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2부 - 시를 어떻게 쓸까 시를 살리는 우리말 우리 시에 나타난 어린이 말 이 자리에서는 어른들이 쓰는 시(어린이들에게 주기 위해서 쓰는 동시 가 아니고 어른들이 읽는 것으로 쓰는 시)에 나타난 어린이의 말(어린이들이 나날이 쓰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어른들이 읽는 시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어린이들이 알 수 있는 말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까닭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시의 본질이 어린이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우리 어른들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외국에서 들어온 글을 숭상하고 그 글말을 쓰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그것을 특별한 권리로 삼아, 일하면서 살아가는 백성들을 부리고 아이들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개화 이후에는 우리 문인들이 우리말로 글을 쓰고 시인들이 우리 시를 썼다고 하지만, 남의 나라 글자라고 할 밖에 없는 한문글자와 그 글자로 된 말이며, 일본말법을 마구 그대로 써 왔기에 아이들이 읽을 수 없고 읽어도 알 수 없는 글이 너무 많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아이들에게 읽힐 수 있는 작품이 가끔 나온다. 이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어른들에게 읽히기 위해서 썼는데도 그 마음이 어린이와 다름없는 상태여서 저절로 어린이가 하는 말로 시를 쓰게 된 것이다. 이런 작품을 몇 편만 보기로 하자. 빗소리 - 주요한 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이즈러진 달이 실낱 같고 별에서도 봄이 흐를 듯이 따뜻한 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이 어둔 밤을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옵니다. 창을 열고 맞으려 하여도 보이지 않게 속삭이며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뜰 위에 창 밖에 지붕에 남 모를 기쁜 소식을 나의 가슴에 전하는 비가 옵니다. (1924) 밤에 오든지 낮에 오든지 봄에 오는 비가 들려주는 소리를 오늘날에는 어른들조차 이렇게 아름답고 깨끗한 소리로 반가운 자연의 소리로 받아 들일 수 없도록, 자연이고 사람이고 달라지고 병들어 버렸다. 그러니 이런 시의 맛을 요즘 학생들이 어느 정도로 알 수 있을까 싶어 슬퍼진다. 어쨌든 자연의 소리에 감동하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은혜로움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어른이고 어린이고 다를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말도 이런 시에서 티없이 깨끗하게 씌어졌다고 본다. 엄마야 누나야 -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1922)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시다. 소월은 이 시를 자신의 심정을 나타낸 시로 쓴 것이지, 특별히 어린이들에게 주려고 쓴 것이 아니다. 어른이 그 심정을 그대로 쏟아 놓았는데도 그것이 그대로 어린이들까지 자기들이 하는 말로 받아들이게 되는 시, 가장 바람직한 시의 모습을 여기서도 보게 된다. 강변 이란 말을 썼는데, 본래 우리말로는 강가 이다. 그런데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경북의 깊은 산골에서고 조그만 냇라를 갱변 갱빈 이라 했고, 이 갱변 갱빈 이란 말이 시골말로 널리 쓰고 있으니 우리말로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 시에서 강변 이란 말을 썼다고 탓할 것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바닷가 라고 할 것을 해변 해변가 라 써도 좋다고 할 수는 없다. 호수 - 정지용 오리 모가지는 호수를 감는다. 오리 모가지는 자꼬 간지러워. (1930) 지는 해 - 정지용 우리 오빠 가신 곳은 해님 지는 서해 건너 멀리 멀리 가셨다네. 웬일인가 저 하늘이 핏빛보담 무섭구나! 날리 났다. 불이 났다. 앞의 시 호수 는 어린이들에게 주려고 쓴 동시가 아니고, 발표한 잡지도 어른들이 읽는 것이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낮은 학년 어린이들도 읽으면 오리들이 물 위에 떠 다니면서 목을 감고 놀고 있는 모양을 그려 보며 좋아할 것 같다. 