 강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강 개발 사업에 불만을 가지고 그 책임을 전적으로 정부에 전가한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물길을 걸으며 . 아픔의 땅에서 위의 사진을 클릭하면 공명의 홈피에 새로 만들어진 <강...>의 창으로 옮겨가며 지금 우리의 강에 일어나고 있는 영상들이 올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강을 바라보고 강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할 때 방법은 때 정부로 부터가 아니라 우리에게서 생겨 날 것이며 이 생각들을 행동으로 옮겨간다면 이후 닥아 올 일을 예비하는 일이 결코 불가능할 만큼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대법원의 판결에 대하여 어제 거리에서 실형 선고를 내린 제 판결소식을 들었습니다. 법원에서 판결일을 제게 통보한 일도 없고 아직 판결문을 받아 보지도 못하였는데(그것이 통례인지는 모르지만) 유명 일간지들은 23일 일제히 기사와 사설을 실었습니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판결문을 제게 송부한 것은 24일(금)이며 판결문은 아직 인터넷에 올려있지 않습니다. 저는 항소와 상고시에 결코 무죄를 주장하지는 않았으며 저의 적법함을 주장하지도 않았기에 상소 후 27개월 만에 시의 적절하게 내린 법원의 결정에 이의는 없습니다. 설령 목에 칼을 쓰고 지옥에 떨어진다고해도 저는 지금과 같은 선택을 주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경에 <5역상(逆相)으로서 해탈을 얻되 5역죄(五逆罪)에서 해탈하는 것도 아니요 속박을 받는 것도 아니라> 하셨으며 조사들께서는 <번뇌와 함께하며 난(難)중에 몸을 숨기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판결을 빌미로 스스로 정정보도를 내고도 비약해 가고 있는 논리들은 <악의>가 아니라 <시의>이기에 저는 대법원의 판결문을 본 후 오도된 기사들을 바로 잡아 가려합니다. 그들이 눈가림하고 싶어하는 것은 지금 제가 걷고 있고, 제 눈이 보고 있는 이 현장들과 결코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강가에서 the riverside
Board 추천글 2009.04.30 바람의종 R 27564
몰운대 부산 지역의 시민단체가 오랫동안 반대해 오던 명지대교 현장을 지날 때는 해가 떨어지고 있었고 낙동 정맥의 끝자락인 몰운대 조망대에 올랐을 때는 바다는 보이지 않았고 비릿한 바다 냄새만 밀려왔습니다. . 저는 어두운 바다와 멀리 불빛에 흔들리고 있는 도회를 바라보며 지난 한달 동안 물길을 걸으며 제 눈이 보고 제 안에서 부화하기 시작한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제방을 쌓기 위해 산이 무너지고 강가의 나무들은 불태워졌으며 강바닥은 파헤쳐지고 있었고 그로인해 많은 생명들이 강가를 떠나고 있었습니다. . 정부의 홍보 자료에 따르면 제방을 쌓고 강 뚝을 높여 다듬어진 그 자리에 들어올 시설물들은 대부분 도로나 공원, 항만, 산업, 레저, 관광벨트로 -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을 목표로 설정된 대규모 토목사업이며, 이러한 개발사업이 과연 어떠한 결과로 닥아 올지 지금으로서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 - 저 윗마을에 벌써 자살한 사람이 둘이나 됩니더. 아침에 화명 둔치에서 감자밭을 메던 할매의 이야기입니다.이제 더 많은 생명들이 강을 떠나게 될 것이며 둔치에 농사를 짓던 허리굽은 농민들은 약간의 보상금을 손에 쥐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도회를 떠돌게 될 것입니다. 물길을 걸으며 . . 자연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파괴하여 더 많이,더 편리하여지기를 추구하는 욕망곡선을 따라 달려온 지난 30년 동안 우리의 산하는 그 원형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고 생태계는 단절되었으며 수없이 많은 생물종들은 이 땅을 떠났고 물과 공기는 오염되었으며 부정과 부패는 사회 전반에 퍼졌으며 빈부의 격차는 점점 커지고 도농간의 소통은 두절되었으며 사회적 양극화는 심화 되어버렸습니다. 