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2부 - 시를 어떻게 쓸까 정지용의 시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어 애송되는 시에 향수 란 것이 있다. 물론 이 제목도 한문으로 써 놓은 것인데, 고향 생각 이라면 어린애들이 부르는 동요의 제목처럼 느끼거나 무식한 촌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알고, 향수 라고 해야 그럴듯한 시의 제목이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더구나 요즘은 많을 줄 안다. 이렇게 우리말을 죽여 놓고 우리 겨레의 마음을 비뚤어지게 해 좋은 책임은 이런 유명시인들이 마땅히 지는 수밖에 없다. 여기서 향수 란 작품을 보기로 하자.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일제시대, 그리고 60년대까지 우리 모두의 고향이었던 농촌을 이만큼 아름다운 말로 나타낸 시도 썩 드물 것이다. 여기에는 농사일의 고달픔이라든가, 굶주림에 따르는 정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그런 괴로운 추억이 도리어 아름다운 것으로 변용되었다. 지난날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되어 있으니까 괴로운 기억은 묻혀 버렸을 것 같기도 하지만, 시인의 추억과 상상은 그저 아름다운 고향을 그림으로 그려 보고 싶었던 것이리라. 여기 씌어 있는 말들 가운데는 어떤 정경이나 사실을 재미있고 알맞은 말로 나타내어서 우리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많다.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다 나간다든가,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운다든가,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라든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이라든가, 이런 말들은 모두 우리 겨레의 삶에서 우러난 말로 느껴진다. 더러 놀랍도록 재주를 부려 놓은 말들조차 자연스럽게 가슴에 와닿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이 시에 씌어 있는 모든 말이 싱싱한 우리말로 되어 있는 사실은 매김자리토씨(관형격조사) -의 가 한 군데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시를 이렇게 깨끗한 말로 쓸 수 있었던 것은 이 신인이 고향 생각을 하면서 고향 이야기를 한 때문이다. 고향 이야기를 하자니 고향 말, 곧 우리말로 쓰지 않을 수 없다. 고향의 말은 바로 일하는 삶에서 생겨난 말이다. 그런데 이 시인이 고향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어릴 때 이야기를 쓰지 않고, 도시에서 시만 쓰면서 살아가는 현재 의 이야기를 써 놓은 시는 거의 모두 앞에서 말한 제목뿐 아니고 본문에서조차 어려운 한문글자를 마구 써서보통사람은 읽을 수도 없게 되어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시가 일하는 사람들의 정서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팔자 좋은 사람들의 취미생활에서 얻은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 시의 산줄기에서 한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다고 모두가 알고 있는 시인의 시가 이 모양이란 것은 참 서글픈 일이다. 이 시인의 대표작이라고 해서 널리 알려져 있는, 위에 들어 놓은 향수 만 해도 앞에서 좋은 시라고만 말했지만 사실은 아주 커다란 흠이 하나 있다. 그것은 얼룩배기 황소 라고 한 것인데, 얼룩배기 소 란 우리 소가 아니다. 요즘은 외국 소를 많이 들여와서 얼룩소를 흔히 볼 수 있지만, 일제시대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다. 그런 서양의 얼룩소가 짚벼개를 베고 주무시는 아버지며 사철 맨발인 아내가 일하면서 살아가는 고향 마음에서 울고 있다니! 이것은 고향 생각을 하고 고향 이야기를 쓰면서 그만 어느덧 고향을 떠나 생각 속에 취하고 말에 취해 재주를 부린 것이다. 이 시인의 시에는 이렇게 말재주가 나타나는 작품이 많은데, 여기서는 이 조그만 흠이 시 전체를 한 폭의 만화로 떨어지게 했다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게 된다. 