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3부 국어공부, 무엇이 문제인가 논술시험,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을 써야 하나? (1/2) 글쓰기에서는 무엇을 써야 하나? 하는 문제가 어떻게 써야 하나? 하는 문제보다 앞서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 논술에서만은 무엇을 과 어떻게 의 차례를 바꾸었는데, 그 까닭은 학생들이 쓸거리를 마음대로 골라서 쓰는 자유가 아주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학생들이 어떤 문제로 글쓰기 공부를 해야 하는가 알아 보기 위해서 신문에 난 논술고사 예상(연습) 과제를 보기로 하자. 다음은 어느 신문에서 주마다 한 번씩 여러 대학의 교수님들이 내어 주고 있는 주제 들인데, 이 신문에서는 그 전주의 주제로 써 낸 글 가운데서 잘된 글을 최우수작 한 편, 우수작 세 편으로 뽑아 함께 싣고 있다. 몇 달 동안 나온 주제들을 보는 대로 적어 둔 것이 다음과 같다. 생명의 소중함을 논하라. 통일에 대비한 효율적인 국토활용 방안. 도덕성 타락의 원인데 대해 논하라. 건전한 사회는 건전한 가족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 는 말에서 건전한 가족 의 핵심적 내용을 논하라. 바람직한 가족규범. 미래사회의 창의성에 대해 논하라. 낙태, 허용되어야 하는가. 우리 인간에게 자연이란 무엇인가. 세계화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외래어 상품명에 대한 종결부분 작성하기. 현대인과 점. 국가 발전과 민족문화 창달을 위한 새 가치관 정립에 대해 논하라. 지식의 습득과 교양적 자질과의 관계 1.바둑과 장기 2.학교와 학원 3.논개와 춘향 - 하나 택일, 비교 대조의 방법을 사용 설명하라. 진로 선택의 결정요인은 무엇이어야 하나. 외국어 조기교육의 장단점을 논하라. 국민학교 이름, 이대로 좋은가. 멀티미디어 시대와 독서 논술시험은 학생들의 사교력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는가. 가정의 달 5월을 맞는 청소년의 다짐. 법의 양면성을 논하라. 내가 만약 시장이 된다면. -------------------------------------------------------------------- 이 밖에 주제를 좀 긴 글로 써 놓은 것은 뒤로 미루고, 우선 여기 적어 놓은 과제들을 가지고 생각해 본다. 이 논술 문제들을 보면 거의 모두가 체험에서 나온 절실한 자기 의결은 쓰게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책에서 읽은 지식과 이론을 쓰도록 되어 있다. 바로이것이 논술시험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이래서 이 논술시험 제도는 학생들에게 자기 삶에 대한 관심과 자기만이 갖는 감정과 생각과 의견을 갖지 못하게 하고, 무엇이든지 어른들이 주는 것만을 맏아들이도록 하는 허수아비를 만들고, 또 그러면서도 삶에서 동떨어진 빈 이론과 장난스런 말재주를 즐기는 괴상한 사람을 기르는 노릇을 잘 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 논술 주제들을 보면 아직 학생으로서는 관심을 둘 필요가 없거나 관심을 가지기에는 아주 이른, 다만 어른들이나 애써 생각해야 할 문제가 많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학생들을 너무 빨리 어른으로 만드는 교육이 된다고 할 밖에 없다. 논술 문제는 학생들이 누구든지 자기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쉽게 자기 의견을 쓰면서 한편 좋은 생각을 하게도 되는 문제가 바람지간데, 그런 문제는 아주 썩 드물다. 다만, 생명의 소중함을 논하라. 우리 인간에게 자연이란 무엇인가. 도덕성 타락의 원인에 대해 논하라. 이런 문제는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누구나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논하라 란 말을 꼭 써야 할까? 이런 말을 쓰니까 학생들이 쓰는 글이 그만 딱딱한 글말로 굳어지게 된다. 나 같으면 목숨이 왜 소중한가 말해 써 보시오. 