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3부 국어공부, 무엇이 문제인가 대학 입학 국어 시험 문제를 보니 논술 시험, 무엇이 문제인가 대학입학 국어 시험 문제를 보니 일간신문들에는 주마다 한 차례씩 대학입학 시험문제가 나오는데, 그중에 우리말글에 관한 문제를 보면 우리 나라 국어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잘못된 말을 쓰겠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다음은 어느 날 어느 신문에 난 문제에서 보기로 들어 놓은 글의 한 대문이다. 또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생각하여보라. 어린애의 조그만 주먹, 늙은 노인의 미고, 외로운 양의 눈동자, 참새의 고 가느다란 다리, 또 아지랑이 낀 먼 산, 흐르는 시내, 잔디 위에 누워서 쳐다보는 아름아름한 봄 하늘, 친한 동무와의 산보와 이야기... 이러한 것은 모두 조그마한 기쁨이나마 우리의 한 때의 기분을 전환하고 우리의 그날 그날을 애상과 우수에서 건져내는 큰 힘이 되지 아니할까? 이 글에서 왜 웃음 이란 우리말을 안 쓰고 일본글 따라가는 미소 를 썼는가? 산보 도 일본말이란 것은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알고 있다. 동무와의 도 일본말법이다. 친한 동무와의 산보와 이야기는 친한 동무와 산책하면서 이야기하기 라든지 친한 동무와 거닐면서 하는 이야기 이렇게 써야 될 것이다. 우리의 한때의 기분을 전환하고 도 우리 한때의 기분을 바꾸고 하면 될 것이고, 애상과 우수에서 도 슬픔과 근심에서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미소 애상 우수 따위는 문학작품을 쓰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시고 수필이고 소설이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우리말을 찾아 쓸 줄 모르고 허망한 남의 나라 글자말에 빠져서 깨어날 줄 모른다면 어떻게 우리 겨레의 마음을 울리는 글을 쓸 수 있겠는가. 다만 우리말을 짓밟고 학대하는 죄악을 저지를 뿐이고, 이런 글을 가르치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앞에 들어 놓을 글이 들어 있는 보기글을 가지고 내어 놓은 문제가 다음과 같다. 다음 예문에 쓰인 제재 중 주제를 나타내기에 적절치 않은 것은? 이 묻는 말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말은 제재 란 말이다. 이 말은 주제가 되는 재료 내용이 되는 재료 란 말인데, 우리말을 우리 글자로 쓰는 글에서는 이런 말을 안 쓰는 것이 좋다. 그리고 여기서는 말 이나 대문 이라면 그만이지 제재 란 말을 쓸 필요가 없다. 그래서 이 묻는 말을 나 같으면 다음과 같이 쓰겠다. 다음 글에 나오는 말에서 주제를 나타내기에 알맞지 않은 것은? 똑같은 문제인데 얼마나 쉬워졌는가. 그 다음에 또 한가지 나오는데, 그 문제가 이렇다. 이 물음에는 미괄식 이란 말이 문제다. 이 말을 모르면 이 문제는 풀 수 없다. 미괄식, 두괄식, 중괄식, 양괄식, 이런 어설픈 말을 꼭 알아야 할까? 웬만한 우리말 사전에도 이런 말은 안 나온다. 결국 이 문제가 미괄식 이란 말의 뜻을 묻는 문제가 되어 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써야 할 것이다. 다음의 재료들을 가지고, 주제를 나타내는 말이 끝 부분에 들어가도록 짜려고 한다. 가 -마의 차례를 가장 잘 맞춰 놓은 것은? 역시 같은 신문에 난 보기글을 한 가지만 더 들기로 한다. 시험문제로 난 보기글로는 가장 쉽게 읽힐 것 같은 글인데, 전문을 그대로 옮겨 본다. ------------------------------------------------------------- 한번은 어린애의 샤쓰를 사러 상점에 들른 일이 있다. 1.점원이 내놓은 물건이 집에 있는 어린애에게 좀 작을 것 같았다. 그것은 좀 작을 것 같으니 그 보다 큰 것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상점에는 큰 것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모양으로 점원은 그 작은 샤쓰를 그대로 권하면서 하는 말이 참 어처구니 없었다. 