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중사영(杯中蛇影) 杯:술잔 배. 中:가운데 중. 蛇:뱀 사. 影:그림자 영. [유사어] 의심암귀(疑心暗鬼), 반신반의(半信半疑). [출전]《晉書》〈樂廣傳〉,《風俗通義》 술잔 속에 비친 뱀의 그림자란 뜻으로, 쓸데없는 의심을 품고 스스로 고민함의 비유. 진(晉:265~316) 나라에 악광(樂廣)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집이 가난하여 독학을 했지만 영리하고 신중해서 늘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며 자랐다. 훗날 수재(秀才)로 천거되어 벼슬길에 나아가서도 역시 매사에 신중했다. 악광이 하남 태수(河南太守)로 있을 때의 일이다. 자주 놀러 오던 친구가 웬일인지 발을 딱 끊고 찾아오지 않았다. 악광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를 찾아가 물어 보았다. “아니, 자네 웬일인가? 요샌 통 얼굴도 안 비치니…….”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번에 우리가 술을 마실 때 얘길세. 그때 술을 막 마시려는데 잔 속에 뱀이 보이는 게 아니겠나. 기분이 언짢았지만 그냥 마셨지. 그런데 그 후로 몸이 좋지 않다네.” 악광은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번 술자리는 관가(官家)의 자기 방이었고, 그 방 벽에는 활이 걸려 있었지? 그렇다. 그 활에는 옻칠로 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안광은 그 친구를 다시 초대해서 저번에 앉았던 그 자리에 앉히고 술잔에 술을 따랐다. “어떤가? 뭐가 보이나?” “응, 전번과 마찬가지네.” “그건 저 활에 그려져 있는 뱀 그림자일세.” 그 친구는 그제서야 깨닫고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Board 고사성어 2023.01.13 風文 R 783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안병욱편" (1920~2013) 철학자. 수필가. 평남 용강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철학과 졸업. '사상계' 주간, 숭실대 교수 역임. 삶의 길잡이로 또는 사상의 안내자로 많은 젊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인물이다. "현대 사상" "사색인의 향연" "철학 노트" "알파와 오메가" 등 많은 저서가 있다. 고독과 사색 -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사물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영감을 받는 것은 오직 고독 속에서다 - 괴테 제일의 탄생 사람은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존재하기 위해 태어나고 한 번은 생활하기 위하여 태어난다. 우리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출생하여 이 세상에 내던져진다. 나의 몸뚱이가 태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생명의 탄생이요 신체의 탄생이다. 필자는 이것을 제 1의 탄생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제 2의 탄생이 있다. 자아가 탄생하고 나의 정신이 태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청년 시대에 이것을 경험한다. 사람은 제 2의 탄생과 더불어 참된 자기가 되고 진실한 인간이 될 수 있다. 동물에는 제 1의 탄생밖에 없다. 동물은 정신 탄생과 자아의 탄생을 모른다. 오직 인간만이 제 2의 탄생을 갖는다. 인간은 신체적 존재인 동시에 신체를 넘어서는 정신적 존재다. 인간은 육을 가진 영이다. 우리는 육체의 차원에 속하면서 동시에 자아와 인격과 정신의 차원에서 살아간다. 여기에 인간의 영광과 존엄성이 있는 동시에 고민과 불안이 또한 따른다. 인간을 동물의 질서에서 엄연히 구별하는 것은 제 2의 탄생이다. "에밀"의 저자 루소는 이렇게 말하였다. '모든 사람은 세상에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어머니로부터 하나의 생명으로 탄생하고, 한 번은 인간으로서 사회에 태어난다.' 이것은 인간의 2중 탄생을 간결하게 표현한 명언이다. 탄생에는 언제나 심한 고통이 따른다. 어머니는 자기의 생명을 걸고 자식을 낳는다. 제 1의 탄생에서는 한없는 신체의 고통이 동반한다. 제 2의 탄생에서는 신체적 고통 대신에 정신적 고뇌가 따른다. 