바로 삶을 떠난 시인, 삶이 없이 시만을 쓴 시인의 비극이다. 우리 시인들의 시에서 내가 언제나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왜 시인들이 일하는 삶을 시로 쓰지 못하는가, 왜 일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를, 그 땀 냄새를, 무거운 짐에 짓눌려 헉헉거리는 숨소리를 시로 쓰지 못하는가 하는 것이다. 일하는 삶이 가장 높고 귀한 가치가 있다면 분명히 그것은 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마치 밀레가 일하는 농민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놓았듯이, 시도 일하는 사람들의 세계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가 새로운 시를 쓰게 되었다는 지난 100년 가까운 역사에서 일하는 삶을 그린 시가 보이지 않는다. 단 한 편도! 내가 시인들의 시를 알뜰히 살펴보지 않아서 놓쳤는지 모르지만 아직 그런 시를 찾아내지 못했다. 나라와 세상을 걱정하는 시, 슬퍼하고 원통해하는 시, 무엇을 외치는 시는 많다. 무엇을 그리워하거나 꿈을 구는 시, 저 혼자 그 무엇에 취해서 수다를 늘어 놓는 시도 많다. 무엇을 썼는지도 알 수 없는 시는 더욱 많고, 세상을 관광거리로 삼고 있는 듯한 시는 더더욱 흔해빠졌다. 그런데 일하는 삶을 보여 주는 시는 없다. 우리 겨레의 정서를 가장 잘 나타내었다고 하는 김소월의 시에도 일하는 삶의 정서를 쓴 것이 단 한 편도 없다. 문학에서 가장 앞장서 간다는 시가 이래도 괜찮은가? 뭔가 밑뿌리부터 잘못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다른 글에서도 지적했지만, 소월의 시에 꼭 한 편, 농사꾼이 일하는 것을 글감으로 한 것처럼 되어 있는 시가 있는데 밭고랑 우에서 다. 여기 전문을들어 놓겠다. 이 시를 또 특별히 들어서 생각해 보는 까닭은, 어느 유명 시인이 일제시대 시인들의 대표작으로 실려 있기 때문이고, 그만큼 널리 애송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두 사람은 키 높이 가득 자란 보리밭, 밭고랑 우에 앉아서라. 일을 필하고 쉬는 동안의 기쁨이여. 지금 두 사람의 이야기에는 꽃이 필 때. 오오 빛나는 태양을 나려 쪼이며 새 무리들도 즐거운 노래, 노래 불러라. 오오 은혜여, 살아 있는 몸에는 넘치는 은혜여, 모든 은근스러움이 우리의 맘속을 차지하여라. 세계의 끝은 어디? 자애의 하늘은 넓게도 덮혔는데, 우리 두 사람은 일하며, 살아 있어서, 하늘과 태양을 바라보아라, 날마다 날마다도, 새라새롭은 탄희를 지어내며, 늘 같은 땅 우에서. 다시 한번 활기 있게 웃고나서, 우리 두 사람은 바람에 일리우는 보리밭 속으로 호미 들고 들어갔어라, 가즈런히, 가즈런히, 걸어 나아가는 기쁨이어, 오오 생명의 향상이어. 보다시피 이 시는 보리가 키 높이로 자라난 밭고랑에서 젊은 부부가 일하다가 쉬면서 이야기 꽃을 피우는 순간의 즐거움을 그려 놓았다. 하늘에는 눈부시게 해가 내리쬐고, 새들이 울고, 그래서 하늘과 땅은 건강한 몸으로 일하는 이 젊은 부부를 축복하는 듯 끝없이 펼쳐져 있다. 자연 속에서 일하는 즐거움, 하늘과 해를 쳐다보며,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땀 흘리고 일하는 기쁨!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정지용의 향수 는 지난날의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아름답게 그려 놓았지만, 이 시는 바로 지금 들판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려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제목도 바로 밭고랑 우에서 이고, 우리 두사람은 하고 시작하여 이 시인이 스스로 한 것을 쓴 것처럼 해 놓았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시인이 그려 놓은 이 아름다운 자연과 일하다가 쉬고 있는 농민 부부의 모습에 덮어놓고 감동하고만 있을 수 없다. 일제시대 실제로 논밭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농민들이 이렇게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격하고 하늘의 사랑을 느끼면서 살아 있는 은혜를 고마워 할 만큼 여유가 있었던가? 더구나 보리가 다 자라난 그 굶주림의 보리고개에서 말이다. 