야, 요거면 꼭 맞을 텐데 공연히 그러시는군요. 도대체 나로선 처음 들어간 상점 점원이 볼 일도 없는 남의 어린애는 몸집을 어떻게 알고 말인지 대답도 하기 싫었다. 2.우리 주변에는 이런일이 너무 흔하다. 무책임! 3.그 말이나 행동이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다. 아니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수작을 눈도 깜짝 안 하고 거침없이 하는 것이다. 4.인간이 싫어진다. 5.그에 비하면 옛사람들은 얼마나 성실했는지 모른다. 여기 지금 그런 상인과는 하늘과 땅 사이로 다른 한 목수 이야기가 있다. 나의 고향집은 지은 지가 근 7-80년이나 되는 고가였다. 어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 집은 그 당시에 상당히 이름을 떨쳤던 도편수가 지은 집이라고 한다. 바로 그 도편수 이야기가 있다. 그 집을 짓고 8년째 되는 가을에 어쩌다 우리 집 부근을 다시 지나게 된 그 도편수는 사랑방으로 찾아들어 왔더란다. 그런데 그는 주인과 인사를 나누자마자 곧 두루마기를 벗어 던지더니 추에다 실을 매어 들고 집 모퉁이를 돌아가더라는 것이다. 무엇을 하는가 따라가 보았더니, 어떤가! 그 도편수는 한 눈을 지긋이 감고 추로 하여 드리워진 실을 한 손에 높이 쳐들고 서서 집기둥을 바라보고 있더라는 것이다. 자기가 지은 집 기둥이 혹 그동안 8년에 기울어지지나 않았는가 염려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기둥을 검사하고 난 도편수는 실을 거두며, a 그럼 그렇지! 끄덕 있을 리가 있나. 하면서 그 늙은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기둥을 슬슬 쓸어 보더라는 것이다. -------------------------------------------------------------- 누가 쓴 작품인지 모르지만 이것은 수필이다. 앞 뒤 두 가지 이야기를 대비해 놓았는데, 이야기로 되어 있으니 재미있게 읽힌다. 시험문제도 이런 글을 낸다면 학생들이 괜히 머리를 썩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글도 아주 온전할 수가 없어, 몇 군데 우리말법이 아닌 데가 있다. - 그에 비하면.. 이것은 일본글 따라 쓰는 버릇으로 굳어진 말이니 고쳐야 한다. 그에 대면 이라고 써야 우리말이 된다. 그에 견주면 해도 되겠지. - 나의 고향집은 지은 지가 근 7-80년이나 되는 고가였다. 어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 집은 그 당시 상당히 이름을 떨쳤던 도편수가 지은 집이라고 한다. 이 글에 나오는 나의 고향집 도 외국말법 따라 쓰는 말이다. 우리말로는 우리 고향집 이다. 우리 집 우리 고향 이렇다. 아버지 어머니도 우리말로는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 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이렇게 우리말을 버리고 일본말법과 서양말법을 퍼뜨려 왔으니 한심하다. 그 다음은 고가 란 말인데, 한문글자를 묶음표로 적어 넣어야 알 수 있는 말이라면 우리말이 아니다. 옛집 이라면 얼마나 좋은가? 또 하나, 어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에서 ..에 의하면 이란 말이 일본말법이다. 우리말로는 어른들 이야기로는 이라고 쓰면 된다. 이 밖에 문맥이 좀 이상한 데가 있는데, 이것은 신문에 옮겨 놓는 과정에서 잘못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 아무튼 이 글은 쉽게 읽힌다. 그런데 이 글에서 두 가지 문제가 나왔는데, 그 첫째 문제가 다음과 같다.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이영도편" 이영도(1916~1976) 여류 시인. 경북 청도 출생. 경남에서 오랫동안 여학교 교사 생활을 했음. 시조를 주로 썼으며 수필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음. 