뒤의 시 지는 해 는 어린이들에게 주기 위해서 쓴 동요다. 그래서 여기서는 우리 오빠 라 하여 시인이 어린 아이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 시인이 짐짓 어린이로 꾸며 보여서 어린 아이의 흉내를 내고 있다고는 조금도 생각되지 않는다. 아주 완전히 어린이가 되어 살아 잇는 어린이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동요를 쓴 어른과 글 속의 어린이가 따로 떨어져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시를 읽으면 그 옛날 거의 저녁마다 볼 수 있었던 새빨갛게 타오르던 노을과 그 노을 저쪽으로 지던 해가 눈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더구나 이 동요시에는, 숱한 우리 젊은이들이 서쪽 바다 건너 전쟁터에 끌려가던 중일전쟁이 터졌을 무렵의 불안한 세상 형편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느껴진다. 지금까지 든 네 편 가운데서 빗소리 는 들은 것을, 호수 와 지는 해 는 본 것을, 엄마야 누나야 는 보고 들은 것을 가지고 쓴 것이지만 모두 자연을 글감으로 하였다. 본 것이든 들은 것이든 자연을 노래한 시에서 이와같이 어른과 어린이의 세계가 하나로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겨울 물오리 - 이원수 얼음 어는 강물이 춥지도 않니? 동동동 떠다니는 물오리들아 얼음장 위에서도 맨발로 노는 아장아장 물오리 새야 나도 이젠 찬바람 무섭지 않다. 오리들아, 이 강에서 같이 살자. (1981) 이 시는, 어른들이 읽는 수필이나 논문도 썼지만 평생을 주로 동시와 동화와 소년소설을 쓰다가 돌아가신 지은이가 일흔의 나이로 병상에 누워서 마지막으로 써서 남긴 작품이다. 지은이가 어떤 사람인가를 모르고 작품만 보아도 어린이들이 읽는 동시구나 하고 모두 말할 것이다. 그렇게 보아도 좋다. 그러나 잘 살펴서 읽으면 이 시에는 어린이들이 아직은 느낄 수 없는 깊은 세계가 담겨 있다. 지은이의 작품 세계와 살아간 길을 대강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시에서, 고향의 봄 으로 시작하여 55년 동안 이원수 문학이 걸어온 길이 마지막으로 이르게 된 자리를 찾아내게 될 것이다. 이 시는 작곡이 되어서 유치원 어린이들도 즐겨 부르고 있는데, 이렇게 깊고 넓은 뜻을 담아 놓은 시가 유치원 어린이들도 즐겨 부르는 노래로 되어 있다는 것은 참 희한한 일이다. 물론 어린이들은 어린이의 정도에서 읽고 노래하면 그만이고, 그래서 차츰 자라나 먼 훗날 이 시를 다시 읽고 새로운 뜻을 깨닫게 되면 평생을 이 노래로 함께 자라고 살아가게 되는 셈이니 얼마나 바람직한 일이겠는가? 이 시는 아동문학작가가 썼지만, 지은이가 쓴 많은 동시가 그랬던 것같이, 지은이가 짐짓 어린이로 되어 어린이 짓을 해 보인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자기 자신을 노래한 것이 그대로 어린이의 노래로 되었고, 시인의 세계와 어린이의 세계가 아주 하나로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시에서는 자연과 사람이 또 하나로 되어 있다. 자연이 사람이고 사람이 곧 자연이 되어 모든 문제를 해결해 놓았다. 이것이 모두 깨끗한 우리말, 어린이 말을 시의 가장 좋은 표현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원응서편" 원응서(1914~1973) 번역 문학가, 평양 출생, 일본 리쿄 대학 영미 학부 졸업. 문예지 '문학' 주간 역임. 원응서는 번역 이외의 일에는 별로 활동을 하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일상의 체험에서 우러난 통찰 깊은 수필들이 몇 편 전해져 그의 진가를 보여 준다. 평범한 듯하면서도 인생에 대한 관조와 애정이 곁들여 있어 독자들에게 수필 문학의 묘미를 느끼게 해 준다. 그놈을 잡으려 나처럼 글재주가 무딘 사람은 대수롭지 않은 번역을 한 줄 하는 데도 민망할 정도로 연방 우리말 사전을 뒤적인다. 그럴 것이 목적한 단어를 찾다가 낯선 낱말이라도 눈에 띄면 그것에 정신이 팔리다가는 또 다른 어휘를 발견하면 그것에로 달아난다. 이처럼 '도리기'란 말을 찾다가 '되리'란 말에 눈을 팔듯이 연줄연줄 따라가다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 버리곤 한다. 이렇게 흘러 버린 시간이 수없으리라. 이 수없는 시간을 나는 아깝다고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영어를 우리말로 옮기노라면 우리말 사전과 싸우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가 당장에는 용처가 없지만 앞날을 위해서 눈에 띄는 낯선 말이면 무작정 적어 두는 버릇이 생겼다. 