정지용의 시에는 그래도 사철 발벗고 이삭 줍는 누이와 아내가 나오지만, 여기서는 바로 지금 자신이 들판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는데도 털끝만치도 보리고개의 현실과 정서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 시는 일제시대 우리 농민이며 농촌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사실대로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고, 우리 농민과 농촌은 보지도 않았다. 다만 방안에서 제멋대로 상상해서 쓴 것으로 되었다. 시는 상상으로 쓴다고 하지만, 우리 겨레의 정서를 우리 겨레의 말로 쓰려고 애썼다는 시인이 우리 겨레의 90%를 차지하는 농민의 삶을 - 바로 농민이 밭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을 이렇게 엉뚱한 그림으로 그려 놓았으니, 신인으로서 너무나 불성실하고 책임감이 없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가 농민의 삶을 조금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 시에 나온 부부가 대관절 보리밭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씌어 있는 것만으로도 잘 알게 된다. 이 농민 부부는 무슨 일을 했는가? 보리가 키로 자라났으니 이런 밭에서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이제는 보리가 익어서 베기만을 기다릴 뿐이고, 그 동안에 다른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보리밭 고랑에 앉아 쉬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고만 했으니 괴상한 시요, 괴상한 글이다. 마지막 연에 가서, 이제 쉬기를 끝내고 다시 일을 했다고 했는데, 거기서도 무슨 일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알 도리가 없다. 다만 호미를 들고 보리밭 고랑에 들어갔다고 했다. 호미를 들고 키 높이 자란 보리밭 고랑에 앉아 할 일거리가 뭐 있겠는가? 잡풀이 있을 수도 없고, 어쩌다가 보리와 같은 키로 명아주가 솟아날 수가 있지만, 그것은 호미를 슬 것이 아니라 손으로 뽑아야 한다. 보리밭 고랑에 콩을 심는 수가 있는데, 그것은 가을에 뿌리는 가을 보리가 아니고 이른 봄에 뿌리는 다시 괭이로 묻는다. 그러니 키로 자란 보리밭에는 아무도 들어갈 일이 없다. 더욱 우스운 것은 마지막 연에서 호미를 들고 들어갔다고 해 놓고는 걸아 나아가는 기쁨이어 했다. 세상에 호미를 쥐었으면 앉아서 엎으려 무엇을 하든지 해야지, 보리밭 고랑에서 호미를 쥐고 서서 앞으로 걸어 나가면서 무슨 일을 하다니! 만화치고 이렇게 우스운 만화가 있겠나 싶다. 시가 왜 이런 꼴로 되었는가? 그 까닭은 뻔하다. 일을 하지 않으면서 한 것처럼 쓰자니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일을 하지 않았으니 일을 모르고 (내가 알고 믿기로는, 아무리 놀랍고 뛰어난 상상을 하는 재주꾼이라 하더라도 자지가 몸으로 해 보지 않은 일과 그런 일에서 우러난 정서를 제대로 올바르게 상상해 써 낼수는 절대로 없다.) 그러니까 무슨 일을 했는지를 쓰지 못하고 기껏해야 일을 마치고 밭고랑에 쉬면서 하늘 쳐다보고 이야기한 것이나 쓰고, 그래도 밭고랑 우에서 라 제목을 붙였으니 무엇을 한 것처럼 쓰기는 해야겠기에 일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호미를 쥐고는 그만 우스운 연극을 연출한 것이다. 소월같이 뛰어난 시인이 이렇거늘, 하물며 오늘날 아주 어려서부터 삶이 없이 자라난 숱한 시인들이 써 놓은 시가 어떤 꼴로 되어 있겠는가 미루어 짐작할 것이다. 이 밭고랑 우에서 가 일하는 삶의 바탕이 없이 제멋대로 꾸며 놓은 지식인의 정서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시에 씌어진 말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 - 일을 필(畢)하고 쉬는 동안의 기쁨이어 농민이고 노동자고 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일을 필하고 하지는 않는다. 일을 마치고 하든지 일을 끝내고 하지. 그리고 이 시에서는 일을 필하고 도 일을 마치고 도 아니다. 밭에서 일을 하다가 잠시 쉬는데 어째서 일을 필하고 인가? 이래서 엉망진창이 되어 있다. 지식인이,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을 한 것처럼 꾸며서 거짓말을 쓰자니 내용과 말이 어긋나서 이 꼴이 된 것이다. - 오오 빛나는 태양은 나려 쪼이며 농민은 태양 이란 말도 안 쓴다. 