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전숙희편" 전숙희(1919~2010) 여류 수필가. 함남 협곡 출생. 이화 여전 문과 졸업. 미국 컬럼비아 대학 수학. 문화 사절로서 정력적인 활동을 보여 준 전숙희는 동서 문화의 교류에 남다른 공적을 남겼으며 월간지 "동서 문화"를 창간해 내기도 하였다. 한국 펜클럽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탕자의 변" "이국의 정서" "밀실의 문을 열고" 등 수필집을 통하여 넓은 안목과 교양을 보였다. 삶의 슬기 밤새 훈훈히 김 오른 방문을 열고 청마루로 나서면 코끝이 짜릿하도록 부딪쳐 오는 싸늘한 아침의 감촉. 불기 없는 목욕탕에 받아 놓은 물 위엔 살얼음이 지고 뜰 앞에 서 있는 나무에 매달렸던 마지막 잎마저 떨어져 버리고 가지만이 생명 없는 표본인양 처량해 보이는 초겨울의 아침, 마치 새초롬하게 청초한 여인의 모습 같은, 그러한 초겨울 아침을 나는 좋아한다. 그래서 부엌에서 보글보글 밥 끓는 소리와 뽀오얗게 서린 김의 훈훈함이 더욱 정다움 아침, 또 어쩌면 온갖 풍상을 다 겪고 나, 그 마음 속에 너그러움과 따뜻함이 이끼처럼 깔려 있는 초로의 모습, 그러나 어딘지 범치 못할 단정함과 의연한 여인의 얼굴과도 같은 그 모습을 나는 사랑하고 싶다. 쌀 뒤주에는 햇곡이 가득하고 곳간에는 차곡차곡 담은 김장독과 겨우내 방들을 덥혀 줄 연탄이 쌓이고 담가 놓은 포도주는 향기롭게 익어, 어쨌든 한 시름을 놓고 이제 휴식의 아침을 맞을 만하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가까워 오는 설날의 꿈을 익히고, 젊은이들은 성탄절에 주고받을 선물과 카드로 마음이 설레이는 아침, 나는 폭신한 털옷으로 몸을 싸고 싸늘한 고요 속에 그 앙상한 나뭇가지를 바라보는 일만이 즐겁다.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나뭇가지에 흰 눈송이가 쏟아진다. 마치 어려서 내가 좋아하던 어떤 크리스마스 카드의 그림 풍경처럼. 얼마 후, 흰눈은 걷히고 나뭇가지에는 새파란 움이 트이더니 푸른 나뭇잎이 하나 둘 피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 오래잖아 나무에는 눈부신 붉은 꽃송이들이 탐스럽게 만발한다. 태양은 밝고 우주는 온통 밝은 풍경이다. 그러나, 바라다보고 있는 동안 어느샌가 그 꽃들은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드디어는 앙상한 나뭇가지에 잎이 피고 또 떨어진다고 하자. 그리고 열 번 다시 그 붉은 꽃이 만발하고 또 흰 눈송이가 덮일 때, 내 머리는 이미 희어지고 얼굴에는 주름이 깊어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놀라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으리라. 초조하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않으리라. 나는 어려서 곧잘 책상 앞 벽에다 그 시절의 어린 여학생들의 버릇대로 '시간은 황금이다'라고 문구를 써 붙이고 날마다 쳐다보기를 좋아했다. 하고 싶은 일들이 많던 나는 내 시간이 너무나 모자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래서 이렇게 나 자신을 채찍질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단도 결국은 나에게 별다른 성과를 주지는 못했다. 즉 지나간 그 많은 시간들도 나에게 기적을 낳아 주진 않았다. 나 자신의 의욕과 협력이 부족했던 탓이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나에게 넉넉히 주어졌던 노다지 황금과도 같은 그 시간에 노다지 덩어리를 마구 함부로 낭비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내 비록 오늘날 그 시간을 통해 별것이 되지는 못했을망정 나는 쓰고 단 생활을 맛보고 또 배웠다. 그 시간들은 나에게 사랑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가르쳐 주었고 망각의 슬기로움과 평화로움을 가르쳐 주었다. 시간은 나를 황금처럼 빛나고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지는 못했으나, 그 시간은 나에게 사람을 사랑하고 남을 이해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르쳐 주었다. 푸른 꿈을 가득 지녔던 20대에 나는 지망했던 문학에서 철학으로 옮기려고 했다. 문학조차 시시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회의에 가득 찼던 20대의 나는 모든 것을 동경하면서 또 동시에 경멸하려 드는 모순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30대 40대의 나는 변해 있었다. 정열을 다해 생활을 사랑하는 여인이 되었던 것이다. 열심으로 이성을 사랑하고 친구를 따르고, 아이들에게 정을 쏟고 사회 생활에 참여하고... 그러나, 나는 이제 다시금 때때로 철인이 되려는 나 자신을 보며 혼자 미소 짓는다.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부귀 영화도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도다.' 나는 성경의 이 굴절을 즐겨 되씹어 본다. 