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송건호 편"(1927~2001) 평론가. 충북 옥천 출생. 서울대 법대 졸업. 한국 일보, 경향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논설위원과 경향신문. 동아일보의 편집국장을 역임. 저서에 "민족 지성의 탐구" "한국 민족주의의 탐구" 등이 있다. 역사적 안목의 비판이 실린 많은 평론. 에세이를 발표했으며 한국 지성의 현실과 문제를 일깨우는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고향을 향한 마음 젊어서는 고향을 등지는 것이 그들의 당연한 생활처럼 생각되고 있다. 학교를 나온 뒤 서울이나 지방 도시에서 하다못해 몇만 원 월급쟁이라도 해야만 고향 사람들의 칭찬의 대상이 되지 집에서 농사를 짓거나 마을 일을 돕는 것으로 그친다면 이러한 청년은 사회에서 낙오된 젊은이로 업신여김을 받기 일쑤다. 남자가 듯을 세워 고향을 나온 이상 성공을 못 하고는 죽어도 귀향하지 않는다는 결심이 훌륭한 젊은이로 칭찬을 받는다. 그래서 많은 청년들이 장성하면 고향을 등지고 이른바 '성공'을 위해 노력한다. 물론 젊은이들의 이러한 '성공'에의 야망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고 이러한 야심에 찬 젊은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나라의 앞날이 양양해진다는 것도 긴 설명을 필요치 않는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아무리 야심 많은 사람이라도 고향에 대한 '향수'만은 결코 버리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큰 뜻을 품고 고향을 떠난 사람일수록 가슴 속에는 고향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 불타오르고 있다. 수만 리 떨어진 먼 외국에 사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고향에 대한 절절한 향수에 사로잡혀 있다. 이것이 '마음의 고향'이라고 할까. 살인 강도와 같은 흉악범도 죄를 범하고 난 후에는 많은 경우 그가 어려서 자란 고향에서 잡히는 일이 많다. 일단 죄를 범하고 난 뒤에는 순간적인 격정에서 저지른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마음이 약해져 자기도 모르게 어릴 적에 자란 고향 마을에 찾아갔다가 잡힌다는 것이다. 범인의 이러한 심리적 약점을 알고 있는 수사관들이 미리 그의 고향에 잠복했다가 잡는 것이다. 사람은 평소에는 별로 생각도 느끼지도 못하지만 누구나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 어릴 적에 늘 만지작거리던 어머니의 젖꼭지와 자랄 때 아침 저녁 대하던 고향 산천은 다 같이 '마음의 고향'으로서 우리의 가슴 속 깊이 숨어 있다. 내가 오늘 있는 것은 고향 산천의 힘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치 않는다. 고향 산천을 대해도 할 말이 없다 - 고향 산천은 고맙기만 하여라. 어느 시인이 부른 시 한 구절이다. 젊어서 고향을 뛰쳐나온 젊은이도 나이가 들면 으레 고향을 그리게 된다. 외국으로 왔다갔다하며 우리 풍습을 거의 잊은 사람도 50이 넘고 60이 되고 하면 점점 고향을 그리게 되고 입는 옷은 물론 취미도 한국적인 것에 심취한다. 일본에 사는 어느 우리 동포가 20대에 고향을 떠나 일본에서 자수 성가, 그 곳에서 뼈를 묻게 됐으나, 생전에 틈만 있으면 "춘향전"의 레코드를 틀어 놓고 고향 생각을 하며, 눈물지었다는 이야기를 그의 아들에게서 들은 일이 있다. 아들은 서울에 온 길에 "춘향전"에 관한 레코드를 모조리 구해다가 돌아간 선친의 영전에 바쳤다고 한다. 나는 지방색을 의식적으로 배척하고 반대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자기를 낳고 길러 준 고향 마을에 대해서는 좀더 관심을 보여야 옳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지방색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이가 들수록 고향 마을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지는 것이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경향이다. 