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3. 왕도정치의 시작
기생의 원한을 풀어준 천추사 조광원
조광원(1492-1573)의 본관은 창녕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판돈령부사에 이르렀다. 조광원이 중국 태자의 탄생일을 경축하기 위한 천추사의 사명을 띄고 연경으로 가는 도중에 평안도의 한 큰 주에서 자게 되었는데, 전도가 별사로 인도하였다. 조광원이 안내하는 관리들에게 따져 물으니, 그 관리가 아뢰었다.
"객관에 요귀가 있어 사신이 누차 죽음을 당하였으므로 이 객관을 폐쇄한 지 이미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왕명을 받드는 사신의 체통에 마땅히 객관에서 자야 하는데, 어찌 요괴로 인해 객관을 폐쇄하였는가"
조광원이 서둘러 명하여 객관을 수리 청소하고 숙소를 옮기도록 하였다. 그 고을의 수령이 나와 뵙고 객관에서 자는 것을 간절히 말렸으나, 조광원은 끝내 듣지 않고 그 객관에 들어가 자기로 했다. 밤에 촛불을 밝혀 놓고 잠자리에 들어 자는 척하니, 담당 방의 기생 및 대령하는 하인들이 "요귀가 들이닥쳐 사신이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하며 모두 달아나 피해 버렸다. 밤이 이슥해지자, 갑자기 한 줄기 음산한 바람이 불어와서 장막을 걷어올리고 촛불이 깜박깜박 거리며 거의 꺼지게 되었다. 조광원이 언뜻 깨닫고 일어나 앉으니, 들보 사이 판자에서 삐걱삐걱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마치 판자를 걷어 내는 상황과도 같았다. 얼마 뒤에 사람의 사지가 차례로 내려오는데, 가슴과 배가 머리와 얼굴에 이어져 잇달아 내려와 서로 이어 붙어서 한 여인의 몸이 되었다. 그 여인은 살갗이 눈처럼 희고 피가 묻은 흔적이 낭자하였다. 그 여인은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알몸이었는데 온몸이 비단처럼 얄팍하게 붙어 있었다. 그 여인은 얼굴을 감싸고 흐느껴 울며 잠깐 나왔다가 다시 물러나곤 하였다. 조광원이 정색을 하고 호통을 쳤다.
"너는 어떠한 요귀냐? 듣건대, 일찍이 왕명을 받든 사신을 여려 차례 해쳤다 하니, 그 죄가 이미 크다. 그런데 또 감히 내 앞에서 당돌함이 이와 같단 말인가. 만일 호소할 일이 있으면 그만이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마땅히 중형으로 다스리리라" 요귀가 흐느끼며 입을 열었다. "첩이 하늘처럼 끝없는 혹심한 원통함이 있어 호소하려고 오면 사신이 곧 지레 서거하였사옵지, 첩은 실로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하늘의 은택을 입어 오늘을 만나게 되었으니, 어찌 원통함을 풀 수 있는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첩은 본주의 기생 아무입니다. 아무 해 아무 날에 아무 사신을 이 방에서 뫼시었습니다. 밤이 깊은 뒤에 소피로 인해 바깥 섬돌로 나갔더니, 관노 아무가 기둥 아래에 누워 있다가 마침 달빛 아래에서 첩이 오는 것을 보고 뛰어와서 겁탈하려 하므로 첩이 죽음으로써 거절하고 따르지 않았습니다. 관노 아무는 본래 힘이 세기로 유명했는데, 옷을 찢어 입을 막아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하고 안고서 동산의 큰 돌 옆으로 가서, 손으로 그 돌을 들고 첩을 그 돌 밑에 넣고 눌러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사지가 가루처럼 부서져서 이러한 꼴이 되었으니 어찌 천하의 지극한 원통이 아니겠습니까?"
조광원이 다 듣고 나서 곧 명령을 내렸다.
"마땅히 처결함이 있을 터이니, 속히 물러가거라"
그 여인이 다시 울며 사례하고는 그림자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조광원이 시험삼아 모시는 하인을 불러 보았더니 응답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므로 마침내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이 되어 본주에 들어가서 기안을 이름마다 점열하고, 아무 관노의 이름을 가리키며 즉시 포박하여 대령하게 하였다. 이어서 많은 사람을 시켜 간밤에 여인이 말한 대로 그 돌을 들어 살펴보니, 그 여인의 살갗이 지금까지 조금도 썩지 않았다. 기생의 시체를 뜰에 내놓고 그 관노를 심문하니,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모두 승복하였다. 곧장 곤장을 쳐서 죽이고 그 주의 수령으로 하여금 관을 짜고 염을 하여 후하게 장례를 치르게 하였는데, 그 뒤로 드디어 요귀가 없어졌다.
창양군에 습봉되고, 시호는 충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