그러노라면 뭔가 가슴 속이 허전해 온다. 인생 전체가 연기처럼 모호한 느낌이다. 그러면 왜 나는, 또 많은 사람들은 그처럼 헛되고 헛된 생을 영위하기 위해 그처럼 악착스럽도록 열심으로 살아가야만 하는가? 생각하는 나는 외롭지 않다. 철학 서적을 뒤질 필요는 없다. 인생의 해답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뜰 앞에 서 있는 앙상한 나뭇가지에도, 김 서린 부엌에도, 골목 밖에서 떠들어대는 아이들의 음성에도, 내 인생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던 나는 때때로 실망이란 아픔을 맛보았고 움직이지 않는 차바퀴를 억지로 밀고 나가려는 어리석은 욕심조차 부려 보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조그마한 내 생활의 창을 통해 생명의 존엄과 삶의 보람을 배워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내 인생과 더불어 밝아 오는 이 초겨울 아침에도 나는 가슴 속에 훈훈한 애정을 품어 보는 것이다.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주유소 총잡이들과 방범 안녕하세요. 이종환, 최유라씨! 이것이 두 번째 보내는 편지인데 꼭 채택이 됐으면 하고 또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9년 전 88올림픽이 서울에서 한창 진행되고 있을때 일입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방 하나를 들고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먼저 서울에 온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한강주유소에 있는 영규, 용산주유소에 있는 태정이, 그리고 대방동 팔각정주유소에 있는 수동이에게 전화를 해서 밤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우리들은 돈도 없고, 해서 두꺼비(소주)와 닭똥집을 사가지고 한강 고수부지로 나가 술을 먹기로 했습니다. 우리들은 술을 먹으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다가 태정이가 갑자기 게임을 제의했습니다. "우리 게임 한번 하자." "그래 좋다. 무슨 게임을 할까?" 태정이가 계속 말을 이어갔습니다. "저 한강물에 뛰어들어가 누가 제일 먼저 돌을 하나 들고 나오는지 시합을 하자." 친구들도 좋다고 제의가 나왔고, 우리들은 팬티 하나만 남기고 한강물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네명이 나란히 팬티만 있고 서 있느니, 얼마나 가관이겠습니까. 우리들은 하나, 둘, 셋과 동시에 뛰어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셋과 동시에 저쪽 끝에서 호루라기를 불면서 뛰어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건 다름아닌 방범 아저씨였습니다. 아니 젊은 사람들이 지금 무슨 짓들이냐고 호되게 야단을 쳤습니다. 우리들은 하는 수 없이 옷을 입고 있는데 옷이 하나가 남아 있는 것이 아니겟습니까. 아니 이것이 웬일입니까. 태정이가 한강물에 뛰어든 것입니다. 우리들은 미안하다고 하면서 방범 아저씨들과 술을 같이 마시게 되었습니다. 술자리를 같이 하면서 방범 아저씨게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한때는 물개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수영을 잘했단다." "애이, 그걸 어떻게 믿어요?" 우리들이 우기자 방범 아저씨들께서는 그럼 내기를 하자고 했습니다. 우리 네 명과 방범 아저씨 둘, 합이 여섯 명이서 팬티만 입고 또 나란히 섰습니다. 참 기가 찰 노릇이지요. 비록 밤이지만 한강 고수부지에 나온 사람들이 한마디식 거들었습니다. "저것들이 미친 것 아냐?" 너도 나도 할 것도 없이 떠들었습니다. 우리 여섯 명은 셋과 동시에 한강물에 뛰어들었습니다. 한참을 놀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것이 웬 조화입니까. 둑위에서 백차(경찰차) 한 대가 와서 이렇게 외치는 것입니다. "거기 한강물을 오염시킨 인간들 0.5초내로 튀어나오지 않으면 모두다 한강물에 몸을 불려 버리겠어 (한강물에 밤새 가두겠다는 이야기)." 우리들은 잽싸게 둑 위로 올라왔습니다. 팬티 하나만입고 여섯 명이 나란히 섰습니다." "당신네들 죽을려고 작정을 했어? 술먹고 어딜 들어가. 지금 올림픽이 한창 열리고 있는데..." 경찰 아저씨는 우리 여섯명을 '주욱' 훑어보며 언성을 높여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런데 경찰 아저씨의 시선이 방범 아저씨들 앞에서 머뭇거리는 겁니다. "당신네 둘. 어디서 많이 본것 같은데... 나 혹시 몰라." 이 말에 방범 아저시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경찰 아저씨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한참을 생각하더군요. 그러더니 백차로 다가가서 가려고 하다 다시 우리를 향해 돌아서서 말했습니다. "당신 둘 팬티 입은 채 차에 타." 그 경찰 아저씨가 결국 방범 아저씨들을 생각해낸 것 같았습니다. 우리들은 아직까지 방범 아저씨들의 소식이 궁금하답니다.