파산자, 실업자, 부량자, 범죄자, 자살자의 숫자는 날마다 기록에 오르고 급기야 아이들을 건강과 범죄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할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안들이 자연을 폭력적으로 대하는 우리들의 행보와 너무나 닮아있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은 아직 그리 많지 않은것 같습니다. 지금 세계는 자연을 깊이 이해하고 자연의 순환원리를 통해 인류가 나아갈 공동의 목표를 찾지않으면 안된다고 느끼는 싯점까지 와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공동의 목표를 뒤로하고 지금처럼 자연을 크게 변형시키는 4대강 개발 사업을 급속하게 진행하고 그 과정에서 희생될 것들이 무엇인지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에 뒤따르게 될 재앙이 무엇인지 예측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한달 동안 마음을 조리며 물길을 걸었지만 저는 아직 이 문제에 대하여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고 누구도 그 문제에 대하여 답하여 줄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제 제게 남은 질문은 우리에게 남은 시간, 남은 방법이 무엇일까하는 것입니다. 답은 없지만... 그러나 우리가 질문하기를 그치지 않는다면....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많은 좋은 결과들이 이 질문으로 부터 생겨....나지 않을까요.... 물길을 걸으며 이글을 쓴 것은 3일전 물길 걷기를 끝내면서 낙동강 하구에서였습니다. 동아, 조선 심리가 서울 법원에서 열려 이틀을 묶고 지난밤 한 달만에 산막으로 돌아와 컴을 열어 쓰다만 글을 정리하여 올립니다. 오늘부터 삼일 정도 산막에서 머물면서 그동안 물길을 걸으며 찍었던 사진과 자료를 정리한 후 다시 강가로 돌아가 강의 이야기를 계속하려합니다. 또한 조만간 옛사진 모음을 위한 창을 개설하여 많은 분들이 이 영상작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려합니다. 파괴, 혹은 변화의 현장은 눈에서 지워져가겠지만 그 길에서 머물었던 한 장면 한 장면은 모두 소중하게 보관 될 것이며 지금 우리의 선택이 어떤 것이었는지- 잘했건 잘못했건 간에 - 기록으로 남기려 합니다. 공명 친구들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남지 - 꽃무덤
Board 추천글 2009.04.13 바람의종 R 27537
강마을 "여기 논밭과 저기 까정 서울 사람들이 샀니더만, 골프장, 병원. 그리고 뭐시기 세계에서 제일로 큰게 들어선다나." 드라마 상도를 찍던 마을 건너편 강가에서 만난 할매의 말이었다. 이 고즈넉한 풍경들 속으로 들어 올 것들은 과연 무엇일까. . 운하 터미널 예정지였던 낙동면에는 복덕방이 즐비했고 둔치의 변화가 먼저 눈에 띄었다. 푸른 머리를 강물에 풀어 넣어야 할 제방주변의 나무들은 베어지거나 불태워지고 제방주변에 여기저기 꼿혀 있는 빨간 깃대, 그 언저리에는 어김없이 하천부지 사용불가 농작물 금지 표지판과 공사장 표시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미 철거를 시작한 곳도 있었다. . 낙동강 구간은 지금 제방공사가 한창이다. 구체적인 사업 계획도 나오기 전에 서둘러 공사를 착공하고 토지를 수용하고 토목사업을 진행 하는 이유를 어디에 물을 수 없고 알 수도 없다. 부국환경포럼 혹여하여 지난 12월, 한나라당 운하대책 본부장으로 활동하던 박승환 전의원이 발기하고 이재오, 유우익, 등 운하 관련 정치. 경제인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부국환경포럼의 홈피에 들어가 보니 바탕화면에 물길 살리기에 관한 3편의 동영상이 떠있다. 비교적 최근에 (3월 19일) 올려진 이 영상은 정부가 공표하고 있는 4대강 살리기 홍보물이 아닌 주운운하를 놓아야 할 필요성과 타당성에 대한 내용이 영상화 되어 있다. 