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잉카제국의 간장통 지금부터 24년 전! 1973년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그당시만 해도 학교에서는 반드시 펜과 잉크만을 쓰도록 하여 우리들은 모두 가방 속에 잉크를 넣고 다녔지요. 볼펜은 글씨체가 안 좋아진다고 못쓰게 했죠. 잉크를 깜박 잊고 안 가지고 가면 잉크 몇 번 찍어 쓰려고 옆에 않은 친구에게 아양도 떨어야 했고, 가끔씩은 잉크를 쏟아 낭패를 당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말 그 당시 나름대로 낭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글씨를 제대로 배우라고 그랬던 것 같은데 워낙 개구장이들이라 재미있는 사건사고들이 많았지요. 잉크병 뚜껑을 제대로 잘 닫지 않아 책가방이며 도시락이며 온통 잉크 범벅이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책상이며 교과서, 공책들도 그 놈의 잉크로부터 무사하지를 못했지요. 그래서 잉크에 얽힌 얘기를 하나 할까 합니다. 여름 어느 날 오후, 쉬는 시간에 옆에 앉은 김좌진이라는 같은 반 친구와 무슨 일인가로 장난 끝에 말다툼을 벌였지요.당시 그 친구는 이름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는데 아마 그때도 제가 그 친구를 '긴자지'라고 별명을 불러서 다툼이 시작됐을 거예요. 조금은 그 친구에게 겁을 주려고 웃으면서 저는 잉크병을 집어들었지요. "너 자꾸 까불면 이 잉크를 얼굴에 뿌려 버린다." 잉크병의 뚜껑은 당연히 닫혀 있었으므로 그냥 위협이나 주려는 의도로 겁을 주었지요. 그 친구는 설마 제가 잉크를 진짜로 뿌리겠냐 싶어서 못생긴 얼굴을 제 코 앞에다 내밀며 약을 올리지 않겠어요. "그래 너 깡다구 있으면 어디 한 번 뿌려봐라. 뿌려뿌려." 저는 잠시 머뭇거리며 속으로 생각했습니다.'기왕에 뽑은 칼, 아니 잉크명! 한 번 던지는 시늉이라도 해보자.' 저는 비겁자가 되기는 싫고 해서 힘껏 잉크병을 그 친구 얼굴에 대고 휘둘러 버렸지요. 아뿔싸! 그런데 이게 어찌된~일. 닫혀있는 줄 알았던 뚜껑이 날아가 버리고 그 친구의 얼굴이며 하얀 빛깔의 교복 위에 뒤범벅이 되는 거예요. 그 친구의 얼굴은 순식간에 아프리카 껌둥이로 바뀌고, 반짝반짝 줄을 세워 다려 입은 하얀 교복은 얼룩무늬 예비군복으로 변해버렸으니 엄청난 일이 벌러진 겁니다. 잉크를 쓰다가 뚜껑만 살짝 올려놓은 걸 모르고 잉크병이 닫힌 걸로 깜박한 순간적인 착각의 결과였지요.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 친구는 멍하니 나를 처다보고 있더군요. 새까만 얼굴에 하얀 두 눈자위만 멀뚱하게 바라보는데 정말 가관이더군요.속으로 웃음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고 있는데 그 놈의 누런 이빨이 그날 따라 왜 그렇게 뽀얗게 보이는지.....그때는 다른 방법이 없더라구요. 삼십육계 줄행랑이 최선의 방법이겠다 싶어서 댑다 달렸지요. 물론 그 친구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한 손에는 잉크병을 들고 제게 뿌리려고 달려왔지요. 그 친구는 당연히 제가 일부러 잉크를 얼굴에 뿌린 걸로 생각하고 나를 잡아죽일 듯이 달려오더군요. 제가 당시 달리기는 한가닥 했는데 그 친구 워낙 고릴라 같이 화가 나서 달려오니 벤존슨은 저리 갈 정도의 초능력을 발휘하더라구요. 제가 순발력이 있어 스타트는 조금 빨랐지만 곧 잡히게 되어 교실 모퉁이에서 급회전을 해 막 돌아섰는데, 그 친구는 내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다 싶었는지 들고 있던 잉크병 뚜껑을 열고 잉크를 냅다 뿌려댔습니다. 아이고! 그런데 저는 교실어귀를 잽싸게 돌아 날아오는 그 시커먼 잉크덩어리를 무사히 피했는데, 그때 마침 양손에 철가방을 들고 선생님들이 시킨 자장면 배달을 오던 좋은 철가방 아저씨가 교실 모퉁이를 돌아서다가.... 그만 그 친구가 던진 잉크 세례를 제 대신에 고스란히 받았지 뭐예요. 양손에 철가방을 들고 있었으니 피할 수도 없이 말입니다. 얼굴에 잉크 세례를 맞은 그 아저씨 콧구멍에서도 잉크가 주르를 흘러내리며 영락없는 깜둥이가 되더군요. 