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 기도 시 만남의 길 위에서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제가 아직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 또한 아름다운 축복이며 의미 있는 선물로 이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진정 당신과의 만남으로 저의 삶은 새로운 노래로 피어오르며 이웃과의 만남이 피워 내는 새로운 꽃들이 저의 정원에 가득함을 감사드립니다 만남의 길 위에서 가장 곁에 있는 저의 가족들을 사랑하고 멀리 있어도 마음으로 함께하는 벗과 친지들을 그리워하며 저의 편견과 불친절과 무관심으로 어느새 멀어져 간 이웃들을 뉘우침의 눈물 속에 기억합니다 깊게 뿌리내리는 만남이든지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든지 모든 만남은 제 자신을 정직하게 비추어 주는 거울이 되며 인생의 사계절을 가르쳐주는 지혜서입니다 사람들의 서로 다른 모습들만큼이나 다양하게 열려 오는 만남의 길 위에서 사랑과 인내와 정성을 다하신 주님 나무랄 데 없는 의인뿐 아니라 가장 멸시받는 죄인들에게조차 성급한 판단과 처벌의 돌팔매질보다는 자비와 연민으로 다가가셨던 주님 당신의 그 모습을 생각하면 사랑하는 일에서도 늘 계산이 앞서고 까다롭게 따지려드는 저의 옹졸함이 너무도 부끄럽습니다 습관적으로 남을 먼저 판단하고 늘상 이웃 사랑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이기적인 태도로 슬픔과 상처를 이웃에게 더 많이 주었으며 용서하는 일에는 굼뜨기 그지없었음을 용서하십시오 때로는 만남에서 오는 축복보다 작은 근심과 두려움을 더 많이 헤아리며 남을 의심하는 겁쟁이임을 용서하십시오 앞으로도 멀리 가야 할 만남의 길 위에서 저의 비겁한 경계심을 무너뜨리고 당신처럼 겸허하고 자유로운 기쁨의 순례자가 되게 해주십시오 반갑고 기쁘게 다가오는 만남뿐 아니라 성가시고 부담스런 만남까지도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깊고 높은 지혜와 용기를 주십시오 저는 비록 완벽하지 못한 사람이지만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좋은 사람으로 좋은 만남을 이루며 살고 싶습니다 많이 사랑할수록 더 맑게 흐르는 주님의 바다를 향해 저도 이웃을 더 많이 사랑하며 쉬임없이 흘러가는 작지만 아름다운 시냇물이 되고 싶습니다.
Board 삶 속 글 2022.12.08 風文 R 542
동병상련(同病相憐) 同:한가지 동. 病:앓을 병. 相:서로 상. 憐:불쌍히 여길 련. [유사어] 동우상구(同優相救), 동주상구(同舟相救), 동기상구(同氣相救), 동악상조(同惡相助),동류상구(同類相救), 오월동주(吳越同舟), 유유상종(類類相從). [참조] 와신상담(臥薪賞膽).[출전]《吳越春秋》〈闔閭內傳〉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엽게 여긴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딱하게 여겨 동정하고 돕는다는 말. 전국시대인 기원전 515년, 오(吳)나라의 공자 광(光)은 사촌 동생인 오왕 요(僚)를 시해한 뒤 오왕 합려(闔閭)라 일컫고, 자객을 천거하는 등 반란에 적극 협조한 오자서(伍子胥)를 중용했다. 오자서는 7년 전 초나라의 태자 소부(太子少傅) 비무기(費無忌)의 모함으로 태자태부(太子太傅)로 있던 아버지와 역시 관리였던 맏형이 처형당하자 복수의 화신이 되어 오나라로 피신해 온 망명객이었다. 그가 반란에 적극 협조한 것도 실은 유능한 광(합려)이 왕위에 오름으로써 부형(父兄)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초나라 공략의 길이 열릴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 해 또 비무기의 모함으로 아버지를 잃은 백비(伯?)가 오나라로 피신해 오자 오자서는 그를 오왕 합려에게 천거하여 대부(大夫) 벼슬에 오르게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오자서는 대부 피리(被離)에게 힐난을 받았다. “백비의 눈길은 매와 같고 걸음걸이는 호랑이와 같으니[鷹視虎步], 이는 필시 살인할 악상(惡相)이오. 그런데 귀공은 무슨 까닭으로 그런 인물을 천거하였소?” 피리의 말이 끝나자 오자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뭐 별다른 까닭은 없소이다. 하상가(河上歌)에도 ‘동병상련’ 동우상구(同憂相救)란 말이 있듯이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백비를 돕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지요.” 그로부터 9년 후 합려가 초나라를 공략, 대승함으로써 오자서와 백비는 마침내 부형의 원수를 갚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오자서는 불행히도 피리의 예언대로 월(越)나라에 매수된 백비의 모함에 빠져 분사(憤死)하고 말았다. [주] 오자서 : 춘추 시대의 초(楚)나라 사람. 이름은 원(員). 초나라의 태자소부(太子少傅) 비무기(費無忌)의 모함으로 아버지 오사(吳奢)와 형 오상(伍尙)이 초나라 평왕(平王)에게 처형당하자 오나라로 망명함. 9년 후 오왕 합려를 도와 초나라의 도읍 영으로 쳐들어가 평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을 꺼내어 300대나 매질하고 나서야 원한을 풀었다고 함. [참조] 일모도원(日暮途遠).