Board 삶 속 글 2022.12.25 風文 R 494
맥수지탄(麥秀之歎) 麥:보리 맥. 秀:빼어날/팰 수. 之:갈 지. 歎:탄식할/감탄할 탄. [원말] 서리맥수지탄(黍離麥秀之歎). [동의어] 맥수서유(麥秀黍油). 맥수지시(麥秀之詩). [참조] 은감불원(殷鑑不遠). 주지육림(酒池肉林). [출전]《史記》〈宋微子世家〉.《詩經》〈王風篇〉 보리 이삭이 무성함을 탄식한다는 뜻. 곧 고국이 멸망한 탄식. 중국 고대 3왕조의 하나인 은(殷)나라 주왕이 음락에 빠져 폭정을 일삼자 이를 지성으로 간한 신하 중 삼인(三仁)으로 불리던 세 왕족이 있었다.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干)이 그들이다. 미자는 주왕의 형으로서 누차 간했으나 듣지 않자 국외로 망명했다. 기자도 망명했다. 그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 거짓미치광이가 되고 또 노예로까지 전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왕자 비간은 끝까지 간하다가 결국 가슴을 찢기는 극형을 당하고 말았다. 이윽고 주왕은 삼공(三公:왕을 보좌하던 세 제후)의 한 사람이었던 서백[西伯:훗날의 주문왕(周文王)]의 아들 발(發)에게 주살(誅殺)당하고 천하는 주왕조(周王朝)로 바뀌었다. 주나라의 시조가 된 무왕(武王) 발은 은왕조의 봉제사(奉祭祀)를 위해 미자를 송왕(宋王)으로 봉했다. 그리고 기자도 무왕을 보좌하다가 조선왕(朝鮮王)으로 책봉되었다. 이에 앞서 기자가 망명지에서 무왕의 부름을 받고 주나라의 도읍으로 가던 도중 은나라의 옛 도읍지를 지나게 되었다. 번화하던 옛 모습은 간데 없고 궁궐터엔 보리와 기장만이 무성했다. 금석지감(今昔之感)을 금치 못한 기자는 시 한 수를 읊었다. 보리 이삭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麥秀漸漸兮(맥수점점혜)] 벼와 기장도 윤기가 흐르는구나 [禾黍油油兮(화서유유혜)] 교활한 저 철부지(주왕)가 [彼狡童兮(피교동해)] 내 말을 듣지 않았음이 슬프구나 [不與我好兮(불여아호혜)] [주] 기자 동래설(箕子東來說):기자는 주왕의 횡포를 피하여, 혹은 주나라 무왕이 조선왕으로 책봉함에 따라 조선에 들어와 예의/밭갈이/누에치기/베짜기와 사회 교화(敎化)를 위한 팔조지교(八條之敎)를 가르쳤다고 하나 이는 후세 사람들에 의한 조작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라고 함. 왜냐하면 진(晉)나라의 무장(武將)/정치가/학자인 두예(杜預:222~284)가 그의 저서《춘추석례(春秋釋例)》의 주(註)에서 “기자의 무덤이 양(梁)나라의 몽현(夢縣)에 있다”고 적고 있는 만큼 ‘기자 동래설’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임.
