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조지훈편" 조지훈(1920~1968) 시인, 본명은 동탁. 경북 영양 출생. 혜화 전문 졸업. 고려대 교수, 민족 문화 연구소장 역임.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불림. 지사풍의 시인으로 알려졌던 조지훈의 시는 회고적 취미, 자연적 친화성, 불교적 선의 감각 등을 그 주요한 바탕으로 삼았다. 엄한 유교적 가정에서 자라난 장자의 기풍이 있었으며 후기에는 시보다 민족 문화의 개발에 주력하였다. 지조론 - 변절자를 위하여 - 지조란 것은 순일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지조가 교양인의 위의를 위하여 얼마나 값지고, 그것이 국민의 교화에 미치는 힘이 얼마나 크며, 따라서 지조를 지키기 위한 괴로움이 얼마나 가혹한가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한 나라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먼저 그 지조의 강도를 살피려 한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명리만을 위하여 그 동지와 지지자와 추종자를 일조에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지조 없는 지도자의 무절제와 배신 앞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실망하였는가. 지조를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아는 까닭에 우리는 지조 있는 지도자를 존경하고 그 곤고를 이해할 뿐 아니라 안심하고 그를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자이기 때문에 지조 없는 지도자, 배신하는 변절자들을 개탄하고 연민하며 그와 같은 변절의 위기의 직전에 있는 인사들에게 경성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다. 장사꾼에게 지조를 바라거나 창녀에게 지조를 바란다는 것은 옛날에도 없었던 일이지만, 선비와 교양인과 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장사꾼과 창녀와 가릴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식견은 기술자와 장사꾼에게도 있을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지사와 정치가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독립 운동할 때의 혁명가와 정치인은 모두 다 지사였고 또 지사라야 했지만, 정당 운동의 단계에 들어간 오늘의 정치가들에게 선비의 삼엄한 지조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일인 줄은 안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정당 운동을 통한 정치도 국리 민복을 위한 정책을 통해서의 정상인 이상 백성을 버리고 백성이 지지하는 공동 전선을 무너뜨리고 개인의 구복과 명리를 위한 부동은 무지조로 규탄되어 마땅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오늘 우리가 당면한 현실과 이 난국을 수습할 지도자의 자격으로 대망하는 정치가는 권모술수에 능한 직업 정치인보다 지사적 품격의 정치 지도자를 더 대망하는 것이 국민 전체의 충정인 것이 속일 수 없는 사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염결 공정 청백 강의한 지사 정치만이 이 국운을 만회할 수 있다고 믿는 이상 모든 정치 지도자에 대하여 지조의 깊이를 요청하고 변절의 악풍을 타매하는 것은 백성의 눈물겨운 호소이기도 하다. 지조와 정조는 다 같이 절개에 속한다. 지조는 정신적인 것이고, 정조는 육체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지조의 변절도 육체 생활의 이욕에 매수된 것이요, 정조의 부정도 정신의 쾌락에 대한 방종에서 비롯된다. 오늘의 정치인의 무절제와 장사꾼적인 이욕의 계교와 음부적 환락의 탐혹이 합쳐서 놀아난 것이라면 과연 극언이 될 것인가. 하기는, 지조와 정조를 논한다는 것부터가 오늘에 와선 이미 시대 착오의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사람이 있을는지 모른다. 하긴 그렇다. 왜 그러냐 하면, 지조와 정조를 지킨다는 것은 부자연한 일이요, 시세를 거역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부나 홀아비가 개가하고 재취하는 것은 생리적으로나 가정 생활로나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고, 또 그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개가와 재취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승인하면서도 어떤 과부나 환부가 사랑하는 옛짝을 위하여 개가나 속현의 길을 버리고 일생을 마치는 그 절제에 대하여 찬탄하는 것을 또한 잊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 능히 하기 어려운 일을 했대서만이 아니라 자연으로서의 인간의 본능고를 이성과 의지로써 초극한 그 정신의 높이를 보기 때문이다. 정조의 고귀성이 여기에 있다. 지조도 마찬가지다. 자기의 사상과 신념과 양심과 주체는 일찌감치 집어 던지고 시세에 따라 아무 권력에나 바꾸어 붙어서 구복의 걱정이나 덜고 명리의 세도에 참여하여 꺼덕대는 것이 자연한 일이지, 못나게 쪼를 부린다고 굶주리고 얻어맞고 짓밟히는 것처럼 부자연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하면 얼핏 들어 우선 말은 되는 것 같다. 여름에 아이스케이크 장사를 하다가 가을 바람만 불면 단팥죽 장사로 간판을 남 먼저 바꾸는 것을 누가 욕하겠는가. 장사꾼, 기술자, 사무원의 생활 태도는 이 길이 오히려 정도이기도 하다. 오늘의 변절자도 자기를 이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또 그렇게 자처한다면 별문제다. 그러나, 더러운 변절의 정당화를 위한 엄청난 공언을 늘어놓는 것은 분반할 일이다. 백성들이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먼 줄 알아서는 안 된다. 백주 대로에 돌아앉아 볼기짝을 까고 대변을 보는 격이라면 점잖지 못한 표현이라 할 것인가. 지조를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자기의 신념에 어긋날 때면 목숨을 걸어 항거하여 타협하지 않고 부정과 불의한 권력 앞에는 최저의 생활, 최악의 곤욕을 무릅쓸 각오가 없으면 섣불리 지조를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 정신의 자존 자시를 위해서는 자학과도 같은 생활을 견디는 힘이 없이는 지조는 지켜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조의 매운 향기를 지닌 분들은 심한 고집과 기벽까지도 지녔던 것이다. 