Board 고사성어 2022.12.08 風文 R 812
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2부 - 시를 어떻게 쓸까 시를 살리고 말을 살리려면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서 맨 처음으로 썼다고 하는 신시와 우리 나라에서가장 훌룡한 시를 썼다고 모두가 말하는 두 사람이 쓴 시를 들어 시와 삶과 말의 문제를 생각해 보았다. 이제 다음에는 오늘날 씌어 나오는 시에서 우리말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가를 살피기로 하겠다. 여기 들어 놓은 시 구절들은 모두 신문에 발표된 시에서 따온 것이다. 문제가 되는 말에는 밑줄을 그은 다음에 묶음표를 해서 바람직한 우리말을 적어 놓았는데, 내가 바로잡아 놓은 말보다 더 좋은 우리말이 있는 경우도 나올 듯하다. 어머니는 꽝꽝 언 대지 안에 (땅) 사랑을 품고 키우는 나의 어머니 (우리 어머니) 이것은 시의 제목인데, 제목이든지 본문이든지 내 느낌으로는 우리 어머니 라야 우리말답고 우리말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 그것은 옛날 사람이 가졌던 느낌 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겠다. 또 모두가 우리말을 이렇게 쓰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한다 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명은 될 수 없다. 사실은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 우리 집 우리 고향 우리 학교 를 죄다 나의.. 로 쓰기 시작해서 끊임없이 우리말을 더럽히는 데 앞장선 것은 바로 문학작품을 쓰는 시인과 소설가들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글말에 중독이 되어있지 않는 사람은 우리... 를 쓰고 있으니 마땅히 우리말을 살려야 한다. 우수의 바람..(근심) 봄이면 모든 것이 거듭나기를 기원한다(빈다) 뒤척이는 몸짓으로 그리운 언어를 띄우거나 (말) 비상하는 기쁨으로 (날아오르는, 솟구치는) 살아 있음을 노래하는 아침은 한잔의 생처럼 (시제목) 아침은 산사에서 마시는 (산속 절) 한잔의 생수처럼 온다.(샘물) 생처럼 이라 썼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산사 라고 더러 쓰는데, 우리 글자로 쓰면 무슨 말인지 모르게 되고, 또 귀로 들어도 모른다. 귀로 들어서 알 수 없는 말은 우리말이 아니다. 산속 절 하든지 그냥 절 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푸른 치마자락으로 몸을 가리우고 (가리고) 굽이치는 바다 깊은 해심의 속살이 보인다.(한가운데) 가린다 란 말은 가리운다 고 쓰는 것은 잘못되었다. 해심 은 바다 가운데 란 뜻의 한문글자말인데, 우리 글자로 쓰면 무슨 말인지 알기 힘든다. 이런 말은 쓸 필요가 없다. 그 앞에 또 바다 란 말이 나왔으니 한 가운데 로만 쓰면 될것이다. 정오의(한낮) 햇살이 용해되어 (녹아서) 투명해질수록 (환히 비칠수록) 뜨거운 한 잔의 커피를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은 예쁘고 작은 스푼으로 (숟가락) 커피와 프림 설탕을 담아 앞에 예쁘고 작은이 나와 있으니 양숟가락 이니 차숟가락 이니 오목숟가락이니 할 필요도 없다. 나도 예수처럼 자유에의 깃발 펄럭이며 (자유의) 내 낡은 수첩 속에 서투른 시의 제목으로 녹두꽃 사내 라 이름하고 널 지우려 했다. (이름 적고) 이름한다 , 이름하고 이런 말은 없다. 이것은 아주 일본말을 직역한 것이다. 황혼을 등지고서 (저녁 어스름) 차가운 손 흔들며 별들이 비행하는 불멸의 시간 속에 (날아가는 영원의) 불멸 보다는 영원 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잔설도 사그라진 황량한 강변을 본다. (남은눈, 쓸쓸한 강가) 강변 이란 말은 아주 널리 써서 우리말로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강가 가 더 낫다고 본다. 