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새끼 딸린 말로 태조의 마음을 돌리고 죽은 박순
박순(?-1402)의 본관은 음성이다. 함흥에 가 있는 태조에게 문안 사신으로 간 사람마다 다 죽고 살아 돌아오는 이가 없던 때였다. 태종은 신하들에게 이번엔 누가 가겠느냐고 물었지만 가겠다고 나서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이때 박순이 가기를 자청하고 나섰다. 그는 떠날 때 수레를 타지 않고 새끼 딸린 말을 타고 갔다. 함흥에 들어가서 태조의 행재소(왕의 임시 처소)가 보이는 곳에서 일단 멈추고 새끼말은 거기에 매어 둔 채 어미말만 타고 가니 새끼말과 어미말이 서로 돌아보면서 우는 바람에 제자리걸음을 하게 되고 여간 지체하지 않았다. 행채소에 도착하여 태조에게 인사를 올리자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낀 태조가 그 까닭을 물었다. 박순은 속마음으로 바로 이때구나 하고 입을 열었다.
"길을 오는 데 방해가 되어서 새끼말을 떼어서 나무에 매어 놓았더니 그 야단입니다. 하찮은 미물인데도 어미와 새끼가 차마 서로 떨어질 수 없어서 저렇게 야단입니다"
태조는 가슴이 찡해 옴을 느꼈다. 태조는 옛친구인 박순에게 돌아가지 말고 남아 있으라고 하였다. 어느 날 태조가 박순과 함께 바둑을 두는데 갑자기 '털썩!' 하고 무엇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둘러보니 지붕에서 쥐 두 마리가 떨어졌는데 어미쥐가 새끼쥐를 안은 채 죽어 가고 있었다. 박순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바둑판을 밀치고 그 자리에 엎드려 태조에게 눈물로써 돌아갈 것을 호소하였다. 그는 드디어 태조로부터 한양으로 돌아가겠다는 허락을 얻어냈다. 박순은 태조에게 인사하고 귀경길에 올랐다. 태조를 모시고 있는 신하들은 박순도 예외없이 죽여야 한다고 태조에게 강력히 요청하였다. 망설이던 태조는 박순이 용흥강을 다 건너갔으리라고 생각되었을 즈음 비로소 허락하고, 사자에게 칼을 내어 주면서 말했다. "박순이 용흥강을 이미 건넜거든 더이상 추격하지 말라" 그런데 귀경길에 오른 박순은 도중에 병이 나는 바람에 속도가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추격대가 도착했을 때, 그는 막 배에 오르는 중이었고 아직 강을 건너지 못하였으므로 추격대의 칼에 맞아 허리가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그래서 "몸뚱이의 절반은 강 위에, 절반은 배 안에 있다네"라는 시가 생겨났다. 이 소식을 들은 태조는 깜짝 놀라며 애통해 했다.
"박순은 좋은 친구였는데, 내가 그 친구와의 약속을 저버릴 수는 없다"
태조는 드디어 한양으로 돌아갈 결심을 굳혔다. 이 소식을 들은 태종은 화공에게 명하여 박순의 상반신을 그려바치도록 하였다. 박순의 아내 임씨는 남편의 부음을 받고 목을 찔러 자결하였다. 박순의 벼슬은 판중추에 이르렀고, 시호는 충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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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영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6-07 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