농민의 이야기를, 더구나 농민 자신이 하는 말로 쓰는 글에서 농민이 하지 않는 말을 써도 되는가? 이글은 진짜 농사꾼이 쓴 것이 아니고 시인이 어쩌다가 밭에 가서 일한 것을 쓴 것이다 이런 변명이 나올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을 더 웃기는 거짓말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 자애의 하늘은 넓게도 덮혔는데, 새라새롭은 탄희를 지어내며, 내 느낌으로는 우리말 그대로 사랑의 하늘은 이라든지 새라새롭은 기쁨을 이라고 쓰는 것이 훨씬 더 좋다. 농사꾼이고 일반 서민들이 쓰지도 않는 자애니 환희 니 하는 말을 써야 그럴듯한 시가 된다고 생각하는 우리 나라 시인들의 잘못된 글쓰기 병폐는 김소월과 같은 민요시인까지도 어릿광대 노릇을 하게 만들어 문학이라는 글쓰기 상품을 만들어 내는 모든 시인과 작가들의 정신을 오염시키고 말았다. 이것이 모두 삶이 없는 탓이요, 일을 하지 않고 방안에 앉아 만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임옥인편" 임옥인(1913~1995) 여류 소설가. 함북 길주 출생. 일본 나라 여고 사범 졸업. 건국대 가정대학장 역임. 해방 직후에 농촌 여성의 계몽 운동에 몰두했으며 그 이후 계속 교편을 잡아 왔다. 일상적인 체험과 시대적인 충격을 여성 특유의 서정적 세계를 형상화하여 주목을 받았다. "월남 전후"는 민족의 수난을 르포 형식으로 그려 많은 감동을 준 장편 소실이었다. 유리한 문장을 추구하였으며 여류 문단의 지도자 역할을 담당하였다. 감사 오늘은 우리가 새 집을 짓기 시작하는 날이다. 평생 '임시'와'방랑'을 면하지 못했다. 이제는 안주하고 싶은 것이다. 기쁘다. "얼마나 더 살려고 그래?" "누구에게 물려주려고?" 내가 집을 짓겠다고 할 때, 이렇게 말하는 벗들도 있었다. 내가 늙은 탓이고 나에게 아들딸이 없는 까닭일 것이다. 이 말들 속에는 물론 내가 고생할 것을 염려하는 따뜻한 우정도 들어 있다. 그러나 나는, '비록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 집이 누구에게 돌아간들 어떠랴. 누구라도 들어와 행복하게 살 수만 있다면 그로써 족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했다. 말할 수 없이 신선한 오전이었다. 아름답게 흐르는 오월의 맑은 햇빛, 뜰 안에 가득한 새 소리, 풀 향기, 나무 냄새..., 모든 것이 거룩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벗들이 올 것 같아 약간의 음식을 마련하기로 했다. 손이 없어서 나 혼자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산 색시가 왔다. 갑산 색시는 내 소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가 내 소설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에는 젊었지만, 지금은 손자와 손녀들이 국민 학교에 다니는 할머니다. 그는 젊었을 때 나와 함께 살면서, 때로는 쑥을 뜯어다 쑥떡도 만들어 주고 때로는 우리 고향식으로 된장을 담가 나의 향수를 달래 주기도 했었다. 갑산 색시, 아니 갑산 할머닌 곧 시장으로 달려가 도라지, 오이, 호박, 생선 등을 사 오고, 단골집에서 빈대떡도 부쳐 왔다. 그리고 열심히 도마질도 했다. 내가 어려울 때면 언제나 달려오는 갑산 할머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나는 잠시 일손을 멈추고, 도마질에 여념이 없는 갑산 할머니의 주름살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조금 뒤에 서 목사님이 오셨다. 그리고 벗들도 몰려 왔다. 목사님은 곧 기도를 드리셨다. 완공까지도 무사를 비시고 우리 내외에게 감사로 충만한 영혼의 안거를 허락해 주십사고 간구 하셨다. 신앙의 길에 들지 않은 벗들도, 신앙의 길이 다른 벗들도 모두 머리를 숙였다. 나를 위하여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는 분들, 얼마나 고마운가. 세상은 차다지만 나는 찬 줄을 모른다. 세상은 거칠다지만 나는 거친 줄을 모른다. 나의 이웃이 고맙다. 내가 사는 사회와 나라, 그리고 하나님이 고맙다. 아무것도 이룩한 게 없는 나에게 너무나 과분한 은총인 것 같아 죄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한 사람의 가냘픈 여성에 불과하다. 그러나, 여성에겐 그 특유의 모성애가 있는 법이다. 나는 이것을 단순히 개인적인 보호 본능으로 끝나게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이웃을 향해, 사회를 향해, 겨레를 향해, 할 수 있으면 전 인류를 향해 확산, 심화시키고 싶다. 타인의 아픔을 나의 것으로 느끼는 경건한 태도를 가지고, 나의 사랑을 확산, 심화하는 데 나의 남은 삶을 바쳐야겠다. 그러지 않고서는 나에게 과분하게 내려진 은총을, 그 억만분지 일도 보답할 수가 없겠기 때문이다.