눈끝엔 절단된 산맥 성큼성큼 매달린다. (끊어진 산줄기) 새들이 돌아온다 사계의 저녁이다 (사철) 가출했던 마음이여 전우를 맞았는지 (집 나갔던, 천둥비) 가슴 한켠 둥지에로 돌아와 잠드는 새 (둥지로) 일몰을 배웅하는 (저물녁, 저문날, 지는해) 낮은 처마 연기 자락 겨울철 피난살이 후조의 날개짓에 (철새) 숨죽인 천삼백리 강 식탁 위를 채우리 (밥상) 육백년 한을 접어서 침묵으로 앉았다.(말없이) 세월의 뼈마디를 침묵으로 딛고 서서 (말없이) 여명의 날개 자르고 (새벽) 추락하는 벼랑 저 끝 (떨어지는) 일곱 문 반짜리 내 유년이 잠겨있는 (어릴적) 텔레비전 화면 속 녹이 슨 갈대밭에 폐수를 배경으로 실루엣만 날아간다. (버린 물 그위로 그림자만) 전생의 이름표를 들고 꿈길 향해 달려오네 (꿈길로) 이 밖에도 얼마든지 보기를 들 수 있지만 이쯤 해두기로 한다. 내가 보기로 우리 나라의 시인들은 우리말에 너무 관심이 없고 감각이 무디다. 문학이라면 말을 다루는 예술이고 말로 빚어내는 예술인데, 더구나 시는 말을 고르고 다듬는 일에 그 어떤 글쓰기보다 힘들여야 하는데, 시인들이 이렇게 어설픈 남의 글자말, 일본말법 따위를 일부러 자랑스럽게 쓰면서 살아 있는 우리말을 버리고 있으니, 이 사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오늘날 시인들은 새벽이란 말을 쓰면 시가 안 되고 반드시 여명 이라고 해야 시가 되는 줄 안다. 저녁무렵 이라든지 저물녘 저녁어스름 땅거미 이렇게 얼마든지 좋은 우리말을 안 쓰고 비애 환희 우수 이런 따위 한자말이라야 시가 된다고 알고 있다. 이것이 모두 어제 오늘 갑자기 이렇게 된 것이 아니고 김소월이나 정지용같은 그 유명시인 때부터, 아니 맨 처음 일본시와 서양시를 따라 쓰기 시작했던 최남선때부터 잘못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일제시대에는 잘못된 정도가 그다지 심하지는 않아서 우리말이 많이 살아 있는데, 갈수록 나빠져서 오늘날에는 시가 우리말을 죽이는 주범이 되고, 말자랑, 말치장, 말장난의 글쓰기가 되어가고 있다. 왜 이렇게 되어 가는가? 원인은 환하다. 시인들이 모두 삶을 등지고 방안에 앉아 머리만 가지고 시를 쓰기 때문이다. 시가 병든 것은 시인이 병든 까닭이요, 시가 죽은 것은 시인이 죽은 것이다. 어른들의 잘못된 시 쓰기는 아이들의 시 쓰기 교육도 그릇되게 하고 있다. 오늘날 아이들은 초등 학생이고 중고등학생이고 모두가 어른들이 쓰는 시나 동시를 흉내내어 쓴다. 어른들의 흉내를 내도록 하는 것이 시쓰기 지도가 되어 있느니 기가 막힌다. 어른들의 시 쓰기가 제대로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흉내내기를 가르친다면 절대로 시가 쓰일 수가 없고 도리어 시를 쓰는 마음을 죽여 버리는 것인데, 잘못된 말로 써 놓은 시를 그대로 따라서 쓰도록 하고 있으니 무슨 시가 되겠는가? 이래서 아이들이 써 놓은 시란 것도 말의 오염이 될 대로 되어간다. 초등 학생들은 동시란 것을 쓰면서 흉내와 말장난을 하고, 중고등학생이나 청소년들도 유식한 말이나 근사한 외국말법으로 글장난하는 짓을 시 쓰기로 알고 있다. 학생들이 시를 살리고 말을 살리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어른들 따라가는 노릇을 그만두어야 한다. 어른들의 글에서 말을 배우지 말아야 한다. 도리어 저보다 더 어린 아이들한테서 말을 배우고, 더 어렸을 적에 익힌 말을 살려서 쓰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시가 된다.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원응서편" 원응서(1914~1973) 번역 문학가, 평양 출생, 일본 리쿄 대학 영미 학부 졸업. 문예지 '문학' 주간 역임. 원응서는 번역 이외의 일에는 별로 활동을 하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일상의 체험에서 우러난 통찰 깊은 수필들이 몇 편 전해져 그의 진가를 보여 준다. 