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3부 국어공부, 무엇이 문제인가 논술시험, 무엇이 문제인가 논술은 어떤 글인가? 논술이란 자기 의견을 쓰는 것, 또는 자기 의견을 써 놓은 글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논술이란 말의 뜻을 살피면 세 가지 요소가 들어가 있다고 보겠는데, 그것은 1.자기자신의 2.의견(생각,주장)을 3.자기 말로 쓴 글이란 것이다. 이것을 좀 더 풀어서 말하면 1.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 남의 생각, 어른들이 가르쳐주는 생각, 남이 적어 놓은 글을 읽고 그것을 흉내내거나 되풀이해서는 제대로 된 논술일 수 없다. 그러기에 2.제몸에서(삶에서) 우러난 의견, 또는 주장이라야 하는 거고, 이런 의견이나 주장을 쓰는 3.말도 남의 글에서 빌려온 말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의 삶에서 나온 말로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입학시험 준비로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 논술을 이 세가지 요소로 따져 볼 때 참된 논술문이라 할 수 없다. 1.지도하는 어른들이 말해 주고 가르쳐 준 것을 그대로 받아 정리해서 쓰는 글로 되어 있고, 2. 그래서 그 주장이나 의견이 자기 삶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고 남의 것이요 남의 것을 따라가고 흉내내거나 남의 것을 제것인 것처럼 꾸며 보이는 것이고, 3.글도 어른들이 쓴 것을 그대로 흉내낸 것뿐이다. 이런 논술 쓰기에는 누가 얼마나 어른들의 글을 잘 읽어서 그것을 요령있게 정리해서 썼나, 누가 얼마나 읽은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잘 암기했는가, 근사한 말과 문장을 제것으로 옮겨 쓸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 평가의 잣대가 된다. 물론 남의 의견이나 주장을 읽고서 그것을 그대로 요약 정리할 뿐 아니라, 그 주장이나 의견에 대해 자기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로 지금 학생들이 쓰고 있는 거의 모든 논술문이 실제 삶에서 떠나 있는 상태에서 다만 책만 읽고서 쓰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삶에서 떠나 다만 글만 읽고 쓰는 의견이 어떻게 제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논술에서 쓴 의견이란 것은 어른들이 주는 것을 받아들인 것일 뿐이다. 논술 글쓰기의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이것이다. 어떤 글을 읽거나 책을 읽어서 그 내용을 정리하고 요약하는 글쓰기 공부는 국민학생 때부터 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이렇게 학습한 내용을 정리한 글 은 그런 대로 쓸 필요가 있기는 하다. 그런데, 지금 대학입시 준비로 하고 있는 논술 글쓰기가 학습한(책을 읽은)것을 정리한 글 정도로 쓰는 것일까? 그렇다면 여기서 더 논의하지는 않아야 되겠지. 하지만 그런 글로 보기에는 학생들을 너무 괴롭히고, 너무 머리를 어지럽힌다. 문제는 글쓰기가 참된 사람이되도록 하는 교육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시험점수를 따기 위해 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다. 이제 이 논술문이란 글이 여러 가지 글의 갈래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어디인가를 알아 보아야 할 차례가 되었다. 물론 이것은 논술이란 것이 그저 남의 책만 읽고 어른들이 말하는 것, 가르쳐 주는 것만을 정리하거나 거기에다가 적당하게 자기 생각이라고 하여 의견을 적는 정도의 글이 아니라, 진정에서 우러난 자기 생각이나 의견을 쓰는 글로 보고 매기는 자리인 것이다. - 도표생략 이 표는 우리 문장 쓰기 에서 옮겨 썼는데 초등학생부터 시작하여 중고등학생을 거쳐 대학생과 일반 어른들과 글쓰기를 전문으로 하는 문인에 이르기까지 쓰게 되는 글의 모든 갈래를 나타낸 것이다. 이 표에서 글의 갈래가 10가지로 나누어져 있고, 논설문은 그 10가지 가운데 1가지다. 그리고 이 논설문이란 것을 또 주장하는 글(논술하는 글)과 연구문, 연구보고문, 성명서, 진정서, 시사평론, 일반평론 - 이렇게 일곱 가지쯤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논술이라는 글은 이 일곱 가지 가운데 한가지다. 