우리의 정신은 불안의 골짜기를 헤매야 하고, 회의의 안개에 휩쓸려야 하고, 허무의 어두운 밤을 방황하고, 절망의 절벽에 부딪쳐야 한다. 자신 만만한 생의 충실감을 느끼는가 하면 걷잡을 수 없는 인생의 좌절감을 경험하게 된다. 즉 빛과 어둠의 교차를 체험한다. 그것은 제 2의 탄생을 위한 인간 자아의 악전 고투요 정신적 몸부림의 현상이다. 인생의 의미와 자기의 운명의 부조리에 대해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된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이며, 또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이며 생의 목적과 의의는 어디에 있는가? 젊은이들은 인생의 이러한 근본적인 위문 앞에 엄숙히 서게 된다. 그러나 아무도 시원한 해결과 대답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 스스로 탐구해야 한다. 그는 회의로 잠 못 이루는 밤을 경험해야 하고 자기의 생을 저주하고 싶은 우울한 심정을 느낀다. '나를 이 세상에 이끌어 온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만일 그러한 자가 있다고 하면 나는 그에게 항의하고 싶다.' 이 말은 덴마크의 고독한 실존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인간의 존재의 우연성에 관해서 항의한 말이다. 이것은 비단 키에르케고르만의 항의가 아닐 것이다. 제 2의 탄생을 경험하는 젊은 혼들이 인생의 어느 시기에 반드시 한 번은 던지게 되는 생의 항의다. 우리는 분명히 이 세사에 내던져진 존재다.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린다면 피투성의 존재다. 게보르펜하이트의 자각이다. 누가 무엇 때문에 나를 지금 여기에 한 인간으로 내던졌는가?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돌린다. 불교는 인연이요, 업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이것을 운명에 돌리기도 하고 우연에 돌리기도 한다. 실존 철학자들은 이것을 인생의 부조리라고 한다. 내가 지금 여기에 한 인간으로서 실존하는 데 대해서 아무도 합리적인 해석과 이유를 부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생은 부조리하다는 것이다. 파스칼은 그의 명저 "팡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인생의 짧은 기간이 내 앞과 뒤에 연결된 영원 속에 매몰되며 내가 차지하고 있는 이 조그마한 공간이 나를 알지도 못하고, 또 나도 알지 못하는 무한의 공간의 영원한 침묵은 나를 전율케 한다.' 이것은 '내'가 지금 여기에 실존하는 데 대한 파스칼의 철학적 회의의 말이다. 분명히 인생은 하나의 수수께끼요, 부조리요, 아포리아다. 젊은 생명들이 이러한 문제에 회의와 사색의 눈초리를 돌릴 때 그는 정신의 제 2의 탄생을 겪고 있는 것이다. 청년은 인생의 제 2의 탄생을 맞이하는 시기다.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하고 보람 있는 것은 제 2의 탄생이다. 왜냐하면, 제 2의 탄생이야말로 새로운 자아, 참된 자기, '나'다운 내가 태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존재의 차원에서 생활의 차원으로 비약하는 것이다.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인도 바가지와 임신(?) - 김기순(여.전북 부안군 하서면 언독리) 육십 고개를 앞두고 있는 아직도 젊은 언니랍니다. 나이먹은 사람이 주책없지만 우리 영감과 인도 성지순례여행에서 일어난 아주 별 희한하게 생긴 바가지 이야기를 써서 보냅니다. 얼마 전이었습니다. 그날도 들에 나가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막 저녁밥 한술 뜨는데 따르릉 전화벨 소리가 울리더군요. “여보세요. 거그 김아무게 보살님댁이지요?” “맞는디오. 근디 거기 어디데요?” “예, 여기는 보살님이 보살펴 주시는 절 주지스님입니다.” “아이고매요, 그 동안 모심는다고 워낙 바쁘다본게 자주 절에 가지를 못했구먼요.” 용건인즉, 그 동안 두 분 내외분 불심에 감동도 했고, 이번 기회에 부처님의 고향이신 인도에서 부처님의 발자취도 한번 더듬어 보시고 불심을 키우고 오시라고 성지순례를 모시고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한국이 아니라 머나먼 외국이라 음식이 입에 맞지가 않을 것 같아 간단히 밥을 해먹을 수 있는 음식과 작년 여름에 먹고 남은 미숫가루가 생각이 나더군요. 어렵게 미숫가루도 챙겨 우리 일행은 인도로 출발했지요. 