이렇게 해서 적고 적어 둔 것이 어느새 두툼한 노트로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무료한 때면 이 노트를 꺼내 가지고, 어허 이런 어휘도 있었던가, 저런 말도 있었던가고 사뭇 감탄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겉장이 낡고 닳아 새것으로 씌우고 모자라진 데는 손질을 하느라고 화초를 가꾸듯이 매만지기도 했다. 이렇듯 노트는 거의 내 머리맡에서 떠나지 않게 되었고 손땟국이 흐르게 되었다. 몇 번이나 겉장을 갈았는지 모른다. 이런 노트를 나는 잃어버렸다. 사변 때 모든 책과 함께. 잃은 책은 그때그때 사정이 닿는 대로 제일 필요한 것부터 다시 사들일 수 있지만 노트는 어쩔 도리가 없다. 그뿐 아니라 다시는 노트를 만들 생각이 나지 않는다. 왜 그런지 나도 모를 일이다. 무던히나 열을 쏟았고 정을 부었던 때문인지 모르겠고 이제는 그럴 겨를과 일이 없어서인지 모른다. 그러나 사변으로부터 거의 20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에도 문득문득 생각에 떠오르는 것이 노트다. 번역을 하다 우리말이 막힐 때가 더욱 그렇다. 그것이 지금 곁에 있어도 별도움은 안 될 것이지만, 정확히 따지고 보면 거기 적힌 어휘들이라야 대개는 지금에는 눈에 익은 것이 많고 나머지는 별로 쓰이지 않는 말들이다. 거기에는 놀란흙, 자드락, 어리, 버덩, 도리기, 좀 쑥스런 말이지만 '되리'등이 있을 것이고 번역에 필요한 거의 같은 성질의 낱말들을 정리해 놓은-대번, 문득, 별안간, 갑자기, 대뜸, 금세, 고대, 퍼뜩. 또 다른 종류의 계열로는-결국, 필경, 종당, 필시, 나중에, 결말에, 종국에. 그리고--종종, 가끔, 때때로, 어쩌다 등 이런 것들이었으리라. 후자에 속하는 이러한 일상적 용어들의 집합은 같은 뜻의 '결국'이라는 낱말이라도 다양성 있게 쓰이는 영어에 대처하는 데 편의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취해진, 동의어를 모은 소사전의 구실을 해 주는 것이었다. 별로 대수롭지 않은 노트이건만 그것은 날이 갈수록 눈앞에 자꾸 확대되어 오곤 한다. 무료할 때가 더욱 그렇다. 그리고 2,3월 이맘때면 더더구나 거기 적혀 있었던 낱말 하나가 머리를 뱅뱅 돌면서도 생각이 떠오르지를 않아서다. 겨울철 삼림 속에, 내린 눈이 쌓이고 쌓였다가 봄이 되어 낮에 볕을 받아 오후엔 건등이 녹아 내리며 물이 돈다. 하지만 밤에 접어들어 다시 기온이 내려가 물이 돌던 눈의 건등은 얼음으로 변한다. 발로 짚으면 물 위의 살얼음처럼 바삭 하고 꺼져 내린다. 영어로는 crust라고 한다. 이 눈 건등의 얼음진 것을 한 마디의 낱말로 무엇이라고 하는지. 분명히 노트에는 적혀 있었다. 한 5, 6년 전 어떤 수기를 번역하다가 이 crust가 나왔다. 아무리 생각을 해내려고 애를 쓰고 사전을 뒤적여 보았으나 허사였다. 할 수 없이 눈얼음이라고 번역했다. 말이면 다 말은 아니다. 이것은 얼토당토 않은 궁여지책에서 나온 넋두리에 불과하다. 나는 얼마 전부터 하루에 단 1분씩이라도 "우리말 큰사전"을 샅샅이 잡아 나가기로 했다. 저 노트에 적었던 그놈을 잡기 위해서다. 그놈을 잡으려면 몇 해가 걸릴지 모르지만.
Board 삶 속 글 2022.12.10 風文 R 673
동호지필(董狐之筆) 董:동독할 동. 狐:여우 호. 之:갈 지(…의). 筆:붓 필. [동의어] 태사지간(太史之簡). [출전]《春秋左氏傳》〈宣公二年條〉 ‘동호의 직필(直筆)’이라는 뜻. 곧 ① 정직한 기록. 기록을 맡은이가 직필하여 조금도 거리낌이 없음을 이름. ②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실을 그대로 적어 역사에 남기는 일. 춘추 시대, 진(晉)나라에 있었던 일이다. 대신인 조천(趙穿)이 무도한 영공(靈公)을 시해했다. 당시 재상격인 정경(正卿) 조순(趙盾)은 영공이 시해되기 며칠 전에 그의 해학을 피해 망명 길에 올랐으나 국경을 넘기 직전에 이 소식을 듣고 도읍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사관(史官)인 동호(董狐)가 공식 기록에 이렇게 적었다. ‘조순, 그 군주를 시해하다.’ 조순이 이 기록을 보고 항의하자 동고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대감이 분명히 하수인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감은 당시 국내에 있었고, 또 도읍으로 돌아와서도 범인을 처벌하거나 처벌하려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감은 공식적으로는 시해자(弑害者)가 되는 것입니다.” 조순은 그것을 도리라 생각하고 그대로 뒤집어쓰고 말았다. 훗날 공자는 이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호는 훌륭한 사관이었다. 법을 지켜 올곧게 직필했다. 조선자(趙宣子:조순)도 훌륭한 대신이었다. 법을 바로잡기 위해 오명을 감수했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국경을 넘어 외국에 있었더라면 책임은 면했을 텐데…….”