저는 달아나다가 이 엄청난 상황을 슬금슬금 살펴보니까 그 덩치 큰 철가방 아저씨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씩씩 대시다가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말없이 철가방을 열더니 간장통을 꺼내더군요. 길쭉하고 양쪽으로 간장이 나오게 되어 있는 간장이 꽤 많이 들어가는 호리병 같은 간장병이었지요. 저는 혹시 옷에 묻은 잉크를 지우는데 간장이 무슨 큰 특효가 있어 옷과 얼굴에 바르려고 그러는 줄 알고 자세히 보고 있자니 그 아저씨 아주 근엄하고 차분히 간장통의 뚜껑을 열더라구요. 김좌진이라는 친구는 지은 죄가 있어 잔뜩 겁에 빌려 있는데 철가방 아저씨는 갑자기 그 친구 얼굴에다 간장을 냅다 뿌리는 거예요. 이종환, 최유라씨! 혹시, 잉크 세례 받은 데다 간장벼락까지 이중탕으로 맞아 보신 적 있나요? 맞은 데 또 맞으면 더 많이 아프듯이 그거 정말 못할 짓이데요. 냄새 지독하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 친구 얼굴이나 교복에 그래도 빈곳이 군데군데 있었는데 이번에는 간장으로 아주 말끔히 새까맣게 도배를 해버리더군요. 그리고는 시커먼 두 사람이 씩씩대며 얼굴을 쳐다 보다가 그 철가방 아저씨는 철가방을 챙겨 무슨 생각에선지 다시 돌아가더군요. 아마 잉크로 도배를 한 위에 간장으로 마무리를 해 시커먼 얼굴을 하고 잔뜩 화가 나 있는 그 친구에게서 보상받을 게 별로 없다고 판단을 했던것 같아요. 또 시커먼 얼굴로 도저히 교무실을 들어갈 수가 없다고 판단했겠지요. 아마 그날 어느 선생님인가는 저희들 덕분에 영문도 모른 채 오지 않는 자장면을 애타게 기다리다 점심을 쫄쫄 굶었겠지요. 잉크 세례 받은 자장면 배달 아저씨는 돌아가서 주인에게서 또 얼마나 혼이 났을까요. 잉크에 간장까지 발랐으니 이제는 도저히 저를 잡으러 올 생각마저 없었는지 그 친구는 수돗가로 가더니 웃통을 벗어 씩씩거리며 열심히 교복을 빨고 얼굴을 닦더군요. 저는 한 7교시쯤 조심스레 교실로 돌아왔습니다. 그 녀석은 자리에 없었고 나중에 다른 애들에게 물어보니 그 친구의 모습이 얼마나 시커멓고 기가 막혔던지 아이들이 자꾸 웃고 또 간장냄새가 온 교실을 진동하여 선생님들이 도저히 수업진행이 안된다고 일단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하더군요. 그 당시 잉크도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저는 잘 번지지 않고 물에 퍼지지 않는 제일 좋은 P사의 잉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비누로 지워도 알굴에 묻은 잉크가 쉽게 지워지지 않아 그 친구는 한 3,4일은 얼굴과 단벌 교복에 잉크를 바른 채로 다녔지요. 그후 그 친구는 잉크 자국이 다 지워질 때까지 들어오시는 선생님들마다 너만 왜 교련복(당시만 해도 교련시간에는 얼룩무늬 교련복을 입었음)을 입고 왔느냐며 혼냈으며, 그때마다 저를 죽일 듯이 째려보는 무서운 눈길을 감수해야 했지요. 제가 잉크를 얼머나 쎄게 뿌렸는지, 아니면 그 친구가 그때 입을 벌리고 있었는지 그 친구의 입과 콧구멍 속에까지 잉크가 잔뜩 묻어 잘 지워지지 않는다고 툴툴대더군요.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 화해를 하고 더욱 좋은 친구사이로 아주 보람찬 학창시절을 잘 보냈습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지금 이 시간을 빌려 그 김좌진이라는 친구에게 다시 한번 그때는 정말 미안했었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고, 또 하필 그때 자장면 배달을 왔다가 잉크로 날벼락을 맞은 운 없는 철가방 아저씨! 말 한마디 없이 시원하게 화풀이를 했던 그 아저씨도 지금쯤은 큰 중국집 주인이 되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자리를 빌려 미처 사죄를 못한 그 철가방 아저씨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네요. 그 당시에는 정말 심각하고 걱정이 되었는데 요즘 같으면 세탁비다 손해배상이다 했을 텐데 그때만 해도 정말 후덕한 세상이라 더 이상 문제삼지 않은 철가방 아저씨를 꼭 한번 만나고 싶네요.