누구나 성장한 뒤에는, 특히 고향을 떠나 사회나 나라의 지도적 위치에 선 사람이면, 고향에 무엇인가 뜻있는 일을 했으면 한다. 큰일이 아니라도 좋다. 크게 귀를 했거나 축재한 사람이라면 고향 마을을 위해 좀더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크게 보람 있는 일이 아니어도 좋다. 오히려 작은 일이라도 정성에 더 뜻이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자라고 한글과 산수를 깨우쳐 준 고향 모교인 국민 학교에 몇 권의 책을 기증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한국 위인전, 동화집, 또는 학습에 도움이 되는 이것저것 책을 사서 고향의 모교에 보낼 수도 있다. 자라나는 고향의 후배들이 얼마나 좋아하고, 도움이 될 것인가. 사람은 누구나 연로하여지면 자기 반성을 하게 된다. 또 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출세'를 위해 또는 '축재'를 위해 편안한 날이 없었다. 그러나 연로할수록 사람들은 자기의 지난날을 회고하게 된다. 조그마한 일이나마 무엇인가 뜻있는 일을 하고자 생각한다. 뜻있는 일은 물론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 고향에 대한 무엇인가의 기여도 마지막 인생을 장식하는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이종환, 최유라씨 안녕하세요! 저는 회사차를 운전하는 사람으로 '지금은 라디오 시대'의 '준'청취자입니다. '왕'이 아니고 왜 '준'이나구요? 하루 3교대 근무하는데 3시에서 11시까지 근무하는 때밖에 듣지를 못한답니다. 그래도 보름에 한 번씩 5일간은 들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그래서 말인데 '지금은 라디오 시대' 애청자들을 위하여 뭔가 저도 일익을 해야 한다, 받고만 살 수 있나 주고도 살아야지 하는 사명감에서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겪은 일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전 그때 그 일로 인하여 사흘 닷새 밤을 엎드려 자야만 했습니다. 사건은 이러했습니다. 문제의 그날, 제 뒤에 앉은 요시찰들, 문제아들, 가방끈 뒷부분을 잡는 애들, 하복 소매가 팔꿈치를 덮는 애들은 점심시간을 풀(full)로 이용하기 위해 도시락은 일찌감치 까먹고 4교시가 끝나자마자 한문으로 아닐 비자 비슷한 모양을 그린 노트를 펴놓고 접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으찌 먹어." "에이 니네, 걸렸다." "이번엔 쌈 먹어." "으라차차 쌈 깠어." "떨어진 것 넣고 니 먹어." 일명 쌈치기.... 수업시간에도 책상 밑으로 짝궁과 깠니, 못 깠니 하면서 동전을 주고 받는 쌈치기가 그날도 차질없이 벌어진 것입니다. 며칠 전 책값을 타왔다가 고스란히 날려버린 저는 본전이라도 챙기려는 순수한 일념에서 손바닥이 발바닥이 되도록 싹싹 비벼댔고 얼마나 비벼댔는지 엄지 손가락 윗부분은 동전의 푸른 때가 운동장 잔디마냥 입혀졌으며, 손톱 사이에는 푸른 녹때가 난초의 연복초를 연상케 하였습니다. 밥먹고 섭취한 HO2량이 많아서 인지 오줌이 심하게 마려웠지만 점심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한판이라도 더 집어 복구를 해야 할 이 시점에서 3층을 뛰어 내려가 100미터 더 가야 하는 화장실에 갔다 온다는 건 저에게 사치였습니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저에게 미소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제 손에는 동전 몇 개가 남았고, 5교시를 알리는 수업종 소리가 울려버렸습니다. 누가 설상가상이라 했던가, 엎친 데 덮쳤다고 했던가, 참았던 오줌은 봇물처럼 터질 것만 같았고, 선생님은 금방 들어오실 것 같은데 그렇다고 교실 바닥에다 실례할 수는 없고.... '그래 할 수 없다!' 저는 비장한 결단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오늘도 미안하지만 그곳을 이용해 주자. 저는 일층만 올라가면 옥상이고, 그곳에 제 전용 변기통이 있다는 걸 상기시켰습니다. 빗물이 흘러내리게끔 뚫린 구멍으로 젊음의 상징인 제 힘찬 폭포수를 쏟아 부었습니다. 되도록 밖으로 튀지 않게 정조준하여 힘차게 힘차게 구멍 깊숙이.... 