Board 고사성어 2022.12.10 風文 R 1250
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2부 - 시를 어떻게 쓸까 시를 살리는 우리말 몸으로 익힌 말 시는 언어의 예술 인가? 아니다. 언어 가 아니고 말 이다. 시는 가장 싱싱하게 살아있는 말로 쓰는 예술 이다. 어떤 말이 싱싱하게 살아 있는 말 인가? 싱싱하게 살아있는 말, 곧 시가 될 수 있는 말은 다음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깨끗한 우리말일 것. 중국글자말이나 일본글자말, 일본말법으로 된 말, 서양말이나 서양말법으로 된 말 - 이 따위들은 시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원칙이 어디까지나 그렇다. 만약 어떤 시에 이런 깨끗하지 못한 말이 한두 개 들어 있다면 그 시의 값은 그만큼 낮아진다고 보아야 한다. 둘째는 우리가 날마다 입으로 지껄이고 있는 말일 것. 깨끗한 우리말이라도 벌써 죽어버린 옛말은 시가 될 수 없다. 나날의 삶에서 누구나 써서 정감이 가고, 그래서 삶의 때가 묻고 냄새가 나는 말일수록 시가 되기에 알맞은 말이다. 셋째는 꼭 하고 싶은 절실한 말일 것. 따라서 군더더기가 없어야 하고, 알맹이만 있어야 한다. 저 혼자 무엇에 취해서 수다를 떠는 말, 무엇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말, 멋을 부리는 말 - 이런 말은 모두 시가 될 수 없거나, 되어도 시시한 시 일 뿐이다. 참아도 참아도 기어코 터져 나오는 말, 지워도 지워도 끝내 남는 말, 이런 말이 시가 된다. 이 세 가지 조건에 맞는 말은 바로 우리 조상들이 옛날부터 써온 말, 우리가 어렸을 때 어머니 아버지한테서 배우고 형제자매끼리 이웃끼리 나누면서 살아온 말이다. 책에서 배운 유식해 보이는 말이나 문학작품이라는 글에서 읽은 시같은 느낌 이 드는 근사한 말, 멋이 있어 보이는 말이 결코 아니고, 무식한 시골 사람들이 써온 말, 어린이들도 잘 아는 말이다. 머리로 논리로 배운 말이 아니고 느낌으로 몸으로 익힌 말이다. 그렇다. 시골 농사꾼들의 말, 어린이의 말, 이것이 가장 훌룡한 시가 될 수 있는 말이고, 앞으로 우리말이 아무리 변한다고 하더라도 이 말을 제쳐 놓고 시를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시골말과 어린이말이 우리 시에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 알아 보자. 우리 시에 나타난 시골말 요즘 우리 문단에서 일제 말기에 평안북도 시골말로 구수한 시를 썼던 백석의 시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여기 백석의 시 한 편을 들어 본다. 제목은 <마을은 맨천 구신이 되서>다. 맨천 은 맨 온통 이란 말이고, 구신 은 귀신 이란 말이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아는 이 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나는 무서워 오력을 펼 수 없다. 자 방안에는 성주님 나는 성주님이 무서워 토방으로 나오면 토방에는 디운 구신 나는 무서워 부엌으로 들어가면 부엌에는 부뜨막 조앙님 나는 뛰쳐나와 얼른 고방으로 숨어버리면 고방에는 또 시렁에 데석님 나는 이번에는 굴통 모퉁이로 달아가는데 굴통에는 굴대장군 얼흔이 나서 뒤울안으로 가면 뒤울안에는 곱세녕 아래 털능구신 나는 이제는 할 수 없이 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대문간에는 근력 세인 수문장 나는 겨우 대문을 빠져나 바깥으로 나와서 밭 마당귀 연자간 앞을 지나가는에 연자간에는 또 여자당구신 나는 고만 디겁을 하여 큰 행길로 나가서 마음 놓고 화리서리 걸어가다 보니 아아 말 마라 내 발뒤축에는 오나가나 묻어 다니는 달걀구신 마을은 온데간데 구신이 돼서 나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 보다시피 이렇게 온통 시골말로 되어 있다. 백석의 시는 시골말만을 모아 놓은 것 같아 나 같은 사람도 모르는 말이 많이 나오니, 요즘 젊은이들이나 학생들은 더구나 읽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시골말을 아무 뜻도 없이 그저 모아 놓기만 한 것이 아니고, 무엇을 보여 주거나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시골말을 살려 놓고 있어서, 백석의 시를 읽으면 우리말이 이렇게 풍성하구나 하는 느낌이 들고, 그래서 내가 우리말을 너무 모르고 있구나, 우리가 너무 우리말은 돌보지 않고 한자말과 교과서 같은 데서나 나오는 표준말로만 글을 써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된 것이 바로 최남선 때부터 거의 모든 시인들이 일본말을 잘못 직역해 놓은 괴상한 말로 시를 써 와서 그런 시만 읽어 온 때문이다. 