이영도의 시조들에는 민족 정서를 바탕으로 잊혀져 가는 고유의 가락을 재구현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간절한 표현으로 자신의 정감을 다스리며 인생을 관조하는 세계를 보여 주었다. 매화 화목을 손꼽을 때 나는 먼저 매화를 생각한다. 겹겹이 둘러싼 겨울의 껍질을 비집고 맨 먼저 봄을 밝혀든 매화 봉오리의 연연하면서도 안으로 매운 동양의 여성 같은 정조! 바야흐로 동터 오르는 여명을 받으며 눈바람을 이겨 선 매화를 바라보면 내 가슴은 고향의 산하를 마주한 듯 반갑고 낯익은 모습에 눈물겨워 오는 것이다. 모든 사물이 날로 그 모습을 변모해 가는 이 세월! 접목접지로 하여 화목마저 그의 본질을 잃을 만큼 색향이 요란해져 가고 있는 이 판국에 있는 듯 없는 듯 은은한 향기를 새벽 하늘에 풍기며 아직도 얼어 붙은 황량한 뜨락을 불 밝힌 매화! 무리를 멀리한 그 고독은 어쩌면 빈 들판의 눈얼음을 뚫고 움돋는 민들레 같은 눈짓으로 내 가슴에 밀착해 온다. 먼저 사랑을, 먼저 다사함을 소곤대듯 가냘픈 애원으로 얼굴 내어미는 조심성은 세월이 요란할수록 보다 높고 빛나는 예지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살던 동래 애일당엔 동쪽 창 앞에 매화 한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이른봄 꽃망울이 벌기 시작하면 나는 새벽마다 그 꽃을 마주하여 생각을 나누는 즐거움을 오붓이 지녀 왔었다. 새벽 하늘의 별빛 같은 총명을 반짝이면서 매화는 내게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기 때문이다. 그 매화나무가 나의 집 뜰로 옮겨 오던 날, 나는 기관지염을 앓아 신열이 39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의사가 왕진을 나오고 수행 간호원이 방금 주사를 놓고 있는데, 문간이 부산하면서 이웃 농부가 부탁해 두었던 매화를 지고 와서 어디다 심을 것인가를 묻는 것이었다. 나는 스웨터에 머플러를 두르고 입엔 마스크까지 끼고는 비실비실 몸을 가누며 마루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닫힌 유리창 안에서 기침과 오한을 참으면서 아무리 손짓으로 형용을 해도 그 미련스럽도록 마음씨 착한 농부는 알아차려 주지를 못해 나는 결국 직접 뜰로 내려가게 되었고, 적당한 자리에 매화를 심기 위하여 동쪽 창 앞에 섰던 라일락을 다른 장소로 옮기게 되고, 그 라일락에게 자리를 빼앗긴 나무는 또 다른 자리로 옮겨지고... 이렇게 지시를 하면서 뜰에 서성대는 내 행위를 보고 절대 안정을 당부하던 의사는 아연한 표정으로 돌아가 버리고, 함부로 가지를 뻗어 운치를 잃은 매화 나무의 전지를 하느라 손수 가위를 들고 손등에 힘줄을 세우는 형편에까지 이르르고 말았던 것이다. 힘을 써서 흙을 파고 나무를 묻는 일은 농부들이 할 수 있겠지만 가지를 자르고 나무의 모양을 내는 전지 작업에 있어선 아무래도 미학을 모르는 그들의 손에다 화목을 맡겨 둘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꽃나무 앞에 서기만 하면 병도 고생도 잊어버리고 흡사 신이 들린 듯 열성을 기울이는 내 성정 때문에 실로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러 그 길로 다시 병석에 누운 나는 꼬박 두 달을 일어날 수 없는 고열과 기침으로 신고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 날, 신이 들린 듯 매화나무를 옮기며 전지를 하던 환자의 모습을 어처구니없는 듯 물끄러미 지켜 보고 있던 문병객인 M씨가 내 작업을 만류하는 말씀이, - 정운은 아무래도 정신보다 육신을 더 소중해하는 편인가 보다고... 육신을 담을 거처를 장식하기 위하여 정신의 집인 육신을 그렇듯 혹사할 수가 있느냐고...입으로는 항상 육신보다 정신을 우위에 내세우는 당신이 어찌해서 육신의 거처를 꾸미기에 앓는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이냐고... 만약 당신의 육신이 죽어 없어지는 날엔 그토록 소중하던 정신을 어느 자리 어느 세상에다 모셔 앉힐 작정이냐고-. 