Board 삶 속 글 2022.12.19 風文 R 598
만가(輓歌) 輓:수레 끌 만. 歌:노래 가. [출전]《古今》〈音樂篇〉,《晉書》〈禮志篇〉,《古詩源》〈露歌〉〈蒿里曲〉 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노래. 한(漢)나라 고조 유방(劉邦)이 즉위하기 직전의 일이다. 한나라 창업 삼걸(三傑) 중 한 사람인 한신(韓信)에게 급습 당한 제왕(齊王) 전횡(田橫)은 그 분풀이로 유방이 보낸 세객(說客) 역이기를 삶아 죽여 버렸다. 이윽고 고조가 즉위하자 보복을 두려워한 전횡은 500여 명의 부하와 함께 발해만(渤海灣)에 있는 지금의 전횡도(田橫島)로 도망갔다. 그 후 고조는 전횡이 반란을 일으킬까 우려하여 그를 용서하고 불렀다. 전횡은 일단 부름에 응했으나 낙양을 30여리 앞두고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고 말았다. 포로가 되어 고조를 섬기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전횡의 목을 고조에게 전한 고조에게 전한 두 부하를 비롯해서 섬에 남아있던 500여 명도 전횡의 절개를 경모하여 모두 순사(殉死)했다. 그 무렵, 전횡의 문인(門人)이 해로가/호리곡(蒿里曲)이라는 두 장(章)의 상가(喪歌)를 지었는데 전횡이 자결하자 그 죽음을 애도하여 노래했다. 부추 잎의 이슬은 어찌 그리 쉬이 마르는가 [?上朝露何易晞(해상조로하이희)] 이슬은 말라도 내일 아침 다시 내리지만 [露晞明朝更復落(노희명조갱부락)] 사람은 죽어 한 번 가면 언제 다시 돌아오나 [人死一去何時歸(인사일거하시귀)] -해로가- 호리는 뉘 집터인고 [蒿里誰家地(호리수가지)] 혼백을 거둘 땐 현우가 없네 [聚斂魂魄無賢愚(취렴혼백무현우)] 귀백은 어찌 그리 재촉하는고 [鬼伯一何相催促(귀백일하상최촉)] 인명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못하네 [人命不得少??(인명부득소지주)] -호리곡- 이 두 상가는 그 후 7대 황제인 무제(武帝:B.C.141~87) 때에 악부(樂府) 총재인 이연년(李延年)에 의해 작곡되어 해로가는 공경귀인(公卿貴人), 호리곡은 사부서인(士夫庶人)의 장례 시에 상여꾼이 부르는 ‘만가’로 정해졌다고 한다. [주] 해로가 : 인생은 부추 잎에 맺힌 이슬처럼 덧없음을 노래한 것. 호리 : 산동성(山東省)의 태산(泰山) 남쪽에 있는 산 이름. 옛 중국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넋이 이곳으로 온다고 믿어 왔음.