더구나 해방이 되고부터는 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져서 끔찍한 전쟁까지 치르는 통에 지난날 그나마 우리말을 얼마쯤이라도 살려서 쓰던 많은 문인들을 잃어 버리고, 그들이 남겨 놓은 작품조차 읽을 수 없게 되어 거의 반세기 동안을 우리들은 주로 서양사람들의 글을 옮겨 놓은 괴상한 글만을 읽어 왔으니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백석은 남에서 북으로 넘어간 사람이 아니고 해방 때부터 북에서 산 사람이지만, 북쪽의 시인이라고 해서 일제시대에 썼던 그의 시조차 못 읽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제 와서 갑자기 읽게 되니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시를 해방 때부터 모든 학생들이 학교에서 읽고 우리말을 익히고 우리 정서를 이어받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가장 우리 것답고 우리 마음에 가까운 것을 도리어 서양 것보다 어 낯설게 대한다면 이보다 더 큰 불행이 어디 있겠는가. 백석의 시를 한 편만 더 들겠다. 모닥불 이란 제목이다. 모닥불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니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헌겊조각도 기왓장도 닭의짖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이제는 시골에서도 나무로 불을 피우는 아궁이를 보기가 쉽지 않고, 추운 날 들판에서 일하다가 검불을 끌어 보아 모닥불을 피워서 손을 쬐는 일은 더구나 겪어 보기 어려워, 요즘 학생들은 모닥불이란 말조차 모를 것 같고, 이런 시의 맛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날도 서울이고 어느 도시고 시장 한쪽 길바닥에 과일이며 나물들을 펴 놓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겨울이면 이른 아침 길가에 판자쪽이며 나뭇잎들은 태우면서 손을 녹이는 것을 가끔 볼 수 있으니, 이렇게 불을 피워서 쬐는 생활은 앞으로 세월이 더 지난다고 해도 아주 없어지지는 않으리라. 시대가 달라지고 생활이 바뀌면 말도 옛날에 쓰던 말이 조금씩 사라지고 새말이 생겨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렇게 생활 따라 말이 달라지더라도 지금까지 쓰던 말을 아주 버리고는 낯설고 엉뚱한 새 말을 지어낼 것이 아니라, 될 수 있는 대로 지금까지 써오던 말을 잘 살려서 쓰는 것이 슬기롭다. 그래서 새 말이 되더라도 우리말을 바탕으로 해서 그것을 조금 고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해야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제대로 이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늦기는 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잃어버린 우리말, 잊어 버린 우리말을 다시 찾아야 되겠고, 시골말 공부를 많이 할 필요가 있다. 백석이 이렇게 우리말을 놀라울 만큼 잘 살려 놓은 시를 썼지만, 그이도 글만 쓴 시인이라 농사꾼들이 일을 하는 모습을 그려 보인 시는 한 편도 쓰지 못했다. 그러나 백석의 시는 일본 제국주의의 마지막 때, 우리말과 우리 글을 잃어 버리고 빼앗기고 해서 우리 겨레가 살아남기조차 어렵게 되었을 때, 아주 땅에 묻히고 말았을 우리말을 가장 잘 살려 놓은 시로 높이 보아야 할 것이다. 시집을 많이 읽은 사람은 어려운 한자말이나 보통사람들이 쓰지 않는 서양말을 쓰면 근사해 보이고 새로운 시의 맛이 난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시를 모르기 때문이다. 한자말이나 서양말, 외국말법보다는 오히려 우리 시골말, 시골에 남아 있는 사투리를 쓰면 시가 살아나고 새로워 보인다. 시골말, 시골 사투리가 가장 깨끗한 우리말이기 때문이다. 백석의 시가 이제 와서 높이 평가받게 되는 까닭이 이러하다. 아이들의 시도 마찬가지다. 구름 구름이 햇님을 꼭 안고 놔 주지 않았다. 그런데 햇님이 가랑이 쌔로 윽찌로 빠자 나왔다. - 63.10.31. 상주청리 3학년 박선용 감나무 감나무가 웃고 있는가비라 팔랑팔랑 웃고 있는가비라 - 67.5.23. 경주 2년 정경자 복숭아꽃 복숭아꽃은 날마다 방글방글 웃는 빛이 가지다. - 70.4.30. 안동 대곡분교 3년 이창순 이슬 이슬이 쬐꼼한 게 나와 있다. 내가 이슬이라면 좋겠다 하니 이슬이 나보고 그면 니가 내고 내가 니고 한다. - 70.6.18. 안동 대곡분교 2년 김을자 이 네편의 시에서 밑줄을 그어 놓은 말이 그 지방에서 쓰는 말이다. 이 말들을 모두 표준말이라고 하는 서울말로 고쳐 쓴다면 어찌 되겠는가? 첫시의 경우는 시의 맛이 반쯤 줄어들 것이고, 그외 세시의 경우에는 시의 맛을 거의 잃어 버릴 것이다. 