논술문은 국민학교 4학년부터 쓰게 할 수 있는 주장하는 글 을 대학생이 되면 이렇게 말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논술 이란 말도 없애고 주장하는 글 이라고 해서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이 똑같은 말을 썼으면 좋겠다.) 아무튼 글의 갈래 열 가지 가운데 한 가지인 논설문, 다시 이 논설문 안에 들어 있는 일곱 가지 가운데 한 가지인 논설문 안에 들어 있는 일곱 가지 글 가운데 한 가지, 이것이 논술 (주장하는 글)이란 글의 자리다. 그것도 국민학교 4학년부터 조금씩 쓰게 하는 것이 바른 길이다. 그런데 글쓰기라면 논술밖에 없는 줄 알고, 논술만 쓰게 한다는 것은 얼마나 잘못 되었는가! 더구나 삶을 등지고서 남의 글 흉내만 내도록 하면서 말이다.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전광용편" 전광용(1919~1988) 소설가. 국문학자. 함남 북청 출생. 서울대 문리대 및 대학원 졸업. 문학 박사. 서울 대학 교수 역임. 동화로 출발했다가 소설로 옮긴 전광용은 냉철한 사실적 필치로 한국적인 여러 상황을 추구하는 것이 된 작품 경향이다. 감각적 요소를 곁들인 간결 정확한 문장과 현장 확인을 내세우는 소재의 소화는 그의 작가적 성실성으로 평가되고 있다. 가을의 여정 여행은 언제나 즐거운 것이다. 봄은 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그리고 여름은 여름, 겨울은 겨울대로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그대로 다 새로운 즐거움을 가슴 속에 안겨다 주는 청신제라고나 할까. 그뿐인가. 농촌은 농촌대로 전원의 유장한 목가적인 맛을, 산은 산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그것만이 지니는 독특한 자연의 시정을 선물하는가 하면, 새롭고 낯선 도시의 가로는 그것대로 흙 속에 파묻혔던 사람들에게 산뜻한 미지의 감각에 경이에 찬 눈동자를 뒹굴리게 한다. 그러기에 천하 명산 금강산도 계절에 따라 봉래, 풍악, 개골, 금강 등 그 때마다의 승경의 아치를 상징하는 이명들을 가지고 있다. 새 움 트는 봄의 정경이 산책이나 소풍을 연상시키는 경쾌한 리듬이라면, 여름의 무르익은 녹음과 작열하는 태양은 그대로 바다의 유혹을 자극하는 정열 발산의 표정임에 틀림없는 성싶다. 앙상한 가지에 설경어린 겨울 시계가 남성적인 장엄미를 과시하는 것이라면, 사색이 곁들인 여정의 풍일은 아무래도 가을만이 간직한 자연의 격이 아닐 수 없는 것 같다. 가을! 그 음향의 여운 속에는, 그 너머의 첩첩한 시각과 굽이굽이 상념의 계속을 함께 함축하여 주는 낭만이 깃들여 있는 것만 같게 여겨짐을 어찌하랴. 티없이 맑게 트인 드높은 하늘을 끝없이 훨훨 날고만 싶은 충동은 가을만이 지니는 독점물인 것만 같다. 먼지 속에 복닥거리는 도시의 소음을 잠시 외면하고, 놀진 저물녘 차창에 기대어 시골 초가집 지붕에 널어 말리는 빨간 고추와 싸리 울타리에 늘어진 노오란 호박에 눈을 주며 엑조틱한 정감에 잠기는 것은 비단 소녀의 값싼 감상쯤으로만 돌릴 것인가... 가을이라면 으레 곁붙는 푸른 하늘, 귀뚜라미, 기러기, 그리고 단풍과 낙엽, 이것들은 시인 묵객의 입에뿐만 아니라 어린이들 작문 구절에까지도 예사로 오르내려 이젠 좀 진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도 시간과 장소와 사람에 따라 씌어질 나름으로, 그 맛은 또 그 맛대로 전연 가셔진 것은 아닌 것만 같다. 가을 나그네! 그것은 현대 문명의 첨단의 하나인 제트기의 여로에서도 맛보지 말라는 법은 없으리라. 그러나, 아침을 서울에서 먹고 다음날 점심을 파리에서 먹어야 하는 기계 문명을 현기증 나는 메커니즘 속에서는, 계절의 신비로운 순환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지 자못 의심이 가시지 않는 바도 아니다. 그러고 보면 죽장 망혜 단표자의 옛 풍류는 아직도 산정의 진미 속에 천고여하게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가을' 하면 '나그네'와 더불어 떠오르는 추억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부전 고원의 아침 해돋이, 자작나무 수풀을 건너 보이는 호반의 정회와 금강산 상팔담의 사파이어같이 맑고도 푸른 물에 비낀 석양 무렵의 다감한 회포를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지금은 휴전선 너머 먼 이방 마냥, 흘러가는 구름에 착잡한 회상만 얽힐 뿐이다. 운악산도 금강산과 같은 산맥 줄기여서 그에 비견할 수 있는 승경이라고들 하지만, 백보를 양보해도 금강의 절승에 견주면 해갈의 경지에도 닿지 못하는 끝없는 아쉬움이 감돌 뿐이다. 가을이 되면 어디론가 자꾸만 가고만 싶어지니, 이도 또한 병이런가... 그러나 막상 떠나려고 하니 갈 곳이 없다. 