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뒤흔든 여인들 - 구석봉
제 6부 독부와 현부
피로 물들인 궁중 비사 - 장희빈
장희빈은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여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녀는 미인이고 음모와 모략이 뛰어났던 독부였다. 후궁의 몸엣 왕후의 지위로 뛰어올랐던 장희빈은 '장다리 노래'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이다
부귀 영화를 한 몸에 받고 살아가던 시절 장희빈의 영화가 얼마남지 않았을 줄 알지만 이 노래는 그 당시 세태를 그대로 반영시킨 노래였다. 조선 시대 숙종 때, 왕의 나이 서른이나 되었을까 말까........ 전 왕후인 인경 왕후 김씨의 몸에서도 후사가 없었고, 계비인 인현 왕후 민씨의 몸에서도 웬일인지 6년 동안 왕자 탄생의 소식이 없어 왕은 매우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왕후 민씨는 후궁 간택을 서둘러 미인 장씨를 천거하여 장씨가 뽑히게 되니 숙종은 얼굴이 빼어나게 예쁜 장씨에게 아주 빠져 버리게끔 되었다. 장씨는 얼굴만 예쁠 뿐이었지 부덕은 전혀 없는 천민이었다. 궁인 시절 전 왕후 인경 왕후 김씨와 왕에게 방자한 말로 헐뜯었다고하여 사친의 집으로 쫒겨나 있다가 8년 만에 민비의 추천으로 다시 입궁한 장씨는 숙종을 완전히 침전의 노예로 사로잡았다. 궁인 시절부터 숙종은 장씨를 사랑하였었고, 민비가 왕의 뜻을 알고 후궁으로 뽑아 들이게 하였어도 장씨는 민비에 대한 고마움은커녕 민비를 제쳐놓고 왕의 총애를 차지하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었다. 원래 장씨는 조사석의 집 침모의 딸로 천민 출신이지만 오랜 궁인 생활과 권력에 대한 남다른 집념으로 그녀의 세력을 굳혀 나갔다. 전날에 살던 응향각의 주인이 된 장씨는 2년 만에 태기가 있었다. 곧 장씨에게 소의 직첩이 내려졌다. 장씨가 축출당했을 때 그녀를 도와주던 동평군 이항과 조사석이 차츰 장소의의 후광을 입고 득세하는 기미가 보였다. 마침내 장소의는 왕자가 대체 몇 년 만에 탄생한 것인가. 장소의는 왕은 움직여 백일 남짓한 이 왕자를 세자로 책봉하였다. 소의 장씨는 희빈이 되었다. 희빈은 정 2품. 장희빈이란 높은 대우로 그녀는 거처를 영휘당으로 옮겼다. 그녀의 위치는 굳건해졌다. 왕자를 낳았고 왕자가 세자로 책봉되었으니 이제는 민 왕후를 몰아내고 제가 그 자리에 안는 일만 남았다. 숙종 10년 4월 23일은 민 왕후의 생일이었다. 그날 왕은 민 왕후에게 온 생일 선물을 서인들의 것이라 하여 모두 땅에다 묻고 불태워 버렸다. 왕후는 이 사실을 알고 왕에게 항변하고 나섰다. 숙종은 이 사건을 계기로 민 왕후를 사가로 내몰고 대신 장희빈을 왕후로 삼았다. 이때부터 의금부에서는 연일 죄인을 다스리는 매질과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민 왕후를 따르던 많은 대신들이 죽어 나가거나 멀리 귀양을 가는 등 비극적인 사태가 속출되었다. 왕은 서인들이 조정 안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조처하고 끝내는 남인들의 천하가 되어 정권은 그들 손으로 넘어갔다. 장 왕후는 중전이 되자 궁중 안의 후비를 모두 제거하고 자기 혼자 왕을 독점해 버렸다. 장비의 아버지 장현은 하루아침에 옥산 부원군이 되고, 어머니 윤씨는 파평부 부인에 봉해졌다. 시정 무뢰배로 평판이 좋지 않았던 장비의 오빠 장희재는 또 어영대장이란 권력을 손에 쥐었다. 장비 일가의 부귀 영화는 임금의 그것에 맞먹었다. 장안에는 어느새 장비를 미워하고 쫓겨난 민비를 동정하는 노래가 나돌았다.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이다
미나리는 민비를, 그리고 장다리는 장비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발없는 이 노래는 급기야 장비의 구에까지 흘러 들어갔다. "민비를...... 그년을 살려 두었다가는 내가 화를 입을지도 몰라." 고민하던 장비는 민비에게 사약을 내리라 조르게 되었다. 그러나 왕은 장비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왕은 자기 스스로가 내쫓은 민비가 이따금 생각이 나서 밤중에 대궐 안팎을 순행하는 버릇이 생겼다. 어늘 날 밤 왕은 무수리들이 거처하는 곳까지 나아갔다가 여인의 슬픈 곡성을 들었다. '이 밤중에 누가 죽었나.......?' 왕은 촛불이 일렁이는 곳까지 가 보았다. '아니.......' 음식을 마련해 놓고 그 앞에서 울고 있는 이 여인은 누군가. "저, 전하........" 왕을 발견한 무수리는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너는 누구이며, 왜 울고 있는 게냐?" "예. 쇤네는 무수리 최가이옵고 오늘이 폐출된 민비마마 생신이라 그분의 성덕을 기려 이렇듯 상을 차려 놓고 있었나이다. 죽을 죄를 저지를 계집을 죽여 주소서." 