도청도설(道聽塗說) 道:길 도. 聽:들을 청. 塗:길 도. 說:말씀 설. [유사어] 구이지학(口耳之學), 가담항설(街談巷說), 유언비어(流言蜚語). [출전]《論語》〈陽貨篇〉,《漢書》〈藝文志〉,《荀子》〈勸學篇〉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한다는 뜻. 곧 ① 설들은 말을 곧바로 다른 사람에게 옮김. ② 길거리에 떠돌아다니는 뜬소문. ①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논어(論語)》〈양화편(陽貨篇)〉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는 것[道聽塗說]’은 덕을 버리는 것과 같다[德之棄也].” 길거리에서 들은 좋은 말[道聽]을 마음에 간직하여 자기 수양의 양식으로 삼지 않고 길거리에서 바로 다른 사람에게 말해 버리는 것[塗說]은 스스로 덕을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좋은 말은 마음에 간직하고 자기 것으로 하지 않으면 덕을 쌓을 수 없다는 말이다.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하고, 천도(天道)를 지상(地上)에서 행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던 공자는,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가 스스로 억제하고 인덕(仁德)을 쌓으며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덕을 쌓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논어》에서 이르고 있다. ② 후한시대, 반고(班固)가 엮은《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대체로 소설이란 것의 기원은 임금이 하층민의 풍속을 알기 위해 하급 관리에게 명하여 서술토록 한 데서 비롯되었다. 즉 세상 이야기라든가 길거리의 뜬소문은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는[道聽塗說]’ 무리가 지어낸 것이다.” 소설이란 말은 이런 의미에서 원래는 ‘패관(稗官:하급 관리) 소설’이라고 일컬었으나 나중에 그냥 ‘소설’이라고 일컫게 되었다. ③《순자(荀子)》〈권학편(權學篇)〉에는 다언(多言)을 이렇게 훈계하고 있다. “‘소인배의 학문은 귀로 들어가 곧바로 입으로 흘러나오고[口耳之學]’ 마음 속에 새겨 두려고 하지 않는다. ‘귀와 입 사이는 불과 네 치[口耳四寸].’ 이처럼 짧은 거리를 지날 뿐이라면 어찌 일곱 자[七尺] 몸을 훌륭하게 닦을 수 있겠는가. 옛날에 학문을 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닦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요즈음 사람들은 배운 것을 금방 다른 사람에게 고하고 자기를 위해 마음 속에 새겨 두려고 하지 않는다. 군자의 학문은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하지만 소인배의 학문은 인간을 못쓰게 망쳐 버린다. 그래서 묻지 않은 말도 입밖에 낸다. 이것을 ‘잔소리’라 하며, 하나를 묻는데 둘을 말하는 것을 ‘수다[饒舌]’라고 한다. 둘 다 잘못되어 있다. 참된 군자(君子)는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다.” 어느 세상에도 오른쪽 귀로 들은 것을 왼쪽 사람에게 털어놓는 수다쟁이 정보통이 많다. 더구나 그 정보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사이에 점점 꼬리를 끌게 마련이다. ‘이런 무리는 해가 있을 뿐’이라며 공자, 순자는 경계하고 있다.
Board 고사성어 2022.12.06 風文 R 644