설악도, 지리도, 속리도, 한라도 다 한 번 보고 나면 다시 또 가고 싶은 그 이상의 구미를 유발하지 못하는, 그저 그만 정도의 것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 가을을, 이 상량한 계절을 도심에서 새기며 그대로야 보낼쏜가? 유혹이 거듭되는 여정, 단풍이 좀더 짙어지면 가야산 유곡의 해인사라도 찾아야만이 가을의 병은 치유될 것만 같다. 가을은 소녀처럼 가슴 부푸는 계절, 더욱이 온 누리에서 가장 맑고 아름답다는 이 땅의 가을 하늘! 인공이 미비하니 천부에라도 기대볼까? 그 가을은 여수를 지겹게 안겨다 주기에 더울 매력을 느끼는 것이나 아닐지...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추억의 가죽피리 저는 최근 추억속의 한 친구를 우연히 만나 오랜만에 정말 아주 오래만에 살고 있음이, 그래서 웃을 수 있음이 너무 행복했던 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얼마 전 저희 회사에 부자재를 공급하던 한 업체가 경영난으로 도산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뒤로 한 채 새로운 거래선을 찾기 위해 아는 이의 소개로 근교의 공단에 있는 모 업체를 방문하였습니다. 상담은 생각보다 순조로웠고,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나누며 사무실 문을 막 나서려다 제법 넓은 사무실 저편에 아주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눈이 좀 나쁜지라 '분명히 아는 얼굴인데....'라고 생각하며 실눈을 뜨고 잠시 그를 쳐다보는데 마침 그도 자기에게 오는 시선을 느낀 듯이 저를 잠시 쳐다보더니 사무실이 떠나가라 소리치며 벌떡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으악- 대갈아!(대가리는 저의 학창시절 별명이었음)" 착 달라붙은 곱슬머리! 두툼한 입술! 포대를 하나 씌워 보면 앞뒤좌우 구분이 안되는 통자루 몸매! 아! 저는 주마등처럼 제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추억을 되새기며 외쳤죠. "똥갈아~. 아니 가죽피리." 여기서 잠시 이 친구를 소개할까 합니다. 이 친구와 저는 대학동창이었습니다. 대학시절 저도 만만찮은 악동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만 '똥가리' 아니 '가죽피리!' 가히 이 친구의 명성은 저의 대학사에 깊이 남고도 또 남을 그러한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똥가리'라는 별명은 워낙이 짜리몽땅한 이 친구의 몸매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 친구의 진짜 진가는 '가죽피리'라는 별명에서 벌써 눈치채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시도때도 없이 발포하는 '방귀'의 대가라는 것입니다. 웬만한 남자들의 좀 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방귀 정도로 생각하시면 큰 오산입니다. 이 친구도 처음엔 그저 남들보다 좀 자주 발산되는 생리현상을 그저 아무 생각없이 재미로 즐기다가 언제부터인가 완전히 취미생활로 바뀌면서 소리의 장단과 음의 높낮이, 심지어 냄새까지 조절하는 방귀에 관한 한 어떤 달인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이 친구의 명성은 그 시절 바로 방귀 때문에 중요한 학점을 놓쳐 졸업을 하지 못하게 될 뻔한 사건으로 치달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 사건의 전말인즉, 평소 이 친구의 소행이 강의시간 중에 특히 수업이 좀 지루해질 무렵이면 여지없이 괴음을 발포하여 웃음바다르 만들기 일수였고, 그 소리 또한 다양해서 같은 과 친구들은 물론 교수님까지도 그의 새로운 방귀소리 개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희과의 유일한 여교수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 당시 상당한 미모에다 젊고 유능한 교수님이셨기에 늘 남학생들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이 '가죽피리' 역시 그 여교수님을 누구 못지 않게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이 친구는 늘 여교수님의 강의시간 중에 그 흠모의 표현을 주특기인 방귀소리로 대신하곤 하였는데 다른 강의시간에 발포하던 그 다양한 소리들과는 완연히 다른 아주 일관된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뽀오-오-오-옹-." 아주 가늘고 길게.... 사랑의 애틋한 마음을 전하려고 상당한 시간을 연습하여 만든 소리래나? 