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박완서편" 여류 소설가. 경기도 출생. 서울대 문리대 중퇴. 1970년에 장편 소설 "나목"으로 문단에 나온 후 장편 "휘청거리는 오후" 등으로 일약 각광을 받아, 가장 설득력 있는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로 평판을 얻었다. 감각적인 묘사가 섬세하면서도 예리한 분석력으로 지목되고 있다. 버스 바닥에 흩어진 동전 이것도 비 오는 날 얘기다. 버스를 타고 있었다. 타고 내린 많은 사람들의 젖은 신발과 우산에서 흘러내린 빗물로 버스 바닥은 질펀한 진창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내가 내릴 정거장을 하나 앞두고 갑자기 앉은 자리에서 안절부절 불안해졌다. 잔돈이 하나도 없고 오백 원짜리 밖에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요즈음 오백 원권은 그가 처음 탄생할 때 지녔던 가치를 어느틈에 오천 원권한테 빼앗기고 형편없이 타락한 건 사실이다. 오백 원권을 가지고 큰 돈 대접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나는 아직도 버스에서 내릴 때 오백 원권을 낼 때만은 그게 큰 돈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차장 아가씨한테 미안해하는 버릇이 있다. 아마 옛날 옛적 오백 원권이 위풍당당하게 최고액권 행세를 하던 시절, 그것으로 버스 요금을 내면 차장이 짜증을 내며 구박까지 하던 때의 기억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오백 원권으로 요금을 내려면 한 정거장쯤 미리 앉은 자리에서 차장한테 가는 걸 내 나름의 예절로 삼아 왔다. 그 날도 나는 미리 차장 아가씨한테 가서 미안한 얼굴을 하며 오백 원권을 내밀려고 했다. 그런데 차장 아가씨는 꼿꼿이 선 채 머리만 약간 창틀에 기대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우리집 셋째딸만한 나이의 연약한 아가씨였다. 짙은 피로가 앳된 얼굴과 심한 부조화를 이루고 있어 측은했다. 그 잘난 오백 원권 때문에 이 아가씨의 달디단 잠을 깨울 수도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그녀의 피곤하고 불안한 낮잠에서 그녀의 중노동, 불량한 생활 환경, 불결한 잠자리, 조악한 식사, 업주로부터의 인간 이하의 모욕적인 대접, 그리고 그녀가 도망친 가난한 농촌 등 버스 차장이란 직업에 대해 갖고 있던 일반적이고 알량한 상식을 한꺼번에 확인한 것처럼 느꼈고, 그래서 얼싸안고 내 품에 편히 재우고 싶으리만큼 감상주의에 흠뻑 젖어들었다. 내가 내릴 정거장이 되고 버스가 멎는 것과 동시에 그녀는 반짝 눈을 떴다. 잠에서 깨어난 게 그녀가 아니라 나였던 것처럼 나는 놀리면서 어설프게 오백 원권을 내밀었다. 그녀는 재빠르게 동전이 짤랑대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백원짜리와 십원짜리 동전을 건네 주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이런 우리의 주고받음 사이를 뚫고 두어 명의 승객이 버스를 내렸다. 그 바람에 누구의 잘못인지도 모르게 동전이 질퍽질퍽한 버스 바닥에 흩어졌다. 나는 그것들을 주우려고 엎드리면서 차장 아가씨가 상냥하게 미안하다고 하면서 같이 줍든지, 그냥 내리라고 하고는 새로운 거스름 돈을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녀는 발까지 구르며 나에게 호통을 쳤다. "아이 속상해. 그것 하나 제대로 못 받고 속을 썩여, 빨리 빨리 주워 가지고 내려욧. 빨리 발차시켜야 한단 말예욧." 질퍽한 버스 바닥의 동전은 용용 죽겠지 하는 듯이 차고 희게 빛나며 좀처럼 주워지지를 않았다. 마치 침으로 붙인 우표 딱지 모양 버스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나를 약올렸다. 나는 거지처럼 헐벗은 버스 바닥을 엉금엉금 기며 손톱으로 이리저리 집어 겨우 백원짜리 동전만 주워 가지고 허리를 좀 펴려는데 차장 아가씨가 나를 잽싸게 문 밖으로 떠밀었다. 아니 내던졌다. 나는 곤두박질을 치면서 겨우 진창에 엎어지는 것만은 면했다. 그것만으로 내가 받은 수모가 부족했던지 버스는 흙탕물까지 나에게 끼얹어 주고 떠나갔다. 옷도 옷이지만 네 닢의 동전을 주워 올린 내 손과 손톱 사이는 말이 아니게 더러웠다. 나는 어느 가겟집 홈통에서 흘러내리는 빗물로 손을 씻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차장 아가씨한테 몹시 화를 내지는 않았다. 나이 탓인지도 모르겠다. 꼿꼿이 선 채 불안하고도 달게 자던 소녀에 대한 한 가닥 모성애 같은 게 그 때까지도 내 내부에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 철거되는 대학 건물 또 비 오는 날이었다. 또 버스간 속이었다. 나는 돈암동 쪽에서 시내로 버스를 타고 나오고 있었다. 버스가 조용한 대학로로 접어들었다. 비 오는 날, 그 곳의 가로수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연두빛 어린 잎들이 신기한리만치 정갈하고 싱그러워, 덩달아서 살아 있다는 게 그저 고맙고 축복스럽게 여겨졌다. 젖어 있는 나무들 사이로 문리대 건물이 보였다. 철거 작업중임을 알 수 있었다. 벽은 그대로 서 있는데 지붕과 내부가 헐어져 뻥 뚫린 창으로 저편 하늘이 보였다. 