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소설쓰기 - 소설을 어떻게 쓸까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쓰고 (2/2) 3 나의 길, 생각하기도 싫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할지.. 그저 막막할 뿐이다. 한때는 꿈도 많고 희망찬 하루하루를 살아왔지만, 지금은 그저 단 하나의 길을꼭 가야만 하는 처지다. 대학이란 단 하나의 길을... 솔직히 내가 가지 않으면 그만이겠지만, 만약에 가지 않는다면 가족의 실망과 주위의 시선, 그리고 학벌을 따지는 우리 나라에서는 내가 밟을 수 있는 땅이 없을 것이다. 나도 대학에 가 보고는 싶다. TV에서만 보던 대학생활들을 나도 느껴 보고는 싶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엔 대학이라는 길! 그 좁고도 험난한 길이 있다. 내가 지금까지 그 길을 가기 위해서 살아왔는지 하는 허무함과 아픔이 나를 한숨짓게 한다. 어릴 때의 꿈과 희망들은 다 어디로 숨어 버렸는지 보이지 않고, 내 앞엔 어두운 길 하나가 버티고 있을 뿐이다. 내가 과연 그 어둡고 험난한 길을 잘 갈 수 있을는지 나 자신도 모른다. 단지 그 길을 가기 위해선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뿐이다. ------------------------------------------------------------------------ 이 글은, 어떻게 해서든지 가야 하는 길, 가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길, 험난한 길, 그래서 어둡기만 한 대학으로 가는 길을 앞에 두고 그 막막한 느낌을 썼다. 그래서 첫머리부터 나의 길, 생각하기도 싫다 고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만 쏟아 놓은 솔직한 글이다. 이 학생이 가는 길은, 소월이 열십자 한복판에 서서 어느 길도 내가 갈 길은 아니라고 하는 그 길과는 아주 다른 길이다.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억지로 끌려가는 길인 것이다. 시선 이란 말은 눈길 로 쓰는 것이 좋겠다. -------------------------------------------------------------------------- 4 나는 나의 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돈 많이 벌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가끔 TV에서 나오는 어려운 사람들, 몸이 불편한 장애자들의 어려움이 나올 때면, 나는 사랑으로 그들을 감싸줄 자신이 없었지만, 그들의 희망과 꿈을 키워주고 싶었다. 물질적으로 돕는 것이 사랑으로 그들을 돕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난 그들이 이 세상을 싫어하지 않고 사랑을 배우고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물질적으로나마 돕고 싶다. 그래서 나는 장래 희망이 언제나 불투명하고, 그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에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구하기 위해 공부를 해 왔다. 그래서 난 자신의 목표가 있어 그것을 성취해 가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이 언제나 부러웠다. 난 사실, 하고 싶은 것도 있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꽉 차 있다. 김소월의 길 을 읽고 정말 공감이 갔다. 정말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나는 불투명하고 희미한 나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을 다할 것이다. 비록 그것이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 해도 나는 나의 길을 개척해 나갈 것이다. --------------------------------------------------------------------------- 이 글에 나타난 이 학생의 생각은 앞과 뒤가 좀 달라서 통일이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학생은 지금까지 어려운 사람들, 장애자들을 도와주고 싶어하면서 살아왔다. 그들을 도와주는 길은 우선 물질로 도와주는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하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구하기 위해 공부해왔다 고 말한다. 이 얼마나 뚜렷한 삶의 목표인가! 그런데 이렇게 말해 놓고 곧 그 다음에 그래서 난 자신의 목표가 있어 그것을 성취해 가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이 언제나 부러웠다.. 고 썼으니 어찌 된 일인가? 그 까닭은 아마도 이럴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자기 한 몸 잘 먹고 잘 입고 잘 몰기 위해 살아간다. 학생들도 모두 공부하는 목표가 입신출세해서 잘 살기 위해서다. 