무수리 최씨는 아까보다 더 슬픈 목청으로 울어대었다. 왕은 눈을 지그시 감고 폐출된 민비를 생각해 보았다. 일개 무수리에게도 존경을 받던 민비와 지금의 장비는 천양지판이었다. 무수리 최씨의 심정이 고맙고, 또 쫓겨난 민비가 그리워서 왕은 그 밤을 무수리 최씨 방에서 잤다. 얼마 안 가서 무수리 최씨는 잉태를 하였다. 왕은 그 뒤로도 몇차례인가 무수리 최씨의 처소에서 밤을 지새웠다. 왕의 사랑이 장비 곁을 떠나 무수리 최씨에게 기울어 갔다. "뭐야? 마마께서 무수리년을 총애한다구?" 장비는 소식을 듣고 길길이 뛰었다. "게다가 무수리 최가년 몸에 태기가 있다 하옵니다, 마마." "마, 맙소사........ 나입도 아닌 종년 무수리에게........ 오, 끔찍도 해라!" 장비는 더 참지 못하고 무수리 처소로 갔다. "저년 옷을 발가벗겨라!" 무수리 최씨는 장비에 의해 발가벗겨지고 그 위에 매질이 가해졌다. 무수리 최씨의 터진 살갗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매우, 매우 쳐라!" "상감마마 납시옵니다." "뭐라구?" 마침 그 때 왕의 거동이 있었다. "저 독을 어서......... 무수리 몸 위에 뒤집어씌워라!" 장비는 독을 무수리 위에 씌우라 명했다. 그러나 눈치 빠른 왕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장비의 옷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독을 벗겨라." 왕의 분부였다. 독이 벗겨지자 발가벗은 무수리가 상처 투성이인 채로 나왔다. "아니........." 왕은 장비의 표독스런 행동을 목격하고 만 것이다. "세자 때문에......... 세자 때문에......... " 왕은 장비가 낳은 세자 때문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 일을 덮어 두었다. 그 대신 무수리 최씨에게 소원이란 직첩을 내려 함부로 푸대접을 못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장비도 최소원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오라버님. 그년을 아주 죽여 버리시지요." 장비는 어영대장 장희재에게 독살을 지시했다. "잘 알았소." 어영대장은 그 길로 최소원의 처소로 나아가 독약이 든 음식을 바치게 하였다. 하지만 그 일은 실패로 끝났다. 숙종은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당장 장비의 직첩을 거두고 어영대장을 잡아 의금부에 가두어라!" 장비는 중전의 지위를 차지한 지 6년 만에 또다시 쫓겨나고 어영대장 장희재는 재산을 몰수당했다. 왕은 최소원에게 숙빈이란 직첩을 내리고 사가로 물러나 있던 민비를 다시 불러들였다. 장비에서 희빈으로 떨어져 물러난 장희빈은 그래도 민비에 대한 미움을 거두지 않았다. 마침 민비는 몸이 쇠약하여 입맛을 잃고 있었는데, 옛날의 상전인 민비의 시중을 최숙빈이 맡아서 들고 있었다. 최숙빈은 게젓을 구하여 민비의 수라상에 올렸다. 그런데 민비는 게젓을 먹고 급사를 한 것이다. 왕은 아무래도 민비의 갑작스런 죽음이 의문일 수밖에 없었다. 게젓을 들인 경로를 추적해 보니 장희빈의 오라비 장희재가 하인을 시켜 게젓 속에 꿀을 넣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장희빈의 분부를 받은 장희재가 그 꿀 속에 독약을 넣었음이 밝혀졌나이다." "아바마마, 소자의 소청을 들어주소서." 어린 세자는 생모에게 내려진 극형 소식을 듣고 숙종 앞에 꿇어 엎드려 울부짖었다. "세자는 이번 중전의 치독 사건에 참견하지 말아라." "쓸데없는 소리. 물러가 있거라." 부왕이 눈 하나 까딱하지 않자 세자는 조정 대신들을 붙잡고 통사정을 하였다. "대감마마! 제발 어마마마를 살려 주소서, 예? 살려주소서, 마마!" 어린 세자의 간절한 청을 듣고 울먹이지 않는 대신이 없었다. 그러나 숙종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사약을 받은 장희빈은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세자를......... 내 아들을 한번 만나봐야겠다. 냉큼 데리고 오너라!" 장희빈은 흡사 광인 같았다. 하인이 대궐 안으로 들어가 이 사실을 알리자 숙종은 세자에게 생모와의 면담을 허락했다. "어마마마!" 생모를 보자 세자는 그 어깨에 매달려 울부짖었다. "어마마마! 어마마마!" 그러나 장희빈은 아들을 대하자 그녀의 본성이 드러났다. 장희빈도 세자의 아랫도리를 휘어잡고 힘껏 잡아당겼다. "아야야......." 세자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울지도 못했다. "너 죽고 나 죽으면 그만이다.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네 아비 핏줄을 받을 필요가 없다." 세자는 곧 까무러쳐 버렸다. 세자를 불구로 만들어 버린 장희빈은 그제서야 사약을 마시고 눈을 감았다. 모략과 음모로 일관해 온 독부 장희빈은 그렇게 최후를 마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