신단재 선생은 망명 생활 중 추운 겨울에 세수를 하는데 꼿꼿이 앉아서 두 손으로 물을 움켜 얼굴을 씻기 때문에 탄 물이 모두 소매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한다. 어떤 제자가 그 까닭을 물으매, 내 동서남북 어느 곳에도 머리 숙일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무서운 지조를 지킨 분의 한 분인 한용운 선생의 지조 때문에 낳은 많은 기벽의 일화도 마찬가지다. 오늘 우리가 지도자와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지조는 이토록 삼엄한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신 뒤에는 당신들을 주시하는 국민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자신의 위의와 정치적 생명을 위하여 좀더 어려운 것을 참고 견디라는 충고 정도다. 한때의 적막을 받을지언정 만고에 처량한 이름이 되지 말라는 채근담의 한 구절을 보내고 싶은 심정이란 것이다. 끝까지 참고 견딜 힘도 없으면서 뜻있는 백성을 속여 야당의 무사를 가장함으로써 권력의 미끼를 기다리다가 후딱 넘어가는 교지를 버리라는 말이다. 욕인으로 출세의 바탕을 삼고 항거로써 최대의 아첨을 일삼는 본색을 탄로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충언의 근원을 캐면 그 바닥에는 변절하지 말라, 지조의 힘을 기르란 뜻이 깃들여 있다. 변절이란 무엇인가. 절개를 바꾸는 것, 곧 자기가 심신으로 이미 신념하고 표방했던 자리에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철이 들어서 세워 놓은 주체의 자세를 뒤집는 것은 모두 다 넓은 의미의 변절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욕하는 변절은 개과 천선의 변절이 아니고 좋고 바른 데서 나쁜 방향으로 바꾸는 변절을 변절이라 한다. 일제 때의 경찰에 관계하다 독립 운동으로 바꾼 이가 있거니와 그런 분을 변절이라고 욕하진 않았다. 그러나 독립 운동을 하다가 친일파로 전향한 이는 변절자로 욕하였다. 권력에 붙어 벼슬하다가 야당이 된 이도 있다. 지조에 있어 완전히 깨끗하다고는 못 하겠지만 이들에게도 변절자의 비난은 돌아가지 않는다. 나머지 하나 협의의 변절자, 비난 불신의 대상이 되는 변절자는 야당 전선에서 이탈하여 권력에 몸을 파는 변절자다. 우리는 이런 사람의 이름을 역력히 기억할 수 있다. 자기 신념으로 일관한 사람은 변절자가 아니다. 병자호란 때 남한 산성의 치욕에 김상헌이 찢은 항서를 도로 주워 모은 주화파 최명길은 당시 민족 정기의 맹렬한 공격을 받았으나 심양의 감옥에 김상헌과 같이 갇히어 오해를 풀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진 얘기다. 최명길은 변절의 사가 아니요 남다른 신념이 한층 강했던 이였음을 알 수 있다. 또 누가 박중양, 문명기 등 허다한 친일파를 변절자라고 욕했는가. 그 사람들은 변절의 비난을 받기 이하의 더러운 친일파로 타기 되기는 하였지만 변절자는 아니다. 민족 전체의 일을 위하여 몸소 치욕을 무릅쓴 업적이 있을 때는 변절자로 욕하지 않는다. 앞에 든 최명길도 그런 범주에 들거니와, 일제 말기 말살되는 국어의 명맥을 붙들고 살렸을 뿐 아니라 국내에서 민족 해방의 날을 위한 유일의 준비가 되었던 "맞춤법 통일안" "표준말모음" "큰사전"을 편찬한 '조선어 학회'가 국민 총력 연맹 조선어 학회 지부의 간판을 붙인 것을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런 하는 일도 없었다면 그 간판은 족히 변절의 비난을 받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이럴 의미에서 좌옹, 고우, 육당, 춘원 등 잊을 수 없는 업적을 지닌 이들의 일제 말의 대일 협력의 이름은 그 변신을 통한 아무런 성과도 없었기 때문에 애석하나마 변절의 누명을 씻을 수 없었다. 그분들의 이름이 무나 컸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실망이 컸던 것은 우리의 기억이 잘 알고 있다. 그 때문에 이분들은 반민 특위에 불리었고, 거기서 그들의 허물을 벗겨 주지 않았던가. 아무것도 못 하고 누명만 쓸 바에야 무위한 채로 민족 정기의 사표가 됨만 같지 못한 것이다. 변절자에게는 저마다 그럴듯한 구실이 있다. 첫째, 좀 크다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백이, 숙제는 나도 될 수 있다. 나만 깨끗이 굶어 죽으면 민족은 어쩌느냐가 그것이다. 범의 굴에 들어가야 범을 잡는다는 투의 이론이요, 그 다음에 바깥에선 아무 일도 안 되니 들어가 싸운다는 것이요, 가장 하치가, 에라 권력에 붙어 이권이나 얻고 가족이나 고생시키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굶어 죽기가 쉽다거나 들어가 싸운다거나 바람이 났거나간에 그 구실을 뒷받침할 만한 일을 획책도 한번 못 해 봤다면 그건 변절의 낙인밖에 얻을 것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일찍이 어떤 선비도 변절하여 권력에 영합해서 들어갔다가 더러운 물을 뒤집어 쓰지 않고 깨끗이 물러나온 예를 역사상에서 보지 못했다. 연산주의 황음에 어떤 고관의 부인이 궁중에 불리어 갈 때 온몸을 명주로 동여매고 들어가면서, 만일 욕을 보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고 해 놓고 밀실에 들어가서는 그 황홀한 장치와 향기에 취하여 제 손으로 명주를 풀고 눕더라는 야담이 있다. 어떤 강간도 나중에는 화간이 된다는 이치와 같지 않은가. 만근 30년래에 우리 나라는 변절자가 많은 나라였다. 일제 말의 친일 전향, 해방 후의 남로당 탈당, 또 최근의 민주당의 탈당, 이것은 20이 넘은, 사상적으로 철이 난 사람들의 주책없는 변절임에 있어서는 완전히 동궤다. 감당도 못 할 일을, 제 자신도 율하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민족이니 사회니 하고 나섰더라는 말인가. 지성인의 변절은 그것이 개과 천선이든 무엇이든 인간적으로는 일단 모욕을 자취하는 것임을 알 것이다. 우리가 지조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말은 다음의 한 구절이다. '기녀라도 늘그막에 남편을 좇으면 한평생 분냄새가 거리낌이 없을 것이요, 정부라도 머리털 센 다음에 정조를 잃고 보면 반생의 깨끗한 고절이 아랑곳없으리라.' 속담에 말하기를 '사람을 보려면 다만 그 후반을 보라' 하였으니 참으로 명언이다. 차돌에 바람이 들면 백 리를 날아간다는 우리 속담이 있거니와, 늦바람이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아직 지조를 깨뜨린 적이 없는 이는 만년을 더욱 힘쓸 것이니 사람이란 늙으면 더러워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직 철이 안 든 탓으로 바람이 났던 이들은 스스로의 후반을 위하여 번연히 깨우치라. 