사투리라고 하는 시골말은 지난날 우리 어린이들에게는 그 어린이들 자신의 말이었다. 요즘은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널리 보급되어 시골말이 많이 쫓겨나고, 그래서 온 나라의 말이 틀에 박혀 버렸지만, 그래도 시골에는 시골마다 조금씩 다른 말을 쓰고 있다. 따라서 어린이들에게 시를 쓰게 할 때는 자기들의 생활말인 사투리를 될 수 있는 대로 살려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어린이들에게 시골말, 곧 사투리를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살아 있는 시를 못 쓰게 하는 노릇이 된다고 보아야 한다. 중고등학생도 어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시골말을 쓰면 효과가 있다고 해서 실제로는 쓰지 않는데 일부러 시골말을 쓴 것같이 해 놓는다면 어찌 될까? 다음은 어느 고등학생이 낸 시집에 들어 있는 시다. 일제 방죽 방죽을 싼 것은 조선놈인데 원북리 사람들 일제 방죽이라 부른다. 앞 시절, 일제 치하게 치를 떨던 시절 우리 라부지덜은 강제 노동에 끌려사 물만 먹은 힘으루 조선 할부지덜이 싼 방죽을 우리들은 일제 방죽이라 부른다. 여기 나오는 할부지덜과 힘으루 는 아직도 시골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런에 이 시에서는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 아닌 것으로 느껴진다. 무슨 까닭인가? 이 시는 고등학생이 썼고, 시에 나오는 말도 고등학생인 자신이 한 말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일제 치하 란 유식한 말을 섰고, 부른다 고 하는 일본말을 직역해 좋은 말을 썼다. 일제 방죽이라고 말한다 고 해야 우리말이 된다. 사람들이 방죽을 보고 일제 방죽아 하고 부르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니까. 이렇게 유식한 말을 쓰고 오염된 말을 쓰는 학생이 할아버지들(할부지들)이라고 하지 않고, 힘으로 라 하지 않고, 학교에 다니지도 않는 농사꾼 어른들이 하는 말인 할부지덜 힘으루 를 같은 글에 섞어서 써 놓았으니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가 없고, 어른들 말을 흉내낸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는 국민학교 1학년 아이들도 할아버지들 아버지들 로 쓰고, 힘으로 라쓰지, -덜 -으루 로는 쓰지 않는다. 더구나 유식하고 오염된 글말을 하면서 이런 사투리를 썼으니 이것은 정직한 자기표현이라 볼 수 없다. 이런 생각은 조선 놈 더 나은 놈 이라고 해 놓은 말에서 더 분명해 진다. 대관절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할아버지뻘되는 어른들을 이렇게 놈 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것은 도무지 있을 수가 없는 말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이 시는 시인들이 쓴 시를 흉내낸 것이다. 유식한 말을 쓴 것도, 일본말법으로 된 말을 쓴 것도, 그러면서 일부러 무식한 농사꾼처럼 보이려는 시골말을 쓴 것도, 할아버지뻘되는 어른들을 마구잡이로 놈 이라고 한 것도 모조리 어른 시인들의 흉내를 낸 것이다. 내가 보기로 오늘날 중고등학생들이 쓴 시가 거의 모두 어른들이 쓴 시를 흉내낸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된 까닭은 워낙 시를 흉내내기로 배운 때문이다. 시를 흉내내기로만 썼으니 어떻게 진짜 시를 쓸 수 있겠는가? 시골말이고 사투리고 그것을 시로 쓸 수 있다면 우리말을 살리고 시를 살리는 일이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시 자신의 말로 써야 하는 것이지 머리고, 논리로, 어른들 흉내로 쓸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말을 살린다고 해서 저도 쓰지 않는 말, 자기 몸에서 우러나지도 않은 말을 순수한 토박이 말 이라고 해서 쓰기보다는, 차라리 누구나 잘 알고 있고, 누구든지 쓸 수 있으면서 다만 그것이 쉬운 말이라고 해서 버려둔 말을 쓰는 것이 열배도 낫고 백 배도 더 옳은 일이다. 보기를 들면 매일 을 쓰지 말고 날마다 를 쓰고, 출발한다 를 쓰지 말고 나선다 를 쓰고, 비애 를 쓰지 말고 슬픔을 쓰고, 미소한다 고 할 것이 아니라 웃는다 고 하고, 여명 이 아니라 새벽 을 쓰는 따위로 말이다. 우리말과 우리 시는 이렇게 해야 살아난다. 앞에서 시골말투성이로 된 백석의 시를 든 것도 그런 시를 흉내내라고 해서 든 것이 아니다. 그런 시는 흉내를 낼 수도 없다. 