Board 고사성어 2022.12.25 風文 R 890
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3부 국어공부, 무엇이 문제인가 논술시험,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써야 하나? (1/2) 논술은 자기 의견을 자기 말로 주장하는 글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논술하는 글을 쓰자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의견이 있어야 한다. 자기 의견이 없는데 쓴다는 것은 거짓이고, 남의 것을 흉내내는 것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자기 의견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어디서 어떻게 자기 의견을 얻을 수 있는가? 자기 의견은 누구한테 좀 달라고 해서 머리를 숙여 얻어 내는 것이 아니다. 자기 의견은 누구든지 저마다 자기 가슴 속에 들어 있는 것이고, 들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쓰면 그만이다. 그런데 난 없어. 의견이 없는데... 이렇게 말할 사람이 있겠지. 이렇게 자기 의견이 없는 사람은 삶이 없는 사람이다. 무엇이든지 시키는 대로만 하는 사람, 방안에서 시험 공부만 하는 사람, 책만 읽는 사람은 삶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자기 의견을 가질 필요가 없고, 따라서 자기 의견을 가질 수 가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로 세상 일에 부딪혀 보고 일을 해본 사람은 세상 일에 대해, 자연에 대해, 사람이 살아가는 데서 일어나는 온갖 문제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의견을 품고 있으며, 그래서 그 의견을 남에게 주장하고 싶어한다. 주장하는 글, 곧 논술하는 글은 이렇게 해서 삶 속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소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음에 글을 세 편 들어 놓았는데, 이 글들이 자기 의견을 자기 말로쓴(논술한) 글이 되어 있는지, 다시 말하면 삶에서 우러난 참된 주장으로 되어 있는지 알아 보자. 보기글-1 문명의 혜택에 지배당하지 말자 (고2)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우리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발명등으로 만들어진 것, 또는 발견된 것들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 주었다. 인간의 능력이 발휘되고 또 여러 가지가 창조되어 보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과학의 발전과 함께 더욱 가속화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편리함의 이기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들이 나쁜 일에 쓰이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생활은 편리해지지만 그로 인해 나태해지며 나쁜 범죄에 사용하여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문명이 고도로 발전하고 있는 요즘, 전문지식과 정보를 습득하여 그것을 악용한다면 그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혀서 기술혁신을 통한 신제품 개발이나 사회발전에 기여한다면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가? 과학문명 기술은 잘 활용하면 일상행활에 큰 기여를 하지만, 손도 대지 않고 일을 처리하려 하고, 기계에만 의지하여 그 기계가 작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을 만들기도 한다. 물론 과학의 발달에 따라 그것의 이기를 누릴 자유가 있으나 그것으로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버려야 할 것이다. 좋은 것이 과하면 해로운 것이 된다는 옛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달한다 해도 엄연히 인간의 몫은 남는 법이다. 옛날을 고집하자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혜택을 잘 이용하면서 우리들 인간에게 소중한 것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인간소외의 위기의식 때문이리라. (91.6. 어느 신문에 실렸던 글) 보기글 - 2 교육개혁안 부작용, 고3년생 벼랑 몰아(고3) 5.31교육개혁안을 보고 고등하교 3년생으로 현실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려 한다. 첫째, 고3년생의 위기감에 대해서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고3년생은 대학에 꼭 들어가야만 하는 벼랑에 서 있다. 선생님들도 이번에 떨어지면 다시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심심찮게 위협조 로 말씀하신다. 만약 이번에 낙방했다고 하자. 내년엔 본고사가 폐지되므로 일년 공부한 것이 다 헛수고가 된다. 더군다나 수능방식도 완전히 달라지고 교과서까지 바뀌니 대학을 가지 말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둘째, 종합내신제 문제다. 이 제도는 선생님 한 분이 50명이 넘는 학급 학생 개개인을 평가한다는 것인데, 무리하다고 본다. 셋째, 봉사활동을 평가한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에 학생들이 맘놓고 봉사할 때가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일부 학부모의 치맛바람이 걱정된다. 