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뒤흔든 여인들 - 구석봉
2부 사랑은 용광로처럼
어린 기녀의 피맺힌 순절 -전계심
강원도 춘천의 봉의산 기슭에는 "춘기 계심 순절지분"이라 쓰인 낡은 돌 비석이 하나 서 있는데, 그 비석의 비명에 씌어 있는 "격기전성 계심명 소내모천 적교방......"이라는 내용과 그 고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애원 서린 사연을 더듬어 알 수가 있다. 계심은 조선 정조 때 여인으로 본성은 전씨요 춘천이 고향이다. 천성이 청결하고 유정한 그녀는 원래 미천한 가정에 태어난 탓으로 일찍이 기적에다 그 이름을 두게 되었다. 나이 어린 기녀 계심을 그러나 다른 '요사스럽고 앙큼한' 기녀나 '닳고 닳은' 기녀들과 판이하게 달랐다. 그녀는 거의 매일 밤마다, "계심아, 네 나이 그렁저렁 열여섯이라, 혼자 베게나 끌어안고 잠자리를 어지럽히기에는 좀 딱한 나이구나. 어떠냐, 오늘 밤 내가 네 베게 노릇 좀 해 주랴?"하고 추근거리는 사내를 대하게 마련이었으나, 웬걸 계심은 그럴 때마다 곱게 고개를 젓고는 했다. "소녀는 낙적이 될 때까지 손님들 베개 시중은 들지 않을거에요." "베개 시중 아니면 곧바로 잠자리 시중은 어떠냐?" "어머니, 손님께서 약주 한잔 잡숫더니 그 의젓하신 두상이 이리의 털로 곤두서시네요!" "하하핫, 이 사람 계심이한테 또 한 번 당했수면, 하하핫." 좌중은 그렇게 매양 웃음으로 끝이 나게 마련이었지만, 그 숱한 유혹을 물쳐 가며 고된 기방살이를 하는 동안 계심의 마음과 육신은 상할 대로 상한 채였다. 이러구러 나이 열일곱이 되자 계심은 낙적이 되었다. 다른 기녀들처럼 몸을 함부로 굴리지 않았던 계심이 항상 정절과 부덕을 고루 갖춘 사대부 집안의 아녀자처럼 칭송을 받아 오자, 실상 눈독을 들여 오는 관속들도 적지 않았다. 수년간의 기방살이를 마치고 다시금 허술한 자기 집으로 돌아온 첫날 밤에 계심은 뜻밖의 손님을 맞게 되었다. "얘야! 손님 왔다, 나와 보렴." 계심의 방문을 열고 들어서며 어머니는 벌써부터 돈이 손안에 쥐어지기라도 한 듯 입이 벙그러졌다. "손님이라뇨. 어머니, 여긴 기방이 아니에요." "기방이 아니란 건 어미도 알고 있다. 허지만 이 고을 부사께서 찾아오셨는데 들이지 않을 수 있느냐?" "이 고을 사또마님께서 행차하셨다구요?" 계심은 그제서야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고 김 부사를 방안으로 들였다. 눈치 빠른 어머니의 솜씨로 술상이 마련되어 오자, 계심은 부사 옆에 단정히 앉아 술병을 기울였다. "사또마님께서 누추한 집에까지 납시다니 꿈만 같습니다." 김 부사는 아직도 보송보송한, 이마의 솜털이 앳되어 보이기만 하는 계심의 얼굴을 그린 듯이 바라보다 따라 놓은 술잔부터 입으로 가져가 단숨에 마셔 버린다. 김 부사는 남의 이목이 두려워서 일부러 변복까지 하고 찌그러진 계심의 사립문을 밀고 들어섰으나 기방에서 진작부터 김 부사에게 가무를 들려준 적이 있는 계심은 갑작스런 사또의 내방이 그저 황송하기만 했다. "계심아." "네, 사또마님." 술 몇 잔이 들어가자 김 부사는 계심의 그 야드르르한 손목을 덥석 잡았다. "계심아! 너 나하고 살지 않으련?" 별로 말주변이 없던 김 부사는 까짓것 말주변이야 유창하건 어눌하건 간에 본심부터 털어놓았다. "네? 살다뇨? 사또마님." "살림을 차려 줄 터이니 나하고 부부지정을 누리고 살아보자, 그런 말이다." "사또마님께서 미천한 이 몸을......" 갑작스런 구애를 받고 계심은 가슴이 뛰었다. 자기에게 혹하여 농이든 진심이든 구애를 해 오는 남자들은 수없이 많았으나 이렇듯 한 고을의 가장 높은 어른이 직접 자기를 요구해 온 적은 일찍이 한 번도 없었다. "어찌 하겠느냐? 나하고 평생의 인연을 맺어 보겠느냐?" "평생의 인연이라구요......?" "내 비록 한성의 본가가 있는 몸이기는 하나 한 입으로 두 소리는 하기 싫은 사람이다. 