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예술이냐? 외설이냐? 한재옥(남,대전 서구 월평1동) - '그림 일기' 를 기억하십니까? 저는 어릴 적 그림일기를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데 저의 가장 아끼는 보물 1호입니다. 요즘 초등학교 학생들은 그림 일기를 쓰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서른 세 살인 제가 당시 초등학교에 다닐 때, 그림 일기는 어린 우리들의 존재이자 우주 자체였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일기 쓰는 습관을 길러주고자 매일 일기 검사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크레용 내지는 색연필로 매일의 그림 일기를 쓰는 것은 그야말로 숭고한 작업이었습니다. 그날 느낀 점을 가장 솔직하게 그리고 써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저는 매일의 제 생활 중에서 가장 인상 깊고 솔직한 이야기들을 충실하게 써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어린 저에게 가장 재미있는 사항은 바로 공중 목욕탕엘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집에 샤워 시설이 변변치 않았기에 아버님께서는 목욕탕에 자주 가셨습니다. 3일에 한 번씩 말입니다. 왜그리 목욕탕에 가는 것이 좋았는지, 목욕탕에 가는 날에는 어김없이 그림 일기에 목욕탕 풍경이 등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저의 그림 일기에는 거의 세 장 건너서 포르노 사진을 방불케 하는 적나라한 풍경이 그려졌습니다. 어릴 적 그림일기를 보면 하루는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습니다. “오늘은 아빠와 금성 목욕탕에 갔다. 뜨거운 물 속에 있는 할아버지까 ‘어허야 디어야’하면서 노래를 하셨다. 나는 목욕탕 물 속에 들어가면서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도 산토끼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시끄럽다고 되게 혼났다...” 그런데 정작은 ‘내용’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그림’이었습니다. 저는 가장 솔직하고 진솔하게 그림을 그려나갔던 것입니다. 원래 관찰력이 뛰어나서 ‘망원경’이라는 별명을 가진 저는 신체의 모든 부분을 세밀하게 관찰하고는 거짓없이 색연필로 북북 그려갔습니다. 원래 그 나이 때는 옆모습이나 뒷모습은 그리지 못하지 않습니까? 무조건 앞모습이지요. 그것도 차렷자세를 하고는 씩 웃고 있는 적나라한 앞모습 말입니다. 어른들과 나와의 같은 점, 다른 점, 크기, 예상되는 무게 등등 저는 망원경같이 관찰하며 예술 작업을 해왔던 겁니다. 물론 상체뿐만이 아닙니다. 하체 또한 씩씩하게 다 그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야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때야 뭐 그런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신체의 한 부분이겠거니 하고는 거저 자세하게 그린 것입니다. 상상하시겠습니까? 세 장을 넘기면 저와 같이 목욕을 갔던 사람들이 원초적인 모습을 하고는 씩 웃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님, 삼촌, 형님, 옆집 담뱃가게 아저씨, 연탄가게 아저씨...등등 목욕탕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김없이 제 그림에 포착되어 선생님께 보고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시집을 안 가신 아리따운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제 그림 일기만 보시면 얼굴이 빨개지셨습니다. 제 일기를 보시고는 “애 너무 이런 것만 그리면 어떻하니!”라고 하셨지만, 저는 안중에 없었습니다. 그때 저의 가장 즐거운 일은 목욕탕에 가는 것이었기에 저는 그것을 계속 그리고 쓸 수밖에요.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교장 선생님이 등장하셨습니다. 저는 일주일에 월요일 한 번 높은 강단 위에서 연설을 하시던 높고 높으신 분이 저의 그 정다운 목욕탕에 오신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저는 선생님이나 교장 선생님을 만나면 인사를 잘 하라고 교육을 받았기에 “안녕하세요!”하고 큰소리로 인사를 하고는 넙죽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빠,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이세요.”하면서 아버님께 소개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그때는 왜 아버님과 교장 선생님께서 그리도 어색하게 인사를 하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리도 반가웠는데 말입니다. 아! 교장 선생님께서 금성 목욕탕엘 오시다니. 