그 아무도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불행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살아간다고 하면 제 정신을 가지 사람이라고 보지도 않고, 바보 대접을 하는 판이고, 그런 삶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도 없고, 학생들이 글로 써야 하는 나의 길 로 인정받을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지금까지 생각해 온 것을 솔직하게 썼다가, 그만 다른 일반 학생들의 생각으로 돌아가 자기만이 가졌던 생각을 지워 버리게 된 것이라 본다. 더구나 나의 길 이란 글쓰기 시간에도 갈길이 없다고 한탄하고 있는 시인의 시를, 본보기가 되는 생각이 담긴 글인 것처럼 선생님도 보여 주신 것 아닌가?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깨끗한 마음은 이렇게 되어 자꾸 짓밟혀서 시들어 버리고 죽어간다. 이 글에서 고쳐 써야 할 말을 살펴보자. - 물질적으로 이것은 물질로 하면 된다. - 물질적으로나마 이것도 물질로나마 로 쓰면 그만이다. - 그것을 성취해 가기 위해 이것은 그것을 이뤄가지 위해 라고 쓰는 것이 좋다. - 미래에 대한 이것은 앞날에 대한 이라 써야 한다. 지금까지 학생들의 글 네편을 들어 대강 살펴보았는데, 이 네편에서 지적한 중요한 문제점 네가지를 다시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기 이야기를 써야 하는 글에서 군소리, 일반스런 논리를 늘어 놓았다. 둘째, 자기 이야기를 뚜렷하게 쓰지 않고 막연하게 말해 놓았다. 셋째, 자기 생각을 쓰다가도 그만 다른 말을 써서 자기 생각을 부정했다. 넷째, 자기가 한 일을 쓰는 글이니까 쉬운 입말이 되어야 할 터인데, 글말이 적지 않게 섞여 있다. 학생들의 글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그 까닭이 두 가지다. 하나는 선생님이 젬고을 잘못 내어 준 때문이고, 다음 하나는, 쓰기 전에 소월의 시를 보여 준 것이 잘못되었다. 나의 길 이라고 하는 말은 없다. 나의 길 이란 말이 어떤 경우에 실제로 쓰이겠는가?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때가 있는가? 없다. 내가 가야 할 길 이라든가 내가 가고 싶은 길 이런 말은 있어도 나의 길 은 있을 수가 없다. 이런 말은 외국말 번역해 놓은 글에서나 나온다.(물론 잘못 번역해서 나온 것이지만) 외국말 잘못 번역한 글말을 글쓰기 제목으로 내어 주었으니, 이런 제목으로 쓴 글에 문제가 생겨나지 않을 수 없다. 뚜렷한 자기 이야기는 안 쓰고 막연한 인생의 길이니 뭐니 하는 군소리를 늘어놓는 것이 이 때문이고, 글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다음은 소월의 시를 보여준 문제인데, 그 결과로 많은 학생들의 글이 갈래갈래 갈린 길 그 여러 길이 있어도 내가 갈 길은 없다는 소월 시의 내용같이 되어 버렸다. 이런 시를 모범 답안처럼 보여주는 것은 이렇게 쓰라고 지시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학생들 가운데는 자기가 가야 할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학생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이 훨씬 더 많다고 봐야 한다. 또 가야 할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도 소월과 같이 아주 꽉 막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만약 이 학생들에게 내가 걸어온 길 이라든가 내가 가야 할 길 같은 제목으로 지난날 살아온 이야기나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지금 겪고 있는 일 가운데 어느 한 가지만 뚜렷하게 쓰게 했더라면, 그리고 쓰기 전에 소월의 시가 아니라 같은 반 어느 학생이 살아온 싱싱한 이야기를 쓴 글을 들여주거나 읽힐 수 있었다면 훨씬 절실하고 가슴에 와 닿는 글들이 씌어져 나왔을 것이라 확신한다.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노천명편" 노천명(1912~1957}) 여류 시인. 황해도 장연 출생. 이화 여전 영문과 졸업. 현대시다운 시를 쓴 최초의 여류 시인으로 지목된다. 초기에는 고독과 애수의 주정적인 시 세계를 보여 주었고, 후기에는 도시적 취향의 고독 속에 침잠하여 현실과 유리된 생활을 하다가 독신으로 병사하였다. 시골뜨기 내가 맨 처음 서울에 올라온 것이 이맘때였던 상싶다. 음력 이월 초순께나 되었던지 춥기는 해도 겨울은 아니고, 그렇다고 봄도 채 되지 않은 때였다. 옥색 두루마기를 입고 여기 애들 모양 당홍 제비부리 댕기도 못 드리고, 검정 토막 댕기를 드린 나를 보고 동네 아이들은, "시골띠기 서울띠기 말라빠진 꼴띠기." 하며 우르르 달아나곤 하는 것이었다. 무슨 영문인지를 모르는 나는 그 애들의 외우는 말이 재미가 있어 웃으며, 그 애들이 몰려가는 데로 따라가면 줄달음질들을 쳐서 골목 안으로 달아나는 것이었다. 이럴 때마다 나는 시골 우리 동리가 그립구, 박우물께 이쁜이며, 새장거리 섭섭이, 필녀, 창호 이런 내 동무들이 한없이 보구 싶어졌다. 학교에두 아직 못 들구 어머니는 날마다 집주름을 데리구 집만 톺으러 다니시면, 나는 그 동안 이모 아주머니와 더불어 있어야 한다. 이 이모 아주머니란 분은 재미있었다. 