진작부터 너에게 먼 발치로 정을 기울여 온 나이니 이 진심을 뿌리치지 말아라." "......" 계심은 손에 잡았던 술병을 놓고 김 부사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송구스럽고 황감한 마음이 그만 그녀를 울렸다. 자신의 무릎에 그 고운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먹이는 계심의 몸에 손을 얹고는, 오랜만에 소유하고 싶어하던 보석을 손에 쥐고 매만지듯 김 부사는 정겨웁게 쓸어 주었다. 마침내 계심의 방에 불이 꺼지고 밤은 깊어갔다. 김 부사에게 몸을 바친 계심은 며칠 뒤 부사가 마련해 준 조그마한 집에다 살림을 차리고 살면서 김 부사를 모셨다. 계심은 이를테면 김 부사의 외처였다. 그 당시에는 관리들이 본가를 지키는 경처와 부임지에서 시중을 들게 마련인 외처를 두어 객수를 달래어 오던 일이 잦아서 낙적이 된 계심을 김 부사가 데려다 살림을 차려 준 일이 무엇 하나 괴이쩍다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 부사란 사람은 원래 위인이 시쳇말로 청렴 결백했던 모양이어서 기대를 잔뜩 걸었던 계심의 부모를 적이 실망시켜 버리고 말았다. 처음에는 사또의 사랑을 받게 된 딸 덕으로 늘그막에 호강 한 번 해보나 보다 하고 잔뜩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부모들은 얼마 못가 기대가 허물어지자 딴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영감, 계심이를 언제까지 부사 수청이나 들게 내버려둘 작정이슈?" 계심의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번번이 선수를 썼다. 어미는 외처로 내준 딸이 그저 수청이나 들고 있는 꼴이거니 하고 못마땅해하였다. "내버려두지 않음 어떡하나. 한 번 정을 준 사람인데." "어휴, 딱도 해라. 계심이 나이 이제 겨우 열일곱인데 앞길이 구만 리 같은 애를 주변머리도 쥐뿔도 없는 부사한테 맡겨 두었다가 비렁 거지를 만들 작정이슈? 난 그 꼴 두눈 멀겋게 뜨고 못 봐요!" "못 보면 그만이지 뭐." "뭐에요! 아이구 속 타는 소리 작작 씨부렁대세요......" 이래저래 비위가 뒤틀려 버린 계심 어미, 이튿날부터 부리나케 사립문 밖을 드나들더니 기어이 일을 저질러 놓고야 말았다. "영감, 안되겠소. 사또인지 비렁 거지인지 그 사람한테 우리 계심일 맡겨 놓았다간 우리 신세까지 거지가 되고 말겠소." "허지만 이제 와서 별 수가 있는 것도 아니잖나?" "어휴, 속 터지는 소리 작작 하슈. 이제라도 한성 교방에다 계심일 넘겨 주기만 하면 논마지기 값이나 톡톡히 준다는구랴." "어느 쓸개 빠진 자가 몸 안에 아이까지 밴 애를 기적에 올리려구 그럴까?" "아따 우리 애 몸 안에 사또 씨가 들었는지 아닌 말로 여우 새끼가 들었는지 배를 가르고 들여다보기 전에는 아는 재주 있답디까? 아뭇소리 말고 내 말대로 계심일 한성 교방으로 내놓읍시다." 계심의 부모는 한성의 교방에 입적시키는 대가로 땅 몇 마지기 값을 준다는 바람에 딸을 덜컥 그리고 팔아 먹고 만 것이다. 부모가 한 짓이라 원망도, 하소연도 할 수 없이 된 계심은 어미 말마따나 주변머리없이 청렴 결백하기만 한 김 부사로서는 달리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계심은 정이 들 대로 들어 버린 김 부사와 이별한다는 것이 그야말로 죽기보다 더 싫었다. '교방에 몸을 던져 다시 뭇사내의 손길에 놀아나야 하다니, 화류계 여자로 어쩌면 평생을 수렁 속에서 살아가야 하다니......'