저는 웬지 모를 흥분으로 그림 일기를 썼습니다. 물론 자세하게 그렸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모든 것을. 차렷하고 앞을 보면서 씩 웃고 있는 교장 선생님의 모든 것을 말입니다. 교장 선생님은 몸을 씻는 동작이 좀 특이했습니다. 식목일 날 나무를 안 심으셨는지 머리에 머리카락이 거의 없으신 교장 선생님은 머리를 감는 것이 꼭 세수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바람 먹은 맹꽁이 배같이 불룩 튀어나온 배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 있을까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사실 배가 너무 나와서 ‘중요한 부분’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악착같이 고개를 숙이고 관찰하고는 그대로 그려 넣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이 등장하는 저의 그 그림일기를 보시고는 아무 말씀을 안하셨습니다. 저는 그림을 너무 잘못 그려서 칭찬을 안 해주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다음번에 오시면 정말 더 잘 그려야지... 그런데 중요한 또 다른 한 분이 목욕탕엘 오셨습니다. 그분은 5학년3반을 맡고 계신 선생님이셨는데 별명이 ‘아랑드롱’이셨습니다. 인기 만점의 멋쟁이 총각 선생님이셨지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 담임 선생님과 결혼을 하신 선생님이셨는데 당시에 연애중이라는 걸 알리가 없었죠. 저는 마치 우리집엘 방문하신 양 무척이나 영광이라고 또 생각했습니다. 저는 넙죽 인사를 하고는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남들과 달랐습니다. 건장한 체구에 아무튼 남들과 달랐습니다. 특히 배꼽 밑에는 점이 큰 것이 있었습니다. 제 눈에 걸리면 파리 새끼 한 마리도 해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림을 그리고 썼습니다. “오늘은 5학년 3반의 아랑드롱 선생님이 목욕탕엘 오셨다...” 다음날 담임 선생님께 검사를 맡을 때였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악! 하고 비명을 지르고는 제 일기장을 던져 버렸습니다. “어떻게, 어떻게!”하는 소리만 연방 질러대면서 말입니다. 뭔가 잘못 되었다는 직감은 하였지만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저는 왕방울만한 눈을 뜨고 선생님을 계속 쳐다보았습니다. 선생님은 꼭 불에 덴 것 같았습니다. “너, 정말 이런 것만 그릴래?” 선생님은 소리쳤습니다. 저는 정말 답답하고 억울했습니다. 선생님이 왜 그리 화를 내시는지, 제가 그림을 또 잘 그리지 못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번엔 정말 잘 그렸는데 말입니다. 저는 너무나 슬퍼서 앙!울어 버렸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나 슬펐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저의 진실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슬픔, 내 그림 실력은 아직 이 정도밖에 안된다는 서글픔이 어우러져 다시는 색연필을 잡고 싶지 않았습니다. 천재 예술가의 고뇌였던 모양입니다. 저는 너무나 슬퍼서 어머니께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도 아무 말씀 안하셨습니다. 저는 그후 이틀 동안 아프다는 핑계로 학교에 가질 않았습니다. 정말 고독했습니다.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몸 아픈 거 다 나았니? 선생님이 한 번 찾아갈게!” 저는 선생님의 방문 이후로 다시 색연필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후 계속해서 천재 예술가인 저는 줄기차게 목욕탕 풍경을 그리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모습들이 눈에 생생하게 그리도 향기로울 수가 없습니다. 마치 고향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학교 다니기 전에 어머니하고 여자 목욕탕엘 간 것은 아직도 전혀 생각나지 않는 것은 왜일까요? 그 아쉬움이 거리의 낙엽처럼 데굴데굴 구릅니다.