평범한 듯하면서도 인생에 대한 관조와 애정이 곁들여 있어 독자들에게 수필 문학의 묘미를 느끼게 해 준다. 낚시의 즐거움 1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즐거웠던 날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고 생각해 본다. 헤아릴 수 있을 정도가 아닌가 싶다. 물론 그 즐거움에도 크거나 작거나 하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런 세분과 아이는 차치하고 개괄적으로 생각해 볼 때 내 경우엔 그 즐거웠던 나날은 낚시가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만큼 내 생활의 즐거움은 낚시질하는 행위가 실어다 준 것이 된다. 그리고 실제로 낚싯줄을 물에 드리우고 있지 않더라도 낚싯대나 낚시 연장을 매만질 때가 하루 중에서 즐거운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어느 가난한 묵객은 시름이 있거나 무료할 땐 벼루에다 연적의 물을 부어 먹을 벅벅 갈아 거기에서 안겨 오는 향기로움으로 인생을 달랬다고 한다. 참으로 운치를 담은 경지라 하겠다. 낚싯대를 닦고 매만지는 심정도 이와 상통하는 즐거움일 것이다. 낚싯대를 매만지는 것은 반드시 앞으로 고기 수확에 더 큰 기대를 거는 데서가 아니라 세상의 번거로움을 잠시나마 잊고 묵연히 수면을 바라보고 있는 낚시터의 자세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 하루에 한동안이나마 생활의 실무에서 휴식을 주는 시간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낚싯대를 매만지면서 무료를 끄며 일요일을 기다리는 마음이란 이야말로 하루하루가 흐뭇해진다. 즐거움은 반드시 큰 것만이 좋은 건 아니다. 즐거움은 크면 클수록 오히려 지속이 안 되거나 반비례되는 일이 따를 가능성이 짙다. 조그만 은은한 즐거움이야말로 영속될 수 있는 바탕을 지니고 있는 까닭인지 모른다. 낚시에는 은근한 정미와 조그만 즐거움이 있는 대신 큰 즐거움이 따르지 않는 것은 곧 영속적인 의미가 내재하고 있어서이리라. 언젠가 어느 낚시인의 글에서 읽은 한 대목이다. 낚시 시즌이 지나고 한참 지루한 겨울 한밤중의 일이다. 가족들이 모두 고이 잠든 방 안에서 주인공은 낚싯대를 꺼내 홀연히 휘둘러 고기를 낚아 본다. 그의 얼굴에서는 회심의 미소가 흐른다. 이 때 밖에서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바로 이것이 낚시의 즐거움이고 낚시꾼의 즐거움의 표현일 것이다. 2 낚시꾼에겐 물은 향수와도 같다. 물만 보아도 낚시꾼에겐 저절로 미소가 안겨 온다. 이것은 낚시꾼이 물고기를 그리는 마음에서이리라. 논바닥에 고인 하잘것없는 물이건, 벌판 한구석에 웅크린 웅덩이건 물이면 그저 좋다. 하물며 호연한 물바다를 보았을 땐 더 말할 나위가 있으랴. 저도 모르게 미소가 새어나오고 속이 후련해진다. 이건 낚시꾼이면 누구나 느껴지는 감회이고 또 낚시꾼만이 누릴 수 있는 흥취일 것이다. 그러나 기실 따지고 보면 물이 그립다는 그 자체는 물과 불가분의 사이인 물고기를 그리는 심정일 것이다. 고기가 살지 않는 물은 나무 없는 산처럼 낚시꾼에겐 무의미하니까. 해발 1천 미터 이상 높이의 고원에 가로놓인 장진호는 묘묘한 바다나 다름없다. 추운 지대이고 워낙 물이 깊어서인지 물고기가 놀지 않는다. 물빛이 짙다못해 검다. 고기가 놀지 않는 물은 사수나 다름없이 매력이 없고 그 검은 물은 두렵기만 하다. 바라보이는 물은 다 아름답고 시원해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물을 좋아하는 낚시꾼이라도 붉은 불이나 더러운 물보다는 물의 본연의 자세인 맑은 운치를 아쉬워하게 된다. 고름을 담그면 파란 물이 들 듯한 물이야말로 눈을 감으면 낚시꾼들의 머리에 떠오르는 마음의 소우주인 것이다.