우리 사회에서 도덕이 어째서 타락하였는지, 그 까닭을 써 보시오. 이렇게 쓰겠고, 인간 이란 말조차 사람 으로 써서, 이렇게 하겠다. 우리 사람에게 자연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차라리 자연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자기 생각을 써 보시오 라고 하는 것이 좋겠지만) 앞에서, 신문에 내어 놓은 논술 문제로 글을 쓰면 책에서 읽은 것이나 교실에서 배운 것만 쓰게 된다고 했는데, 실제로 학생들이 쓴 글을 보기로 하자. 국민학교 이름, 이대로 좋은가 란 제목이 있었다. 요즘 이 문제가 온 국민의 관심거리로 되어 있어서 논술 문제로서는 매우 알맞아 보인다. 그러나 국민학교란 이름이 왜 생겨났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일제시대를 살았던 사람도 그 당싱의 법령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고는 모른다. 그러니 아무리 온 국민의 관심거리가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남다른 생각으로 애써 여러 가지 자료를 조사해 본 사람이 아니고는 그저 사람들이 퍼뜨리는 소문 같은 것이나, 신문에 슬쩍 스쳐 지나는 정도의 기사로 짐작하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학생들 역시 특별한 뜻이 있어 이 문제를 올바르게 가르쳐 주는 선생님들 만날 수 있어야 되겠는데, 제대로 정확하게 말해 줄 수 있는 교육자가 우리 나라에 몇이나 될까? 그러니까 매우 적절해 보이는 논술 제목같지만 사실은 제대로 쓰기가 매우 어려운 제목이다. 이 논제로 써 낸 작품이 최우수작 한 편에 우수작 세편으로 모두 네 편이 신문에 발표되었는데, 그 내용을 읽어 보니 모두 어슷비슷하다. 그리고 국민학교란 이름을 그대로 써서는 안되는 가장 큰 까닭을 올바르게 쓴 사람은 아무도 없고, 또 모두가 잘못된 말을 써 놓았다. 국민학교란 이름은 왜정 마지막에 포악한 왜놈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군대교육을 시켜 전쟁터에 끌고 갈 준비를 하기 위해 붙인 이름인데, 그것이 그 때 나온 법령에 환히 나타나 있다. 이 사실을 학생들이 알아야 하는데, 아무도 쓴 사람이 없다. 그러면서 국민이란 말은 일본 국왕의 신민이란 뜻이다 고 모두가 잘못 써 놓았다. 국민이란 말이 일본국왕의 신민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미국 국민 영국국민 프랑스 국민 이라고 쓸 수는 없다. 국민이란 말이 백성보다 더 좋은 말은 아니지만 쓰지말아야 할 말은 아니다. 또 국민이란 말을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처음 쓴 말도 아니다. 그런데 국민학교 란 말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왜놈들이 흉악한 속셈으로 소학교란 이름을 그렇게 바꾼 것이니 그냥 두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국민학교 이름, 이대로 좋은가 란 제목으로 글을 쓰게 한다면 미리 국민학교란 이름이 언제 어떻게 해서 생겼는가를 정확하게 가르쳐 놓아야 할 것이고, 국민학교로 이름이 바뀐 뒤로 일본 식민지 교육의 실상이 어떻게 되어 있었던가를 자세하게 알려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 교육은 하지도 않고 글만 써 내라고 했으니 내용이 비어 있고, 또 잘못된 생각을 다만 어른들이 흔히 쓰는 어설픈 글말로 모두 어슷비슷하게 쓸 수밖에 없다. 미리 교육을 잘 해 놓았다고 하더라도 결국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지식을 쓰는 정도밖에 안 되지만, 그런 지도조차 없이 썼으니 무슨 글이 되겠는가? 다른 논제로 쓴 학생들의 글도 흔히 이런 꼴이 아닌가 싶다.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전숙희편" 전숙희(1919~2010) 여류 수필가. 함남 협곡 출생. 이화 여전 문과 졸업. 미국 컬럼비아 대학 수학. 문화 사절로서 정력적인 활동을 보여 준 전숙희는 동서 문화의 교류에 남다른 공적을 남겼으며 월간지 "동서 문화"를 창간해 내기도 하였다. 