한일 합방 때 자결한 지사 시인 황매천은 정탈이 매운 분으로 '매천필하 무완인'이란 평을 듣거니와 그 "매천 야록"에 보면, 민 충정공, 이용익 두 분의 초년 행적을 헐뜯은 곳이 있다. 오늘에 누가 민 충정공, 이용익 선생을 욕하는 이 있겠는가. 우리는 그분들의 초년을 모른다. 역사에 남은 것은 그분의 후반이요, 따라서 그분들의 생명은 마지막에 길이 남게 된 것이다. 도도히 밀려오는 망국의 탁류-이 금력과 권력, 사악 앞에 목숨으로써 방파제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지조의 함성을 높이 외치라. 그 지성 앞에는 사나운 물결도 물러서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천하의 대세가 바른 것을 향하여 다가오는 때에 변절이란 무슨 어처구니없는 말인가.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 먹어도 자기를 위한 36년의 선견지명은 가졌었다. 무너질 날이 얼마 남지 은 권력에 뒤늦게 팔리는 행색은 딱하기 짝없다. 배고프고 욕된 것을 조금 더 참으라, 그보다 더한 욕이 변절 뒤에 기다리고 있다. '소인기하라.' 이 말에는 뼈아픈 고사가 있다. 광해군의 난정 때 깨끗한 선비들은 나가서 벼슬하지 않았다. 어떤 선비들이 모여 바둑과 청담으로 소일하는데, 그 집 주인은 적빈이 여세라, 그 부인이 남편의 친구를 위하여 점심에는 수제비국이라도 끓여 드리려 하니 땔나무가 없었다. 궤짝을 뜯어 도마 위에 놓고 식칼로 쪼개다가 잘못되어 젖을 찍고 말았다. 바둑 두던 선비들은 갑자기 안에서 나는 비명을 들었다. 주인이 들어갔다가 나와 사실 얘기를 하고 초연히 하는 말이 가난이 죄라고 탄식하였다. 그 탄식을 듣고 선비 하나가 일어서며, 가난이 원순 줄 이제 처음 알았느냐고 야유하고 간 뒤로 그 선비는 다시 그 집에 오지 않았다. 몇 해 뒤 그 주인은 첫 뜻을 바꾸어 나아가 벼슬하다가 반정 때 몰려 죽게 되었다. 수레에 실려서 형장으로 가는데 길가 숲에서 어떤 사람이 나와 수레를 잠시 멈추게 한 다음 가지고 온 닭 한 마리와 술 한 병을 내놓고 같이 나누며 영결하였다. 그 때 그 친구의 말이, 자네가 새삼스레 가난을 탄식할 때 나는 자네가 마음이 변한 줄 이미 알고 발을 끊었다고 했다. 고기밥맛에 끌리어 절개를 팔고 이 꼴이 되었으니 죽으면 고기맛을 못 잊어서 어쩌겠느냐는 야유가 숨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찾는 것도 우정이었다. 죄인은 수레에 다시 타고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탄식하였다. '소인기 소인기 소인기하라'고... 변절자에게도 양심은 있다. 야당에서 권력에로 팔린 뒤 거드럭거리다 이내 실세한 사람도 있고 갓 들어가서 애교를 떠는 축도 있다. 그들은 대개 성명서를 낸 바 있다. 표면으로 성병은 버젓하나 뜻있는 사람을 대하는 그 얼굴에는 수치의 감정이 역연하다. 그것이 바로 양심이란 것이다. 구복과 명리를 위한 변절은 말없이 사라지는 것이 좋다. 자기 변명은 도리어 자기를 깎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녀가 아기를 낳아도 핑계는 있다는 법이다. 그러나, 나는 왜 아기를 배게 됐느냐 하는 그 이야기 자체가 창피하지 않은가. 양가의 부녀가 놀아나고, 학자 문인까지 지조를 헌신짝같이 아는 사람이 생기게 되었으니 변절하는 정치가들도 우리쯤이야 괜찮다고 자위할지 모른다. 그러나 역시 지조는 어느 때나 선비의, 교양인의, 지도자의 생명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지조를 잃고 변절한다는 것은 스스로 그 자임하는 바를 포기하는 것이다.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원수를 사랑하라 김인순(여.동대문구 휘경2동) 제가 여고 1학년 때의 일입니다. 우리한테 '왜 사냐?'고 물으면 우린 항상 손가락으로 '존재의 이유' 바로 그분을 가르키곤 했습니다. 삼신할매의 최고의 걸작품이었던 우리의 생물선생님. 지금도 그 휘황찬란한 모습을 생각할 때면 목이 메이는 건 기본. 옆에서 자고 있는 남편까지 걷어차 버리고 싶을 정도지요. 키는 버스 환기통을 모자로 쓰고 달릴 만큼 크셨고, 얼굴은 삼신할매한테 도대체 얼마나 썼길래 저런 대리석 조각이 나왔을까 할 정도였습니다. 이분이 만약 연예계로 방향을 틀었다면 요즘 잘나간다는 배용준의 밥줄도 무사하진 못했을 겁니다. 그뿐이겠습니까? 끊어진 밥줄 올려다보며 '백수의 골짜기'에서 땅을 치며 '한오백년'을 부르는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유머감각은 또 어떤가요? 서세원이 발바닥에 로켓 엔진을 달고 뛰어도 택도 없을 겁니다. 하품도 그분이 하면 머리를 풀어헤치고 그분의 입속으로 뛰어들어가 밥이 되고 싶었고, 하부에서 가끔씩 독가스가 뿜어져 나올 때도 '내 남자의 향기'라고 부르짖고 싶을 정도 랍니다. 여하튼 목소리, 걸음걸이, 세련되고 정확한 서울 말씨 등등 모든 면에서 A+만점을 받은 정도로 정말 매력적인 분이셨지요. 오죽하면 별명이 '태양'이었겠습니까? 이와는 반대로 외모부터 숙명적인 라이벌일 수밖에 없었던 분이 바로 국사 선생님. 키는 등소평, 얼굴은 안방에 누워 있는 메주를 닮아 웃돈까지 줘가며 도로 물리고 싶을 만큼 '리바이벌'을 허용치 않는 기념비적인 얼굴이었지요. 유머감각만 해도 사흘이 멀다 하고 시베리아 경찰이 와서 '선생스키, 고향에서 잡아오라스키, 이번에는 가면 언제올지 모른다스키'하며 끌고갈 정도로 간담이 '썰렁" 그 자체였습니다. 거기다 억수로 심한 경상도 사투리 하며, 궁둥이 양쪽에서 오리 두 마리가 부활할 것 같은 걸음걸이 등 많은 부분이 우리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괴로움을 선사했습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 '백팔번뇌!' 그 당시 우리에게 최고의 찬사는 '태양한테 열받았어?', 가장 심한 욕은 '백팔번뇌와 눈이 맞았어?'였습니다. 사태가 이러니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태양열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기를 써야 했습니다. 주머니가 가득한 애들은 아침마다 꽃이나 책으로 선물공세를 했는데, 우리는 얘들을 '매수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얼굴과 몸매가 따라줘서 요란하게 치장하고 오는 애들은 선생님의 마음을 흐려 놓는다고 해서 '미꾸라지파', 이와는 달리 저처럼 청렴결백하고, 몸매를 초월한 애들, 그래서 아침마다 물동이 이고 한손엔 물걸레나 빗자루를 들고 와서 가식없이 몸으로 때우는 애들은 '육체파'라고 불렀습니다. 삼파전이었지요. 나중에 밑천이 떨어진 매수파가 미꾸라지 휘하로 들어가서 '부자파'라는 이름으로 새로 태어나는 바람에 저희가 상당히 고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저희의 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쓰라린 이름을 줬던 최초의 혈투, 일명 '혈액형 전투'에서의 패배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혈액형 실험이 예고된 날로, 우리는 쉬는 시간부터 손가락을 떡주무르듯 주무르며 저마다 신성한 제단의 제물이 되길 학수고대했지요. 