인도에 도착해 우선 버스로 숙소에 가기로 했는데 웬 버스가 다 낡아빠진 폐차 직전의 고물 버스였고, 길도 우리나라 60년대 시골길이었습니다. 드디어 도착해서 보니 숙소는 아주 깔끔하고 정돈이 잘된 주택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여관 같은 집인가 보더군요. 할아버지와 저는 우선 어찌나 배가 고픈지 뭐든지 간단히 요기 좀 할 겸 미숫가루를 타서 먹으려고 그릇을 찾으러 욕실에 들어갔는데 이상하게 생긴 바가지 하나가 보이더군요, 깨끗하기도 하구요. 저는 ‘이 나라 바가지는 별 희한하게 생겼구나.’생각하고 그 바가지에다 물을 붓고 미숫가루를 타서 우선 저부터 쭉 마시고는 우리 영감에게도 미숫가루를 타서 갖다드리니 바가지 바닥에 묻은 미숫가루마저 손가락으로 싹싹 씻어 손가락까지 쭉 빨아드시더군요. 미숫가루는 금방 먹어도 소변이 한 번보고 나면 금세 배가 고파지기 때문에 서둘러 식사 준비를 하느라 그 이상하게 생간 바가지에다 쌀을 담아 싹싹 씻어 밥을 맛있게 해먹었지요. 밥이다 미숫가루다 이것저것 먹었더니 배가 아파왔습니다. 그런데 화장실에 들어가보지 아무리 찾아보아도 변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너무 급해 옆방 스님께 찾아가 물어보니 아 글쎄, 이곳에서는 변기 대신 그 이상한 바가지를 대용으로 쓴다는 겁니다.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비위가 약해져 그 자리에서 ‘욱-’하고 구토를 하고 말았지요. 영감은 그놈의 바가지 때문에 우리 마누라 죽이겠다며 안절부절 못하면서 어디서 구해왔는지 압핀으로 저의 손가락에 피를 내주어 조금은 살 것 같더라구요. “야! 이놈의 할망구야, 내가 아무리 보아도 그 바가지가 애기들 변기통하고 비슷하고 조금 커서 그렇지 이상하다 했는데, 그 바가지에다 미숫가루 타서 먹으라고 주고, 쌀까지 씻어 밥을 해줘.” 영감은 화를 버럭 내고는 잠을 안 자고 저녁 내내 욕실에 들락거리면서 ‘욱욱욱’하면서 양치질을 수없이 하더군요. 그후 전 지금도 밥과 미숫가루를 먹지 못하고 녹두죽 미음을 먹고 있는데 영감은 무딘 사람이라 그런지 오늘 아침 밥을 두 그릇이나 비우고 논에 일하러 나가더군요. 오후 늦은 시간, 집안일을 대충 해놓고 잠깐 쉬고 있는데, 서울에사는 큰딸한테서 전화가 왔더군요. “엄마 올 여름에도 미숫가루 할 거지. 장서방이 워낙 좋아하니 올해에는 우리 것도 넉넉하게 해.” “야, 이놈의 가시나야, 너 지금 나이가 몇 살인디 지금까지 에미더러 미숫가루 해달라고 하냐? 너는 손이 없냐? 발이 없냐?” 말하는 사이에도 속에서 구토가 나와 계속 ‘욱-욱’거리다가 전호를 끊고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보니 어느새 논에서 돌아온 그이가 부안 읍내 시장에 들러 사골을 사왔다며 제게 이야기하더군요. “이 할망구야, 3개월 간은 조심해야 한다니까 들일은 걱정말고 집에서 꼼짝 말고 몸조리 잘해야 해.”하면서 윗방에 들어가 백지족이를 내놓고 붓글씨로 한문으로 뭐엇인가 심각하게 쓰더라구요. “저놈에 노랭이 영감탱이가 무슨 일이지. 사골을 다 사오고...” 또 3개월 간은 조심하라며 붓으로 길 영자에 이을 도자를 쓰다가 ‘아니지’하면서 고개를 꺄우뚱하는 거예요. 그때 ‘따르릉 따르릉’전화가 오더군요. 광주에 사는 막내딸 전화였는데 다짜고짜 “엄마, 나 오서방한테 창피해서 못살어. 엄마 지금 나이가 몇 살이유. 50이 넘은 나이에 남들 창피하지도 않수? 몇 개월이유? 3개월은 되었수? 아빠는 그렇지 않아도 둘이만 살다보니 적적하고 외로웠는데, 늦게나마 자식을 갖게 되어 기분이 좋다며 허허허 웃으시던데, 두 분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유?” 막내딸은 울고 불고 난리더군요. 전화를 받고 가만히 생각하니 그놈의 인도 바가지 사건으로 이렇게 사건이 비약되고 말았지요. 저는 어찌나 화가 나던지 ‘자그들 코끼리 알랑방구 뀌는 소리 허고 자빠졌네. 이놈의 영감탱이 대머리 뒤꼭지에 머리 몇 개 난 것 마저 아주 다 뽑아 버릴끼여. 저놈의 영감탱이가 소사골까지 사와 늦게나마 마나님 귀한 걸 아는가 보다 했더니, 뭐 3개월 간은 조심해야 한다고...’ 아! 그래서 어제 저녁 목관도 깨끗이 허고, 참으로 오랜만에 안아달라고 했더니 늙어갈수록 더 밝힌다고 그 창피를 주고 등을 돌리고 코까지 드르릉 드르릉 골고 잠을 자더군요. 영감이 그러대요. “그러면 임자 임신헌 게 아니라 그때 인도의 그 이상한 바가지 때문에 그런거여...?” 영감은 계면쩍어하며 섭섭한 눈치더군요. “임자 오늘 저녁 일찍 먹고 잡시다. 나 얼릉 재너머 수랑뜰 논 물꼬 보고 올랑께. 저녁 준비 일찍 해놓고 목관 깨끗이 하고 기다려. 혹시 알어, 부처님이 늦동이 하나 점지해 주실지?” 하면서 논으로 향하는 영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지요. 몇 살만 젊다면... 하나 낳고 싶은디... 주책이겠지요. 그나저나 그놈의 인도 바가지는 언제쯤이나 저의 속을 안 썩일란지, 지금 이 순간에도 속이 지랄났는데... 급해서 이만 쓰고 화장실에 좀 갔다 올라요.