오래도 보았지요. 그리고 나서 세 번쯤인가, 털털 상하 운동을 시켜주고 안전지대로 옮긴 저는 개운한 마음으로 옥상을 내려가고 있는데 밑에서 사정없이 동해안 공비소탕 나온 군인은 저리 가라 하고 민첩하면서도 우악스럽게 튀어 올라오는 기술선생님과 수위 아저씨, 테니스를 치다 오시는지 머리에는 물기가 가득하였고, 와이셔츠는 땀에 흠뻑 젖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걸 느끼는 순간 영문도 모른 채 저는 오뉴월 닭 패대기치듯 계단도 다 내려서기 전에 복지부동하게 되었습니다. 공무원이 복지부동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공무원 시험 한 번 본 일이 없는 제가 복지부동하였으니 어쩐 일입니까. 개처럼 질질 훈육실로 끌려간 저는 대걸레 자루로 손가락 발가락을 다 합해도 셀 수 없이 허벌나게 맞으면서 그 이유를 알았지요. 제가 실례한 옥상 그 구멍을 통해 빗물이 흘러내리게끔 달아논 물통의 맨 밑에 것이 떨어져나가 비라도 많이 올라치면 고공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사방팔방으로 흙탕물을 튀겼고 바로 옆의 길로 다니는 선생님들의 바짓가랑이를 적시고 더럽히는지라 햇볕이 따사로운 점심시간을 이용해 함석으로 새로 짠 물통을 바닥까지 닿게 사다리를 받쳐놓고 열심히 끼워 맞추고 있는 그때, 끊는 피가 용솟음치는 18세가 뿜어내는 엄청난 양의 급류를 두 분이서 순식간에 피할 겨를도 없이, 잘못 움직이면 사다리에서 낙상하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르는 그 상황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뒤집에쓸 수 밖에 없었던 사연, 머리카락을 타고 눈을 거치는 순간 따가움을 느낀 두 분, 코밑을 흐를 때야 의심했고, 입이 낮은 곳에 임한 죄로 본의 아니게 맛까지 보고 나서 "아, 이거구나."를 외친 두분. 저는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라는 인사말이 무엇 때문에 생겨났는지를 실감했고, 그 후로 쉬는 시간, 점심 시간을 그곳에서 실례하는 범인을 색출, 신고하는 비밀요원의 임무를 띠고 한달 동안이나 쌈치기 한번 못해보고 세월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Board 삶 속 글 2023.02.01 風文 R 475
말의 세대 차 말의 세대 차를 걱정하는 사람을 자주 만난다. ‘못 알아듣겠다.’ ‘이러다가 소통이 안 될까봐 걱정이다.’ ‘세대 차를 줄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걱정도 팔자다. 노력하지 말라. 가끔은 뭘 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게 나을 때가 있다. 세대 차를 줄이려는 노력은 허황되고 부질없다. 세대 차가 없는 말의 세계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노화 저지’(안티에이징)가 시대적 과제라지만, 가는 세월 그 누가 잡을 수가 있겠나. 기성세대는 버릇처럼 젊은이들의 말을 달가워하지 않지만, 줄임말이나 신조어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기만 한 건 아니다. 새로운 말은 세대를 불문하고 어디서든 만들어진다. 누가 쓰느냐에 따라 평가를 달리할 뿐이다. 공식어나 격식체를 쓰는 공간에서도 줄임말이나 신조어를 빈번하게 쓴다. 그런데 정치에 무심한 사람에게는 ‘외통위, 법사위, 과기정통부, 윤핵관’이 생소할 수밖에 없다. 국가재정사업에 무심하면 ‘예타 면제’란 말을 모른다. 입시에 무심하면 ‘학종, 사배자, 지균’이 뭔지 모른다. 시골 농부는 ‘법카’를 모른다(알아 뭐 할꼬). 어떤 사람들에겐 못 알아듣는 말인데도,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이 공간을 차지한 사람들에게 친숙한 말이면 ‘모두가 쓰는 말’로 가정한다. 그 공간 밖에 있는 사람들의 말만 불온시한다. 편파적이다. 우리는 모든 장소와 시간에 존재할 수 없다. 말은 장소성을 갖는다. 장소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말을 만들어낸다. 장소성을 갖지 않는, 장소성이 표시되지 않는, 중립적인 척하는 언어가 더 의심스럽다. 차이를 줄이기보다 차이를 밀어붙이자.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