달래 그런 것이 아니라 환갑이 다 된 분이 머리는 하나도 세지를 않고, 그 대신 정수리가 무르팍처럼 멘 분이 함박꽃빛 자주 마고자를 입고 계신 것이 우습고, 또 한 가지는 방 안에 가만히 앉아서 온종일 잔소리로 일을 보시는 것이다. 할아범과 할멈을 번갈아 부르셔선 무슨 분부인지 그처럼 많다. 그런데 한번은 밖에 손님이 오셔서, "이리 오너라." 했다. 아주머니는 미닫이도 좀 안 열어 보고 창경으로 겨우 내다 보시며, "거기 아무두 없느냐." 하시더니 아무 대답도 없는데, "누구신가 엿줘봐라." 하고 분부를 하신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다음 순간이었다. 밖의 손님이 이 말을 듣더니, "양사골 김 주사가 왔다구 엿줘라." 하는 것이었다. 이어서 아주머니는, "영감 마님 출입하고 아니 계시다구 엿줘라."하신다. 할멈도 할아범도 사이에는 없는데 서로 해라를 하고, 또 문도 안 열어 보며 영 등바같이 또랑또랑하게 말루만 해내는 것이 나는 말할 수 없이 우스웠다. 서울은 정말 별난 곳이라 생각되었다. 별난 것은 이것뿐이 아니었다. 우리 게와 달라 무슨 장사들이, "비웃드렁 사려! 움파드렁 사려!" '드렁' 하며 외치고 다니는 것도 재미있었다. 이럴 때마다 나는 달음박질 뛰어나가 문 밖에 가 서서 구경을 했다. 한번은 머리를 따내린 호인이 팔에다 나무 궤짝을 걸고, 한 손에 울긋불긋한 종이로 오린 꽃에다 섞어 천연 멍개(해당화 열매) 같은 빨간 것을 꼬챙이에 끼워 들고 가며, "아아가위 콩... 사탕..." 하고 외우는 것이었다. 나는 무엇보다도 우리 시골에 있는 멍개 같은 데 반가움을 느끼고, 한 꼬치 5전이라는 것을 샀다. 그래서 가지고 들어가 먹어 봤더니 맛이 여간 좋지 않았다. 시골 우리 아랫집 '대각'이네 '모나까'보다도 훨씬 맛이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아침이 되면 으레 어머니한테 아가위 값을 타고 '아가위 콩사탕'만 외우고 지나가면 뛰어나가 사곤 했다. 아주머니는 여덟 살이나 된 걸 저렇게 군것질을 시켜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을 하셨으나, 우리 어머니는 아무 말도 안 하시고 언제나 은장도가 달린 주머니끈을 끌러 돈을 꺼내 주셨다. 서울은 정말 좋은 곳인 것 같았다. 언제까지나 신기한 것에 대한 내 주의는 그치지 않았다. 한번은 아주머니가 나가시더니 할아범에게 이상한 것을 들려 가지고 들어오셨다. 이 찬란한 것에 나는 정말 황홀했다. 놋쟁반 같은 데가 오색이 영롱한 꽃이 하나 그득 담겨 들어왔다. 가까이 보니 꽃만도 아니다. 꽃에, 새에, 연밥에, 새파란 오이에, 가지에, 옥가락지, 귀주머니, 갖은 패물, 족도리, 안경집 이런 것들이 노랭이, 파랭이, 분홍, 흰 것, 당홍, 취얼, 보라, 이루 말할 수 없게 곱게 차려졌다. 이것을 보시고 어머니가 아주머니에게 요샌 색떡 한 밥소래에 얼마냐고 물으니까 5원이라고 하신다. 대화에서 이것이 색떡이라는 물건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흰 바탕에다 검정 선을 두르고 분홍 매화와 새를 새긴 안경집과 칠보가 달린 족도리가 제일 고왔다. 그래서 어머니를 지긋이 잡아당기며 나는 저기 족도리하구 안경집을 날 떼달라고 졸랐더니 그것은 혼인집에 가져 갈 것이 돼서 안 된다고 하셨다. 나는 얼마 동안 그것 때문에 울었다. 한참 있으니까 이웃집 서울 아이들이, "얘애야, 나아와 노올아!" 하고 저이 동무들을 찾는 노래 곡조 같은 소리가 들려 왔다. 번연이 나를 찾는 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나는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첫째는 노래같이 부르는 이 소리가 재미있는 까닭이요, 다음으로는 얼굴에 분세수를 하고 기름을 발라서 머리들을 곱게 빗은 서울 아이들을 보는 것이 나는 좋았다. 팔짱을 끼고 말없이 우리집 문 앞에 가 서서 있는 것이다. 바로 건너다뵈는 앞집은 꽤 큰 집인데 대문에는 흰 글씨로, '성적분 파오'하고 씌어진 간판이 걸려 있다. 나는 심심해서 속으로 몇 번이구 자꾸 '성적분 파오' '성적분 파오' 하고 읽어 보는 것이다. 하루 아침엔 이 큰 대문집에서 나만한 처녀 아이가 나오더니 내게다 말을 였다. 말씨가 예뻐서 나는 그애가 말하는 것을 무슨 고운 것이나 보듯이 신기해서 자꾸 쳐다봤다. 그애는 자기 집에선 성적분을 만든다는 것이며, 학교에 다니는 오빠가 있다는 것이며, 망녕난 할머니가 계시다는 것 등을 말해 주며, 내 손을 붙들고 저의 집엘 데리고 들어갔다. 나더러 널을 같이 뛰자고 하는데 나는 뛸 줄도 모르고 또 무섭다고 질색을 했더니 줄을 잡혀 주며 나더러 줄을 잡고 뛰라고 했다. 내가 줄을 잡고 널을 뛰어 봤더니 그애는 나더러 사내 널을 뛴다고 하며 널 뛰는 것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 후부터 인순이는 아침만 치르면 우리집에 와서, "얘애야, 나아와 노올아!"하고 나를 불러 주었다. 인순이와 내가 차츰 정이 들려고 하는데 우리는 집을 구해 이사를 가게 되었다. 서울 길을 모르는 나는 인순이를 다시는 만날 수가 없이 되어 버렸다. 그 뒤 전학이 돼서 내가 하교엘 들어갔을 제 나는 인순이를 찾으려고 은근히 살폈으나 찾지 못했다. 내 생각에 인순이는 집이 완고해서 학교엘 넣지 않았을 것만 같았다. 인순이는 내가 서울 와서 제일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다. 지금도 내가 서울엘 자주 왔을 때 제 일을 생각할라치면 으레 인순이가 생각나고 내 머리에 떠오르는 인순이는 언제나 처음 만날 때 그가 입었던 꽃분홍 삼팔 치마에 연두 저고리를 입고 파란 징신을 신었다. 나는 그 때 인순이 이름을 알았지만, 인순이는 내 이름도 채 모르고 헤어졌다. 