넷째, 출석부만 부르고 헤어지는 특별활동 시간을 평가한다니 정말 우습다. (95.6.7. 어느 신문에서) 보기글 - 3 다른 종교를 헐뜯지 말자(중2)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다. 그 종교들은 각기 고유한 특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우위를 가릴 수 없다. 또 다른 종교를 비판하는 것은 좋으나 자기네만이 최고라며 남의 종교를 무시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행위를 하는 종교가 있다. 나는 부활절날에 내 동생이 계산중학교 스카우트 선서식을 한다기에 준석이, 태욱이와 함께 계산중학교로 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교회 전도사 네명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중 두 명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젊은 파마머리 남자와 젊고 긴 생머리 여자였다. 학생, 종교가 뭔가? 불교인데요. 왜 믿나? 저희 가족이 모두 믿어요. 그럼 이제부터라도 기독교를 믿게. 그래야만이 천국에 갈 수 있고 죄를 씻을 수 있을 테니까. 어째서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 모든 죄인들이 죄를 짊어지고 가셨어. 그걸 어떻게 믿어요? 그 증거로 돌아가신지 3일만에 부활하셨어. 그걸 어떻게 믿죠? 사람들이 봤어. 불교에서는 부처 믿어도 극락 간다고 하던데요. 그건 거짓말이야. 진짜예요. 우리 지금이라도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기도를 함께 하자. 싫어요. 왜? 난 불교니까요. 그럼 나중에라도 잘 생각해 봐.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 전도사는 갔다. 나는 곰곰히 생각해 봤다. 만약 그 전도사 말대로 교회 믿으면 천국 가고 다른 종교 믿으면 지옥 간다면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위인들은 모두 지옥 갔을 게 틀림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전도사는 하나님을 하나밖에 없는 유일신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따지면 우리 모두 유일무이한 존재들이다. 그런데도 하나님만이 유일하다고 하는 것일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종교들은 믿는 신들이 틀린다. 물론 사이비 종교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신들은 훌룡하신 분들일 것이다. 그런데 일부 기독교인들처럼 다른 종교의 신앙들을 무시하면서 하나님만이 최고라는 말을 해서는 될까?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서로의 종교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다른 종교를 헐뜯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이 세편의 글을 차례로 살펴보자. 보기글1은 문명이 발달해서 사람들이 편리하게 살아가게 되어있지만, 한편 사람이 만들어 낸 문명의 기구들이 사람을 게으르게 하거나 죄를 저지르게 한다든지 해서 나쁘게 쓰이게도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문명의 기구들을 쓰는 것은 좋은데 너무 거기에 매이거나 빠지지 말고 사람이 할 일을 해야 된다고 했다. 말이 좀 어설프기는 하지만 대강 하려고 한 말은 그렇다. 이것은 대체로 옳은 의견이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바로 이런 의견을 가지게 된 까닭, 삶 속에서 이 문제를 절실하게 생각하게 되고 주장하게 된 까닭을 이야기로 보여 주어야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참 그렇지! 하고 함께 느끼게 되겠는데, 그것을 쓰지 않았다. 쓰지 않은 까닭은, 이 글에 나타난 생각이 삶 속에서 우러난 서 자신의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서, 또는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얻은, 머리속에 넣어 놓은 지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참된 주장하는 글 (논술)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입학시험 준비로 온 나라 아이들에게 죽자사자 쓰게 하는 글이 죄다 이런 아무 맛도 없는 글, 재미없는 글로 되어 있다. 다음은 보기글2를 보자. 이 글은 얼마 전 교육부에서 발표한 교육개혁안에 대해서 쓴 글이다. 그 안에 대해서는 학부모와 교사들, 그리고 그 밖에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한테서 여러 가지로 적지 않게 논평이 되었다. 그런데 이 글은 당장 올해 입학시험을 치러야 할 학생이 쓴 것으로, 고3학생만이 빠져 있는 어려움과 개혁안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잘 지적했다. 이것은 내가 알기로 지금까지 그 어떤 학자도 교육자도 학부모도 언급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고3학생만이 그 고달픈 시험 전쟁의 나날에서 몸으로 느끼고 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절실한 문제를 말해 놓았다. 신문의 독자투고란이라는 좁은 자리에 실리다 보니 글이 좀 깎여 나간 듯하지만, 아무튼 이 글은 어른들이 가르쳐 준 지식이나 책을 읽어서 얻어낸 남의 의견이 아닌 것만은 누가 읽어도 환할 것이다. 