Board 고사성어 2022.12.19 風文 R 799
구경꾼의 말 녹사평역 3번 출구. 스산한 바람이 뒹굴고 무심한 차들이 질주하는 고갯마루에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가 있다. 바로 곁에 “정치 선동꾼 물러나라”라는 펼침막을 붙인 봉고차 한대. 이 어색한 밀착의 공간을 서성거린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주변을 배회하는 구경꾼들이 있다. 사건을 관망하면서 말을 끄집어내는 구경꾼들의 입은 당사자만큼이나 중요하다. 권력자들을 떨게 만드는 건 구경꾼들의 예측할 수 없는 의지와 결집이니. 8년 전.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대변인이었던 유경근씨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참사의 원인 규명과 책임자들의 사과, 그리고 재발 방지 약속이다. 이것을 정말 듣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도 희생자 가족들은 그 ‘부질없는 말’을 정말 듣고 싶어 한다. 권력자들은 말이 없다.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말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듯. 그들이 입을 닫으니 반동들이 입을 연다. 예전보다 더 빠르고 악랄하고 노골적이다. 권력자들은 반동의 무리들이 반갑다. 구경꾼들을 당사자들과 분리시키고, 자기들끼리 싸우게 될 테니. 그러니 말을 믿지 말자. 권력자의 말을 믿지 말자. 그들이 하지 않은 말도 믿지 말자. 뉴스를 믿지 말자. 신문에 기사화된 분노를 믿지 말자. 그 분노는 애초에 우리의 심장 속에 있었다. 대중매체가 훔쳐 간 것이다. 휴대폰만 쳐다보면 인간의 존엄성을 능욕하는 막말도 의견인 양 같은 무게로 읽힌다. 그러니 우리의 감각을 믿지 말자. 우리의 무감각도 믿지 말자. 우리에게 절실한 건 ‘가서 보는 것’. 참사를 만져보는 것. 목격자로서 말을 하는 것.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3부 국어공부, 무엇이 문제인가 대학 입학 국어 시험 문제를 보니 (2/2) 1-5중 필자의 주관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 것은? 이렇게 묻는 말을 써 놓은 글에서 생각해 봐야 할 말이 필자와 주관 이다.물론 이 정도의 말은 고등학생들에게 그다지 어려운 말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나날이 입으로 하는 말이 아니 이런 말이 들어가면 그 글은 저절로 어렵다는 느낌을 준다. 또 우리말이 있으면 마땅히 우리말로 써야 하는 것이다. 위의 글에서 필자와 주관을 모두 쉬운 우리말로 바꾸어서 다시 써본다. 1-5중 글쓴이의 생각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 것은? 이렇게 쓰면 한결 쉬운 글로 읽게 된다. 만약 이렇게 썼더라면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잘못 쓰는 사람이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 다음 문제가 이렇다. a에 표출된 화자의 심리를 지적한 것은? 1. 안도 2. 만족 3. 모멸 4. 자만 5. 환희 이렇게 물어 놓은 말에서도 표출 화자와 같은 말은 괜히 어렵게 쓴 말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다 아는 말이지만 심리 지적 따위 한자말도 쉬운 우리말로 쓰면 훨씬 더 이 묻는 말의 뜻을 알기 쉽다. 그래서 내가 만일에 이 문제를 낸다면 다음과 같이 쓸 것이다. a에 나타나 말하는 이의 마음을 바르게 가리킨 것은? 이렇게 내가 쉽게 써 놓은 말과 앞에 있는 원문이, 그 내용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점이 있는가? 다르지 않다면 우리말을 안 쓰고 어려운 한자말을 쓸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혹시 내가 쓴 글이 도리어 원문보다 더 머리에 얼른 안 들어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거야말로 예삿일이 아니다. 마치 외국에서 공부하면서 자라난 아이가 돌아와서 우리말은 어렵고 외국말은 쉽다고 하듯이 말이다. 외국에서 자라났을 경우에는 그렇게 되기가 예사이고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곳이 어느 나라인가? 제 나라에서 제 나라말을 배웠다는 아이들이 이 지경이라면 우리가 얼마나 잘못된 교육을 하고 있고, 잘못된 공부를 하고 있는가? 이런 잘못된 교육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시험문제만은 제발 깨끗한 우리말로 썼으면 한다. 그런데 이렇게 묻는 말부터 어렵게 되어 있고 보니, 마치 될 수 있는대로 어려운 한자말을 묻는 말에다 써서 이런 한자말을 아는가 모르는가를 알아 보는 시험문제처럼 되어 있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에서 들어 놓은 다섯 개 한자말 가운데서 한 개를 가려내는 것은 아주 이 다섯 개 한자말의 뜻을 묻는 문제가 되어 있다. 