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 기도 시 들음의 길 위에서 어제보다는 좀더 잘 들으라고 저희에게 또 한번 새날의 창문을 열어 주시는 주님 자신의 안뜰을 고요히 들여다보기보다는 항상 바깥일에 바삐 쫓기며 많은 말을 하고 매일을 살아가는 모습 듣는 일에는 정성이 부족한 채 `대충` `건성` `빨리` 해치우려는 저희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가장 가까운 이들끼리 정을 나누는 자리에서도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듣기보다는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자기말만 되풀이하느라 참된 대화가 되지 못하고 독백으로 머무를 때도 많습니다 - 우린 참 들을 줄 몰라 - 왜 이리 참을성이 없지? - 같은 말을 쓰면서도 통교가 안되다니 잘 듣지 못함을 반성하고 나서도 돌아서면 이내 무디어지는 저희의 어리석음과 습관적인 잘못은 언제야 끝이 날까요 정확히 듣지 못해 약속이 어긋나고 감정과 편견에 치우쳐 오해가 깊어질 때마다 사람들은 저마다 쓸쓸함을 삼키는 외딴 섬으로 서게 됩니다 잘 들어야만 사랑이 이루어짐을 들음의 삶으로써 보여 주신 주님 오늘도 아침의 나팔꽃처럼 활짝 열린 가슴과 귀로 저희가 진정 주님의 말씀을 잘 듣게 하여 주소서 언어로 몸짓으로 마음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이웃의 언어에 민감히 귀기울일 줄 알게 하소서 말하기 전에 듣기를 먼저 배우는 겸손한 어린이의 모습으로 현재의 순간이 마지막인 듯이 성실을 다하는 수행자의 모습으로 들음의 여정을 다시 시작하는 들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잘 들어서 지혜 더욱 밝아지고 잘 들어서 사랑 또한 깊어지는 복된 사람 평범하지만 들꽃 향기 풍기는 아름다운 들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Board 삶 속 글 2022.12.07 風文 R 650
독안룡(獨眼龍) 獨:홀로 독. 眼:눈 안. 龍:용 룡. [출전]《五代史》〈唐記〉,《唐書》〈李克用傳〉 애꾸눈의 용이란 뜻. 곧 ① 애꾸눈의 영웅 또는 용맹한 장수. ② 애꾸눈의 고덕(高德)한 사람. 당나라 18대 황제인 희종(僖宗:873~883)때의 일이다. 산동(山東) 출신인 황소(黃巢)는 왕선지(王仙芝) 등과 반란을 일으킨지 5년만에 10여 만의 농민군을 이끌고 마침내 도읍인 장안에 입성했다. 그리고 스스로 제제(齊帝)라 일컫고 대제국(大齊國)을 세웠다. 한편 성도(成都)로 몽진(蒙塵)한 희종은 돌궐족(突厥族) 출신인 맹장 이극용(李克用:856~908)을 기용하여 황소 토벌을 명했다. 당시 4만 여에 이르는 이극용의 군사는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사정없이 맹공을 가했기 때문에 반란군은 '갈가마귀의 군사[鴉軍]가 왔다 !‘며 심히 두려워했다고 한다. 19대 황제인 소종(昭宗:883~903)이 즉위한 그 이듬해 마침내 반란군은 토멸되었고 황소도 패사(敗死)하고 말았다. 이극용은 그 공에 의해서 농서[감숙성(甘肅省)] 군왕(郡王)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이극용은 숙적 주전충[朱全忠:852~912, 반란군에 가담했다가 귀순한 뒤 황소 토멸에 공을 세워 동평군왕(東平郡王)이 됨]과 정권을 다투다가 패하고 실의 속에 세상을 떠났다.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 주전충은 20대 황제인 애종(哀宗:903~907)을 폐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후량(後梁:907~923)을 세웠으나 16년 후 이극용의 아들 이존욱[후당(後唐)의 초대 황제인 장종(莊宗)]에게 멸망했다. 맹장 이극용에 대해《오대사(五代史)》〈당기(唐記)〉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이극용은 젊고 효용(驍勇:사납고 날쌤)했는데 군중(軍中)에서는 이아아(李鴉兒)라고 일컬었다. 그의 눈은 애꾸눈이었다. 그가 귀한 자리에 오르자 일컬어 ‘독안룡’이라고 했다.”