한국 펜클럽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탕자의 변" "이국의 정서" "밀실의 문을 열고" 등 수필집을 통하여 넓은 안목과 교양을 보였다. 설 설이 가까워 오면, 어머니는 가족들의 새 옷을 준비하고 정초 음식 차리기를 서두르셨다. 가으내 다듬이질을 해서 곱게 매만진 명주로 안을 받쳐 아버님의 옷을 지으시고, 색깔 고운 인조견을 떠다가는 우리들의 설빔을 지으셨다. 우리는 그 옆에서, 마름질하다 남은 헝겊 조각을 얻어 가지는 것이 또한 큰 기쁨이기도 했다. 하루 종일 살림에 지친 어머니는 그래도 밤 늦게까지 가는 바늘에 명주실을 꿰어 한땀 한땀 새 옷을 지으셨다. 우리는 눈을 비벼가며 들여다보다가 잠이 들었다. 착한 아기 잠 잘 자는 배갯머리에 어머님이 홀로 앉아 꿰매는 바지 꿰매어도 꿰매어도 밤은 안 깊어. 잠든 아기는 어머니가 꿰매 주신 바지를 입고 산줄기를 타며 고함도 지를 것이다. 우리는 설빔을 입고 널 뛰는 꿈도 꾸었다. 설빔이 끝나면 음식으로 접어든다. 역시 즐거운 광경들이다. 어머니는 미리 장만해 둔 엿기름가루로 엿을 고고 식혜를 만드셨다. 아궁이에서는 통장작불이 활활 타고, 쇠솥에선 커피 색 엿물이 설설 끓었다. 그러면, 이제 정말 설이 오는구나 하는 실감으로 내 마음은 온통 그 아궁이의 불처럼 행복하게 타올랐다. 오래 오래 달인 엿을 식혀서는 강정을 만들었다. 검은콩은 볶고 호콩은 까고 깨도 볶아 놓았다가 둥글둥글하게 콩강정도 만들고 깨강정도 만들었다. 소쿠리에 강정이 수북이 쌓이면서 굳으면, 어머니는 독 안에다 차곡차곡 담으셨다. 수정과를 담그는 일도 쉽진 않다. 우선 감을 깎아 가으내 말려서 곶감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 알맞게 건조한 곶감은 바알갛게 투명하기까지 하고, 혀끝에 녹는 듯한 감칠맛이 있다. 이것을 향기로운 새앙 물에 띄우고, 한약방에서 구해 온 계피를 빻아 뿌리는 것이다. 빈대떡도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우선 녹두를 맷돌로 타서 물에 불려 거피를 내고 다시 맷돌에 곱게 갈아, 돼지고기와 배추 김치도 알맞게 썰어 넣은 다음, 넉넉하게 기름을 두르고 부쳐 내는 것이다. 며칠씩 소쿠리에 담아 놓고 손님 상에 내놓기도 좋거니와 솥뚜껑에 푸짐이 부쳐 가며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것도 별미였다. 그러나, 정초 음식의 주제는 역시 흰떡이다. 흰쌀을 물에 담갔다가 잘 씻고 일어선 차례로 쪄내고, 앞 뜰에 떡판을 놓고는 장정 두어 사람이 철컥철컥 쳤다. 떡판에선 김이 무럭무럭 올랐고, 우리들은 군침이 돌았다. 장정들이 떡을 쳐 내면 어머니는 밤을 새워 떡가래를 뽑고, 알맞게 굳으면 이것을 써셨다. 그리고, 세배꾼이 오는 대로 맛있는 떡국을 끓이고, 부침개며 나물이며 강정이며 수정과며 한 상씩 차려 내셨다. 나는 지금도 설날이 되면, 어머니 옆에서 설빔이 되기를 기다리던 그 초조한 기쁨, 엿을 고고 강정을 만들고 수정과를 담그고 흰떡을 치던 모습, 빈대떡 부치던 냄새, 이런 흐뭇한 기억이 되살아나 향수에 잠긴다. 우리 어머니들은 설빔 하나 만드는 데도, 설상 하나 차리는 데도 이처럼 수많은 절차를 거치고, 알뜰한 정성과 사랑을 쏟고 가족을 돌보고 이웃을 대접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들은 어떤가? 기성복상에는 항상, 맞춘 것 이상으로 척척 들어맞는 옷들이 가득 차 있으니 언제든지 돈만 들고 나가면 당장에 몇 벌이라도 골라 입을 수 있다. 설이 돌아와도 여자가 그의 남편이나 아이들을 위해서 밤 새워 옷을 지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식료품상에는 다 만든 강정이 쌓여 있고, 다 갈아 놓은 녹두도 있다. 아니, 빈대떡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흰떡도 뽑을 필요가 없이, 쌀만 일어 가지고 가면 금방 떡가래를 찾아올 수도 있다.세상이 모두 기계화되었으니, 필요한 것은 돈과 시간 뿐이요, 솜씨나 노력의 정성이나 사랑이 아니다.