Board 삶 속 글 2023.01.12 風文 R 412
배수지진(背水之陣) 背:등 배. 水:물 수. 之:갈 지(…의). 陣:진칠 진. [동의어] 배수진(背水陣). [참조] 천려일실(千慮一失). [출전]《史記》〈准陰侯列傳〉.《十八史略》〈漢太祖高皇帝〉 물을 등지고 친 진지라는 뜻으로, 목숨을 걸고 어떤 일에 대처하는 경우의 비유. 한나라 고조 유방(劉邦)이 제위에 오르기 2년 전(B.C.204)의 일이다. 명장 한신(韓信)은 유방의 명에 따라 위(魏)나라를 쳐부순 다음 조(趙)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러자 조나라에서는 20만의 군사를 동원하여 조나라로 들어오는 길목인 정형의 협도(狹道) 출구 쪽에 성채(城砦)를 구축하고 방어선을 폈다. 이에 앞서 군략가인 이좌거(李左車)가 재상 진여(陳餘)에게 ‘한나라 군사가 협도를 통과할 때 들이치자’고 건의했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간첩을 통해 이 사실을 안 한신은 서둘러 협도를 통과하다가 출구를 10리쯤 앞둔 곳에서 일단 행군을 멈췄다. 이윽고 밤이 깊어지자 한신은 2000여 기병을 조나라의 성채 바로 뒷산에 매복시키기로 하고 이렇게 명했다. “본대(本隊)는 내일 싸움에서 거짓 패주(敗走)한다. 그러면 적군은 패주하는 아군을 추적하려고 성채를 비울 것이다. 그때 제군은 성채를 점령하고 한나라 깃발을 세우도록 하라.” 그리고 한신은 1만여 군사를 협도 출구 쪽으로 보내어 강을 등지고 진을 치게 한 다음 자신은 본대를 이끌고 성채를 향해 나아갔다. 이윽고 날이 밝았다. 한나라 군사가 북을 울리며 진격하자 조나라 군사는 성채를 나와 응전했다. 2,3차 접전 끝에 한나라 군사는 퇴각하여 강가에 진을 친 부대에 합류했고, 승세(勝勢)를 탄 조나라 군사는 맹렬히 추격했다. 그 틈에 2000여 기병대는 성채를 점령하고 한나라 깃발을 세웠다. 강을 등진 한나라 군사는 필사적으로 싸웠다. 이에 견디지 못한 조나라 군사가 성채로 돌아와 보니 한나라 깃발이 나부끼고 있지 않은가. 전쟁은 한신의 대승리로 끝났다. 전승 축하연 때 부하 장수들이 배수진을 친 이유를 묻자 한신을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군사는 이번에 급히 편성한 오합지졸(烏合之卒)이 아닌가? 이런 군사는 사지(死地)에 두어야만 필사적으로 싸우는 법이야. 그래서 ‘강을 등지고 진을 친 것[背水之陣]’이네.”
Board 고사성어 2023.01.12 風文 R 855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안병욱편" (1920~2013) 철학자. 수필가. 평남 용강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철학과 졸업. '사상계' 주간, 숭실대 교수 역임. 삶의 길잡이로 또는 사상의 안내자로 많은 젊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인물이다. "현대 사상" "사색인의 향연" "철학 노트" "알파와 오메가" 등 많은 저서가 있다. 조화 내가 가지고 싶은 철학이 있다고 하면, 곧 조화의 철학이다. 조화된 생활, 조화된 인간, 조화된 가정, 조화된 사회, 조화된 역사, 어느것 하나도 미 아닌 것이 없다. 조화는 곧 미의 원리다. 서로 성질을 달리하는 둘 이상의 요소가 하나의 전체적인 통일을 이루고 있을 때, 우리는 이것을 조화라고 일컫는다. 조화는 진실로 미 그 자체다. 조화는 결코 타협이 아니다. 타협은 내 주장 내 요구와 네 요구가 서로 대립 충돌할 때, 나는 내 주장과 내 요구의 일부를 죽이고, 너는 네 주장과 네 요구의 일부를 포기함으로써, 제삼의 어떤 절충점을 발견하다. 그러므로 타협에는 반드시 자기 부정의 요소가 언제나 따른다. 그러나 조화는 그렇지 않다. 나는 내 위치에서 내 본질과 내 요구를 주장하고, 너는 네 위치에서 네 본질과 네 요구를 내세우되, 그것이 서로 모순 대립하지 않고, 나는 나대로 살고 너는 너대로 살면서, 저마다 자기다운 빛과 의미와 생명을 드러낸다. 이것이 곧 조화다. 조화 속에는 자기 부정의 비극이 없다. 조화는 완전한 자기 긍정의 세계다. 내가 살기 위해선 네가 죽어야 하고, 또 네가 살기 위해선 내가 희생되어야 하는 세계는 조화의 세계가 아니다. 조화는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리가 다 같이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화는 곧 생명의 원리다. 모든 존재로 하여금 저마다 제 자리를 얻게 하고, 제 빛을 드러내게 하고, 제 생명을 다 하게 하는 것이 조화의 세계다. 