물론 그분들의 활동과 역할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영상물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은 지난 한달 동안 내 눈이 보아왔던 현장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것이다. 설사 이 영상물이 아직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며 또한 영상이라는 것이 감정에 호소하며 이면의 것을 감추는 특성이 있다하지만 국가 정책에 관련 된 중요사안은 섬세하고 정확하게 이야기되고 검토되어야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진실이 드러나게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다고 할수 없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지금 부터 20여분 짜리 이 동영상을 그들이 자른 편집방식으로 7회 정도로 나누워 재편집하여 올려보려 한다. 발품을 팔아 걸으며 내 눈이 아프게 보고 있는 현장을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 아래 화면을 클릭하여 영상물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물길을 걸으며 . 물길을 걸으며 대구 시내에 있는 사찰에서 행장을 풀고 낮에 찍었던 사진과 기록을 정리하고 있는데 곁에서 건너다 보던 스님께서 "제2의 청계천 이네" 하신다. 제 2의 청계천...... 어떻게하면 자연을 우리 속으로 끌여들이는 일이 아닌 우리가 자연 속으로 들어가야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 괴리가 너무 크기에 물길을 걷는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아픔의 땅을 걸으며 지율합장 www.chorok.org
Board 추천글 2009.04.03 바람의종 R 22966
회룡포 마을주민들이 뽕뽕다리라고 부르는 다리를 건너 회룡포에 도착하였을 때는 해가 저물어갈 무렵이었고 강변 기슭에서 마을 어르신들께서 나무를 전지하고 계셨다. 인적과 인가가 드물어 마음 속으로 저녁 잠자리를 걱정 하고 있었기에 나무를 심고 계신 어르신들께 회룡포 마을 안에 민박이 있는지 여쭈었더니 민박이 있기는 하지만 겨울에는 문을 열지 않을 것이라시며, 내 행상이 측은해보였던지 잠자리가 마땅찮으면 당신 집에 묵어가라고 하신다. - 길이 끝나는 곳, 날이 어두워지는 곳에서 보내는 하룻밤은 각별한 추억되기에 오늘은 잠시 일숙객(一宿客)으로 머물었던 곳의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 마을을 건너는 뽕뽕다리 어르신과 함께 가면서 알게 된 사실은 나무를 심고 계신 분들은 모두 회용포 마을 주변의 이장님들이셨고 일손이 귀한철이라 이장단에서 회용마을의 나무를 전지하고 가꾸는 일을 하는 중이셨단다. 저녁 8시쯤 되니 강변에서 뵈었던 두분의 이장님께서 부부 동반을 하고 오셨는데 헤어져 가면서 이장님 중의 한 분이 '아무래도 그 스님이 그 스님 같다'고 하여 가보자고 하여 오셨다고 하신다. 이장님들께서 가져오신 과일로 다과상을 벌여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아무래도 '그 스님이 그 스님'이다 보니 대화는 자연 환경문제, 아이들 교육문제로 진전되어 갔다. 해당지역이며 지역민의 이익에 관계 된 일이라 4대강 개발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여쭈어 보았더니 '절대 반대'하시는 이장님이 한분, 별 의견이 없으신 분, '보존은 해야하지만 개발도 해야한다'는 분으로 의견이 엇갈렸다. 하지만 할매들의 의견은 보존해야한다는 것이 위의였고 이장님들께서도 난개발 문제, 특히 회룡포 마을을 관광화 할 경우 어떤 휴유증이 뒤따를지 크게 걱정하셨다. 이제 환경문제에 대하여 아무런 인식이 없던 시골마을까지 개발과 환경문제를 선택과 위기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야기의 말미에 무지마을 이장님께서 "스님요. 저는 꿈이 있십니더. 