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당장 김 부사 앞에서 목숨을 끊어 버리고도 싶었으나 부모가 한성 교방에서 미리 받아 쓴 돈을 갚기 전에는 이 마당에 와서 무턱대고 거역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계심의 몸 안에는 사랑하는 낭군 김 부사의 씨가 꿈틀거리고 있는 처지였다. 그날 밤 마지막으로 김 부사 품에 안겨 온 밤을 꼬박 뜬 눈으로 지새운 계심은 이튿날 퉁퉁 부은 얼굴로 한성길에 올랐다. 안타깝고 쓰라린 이별이었으나 차마 그 같은 심정을 겉으로 내보일 수고 없었던 김 부사는 그저 고을 백성들이 눈에 띄지 않는 자기 처소 담장 안에서 멀리 사라져 가는 계심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돌아서 버리는 것이었다. 그것이 김 부사가 계심에게 베풀 수 있었던 마지막 인정이었다. 계심은 몇 달 만에 다시 기적에 올라 가무와 웃음소리에 몸을 섞어 술을 따르고 억지 교태를 부려 손님들의 시중을 들어야했다. 그러나 몸은 항상 청상청루 천한 자리에 섞여 있어도 그녀의 청결하고 유정한 마음은 향리에서 손님을 대하듯 사대부 집안의 아녀자처럼 단정하게 갖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에그머니나...... 이게 뭐야?" 어느 날 기방에서 옷을 갈아입다 같은 방을 쓰던 기녀가 방바닥에 떨어진 계심의 장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머, 이건 장도칼 아니냐?" "응, 장도칼하고 약. 이리 줘, 언니." "에게게, 이런 걸 가슴에 품고 다니는 걸 보니까 너 아주 예사 계집애가 아니로구나. 여차하면 이 칼로 사내놈을 찌르고 약을 마시고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지 말을 건넨 기녀는 그만 손가락으로 제 입을 가리고 놀랐다. 실상 계심은 제 몸에 어떤 불행한 일이 닥쳤을 때 그 약과 장도칼을 써먹을 작정이었다. 이 같은 계심의 단심은 곧 입에서 입으로 건너가 기방 기녀들이 모두 알게 되었다. 하지만 계심은 자기의 몸을 늘상 경계하고 도사려 오는 만큼 짓궂은 사내들의 유혹에 시달려야 했고, 그 때마다 지극한 사랑과 고매한 인품으로 그녀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던 김 부사와의 기나긴 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이마에 솜털이 보송보송 나 있는 앳된 계심을, 게다가 마음씨마저 남달리 곱기로 소문난 계심을 한성의 한량이나 불량배들이 가만히 놓아 둘 턱이 없었다. 그들은 계심의 주위를 에워쌌다. "옛다 돈. 나하고 하룻밤 정염이나 불태워 볼거나?" 숫제 동전 꾸러미를 쩔래쩔래 흔들어 보이기부터 하는 부류에서 시작하여 쇠도둑놈 같은 구릿빛 몸으로 접근해 오는 축, 아니면 골샌님처럼 의젓한 풍모를 앞세우고 슬며시 전담 문서를 치마폭에 싸주는 애송이에 이르기까지 계심을 소유해 보려는 사내들은 꼬리를 이었다.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니까 마침내 불량한 사내 몇 놈은 힘으로 어떻게 해 볼 양으로 야심한 밤에 그녀의 방문을 열어젖히고 뛰어들었다. "버릇없고 콧대 높은 년! 얘들아, 저 년의 사지를 강아지 새끼 네 다리 비끄러매듯 꼼짝 못하게 비끄러쥐고 옷을 벗겨라!" "예이!" 불량배들은 계심이 어찌할 사이도 없이 두 팔과 두 다리를 맡아 쥐고 옷을 벗겼다. " 이놈들! 이 손, 이 다리 놓아라! 내 몸에 손 대지 마라! 난 홀몸이 아니다!" 아무리 소리쳐도 소용이 없었다. 두목인 듯한 자는 한 손으로 계심의 머리채를 잡고 한 손으로는 허옇게 드러난 유방을 주물러 대며 야욕을 채웠다. 두목이 물러나자 불량배들이 차례로 덤벼들었다. 계심은 이제 항거할 힘도 없이 몽롱한 의식 속에서 정조를 강탈당하고야 말았다. 