조금은 비꼬임이 섞이긴 해도 진실로 간곡한 애정의 타이름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뒤부터는 늘 '정신의 집인 육신'을 내세워 M씨는 나에게 건강 관리를 충고해 마지않았으며 나 역시 너무도 절실한 그의 설득에 한편 수긍할 수 있었지만 내가 뜰을 가꾸고 화초를 만짐은 결코 육신의 거처만을 위한 사치로운 겉치레 행위가 아닌 내 육신 속에 고갈해 가려는 정신의 목을 축이기 위한 엄숙한 작업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나의 거처가 비록 정원수 한 그루 제대로 갖추지 못한 벌판 같을지라도 지난날 그토록 마음 쏟아 가꾸고 사랑해 온 그 꽃들의 피고 지는 모습과 눈부신 빛과 향훈들, 그것들은 언제나 계절을 따라 나의 심안을 열고 정신의 허기를 채워 주고 있다. 젊은 시절에 무수히 밟고 오르내리던 그 산천의 아름다운 경치들은 내 조국이 슬프고 짜증스러울 때 회상하여 자위받을 수 있는 정신의 보고가 되어 오고 있듯이... 다시 봄기운이 돌고 그 애일당의 뜰을 밝히던 매화 향기가 추억을 적시는 이 새벽, 잔잔한 메아리로 다가드는 M씨의 타이름이 하나의 철학으로 가슴을 메워 오고 있다. 육신이 떠나고 난 뒤의 정신의 소재! 그 목숨의 그지없는 허무를 씹으며 심령이 메말라 벌린 육신의 허울이 얼마나 초라할 것인가를 느끼며 아직도 사색의 줄이 끊어지지 않은 내 호흡의 물줄기에 스스로 가슴을 적시고 있다. 세상살이에 지치고 시달리어 표정은 비록 굳었을지라도 안으로 깊숙이 무수한 초원을 간직한 나목으로 자세하고 싶은 나! 이제 내게는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신의 의지에 영혼을 축이는 심령의 작업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한 송이 매화의 슬기로운 개안도 오로지 큰 뜻을 섭리 없이는 이루어짐이 없음과 같은 이 새벽, 내 마음의 꽃밭에 뿌리는 씨의 작은 알맹이가 내 생명의 핵으로 개화해 주기를 소망하면서 동 트는 여명 앞에 나를 세우고 섰다. 가슴을 환히 밝히고 비쳐 드는 먼 애일당의 매화 향기에 회억을 적시며 섰다.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나 지금 떨고 있니? 저는 목욕탕의 파수꾼, 목욕탕의 밀맨, 일명 '때밀이'라고 하지요. 지금부터 저는 목욕탕에 때 밀러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적어볼까 합니다. 이종환, 최유라씨. 때 밀러 온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언지 아세요? 그것은 때가 무자비하게 많이 나온다는 겁니다. 자주 오는 사람들은 때도 안 밀고, 꼭 한두 달에 한 번씩 오는 사람들이 미는데 정말 힘들데요. 때밀이도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밀기 싫은 사람이 있다는거 믿어지십니까. 덩치가 황소만한 사람이 와서 때를 밀어달라고 합니다. "아저씨 때 좀 밀어주세요" 이런 손님들은 탁 드러누우면 정말 밀기 싫습니다. 하지만 손님인데 어쩝니까. 열심히 밀어야죠, 저는 밀면서 손님께 묻습니다. "아저씨 시원하십니까?" "시원하긴 뭐가 시원해, 석달 열흘 굶었어.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참 환장하겠네. 내가 힘이 없는 건가. 지가 가죽이 두꺼운거지. 살만 돼지마냥 뒤룩뒤룩 쪄갖고 죽을둥 살둥 힘을 다해 밀었더니 맥빠져 못 밀겠네. 이종환, 최유라씨. 수줍은 많이 타는 삶은 또 어떤지 아세요? 탁자에 눕자마자 바가지로 시청앞 분수대를 가리는데 참 가관이더라구요. 그래서 한마디 했죠. "바가지 속에 뭐 있어요? 왜 이렇게 감춰요? 아저씨나 나나 똑같이 벗고 있는 사람끼리..., 아저씨, 바가지 치우세요. 그래야 때밀기가 쉽죠." 그러자 그 아저씨가 한다는 말이 뭔지 아세요. "바가지 안 치우고 그냥 밀면 안 될까요." "치우기 싫으면 아저씨 마음대로 하세요. 내 때밀이 오년 만에 바가지로 가리고 왔다갔다 하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바가지로 시청앞 분수대를 가리고 때밀어 달라는 사람은 생전 처음이네. 아무튼 오래하고 볼일이야." 