이제까지는 자식 가르치는라, 돈 만드느라고 수확만 생각하고 농약도 많이 치고 비료도 많이 썼지만 이제는 돈이 안 되더라도 밑거름도 많이 넣고 농약도 적게치고 땅을 살리는 자연친화적인 농사를 지어보는 것이 남은 꿈입니더" 하시고는 할매를 향해 다짐하듯 " 이제 할매도 일 욕심 돈 욕심 버리고 그렇게 살제이" 하시기에 할매 대신 내가 맞장구치는데 일순 쌓인 피로가 풀려나가는 듯했다. 이장님의 이 한마디 말은 너무도 단순하고 명백하게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을 가르키고 있다. "이제는 돈이 안 되더라도" 돈이 안되는 선택을 하지않으면 안될 만큼 우리의 땅과 자연은 죽어가고 있고 "이제는 돈이 안 되더라도" 살아온 길을 돌아가지 않으면 안될 만큼 우리는 잘못 된 방향으로 걸어왔으며 "이제는 돈이 안 되는 것"을 희망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될 만큼 우리의 미래는 불안하다는 것이다. 돈이 안되더라도 만일 정부의 비젼에, 그리고 우리의 선택들 속에 "이제는 돈이 안 되더라도" 라는 이 한마디를 끼워 넣는다면 우리의 삶의 질이 얼마나 고양될지, 얼마나 많은 가능성들이, 얼마나 많은 창조적 생각들이 그리고 따스한 인정들이 되살아 날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무겁고도 벅차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그와 반대로 일자리 창출 국민소득 증대라는 비전을 제시하며 현란하게 폭죽을 터트리고 있다. 고속철도 사업에서와 같이 선정적인 구호로 국민들의 귀와 눈을 막으려는 것이 정부가 일을 진행하는 수순과 전략이라는 사실은 이 사업이 얼마나 부조리한 사업인지를 예견케한다. 무엇보다 지난 수년간 고속철도 공단의 이사로 재직했던 국토부 장관은 4대강 개발로 인한 경제 회복을 운운하기 전에 20조 이상 투자를 하고도 수천억의 운영적자를 내고 있는 고속철도 운영 문제에 대하여 책임져야 하고, 부실침목사건과 업체 선정과정의 논란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한다. 천성산 구간의 경우 투자 된 비용의 매몰이 없는 6개월의 공사 지연만으로도 2조 손실 운운했던 국토부 장관은 완공단계에서 드러난 부실로 인해 최소 9 개월이상 지연, 그 직접적인 교체비가 얼마가 들지 모를 상황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300조가 넘는 국가 부채, 100조가 넘는 국토부의 부채 역시 누가 감당 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길을 걸으며 물길을 걷는 걷은 아득하다. 사람의 길은 물길과 달라서 문득 길이 끊어지면 그 끊어진 자리에서 돌아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이 휘돌아가면서 물가에 모래언덕을 만들듯이 긴 그림자를 끌고 돌아가는 발걸음 역시 더 깊은 인상들을 추억으로 남긴다. 물길을 걷기 시작한지 보름이 훨 지났다. 물길에서 지을 합장 www.chorok.org
Board 추천글 2009.03.24 바람의종 R 24696
물줄기 안동은 큰 산과 큰 물이 처음 만나는 곳이다. 태백산과 함백산에서 발원된 낙동의 원줄기와 일월산과 주왕산에서 발원된 물줄기가 안동 땅에서 만나 위세가 강해지고 위세가 강해진 만큼 많은 양의 퇴적물을 싣고 내려와 지금의 안동, 풍천, 예천, 문경 지방의 평야지대를 형성하였다. 하지만 지금 이 두 물줄기는 안동땜과 임하땜으로 막혀있어 그 본래의 흐름이 어떠했을지를 상상하기가 쉽지 않은데 지형과 지형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는 후일 이 순례가 끝나는 시점에서 정리하여 보려한다. 서원 산과 물이 만나는 곳은 사람이 모이고 상권과 문화가 형성 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고 했던가. 안동에는 인재가 많고 서원들이 많다. 안동땜의 상류에 위치한 도산서원과 오천 유적지, 물이 휘도는 곳에 위치한 병산서원, 회룡포 마을의 용궁향교는 모두 물가에 세워진 아름다운 서원이다 . 고즈넉한 병산서원 (사진클릭) 도산 서원은 안동땜을 정남으로 바라보며 낙동강 상류에 병산 서원은 안동의 서쪽에 낙동강을 굽어보고 있다. 