이 보기글2는 이런 주장을 하게 된 원인을 어떤 생활 속에 있었던 이야기로 자세히 써 보이지 않고, 다만 첫머리 글 속에서 간단하게 한마디로 교육개혁안을 보고 라고만 했다. 이 글은 이 것으로 충분하다. 그 까닭은, 이 교육개혁안 을 어느 날 어느 곳에서 듣고 갑자기 그 자리에서 떠올린 생각이나 가지게 된 의견이 아니고, 여러 날을 부모나 같은 학생들끼리 이야기하면서 생각하고 걱정해온 것일 터이기 때문이다. 또 그 교육개혁안이란 것도 옮겨 쓸 쑤가 없고, 쓸 필요도 없었다고 본다. 그런데 보기글3은 많이 다르다. 이 글은 다른 종교를 헐뜯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했는데, 그렇게 주장한 말은 마지막에 가서 몇 줄을 썼을뿐이고, 그 앞의 글 전체가 어느 날 길에서 교회 전도사를 만나서 주고받은 이야기로 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 글은 어떤 사건을 쓴 서사문이 아니고 의견을 담아 놓은 글이라 할 밖에 없다. 앞에 나온 이야기는 마지막에 쓴 그 의견과 주장을 위해서 내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논술이라고 해서 끝에 나오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부터 써 놓은 글만으로 적었다고 해 보라. 이렇게 되면 이 글은 이 학생이 그 삶에서 얻어 낸 절실한 자기 의견이라고 볼 사람이 없을 것이고, 흔히 어른들이 종교 문제가 나왔을 대 말하게 되는 말이라 생각하거나, 책에서 읽은 것을 그대로 옮겨 쓴 말이라 볼 것이다. 이래서 논술이란 글은 이론만을 늘어 놓은 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보기글1은 바람직스럽지 못하고, 2,3과 같은 글, 더구나 3처럼 어떤 의견을 주장하게 된 근거를 마치 서사문을 쓰듯이 정확한 이야기로 써 보이는 것이 좋다. 이번에는 이 세편의 글이 어떤 말로 나타났는가를 좀 살펴보기로 하자. 보기글1은 삶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거기 씌어 있는 글도 잘못 쓰는 어른들의 글말로 요란스럽게 되어 있다. 책으로 익힌 지식을 적게 되니까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잘못된 말이나 우리말로 다듬어 써야 할 말을 대강 적으면 다음과 같다.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전광용편" 전광용(1919~1988) 소설가. 국문학자. 함남 북청 출생. 서울대 문리대 및 대학원 졸업. 문학 박사. 서울 대학 교수 역임. 동화로 출발했다가 소설로 옮긴 전광용은 냉철한 사실적 필치로 한국적인 여러 상황을 추구하는 것이 된 작품 경향이다. 감각적 요소를 곁들인 간결 정확한 문장과 현장 확인을 내세우는 소재의 소화는 그의 작가적 성실성으로 평가되고 있다. 나의 고향 1 나의 고향을 함경도 북청이다. 북청이란 지명이 사람들의 귀에 익게 된 것은 아마도 '북청 물장수' 때문인 것 같다. 수도 시설이 아직 변변하지 않았던 8.15 전의 서울에는 물장수가 많았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북청 사람이었던 까닭으로 '물장수' 하면 북청, '북청 사람' 하면 물장수를 연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북청 사람이 물장수를 시작한 것은 개화 이후, 신학문 공부가 시작되면서부터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북청 물장수치고 치부를 하기 위해서 장사를 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고, 머리 좋은 조카나 사촌을 위해서까지도 그들은 서슴지 않고, 희망과 기대 속에 물장수의 고역을 감내했던 것이다. 여기에 한 토막의 일화가 있다. 삼청동 일대에다 물을 공급하는 사람 중에, 중늙은이 북청 물장수가 하나 있었다. 그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연중 무휴로,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물지게를 지고는 물 쓰는 집에서 돌아가며 해 주는 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잠은 그들의 합숙소인 '물방'에서 잤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물지게를 지고 어느 부잣집엘 들어갔더니, 그 집 마나님이 방금 배달된 등기 우편물을 받아들고는 그것이 어디서 온 건지를 몰라 어찌할 바랄 모르고 있었다. 마나님의 하도 안타까워하는 양을 보다못해, 그는 그 편지를 비스듬히 넘겨보고는 그것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일러 주었다. 판무식쟁이로만 알았던 물장수의 식견에 감탄한 마나님은, 그 후부터 그 물장수를 대하는 품이 달라졌다. 다음해 3월 상순, 어느 해질 무렵이었다. 그제야 겨우 물지게를 지고 그 부잣집 대문 안에 들어선 그 물장수는 이미 얼근히 취해서, 물통에는 물이 반도 안 남았고 바지는 흠뻑 젖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신문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그의 아들의 경성 제대 예과 수석 합격의 보도가 실린... 문득 파인의 시, "북청 물장수"가 입 속에 맴돈다. 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 와서 머리맡에 찬물을 솨--퍼붓고는 그만 가슴을 디디면서 멀리 사라지는 북청 물장수 물에 젖은 꿈이 북청 물장수를 부르면 그는 삐걱삐걱 소리를 치며 온 자취도 없이 다시 사라져 버린다. 날마다 아침마다 기다려지는 북청 물장수 2 우리집에는 어른의 생일을 차리는 법이 없다. 부모의 생사도 모르고 사는 불효 자식이 저 먹자고 제 손으로 생일을 차릴 수는 없는 일이기에. 고향 생각이 가장 절실한 것은 추석을 맞을 때다. 