각 혈액형당 1명씩 해서 모두 4명의 피가 필요했는데, 먼저 A형은 우리의 국보 고청자(고려청자)의 승리가 거의 확실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불여우 국가대표 강미형이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하는 겁니다. "선생님요, 선생님이 드라큘라면 지는 맛있는 밥이 될랍니더. 자, 드이소." '아니 이럴 수가! 다된 밥에 재를 뿌려도 유분수지, 요망한 것 같으니라구.' 다음은 AB형. 애석하게도 이 형은 딱 한사람밖에 없었는데, 그 애는 꿋꿋하게 자기만의 독자노선을 걷는 애로 수업시간엔 주로 책상에 엎드려 코로 트럼펫을 불고, 이빨로 무전을 치며, 침으로 세수를 하는데, 가끔씩 악몽을 꿀 때면 허공으로 손을 높이 올리기도 했지요. 그날도 악몽을 꾼 탓인지 상황판단도 못하고 겁없이 손을 드는 바람에 게슈타포에게 끌려가는 유태인처럼 허옇게 질린 얼굴로 울부짖었습니다. "난 아니에요, 난 피가 모자라요, 아아-, 싫어요." 끝내 끌려가서 피를 보고야 말았습니다. 다음은 B형. 지원자가 많아서 '가위, 바위, 보'를 했는데, 그 가시나들 참 억수로 잘하는기라요. 마지막 남은 O형. 우리 육체파의 희망, 바로 제가 나섰습니다. 제 손이 명색이 기적을 부르는 손인데, 그깟것 하나 못했겠습니까? 하지만 전체점수 2-1로 저희의 패배로 끝나고 말았지요. 방과후 전후 처리와 앞으로 다가올 대전을 위해 논두렁회의를 가졌습니다. 주제는 선생님 생신 선물에 관한 것이었는데, 달력을 보니 마침 복날이더군요. 그래 팔 걷어붙이고 나가 한 마리 잡아 드리기로 했지요. 아무래도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할 것 같아 비록 국가에서는 포기한 인간문화재지만 그래도 이 분야 최고의 권위자이신 저희 할아버지께 여쭸습니다. "할배요, 개는 우찌 잡습니꺼?" "가시나가 건 와 묻노?" "우리 선생님 몸이 시원찮아서..." "뭐라꼬? 그라믄 느거 선생이 니보고 개 잡아오라 그러드나? 내 이놈의 선생 다리 몽둥이를 확 뿐질러 뿔끼다." "아입니더, 그게 아니고예 지가 묵을라꼬..." "뭐라꼬? 그라믄 니가 지금 꼭두새벽부터 개 잡아묵겠다고 설쳐대는기가? 이 가시나가 맞아 죽고 싶나. 퍼뜩 안 들어가나!" 이리하여 개 한 마리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다시 열린 제2차 논두렁회의를 통해 내려진 결정은 자장면이었는데, 문제는 4교시인 생물 시간에 맞춰 그걸 어떻게 가져오느냐였지요. 궁리 끝에 우리는 백팔번뇌를 따돌리고 수위 아저씨를 매수하여 교문을 넘자는 기가 막힌 계획을 세웠습니다. 드디어 3교시 국사시간, 약속대로 청자가 먼저 손을 들더군요. "선생님요, 화장실이 지를 부릅니데이." "쪼끔만 참아라이." "안됩니더, 억수로 큰 건데 우찌 참습니꺼?" "그 가시나 참, 지저분하게 노네. 퍼뜩 가그라." "쪼끔 오래 걸릴 낀데, 괜찮십니꺼?" "그 가시나 참, 니 맘대로 가서 내다 팔고 오든, 집어 묵고 오든 맘대로 해 뿌리라 안카나." 다음엔 제 차례였습니다. "닌 또 뭐꼬?" "지도 배가 아픕니데이." "꾀병 아이가?" "아입니더." "니도 오래 걸릴 끼가?" "그럴 낌더." 영문을 모르신 선생님은 얼굴을 찌푸리셨지만, 어쨌든 우리의 계획은 성공! "이반 가시네들은 다 와 이카노?" 이렇게 우린 밸팔번뇌를 따돌리고 운동장에서 만나 담배 한갑으로 수위 아저씨를 매수한 뒤 여유 만만하게 자장면을 사왔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생물시간, 예상대로 부자파는 케이크를 내놓더군요. '미련한 것들, 저희들 제삿밥이 될 줄도 모르고... 하하하.' 다음엔 우리 차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자장면을 내놓자 선생님께서는 감탄 또 감탄하셨습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그날 자장면은 환희의 송가를 부르며 선생님의 입속으로 넘어갔고, 케이크는 최후의 한 조각까지 반 친구들의 이빨에 사정없이 뭉게져서 처절한 장송곡을 부르며 우리들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승리감에 도취될 사이도 없이 또 끔찍한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국사시간에 말입니다. "봐라, 느거들은 모르제? 느거들 태양이 각시델꼬 비행기 타고 날른다카드라. 걱정 말그레이, 내는 절대로 느거들을 배신하지 않는데이. 느거들을 두고 우찌 가겠나?" 세상에 몽룡이가 떠난다는 마당에 학도가 온다꼬 춘향이가 춤을 추겠습니꺼? 사태가 급박한지라 우리는 부자파까지 불러 제1차 방앗간 회담을 열었습니다. 선생님을 낚아챈 그 여우가 누군지 찾아서 응징을 하자는 의견, 막강한 테러리스트를 사서 둘 중 하나를 납치하자는 의견 등 분분했지요. 하지만 일단은 진상을 아는 게 급선무라 태양께 그 여우가 누구고 뭣땜시 결을 하는지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선 그 동안 백팔번뇌한테 사사받은 사투리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 여우는 내 동창이고, 그 여우랑 결혼하는 이유는 원수를 사랑하는 우리집 전통이라 그렇데이. 누가 또 아나? 가정의 평화는 세계 평화라꼬, 노벨상 남는 거 있으니 하나 가져가라 할지. 그래되면 느거들 머리에 꽃달고 꼭 와야 된데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방과후 열린 제2차 방앗간회담에서 우리는 그 여우한테 선생님을 보내드리고 나중에 선생님이 상을 받게 되면 머리에 누룽지라도 달고 이곳을 뜨자고 합의를 봤습니다. 그 때문인지 지금도 매년 가을이면 떨리는 가슴을 안고 신문을 주시하게 됩니다.
Board 삶 속 글 2022.12.28 風文 R 604
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3부 국어공부, 무엇이 문제인가 논술시험,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을 써야 하나? (1/2) 글쓰기에서는 무엇을 써야 하나? 하는 문제가 어떻게 써야 하나? 하는 문제보다 앞서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 논술에서만은 무엇을 과 어떻게 의 차례를 바꾸었는데, 그 까닭은 학생들이 쓸거리를 마음대로 골라서 쓰는 자유가 아주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학생들이 어떤 문제로 글쓰기 공부를 해야 하는가 알아 보기 위해서 신문에 난 논술고사 예상(연습) 과제를 보기로 하자. 다음은 어느 신문에서 주마다 한 번씩 여러 대학의 교수님들이 내어 주고 있는 주제 들인데, 이 신문에서는 그 전주의 주제로 써 낸 글 가운데서 잘된 글을 최우수작 한 편, 우수작 세 편으로 뽑아 함께 싣고 있다. 몇 달 동안 나온 주제들을 보는 대로 적어 둔 것이 다음과 같다. 생명의 소중함을 논하라. 통일에 대비한 효율적인 국토활용 방안. 도덕성 타락의 원인데 대해 논하라. 건전한 사회는 건전한 가족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 는 말에서 건전한 가족 의 핵심적 내용을 논하라. 