Board 삶 속 글 2023.01.11 風文 R 666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안병욱편" (1920~2013) 철학자. 수필가. 평남 용강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철학과 졸업. '사상계' 주간, 숭실대 교수 역임. 삶의 길잡이로 또는 사상의 안내자로 많은 젊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인물이다. "현대 사상" "사색인의 향연" "철학 노트" "알파와 오메가" 등 많은 저서가 있다. 끝없는 만남 왜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하는가? 만나기 위해서다. 누구를?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을. 독서는 인생의 깊은 만남이다. 우리는 매일 가족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스승을 만나고 동료를 만나고 또 이웃을 만난다. 만남이 없이는 인생이 있을 수 없다. 인생을 끊임없는 조우요, 부단한 해후다. 우리는 같은 시대의 사람을 만나는 동시에 옛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 옛 사람을 어떻게 만나는가? 책을 통하는 길밖에 없다. 독서는 옛 사람들과의 깊은 정신적 만남이다. 만남에는 얕은 만남이 있고 깊은 만남이 있다. 불행한 만남이 있고 행복한 만남이 있다. 소비적인 만남이 있고 생산적인 만남, 창조적인 만남이 있다. '옛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들의 정신과 만나는 것이요, 그들의 사상과 만나는 것이다. 그들의 정신과의 만남, 사상과의 만남을 통해서 나의 자아가 심화되고, 나의 인격이 성장하고, 나의 혼이 각성하고, 새로운 정신의 눈이 뜨인다. 새로운 자아 발견과 자기 심화의 법열을 느낀다. 그러므로 진정한 독서는 내가 참된 나를 알고 참된 나를 만나는 희귀한 창조적 행동이다. 어느 옛 어른을 이렇게 노래했다. '문 닫으면 이 곧 산 속, 책 읽으면 어디나 정토.' 독서 삼매경을 노래한 명시다. 이것은 진정한 독서인만이 가지는 인생의 지극한 환희요, 다시 없는 법열이다. 양서를 펴 보아라. '인생의 깊은 정신적 만남의 행복을 느낄 것이다. 종교의 진리를 말하는 구도자의 음성도 들을 수 있다.' '학문의 깊은 이치를 정성스럽게 전해 주는 스승도 만난다.' '예술의 황홀한 미를 직감시키는 창조의 거장을 발견할 수도 있다.' '자연의 오묘한 질서를 노래하는 시인의 음성에도 접할 수 있다.' '파란만장 속에 전개되는 흥미진진한, 소설가의 얘기를 들을 수도 있다.' ' 인생의 지혜를 담담하게 가르쳐 주는 스승들의 정다운 목소리를 대할 수도 있다.' 책 속에는 진리의 음성이 있고, 슬기의 샘터가 있고, 이론의 공장이 있고, 사색의 산실이 있고, 말씀의 향연이 있고, 뮤즈의 노래가 있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책 속에서 훌륭한 스승을 만나야 하고, 성실한 진리인을 만나야 하고, 위대한 혁명가를 만나야 하고, 진지한 학자를 만나야 한다. 책 속에는 정신의 동지가 있고 앙모하는 위인이 있다. 이러한 인물들과의 깊은 만남이 나에게 각성과 감명과 영감과 자극과 충격을 준다. 이것이 '나의 존재를 깊은 삶으로 심화시키고 높은 차원으로 비약시킨다.' 만남은 또한 대화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옛 어른들과 무언의 깊은 대화를 나눈다. 그는 나에게 말하고 또 묻는다. 나는 생각하고 또 대답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인생의 깊은 물음,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다. 인간을 묻고 대답하는 존재다. 물음 없이 대답이 없고 대답 없이 물음이 없다. 나와 너와의 깊은 정신적 만남과 대화가 없이는 나는 성장할 수 없고 발전할 수 없다. 책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나와 만나서 깊은 대화를 나누자고 손짓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 정신의 향연에 참여해야 한다. 혼과 혼과의 만남, 마음과 마음과의 대화, 이 만남과 대화에서 새로운 정신적 창조가 이루어진다. 책을 읽어라. 위대한 음성들이 조용히, 그러나 간절히 우리를 부르고 있다. 우리는 그 위대한 음성과 만나서 묻고 대답하고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우리는 정신의 이 풍성한 향연에 흔연히 참여해야 한다.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우리 삼순이, 책임져! - 오창선(여,대구시 서구 중리동) 저는 기찻길 옆 조용한 마을에 사는 주부입니다. 촌동네에 사는 제게도 문 좀 열어주실 수 있죠? 재작년 여름 무더위가 극도로 기승을 부리던 때, 남편은 순하고 살이 오통통하게 오른 변견 한 마리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보신용이냐구요? 아닙니다. 경비용입니다. 대구의 무더위를 잘 아시죠? 그나마 창문 현관문 있는 대로 다 열어 놓으면 한증막은 면하는데, 밤손님이 무서워 꼭꼭 닫고 자다보니 너무 더워서 잠도 설치고 어떨 땐 숨이 다 막힐 지경이더라구요.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자도 괜찮을 방법으로 생각하던 게 누가 대문 근방에만 얼씬만 해도, 담만 넘봐도 요란스레 짖어댈 개를 사다놓자는 것이었고, 그래서 삼순이가 온 것입니다. 삼순이는 우리 변견 이름입니다. 남편은요, 사람을 물어뜯어 놓으면 치료비를 물어줘야 할 테니, 그냥 짖기만 하는 개, 그것도 인기척만 나면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개가 최고라며 순둥이에다 겁쟁이인 개를 사온 겁니다. 심장 강한 놈은 도둑이 월장을 해도 지 먹이만 안 건드리면 '그까짓 것' 하며 봐준다나요. 그러나 남편의 굳 아이디어는 다음날로 종쳤죠. 