같은 남자끼리 둘이서 걸어간다든지, 같은 여자끼리 걸어가는 광경보다는, 이성끼리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는 모습이 더 한층 아름답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고 실감이다. 그 경우에, 남자는 키가 좀 크고 여자는 좀 작기가 일쑤다. 또한, 그럴수록 더 조화의 미가 드러난다. 이것은 성의 조화요, 남녀의 조화다. 조화의 원리가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은 음악의 세계다. 하모니가 곧 음악의 생명이다. 하나의 심포니를 생각해 보면 좋다. 북은 북으로서 큰 소리를 내고, 나팔은 나팔로서 우렁찬 소리를 낸다. 피아노는 피아노대로 은근한 소리를 내고, 바이올린은 바이올린답게 흐느끼는 듯한 섬세한 소리를 낸다. 클라리넷은 클라리넷으로서, 색소폰은 색소폰으로서 저마다 제 소리를 낸다. 그러나 이 모든 소리가 저마다 제 소리를 내되 서로 남을 해치지 않고, 아름답게 전체적 통일을 이룬다. 이것이 교향곡의 미다. 이것은 진실로 조화의 극치다. 조화는 다양성의 세계다. 동시에 통일성의 세계다. 다양 속의 통일, 통일 속의 다양, 이것이 곧 조화의 본질이다. 조화는 곧 조화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수려한 산이라도 물이 없으면 섭섭하다. 아무리 아름다운 강이라도 산이 비치지 않으면 어딘지 허전한 감을 느낀다. 산은 강을 부르고, 강은 산을 찾는다. 산은 강 옆에 있어야 빛나고, 강은 산을 안아야 아름답다. 이것이 곧 산수의 조화다. 사람의 신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화의 원형을 찾는다면 곧 얼굴이다. 두 눈과 한 코, 두 귀와 한 입으로 구성된 사람의 얼굴에서 우리는 진실로 기능과 작용의 아름다운 조화를 볼 수 있다. 우리가 길을 걷다가, 음식을 먹거나 말을 할 때를 생각하여 보라! 눈은 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귀는 듣는 기능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코는 숨쉬는 일을 잠시도 쉬지 않고 입은 말하는 일을 다다 저마다 제 자리에서 제 기능과 제 작용을 다 하면서 전체적 생명에 봉사한다. 말할 때 귀가 딴전을 부리거나 음식을 먹을 때 코와 눈이 입에 협력하지 아니한다면, 우리의 전체적 생명의 기능은 파괴된다. 작게는 하루살이의 목숨에서부터 크게는 사람의 목숨에 이르기까지, 무릇 생명은 일대 조화의 체계다. 유기체는 이러한 조화의 원리를 가지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다. 조화는 미의 원리인 동시에 생명의 원리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예로부터 조화의 사상을 가장 강조한 것은 그리스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리스의 철학에서 조화의 원리를 찾을 수 있다. 그리스 사람들은 우주를 '코스모스'라고 불렀다. '코스모스'는 동시에 질서 또는 조화를 뜻한다. 얼른 보기에 복잡한 혼돈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듯한 삼라만상의 대 우주에서, 그리스 사람들은 정연한 질서와 아름다운 조화를 보았다. 그러기에, 우주를 뜻하는 '코스모스'란 말이 질서 또는 조화의 뜻을 가지게 된 것이다. 봄이 가면 여름이 되고, 가을이 찾아온다. 춘하추동의 네 계절은 어김없이 순환한다. 어두운 밤이 지나면 밝은 낮이 된다. 밤과 낮의 교체는 영원을 두고 변하지 않는 질서다. 눈을 들어 밤하늘을 쳐다보면, 수십 억을 헤아리는 무수한 별들이 저마다 제 위치를 지키고, 제 궤도를 돌되, 결코 서로 충돌하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 사람들이 우주를 질서와 조화의 체계라고 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스의 수학자 피타고라스에 의하면, 일월 성신인 천체의 운행에 아름다운 음악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귀로써는 그 오묘한 음악을 들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과연, 그리스 사람다운 자유 분방한 사상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그리스의 철인 플라톤은 조화를 곧 정의의 원리라고 보았다. 인간의 몸이 머리와 가슴과 배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듯이 국가는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 계급과, 국토를 지키는 방위 계급으로 되어 있다. 