어쨋든 그 소리는 제가 듣기에도 상당한 애절함이 담겨 있는 것 같았고, 이 친구의 피리소리는 학교내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던지라 별 수 없이 참아 넘기시던 그 여교수님께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퇴장 명령을 내리게 된 사건이 발생하고야 말았습니다. 화창한 날씨의 어느 날 그날 따라 유난히 화사한 의상을 입고 강의실에 들어오신 여교수님. 그날도 빠짐없이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이동근(이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가죽필'의 본명입니다)." 교수님께서 호명하자, 대답은 간데 없고 난데없이 들리는 피리소리가 있었습니다. "뽀-오-오-옹-." 아! 이 녀석이 입으로 하는 대답을 '엉덩이'로 그 애절한 '가죽피리'소리로 대신하였던 것입니다. 순간 장내는 터지는 폭소와 함께 아수라장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그 여교수님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드디어 이 친구에게 강의실 퇴장 명령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그 의지가 워낙 완강하셨던지라 넉살 좋은 이 친구도 하는 수없이 머쓱한 얼굴로 주섬주섬 책을 챙기고는 뒷문으로 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장내가 정리되고 이제 막 수업이 시작되려 하자, 강의 실 앞문이 삐걱- 열리더니 큼지막한 엉덩이가 삐죽 보였습니다. "뽀오-오-오-옹-." 그 소리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문이 닫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강의실의 모든 친구들은 웃다 못해 거의 졸도 상태에 빠져 버렸고, 그후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습니다. 괘씸죄 + 교수모독죄 + 알파로 F학점. 전공필수과목이던지라, 그 뒷수습을 하기 위해 '가죽피리'의 노력은 거의 피눈물 나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다시 현실로 돌려, 한 중견업체의 이사로 나타난 이 친구와 저는 제가 먼저 군대 입대하게 되면서 헤어진 후, 십수년을 만나지 못했고 사십을 목전에 둔 이 겨울,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된 것입니다. 퇴근하기엔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의기투합한 우리는 인근 선술집을 찾았습니다. 외진 지역이라 택시는 좀처럼 보이질 않았고, 마침 바로 옆 정류장에 버스가 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저거 타고 가자!" 마치 학창시절처럼 우루루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퇴근 시간보다 두어 시간 이른 시간이었지만 버스 안은 제법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몇 정류장을 지났을까? 가죽피리가 제게 말했습니다. "자리 하나 마련해 줄까?" 이 녀석이 나이도 잊은 채 옛날의 장난끼가 발동한 것이었습니다. 버스 안을 휙 둘러보더니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소곳이 앉아 있는 한 아가씨 옆으로 갔습니다. 잠시 뒤, 인상을 찌푸린 아가씨는 손으로 코를 막으며 애써 참고 있는데 뒷자석의 아주머니가 한 소리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저씨! 좀 심한 거 아입니꺼?" 버스 안의 승객들이 낄낄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만한 말로 물러설 가죽피리가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일격인 듯, "빠다다다-닥." 그런데 우째 이번엔 소리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버스안의 승객들은 못 참겠다는 듯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햇고, 제법 야무지게 보이는 그 아가씨 역시 상대의 의도를 이미 간파한 듯 창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끝까지 버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데 이게 웬일입니까? 