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 '편리' 속에 짙은 향수가 겹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우리는 정작 귀한 것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 여성들의 그 정성과 사랑을 우리는 이어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의 옷 한 가지 짓는 데도, 남편의 밥 한 그릇 마련하는 데도, 조상의 제삿상 하나 차리는 데도, 이웃에 부침개 한 접시 보내는 데도, 우리 여성들은 말할 수 없는 정성과 사랑을 다 바쳤다. 옛날의 우리 의생활과 식생활은 여성들의 무한한 노고와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지만, 우리 여성들은 오로지 정성과 사랑으로, 노고를 노고로, 인내를 인내로 알지 않았다. 밤새도록 시어머니의 버선볼을 박던 며느리, 손 시란 한겨울에도 찬물을 길어다 흰 빨래를 하고 풀을 먹이고 다듬이질을 하고, 희미한 호롱불 밑에서 바느질을 하던 아내와 어머니, 한국 여인들의 그 아름다운 마음씨를 누가 감히 따를 수 있을까? 오늘의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잃어 가고 있다. 마음을 잃어 가고 있으므로 생활도 잃어 간다. 아침이면 뿔뿔이 헤어지고, 저녁에 모여선 빵과 통조림으로 끼니를 때우고, 텔레비전 앞에서 대화 없는 몇 시간을 지내다가 또 뿔뿔이 헤어져 잠자리에 드는 사람들도 많다. 편리하지만 참생활이 없다. 그래서, 현대인은 고독한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려서 우리 어머니들에게서 느끼던 그 '어머니'를 오늘의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느끼게 하지를 못한다. 사서 입히고 사서 먹이는 동안에 우리는 정성과 사랑이 식어 간 것이다. 뼈저린 고생이 없는 대신, 그 뒤에 오는 샘물 같은 기쁨도 없어졌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고독하게 자라는지도 모른다. '편리'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뜨겁게 사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새삼스럽게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여성들이 보여준 그 정성과 사랑의 며느리, 아내, 어머니의 마음만은 이어받자는 것이다. 아무리 기계화된 생활이라 할지라도 정성과 사랑은 쏟을 데가 있을 것이다. 이야말로 삭막해져 가는 우리의 생활을 인간다운 것으로 되돌리며, 현대인의 고독을 치유하는 길이리라. 아니, 이렇게 거창하게 말할 필요까지도 없다. 나의 남편과 아이들로 하여금, 고독을 모르는 기쁜 생활을, 행복하게 누리게 하는 길이라고 믿자. 명절이 돌아오면 나의 고독한 눈에, 어머니가, 어머니가 자꾸만 떠오른다.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화장지의 최후 나이 많은 사람이 너무 오래된 이야기를 가지고 생기와 재기 넘치는 국내 최고의 인기 프로를 기웃거려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7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한국 전쟁 때에는 저도 20대 초반의 젊은 장교였습니다. 그때는 전쟁이 한창이던 때였는데 한국군 장교들이 군사지식과 전투경험이 너무 모자랐기 때문에 경험이 많은 공산군을 상대로 한 작전 지휘에 문제가 많았지요. 그래서 미국 정부에서 한국군 전투병과의 초급장교을 뽑아서 미국 군사학교에 데려다가 6개월씩 훈련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일선근무 중대장이었던 저도 솔직히 말해 죽기 전에 미국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시험을 봐 가지고 1952년 9월 미국 가는 배를 탔습니다. 보병과 포병 250명이 함께 가는데 보는 것마다, 듣는 것마다, 먹고 마시는 것, 화장실 이용하는 것, 모든 것이 그 당시에는 그저 신기한기만 했습니다. 자동판매기에 5센트짜리 동전 하나를 넣으면 코카콜라가 병째로 떨어져 나오는 것, 커피 자판기에서 입맛대로 골라서 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신기했던지요. 