다만 지난날 우리말의 세계가 얼마나 풍성하고 재미있었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도 사실 우리 시의 역사에서 뛰어났다고 하는 시,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고 있는 시를 모두 깨끗한 우리말로 되어 있다는 것은, 시골 사람들만 알고 있는 말이 아니라 시골 사람들도 잘 알고 있어서 누구나 친숙하게 느끼는 말로 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와같이 시골 사람들도 잘 알 수 있는 깨끗한 우리말로 되어 있는 훌룡한 시는, 보기를 들면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김소월의 금잔디 산 , 정지용의 고향 , 심훈의 그날이 오면 , 문익환의 잠꼬대 아닌 잠꼬대 .. 이밖에도 더 많이 들 수 있을 것인데, 이런 시들은 모두 살아 있는 겨레의 말로 썼기에 온 겨레의 가슴을 울리는 명시가 된 것이다.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원응서편" 원응서(1914~1973) 번역 문학가, 평양 출생, 일본 리쿄 대학 영미 학부 졸업. 문예지 '문학' 주간 역임. 원응서는 번역 이외의 일에는 별로 활동을 하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일상의 체험에서 우러난 통찰 깊은 수필들이 몇 편 전해져 그의 진가를 보여 준다. 평범한 듯하면서도 인생에 대한 관조와 애정이 곁들여 있어 독자들에게 수필 문학의 묘미를 느끼게 해 준다. 낚시의 즐거움 3 어느 낚시터고 고기가 잘 나오는 자리란 몇몇 군데로 정해져 있고 정해진 자리엔 으레 주인이 있기 마련이다. 자리 주인이 나오지 않았을 땐 좋지만 낚는 도중에 그 주인이 나타나면 멋적다. 그러니 아예 그런 자리는 넘겨다보지 않고 숫제 새 자리를 찾는 수밖에 없다. 말이 쉽지 새 자리를 찾는 일이란 도시 수월한 노릇이 아니라는 걸 낚시꾼이라면 너무나도 잘 아는 사실이다. 모처럼 공휴일을 즐기려던 것이 대개는 새 자리 찾기로 황금의 하루를 낭비하기가 일쑤다. 이런 사실을 마음에 다짐하고 난 후라야 이 어려운 작업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맡겨 두다시피 한 고기를 낚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찾아서 낚는데서 낚시의 참다운 즐거움과 참맛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이런 마음의 자세는 어느 정도 돼 있지만 모처럼 그것이 돼 주지를 않는다. 하나 뜻대로 돼 주지가 않는 데에 실은 낚시의 묘미가 있는 것이다. 어느 자리에선 매일 정해 놓고 서너 치짜리가 3, 40수씩 무슨 정리처럼 꼬박꼬박 나오기로 돼 있다면 실로 매력이 없는 낚시일 것이다. 낚싯대를 들어 나마나 서너 치짜리밖에 나오지 않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력이 없다기보다도 싱거울 것이다. 사실 그 누구도 앉아 보지 않았던 새 자리에서 상상했던 대로 척척 낚아 질 때처럼 자기만의 황홀을 느끼는 일은 또 없을 것이다. 낚시가 다른 오락이나 스포츠보다도 영속적인 매력을 안겨 주는 것도 그것이 무궁무진한 근원을 지니고 있어서이다. 모든 사물이 그렇듯이, 좋은 자리란 우연히 얻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좋은 판단과 시간을 투자한 개척적인 노력에서만 이루어지는 총화일 것이다. 4 낚시에 들린 상태를 가리켜 무슨 일이든 낚시를 하듯 하면 안 될 일이 없을 거라고 한다. 무엇에 들린다거나 심취한다는 그 자체는 확실히 즐거운 일이다. 낚시꾼치고 다소 차이가 있을망정 흘리거나 빠지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 홀리고 들리거나 또 홀리게 하고 들리게 하는 데가 또 하나의 낚시의 무진한 묘미이고 매력인 것이다. 찌는 듯 무더운 여름날의 대낚시나 한겨울의 삼봉낚시라도 낚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꾼'을 나는 너무나도 많이 보아 왔다. 새벽에 낚싯대를 둘러메고 떠나가는 마당이야말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가슴이 부풀 대로 부푼 순간이다. 그리고 자신이 마음먹었단 장소에라도 뜻대로 가 앉게 되어 여건들이 착착 들어맞는 날이면 기분은 더할 나위 없다. 게다가 기대한 대고 낚아질 때는 옆에 벼락이 둘러 떨어져도 모를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여느 때 끼니가 좀 늦어질라치면 아우성이고 으르렁대던 사람도 이쯤되면 적어도 한두 끼니는 무난히 걸러 넘긴다. 이런 걸 두고 몰입 혹은 무아삼매의 경지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가난한 나라 사람일수록 서민적인 오락의 빈곤이 따르고 심지어는 낚시는 한가한 층이 즐기는 것이고 노인네나 소일풀이로 하는 소외된 놀음으로 여기는 편견이 아직도 더러는 잔존하고 있다.이것은 실은 꽤 실질적인 면을 추궁하면서도 되려 실질적이 못 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잘못된 견해로만 여겨진다. 