이와같이 해서 대학입시의 언어 문제는 거의 모두가 어려운 한자말을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꼴로 되어 버렸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 놓은 글을 읽자면 어려운 한자말도 알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시험문제가 거의 모두 이렇게 되어서 어찌 하겠는가? 옛날 글을 읽기 위해서 한자말을 배워야 하는 것이지, 우리가 나날이 하는 말과 쓰는 글을 옛날 사람들처럼 남의 글자말로만 써서 어쩌자는 것인가? 우리 국어 교육은 우리말을 죽이는 교육이 되었다. 사실은 입시문제에서 과목을 적는데 언어 라고 하고, 더러는 국어 라고 한 것부터 잘못되었다. 왜 말이 아니고 언어 이고, 우리말 이 아니고 국어 인가? 국어와 우리 말 이어떻게 다른가? 학교에서 학생들이 우리 말 공부를 하지 못하고 국어 공부를 하는 이상, 우리말은 바로 그 국어 교육으로 아주 무지막지하게 짓밟혀 죽어갈 것이고, 죽지않고 간신히 숨이 붙어 있다고 해도 상처투성이 괴상한 병신말로 되어 버릴 것이다. 이번에는 대학입시 본고사 문제에서 한 가지만 살펴 보겠다. 역시 가장 쉬운 말로 된 보기글을 들기로 한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운 고향이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 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이것은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알고 있는 정지용 시인의 고향이다. 단 한 낱말도 꺼림찍한 한자말을 쓰지 않아 참으로 깨끗한 우리말로 되었다. 글에서만 쓰는 한자말을 쓰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우리말로 된 한자말조차 안 쓰고 토박이 말을 살려 쓰기도 했다. 산 이라고 하지 않고 뫼 라고 한 말이 그렇다. 이 시를 발표한 1932년에는 벌써 뫼 란 말이 다 죽어 있었던 것인데. 이 시인은 이 말을 묻혀 있던 땅에서 파내어 숨을 불어넣어서 이렇게 살려 놓았던 것이다. 이 시에서 또 한가지 주목할 것은 매김자토씨 관형격조사 의 의 를 단 한 번도 쓰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이 시의 말법이 순전한 우리 것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정지용 시인의 시 가운데서도 이 시가 가장 널리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는 까닭이 이러하다. 그런데 이 시를, 다른 다섯 가지 글과 함께 내어 보인 다음에 문제를 내어 놓았는데. 이 시만을 두고 물어 놓은 문제 두 가지 가운데 하나가 다음과 같다. 위의 글들 중에서 귀향 을 주제로 한 것이 있다. 귀향 을 통해서 찾고자 하는 공간적 의미와 시간적 의미를 생각해 볼 때 시간적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난 어구를 글 다 에서 찾아 쓰시오. 이렇게 물어 놓은 글뜻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아주 잔뜩 긴장해서 거듭 읽어야 한다. 알고 보면 별 것 아닌 말을 왜 이렇게 썼을까? 내가 쓴다면 다음과 같이 쓰겠다. 위의 글 중에는 고향에 돌아감 을 주제로 한 글이 있다. 고향에 돌아가 찾으려고 하는 곳의 뜻과 시간의 뜻을 생각해 볼 때, 시간의 뜻이 분명하게 드러난 말귀절을 글 다 에서 찾아 쓰시오. 우리 글에서 공간적 시간적 이렇게 무슨 -적 하는 말을 아주 많이 쓰는데, 이 말은 우리 글을 어설픈 외국글체로 만드는 데 가장 큰 노릇을 하는, 일본사람들이 만든 말이다. 그리고 어른이고 아이고 글에서뿐 아니라 말에서까지 마구잡이로 쓰고 있지만, 이 말만 들어가면 말이 그만 이상하게 굳어진 것으로 되고 글은 어설프고 사납게 되어 듣는 사람이고 읽는 사람을 흔히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리고 시험문제에서 묻거나 지시하는 말부터 이런 괴상한 말이 들어 있는 글체로 되어 있으니 학생들은 죽자사자 이런 말을 쓰고 이런 말이 들어 있는 글의 질서에 자신을 길들이려고 한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다음 또 하나 문제는 이러하다. 글 다 에서 시인의 마음을 가장 절실하게 표현한 연이 첫째 연과 끝연이라고 보자 이 두 연이 넌지시 드러내는 화자의 모습을 비유하는 표현을 글 바 의 한시에서 찾아 한자로 쓰시오. 이 문제는 앞에서 들어 놓은 시 고향 을 제대로 읽어서 잘 알고 있는가를 묻는다기보다는 바 의 한문시와 한자말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한자를 쓸 수 있는가를 알아 보는 문제로 되어 있다. 우리 시 작품을 들어 놓은 문제조차 이렇게 한자말을 알고 있는 능력을 재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그 밖의 문제야 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이영도편" 이영도(1916~1976) 여류 시인. 경북 청도 출생. 