머리는 머리의 위치에서 머리의 기능을 다 하고, 가슴은 가슴의 자리에서 가슴이 맡은 바를 다 하고, 배는 배의 위치에서 배의 할 일을 다하기 때문에, 우리의 몸이 건전한 생명의 구실을 할 수 있다. 만일, 머리가 머리의 직분을 안 하고 가슴의 일을 하려고 든다든지, 가슴이 가슴의 기능을 집어치우고 배의 구실을 하려고 한다면, 우리의 몸은 파멸될 수밖에 없다. 저마다 제 자리에서 제 직분을 다 하고, 남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가장 올바른 자세다. 이것이 곧 질서요 조화다. 정의란, 별것이 아니고 질서와 조화를 의미한다. 국가의 정의도 마찬가지다. 통치 계급은 통치 계급으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잘 하고, 방위 계급은 방위 계급으로서 국토 방위의 직책을 다 하고, 생산 계급은 생산계급으로서 생산에 전력을 기울이되, 서로 남을 간섭하거나 방해하지 않는다. 저마다 제 자리를 지키고 제 직분을 다 하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때, 국가의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의 가장 올바른 모습이다. 사실, 우리는 자기의 자리를 안 지키고 자기의 할 일을 등한히 하면서 공연히 남의 일을 간섭하고 방해하기가 쉽다. 이것이 사회의 정의를 깨뜨린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하는 말을 강조한 데 대하여, 플라톤은 '네 분을 지키라'고 역설했다. 그는 수분의 철학을 주장했다. 저마다 제 자리를 지키고 제 직분을 다 할 때, 사회는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진다. 조화는 미의 원리요 정의의 원리일 뿐만 아니라, 또한 건강의 원리요 행복의 원리다. 건전한 정신은 건전한 육체에 깃들인다. 이것이 그리스 사람들의 부동의 신념이었다. 그들은 정신만의 인간이나 육체만의 인간을 생가지 않았다. 인간은 영과 육, 정신과 육체의 아름다운 통일이요 조화라고 보았다. 영의 이름 아래서 육이 멸시되거나, 육의 이름 아래서 영이 망각되기 쉽다. 우리는 영이 없는 육의 나라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는 동시에, 육이 없는 영의 나라에 살기도 바라지 않는다. 육은 영을 무르고, 영은 육을 구한다. 영이냐 육이냐가 아니고, 영과 육이 조화되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건강한 모습이다. 영과 육의 조화를 떠나서 인간의 진정한 행복을 구한다는 것은 헛된 일이다. 고도로 분업화한 현대의 산업적 대중 사회에서, 인간은 자칫하면 불구적 인간, 부분적 인간이 되기 쉽다. 한 가지 영역에 전문적 직업인이 되는 결과, 전체적 인간으로서의 조화를 잃어버린다. 머리만의 인간이 생기기 쉽고, 손만의 인간이 되기 쉽다. 인간성의 모든 요소가 조화적으로 발달된 '전인'은 찾아볼 수 없고, 어느 한 요소만이 극단히 불구적으로 발달된 인간을 보게 된다. '전인'이 스러지고 '불구인'이 늘어 간다. 막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현대의 표어는 '조화'다. 현대인의 비극은 인간이 모든 영역에서 조화를 상실한 사실에 있다. 조화의 상실이 우리의 불행이라면 조화의 회복은 우리가 불행에서 벗어나가는 길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의 이상은, 만인이 다 제 멋에 겨워서 살아가되, 서로 충돌하거나 대립하지 않는 일대 조화의 체계를 세우는 데 있다. 만인이 저마다 자기를 실현하고 자기를 주장할 수 있는 사회, 저마다 제 소리를 지를 수 있고 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회, 다양성 속에 통일성이 있고 통일성 속에 다양성이 있는 사회, 이것이 조화의 세계다. 조화! 이것은 분명히 미의 원리요, 생명의 원리요, 정의의 원리인 동시에, 또한 건강과 행복의 원리가 아닐 수 없다.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예술이냐? 외설이냐? 한재옥(남,대전 서구 월평1동) - '그림 일기' 를 기억하십니까? 저는 어릴 적 그림일기를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데 저의 가장 아끼는 보물 1호입니다. 