아아, 드디어, 문리대가 철거당하는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생각에는 현실감보다는 달콤한 감상이 더 짙었다. 나는 문리대 자리에 아파트가 선다는 소식도, 이를 반대하는 쪽의 서울대 보존 운동에 대한 소식도 남이 아는 것만큼은 알고 있었다. 나는 어느 편도 아니었다. 그냥 담담한 방관자의 입장이었다. 학문과 사상의 전당이요, 젊은이들의 꿈과 야망의 고장인 유서 깊은 건물이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게 못마땅했지만 아무리 떠들어도 종당에는 그렇게 되고 말걸 하고 체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지금의 대학로가 이루고 있는 풍경 외에 어떤 딴 풍경도 그곳에서 바꿔 놓고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 곳은 누구에게나 그리운 풍경의 고장이었다. 또 내 자식이거나 손자이거나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 곳에서 입학식을 갖고 졸업식을 가졌으면 하고 벼르던 누구나의 희망이 고장이기도 했다. 아아, 마침내 헐리는구나, 나는 신음처럼 되뇌이었지만 축축이 내리는 비 때문일까, 좀처럼 현실감을 가지고 그 문제가 나에게 다가오진 않았다. 나무들은 다 제 자리에 청청하게 서 있고, 시계탑도 보였다. 버스가 정문을 지났다. 그리고 마침내 낯설은 게 보였다. 아마 건설 회사의 현장 사무소 같았다. 일자형의 흰 건물에 함석 지붕이 짙고 독한 주황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아아, 하고 나는 다시 한 번 신음했다. 나는 평생 그렇게 독하고 추악한 주황색을 본 일이 없다. 더군다나 그 주황색은 비에 젖어 번들대고 있었다. 그 주황색이 내 뇌를 갈고 지나가는 듯한 충격을 나는 내 뇌수에 느끼고 진저리를 쳤다. 나는 그런 충격은 청각의 자극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독한 쇳소리의 마찰음을 들었을 때 뇌 속에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 주황색 지붕 너머로 미래의 아파트 단지의 투시도가 선명하게 보였다. 비로소 문리대가 헐리고 속악하고 호사스러운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게 된다는 현실감이 나에게 왔다. 그 현실감은 고약하고 고통스럽게 왔다. 나는 지금도 그 빗속에 번들대던 주황색 지붕을 생각하면 혐오감으로 진저리가 쳐진다. 그 혐오감은 유서 깊고 자랑스럽던 대학 자리에 호화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사실에 대한 혐오감과도 일치하는 혐오감이다.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수갑차던 날 때는 지금으로부터 십수 년 전, 제가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일입니다. 예비고사에서 학력고사로 제도가 바뀌는 시기라 방학이라도 방학이 아니었습니다. 보충수업에 모의고사에 정신을 못 차리며 방학을 보내고 있던 어느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저는 민수라는 친구집에 공부를 하러 갔습니다. 날씨는 덥죠, 휴가철이라고 여기저기서 휴가얘기죠, 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있겠습니까? 둘은 웃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쭈쭈바만 빨아대며 뭔가 재미있는 일이 없나하며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민수 어머니께서 외출을 하신다고 나가시더군요. 우리들은 거실바닥을 몇 바퀴 뒹굴거리다 민수녀석이 문득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야! 너 수갑한번 차볼래?" 수갑이란 말에 좀 찜찜하긴 했지만 수사반장 같은 데서 수갑채우는 모습을 생각해보니 좀 멋있어 보이는 것도 같더군요. 민수아버님께서 당시 파출소 소장님이셨고, 집에 미제 수갑이 하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심심했던 차에 그러마고 했습니다. 잠시후 민수녀석이 수갑하나를 덜렁거리며 들고 왔습니다. 좀 섬뜩하데요. 민수녀석은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아가며 제 손목에 수갑을 철컥 채웠습니다. 종환형님, 유라씨! 수갑 차보신 적 있습니까? 그거 기분 별롭니다. 녀석과 나는 수갑을 차고 '한판의 탈주극'놀이 비슷한 걸 했습니다. 더워서 땀이 흐르니까 손목이 아프더군요. "야! 이거 이제 풀어줘." 민수녀석은 알았다며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한참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전 궁금해서 안방문을 열고 빼꼼이 들여다 보니 이녀석이 글쎄 장롱을 발칵 뒤집어 놓은 채 열쇠를 찾느라고 허둥대고 있었습니다. 전 순간 몹시 불길한 예감에 몸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야! 없냐?" 조심스레 묻는 저의 물음에 아무리 찾아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영화에서 본건 죄다 흉내를 내며 수갑을 풀어보려 안간힘을 다 썼습니다. 