이 날 우리는, 차례를 지낼 대상이 없으므로 일찌감치 등산복 차림을 하고 우이동이나 도봉산으로 간다. 거기서 달이 떠오를 때까지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은 들국화의 향기를 맡는다. 개울의 돌을 들추고 가재를 잡는다 하며 신명나게 놀지만, 나는 나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북녘 하늘 한끝에 시선을 막은 채 끝없는 추억과 상상의 날개를 펴는 것이다. 그리고 나면, 마음이 좀 후련해지는 것 같으면서도, 가슴 한구석엔 여전히 뭉쳐진 덩어리가 무겁게 짓누르는 것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날 밤 집에 돌아오면, 우리는 고향의 노래를 부르게 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아이들은 흥겹게 합창을 하지만, 나와 아내는 어느새 착잡한 심정에 잠기고야 마는 것이다. 이럴 땐 사진첩이라도 펼쳐 보면 좀 나으련만, 고향의 사진은 한 장도 없으니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결혼 사진만이라도..."하고 아쉬운 푸념을 되뇐다. 그러니, 차라리 눈이라도 감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리운 사람들의 모습이 안타깝게 명멸하는 것이다. 8.15 직후 서울에 온 나는, 고향이 그립고 궁금하여 그 해 겨울 방학과 이듬해 여름 방학, 두 번을 고향에 다녀왔다. 두 번째 갔을 때는 집에 닿아 하룻밤을 자고 난 다음날 아침, 보안대에 끌려갔다. 그리고, 당일로 60리가 넘는 군청소재지의 보안서에 연행되어 1개월 간의 교화소 신세를 졌다. 그 때의 죄명은 우습게도 '하경자'라는 것이었다. 서울서 내려왔다고 해서 그런 해괴한 이름이 붙은 것이다. 출감해서 집으로 돌아오니, 나의 절친했던 친구의 한 사람이며 그 쪽에서 열성적으로 깃발을 날리던 Y가, "너를 감옥에 집어 넣은 것도 나고, 나오게 한 것도 나다." 하고 말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순간, 등골을 스쳐 내리는 전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주위의 모든 것이 두렵기만 할 뿐이었다. 그 때 서울로 돌아온 후 얼마 동안은, 고향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었다. 그런데, 그 후부터 고향 꿈을 꾸면 꼭 붙잡혀 가서 욕을 보는 장면만 나타나고, 빨리 서울에 가야겠는데 하고 신음하다가 깨는 것이다. 그 그리운 고향이 왜 무서운 꿈으로만 나타나는 것일까? 어머니가 그립다. 나는 어릴 때, 수양버들이 서 있는 우리집 앞 높직한 돌각담에 올라가 아득히 먼 수평선가를 스쳐 가는 기선을 바라보면서, 외국으로 유학간 아씨들을 그려 보곤 했었다. 이젠 80이 넘으셨을 어머니가 아직도 살아 계신다면, 지금쯤 그 돌각담 위에 홀로 서시어, 터널 속으로 사라지는 남행 열차의 기적 소리를 들으시며, 흩어져 가는 기차 연기 저 너머로 안타깝게 아들의 모습을 그리고 계실지도 모를 일이다.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저는 고향이 충남 예산군에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승지인 삽다리입니다. 아주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죠. 제가 이곳에서 자라던 초등학교 4학년 때 있었던 사건을 좀 쓰려고 합니다. 하루는 일요일인데다 장날이고 해서 할머니와 함께 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장터에는 벌써 사람들이 많이 모여 뭔가를 열심히 구경하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사람들을 비집고 들여다보니, 원숭이도 있고, 이마로 못을 박는가 하면 입으로 불도 뿜어대고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맨 앞자리에 아주 눌러앉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약장수 아저씨가 입에 거품을 물고 약 선전을 하니까, 구경꾼들은 한명 두명 일어서기 시작했고, 약장수 아저씨는 잽사게 말했습니다. "자. 지금부터 원숭이가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는데... 구경한번 해보세요. 사람 환장합니다." "그게 진짜여 기가 막히구먼. 어쩌구... 저쩌구..." 사람들은 다들 다시 자리에 앉는 거였습니다. 호기심이 많은 저는 원숭이를 요리조리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엉덩이는 빨갛고 못생긴 게 허면 얼마나 허겄어' 하고, 혼자 공상에 젖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약장수 아저씨는 원숭이에게 뭐라고 하더니, 모인 사람들을 향해서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원숭이가 약이 많이 안 팔려서 기분이 나뻐가지고, 다음 장날에 하겠답니다." 사람들은 웅성 웅성 각자 갈길을 가고, 저도 아쉬움만 안은 채 집으로 오면서도 그 원숭이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다시 보려면 5일을 또 기다려야 했습니다. 드디어 장날은 돌아왔고, 저는 고민했습니다. 왜냐구요? 학교를 따르자니 원숭이가 울고, 원숭이를 따르자니 학교가 우는게 아닙니까. 마침내 저는 결정을 했습니다. '하루만 땡땡이를 치자' 하고 말입니다. 저는 아침밥을 먹고 인사도 대충하고 집을 나와 책가방을 숲속에 숨겨놓고, 장터로 향했습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약장수는 오지 않고, 참 사람 화장허겠네유. 드디어 약장수는 오고 원숭이도 변함없이 등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도 맨 병만 깨고, 불만 뿜어 대더니 이 팽계 저 핑게 대기만 하고, 또 다음 장날로 미루고... 