경남에서 오랫동안 여학교 교사 생활을 했음. 시조를 주로 썼으며 수필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음. 이영도의 시조들에는 민족 정서를 바탕으로 잊혀져 가는 고유의 가락을 재구현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간절한 표현으로 자신의 정감을 다스리며 인생을 관조하는 세계를 보여 주었다. 오월이라 단오날에 어제 오후 저자에 갔던 아이가 창포 한 묶음을 사들고 왔다. 우리의 모든 세시 풍속이 날로 잊혀져 가는 요즘 세월에 그나마 단오절을 기억해서 창포를 베어다 팔아 주는 아낙네가 있어 주었던가 싶으니, 우리 겨레의 멋을 말없이 이어 주는 숨은 정성이 아직도 우리 둘레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아 마음 흐뭇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이를 시켜 창포를 삶아 그 물을 뜰 모퉁이 작은 상추밭에 두어 밤이슬을 맞히게 하고, 목욕탕에 물을 넣도록 일렀다. 이슬 맞힌 창포물을 섞어 머리를 감고, 또 상추잎에 내린 이슬 방울을 받아 분을 찍어 아이에게도 발리고 나도 화장을 했다. 가르마엔 분실을 넣고, 창포 뿌리엔 주사를 발라 곤지를 찍었다. 올해 여든이신 어머님께서도 화장을 시켜 드렸더니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띄셨다. 밥상머리에 둘러앉은 가족들의 머리에서 은은히 풍겨나는 창포 향기를 맡으며, 나는 옛날로 돌아간 듯 가슴이 느긋해졌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님께선 해마다 단오절이 오면 이렇게 창포 목욕을 시켜 주셨고, 상추 이슬을 접시에 받아 거기 박가분을 개어 얼굴에 발라 주셨기 때문에 나도 어머님과 아이에게 그대로 해 주어서 옛날 여성들의 멋있었던 정조를 살리고 싶었던 것이다. 화장품이 발달되지 못했던 옛날엔 마른 버짐이 허옇게 피어 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단오날 상추 이슬에 분을 바르면 버짐이 피지 않고 살결도 고와진다면서, 이른 새벽 상추밭에 이슬을 받던 그 시절, 어머니들이 자기네 아이들 미용에 얼마나 관심 있었는지 그 심정이 다사롭게 가슴 속으로 스며들어온다. 크림을 찍어 발라 준다든가 튜브에 약을 짜 바르는 것에 비해 얼마나 멋있고도 지성스러운 모정이 어려 있는가 생각되기 때문이다. 오늘은 앵두를 사다가 화채를 만들고 쑥계피떡을 사다 가족들이 단오맛을 내어 보자고 했다. 내가 어리던 시절엔 명절 중에서도 단오절이 얼마나 기쁘고 신이 났는지 모른다. 여성들은 창포 목욕, 분가르마에 붉은 주사 곤지를 찍고, 낭자머리나 다홍빛 댕기 끝에는 천궁잎과 창포 뿌리를 꽂고 달아서 솜씨껏 모양을 내고는, 그네가 매어져 있는 마을 앞 버들 숲으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푸른 버들 숲 속에 삼단 같은 머리채를 휘날리며 그네를 뛰는 아가씨들의 풍성한 여성미의 제전에 맞서, 남자들은 씨름판으로 싱싱한 남성의 멋을 과시하던 단오절! 정초 설날의 줄다리기.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며, 추석절의 강강수월래가 멋있지 않는 바 아니었지만, 신록이 구름같이 피어나는 5월의 푸르름 속에 청춘을 휘날리는 그네뛰기와 씨름판은 바로 인생의 환희가 아닐 수 없으며, 그 날은 규중 깊은 곳에 숨어 살던 아가씨들도 쓰개치마를 벗어 던지고 모두 나와서 참례하는 놀이였고 보니 모든 구경꾼 속에는 신랑감을 물색하기에 눈이 바쁜 이들도 섞여 있게 마련이었다. 항라 깨끼 저고리 속을 괴비쳐 풍기는 아가씨들의 은은한 자태들은 전나체에 수영복만 걸친 시속 미인 대회보다 얼마나 격조 높은 잔치였는지 모른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서구식 영향을 받게 되어, 요즘 권투니 레슬링이니 하는 주먹다짐에 목숨을 걸고 날뛰는 악착 같은 경기나, 우승컵 따기에 악을 빡빡 쓰는 쟁탈전과는 달리 마을마다 골짝마다 끼리끼리 명절을 즐겨 우쭐거리던 5월이라 단오절! 갈수록 숨차기만 한 과학 문명의 틈바구니 속에 신경질적인 이 세월에 진정 유유한 민족 특유의 멋을 하루쯤이라도 살려 이 푸른 계절을 숨쉴 수 있다면, 우리 자녀들의 정서 순화는 물론, 주부들의 마음도 얼마나 넉넉함을 얻을 수 있겠는가? 5월이라 단오날! 가정에도 학교에도, 전차, 버스, 사무실 안에도 창포 향기 그윽한 오늘이 되어질 수 있기를 혼자 바라 마지않는다. 그러한 정서가 오늘날의 각박한 숨결에 한 방울 기름의 역할이 될 수 있지나 않을까 싶은 목마름에서다.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고지가 바로 저긴데 왕코 중의 왕코 이종환씨. 밥맛 나는 웃음소리 최유라씨. 두 분 안녕하십니까? 저역시 남보다 큰 코 덕분에 숨쉬기 운동이 편리해서 아주아주 잘 있습니다. 저도 한번 웃음이 피어나는 편지에 도전을 해볼까 해서 사나이만의 추억, 군생활의 일부인 논산훈련소시절을 소개할까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군에 입대하기 전 선배로부터 훈련소 생활에 보탬이 되는 내용을 실기 없이 이론으로 어느 정도 통달을 할고 입대했습니다. 입대하기 전 선배로부터 들은 말은 훈련소에서는 무조건 종교부터 가져라. 