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왕자의 난에 희생당한 당대의 석학 정도전
정도전(?-1398)의 자는 종지이고, 호는 삼봉, 본관은 봉화이다. 이색의 문하에서 배웠고,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는 삼각산 밑에 집을 짓고 살면서 제자들을 길렀는데, 항상 여색을 멀리할 것을 가르쳤다. 성균관 좨주에 발탁되고 뒤에 자원하여 남양 군수로 나갔다.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세울 것을 태조에게 권했으며, 그 공으로 좌명공신에 녹권되고, 정당 문학에 제수되었다. 개국하던 해인 임신년(1392) 7월에 태조의 개국을 도운 공으로 봉화백에 봉해지고, 태조의 명을 받아 한양 천도와 성 쌓는 일을 맡았다. 어느 날 밤, 태조가 정도전을 비롯한 여러 훈신들을 불러들여 술자리를 마련하였다. 술이 거나하게 취했을 때, 태조가 신하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과인이 여기까지 이른 것은 모두 경들의 힘이다. 우리들은 서로 공경하고 조심하여 자손 만세토록 변치 말자" 정도전이 대답하였다. "옛날 제환공이 포숙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포숙이 그땅에 있던 시절을 잊지 말라고 하였고, 제환공은 포숙에게 함거에 갇혀 있던 때를 잊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성상께서 말에서 떨어지셨던 때를 잊지 않으시고, 신 또한 죄를 지어 목에 칼을 썼던 때를 잊지 않는다면 자손 대대로 번창함을 기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태조는 늙어서 어린 방석을 사랑하여 세자로 삼았는데, 정도전은 남은 등과 함께 방석을 옹호하면서 정안군 방원을 제거하려고 하였다. 태조가 왕위에서 물러난 무인년 8월, 정도전은 태조에게 중국의 예에 따라 여러 왕자를 각 도로 나누어 분봉하자고 비밀히 건의하였으나 태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태조가 정안군에게 넌지시 일러주었다.
"밖에서 논의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너는 여러 형제들에게 조심하도록 깨우쳐 주어라" 또 점쟁이 안식이 이방원에게 말하였다. "세자의 이복형제들 중에서 왕위에 오른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방원은 즉각 이렇게 응수했다. "정도전을 즉시 제거할 작정인데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 태조의 병이 위독해지자 정도전 등은 왕위 계승에 관한 일을 논의한다는 핑계로 왕자들을 불러들인 뒤 틈을 보아 왕자들을 제거하려고 마음먹고 자기의 일당을 궁궐 안에 숨겨 두었는데, 전 참찬 이무가 이러한 모의를 정안군에게 밀고하였다. 정안군은 즉시 익안군 방의 등과 더불어 영추문으로 달려가서 정승 조준, 김사형 등에게 백관을 소집하도록 하였다. 그날 밤 정도전은 이직과 함께 남은의 집에서 술을 마시며 즐겁게 놀고 있었다. 정안군은 이숙번을 시켜 남은의 집에 불을 질렀다. 정도전이 급히 뛰어나와 민부의 집에 들었다. "배가 하얀 놈이 들어왔다!" 이 사실을 안 민부가 소리지르며 집을 수색하여 정도전을 찾아낸 다음 꽁꽁 묶어 정안군에게 끌고 갔다. 정도전은 정안군에게 애걸했다. "만약 나를 살려주면 있는 힘을 다하여 보좌하겠습니다" "너는 이미 왕씨를 배신하였는데 이제 또 우리 이씨를 배신하려느냐?" 정안군은 그 자리에서 그를 죽였다. 정도전의 저서로는 '삼봉집', '심이기편', '경제문감','경국전' 등이 있다. 진, 담, 유, 영 네 아들을 두었다. 진의 아들 문형은 성품이 온순하면서도 굳세고 단아하였다.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영부사에 이르렀고 청백리에 뽑혔으며, 시호는 양경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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