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하) - 편저자 : 강효석, 역자:권영대, 이정섭, 조명근
1. 예론이 당쟁으로
목소리만 들어보고도 죽음을 예견한 신만
신만(?~?)의 본관은 평산이고 자는 만청, 호는 주촌이다. 아홉 살에 정조부 신흠으로부터 제경편을 지으라는 지시를 받고 이 글을 지어서 칭찬을 받았다. 성장한 뒤엔 송시열의 문인이 되었다. 병자년 난리에 어머니 한씨와 아내 홍씨가 모두 절개를 위해 죽게 되자 통분한 마음을 참을 수 없어 하늘을 두고 맹세하였다.
"만약 용정(청나라 조정을 의미. 본뜻은 흉노 선우가 천지신에게 제사 지내는 곳)에서 사생 결단의 한판 싸움을 붙지 못한다면 죽는 날까지 시골에 묻혀서 썩으리라."
그 뒤로 신만은 병서를 열심으로 공부하면서 때때로 칼을 쓰다듬으며 복수의 결심을 다지곤 하였다. 1688년에 덕유산에 들어가 해를 념기고 돌아오기도 하였다. 신만은 성격이 호방하여 얽매임을 싫어하였으며 의술에 능통하여 얼굴빛만 보고도 몇 달 뒤에 죽는다는 것을 알아맞히기도 하였다. 어느 해 정초에 고모부 되는 이항의 집에 인사를 갔는데 때마침 그 집에 세배 온 이씨의 일가라는 사람이 객청 마루에 저만큼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심각한 진단을 하였다.
"저기 저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다가오는 4월에는 틀림없이 죽을 것입니다." 신만의 말에 놀라고 당황한 사람은 그의 고모였다. "예끼, 이 사람아! 정초부터 그 무슨 불길한 소리인가?" 고모는 객청을 향하여 미안한 얼굴로 어색한 변명을 하였다. "저 사람의 미치광이 같은 말을 개의치 말게나." 객청에 앉은 사람도 기분은 몹시 나빴지만 겉으로는 태연함을 보이기 위해 억지로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 저 사람이 바로 그 신생이 아닙니까?" 곁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열 살짜리 이 집 손자가 신만을 쳐다보고 이렇게 말했다. "조금 전에 아저씨가 한 말이 심상치 않던데, 왜 약을 써서 살려주지 않지요?" 신만은 웃으면서 그 아이에게 말했다. "너 참 신통하구나! 너 그 사람 살리고 싶으냐? 약 화제를 쓸 터이니 너 빨리 가서 의감을 갖고 오너라!"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날 그 책이 없었고 장본인도 언짢은 표정으로 그 즉시 떠나갔으므로 약 처방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해 4월에 그 사람은 정말로 죽고 말았다. 그 사람이 무슨 병이기에 그렇게 죽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신만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그 사람 얼굴빛을 살피고 목소리를 들어보니 산증을 앓고 있었는데 그 때 벌써 말기라 날수를 계산해 보니 4월을 넘기지 못하겠기에 그렇게 말한 것뿐입니다."
그의 고모부 이항은 또 이렇게 말했다.
"글쎄 그 사람이 신의를 만났으면서도 살려달라고 청하지 않았으니 죽을 수 밖에 더 있는가!"
언젠가 우암 송시열이 신만을 보고 말했다.
"자네 같은 재주로 만약 학문에 정진한다면 크게 성공할 터인데 자네의 생각이 문제일세."
우암의 말을 듣자 신만은 즉시 대답했다.
"예! 이제부터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겠나이다."
신만은 앉음새를 즉시 고쳐 공손하게 꿇어앉았다. 그러나 오래 견디지 못하고 뒤로 벌렁 드러누우면서 말했다.
"다리가 아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우암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껄껄 웃고 말았다.
우암이 신만과 친교를 맺은 뒤로 조정에서의 화려했던 우암의 정치적 술수는 바로 신만의 머리에서 많이 나왔다고 한다. 당시에 병조 판서로 있던 홍중보와는 내외종간이었다. 어느 날 홍중보의 집에 가서 하룻밤을 함께 잔 적이 있는데, 이튿날 아침에 외사촌 형 홍중보가 외출한 틈을 타서 신만은 그의 침구에다 똥을 싸 놓고 간다는 말도 없이 도망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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