다만 시골 애라고 알았을 따름이다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 기도 시 휴가 때의 기도 바다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탁 트이고 산이라는 말만 들어도 한 줄기의 푸른 바람이 이마의 땀을 식혀 주는 한여름 저희는 파도에 씻기는 섬이 되고 숲에서 쉬고 싶은 새들이 됩니다 바쁘고 숨차게 달려오기만 했던 일상의 삶터에서 잠시 일손을 멈추고 쉼의 시간을 그리워하는 저희를 따뜻한 눈길로 축복하시는 주님 가끔 한적한 곳으로 들어가 쉼의 시간을 가지셨던 주님처럼 저희의 휴가도 게으름의 쉼이 아닌 창조적인 쉼의 시간으로 의미 있는 하얀 소금빛 보석이 되게 해주십시오 휴식의 공간이 어느 곳이든지 함께하는 이들이 누구든지 저희의 휴가길에는 쓸데없는 욕심을 버려서 환해진 미소와 서로 돕고 양보하는 마음에서 피어오른 잔잔한 평화가 가득하게 하십시오 피곤한 몸과 마음을 눕히는 긴 잠도 주님 안에 머물던 달콤한 기도의 휴식이라니 저희가 쉴 때에도 늘 함께하여 주심을 믿습니다 자연과의 만남을 통해 저희를 새로운 아름다움에 눈뜨게 하여 주시고 이웃과의 만남을 통해 삶의 다양성을 이해하게 해주시며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우울하고 메마른 저희 마음의 사막에 기쁨의 샘물이 솟아오르게 해주십시오 때로는 새소리, 바람소리에 흠뻑 취하는 자유의 시인이 되어 보고 별과 구름과 나무를 화폭에 담아 보는 화가의 마음을 닮아 봅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숨겨진 보물을 새로이 발견하고 감탄하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잊고 살던 아름다움의 발견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들도 문득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들도 즐거이 봉헌할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휴가의 순례길에서 저희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좀더 고요하고 슬기로운 사람으로 새로워질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넓디넓은 바다에서는 끝없이 용서하는 기쁨을 배우고 깊고 그윽한 산에서는 한결같이 인내하는 겸손을 배우며 각자의 자리에서 성숙하게 하십시오 항상 곁에 있어 귀한 줄 몰랐던 가족, 친지, 이웃과의 담담한 인연을 더없이 고마워하며 사랑을 확인하는 은혜로운 휴가가 되게 해주십시오
Board 삶 속 글 2022.11.28 風文 R 616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영감이 떠오르기를 기다려라 - 나폴레옹 힐과 클래망 스톤의 공저 <긍정적인 마음 상태를 통한 성공>에서 엘머 게이트는 육체를 건강하게 하고 마음의 효율성을 증대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몸소 보여줬다. 나폴레옹 힐은 앤드류 카네기의 소개장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체비 체이스 실험실로 게이트 박사를 찾아갔다. 나폴레옹 힐이 박사와 면담을 청했을 때, 게이트 박사의 비서가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지금은 박사님을 방해할 수가 없어요." "얼마 후에야 그분을 만날 수 있을까요?" 나폴레옹 힐이 물었다. "글쎄요, 아마 세시간은 족히 걸릴 거예요." "왜 그분을 방해할 수 없다는 겁니까?" 그녀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분은 영감이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계세요." 나폴레옹 힐은 빙그레 웃었다. "영감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다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녀는 미소를 되돌리며 대답했다. "게이트 박사님의 설명을 직접 듣는 편이 좋으실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여기서 무작정 기다리시겠어요, 아니면 다음에 다시 오시겠어요?" 나폴레옹 힐은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은 가치 있는 결정이었다. 그는 기다리는 가치를 절실하게 배웠기 때문이다. 다음은 나폴레옹 힐이 기다린 보답을 받은 이야기이다. 마침내 게이트 박사가 방에서 나오자, 그의 비서는 우리를 소개시켰다. 나는 농담 삼아 그의 비서가 한 말을 물었다. 그는 앤드류 카네기의 소개장을 읽은 후에 시원스럽게 말을 받았다. "내가 영감을 기다리고, 찾는 방법을 보고 싶습니까?" 그는 나를 방음 장치가 된 작은 방으로 이끌었다. 그 방에는 가구라고는 평범한 탁자 하나와 의자가 전부였다. 그리고 탁자 위에는 종이와 필기 도구와 함께 조명 스위치가 놓여 있었다. 게이트 박사의 설명에 의하면, 그가 어떤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할 수 없을 때마다 이 방에 와서 문을 닫고 앉아서 불을 끄고 강한 집중 상태로 빠져든다는 것이다. 그는 관심을 조절하는 성공 법칙을 응용하여 자신의 무의식에게 문제에 대한 답을 달라고 요구한다. 