아무튼 이렇게 약장수 쫓아다닌 것이 아마 한 달은 넘을 것입니다. 결국은 원숭이의 솜씨는 보지도 못하고 단 한가지 배운 것은 석유를 마시고 불을 뿜어대는 것. 그것은 확실하게 배웠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집에 가서 저도 석유 먹고, 불이나 뿜기로 말입니다. 할머니 몰래 성냥과 석유를 훔쳐 가지고 좀 한적한 벌판에서 석유를 입에 가득 넣고 성냥을 켠 후, 석유를 확 내뱉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바로 기절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스스로 눈을 떳고, 웬 냄새는 그렇게 많이 나는지... 제가 왜 기절한 줄 아십니가? 바람을 등에 지고 해야 되는 것을 그 반대로 바람을 앞가슴으로 받은 채 불을 뿜었으니 결과야 뻔데가 뻔자 아닙니까. 그 불이 제 얼굴을 강타한 거죠. 겨우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오자. 할머니는 저를 한참 째려보시더니 묻습니다. "니가 창우냐?" "예." "... 아닌데, 아녀, 니가 창우 아녀." 할머니는 뒷걸음을 치시며 당황한 목소리로 할아버지를 막 부르시는 겁니다. "영감, 영감." "왜, 어디 불났남." 엉겁결에 나오신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저를 가리키며 말씀하셨습니다. "영감. 저 사람이 우리 창우라고 우기네유. 오티기(어떻게) 헌데유?" 할아버지도 저를 아래위로 훑어보시고는 세상에 저렇게 똑같은가 하시며 고개를 저으시는 겁니다. 아 그러다 보니, 이제는 제가 무서워지는 겁니다. "할아버지, 내가 창우여." 저는 울면서 할아버지 품으로 뛰어들었고, 할아버지는 뭔가 감을 잡으셨는지 코를 몇 번 훌쩍 하시고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우리 장손이 맞긴 맞는디... 니 어디서 불장난 했는겨?" 할아버지는 역정을 내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끝까지 불장난 안 했다고 우겼습니다. 그러자 할아버니느 방으로 뛰어가시더니, 거울을 제 앞에 갖다 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눈썹은 간다 온다 말 한마디 없이 다 어디로 가버렸고, 까까머리는 대충 새마을 지붕 개량 사업에 충실했고, 얼굴은 불에 그을려 가마잡잡 하고, 참 화상요란허데유. 저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처음 원숭이 사건부터 쭉 실토를 하자. 얘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할머니는 어느새 검정 고무신으로 저를 향해 패대기를 칠 자세를 취하고 계시는 겁니다. 할머니는 육성회비가 아깝다 하시며 고무신짝으로 대리는디 진짜 정신 못 차리것데유. 좌우지간 죽지 않을 만큼 뒈지게 맞았습니다. 생전 처음 맞았거든요. 이편지를 쓰다보니 정말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이 간절히 납니다.
Board 삶 속 글 2022.12.24 風文 R 566
망양지탄(望洋之歎) 望:바랄?바라볼 망. 洋:바다 양. 之:갈 지. 歎:탄식할/감탄할 탄. [참조] 정중지와(井中之蛙). [출전]《莊子》〈秋水篇〉 넓은 바다를 보고 감탄한다는 뜻. 곧 ① 남의 원대함에 감탄하고, 나의 미흡함을 부끄러워함의 비유. ② 제 힘이 미치지 못할 때 하는 탄식. 먼 옛날 황하 중류의 맹진(孟津:하남성 내)에 하백(河伯)이라는 하신(河神)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금빛 찬란히 빛나는 강물을 보고 감탄하여 말했다. “이런 큰 강은 달리 또 없을 거야.” “그렇지 않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늙은 자라였다. “그럼, 황하보다 더 큰 물이 있단 말인고?” “그렇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해 뜨는 쪽에 북해(北海)가 있는데, 이 세상의 모든 강이 사시 장철 그곳으로 흘러들기 때문에 그 넓이는 실로 황하의 몇 갑절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 큰 강이 있을까? 어쨌든 내 눈으로 보기 전엔 못 믿겠네.” 황하 중류의 맹진을 떠나 본 적이 없는 하백은 늙은 자라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이윽고 가을이 오자 황하는 연일 쏟아지는 비로 몇 갑절이나 넓어졌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하백은 문득 지난날 늙은 자라가 한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는 이 기회에 강 하류로 내려가 북해를 한번 보기로 했다. 하백이 북해에 이르자 그곳의 해신(海神)인 약(若)이 반가이 맞아 주었다. “잘 왔소. 진심으로 환영하오.” 북해의 해신이 손을 들어 허공을 가르자 파도는 가라앉고 눈앞에 거울 같은 바다가 펼쳐졌다. ‘세상에는 황하 말고도 이처럼 큰 강이 있었단 말인가‥….’ 하백은 이제까지 세상 모르고 살아온 자신이 심히 부끄러웠다. “나는 북해가 크다는 말을 듣고도 이제까지 믿지 않았습니다. 지금 여기서 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나의 단견(短見)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북해의 신은 웃으며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井中之蛙]’였구려. 대해(大海)를 모르면 그대는 식견이 낮은 신으로 끝나 버려 사물의 도리도 모를 뻔했소. 그러나 이제 그대는 거기서 벗어난 것이오.”
Board 고사성어 2022.12.24 風文 R 1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