바람직한 가족규범. 미래사회의 창의성에 대해 논하라. 낙태, 허용되어야 하는가. 우리 인간에게 자연이란 무엇인가. 세계화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외래어 상품명에 대한 종결부분 작성하기. 현대인과 점. 국가 발전과 민족문화 창달을 위한 새 가치관 정립에 대해 논하라. 지식의 습득과 교양적 자질과의 관계 1.바둑과 장기 2.학교와 학원 3.논개와 춘향 - 하나 택일, 비교 대조의 방법을 사용 설명하라. 진로 선택의 결정요인은 무엇이어야 하나. 외국어 조기교육의 장단점을 논하라. 국민학교 이름, 이대로 좋은가. 멀티미디어 시대와 독서 논술시험은 학생들의 사교력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는가. 가정의 달 5월을 맞는 청소년의 다짐. 법의 양면성을 논하라. 내가 만약 시장이 된다면. -------------------------------------------------------------------- 이 밖에 주제를 좀 긴 글로 써 놓은 것은 뒤로 미루고, 우선 여기 적어 놓은 과제들을 가지고 생각해 본다. 이 논술 문제들을 보면 거의 모두가 체험에서 나온 절실한 자기 의결은 쓰게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책에서 읽은 지식과 이론을 쓰도록 되어 있다. 바로이것이 논술시험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이래서 이 논술시험 제도는 학생들에게 자기 삶에 대한 관심과 자기만이 갖는 감정과 생각과 의견을 갖지 못하게 하고, 무엇이든지 어른들이 주는 것만을 맏아들이도록 하는 허수아비를 만들고, 또 그러면서도 삶에서 동떨어진 빈 이론과 장난스런 말재주를 즐기는 괴상한 사람을 기르는 노릇을 잘 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 논술 주제들을 보면 아직 학생으로서는 관심을 둘 필요가 없거나 관심을 가지기에는 아주 이른, 다만 어른들이나 애써 생각해야 할 문제가 많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학생들을 너무 빨리 어른으로 만드는 교육이 된다고 할 밖에 없다. 논술 문제는 학생들이 누구든지 자기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쉽게 자기 의견을 쓰면서 한편 좋은 생각을 하게도 되는 문제가 바람지간데, 그런 문제는 아주 썩 드물다. 다만, 생명의 소중함을 논하라. 우리 인간에게 자연이란 무엇인가. 도덕성 타락의 원인에 대해 논하라. 이런 문제는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누구나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논하라 란 말을 꼭 써야 할까? 이런 말을 쓰니까 학생들이 쓰는 글이 그만 딱딱한 글말로 굳어지게 된다. 나 같으면 목숨이 왜 소중한가 말해 써 보시오. 우리 사회에서 도덕이 어째서 타락하였는지, 그 까닭을 써 보시오. 이렇게 쓰겠고, 인간 이란 말조차 사람 으로 써서, 이렇게 하겠다. 우리 사람에게 자연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차라리 자연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자기 생각을 써 보시오 라고 하는 것이 좋겠지만) 앞에서, 신문에 내어 놓은 논술 문제로 글을 쓰면 책에서 읽은 것이나 교실에서 배운 것만 쓰게 된다고 했는데, 실제로 학생들이 쓴 글을 보기로 하자. 국민학교 이름, 이대로 좋은가 란 제목이 있었다. 요즘 이 문제가 온 국민의 관심거리로 되어 있어서 논술 문제로서는 매우 알맞아 보인다. 그러나 국민학교란 이름이 왜 생겨났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일제시대를 살았던 사람도 그 당싱의 법령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고는 모른다. 그러니 아무리 온 국민의 관심거리가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남다른 생각으로 애써 여러 가지 자료를 조사해 본 사람이 아니고는 그저 사람들이 퍼뜨리는 소문 같은 것이나, 신문에 슬쩍 스쳐 지나는 정도의 기사로 짐작하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학생들 역시 특별한 뜻이 있어 이 문제를 올바르게 가르쳐 주는 선생님들 만날 수 있어야 되겠는데, 제대로 정확하게 말해 줄 수 있는 교육자가 우리 나라에 몇이나 될까? 그러니까 매우 적절해 보이는 논술 제목같지만 사실은 제대로 쓰기가 매우 어려운 제목이다. 이 논제로 써 낸 작품이 최우수작 한 편에 우수작 세편으로 모두 네 편이 신문에 발표되었는데, 그 내용을 읽어 보니 모두 어슷비슷하다. 그리고 국민학교란 이름을 그대로 써서는 안되는 가장 큰 까닭을 올바르게 쓴 사람은 아무도 없고, 또 모두가 잘못된 말을 써 놓았다. 국민학교란 이름은 왜정 마지막에 포악한 왜놈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군대교육을 시켜 전쟁터에 끌고 갈 준비를 하기 위해 붙인 이름인데, 그것이 그 때 나온 법령에 환히 나타나 있다. 이 사실을 학생들이 알아야 하는데, 아무도 쓴 사람이 없다. 그러면서 국민이란 말은 일본 국왕의 신민이란 뜻이다 고 모두가 잘못 써 놓았다. 국민이란 말이 일본국왕의 신민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미국 국민 영국국민 프랑스 국민 이라고 쓸 수는 없다. 국민이란 말이 백성보다 더 좋은 말은 아니지만 쓰지말아야 할 말은 아니다. 또 국민이란 말을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처음 쓴 말도 아니다. 그런데 국민학교 란 말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왜놈들이 흉악한 속셈으로 소학교란 이름을 그렇게 바꾼 것이니 그냥 두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국민학교 이름, 이대로 좋은가 란 제목으로 글을 쓰게 한다면 미리 국민학교란 이름이 언제 어떻게 해서 생겼는가를 정확하게 가르쳐 놓아야 할 것이고, 국민학교로 이름이 바뀐 뒤로 일본 식민지 교육의 실상이 어떻게 되어 있었던가를 자세하게 알려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 교육은 하지도 않고 글만 써 내라고 했으니 내용이 비어 있고, 또 잘못된 생각을 다만 어른들이 흔히 쓰는 어설픈 글말로 모두 어슷비슷하게 쓸 수밖에 없다. 미리 교육을 잘 해 놓았다고 하더라도 결국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지식을 쓰는 정도밖에 안 되지만, 그런 지도조차 없이 썼으니 무슨 글이 되겠는가? 다른 논제로 쓴 학생들의 글도 흔히 이런 꼴이 아닌가 싶다.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전숙희편" 전숙희(1919~2010) 여류 수필가. 함남 협곡 출생. 이화 여전 문과 졸업. 미국 컬럼비아 대학 수학. 