‘웃기고 있네’와 ‘웃기고 자빠졌네’ 말에는 시간의 흐름이 담긴다. 일이 벌어지기 전의 징조가 있고 일이 시작돼 진행되다가 이내 마무리되는 흐름. ‘의자에 앉으려고 한다’라는 말이 앉는 동작의 의도나 조짐이라면, ‘앉고 있다’는 앉는 동작을 계속하는 상황을 나타낸다. ‘앉아 있다’는 앉고 나서 그대로 있을 때 쓰겠지. 보다시피, ‘~고 있다’는 어떤 사건이 계속 이어지는 걸 표시한다. ‘울고 있다’, ‘걷고 있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파악한 시간의 조각 위에 감정을 싣는 장치가 있다. 사건 위에 분노의 감정이나 빈정거림의 정서를 보탤 수 있다. 대표적으로 ‘~고 자빠졌다’. 눈앞에 벌어지는 일을 꼴사납다는 시선으로 지켜본다. 아무래도 앞으로 엎어지는 것보다 뒤로 자빠지는 게 더 아프겠지. 어느 시인은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다’는 비아냥에 ‘나는 계속 꿈꾸는 소리나 하다/ 저 거리에서 자빠지겠다’고 받아쳤다지(송경동). ‘놀고 엎드렸네, 놀고 누웠네’라 하면 말맛이 안 산다. ‘자빠졌네’야말로 분노의 질감을 온전히 담는다. ‘있다’와 ‘자빠졌다’ 사이에 ‘~고 앉았다’가 있지만 ‘자빠졌다’에 비하면 새 발의 피. 무미건조하게 살던 나의 평생소원은 사람들을 제대로 웃기는 일이었다. 박장대소. 너무 웃겨 사람들이 웃다가 뒤로 자빠지는 걸 보는 거였다. 하지만 웃기려는 시도는 쉽게 비웃음을 산다. ‘걔, 웃긴 애야’라 하면 실없고 한심한 사람이 된다. ‘웃기고 자빠졌네’에 비하면, ‘웃기고 있네’는 예의 바르다고 해야 하나. 권력집단이 참사 앞에서 하는 짓을 보면 ‘웃기고 자빠졌다’는 말도 아깝다. ‘-도’와 나머지 사람은 꽉 짜인 논리보다는 상황에 따라 끝없이 바뀌는 경험으로 세상을 익힌다. 경험은 수많은 사례를 만난다는 뜻. ‘어머니’라는 말도 ‘여성’, ‘성인’, ‘부모’, ‘자식’과 같은 논리적 속성을 합산한 필요충분조건을 통해 익히는 게 아니다. 젖을 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그분과 옆집에서 본 비슷한 분,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어른, 어떤 것의 시초 등을 보면서 눈덩이 굴리듯 ‘어머니’의 뜻을 넓혀 나간다. 낳고 길러준 어머니, 낳기만 하고 기르지는 않은 어머니, 낳지는 않았지만 길러준 어머니, 친밀감의 표시로 타인에게 던지는 어머니, 음악의 어머니,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등등. 전형적인 어머니에서 주변적인 어머니로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간다. 이렇듯 우리 머릿속은 중심에서 주변으로 이어지는 원들로 가득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언어적 장치가 조사 ‘-도’이다. ‘너도 같이 가자!’처럼 ‘-도’는 어떤 것을 이미 있는 것에 포함시키는 포용의 장치이다. 그런데 이 포용의 장치는 무엇이 포함되지 않았는지를 확인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 세계가 중심과 주변,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뉘어 있음을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여성도 할 수 있다’, ‘노인도 일하고 싶다’, ‘장애인에게도 이동권이 있다’ 같은 말은 우리가 특정 범주의 가장자리에 누구를 배치해 왔는지를 확인시켜 준다. ‘-도’가 그어놓은 선 안쪽으로 대상을 아무리 집어넣어도 경계선 밖으로 빠져나가는 나머지들이 반드시 있다. ‘나머지’(주변과 잉여)를 줄여나가는 게 우리가 추구해야 할 불가능성으로서의 정치 아니겠는가.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2부 - 시를 어떻게 쓸까 살아있는 시는 어디서 오는가 - 시란 무엇인가 시라고 말하는 글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생각하거나 일하는 동안에) 마음속에 일어나는 느낌(감동)을 싱싱한 우리말로 나타낸 글이다. 이렇게 시의 뜻을 밝혀 놓고 볼 때, 시가 되는 조건을 세가지로 나누어서 말할 수 있겠는데, 첫째는 살아간다 는 것이고, 둘째는 감동 이고, 셋째는 싱싱한 우리말 이다. 이것을 또 달리 말하면 첫째는 무엇을 썼는가 하는 글감(소재)의 문제가 되고, 둘째는 시의 알맹이가 되고, 셋째는 시의 형식, 또는 시가 담겨 있는 그릇 아니면 시가 입고 있는 옷 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가운데서 둘째에 들어가 있는 감동 에 대해서는 누구나 그렇다고 여길 것이다. 