Board 고사성어 2022.12.07 風文 R 849
평어 쓰기, 그 후 상대의 이름을 부르고, 반말만 쓰기. 학생들이 ‘진해, 안녕!’이라 한 지 석달이 지났다. 어찌 됐을지 궁금할 듯. 말끝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학생들은 ‘내 언어체계에 분열이 왔다.’고 고백한다. 분열이라니, 야호! 한가닥이던 말의 체계는 꽈배기처럼 순식간에 두가닥으로 갈라지고 뒤엉켰다. 부모 아닌 연장자에게 반말해본 적 없던 학생은 ‘이메일을 반말로 보내는 게 맞는지 수십번 고민’했다. ‘‘안녕하세요’에서 ‘안녕’으로 바뀌었으니 손까지 흔들어도 되는지, 꾸벅 허리를 숙여야 하는지, 아니면 허리를 숙이면서 동시에 손을 흔들어야 할지 헷갈렸다.’ 반갑구나, 번민하는 인간이여. 학생들에게 존댓말은 ‘안전장치’였다. 학생들끼리도 존댓말을 썼다. 상대에 대한 존중보다는 ‘심리적 거리두기’의 방편이랄까. 가까이 오지 마. 적당히, 거기까지. ‘교수와 학생의 관계는 ‘비즈니스적’이다. 수업을 하고 수업을 듣는 것, 이 목적을 달성하면 끝’이라던 학생들은 평어를 쓰자 의자를 당기며 서로에게 다가갔다. 기꺼이 즐겁게 규칙을 바꿔 버렸다. 민달팽이처럼 안전장치를 걷어내니,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타인을 대했다. ‘위아래’ 분간보다는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말도 많아지고 문자와 이메일도 늘고 웃음도 잦아졌다(강의실에서 웃다니!). 책 읽고 토론하는 시간은 도떼기시장처럼 시끌벅적. 학생들에게 저리도 할 말이 많았구나. 어느 날 문자 하나를 받았다. ‘진해, 내일 졸업연주회가 있어. 초대하고 싶어 연락했어! 이런 초대는 처음 해봐.’ 더 나가보려고 한다. 한뼘씩, 야금야금. 위협하는 기록 총을 내려놓는다고 저절로 평화가 오지 않는다. 회초리를 내려놓는다고 인권이 넘치고 행복한 학교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수업 방해, 비아냥과 모욕, 동영상 촬영과 유포가 난무했다. 학생은 선생을 욕하고 놀릴 수 있지만, 선생이 그러면 아동학대다. 학생이 무슨 짓을 해도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교사들은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고 하소연한다(얼마 전 국회 교육위원회에서는 교장에게만 주던 생활지도권을 교사에게도 부여하는 법안을 의결했다). 11월30일 교육부 주최로 ‘학교 교육활동 보호 강화 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교육부 시안에는 중대한 교권 침해를 범한 학생은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기록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기왕에 학교폭력도 기록하고 있으니, 교원에 대한 학생의 폭력도 기재하는 게 ‘형평성’에 맞다는 논리다. 예방적 차원에서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줄 것이라 기대하는 눈치다. ‘떠든 사람’을 칠판 귀퉁이에 적는 건 ‘조용히 하라’는 일말의 계몽적 역할이라도 했다. 학교 문턱을 넘어가지도 않았다. 생기부에 ‘교사 폭행으로 전학 조치했음’이라고 적는 건 다르다. 교사에게도 ‘한번 당해봐라. 넌 이제 끝이야’라는 응징의 마음을 심어준다. 생기부는 이미 학생 지도보다는 대입 지원을 위한 서류다. 거기에 교권 침해를 기록하는 건 학생을 위협하는 일이자, 고등학교가 대입 준비 말고는 다른 역할을 할 마음이 없다는 걸 선언하는 것이다. 교사의 손에 만사형통의 무기가 주어지겠지만, 학교는 더욱 차갑고 황폐화할 것이다. 위협하는 기록으로 배움의 공동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