문화 사절로서 정력적인 활동을 보여 준 전숙희는 동서 문화의 교류에 남다른 공적을 남겼으며 월간지 "동서 문화"를 창간해 내기도 하였다. 한국 펜클럽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탕자의 변" "이국의 정서" "밀실의 문을 열고" 등 수필집을 통하여 넓은 안목과 교양을 보였다. 설 설이 가까워 오면, 어머니는 가족들의 새 옷을 준비하고 정초 음식 차리기를 서두르셨다. 가으내 다듬이질을 해서 곱게 매만진 명주로 안을 받쳐 아버님의 옷을 지으시고, 색깔 고운 인조견을 떠다가는 우리들의 설빔을 지으셨다. 우리는 그 옆에서, 마름질하다 남은 헝겊 조각을 얻어 가지는 것이 또한 큰 기쁨이기도 했다. 하루 종일 살림에 지친 어머니는 그래도 밤 늦게까지 가는 바늘에 명주실을 꿰어 한땀 한땀 새 옷을 지으셨다. 우리는 눈을 비벼가며 들여다보다가 잠이 들었다. 착한 아기 잠 잘 자는 배갯머리에 어머님이 홀로 앉아 꿰매는 바지 꿰매어도 꿰매어도 밤은 안 깊어. 잠든 아기는 어머니가 꿰매 주신 바지를 입고 산줄기를 타며 고함도 지를 것이다. 우리는 설빔을 입고 널 뛰는 꿈도 꾸었다. 설빔이 끝나면 음식으로 접어든다. 역시 즐거운 광경들이다. 어머니는 미리 장만해 둔 엿기름가루로 엿을 고고 식혜를 만드셨다. 아궁이에서는 통장작불이 활활 타고, 쇠솥에선 커피 색 엿물이 설설 끓었다. 그러면, 이제 정말 설이 오는구나 하는 실감으로 내 마음은 온통 그 아궁이의 불처럼 행복하게 타올랐다. 오래 오래 달인 엿을 식혀서는 강정을 만들었다. 검은콩은 볶고 호콩은 까고 깨도 볶아 놓았다가 둥글둥글하게 콩강정도 만들고 깨강정도 만들었다. 소쿠리에 강정이 수북이 쌓이면서 굳으면, 어머니는 독 안에다 차곡차곡 담으셨다. 수정과를 담그는 일도 쉽진 않다. 우선 감을 깎아 가으내 말려서 곶감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 알맞게 건조한 곶감은 바알갛게 투명하기까지 하고, 혀끝에 녹는 듯한 감칠맛이 있다. 이것을 향기로운 새앙 물에 띄우고, 한약방에서 구해 온 계피를 빻아 뿌리는 것이다. 빈대떡도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우선 녹두를 맷돌로 타서 물에 불려 거피를 내고 다시 맷돌에 곱게 갈아, 돼지고기와 배추 김치도 알맞게 썰어 넣은 다음, 넉넉하게 기름을 두르고 부쳐 내는 것이다. 며칠씩 소쿠리에 담아 놓고 손님 상에 내놓기도 좋거니와 솥뚜껑에 푸짐이 부쳐 가며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것도 별미였다. 그러나, 정초 음식의 주제는 역시 흰떡이다. 흰쌀을 물에 담갔다가 잘 씻고 일어선 차례로 쪄내고, 앞 뜰에 떡판을 놓고는 장정 두어 사람이 철컥철컥 쳤다. 떡판에선 김이 무럭무럭 올랐고, 우리들은 군침이 돌았다. 장정들이 떡을 쳐 내면 어머니는 밤을 새워 떡가래를 뽑고, 알맞게 굳으면 이것을 써셨다. 그리고, 세배꾼이 오는 대로 맛있는 떡국을 끓이고, 부침개며 나물이며 강정이며 수정과며 한 상씩 차려 내셨다. 나는 지금도 설날이 되면, 어머니 옆에서 설빔이 되기를 기다리던 그 초조한 기쁨, 엿을 고고 강정을 만들고 수정과를 담그고 흰떡을 치던 모습, 빈대떡 부치던 냄새, 이런 흐뭇한 기억이 되살아나 향수에 잠긴다. 우리 어머니들은 설빔 하나 만드는 데도, 설상 하나 차리는 데도 이처럼 수많은 절차를 거치고, 알뜰한 정성과 사랑을 쏟고 가족을 돌보고 이웃을 대접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들은 어떤가? 기성복상에는 항상, 맞춘 것 이상으로 척척 들어맞는 옷들이 가득 차 있으니 언제든지 돈만 들고 나가면 당장에 몇 벌이라도 골라 입을 수 있다. 설이 돌아와도 여자가 그의 남편이나 아이들을 위해서 밤 새워 옷을 지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식료품상에는 다 만든 강정이 쌓여 있고, 다 갈아 놓은 녹두도 있다. 아니, 빈대떡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흰떡도 뽑을 필요가 없이, 쌀만 일어 가지고 가면 금방 떡가래를 찾아올 수도 있다.세상이 모두 기계화되었으니, 필요한 것은 돈과 시간 뿐이요, 솜씨나 노력의 정성이나 사랑이 아니다.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 '편리' 속에 짙은 향수가 겹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우리는 정작 귀한 것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 여성들의 그 정성과 사랑을 우리는 이어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의 옷 한 가지 짓는 데도, 남편의 밥 한 그릇 마련하는 데도, 조상의 제삿상 하나 차리는 데도, 이웃에 부침개 한 접시 보내는 데도, 우리 여성들은 말할 수 없는 정성과 사랑을 다 바쳤다. 옛날의 우리 의생활과 식생활은 여성들의 무한한 노고와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지만, 우리 여성들은 오로지 정성과 사랑으로, 노고를 노고로, 인내를 인내로 알지 않았다. 밤새도록 시어머니의 버선볼을 박던 며느리, 손 시란 한겨울에도 찬물을 길어다 흰 빨래를 하고 풀을 먹이고 다듬이질을 하고, 희미한 호롱불 밑에서 바느질을 하던 아내와 어머니, 한국 여인들의 그 아름다운 마음씨를 누가 감히 따를 수 있을까? 오늘의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잃어 가고 있다. 마음을 잃어 가고 있으므로 생활도 잃어 간다. 아침이면 뿔뿔이 헤어지고, 저녁에 모여선 빵과 통조림으로 끼니를 때우고, 텔레비전 앞에서 대화 없는 몇 시간을 지내다가 또 뿔뿔이 헤어져 잠자리에 드는 사람들도 많다. 편리하지만 참생활이 없다. 그래서, 현대인은 고독한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려서 우리 어머니들에게서 느끼던 그 '어머니'를 오늘의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느끼게 하지를 못한다. 사서 입히고 사서 먹이는 동안에 우리는 정성과 사랑이 식어 간 것이다. 뼈저린 고생이 없는 대신, 그 뒤에 오는 샘물 같은 기쁨도 없어졌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고독하게 자라는지도 모른다. '편리'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뜨겁게 사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새삼스럽게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여성들이 보여준 그 정성과 사랑의 며느리, 아내, 어머니의 마음만은 이어받자는 것이다. 아무리 기계화된 생활이라 할지라도 정성과 사랑은 쏟을 데가 있을 것이다. 이야말로 삭막해져 가는 우리의 생활을 인간다운 것으로 되돌리며, 현대인의 고독을 치유하는 길이리라. 아니, 이렇게 거창하게 말할 필요까지도 없다. 나의 남편과 아이들로 하여금, 고독을 모르는 기쁜 생활을, 행복하게 누리게 하는 길이라고 믿자. 명절이 돌아오면 나의 고독한 눈에, 어머니가, 어머니가 자꾸만 떠오른다.