또 어떤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탈의실에서의 일입니다. "야 때밀이. 이리 와봐." 반말로 부르더라고요. 엄청 기분 나쁘데요. 그래도 어떻합니까. 손님인데...부르는 사람 앞으로 갔지요. 갔더니 웬 소도둑놈 처럼 생긴 사람이 딱 서 있더라구요. "손님. 절 부르셨습니까?" "야! 때밀이, 부르면 빨리 오지 왜 이제와!" "손님, 왜 자꾸 반말을 하십니까. 저도 인격이 있는데..." "어쭈, 때밀이 주제에 손님한테 대들어!" 이 말을 듣는 순간 더 이상은 못 참겠더라구요, 그래서 들고 있던 바가지로 냅다 뒤통수를 쳤지요, 치고 나니깐 속은 시원하데요. 근데 점점 걱정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얼굴을 올려다보니까, 손님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지더니 소리치는 겁니다. "너! 잠깐만 기다려. 나 웃통 좀 벗고 보자." "벗으려면 벗어봐라. 나는 이미 벗고 있다." 아! 근데 웃통을 탁 벗는 순간, 가슴에 용문신이 그것도 쌍룡이 보이는데, 장난이 아니데요. '아, 바가지로 한대 때리고 나는 죽는구나'하고 생각하니까 온몸이 떨리는데, 이대로 있다간 않되겠다 싶어 빌기 시작했죠. "손님, 제가 사과하는 의미로 때를 밀어드릴 테니깐 화 푸시죠?" "됐어. 너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사우나나 하고 갈 거니까 저리 비켜!" 문신한 사람이 탕에 들어가니까 목욕하는 사람들이 살살 피하는데, 온탕에 들어가면 온탕에 있는 사람들이 나오고, 냉탕에 들어가면 냉탕에 있는 사람들이 나오고, 사우나실에 들어가면 사우나실에 있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이건 완전히 공포의 대상이더라구요. 사람들이 목욕하다 말고, 하나, 둘..., 밖으로 나가는데 금방 다 나가고 우리 둘만 남게 되었죠. 근데 왜 그렇게 무섭고 떨리는지, 내평생 떨 걸 한 번에 다 떤 것 같으네요. 고개도 못 들고 바닥만 쳐다보고 있는데 문이 열리더니 건장한 체구의 청년이 들어오더군요. "아저씨 때 좀 밀어주세요." 제게 때를 밀어달라는 그 청년의 그 말이 왜 그렇게 고맙던지. '이제는 나 혼자가 아니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놓이데요. 그래서 어깨를 쫙 펴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말했죠. "손님 엎드리시지요." 그런데 이게 왠일! 그 청년의 등에는 뱀이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가 보이는데 쌍룡 피하려다가 쌍뱀 만나니까 오줌이 다 찔금 나오는데, 쌍뱀이 묻더군요. "아저씨, 쌍룡 못 봤어요?"
Board 삶 속 글 2022.12.15 風文 R 755
마부작침(磨斧作針) 磨:갈 마. 斧:도끼 부. 作:지을(만들) 작. 針:바늘 침. [동의어] 철저성침[鐵杵成針(鍼)]. 마저작침[磨杵作針(鍼)]. [유사어] 우공이산(愚公移山). 수적천석(水滴穿石). [유사어]《唐書》〈文藝(苑)傳〉.《方與勝覽(방여승람)》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뜻. 곧 ①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참고 계속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성공함의 비유. ② 노력을 거듭해서 목적을 달성함의 비유. ③ 끈기 있게 학문이나 일에 힘씀의 비유. 시선(詩仙)으로 불리던 당나라의 시인 이백[李白:자는 태백(太白), 701~762]의 어렸을 때의 이야기이다. 이백은 아버지의 임지인 촉(蜀) 땅의 성도(成都)에서 자랐다. 그때 훌륭한 스승을 찾아 상의산(象宜山)에 들어가 수학(修學)했는데 어느 날 공부에 싫증이 나자 그는 스승에게 말도 없이 산을 내려오고 말았다. 집을 항해 걷고 있던 이백이 계곡을 흐르는 냇가에 이르자 한 노파가 바위에 열심히 도끼(일설에는 쇠공이[鐵杵])를 갈고 있었다. “할머니, 지금 뭘 하고 계세요?” “바늘을 만들려고 도끼를 갈고 있다[磨斧作針].” “그렇게 큰 도끼가 간다고 바늘이 될까요?” “그럼, 되고 말고.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이백은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이란 말이 마음에 걸렸다. 여기서 생각을 바꾼 그는 노파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그 후 이백은 마음이 해이해지면 바늘을 만들려고 열심히 도끼를 갈고 있던 그 노파의 모습을 떠올리곤 분발했다고 한다.