요즘 초등학교 학생들은 그림 일기를 쓰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서른 세 살인 제가 당시 초등학교에 다닐 때, 그림 일기는 어린 우리들의 존재이자 우주 자체였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일기 쓰는 습관을 길러주고자 매일 일기 검사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크레용 내지는 색연필로 매일의 그림 일기를 쓰는 것은 그야말로 숭고한 작업이었습니다. 그날 느낀 점을 가장 솔직하게 그리고 써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저는 매일의 제 생활 중에서 가장 인상 깊고 솔직한 이야기들을 충실하게 써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어린 저에게 가장 재미있는 사항은 바로 공중 목욕탕엘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집에 샤워 시설이 변변치 않았기에 아버님께서는 목욕탕에 자주 가셨습니다. 3일에 한 번씩 말입니다. 왜그리 목욕탕에 가는 것이 좋았는지, 목욕탕에 가는 날에는 어김없이 그림 일기에 목욕탕 풍경이 등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저의 그림 일기에는 거의 세 장 건너서 포르노 사진을 방불케 하는 적나라한 풍경이 그려졌습니다. 어릴 적 그림일기를 보면 하루는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습니다. “오늘은 아빠와 금성 목욕탕에 갔다. 뜨거운 물 속에 있는 할아버지까 ‘어허야 디어야’하면서 노래를 하셨다. 나는 목욕탕 물 속에 들어가면서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도 산토끼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시끄럽다고 되게 혼났다...” 그런데 정작은 ‘내용’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그림’이었습니다. 저는 가장 솔직하고 진솔하게 그림을 그려나갔던 것입니다. 원래 관찰력이 뛰어나서 ‘망원경’이라는 별명을 가진 저는 신체의 모든 부분을 세밀하게 관찰하고는 거짓없이 색연필로 북북 그려갔습니다. 원래 그 나이 때는 옆모습이나 뒷모습은 그리지 못하지 않습니까? 무조건 앞모습이지요. 그것도 차렷자세를 하고는 씩 웃고 있는 적나라한 앞모습 말입니다. 어른들과 나와의 같은 점, 다른 점, 크기, 예상되는 무게 등등 저는 망원경같이 관찰하며 예술 작업을 해왔던 겁니다. 물론 상체뿐만이 아닙니다. 하체 또한 씩씩하게 다 그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야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때야 뭐 그런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신체의 한 부분이겠거니 하고는 거저 자세하게 그린 것입니다. 상상하시겠습니까? 세 장을 넘기면 저와 같이 목욕을 갔던 사람들이 원초적인 모습을 하고는 씩 웃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님, 삼촌, 형님, 옆집 담뱃가게 아저씨, 연탄가게 아저씨...등등 목욕탕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김없이 제 그림에 포착되어 선생님께 보고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시집을 안 가신 아리따운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제 그림 일기만 보시면 얼굴이 빨개지셨습니다. 제 일기를 보시고는 “애 너무 이런 것만 그리면 어떻하니!”라고 하셨지만, 저는 안중에 없었습니다. 그때 저의 가장 즐거운 일은 목욕탕에 가는 것이었기에 저는 그것을 계속 그리고 쓸 수밖에요.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교장 선생님이 등장하셨습니다. 저는 일주일에 월요일 한 번 높은 강단 위에서 연설을 하시던 높고 높으신 분이 저의 그 정다운 목욕탕에 오신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저는 선생님이나 교장 선생님을 만나면 인사를 잘 하라고 교육을 받았기에 “안녕하세요!”하고 큰소리로 인사를 하고는 넙죽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빠,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이세요.”하면서 아버님께 소개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그때는 왜 아버님과 교장 선생님께서 그리도 어색하게 인사를 하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리도 반가웠는데 말입니다. 아! 교장 선생님께서 금성 목욕탕엘 오시다니. 