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화장지의 최후 나이 많은 사람이 너무 오래된 이야기를 가지고 생기와 재기 넘치는 국내 최고의 인기 프로를 기웃거려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7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한국 전쟁 때에는 저도 20대 초반의 젊은 장교였습니다. 그때는 전쟁이 한창이던 때였는데 한국군 장교들이 군사지식과 전투경험이 너무 모자랐기 때문에 경험이 많은 공산군을 상대로 한 작전 지휘에 문제가 많았지요. 그래서 미국 정부에서 한국군 전투병과의 초급장교을 뽑아서 미국 군사학교에 데려다가 6개월씩 훈련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일선근무 중대장이었던 저도 솔직히 말해 죽기 전에 미국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시험을 봐 가지고 1952년 9월 미국 가는 배를 탔습니다. 보병과 포병 250명이 함께 가는데 보는 것마다, 듣는 것마다, 먹고 마시는 것, 화장실 이용하는 것, 모든 것이 그 당시에는 그저 신기한기만 했습니다. 자동판매기에 5센트짜리 동전 하나를 넣으면 코카콜라가 병째로 떨어져 나오는 것, 커피 자판기에서 입맛대로 골라서 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신기했던지요. 떠나기 전에 우리는 대구 보충대에서 사전 훈련을 받았는데 그때 우리가 한가지 결의한 것이 있었습니다. "자, 우리도 이제 국제 신사가 되었으니 코를 닦거나 용변을 볼 때 신문지 쪼가리 같은 것을 쓰는 것은 이제 그만하고 미제 화장지를 사용하자." 우리는 듯을 모아 모두 양키 시장에 나가서 두루마리 화장지를 한 개씩 사서 손가방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배에 올러보니 화장실마다 화장지가 걸려 있었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지아주 콜럼버스까지 나흘 밤낮을 달린 기차안에도 다 있었기 때문에 가방에 있는 화장지를 꺼내 쓸 일이 없었습니다. 미국 보병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니 거기도 어김없이 화장지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화장지를 꺼내서 기숙사 책상위에 저마다 울려 놓고 기회있을 때마다 의젓하게 품위있게 뜯어 쓰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첫날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니 책상위에 있던 그 국제 신사들의 화장지가 싹 없어진 것입니다. 우리들은 제각기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결론은 우리 기숙사방 청소를 맡은 그 뚱보 흑인 여자가 훔쳐간 것이 틀림없다는 것으로 모아졌고, 혼내줘야 한다, 도로 찾아와야 한다, 제각기 한마디씩 와글와글 끓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장교인 학생 중대장이 우리를 급히 모이라 하여 집합을 했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닙다. "한국 장교 여러분! 화장실에 걸려 있는 화장지를 개인적으로 가져다 쓰지 말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흥분했습니다. "아니, 우리를 도대체 어떻게 보고 이러는 거야. 우린 신사란 말야, 국제 신사. 그건 우리가 대구에서 돈 주고 사 온 것이고 그걸 흑인 여자가 다 가져갔는데 우리더러 화장지를 훔쳤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당시만 해도 영어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통역 장교들이 미리 가서 상주해 있었는데 그때 통역 장교가 통역 아닌 자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진정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대구에서부터 화장지를 사 가지고 오신 것을 잘 압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나라에서는 화장지도 구분이 있어서 두루마리 화장지는 큰 일을 볼 때만 쓰기 때문에 꼭 화장실에만 걸려있고, 코를 닦는다든가 그밖에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는 휴지는 클리넥스라고 종이 상자에 들어 있는 것을 한 장씩 빼서 쓰는 것입니다. 화장실에만 있어야 할 두루마리 화장지가 책상마다 놓여 있으니까 이 사람들이 여러분께사 사 온 것인 줄은 모르고 오해를 해서 이렇게 된 것이니 여러분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는 거예요. 우리는 놀랐습니다. "원 별 사람들 다 보는군. 뭐 휴지까지 어디서 쓰는 것이 따로 있다니 별일이야. 별일!" 그렇게 투덜대기만 했지요. 그리고 PX에 가서 클리넥스 한 통씩을 사고 휴대용도 몇 개씩 사서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화장지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화장실과 관련된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거기 기숙사 화장실엔 큰 것 보는 데가 대여섯칸 쭉 붙어 있는데 거기 문은 바닥에서 40센티미터 가량 떠 있었습니다. 손님이 들어 있으면 누군지는 몰라도 좌변기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의 발과 정강이가 보이게 돼 있습니다. 아침엔 칸칸이 손님이 둘어 있어서 엄청 붐비게 되지요. 사람들은 문밑으로 정강이가 인 보이면 빈칸이니까 얼른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되는데, 어느 날 아침 미국 장교가 와서 정강이가 안 보이는 칸의 문을 잡아당겼습니다. 그런데 잘 안 열렸습니다. 힘을 줘서 당겨도 말입니다. "이 문이 왜 이렇게 빡빡하지?" 중얼거리면서 힘껏 잡아당겼습니다. 그런데 왈칵 문이 열리는 순간 그 미국 장교는 '으악'하고 놀라자빠졌습니다. 사람이 없는 줄만 알았던 그 안에는 한국 장교 한 사람이 좌변기에 올라앉아서 잔통적이고 고전적인 한국인의 용변자세 '쪼그려쏴'자세로 열심히 일을 보고 있었던 겄입니다. 좌변기가 없었던 그때 우리나라 살마으로선 거기 턱 걸터앉아서 일을 보려면 도무지 힘이 모아지지 않아서 기합과 힘을 집중해야만 그놈이 항복하고 나와 주었거든요. 정식 수업은 통역장교 덕분에 큰 지장없이 진행되었지만 일상 생활은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러 가면 맨 먼저 미국 취사병이 물어봅니다. "어떻게 요리한 계란을 드시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말에 자신이 없으니까 앞의 장교가 '프라이드(Fried)'하면 뒤따라서 '미 투(Me Too)', '미 투(Me Too)' 하는 겁니다. 