그래야만 일요일에 사격도 나가지 않고 편하게 교회에거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면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기가 막힌 특혜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결심했습니다. 저의 목표는 적의 진지보다 최우선 순위인 잠을 잘 수 있는 종교부터 갖는 것이었습니다. 저높은 곳을 향하여, 훈련소에서 이틀째 되는 날 드디어 이론으로 터득한 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군간이 다가왔습니다. "훈련병 정렬!" 우리들의 내무반장 설상병(일명 독사)! 키는 거인이고 눈은 쭉 찢어졌으면 얼굴은 험상궂은게 한마디 한마디 하는 말까지도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싸늘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흔들렸습니다. 저 독사에게 한 번 물리면 죽고 말 거란 갱각이 들었습니다. 허나, 잠시 정신을 차리고 독사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대한민국 군대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 먼저 기독교 신자는 앞으로 나와라." 지하철이 그렇게 빨랐을까? 고속전철인들 그렇게 빨랐을까!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쏴라의 알리 주먹도 저보다 느렸을것입니다. 저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제일 먼저 독사 앞에 섰습니다. "야 이자식들아, 무슨 예배당이 이렇게 많아. 너무 많기 때문에 5명만 뽑겠다." 저는 속으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5명이 아니라 1명만 뽑는다 해도 제가 1번인 것을... 군대는 선착순이 아닙니까. '용의 머리가 여긴데 설마 꼬리부터 세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이런 생각도 잠시였습니다. 독사는 저를 툭치며 이러는 겁니다. "너 주기도문 외어봐." 이게 무슨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립니까. 아니면 맑은 하늘에 장작 빠개지는 소리입니까. 이론으로 터득한 예행연습에도 그러한 내용은 없었는데 말입니다. '오! 마이 갓.' 제가 주기도문을 알 리가 없지요. 단 한번도 교회를 가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주기도문을 알겠습니까? 저는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뇌는 빠르게 명령했습니다. '그래,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다!' 저는 평범하게 '주기도문'하고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그 다음이 뭐야 임마!" 좀 더 크게 '주기도문'하고 또 할말이 없었습니다. "이 자식이 장난하나, 다음말 해봐. 짜샤~." 비오는 날에는 개구리가 더욱 크게 울죠? 그날따라 내무반 밖에는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독사 앞에서 세차게 외쳤습니다. "잊었습니다" 20년동안 단 한번도 누구에게 맞아본 적이 없는 저의 귀싸대기를 독사의 손이 후려친 것입니다. 독사의 손은 인간의 손이 아니었습니다.요새 군대에는 구타가 없어졌다죠? 요즘 군대생활은 행복하겠지만, 20년전에 맞은 그 한대는 마치 핵폭탄 같았습니다. 저는 그날 대한민국 육.해.공군 장군의 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저와 같은 결과를 치렀습니다. 다음은 천주교를 모집한다라는 내무반장의 말이 떨어졌습니다. 기독교에서 홍역을 치른 뒤라 서로가 눈치를 보며 주저했습니다. 저는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고지가 저긴데...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인데...' 또 다시 저의 뇌는 명령했습니다. '진지를 향해 돌진하라!' 저는 그 명령을 거역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대충 앞사랑 하는 거 커닝하고 귀동냥이라도 해서 5명 안에 들어 볼까하고 여섯번째에 섰습니다. 치밀한 계산이었지요. 그런데... 앞에 섰던 5명 전부는 진정한 카톨릭 신자였던 것입니다. 이렇게도 운이 안 따라 줄 수 있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독사는 제앞으로 오는 겁니다. "요자식! 아까는 기독교라더니 이제는 천주교야?" 독사는 저를 또 때리는 겁니다. 대한민국 군대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더니, 질문이나 해보고 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대 맞고 나니 정말이지 미치겠데요. 이제는 때리는 것이 모자란지 원산폭격까지 시키는 겁니다. 