야욕을 채우고 불량배들이 물러가자 계심은 흐트러진 머리를 추스리며 물에 빠진 귀신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 일로 계심은 몸 안에 든 아기가 떨어지고, 김 부사에게 커다란 죄를 짓고 말았다는 죄책감에 빠져들었다. 윤간당했다는 이 부끄러운 마음과 씻을 길 없는 수치심, 게다가 김 부사와의 사이에 가진 뱃속의 아기까지 낙태되자 그녀는 더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죽어 버리자. 죽어서 이 씻을 길 없는 부끄러움을 씻어내자.' 계심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았다. 첫 정을 주었던 춘천의 김 부사에게 유서를 써 놓고 그녀는 가지고 있던 손 장도를 꺼내었다. '불량배들한테 잡혔던 머리칼, 그리고 이 젖가슴.' 그녀는 먼저 머리를 잘라 내고 뒤이어 젖가슴을 차례로 도려 내었다. 그리고 그녀는 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고 만 것이다. 그 뒤 김 부사가 계심을 만난 것은 어느 날 밤의 꿈속이었다. 가뜩이나 계심이 떠난 뒤부터 잠을 이루지 못하던 김 부사는 흐트러진 산발의 미인이 꿈속에 나타나자 기겁을 하고 놀랐다. '아! 너, 너는......' '계심이옵니다, 사또마님.' 자세히 보니 계심은 벌거벗은 몸이었고 젖가슴이 칼로 도려져서 시뻘건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계심아, 네 모습이 그게 무엇이냐? 어쩌다 머리가 잘리고 젖가슴이......' '으흐으으, 사또마님. 폐일언하고 소첩을 고향으로 데려다 주시어요. 네? 사또마님.' 눈물을 주루룩 흘리며 애소하는 계심의 모습은 처절하다 못해 무슨 악귀와 같았다. 꿈에서 깨어난 김 부사는 그 밤을 뜬 눈으로 새우고 날이 밝기가 바쁘게 서둘러 한성으로 달려갔다. 계심의 머리가 잘리고 젖가슴이 도려져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 있었다. 김 부사는 유서에 씌어 있는 내용대로 불량배들을 즉시 관가에 고발하고 계심의 시신을 거두어 춘천으로 운구, 봉의산 언덕에 묻어 주었다. 계심의 순절담은 곧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누구보다도 먼저 춘천 순찰사 이 사또의 심금을 울렸다. "허, 계심의 절개가 가상쿠나, 내 이를 혼자 듣고만 있을 수 없으니 중앙에 알려 정문을 세우도록 하리라." 순찰사는 속으로 계심과 같은 어리고 절개 굳은 기녀를 외처로 차지하고 살아 보지 못한 것이 섭섭한 노릇이었으나 그 같은 얄팍한 생각을 접어두고 마음먹은 대로 중앙에 알려 계심의 집에 정문을 해 세웠다. 순찰사가 그런 식으로 계심의 영혼을 위로해 주자 이번에는 그 고을 군수가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군수는 고을 선비 몇몇과 회동하여 봉의산 언덕에 있는 계심의 무덤에다 비석을 해 세우라고 건의하였다. 그리하여 정조 21년 5월에 "춘기 계심 순절지분"이란 돌비석이 계심의 무덤 앞에 세워지게 되었다. 박종정이 비명을 짓고 유상륜이 글씨를 쓴 자그마한 이 기념비는 오늘날까지 그대로 남아 있어 어지러운 성 모럴에 커다란 교훈을 던져 주게 된 것이다. 아니, 실상 계심의 높은 정절담은 현대 사회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게 사실이다. 언젠가 춘천의 제1회 개나리 문화제 때 계심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서 춘천 시내 접객 업소 여인들이 등불을 켜들고 시가 행진을 벌였던 일이 있었으니까 분명코 계심은 죽어서 영원히 살게 된 여인임에 틀림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