저는 웬지 모를 흥분으로 그림 일기를 썼습니다. 물론 자세하게 그렸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모든 것을. 차렷하고 앞을 보면서 씩 웃고 있는 교장 선생님의 모든 것을 말입니다. 교장 선생님은 몸을 씻는 동작이 좀 특이했습니다. 식목일 날 나무를 안 심으셨는지 머리에 머리카락이 거의 없으신 교장 선생님은 머리를 감는 것이 꼭 세수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바람 먹은 맹꽁이 배같이 불룩 튀어나온 배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 있을까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사실 배가 너무 나와서 ‘중요한 부분’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악착같이 고개를 숙이고 관찰하고는 그대로 그려 넣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이 등장하는 저의 그 그림일기를 보시고는 아무 말씀을 안하셨습니다. 저는 그림을 너무 잘못 그려서 칭찬을 안 해주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다음번에 오시면 정말 더 잘 그려야지... 그런데 중요한 또 다른 한 분이 목욕탕엘 오셨습니다. 그분은 5학년3반을 맡고 계신 선생님이셨는데 별명이 ‘아랑드롱’이셨습니다. 인기 만점의 멋쟁이 총각 선생님이셨지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 담임 선생님과 결혼을 하신 선생님이셨는데 당시에 연애중이라는 걸 알리가 없었죠. 저는 마치 우리집엘 방문하신 양 무척이나 영광이라고 또 생각했습니다. 저는 넙죽 인사를 하고는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남들과 달랐습니다. 건장한 체구에 아무튼 남들과 달랐습니다. 특히 배꼽 밑에는 점이 큰 것이 있었습니다. 제 눈에 걸리면 파리 새끼 한 마리도 해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림을 그리고 썼습니다. “오늘은 5학년 3반의 아랑드롱 선생님이 목욕탕엘 오셨다...” 다음날 담임 선생님께 검사를 맡을 때였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악! 하고 비명을 지르고는 제 일기장을 던져 버렸습니다. “어떻게, 어떻게!”하는 소리만 연방 질러대면서 말입니다. 뭔가 잘못 되었다는 직감은 하였지만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저는 왕방울만한 눈을 뜨고 선생님을 계속 쳐다보았습니다. 선생님은 꼭 불에 덴 것 같았습니다. “너, 정말 이런 것만 그릴래?” 선생님은 소리쳤습니다. 저는 정말 답답하고 억울했습니다. 선생님이 왜 그리 화를 내시는지, 제가 그림을 또 잘 그리지 못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번엔 정말 잘 그렸는데 말입니다. 저는 너무나 슬퍼서 앙!울어 버렸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나 슬펐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저의 진실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슬픔, 내 그림 실력은 아직 이 정도밖에 안된다는 서글픔이 어우러져 다시는 색연필을 잡고 싶지 않았습니다. 천재 예술가의 고뇌였던 모양입니다. 저는 너무나 슬퍼서 어머니께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도 아무 말씀 안하셨습니다. 저는 그후 이틀 동안 아프다는 핑계로 학교에 가질 않았습니다. 정말 고독했습니다.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몸 아픈 거 다 나았니? 선생님이 한 번 찾아갈게!” 저는 선생님의 방문 이후로 다시 색연필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후 계속해서 천재 예술가인 저는 줄기차게 목욕탕 풍경을 그리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모습들이 눈에 생생하게 그리도 향기로울 수가 없습니다. 마치 고향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학교 다니기 전에 어머니하고 여자 목욕탕엘 간 것은 아직도 전혀 생각나지 않는 것은 왜일까요? 그 아쉬움이 거리의 낙엽처럼 데굴데굴 구릅니다.
Board 삶 속 글 2023.01.11 風文 R 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