시가 감동이 없이 쓰일 수 없고, 감동이 시의 생명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첫째(삶)와 셋째(말)를 중심으로 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감동 은 삶 과 말 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저절로 생각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제목에서 삶 이란 말을 넣지 않은 까닭은 말 의 문제가 그대로 삶 의 문제로 이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에서 삶이 빠지면 삶, 곧 살아간다(생활한다)는 것은 넓게 말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숨을 쉬는 동안에 하는 모든 행동의 상태를 가리킨다.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냄새를 맡거나 일하거나 길을 걸어가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싸우거나 먹거나 무슨 흉내를 내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잠자고 꿈꾸는 것도 삶이고, 방안에 앉아 공상을 하는 것도, 미친 사람이 미친 짓을 하는 것도 다 삶이다. 이렇게 보면 무엇을 쓰든지 삶 아닌 것이 없으니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이 글에는 삶이 없다 고 할 때 그 삶은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삶이 아니고, 적어도 시의 알맹이가 생겨날 만한 삶이다. 병들지 않은 삶이요, 제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남을 따라가기만 하는 삶이 아닌 삶, 바람직하고 건강한 삶을 말한다. 바윗돌 위에서나 콘크리트 바닥에서, 또는 플라스틱 상자 속에서는 씨앗이 싹터날 도리가 없다. 잡초가 나 있더라도 적어도 흙이 있고 햇빛이 죄는 땅이라야 씨앗이 싹틀 수 있으니까. 그럼 시를 쓰는 사람이 어디 미친 짓을 하거나 잠꼬대를 하겠는가? 이렇게 말할 사람이 있겠는데, 내가 보기로는 그렇지 않다. 미치거나 잠꼬대를 한다고는 할 수 없더라도 대체로 우리 나라의 시인들이 그렇게 건강하게 살아간다고 볼 수 없다. 시인들이 써 놓은 시를 보면 그렇게 느껴진다.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하겠다. 사람에게 가장 가치가 있는 삶은 일을 하는 것이다. 사람은 우선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지만, 일을 해야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된다.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이고 다 병든다. 이것은 어느 시대에 어느 땅에서고 진리다. 아이들도 일을 하면서 배워야 (일하는 것이 그대로 배움이 되어야) 참 배움이 된다. 일이 없는 공부, 책만 읽고 쓰고 외우는 공부는 지루하고 따분하고, 그래서 그런 공부만 해야 할 대 사람의 성격은 병들고 비뚤어져 버린다. 일이 없는 공부, 책만 읽는 공부는 하지 않는 것이 열 배 백 배 낫다. 사람에게 생각한다는 것이 중요하고, 글을 쓰는 것도 매우 필요하다. 그러나 방안에 혼자 앉아서 생각만 하거나, 글만 쓴다면 그런 삶도 좋지 않다. 일을 하지 않고 생각만 하게 되면 그 생각이 병든다. 일을 하는 것이 없는데 글만 자꾸 쓴다면 그 글이 제대로 쓰일 수가 없다. 그래도 시인과 소설가들은 글만 잘 쓰고 있더라. 그렇다. 시인과 소설가들이 글만 쓰고 있다는 것, 이것이 문제다. 나는 글만 쓰고 있는 이들이 써 놓은 글을 제대로 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일제시대고 오늘날이고 많은 문인들이 글만 써 왔는데, 그래도 지난날에는 그 폐단이 좀 덜했지만 오늘날에는 글만 쓰고 있는 사람들이 글의 공해, 문학의 공해를 아주 크게 일으키고 있다고 본다. 지난날에 폐단이 덜했다는 것은, 일제시대나 6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시인들이 글만 쓰기는 했지만 그들이 자라난 과정에서는 삶이 있었고, 대체로 일을 하면서 자라났기에 시가 될 만한 땅을 저마다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물론 지난날에는 삶이 있었더라도 지금 삶에서 떠나 있으면 제대로 쓰기가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가 아주 병들 정도로까지는 되지 않을 바탕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떤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주 어려서부터 자연과 일하는 삶을 떠나서 방안에 앉아 책만 읽으면서 자라나 어른이 되었다. 