우리의 가죽피리가 상당히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다시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나즈막이 제게 말했습니다. "대갈아, 내리자!" 그만한 일로 의기소침할 친구는 결코 아닌 탓에 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왜?" 그러자 이 친구는 다시 야릇한 인상을 쓰며 제 귀에다 대고 속삭였습니다. "쌌다!" 아!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란 말입니까? 우린 더 이상 얘기할 겨를도 없이 다급히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목욕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니도 인자 다 됐다. 나이 들면 어쩔 수 없는 기라." 우린 물 속에 몸을 담근 채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래! 참 많은 시간이 흘러가 버린 것 같다." 젊다 못해 푸르기만 하던 청춘은 다 어디론가 떠나가 버리고 듬성듬성 솟아오르는 흰머리며, 자글자글 눈가의 주름, 한 가정의 가장으로, 이 시대의 중심을 짊어진 주역으로, 눌러오는 중압감만큼이나 처진 어깨를.... 세월을 거역할 수 없는 나약함에 공감이 온 듯 우리는 물 속에 몸을 맡긴 채 잠시 동안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다 슬쩍 눈을 떠보니 평온한 얼굴로 잠시 명상에 잠겨 있던 가죽피리 녀석의 얼굴에 피시시 미소가 떠오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순간 턱까지 물에 담근 채 눈을 감고 잇는 얼굴 바로 앞 수면위로 뽀글뽀글 물방울이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Board 삶 속 글 2022.12.22 風文 R 495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이영도편" 이영도(1916~1976) 여류 시인. 경북 청도 출생. 경남에서 오랫동안 여학교 교사 생활을 했음. 시조를 주로 썼으며 수필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음. 이영도의 시조들에는 민족 정서를 바탕으로 잊혀져 가는 고유의 가락을 재구현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간절한 표현으로 자신의 정감을 다스리며 인생을 관조하는 세계를 보여 주었다. 모색 지극히 그리운 이를 생각할 때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돌듯, 나는 모색 앞에 설 때마다 그러한 감정에 젖어들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 가장 순수해질 때는 아마도 모색과 같은 심색일는지 모른다. 은은히 울려 오는 종 소리 같은 빛, 모색은 참회의 표정이요, 기도의 자세다. 하루 동안을 겪어 낸 번잡한 과정 다음에 밀려드는 영육의 피로와 허황한 감회는 마치 한낮의 강렬했던 연소의 여운이 먼 멧등에 서리듯 외로움이 감겨 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 유명한 화가 밀레도 한 가족의 경건한 기도의 모습을 모색 앞에 세우고 그림의 제목을 만종이라 붙였는지도 모른다. 황혼이 기울 무렵, 산그림자 내리는 들녘에 서면 슬프디 슬픈 보랏빛 향수에 싸여 신의 음성은 사랑하라고만 들려 오고, 원수 같은 것 미움 같은 것에 멍든 자국마저 밀물에 모래알 가셔지듯 곱기 씻겨 가는 빛깔... 어쩌면 내 인생의 고달픈 종언도 이같이 고울 수 있을 것만 같아진다. 가끔 나는 해질 무렵에 경복궁 뒷담을 끼고 효자동 종점까지 혼자 거닐 때가 있다. 이 거리에 석양이 내릴 때 가로수에 서리는 빛깔을 보기 위해서다. 봄 여름은 너울거리는 푸르름이 마음을 축여 주어 조용한 생기를 얻을 수 있지만 만추에서 초봄까지의 낙목일 경우엔 말할 수 없는 눈물겨운 빛이 된다. 가물가물 일직선으로 열지은 나목들이 암회색 높은 궁창을 배경하고 보랏빛으로 물들어 가는 하늘에 비춰 선 정취는 바로 그윽히 여울져 내리는 거문고의 음률이다. 이 음색에 취하여 혼자 걷노라면 내 마음은 고운 고독에 법열이 느껴지고 어쩌면 이 길이 서역 만리, 그보다 더 먼 영겁과 통한 것 같은 아득함에 젖어진다. 그 무수히 소용돌던 역사의 핏자국도 젊은 포효도 창연히 연륜 위에 감기는 애상일 뿐, 그 날에 절박하던 목숨의 상채기마저 사위어져 가는 낙조처럼 아물어 드는 손길! 모색은 진정 나의 영혼에 슬픔과 정화를 주고 그리움과 사랑을 배게 하고 겸허를 가르치고, 철학과 종교와 체념과 또 내일에의 새로움과 아름다움과...일체의 뜻과 말씀을 있게 하는 가멸음의 빛이 아닐 수 없다. 모색 앞에 서면 나는 언제나 그윽한 거문고의 음률 같은 애상에 마음은 우울을 씻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