Board 고사성어 2022.12.15 風文 R 788
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3부 국어공부, 무엇이 문제인가 국어 공부, 어떻게 해 왔나(2/2) 다음은 중학국어 책이다. - 이렇게 사람이면 누구나 언어는 사용한다. 비록 사용하는 언어가 서로 다를지라도, 누구나 언어로써 의사 소통을 한다. 우리는 언어로 새 소식을 듣고 알리며 기쁨과 슬픔을 나누어 가진다. 우리는 언어로 다투기도 하고 화도 낸다. 우리는 언어에 의해서 조상의 많은 업적을 이어받을 수도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더 깊고 많은 지식을 아갈 수도 있다. 그야말로 사람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 힘의 원천은 언어이다. (중학 국어 1-2) 이 글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아주 단순하여 누구든지 쉽게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우리가 보통으로 지껄이는 쉬운 말로 얼마든지 말할 수 있고 쓸 수 있는데, 이 글은 공연히 한자말을 써서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여기 나오는 말 가운데서 일곱 번이나 나오는 언어 란 말은 모두 말 이라 고쳐쓰는 것이 좋다. 언어를 사용한다 고 한 것도 말을 한다 고 하면 그만이다. 이 글을 쉬운 말로 고쳐 다시 써 보자. - 이렇게 사람이면 누구나 말을 한다. 비록 하는 말이 서로 다르더라도, 누구나 말로 생각을 주고받는다. 우리는 말로 새 소식을 듣고 알리며 기쁨과 슬픔을 나누어 가진다. 우리는 말로 다투기도 하고 화도 낸다. 우리는 말과 그 말을 적은 글 때문에 조상의 많은 업적을 이어받을 수도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더 깊고 많은 지식을 쌓아갈 수도 있다. 그야말로 사람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 힘의 원천은 말이다. 한자말은 아니지만 다를지라도 -로써 따위 말은 글에서만 써온 말이니 살아 있는 입말로 고쳐 쓰는 것이 좋다. 이런 우리말로 된 글말도 요란한 한자말로 된 문장에 잘 섞여 쓰인다는 사실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 우리는 날마다 언어를 사용하여 생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언어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매우 적다. (같은 책) 이 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날마다 말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말에 대한 관심은 매우 적다 이렇게 쓸 것이다. 여기 한문글자를 묶음표 안에 적어 놓았는데, 한문글자가 있어야 이런 말을 알 수 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도 한문글자 없이 이런말을 읽도록 해 놓았고, 더구나 사용한다 는 말은 초등학교 1학년 책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한문글자를 배운다면 아주 한문책으로 시간도 따로 정해서 배우는 것이 옳다. 이렇게 우리말을 우리 글로 적는데까지 쓸데없이 한문글자를 끼워 놓으니, 이래서 우리말은 안 쓰고 한자말만 쓰게 된다. 말과 글이 어지러워지고 병드는 근원이 여기에 있다. -올바른 발음 생활. (같은 책, 글제목) 일하는 생활 이라든가 공부하는 생활 이라면 말이 된다. 밥 먹고 놀기만 하는 생활 해도 말이 된다. 그런데 말하는 생활 하면 좀 이상하다. 