삶은 계란도 있고 '스크램블'도 있는데 저마다 '프라이드 에그(Fried Egg)'만 달라니까 취사병들은 정신없이 바빠지고 혼이 나서 다음날 아침엔 미리 '프라이드'를 많이 준비해 놨는데, 이번에 앞 사람이 '보일드'하니까 저마다 또 '보일드'예요. '보일드 에그'는 3-4분은 삶아야 하는데 프라이드는 남고 보일드는 미처 삶아댈 수가 없고 해서 또 법석을 떨게 되지요. 휴일에 물건을 사러 나가면 더 희극이 벌어집니다. 어떤 장교가 마누라 브래지어를 사다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점원 아가씨한테 진열장에 있는 물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니까 싸이즈가 뭐냐고 묻더랍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선 싸이즈 개념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싸이즈까지는 생각도 못했던 이 친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 점원 아가씨를 한참 쳐다보다가 속으로 '이 처녀 몸집이 내 마누라하고 비슷할 거야.'생각하고는 이렇게 대답했다는 겁니다. "쟈스트 라이크 유(너하고 똑같다)!" 그러자 이 말에 점원 처녀는 얼굴이 홍당무가 돼 가지고 이 장교를 한참 노려보다가 휭 하고 가버렸어요. 국제 신사 장교님은 영문을 모르고 쩔쩔매다가 물건도 못 사고 돌아와서 친구들에게 물어봤더랍니다. "이 사람아, 그 물건 싸이즈가 '네가 내 아내와 똑같다'고 했으니 그럼 자네가 그 처녀의 것도 보았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에이 사람두." 그 사건 이후 이 장교는 공포증에 걸려서 쇼핑을 하러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귀국 날짜는 가까워 오고 아내에게 줄 물건은 꼭 사야겠고 그런데 그것만은 꼭 혼자 가서 샀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궁리 끝에 영어를 잘하는 친구에게 쇼핑 영어 각본을 하나 적어 달라고 했더랍니다. 그리고 그 각본을 가지고 날마다 열심히 외웠습니다. 1 가게문을 열고 들어간다. 2 점원이 반기면서 May I help you, Sir? 하면서 응대한다. 3 그러면 나는 우선 Just looking 이렇게 대답을 하고 4 이것 저것 물건을 살핀다 5 ... 6 ... 뭐 이런 식으로 적혀있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밤낮없이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외웠습니다. 월요일부터 닷새 동안을 밥먹을 때나 침대에서나 심지어 화장실에서까지 열심히 외웠더니 제법 유창하게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더랍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급히 콜럼버스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늘 눈여겨봐두었던 가게로 달려갔습니다. 가게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서면서 기세 좋게 말했습니다. "May I help you, Sir?" 그랬더니 점원 여자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빤히 쳐다보기만 하는 게 아닙니까. '아차! 이건 점원이 말하는 대사였는데....' 그는 얼굴이 벌게져서 문을 닫고 뛰쳐나왔습니다.등뒤로 여 점원들이 킬킬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길로 달려가서 버스를 탔습니다. 기숙사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나 같은 돌대가리가 어디 또 있을까? 그 간단한 영어를 일주일 동안이나 연습을 하고서도 첫마디부터 틀리다니, 나 같은 돌대가리는 죽어야 해. 살아있을 필요가 없어. 그래, 죽어버리자. 밥 한끼라도 축내지 않으려면 나 같은 돌대가리는 죽어버리는 게 나아. 그런데 어떻게 죽을까? 그것도 어려울 것 같고 여기 미국선 먹고 죽을 독약도 구할 수가 없고, 어찌한다...' 죽는 방법을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생각났습니다. '가만있자, 진화론이 맞는다면 내가 돌대가리니까 내 아들은 나무대가리, 손자는 두부대가리...이렇게 진화되면 5, 6대 후에는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데 내가 지금 죽으면 그 천재가 나올 수 없지 않은가. 아! 죽어서는 안되겠구나. 암 절대 죽어서는 안되지.' 진화론은 참으로 좋은 이론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귀국 후 숱한 전투를 겪고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지금껏 살아서 이렇게 두 분께 편지를 쓰고 있으니까요. 여러분, 젊었을 때 부디 공부 열심히 해 주세요.
Board 삶 속 글 2022.12.26 風文 R 657
○○노조 굳은살은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말이 굳으면 대상을 별생각 없이 일정한 이미지로 자동 해석하게 한다. 한국 사회의 반노동 반노조 정서는 말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다. ‘노조’라는 단어를 읊조려 보라.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들이 떠오르나? ‘머리띠, 구호, 삭발, 파업’이 아닌, ‘친구, 맞잡은 손, 비를 피할 큰 우산’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노조’의 빈자리를 채우는 말을 떠올려 보라. 예전엔 ‘어용노조, 민주노조’ 정도였다면, 지금은 ‘강성노조, 귀족노조’라는 말이 떠오른다. 최근엔 ‘부패노조’라는 표현도 등장. 진실을 감추고 선입견을 심어주는 데 성공한 말들이다. ‘귀족노조’라는 말은 의미가 이중적인 만큼 효과가 좋다. 이 말은 월급과 복지가 좋은 일부 대기업 노조를 지칭할 수도 있지만, 노조 전체를 특권층으로 싸잡아 매도할 수도 있다(영어의 ‘노동 귀족’(labor aristocracy)이란 말은 특권화되고 보수화된 노조 간부를 뜻한다).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려도 노조가 있으면 무조건 ‘귀족노조’다. 노조를 꿈도 못 꾸는 노동자들에겐 노조 자체가 부러움과 상실감의 대상이다. 말은 투쟁만큼 중요하다. 정부와 언론의 악의적 선동이 넘치지만, 우리도 새로운 말을 발명해야 한다. 마치 칫솔처럼, 손난로처럼, 이불처럼 가깝고 친근한 느낌을 주는 수식어를 찾아내어 꾸준히 써야 한다. 그러니, 송년 모임에 가는 차 안에서라도 ‘노조’의 꾸밈말로 어떤 게 좋을지 생각해 봄이 어떨까. 나는 아직까진 문장 하나만 생각날 뿐. ‘노조는 부패한 게 아니라 부족한 것이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