떠나기 전에 우리는 대구 보충대에서 사전 훈련을 받았는데 그때 우리가 한가지 결의한 것이 있었습니다. "자, 우리도 이제 국제 신사가 되었으니 코를 닦거나 용변을 볼 때 신문지 쪼가리 같은 것을 쓰는 것은 이제 그만하고 미제 화장지를 사용하자." 우리는 듯을 모아 모두 양키 시장에 나가서 두루마리 화장지를 한 개씩 사서 손가방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배에 올러보니 화장실마다 화장지가 걸려 있었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지아주 콜럼버스까지 나흘 밤낮을 달린 기차안에도 다 있었기 때문에 가방에 있는 화장지를 꺼내 쓸 일이 없었습니다. 미국 보병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니 거기도 어김없이 화장지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화장지를 꺼내서 기숙사 책상위에 저마다 울려 놓고 기회있을 때마다 의젓하게 품위있게 뜯어 쓰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첫날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니 책상위에 있던 그 국제 신사들의 화장지가 싹 없어진 것입니다. 우리들은 제각기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결론은 우리 기숙사방 청소를 맡은 그 뚱보 흑인 여자가 훔쳐간 것이 틀림없다는 것으로 모아졌고, 혼내줘야 한다, 도로 찾아와야 한다, 제각기 한마디씩 와글와글 끓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장교인 학생 중대장이 우리를 급히 모이라 하여 집합을 했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닙다. "한국 장교 여러분! 화장실에 걸려 있는 화장지를 개인적으로 가져다 쓰지 말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흥분했습니다. "아니, 우리를 도대체 어떻게 보고 이러는 거야. 우린 신사란 말야, 국제 신사. 그건 우리가 대구에서 돈 주고 사 온 것이고 그걸 흑인 여자가 다 가져갔는데 우리더러 화장지를 훔쳤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당시만 해도 영어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통역 장교들이 미리 가서 상주해 있었는데 그때 통역 장교가 통역 아닌 자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진정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대구에서부터 화장지를 사 가지고 오신 것을 잘 압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나라에서는 화장지도 구분이 있어서 두루마리 화장지는 큰 일을 볼 때만 쓰기 때문에 꼭 화장실에만 걸려있고, 코를 닦는다든가 그밖에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는 휴지는 클리넥스라고 종이 상자에 들어 있는 것을 한 장씩 빼서 쓰는 것입니다. 화장실에만 있어야 할 두루마리 화장지가 책상마다 놓여 있으니까 이 사람들이 여러분께사 사 온 것인 줄은 모르고 오해를 해서 이렇게 된 것이니 여러분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는 거예요. 우리는 놀랐습니다. "원 별 사람들 다 보는군. 뭐 휴지까지 어디서 쓰는 것이 따로 있다니 별일이야. 별일!" 그렇게 투덜대기만 했지요. 그리고 PX에 가서 클리넥스 한 통씩을 사고 휴대용도 몇 개씩 사서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화장지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화장실과 관련된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거기 기숙사 화장실엔 큰 것 보는 데가 대여섯칸 쭉 붙어 있는데 거기 문은 바닥에서 40센티미터 가량 떠 있었습니다. 손님이 들어 있으면 누군지는 몰라도 좌변기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의 발과 정강이가 보이게 돼 있습니다. 아침엔 칸칸이 손님이 둘어 있어서 엄청 붐비게 되지요. 