가끔 영감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또 다른 때는 즉각적으로 그의 머리 속에서 떠오르거나, 두시간이 걸린 뒤에야 영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일단 영감이 구체화되기 시작하면, 그는 불을 켜고 그것을 써 내려 간다는 것이다. 엘머 게이트 박사는 다른 발명가들이 착안했지만 성공을 눈앞에 두고 실패했던 200여 개의 아이디어를 다시 살려서 완성시켰다. 그의 방법은 간단했다. 발명품의 초안과 도면을 그 실용적인 적용 범위 내에서 샅샅이 조사하고, 그 약점을 발견하여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다. 그는 특정한 발명 초안을 가지고 그 방으로 간다. 그리고 문제에 대한 답이 떠오를 때까지 앉아 있는 것이 전부다. 나폴레옹 힐이 게이트 박사에게 물었다. "영감이 떠오르기를 앉아서 기다리는 방법이 성공을 거둔 이유가 뭘까요?" 게이트 박사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모든 생각의 근원은 다음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1. 지식은 무의식 속에 저장되고, 개인의 경험과 관찰과 교육을 통해 축적됩니다. 2. 위와 똑같은 방법으로 지식은 다른 이들로부터 축적되고, 텔레파시로 전달될 수 있습니다. 3. 무한한 지식의 광활한 우주적인 창고 안에는 모든 지식과 현상이 저장되었는데, 인간의 무의식을 통해 그곳과 접촉할 수 있습니다. 나는 영감이 떠오르기를 앉아서 기다릴 때, 나 자신을 지식의 세가지 근원과 일치되도록 조정합니다. 그 외에 또 다른 근원이 존재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서 모르겠습니다." 엘머 게이트 박사는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고, 긍정적으로 그의 길을 따랐다.
Board 추천글 2022.11.28 風文 R 1831
단장(斷腸) / 斷:끊을 단. 腸:창자 장. [유사어] 구회지장(九回之腸). [출전]《世說新語》<黜免(출면)> 채염(蔡琰)의 <胡?歌(호가가)> 창자가 끊어졌다는 뜻. 전하여,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의 비유. 진(晉:東晉, 317~420) 나라의 환온(桓溫)이 촉(蜀) 땅을 정벌하기 위해 여러 척의 배에 군사를 나누어 싣고 양자강 중류의 협곡인 삼협(三峽)을 통과할 때 있었던 일이다. 환온의 부하 하나가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붙잡아서 배에 실었다. 어미 원숭이가 뒤따라왔으나 물 때문에 배에는 오르지 못하고 강가에서 슬피 울부짖었다. 이윽고 배가 출발하자 어미 원숭이는 강가에 병풍처럼 펼쳐진 벼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배를 쫓아왔다. 배는 100여 리쯤 나아간 뒤 강기슭에 닿았다. 어미 원숭이는 서슴없이 배에 뛰어올랐으나 그대로 죽고 말았다. 그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너무나 애통한 나머지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이 사실을 안 환온은 크게 노하여 원숭이 새끼를 붙잡아 매에 실은 그 부하를 매질한 다음 내쫓아 버렸다고 한다. [주] 삼협 : 사천(四川)?호북(湖北) 두 성(省)의 경계에 있는 양자강(揚子江:長江) 중류의 세 협곡(峽谷). 곧 구당협(瞿塘峽)?무협(巫峽)?서릉협(西陵峽). 예로부터 유명한 경승지(景勝地). 현재 큰 댐을 건설하는 공사가 진행 중에 있음.
Board 고사성어 2022.11.28 風文 R 990
‘외국어’라는 외부 그대여, 외국어를 힘껏 배우라. 언어는 이 세계를 낱낱이 쪼개어 이름을 붙이고 그 속에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심어놓았으니. 우리의 운명은 모국어가 짜놓은 모눈종이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 그 세계만이 유일하고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외국어는 모국어가 만들어놓은 그 질서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준다. 말소리에서부터 단어, 문법, 문자 등 우리와 다른 눈을 가진 사람들이 직조해놓은 말의 그물은 우리를 낯선 세계로 잡아당긴다. 외국어는 살갗과 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나와 모국어 사이에 틈을 만들어낸다. 살갗과 살 사이에 ‘산들바람 집어넣기’랄까(‘물집’이면 어떠랴)? ‘결정을 내리다’라는 말을 영어로는 ‘결정을 만든다(make)’고 하고, 불어로는 ‘결정을 잡는다(prendre)’고 한다. ‘그렇지, 결정은 내릴 수도 있지만, 만들 수도, 잡을 수도 있겠다’ 싶은 거다. ‘약속을 잡다’를 영어에서 ‘약 속을 만든다(make)’고 하듯이. 도저히 모국어로 번역되지 않는 말을 만났을 때, 그것은 벽의 체험이다. 외국어로 번역되지 않는 모국어가 있을 때, 그것은 낭떠러지의 체험이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다)’이라는 말이 보여주는 독특한 감각은 외국어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벽과 낭떠러지는 득도의 경계선. 외국어라는 외부를 내 속에 영접해야 비로소 모국어를 알게 된다. 