이런 사람들이 또 방안에 앉아 생각만 하고 시만 쓰고 있으니, 이런 시가 어떤 알맹이를 담고 어떤 말고 되어 있을 것인가는 그것을 바로 읽어 보지 않고서도 충분히 의심할 만하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오늘날의 시를 검토하기에 앞서 일제시대부터 가장 이름이 나 있는 시인들의 시를 몇 편 들어서 시와 삶의 문제, 시와 말의 문제를 생각해 보겠다. 우리 나라에서 이른바 명시를 모아 놓은 책들의 맨 앞머리에는 흔히 새로운 우리 시의 첫 작품이라고 해서 최남선의 시 해에게서 소년에게 가 실려 있는데, 그 첫 연이 이렇다.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따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따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콱. 1908년에 나온 소년 창간호에 실린 이 시를 두고 오늘날까지 우리 문단에서는 새로운 시의 역사를 열어 놓은 시라고 하고, 또 너무 생각을 드려내려고 한 까닭으로 현대시라 할 수 없다고 말해 왔는데, 그런 면도 있겠지만 나는 달리 본다. 무엇보다도 이 시를 보면 말이 깨끗하다. 살아 있는 우리말로 되어 있다. 오늘날 많이 시인들이 써 놓은 시와 견주어 보면 이 시가 얼마나 오염되지 않은 우리말로 쓰여 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의 제목이 아주 잘못되었다. 해에게서.. 가 뭔가? 해 란 하늘의 해가 아니고 한문글자인 바다 해 자의 해 다. 그 무렵에는 한문글자를 섞어서 쓸 때라, 요즘 같이 한글만으로 쓰는 시대에 와서는 마땅히 바다에게서.. 로 바꾸어서(번역해서) 써야 하는데, 모든 책에서 이렇게 해에게서.. 라 써 놓았다. 사실은 이렇게 바꿔서 쓰기조차 어럽게 되어 있다. 아직도 신문이고 잡지고 광고들이고 해에게서 꼴로 쓰고 있는 글이 얼마나 많은가! 또 바다에게서.. 라고 써 보았자 우리말이 안 된다. 바다에게서 소년에게 란 우리말은 그때고 지금이고 없다. 바다가 소년에게 라 해야 말이 되지. 시의 제목을 왜 이렇게 붙였는가? 이 시의 제목만이 아니다. 많은 시인들이 시의 제목을 이렇게 우리말일 수 없는 괴상한 말로 붙였다.(물론 소설도 그랬다.) 일본글을 그대로 직역해 놓은 꼴로 쓴 것이다. 이것은 시인들의 삶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일본 학교에서 일본글로 공부를 하고, 우리 글로 시를 썼지만 언제나 일본말로 된 책만 읽고 책 속에 파묻혀 살고 있었으니 이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일을 하면서 살았더라면 결코 이런 말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와같이 지난날의 시인들은 어렸을 때 삶이 있었고, 그 삶 속에서 제대로 우리말을 익혔기에 시를 쓸 때는 자연스럽게 우리말을 살려 쓸 수 있었는데, 시의 제목에서는 병든 지식인의 삶을 그대로 보여 주게 되었다. 우리말을 가장 아름답게 다듬어 썼다는 정지용 시인의 시 제목은, 한문글자로 쓸 수 없는 바다 별 달 나무 같은 말만 한글로 쓰고, 그밖에 한문글자로 쓸 수 있는 것은 모조리 한문글자로 썼다. 심지어 유리창 기차 까지 한문으로 써 놓았다. 또 우리말로 쓰면 될 것을 일부러 한문으로 써서, 배 멀미 라 할 것을 선취 라 쓰고, 봄눈 이라면 될 것을 춘설 이라 했다. 그리고 보통사람으로는 알 수 없는 한문글자를 시의 제목뿐 아니라 본문에서도 마구잡이로 섰다. 우리말을 그렇게 구슬같이 다듬어 썼다는 시인이 어째서 이토록 우리말일 수 없고 우리 글일 수가 없는 글로 시를 썼는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정지용 시의 이 모순된 비밀은 시인의 삶과 말의 관계를 생각할 때 쉽게 풀어진다. 이것은 일제시대에 삶이 없이 시만 썼던 식민지 시인의 비극이었으니, 어찌 정지용 시인뿐이겠는가. 이들은 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에 제 겨레의 말로 쓸 수밖에 없었고 우리말로 버리지 못하고, 글만 쓰면서 살아가는 지식인의 권위 를 아주 팽개쳐 버리지 못하고 그 겉 껍데기나마 꾸며 보이고 싶어서, 다시 말해 우리는 비록 한글을 쓰지만, 글만 쓰면서 살아가는 지식인의 권위 를 아주 팽개쳐 버리지 못하고 그 겉 껍데기나마 꾸며 보이고 싶어서, 다시 말해 우리는 비록 한글로 쓰지만 일만 하면서 살아가는 무식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게 한문글자를 섞어서 썼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