사람들은 문밑으로 정강이가 인 보이면 빈칸이니까 얼른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되는데, 어느 날 아침 미국 장교가 와서 정강이가 안 보이는 칸의 문을 잡아당겼습니다. 그런데 잘 안 열렸습니다. 힘을 줘서 당겨도 말입니다. "이 문이 왜 이렇게 빡빡하지?" 중얼거리면서 힘껏 잡아당겼습니다. 그런데 왈칵 문이 열리는 순간 그 미국 장교는 '으악'하고 놀라자빠졌습니다. 사람이 없는 줄만 알았던 그 안에는 한국 장교 한 사람이 좌변기에 올라앉아서 잔통적이고 고전적인 한국인의 용변자세 '쪼그려쏴'자세로 열심히 일을 보고 있었던 겄입니다. 좌변기가 없었던 그때 우리나라 살마으로선 거기 턱 걸터앉아서 일을 보려면 도무지 힘이 모아지지 않아서 기합과 힘을 집중해야만 그놈이 항복하고 나와 주었거든요. 정식 수업은 통역장교 덕분에 큰 지장없이 진행되었지만 일상 생활은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러 가면 맨 먼저 미국 취사병이 물어봅니다. "어떻게 요리한 계란을 드시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말에 자신이 없으니까 앞의 장교가 '프라이드(Fried)'하면 뒤따라서 '미 투(Me Too)', '미 투(Me Too)' 하는 겁니다. 삶은 계란도 있고 '스크램블'도 있는데 저마다 '프라이드 에그(Fried Egg)'만 달라니까 취사병들은 정신없이 바빠지고 혼이 나서 다음날 아침엔 미리 '프라이드'를 많이 준비해 놨는데, 이번에 앞 사람이 '보일드'하니까 저마다 또 '보일드'예요. '보일드 에그'는 3-4분은 삶아야 하는데 프라이드는 남고 보일드는 미처 삶아댈 수가 없고 해서 또 법석을 떨게 되지요. 휴일에 물건을 사러 나가면 더 희극이 벌어집니다. 어떤 장교가 마누라 브래지어를 사다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점원 아가씨한테 진열장에 있는 물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니까 싸이즈가 뭐냐고 묻더랍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선 싸이즈 개념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싸이즈까지는 생각도 못했던 이 친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 점원 아가씨를 한참 쳐다보다가 속으로 '이 처녀 몸집이 내 마누라하고 비슷할 거야.'생각하고는 이렇게 대답했다는 겁니다. "쟈스트 라이크 유(너하고 똑같다)!" 그러자 이 말에 점원 처녀는 얼굴이 홍당무가 돼 가지고 이 장교를 한참 노려보다가 휭 하고 가버렸어요. 국제 신사 장교님은 영문을 모르고 쩔쩔매다가 물건도 못 사고 돌아와서 친구들에게 물어봤더랍니다. "이 사람아, 그 물건 싸이즈가 '네가 내 아내와 똑같다'고 했으니 그럼 자네가 그 처녀의 것도 보았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에이 사람두." 그 사건 이후 이 장교는 공포증에 걸려서 쇼핑을 하러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귀국 날짜는 가까워 오고 아내에게 줄 물건은 꼭 사야겠고 그런데 그것만은 꼭 혼자 가서 샀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궁리 끝에 영어를 잘하는 친구에게 쇼핑 영어 각본을 하나 적어 달라고 했더랍니다. 그리고 그 각본을 가지고 날마다 열심히 외웠습니다. 1 가게문을 열고 들어간다. 2 점원이 반기면서 May I help you, Sir? 하면서 응대한다. 3 그러면 나는 우선 Just looking 이렇게 대답을 하고 4 이것 저것 물건을 살핀다 5 ... 6 ... 뭐 이런 식으로 적혀있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밤낮없이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외웠습니다. 월요일부터 닷새 동안을 밥먹을 때나 침대에서나 심지어 화장실에서까지 열심히 외웠더니 제법 유창하게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더랍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급히 콜럼버스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늘 눈여겨봐두었던 가게로 달려갔습니다. 