그래서 나의 모국어가 일종의 외국어처럼 낯설게 느껴질 때라야 모국어는 습관과 반복이 아니라 경탄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어느 대도시의 소란처럼 영어를 상용화하는 게 답일까? ‘영어’라는 내부 부산이 작정을 하고 영어 상용화에 뛰어들었다. 이전엔 변죽만 울리다 말더니 이번엔 기세가 좋다. 공문서 영어 병기, 표지판·공공시설물 영문 표기, 영어 능통 공무원 채용 확대, 영어국제학교 설립, 외국 전문대 유치, 권역별 영어마을 조성 등. 이전의 영어 공용화 방안을 살뜰히 모았다. 공문서나 공공시설물에 영어를 쓰는 게 국어기본법을 어긴다는 걸 알고 움찔한 상태지만, 포기하진 않을 듯. 힘껏 밀어붙이면 머지않아 부산은 영어로 ‘프리토킹’하는 도시가 될지도 모른다. ‘부산 살면 영어 하나는 잘하게 되겠다’며 부러워할 사람들이 많겠다. 겉으론 ‘우리말 사랑’을 외치지만 뒤로는 영어에 안달복달해온 민족이니. 한국인은 모국어 하나만으로 말글살이에 큰 어려움이 없다. 영어를 잘 못하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남녀노소 빈부귀천 좌우중도를 불문하고 하나같이 ‘영어’를 욕망한다. 영어는 우리 안에 들어온 외국어이고, 우리는 영어를 갈망하는 단일 언어 민족. 부산은 곧 영어 욕망의 메카가 될 거다. 그 욕망을 타박만 할 건가? ‘한국에선 영어 쓸 일 없다’, ‘한국어로 충분하다’, ‘자동번역기 쓰면 된다’고 하면 그 욕망이 사라질까? 영어상용도시 같은 불가능한 시도를 반복하는 근원을 캐묻자. 왜 그동안 다수 국민이 영어 실력을 갖추는 데 실패했는가? 외국인과 대화하고 영문소설을 읽을 정도의 실력을 ‘어디’에서 기르지? ‘사교육 시장’이다. 그러니 영어 격차가 문화자본으로 작동하여 계급 격차를 낳지. 학교가 문제다. 6년 정도면 영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소설쓰기 - 소설을 어떻게 쓸까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쓰고 (1/2) 서울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 1학년(아마도 남녀공학만인 듯) 학생들이 교실에서같은 제목으로 글을 썼다. 제목은 나의 길 이다. 쓰기 전에 담임 선생님이 어떤 말을 해 주었는지 모르지만, 김소월의 시 길 을 읽혔다. 그 시간에 써 낸 글 31편을 모두 읽을 기회가 있었기에 여기 그중에 몇 편을 아무거나 뽑아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아무거나 뽑는 까닭은, 다 읽고 난 다음에 어떤 점에서든지 유달리 특색이 있다든지 인상에 깊이 남아 있는 글이 없다고 느꼈지 때문이다. 1 난 어렸을 때, 길이란 보도블럭, 아스팔트, 시골길이라는 것밖에 몰랐다. 그러나 차차 나이가 들면서 나에게 길이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학교라는 울 안에 갇혀있다가 막상 사회에 나가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몰라 두리번두리번거리다가 나쁜 길로 빠져 사회에 악이 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여검사, 우리 여검사 라고 부르시곤 했다. 그땐 여검사라는 게 뭔지도 모르고 그래, 난 여검사가 되는 거야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난 내가 가야 할 길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과연 나에게 있어 가장 보람되고 즐겁고 잘 해낼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다른 아이들은 각자의 개성과 적성을 살려 그 길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난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 아니,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지금 나의 선택이 나의 장래를 결정짓는다. 난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이 있지만, 그만큼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 허황된 꿈만 가득 품은 그런 사람이 되기는 싫다. 나의 길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다. 먼 훗날 10년, 20년, 아니 죽는 그 순간까지 지금 나의 길에 대한 선택에 대해 후회 없는 나의 길을 찾아가야겠다. ----------------------------------------------------------------------- 글을 쓸 때 선생님이 어떤 내용을 쓰라고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나의 길 이란 제목으로 쓴다면 다음 세 가지 가운데서 한 가지나 두 가지, 또는 세 가지 모두를 써야 할 것이다. 1.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자라난)길. 2. 지금 걷고 있는 길. (지금 살고 있는 나날) 3. 앞으로 갈 길.(살아갈 앞날 이야기) 다시 말하면 자기가 걸어온 길이나 걷고 있는 길이나 가야 할 길을 쓰면 된다. 자기 삶을 쓰면 되는 것이다. 이 글에서 우리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 하면서 어렸을 때 이야기를 쓰고, 그 다음에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해서 지금의 심경을 쓰면서 난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이 있지만... 