저는 선배가 너무 원망 스러웠고, 술까지 사주면서 진지하게 들어주었던 제 자신이 너무나 서글펐습니다. 더구나 빡빡 깎은 머리로 원산폭격을 하니 도저히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독사는 마지막으로 말했습니다 "불교를 모집한다. 역시 정원은 5명이다." 저는 바닥에 머리 박은 채 결심했습니다. '5명이면 뭐하고 50명이면 뭐하랴. 나는 이제 찍힌 몸인 것을... 앞으로 살아가면서 하느님과 천주님은 절대로 찾지 않을거다.' 그리고 불교는 아에 포기하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에 마저 섰다가는 어디 한군데 제대로 물릴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다짐했습니다. '저 독사에게 이번에 물리면 나는 끝이다. 고향으로 살아서 돌아가야 된다.' 그런데 독사 앞에 나서는 사람은 1명뿐이고 아무도 나서질 않는 겁니다. 독사는 자기 앞에 1명밖에 없는 것이 불쾌했는지 소릴 질렀습니다. "더 이상 없나?" 또 다시 저의 뇌는 긴급 명령했습니다.. '뭐하고 있나? 돌격하지 않고, 돌격 앞으로.' 결정을 하니 독사가 하나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물뱀으로 보이는 겁니다. '지가 아무리 독이 오른 독사라도 물려면 물어라. 너는 상병이지만 내 친구 중에는 소위도 있고, 중위도 있다. 고향 땅 면사무소에는 대위보다 상관인 방위도 있단 말이다.' 저는 자리에서 제 맘대로 벌떡 일어섰습니다.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수많은 눈동자가 저를 주시했습니다. 주위에는 숨소리조차 없는 정적이 흘렀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 조용한 침묵은 처음이었습니다. 독사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아예 제쳐놓고, 제 앞으로 오더니 말했습니다. "징헌 놈." 저는 긴장했습니다. 언제 날아올지 모를 독사의 핵주먹을 그저 입을 콱 물고 눈을 감고 기다렸습니다. "이놈이, 오늘 뭘 잘못 먹었나? 군대가 네 동넨 줄 알아? 기독교, 천주교, 이제는 불교까지 군대 종교가 모두 네꺼냐? 좋아 불교에 대해서 모르면 넌 오늘이 제삿날이다." 저는 속으로 외쳤습니다. '그래 물뱀에 물려면 물어라.' 그리고 근엄한 큰 스님처럼 말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이 짜샤! 그것말고 다른것." 독사는 소릴 지르데요. 전 소리를 지르든 말든 관계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술 더 떠서 두 손 합장하며 외쳤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우리의 물뱀은 입가가 살짝 실룩이면 또 다시 말했습니다. "징헌놈" 저는 그때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드디어 고지를 점령했습니다. 그 감격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모를 겁니다. 저는 그때 인연으로 인해서 오늘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살아 가고 있습니다.
Board 삶 속 글 2022.12.17 風文 R 489
마이동풍(馬耳東風) 馬:말 마. 耳:귀 이. 東:동녘 동. 風:바람 풍. [유사어] 우이독경(牛耳讀經). 오불관언(吾不關焉). 대우탄금(對牛彈琴). [출전]《李太白集》〈券十八〉 말의 귀에 동풍(東風:春風)이 불어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뜻. 곧 ①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그대로 흘려 버림의 비유. ② 무슨 말을 들어도 전혀 느끼지 못함의 비유. ③ 남의 일에 상관하지 않음의 비유. 당나라의 대시인 이백(李白)이 벗 왕십이(王十二)로부터〈한야독작유회[寒夜獨酌有懷(추운 방에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느낀 바 있어서)]〉라는 시 한 수를 받자 이에 답하여〈답왕십이한야독작유회(答王十二寒夜獨酌有懷)〉라는 시를 보냈는데 ‘마이동풍’은 마지막 구절에 나온다. 장시(長詩)인 이 시에서 이백은 “우리네 시인들이 아무리 좋은 시를 짓더라도 이 세상 속물들은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울분을 터뜨리고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 세인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머리를 흔드네 [世人聞此皆掉頭(세인문차개도두)] 마치 동풍이 쏘인 말의 귀처럼 [有如東風射馬耳(유여동풍사마이)] [주] 동풍은 봄바람의 뜻. 그 동풍이 말의 귀를 쏘아(스쳐) 봤자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을 것임. 즉 세인들이 시인의 말이나 걸작에 기울이는 관심도가 그 정도로 낮다 - 무관심하다고 이백은 비분(悲憤)하고 있는 것임.
Board 고사성어 2022.12.16 風文 R 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