가게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서면서 기세 좋게 말했습니다. "May I help you, Sir?" 그랬더니 점원 여자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빤히 쳐다보기만 하는 게 아닙니까. '아차! 이건 점원이 말하는 대사였는데....' 그는 얼굴이 벌게져서 문을 닫고 뛰쳐나왔습니다.등뒤로 여 점원들이 킬킬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길로 달려가서 버스를 탔습니다. 기숙사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나 같은 돌대가리가 어디 또 있을까? 그 간단한 영어를 일주일 동안이나 연습을 하고서도 첫마디부터 틀리다니, 나 같은 돌대가리는 죽어야 해. 살아있을 필요가 없어. 그래, 죽어버리자. 밥 한끼라도 축내지 않으려면 나 같은 돌대가리는 죽어버리는 게 나아. 그런데 어떻게 죽을까? 그것도 어려울 것 같고 여기 미국선 먹고 죽을 독약도 구할 수가 없고, 어찌한다...' 죽는 방법을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생각났습니다. '가만있자, 진화론이 맞는다면 내가 돌대가리니까 내 아들은 나무대가리, 손자는 두부대가리...이렇게 진화되면 5, 6대 후에는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데 내가 지금 죽으면 그 천재가 나올 수 없지 않은가. 아! 죽어서는 안되겠구나. 암 절대 죽어서는 안되지.' 진화론은 참으로 좋은 이론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귀국 후 숱한 전투를 겪고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지금껏 살아서 이렇게 두 분께 편지를 쓰고 있으니까요. 여러분, 젊었을 때 부디 공부 열심히 해 주세요.
Board 삶 속 글 2022.12.26 風文 R 640
○○노조 굳은살은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말이 굳으면 대상을 별생각 없이 일정한 이미지로 자동 해석하게 한다. 한국 사회의 반노동 반노조 정서는 말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다. ‘노조’라는 단어를 읊조려 보라.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들이 떠오르나? ‘머리띠, 구호, 삭발, 파업’이 아닌, ‘친구, 맞잡은 손, 비를 피할 큰 우산’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노조’의 빈자리를 채우는 말을 떠올려 보라. 예전엔 ‘어용노조, 민주노조’ 정도였다면, 지금은 ‘강성노조, 귀족노조’라는 말이 떠오른다. 최근엔 ‘부패노조’라는 표현도 등장. 진실을 감추고 선입견을 심어주는 데 성공한 말들이다. ‘귀족노조’라는 말은 의미가 이중적인 만큼 효과가 좋다. 이 말은 월급과 복지가 좋은 일부 대기업 노조를 지칭할 수도 있지만, 노조 전체를 특권층으로 싸잡아 매도할 수도 있다(영어의 ‘노동 귀족’(labor aristocracy)이란 말은 특권화되고 보수화된 노조 간부를 뜻한다).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려도 노조가 있으면 무조건 ‘귀족노조’다. 노조를 꿈도 못 꾸는 노동자들에겐 노조 자체가 부러움과 상실감의 대상이다. 말은 투쟁만큼 중요하다. 정부와 언론의 악의적 선동이 넘치지만, 우리도 새로운 말을 발명해야 한다. 마치 칫솔처럼, 손난로처럼, 이불처럼 가깝고 친근한 느낌을 주는 수식어를 찾아내어 꾸준히 써야 한다. 그러니, 송년 모임에 가는 차 안에서라도 ‘노조’의 꾸밈말로 어떤 게 좋을지 생각해 봄이 어떨까. 