이라고 하여 노력하지 않는 자신을 반성하고 있는 대문에서는 자기가 할 말을 썼다. 그런데 첫머리 여러 줄 쓴 것은 쓸데 없는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먼 훗날... 어쩌고 한 말도 공연히 말을 너절하게 만들어 썼다. - 지금 나의 선택이 나의 장래를 결정 짓는다 이런 말은 보통 입으로 하는 말로 쓰는 것이 좋다. 지금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 장래가 결정된다 이렇게 말이다. - 과연 나에게 있어 가장 보람되고 즐겁고 잘 해낼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 대문에 나오는 나에게 있어 도 일본말법으로 된 글말이다. 있어 는 없애고 나에게 만 써야 우리말이 된다. 자기가 겪은 이야기, 하고 싶은 말을 쓰는 글은 나날이 지껄이는 쉬운 우리말로 얼마든지 쓸 수 있다. 그런데 엉뚱한 글말이 나오고,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게 되는 까닭이 무엇일까? -------------------------------------------------------------- 2 김소월은 시에서 열십자 복판에 내가 섰소 라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특히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모두는, 살아가면서 여러 번 열십자 복판에 설 것이다. 특히 우리와 같이 젊은 사람들은... 이 시기에 들어선 길은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도 요즈음 그 삶의 가로에서 많은 생각을 하며 내가 가야할 길을 찾고 있다.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나?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지만, 뚜렷이 내가 나아갈 길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인생의 뚜렷한 길을 가지고 자기 삶을 사는 사람 모두가 나의 존경의 대상이다. 나는 얼마 전까지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자신을 위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길로 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막연히 보이는 길로 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젠 그런 생각에도 회의가 된다. 과연 내가 살아가는 의미는 무엇이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 이 세상에는 자신을 위해, 자신의 보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을 위해 산다는 것이 곧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일 수도 있지만.어떤 길이 내가 가야 하는 길인지, 또 어떤 길로 나아갈지.. 참 무서운 고민이다. -------------------------------------------------------- 이 글도 첫머리와 마지막 부분에서 자기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니라 소월의 시 또는 나의 길 이란 말을 해설해 놓은 듯한 말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자기 이야기를 쓴 것도 뚜렷한 말이 되지 못하고 막연한 말만 늘어놓았다. 따라서 맨 끝에 참 무거운 고민이다 고 했지만 그다지 절실한 말로 느껴지지 않는다. - 사람은 누구나, 특히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모두는, 살아가면서 여러 번 열십자 복판에 설 것이다. 이 글에서 특히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모두는, 이란 말은 공연히 꾸며놓은 말이다. 지워 없애는 것이 좋겠다. 자기 이야기나 써야 할 글에 쓸데없는 말을 적으려 하니까 이런 말재주를 부리게도 되는 것이다. - 삶의 기로에서 이것은 삶의 갈림길에서 나 살아가는 갈림길에서 라고 써야 하겠다. - 그래서 인생의 뚜렷한 길을 가지고 자기 삶을 사는 사람 모두가 나의 존경의 대상이다. 이런 말은 좀더 정리해서 쉬운 입말로 쓰면 이렇게 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인생에서 뚜렷한 자기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나는 모두 존경한다.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노천명편" 노천명(1912~1957}) 여류 시인. 황해도 장연 출생. 이화 여전 영문과 졸업. 현대시다운 시를 쓴 최초의 여류 시인으로 지목된다. 초기에는 고독과 애수의 주정적인 시 세계를 보여 주었고, 후기에는 도시적 취향의 고독 속에 침잠하여 현실과 유리된 생활을 하다가 독신으로 병사하였다. 겨울밤의 얘기 "좋아하는 눈 왔어요, 어서 일어나세요." 할멈이 내 창 앞에 와서 이렇게 지껄이는 소리에 얼른 덧문을 열고 내다보니 눈보라가 날리고 있어 내가 또 싱겁게 좋아했더니 저녁부터 날씨는 갑자기 쌀쌀해지고 말았다. 