이런 말은 실제로 쓰이지 않는다. 머리로 말을 만들어 내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의 글에서나 나올 것 같은 말이다. 이런 말을 쓰니까 말이 어려워지고 글이 어려워진다. 말글살이 란 말도 언어 생활 을 바꿔 놓은 말이고, 이런 말을 쓰지 말자고 하는 까닭이 이렇다. 올바른 발음 생활을 해야 한다 고 할것이 아니다 올바른 발음을 해야 한다. 든지 말을 할 때는 언제나 올바르게 발음해야 한다 고 말해야 할 것이다. 말살이가 잘못되었다 는 말이면 글을 잘못 쓰고 있다 든지, 글을 잘못 읽고있다 든지 해야 할 말이다. - 우리가 미래를 밝게 긍정적으로 보고, 보다 밝은 미래를 얻고자 노력한다면, 우리의 앞날은 한결 더 희망적인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노력해서 더 좋은 미래를 성취하자. (같은 책) 우리말로 앞날 이라고 하면 될 것을 교과서에서 이렇게 미래 를 쓰도록 가르치니까 신문이고 잡지고 광고문이고 모조리 미래 라고 쓴다. 이 글을 쉬운 우리말로 고쳐 써 보자. - 우리가 앞날을 밝게 긍정해서 보고, 더욱 밝은 앞날을 얻고자 노력한다면, 우리 앞날은 한결 더 희망이 있을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노력해서 더 좋은 앞날을 이뤄내자. - 신라어는 본래 오늘의 경주 지방에서 사용되던 언어였는데, 이 지방이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우세하게 됨에 따라, 그 언어도 점차로 그 세력을 뻗쳐 나간 것으로 추측된다. 신라의 삼국 통일로 이 언어는 마침내 우리 민족 전체의 언어가 된 것이다. - 우리 나라의 언어 통일은 이탈리아의 그것과 비슷하다. 이탈리아에 있어서도, 그 남쪽에 치우쳐 있는 오늘의 로마 지방이 정치적으로 세력이 커지고 문화적으로 우월해짐에 따라. 그 언어가 이웃 언어들에 영향을 끼쳐 그것들을 소멸시키고, 마침내 이탈리아 반도 전체의 언어, 즉 라틴어가 되었던 것이다.(중학 국어 3-2 ) 이 글도 여러 가지로 잘못된 말이 많은데, 깨끗한 우리말로 다듬어서 다시 써 본다. - 신라말은 본래 오늘의 경주 지방에서 쓰던 말이었는데, 이 지방이 정치로나 문화로 우세하게 됨에 따라, 그 말도 차츰 그 세력을 뻗쳐 나간 것으로 짐작된다. 신라의 삼국 통일로 이 말은 마침내 우리 겨레 전체의 말이 된 것이다. - 우리 나라의 말 통일은 이탈리아의 그것과 비슷하다. 이탈리아에서도, 그 남쪽에 치우쳐 있는 오늘의 로마 지방이 정치로 세력이 커지고 문화로 우월해짐에 따라, 그 말이 이웃 말들에 영향을 끼쳐 그것들을 없애고, 마침내 이탈리아 반도 전체의 말, 곧 라틴어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국어 교과서에 나온 글 몇 군데를 살펴 보았는데, 이 정도만 해도 학생들이 국어 공부를 어떻게 해 왔는가를 충분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쉬운 우리말은 버리고 어려운 남의 나라 글자말을 배운다고 머리를 썩혀온 것이 국어 공부였던 것이다. 국어 공부가 제 나라 말을 버리는 공부가 되어 있다니, 이것은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 엄연한 사실은 지금도 그대로 진행되고 있고, 우리 모두 정말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앞으로도 결코 멈추지 않고 이어갈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우리말을 장송하는 행진이라 볼 수밖에 없다. 요즘 일간신문마다 나오는 대학입시준비 국어 논술 문제를 보면 대개는 별 것 아닌 내용인데 말만 어렵게 되어 있다. 그런 문제에 시달려야 하는 학생들이 참으로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어쩔 수 없으니 바보 같은 어른들이 어렵게 써 놓은 글은 무슨 글이든지 모조리 쉬운 우리말로 바꿔서 읽는 슬기를 지니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부디 학생들만은 글을 어렵게 쓰는 바보가 되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