서원에 찾을 때마다 우주의 원리를 가르치고 인의 도리와 군자의 도리를 가르치고 배웠던 옛 선현들과 작금의 배움과 가르침을 반추하여 보게 된다. 시절이라고 하기엔 그 괴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하회마을 안동을 답사하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대한민국 정신 문화의 수도 안동 이라는 기치플레어 아래 문화가 상품으로 전락해가는 일면을 보는 일이었다. 특히 안동이 자랑하는 명소로 지난해 정부에서 낙동70리 생태환경조성사업의 일환으로 295억의 예산을 집행하고 있는 하회마을은 예전 고요했던 민속촌에서 민속 상가로 변해가고 있었다. 매표소 입구에서 부터 줄세워진 커다란 음식점 입간판들, 풍경 마다 함께 서있는 자판기, 세면으로 포장 된 마을길, 나루 옆에 주차장, 먹거리와 숙박업소가 상가를 이루고 있음을 보면서 - 지금 우리가 자연과 문화를 대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 자연과 문화를 정형하여 상품화하는 일이 언제나 끝나게 될지, 쏟아 붙고 난 후 무너지고 비어진 자리는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가슴속에 답이 없는 질문들만 남았다. . . 물길을 걸으며 출발 전 제 자신에게 관찰자로서 기록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본다는 것은 마음이 하는 일이며 기록하는 일은 재능이 하는 일이라는 것을 절절히 느끼게 됩니다. 더구나 앞서가는 마음과는 달리 낮선 환경, 호환이 안되는 컴프터, 세찬 강바람과 황사, 배고픔과 다리의 경련등 신체적 욕구와 반응 등 장애는 하나 둘이 아니고 ..... 게다가 4대강 정비 이라는 이름으로 첫 삽을 뜬 안동을 지나면서는 무력하고 골 깊은 시름과 갈등 속에 자주 빠지게 되어 아직도 이곳을 계속 맴돌기만 하고 있습니다. 걷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 그 할 수 없는 것이 가슴에 차오를 때 물길의 이야기를 시작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길에서 지을 합장 www.chorok.org
Board 추천글 2009.03.17 바람의종 R 31710
출발 산막을 떠날 때, 할매들이 마중나와 베낭에 백설기 한덩어리를 넣어주며 스님 언제 오요? 나두 몰라, 금방은 못 올꺼구마. 스님 안계시면 적적해서 우야노? 하고 눈물을 글썽이시기에 우야긴! 하고 손 흔들며 떠나왔지만 그 정들임들을 멀어져 나오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후포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장호에서 내렸다. 동해를 바라보며 한 시간을 걸어 해거름이 되어서야 노스님이 계신 절에 도착했다. 떠나기 전에 노스님께 인사도 드리고 삼척을 경유하여 첫 목적지인 태백으로 가는 아침 6시 20분 기차를 타면 그런대로 일정이 순조로울 것이라는 생각에서 였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새벽 예불을 마치자 마자 아침을 먹자시더니 기어이 차에 태워 적멸보궁인 정암사에 참배를 시키고 눈 덮인 함백산을 넘어 석탄박물관을 둘러 태백시내 한복판에 있는 황지 연못에 나를 내려주고는 총총히 삼척으로 돌아가셨다. 평생 기도와 일 밖에는 몰랐다고 하신 스님께서 거리에 나서는 후학을 보내는 마음의 배려셨다. 인과는 분명하여 일을 하면 일을 따라 인연이 만들어지고 공부를 하면 공부를 따라 도반을 만나게 되고 집착하면 집착을 따라 생사를 헤매게 되는 것이기에 중 물들이는 책(緇門)의 첫머리는 假衆緣而共成(많은 인연이 모여서 이루어진 실체가 없는 것) 이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가보다. 황지 황지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가 넘어서였다. 황지는 700리 낙동강의 발원지라기 보다는 도심의 공원 연못 같은 곳이었다. 깊고 적요하리라는 내심의 기대가 있었기에 도심 한가운데 700리 낙동강의 발원지가 있다는 것은 의외였지만 태백이 해발 700m의 고원도시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납득 할 수가 있었다. 