나는 아직까진 문장 하나만 생각날 뿐. ‘노조는 부패한 게 아니라 부족한 것이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3부 국어공부, 무엇이 문제인가 논술시험,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써야 하나? (2/2)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편안하게 살아가고) 발명 등으로 (따위로, 같은 것으로) 윤택하게 (넉넉하게) 발휘되고 (드러나고) 보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더 낫게 살아가도록) 더욱 가속화되고 (빨라지고) 편리함의 이기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들이 (편리한 기구로) 적지 않은 것 같다. (적지 않다) 그로 인해 나태해지며 (그 때문에 게을러지며) 나쁜 범죄에 사용하여 (범죄에 써서)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세상 사람들이 정신차리게도) 고도로 (높이,크게) 습득하여 (배우고 얻어) 악용한다면 (나쁘게 쓴다면) 기술혁신을 통한 신제품 개발이나 (기술을 혁신해서 새로운 물건을 만들거나) 기여한다면 (이바지한다면) 활용하면 (살려 쓰면) 큰 기여를 하지만 (크게 이바지 하지만) 그 기계가 작동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나약한 (약한) 그것의 이기를 누릴 자유가 있으나 (그 기구를 쓸) 사고방식은 (생각) 과하면 (지나치면) 옛말을 간과해서는 (잊어서는) 인간소외의 위기의식 때문이리라. (사람을 잃어버리는 위태함. 사람이 따돌려지는 위태함. 사람이 사람 노릇을 못 하는 위태함) 쉬운 우리말, 삶에서 익힌 말을 쓰면 틀린 글이 되지 않는다. 책으로 읽은 글말을 쓰니까 이와같이 어려운 한자말이 나오고, 일본말법이 되고,, 그것도 아주 틀린 말을 예사로 쓰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다음에는 보기글2인데, 여기서는 글에서만 쓰는 잘못된 말이 하나도 없다. 자기 자신의 의견을 자기 말로 쓴 것이다. 다만 널리 입말로 되어 버린 한자말이나 일본말이 두세 군데 보일 뿐이다. 현실적인 문제점을 (현실의, 현실에서 부딪힌) 학생 개개인을 (하나하나를) 점수화한다면 열성적인 어머니들이 (점수로 매긴다면 열성이 있는) 그리고 우리 나라에 학생들이 맘놓고 봉사할 때가.. 란 대문에서 말이 좀 덜 되었는데, 이것은 아마도 우리 나라 학교에서 라고 쓸 것을 학교에 라고 잘못 쓴 것이 아니라면, 신문에 옮겨 실을 때 잘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이만큼 깨끗하게 쓴 고등학생의 글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만은 사실이다. 그다음 보기글3도 글이 아주 깨끗한 편이다. 유일신 유일하다고 란 말은 전도사란 사람과 주고받는 말 가운데서 나왔던 것 같고, 그래서 썼다고 볼 수 있다. 그 밖에 몇가지, 안 써도 될 글말이나 잘못 쓴 말을 들어 본다. 그 종교들은 각기 (저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다. 흔히 고유한 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 대개는 안 써도 될 자리에 쓰는 것이다. 종교는 우위(우열)를 가릴 수 없다. 행위를 (짓을) 네 명이 (네사람, 넷) 유일무이한 (유일한,오직 하나만) 사이비 (엉터리) 종교들도 그러므로 (그래서, 그러기에) 그러므로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입으로 하는 말을 쓰는 것이 낫다. 다른 종교를 헐뜯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기 종교를 남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제목에서도 다른 종교를 헐뜯지 말자 로 되어 있는데, 글의 내용이 다른 종교를 헐뜯는다기보다는 자기 종교를 억지로 남에게 전해 주려고 하는 사람들의 잘못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니까 말을 고치는 것이 옳겠다. 이 글을 쓴 학생이 왜 강요당한 것을 헐뜯는다고 했을까? 이것은 아마도 이 학생이 그 전도사란 사람에게 어느 정도 좋지 못한 감정 같은 것을 가지게 되어 정확한 말을 간결하게 써서 아주 살아 있는 글이 되었는데도 다른 부분에서는 몇 가지 글말을 쓴 까닭조차, 역시 그 정도로 조금은 생각이 감정으로 떠 있었기 때문이겠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