삼순이는 밤에는 아예 지 집에서 숨죽이고 엎드렸고, 낮에도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보면 사정없이 꽁지를 확 내리고 집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으니까요. 기껏해야 낑낑대는 정도지 절대 짖어대는 법이 없는 겁니다. '그러면 그렇지, 누가 변견 아니랠까봐.' 남편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어쩌겠어요. 워낙에 겁많은 놈을 사온게 죄지. 그런데 이웃집엔 진돗개가 있는데, 남편은 이번엔 그런놈을 사오겠다고 별렀지만, 금액이 수십만원 나간다는 소리에 엄두도 못 내는 눈치였습니다. 남편은 가끔 그 집 앞을 자나다 열린 대문으로 늠름하게 서 있는 진돗개를 보기라도 하면, 삼순이 집 앞에 쭈그리고 앉아 한숨을 푹푹 쉬며 말한답니다. "삼순아, 삼순아, 니 왜 사노?" 그러던 남편에게 야무진 꿈이 생겼습니다. 이웃집 진돗개에게 삼순이를 시집보내서 진돗개 새끼를 얻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서너 마리 낳으면 그중에 한 마리는 아빠 닮은 놈이 있을 것이구만." 정말 야무졌죠. 어느 날 남편은 삼순이를 목욕시키더니 귀뒤에 딸아이 꽃머리핀까지 꽂아서 진돗개네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는 개자랑이라도 하듯 늘 대문이 열려 있는 그 집에 삼순이를 들여보냈습니다. 그러나 삼순이는 낑낑거리며 남편에게 엉겨붙기만 하고, 진돗개는 어디 똥개 하나 왔나, 소 닭 보듯 하더랍니다. 상심한 남편은 그냥 돌아왔고, 이번에는 슈퍼에 가서 오징어 한 마리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더니 구워서 다리 하나를 삼순이한테 먹이고, 또 하나를 뚝 떼서 삼순이 꼬리하고 등에다 마구 문지르는 겁니다. 이름하야 '향수작전' 이래나 뭐래나. 그런 후 삼순이를 다시 데리고 그 집에 가서 대문안에 밀어넣고 아예 대문을 닫아주고 왔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도무지 성공할 것 같지가 않아서 한마디 했습니다. "아무리 개라도 보는 눈이 있는데 삼순이가 진돗개 눈에 차겠나?" 남편은 그 말에 이러는 겁니다. "결혼은 다 눈에 뭐가 덮어씌어서 하는기라. 나를 봐라." "뭐라꼬, 이 문디!" 은근히 사람 열바치게 하는 그 말에 코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더운 날 싸워봤자 땀만 더 날 것 같아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 그랬더니만 향수 바르고 진돗개 집에 간 삼순이가 앞집 땅개랑 장난을 치며 놀고 있는 게 아닙니까. 키가 유난히 작은 땅개는 죽으라고 삼순이의 꼬리며 등에 올라타 핥고 있었습니다. 죽 쒀서 개 준 거죠, 뭐. 그날 이후 대문만 열리면 땅개는 우리 집에 놀러왔고, 삼순이도 틈만 나면 땅개네 집에 갔는데, 남편은 여전히 일요일마다 열심히 오징어 향수를 삼순이한테 발라 진돗개네 집에 밀어넣고 문을 닫고 오곤 했습니다. 여러 날들이 지난 어느 날 삼순이를 진돗개에게 데려다 주고 온 남편은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져서 말하더군요. "봐라, 이제사 둘이 정이 든기라. 삼순이가 아예 나는 쳐다도 안 보고 그 집에 들어가는기라. 이제 그기가 신랑집이고 신랑집이 지집이다 이거제." 그러나 저는 알고 있었죠. 삼순이는 그 집 뒷담에 난 개구멍으로 빠져 나와 쪼르르 땅개에게 직행하나다는 것을. 그러나 차마 말을 못하겠더군요. 가을이 접어들자, 남편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삼순이가 새끼를 뱄거든요. 남편은 진돗개네 집 앞을 지날때마다 '흐흐흐' 웃으며, 승리의 브이자를 그려 보였습니다. 그러면 진돗개가 이러는 것 같다나요. "내 새끼들을 부탁해용!" 하지만 제가 보기엔 이러는 것 같았습니다. "미친놈." 남편은 삼순이가 유산이라도 할까봐 못 돌아다니게 꼭 묶어놓은 채 통닭이며 생선을 우리 먹을 것에서 뚝 떼어다 열심히 거둬 먹였고, 나날이 배가 불러가던 삼순이는 어느 날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끙끙거렸습니다. 너무나 괴로워하는 것 같아서 가축병원에 데려갔더니,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한다더군요. 돈까지 들여가며 수술 끝에 태어난 네마리의 삼순이 새끼들. 남편은 그날 우리집 앞을 서성거리는 땅개를 발로 걷어차며 소리쳤습니다. "이놈아, 수술비 내놔, 이놈아. 우리 삼순이를 꼬셔서 새끼를 배게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이놈아." 그리고는 진돗개네 집 앞을 지날 때면 꼭 한마디 했습니다. "병신!" 그러나 남편에게 삼순이가 영 실망만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새끼를 낳고 부터는 누가 제 새끼 데려갈까봐 나뭇잎만 바스락거려도 짖어댔으니까요. 한번 목이 터지니까, 잘 짖대요. 작년 여름부터는 저녁마다 남편이 소릴 지르더군요. "여보, 이젠 현관문 열어, 창문도 열고. 어이, 옆방 이씨도 문열고 자, 활짝 열고 자. 이제 우리 삼순이가 안 있나." 사람이 이렇게 간사해지나, 원!
Board 삶 속 글 2023.01.10 風文 R 5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