공원 벤취에는 연로하신 어르신들께서 봄 햇살 속에 나와 계셨고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아이들 손을 잡고 가족 나들이 나온 젊은 부부들과 학생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공원 입구에는 붕어빵, 군 밤, 뽑기, 그리고 고무풍선과 장난감 장사 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어 마치 30-40년 과거로 돌아가는 느낌마저 들었다. 살아온 날들에 대한 기억 보다는 추억의 풍경들이 더 그리운 이유는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황지 못 앞의 팻말에는 '수온 11도, 수심 4m 익사, 심장마비의 위험이 있으니 수영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지만 눈으로 보는 황지의 수심은 1m 정도의 깊이 밖에 보이지 않았다. 태백지방의 가뭄 탓에 못의 수량이 줄은 데다 식수난이 극심하여 황지의 물을 퍼올려 지역에 공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황지 주변에는 여러 대의 급수차들이 일정량의 물이 차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에는 하루 5천 톤의 물이 (500만명이 1리터의 물을 한병 씩 먹을 수 있는 양이다) 황지에서 솟아난다고 하니 물의 깊이를 눈으로 재려는 것은 막대자로 땅의 깊이를 재려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현제 진행하고 있는 언론사와의 소송 중에 한방울의 물이 바위 밑을 뚫고 내려가는 데는 1억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고 했더니 '믿을 수 없는 수치'라고 반론하고 있다. 고작 100년의 삶을 사는 우리가 어떻게 억년의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증거하겠는가? 억년이라는 숫자는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시간의 깊이라고 이야기하면 또 어떻게 반론할지 모르겠다. 탄광촌 이야기 태백 지역을 지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는 탄광촌 이야기일 것이다. 80,90년대에 비하면 폐광이 된 곳이 많지만 탄광은 여전히 태백의 주요한 생산 수단으로 태백 주민들의 생활의 뿌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광산촌 문제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것은 - 석탄 박물관을 둘러 본 것이 유일무일이다. 같은 한 시대를 살면서 내가 몰랐던 세상의 이야기는 이상하게 가슴을 울먹하게 한다. 전시실에 설치 되어 있는 멀티비전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속에서 검은금맥을 캐는 사람들' '진폐증 환자' '막장' 같은 이야기가 나올 때 함께 가셨던 노스님께서는 연방 눈물을 닦으셨지만 나는 줄 곳 석유와 석탄의 고갈처럼 물이 고갈 된다면 어떻게 될까하는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가 먹는 모든 물은 지하수'라는 한마디가 내가 천성산 일을 시작했던 이유였고 '지하수 유출 거의 제로'라는 조선일보 기사를 본 후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었다. 무엇보다 물과 관련된 환경문제는 미래 세대의 눈으로 바라보아야한다는 것이 답이 없는 질문들로 향한 이유였고 지금 고단하게 물길을 걷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길을 걸으며 노트북에 문제가 생겨 글과 자료를 많이 올리지 못합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 영상자료로 만들어 홈피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지난번 메일을 드리고 난 후 함께 걷고 싶다고 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 걸으며 그동안 돌아보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관심을 가져 주셔 감사합니다. 물길에서 지을 합장 www.chorok.org