방이 외풍이 세서 어제 오늘로 부쩍 병풍이 생각나고 방장 만들 궁리를 한다. 시골집의 어머니가 쓰시던 낡은 병풍을 가져올 생각이 든다. 어머니는 그 병풍을 치고 내가 홍역을 할 때 밤을 꼬빡 새시며 얼굴에 손이 목 올라가게 지키셨다고 들었다. 지금 그것을 내 방에다 가져다 치고 보면 내 생각은 전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던 우리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불타산 뾰죽한 멧부리들이 둥글게 묻히도록 눈이 와 쌓일라치면 아버지는 친구들과 곧잘 노루 사냥을 떠나셨다. 그래가지고는 그제나 시방이나 몸이 약한 내게 노루피를 먹이려고 하시는 통에 하루에도 몇 차례씩 사랑에 나가 돈을 달라던 내가 온종일 아버지한텔 나가지 못하고 숨어서 상노애더러 아버지한테 가서 돈을 달래 오라고 울고 매달린 적도 있었고 어려서 나는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따랐다. 술을 못 하시는 아버지가 늘 사랑에 가 조용히 앉아서 골패를 떼시던 것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골패를 섞는 소리는 왜 그렇게 듣기 좋았는지. 이렇게 객지 생활을 하고 나이를 차츰 먹고 보니 어머니가 계셨더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늦도록 부모를 모실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행복된 일이다. 헌데 세상 사람이 흔히 부모를 여의고 나서야 어버이가 귀한 줄을 통절히 느낀다는 것은 이 무슨 안타까운 일이랴. 잠이 안 오는 밤이면 동화 같은 옛일들이 머릿속에 피어오른다. 겨울밤은 길고 내 마음은 구성진데, 비를 머금은 날이 밤새도록 기차 바퀴 소리를 들려 주면 실로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모르고 츠아라리엔더가 "남녘의 유혹"에서 느낀 것 같은 향수에 내가 한없이 빠져들어간다. 이런 시간이란 어찌 보면 청승스럽게도 보이나, 실은 그 위에 가는 사치가 다시 없을지도 모른다. 진실로 잔인하게 나는 이것을 즐긴다. 어떠한 다른 환경을 가져 본다 치더라도, 내 가슴에 지니는 향낭은 없이도 견딜 수 있으나, 일종의 이 '페이소스'가 없이는 견디지 못할 것 같다. 실상 인생 생활에 이 비애가 없다면 도대체 심심해서 어떻게 배겨 내랴,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다 고독을 지니고 다니는 하이칼라는 없는가? 이런 친구를 만난다면 내가 아끼는 신비로운 이 긴 밤들을 그 친구와 함께 화롯가에서 얘기를 뿌리며 밝혀도 좋겠다. 늙은 시계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이 밤이 한없이 아깝다.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 기도 시 성모 성월에 싱그러운 5월의 숲에 계신 푸른 어머니 저희는 오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목마른 나무들이 되어 당신 앞에 서 있습니다. 일상의 삶 안에서 크고 작은 근심으로 초췌해진 당신 자녀들을 그윽한 사랑의 눈길로 굽어 보시는 어머니 나무속을 흐르는 수액처럼 저희의 삶 속에 녹아 흐르는 은총의 시간들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을 고마워하며 5월엔 고향에 돌아온 듯 어머니의 이름을 부릅니다. 어둡고 불안한 시대를 살아갈수록 어머니의 하늘빛 평화를 갈구하는 이 땅의 자녀들에게 항상 집이 되어 주시는 거룩한 어머니 어머니를 부르면 어느새 저희의 기쁨은 꽃이 되고 슬픔은 잎새가 되고 기도는 향기가 되어 하늘로 오릅니다. 만남의 길 위에서 가장 사랑해야 할 가족들과도 더 깊이 하나 되지 못하고 늘 바쁜 것을 핑계로 더 깊이 깨어 살지 못했던 저희의 게으름과 불충실을 용서하십시오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저희의 오만과 편견으로 그들을 더욱 쓸쓸하게 만들었음을 용서하십시오 죄를 짓고도 울 줄 모르는 저희의 무딘 마음을 은혜로운 눈물로 적셔 주시는 어머니 저희의 끝없는 욕망과 이기심의 돌덩이들을 진실한 참회의 기도로 깨뜨려 생명의 샘이 솟아나는 기쁨을 맛보게 해주십시오 항상 저희를 예수의 길로 인도해 주십시오 첫걸음을 잘못 떼어 방황하지 않도록 선과 진리의 길이 외롭고 괴롭더라도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저희의 손을 잡아 주십시오 마음의 창에 때처럼 끼여 있는 미움들은 깨끗이 닦아내고 용서와 화해만이 승리하는 사랑의 항해를 길이신 예수와 함께 시작하게 해주십시오 늘 성급하게 살아와서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던 저희가 오늘은 어머니와 함께 인내를 배우는 기다림의 촛불로 타오르고 싶습니다. 늘 믿음이 부족해서 쉽게 절망했던 저희가 오늘은 어머니와 함께 삶의 기쁨을 노래하는 희망과 감사의 촛불로 타오르고 싶습니다. 숲과 호수에 출렁이는 은총의 햇빛처럼 어머니와 저희가 하나되는 이 오월엔 지혜의 푸른 불꽃을 가슴에 지닌 한 그루 기도나무가 되겠습니다. 썩지 않은 겸손의 소금으로 고통도 하얗게 녹여 버리는 멀지만 아름다운 사랑의 길을 저희도 어머니와 함께 끝까지 걷겠습니다.
Board 삶 속 글 2022.11.23 風文 R 6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