많은 투자가 필요한 승마나 골프는 하나의 떳떳한 스포츠로 보면서도 헐값으로 누구나가 즐길 수 있는 낚시를 꼬집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현대 생활이 긴장을 낳고 복잡해지는 사회일수록 거기서 오는 피로와 병폐를 푸는 작업, 레크리에이션이란 행위가 절실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영국 사람 같은, 우리들보다도 더 실질적인 국민도 낚시를 더 많이 즐기는 것인지 모르겠다. "필드 앤드 스트림"을 보면 영국에서는 해마다 전국 낚시 대회가 국가적인 규모로 열리는데 이 날의 대낚시 대회에는 전국에서 등록된 직업 선수 1천 3백 명 내외가 출전을 하고 더비 데이 못지 않게 벌판에 갑작스런 텐트 도시가 생기고 각종 낚시 연장의 바겐세일, 전국 낚시 상점들의 특제품 전시회, 정부 지정 복권 매매소, 음식점, 술집 등 수십만의 인파와 차량으로 성시를 이룬다. 그리고 영국에는 낚시를 직업으로 사는 사람의 생활 정도는 영국의 보통 공무원 정도이고 그 수효는 1천 명 이상이라고 했다. 이 선수들은 주로 거의 매주일마다 있는 지방 대회에 출전함으로써 수입을 올리고 있다.이들 낚시는 강낚시이고 미끼는 구더기, 그것도 노랑, 빨강, 하양, 그리고 돼지(꼬리난 구더기)등 다섯 가지를 보통 쓰고 있다. 낚싯대는 플라스틱 제품이 많으나 소위 일류 선수들은 일본에서 수입해 온 참대 대낚을 쓰고 있다. 여하튼 1년에 한 번씩 가을에 열리는 이 전국 낚시 대회는 대회일을 며칠 앞두고서부터 즐거운 축제일처럼 낚시 동호인들은 들뜬다. 막상 대회일이 닥치면 각 지방에서 선출되어 출전한 선수들은 선수대로 몇만 달러의 상금으로 가슴이 부풀고 또 낚시 상인들은 1년 중의 최고의 매상을 올리나 그렇고 또 낚시 애호가나 관광객들은 복권으로 해서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이란 나라는 이래서 우리들보다 즐거운 고장이 되어 가는지 모르겠다. 5 중국의 문필가 김성탄의 글을 읽으면 여름날의 무더위를 두고 묘사한 재미스런 장면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그래서 여름 낚시를 하면서 가끔 생각나는 것이 그의 글이다. '여름날 삼복 거리에 돗자리는 축축하고 파리 떼가 얼굴 근처를 날아다니나 아무리 쫓아도 달아나질 않는다. 이 때 별안간 천둥이 우르르 진동을 치더니 이윽고 처마 끝에서 폭포처럼 빗물일 쏟아져 내린다. 이래서 성화스럽던 파리 떼는 자취를 감추어 이 때야 겨우 밥을 먹을 수 있게 된다. 이 또한 유쾌한 이 아닐소냐.' 김성탄은 꽤는 가난해서 줄곧 방 안에서 여름 무더위와 싸우는 그런 생활이었으리라. 낚시는 봄, 여름, 가을, 그 어느 계절이고 그것대로 독자적인 맛이 있다. 봄은 봄대로 곡우를 전후해서 산란기를 맞아 신록과 더불어 겨우 내 집 안에 갇혔던 울적을 향기로 씻을 수 있으니 즐겁고, 하지를 지난 무더운 여름은 여름대로 깊은 수심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강바람과 들바람을 쐬니 또 즐겁지 않을 수 없다. 가을은 푸른 하늘과 황금 물결 치는 오곡의 벌판과 울긋불긋 곱게 물든 산야에서 샛바람을 맞는 마음도 또한 즐겁지 않을 수 없다. 낚시 계절 중에서도 여름은 집 안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저절로 땀이 흘러내리는데 어떻게 뙤약볕 밑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느냐고 대뜸 반문하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낚시를 드리우고 우선 웃도리와 바지를 훨훨 벗어 던진다. 이렇게 해서 팬티 바람이 되어 맨발을 물에 담그어 보라. 그리고서는 양산을 딱 버텨 놓으면 그만이다. 모자도 삿갓도 소용없다. 몸에는 다만 팬티가 한 장 걸쳐 있을 뿐 어느덧 양산 밑으로는 신선이 오락가락한다. 수면을 타고 불어 오는 미풍은 오히려 간지럽기까지 하다. 이쯤 되면 세상엔 부러운 것이 없을 지경이다. 탑탑한 방 안에서 인공적으로 내는 선풍기의 바람을 나는 병적으로 싫어한다. 에어컨디셔너의 그것도 마찬가지다. 피서를 제대로 즐길 수 없는 서민들에게는 양산 밑으로 신선이 노니는 여름 낚시는 안성맞춤이다. 하루쯤 이렇게 낚시를 즐기고 나면 며칠은 더위를 모르고 지나게 된다. 별로 땀도 나지 않는다. 왠지 모르지만 몸까지 가벼워진다. 이것은 또한 겨우내 감기를 막아 주는 약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내 경험으로도 여름 낚시만 잘하면 감기는 모르고 지냈으니까. 그러나 여름 낚시는 감기를 이기기 위해서는 아니다. 그런 이점은 어디까지나 부산물에 지나지 않고 낚시의 본뜻은 생활에 즐거움을 실어다 주는데 있을 것이다. 김성탄도 일찍이 이 신선 놀이의 맛을 알았더라면 이러 시시한 글이 아니라 멋진 통쾌한 글이, 혹은 "낚시의 즐거움"이란 제명으로 더욱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