Board 추천글 2009.03.14 바람의종 R 27444
한강 기억한다는 것은 흘러가는 물길을 거슬러 가는 것과 같은 일이지만 지난 1월 낙동강을 답사하고 돌아 온 후....한강변에서 자란 저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계속 마음을 헤매였습니다.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난 저를 등에 업고 서울로 올라가신 부모님께서는 왜 하필이면 한강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노량진 본동 산동네에 자리를 잡으셨는지.... 그러하기에 저는 줄 곳 한강을 보고 자랐지만 기실은 줄곳 한강의 변화를 지켜보며 자랐습니다. 눈에서는 지워 졌지만 마음에서는 지우지 못하고 있는 한강의 옛모습입니다. 우리들의 놀이터였던 백사장의 모래톱이 사라지는 것을 줄곧 지켜 보았고 모래톱이 사라지자 강가에 송사리떼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 보았으며 낚시꾼들이 사라지고 고기배들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스케이트를 타던 중도가 사라졌고 이후 더 많은 것들이 사라졌으며 더 많은 것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들어 왔습니다. 깊고 푸르고 물살이 빨랐던 한강은 편편하고 느리고 완만하여졌습니다. 물론 물이 더러워지고 더 이상 강에서 수영을 할 수 없다거나 고기 잡이를 할 수 없게 된 것이 누구의 탓은 아닙니다. 서울의 인구가 10 배나 불어났으니까요. 녹색 개발 지난 달 조선, 동아 소송심리에 참석하고 내려오는 길에 여의나루 쪽에서 잠시 들렀습니다. 어린시절 땅콩 서리를 하러 다니던 곳은 지금은 어디메라고 가늠하기 조차 어려웠고 강변은 공사중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추억을 꺼내는 것은 - 자랑거리가 아닌 나이를 꺼내는 것 이상의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조금 가까이 가서 보니 공사는 4 대강 정비사업 홍보 용지에 삽입되어 있는 수생 식물대를 만드는 작업인 듯 했습니다. 두 대의 포크레인이 자비를 베풀듯 열심히 그 커다란 손을 움직여 모래를 밀어내고 돌을 쌓고 있었습니다. 만일 멀리 건너다 보이는 희뿌연 아파트 숲만 아니라면 잠시 눈길을 주고 이 공사 현장을 가상스럽게 바라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 저는 그 공사현장과 빌딩 숲을 보며 이제는 사진첩에서나 볼 수 있게 된 한강 백사장과 낙동강가의 가없는 모래벌을 다시 가슴에서 꺼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낙동강 걷기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고 머리 숙였던 대통령은 '4대강 정비면 어떻고 대운하면 어떠냐'고 자문자답하고 그 뜻을 받든 대표는 '전 국토가 공사현장 처럼 느껴지게 건설의 망치소리 들리게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로인해 말과 질문을 빼앗긴 우리는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무기력한 분노의 극단까지 밀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답이 없다고 해서 그 끝이 어디 일까하고 묻기를 그 칠 수는 없으며 또한 답을 찾기를 게을리 할 수도 없기에 이제 그 질문들이 던져져 있는 곳으로 발걸음 해보려합니다. 당분간,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지난 3년 동안 열어 두었던 산막의 문을 닫고 낙동강을 도보하며 낙동강 이야기를 공명의 창을 통하여 소식을 전하고 이야기를 나누워 보려합니다. 아직은 구름이 깊지만 내일은 맑음이기를..... 낙동강 걷기를 떠나며 .... 지율합장 www.chorok.org
Board 추천글 2009.03.14 바람의종 R 22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