성냥개비로 쑤셔도 보고 클립을 펼쳐서 찔러도 보고 핀으로 돌려보고 온갖 짓을 다해도 끄떡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미제 수갑 그거 품질 좋데요. 하는 수 없이 우리는 민수아버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으신 민수아버님은 빨리 뛰어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민수네집이 교대앞이었고, 아버님 계신 파출소가 해운대였습니다. 거길 어떻게 뛰어갑니까? 그것도 두 손 묶고 말입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가진 거라곤 회수권 몇 장 뿐이니 택시도 못타고 버스로 가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 여름에 해운대 가는 버스는 말도 못하게 비좁다는 거 짐작으로도 아실 겁니다. 특히 그날은 토요일이었습니다. 저는 민수를 최대한 증오어린 눈빛으로 째려보며 빨리 가자고 재촉했습니다. 민수녀석은 T셔츠를 입더니, 제겐 겨울 잠바를 던져주는 겁니다. 그 더운 여름에 그걸 망토처럼 걸치라는 겁니다. 생각해보니까 두 손 묶고 옷을 입을 방법이 없더군요. 전 미친놈처럼 그 더운 여름에 잠바를 걸치고 손엔 수건을 감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는 또 왜 그렇게 붐비는지 앉을 자리는 고사하고 손잡이 하나 비어 있는 게 없더군요. 하긴 손잡이가 있어도 그걸 어떻게 잡습니까? 수갑 차고 그 위에 수건까지 감았는데.... 민수녀석은 저를 꼭 껴안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흘금흘금 훔쳐보며 별 이상한 녀석도 다 있다는 시선을 보내더군요. 정말 참기 힘들었습니다. 덥죠, 중심 못잡으니까 넘어질까 불안하죠, 손목은 아프죠, 옆에 서 있는 민수녀석 발을 밟아버렸습니다. 순간 녀석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게 그제야 속이 좀 풀리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버스가 철도건널목 앞에서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민수녀석은 절 놓쳐 버렸고, 저는 격렬한 "어-어-어." 소리만 반복하며 사정없이 앞으로 넘어졌고, 걸치고 있던 잠바는 옆에 서 있는 아가씨가 넘어지지 말라고 붙들어주는 바람에 훌렁 벗겨져 버리고, 손에 감았던 수건은 바닥에 떨어져, 수갑의 알몸이 그대로 드러나 버렸습니다. 그 순간 여자들은 무슨 괴한이나 만난 듯 비명을 질렸습니다. 사람들이 절 피하면서 웅성거리고, 급기야는 버스기사님이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차를 세우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기막힌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민수녀석이 글쎄 제 뒤통수를 불이 번쩍할 만큼 딱! 후려치더니 소리를 빽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똑바로 서있어 임마! 뭘 잘했다구...."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이녀석은 제법 형사나 된 것처럼 사람들과 기사님께 소란을 피워서 죄송하다는 요지의 사과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할말도 없고 창피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죽은 듯이 있었습니다. 아, 정말 지금 생각해도 생각하기 싫은 그때였습니다. 우리는 아버님께 가서 장난친 죄로 1시간 벌을 서고 나서야 수갑에서 풀릴 수 있었습니다. 정말 원없이 수갑 차봤습니다.
Board 삶 속 글 2023.02.03 風文 R 596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覆:엎을 복. 水:물 수. 不:아니 불. 返:돌이킬 반. 盆:동이 분. [동의어] 복배지수(覆杯之水), 복수불수(覆水不收). [유사어] 낙화불반지(落花不返枝), 파경부조(破鏡不照), 파경지탄(破鏡之歎). [출전]《拾遺記(습유기)》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다는 뜻. 곧 ① 한번 떠난 아내는 다시 돌아올 수 없음의 비유. ② 일단 저지른 일은 다시 되돌릴 수 없음의 비유. 주(周)나라 시조인 무왕(武王:發)의 아버지 서백(西伯:文王)이 사냥을 나갔다가 위수(渭水:황하의 큰 지류)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 초라한 노인을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학식이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서백은 이 노인이야말로 아버지 태공(太公)이 ‘바라고 기다리던[待望]’ 주나라를 일으켜 줄 마로 그 인물이라 믿고 스승이 되어 주기를 청했다. 이리하여 이 노인, 태공망(太公望:태공이 대망하던 인물이한 뜻) 여상[呂尙:성은 강(姜) 씨, 속칭 강태공]은 서백의 스승이 되었다가 무왕의 태부(太傅:태자의 스승)?재상을 역임한 뒤 제(齊)나라의 제후로 봉해졌다. 태공망 여상은 이처럼 입신 출세했지만 서백을 만나기 전까지는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던 가난한 서생이었다. 그래서 결혼 초부터 굶기를 부자 밥 먹듯 하던 아내 마(馬)씨는 그만 친정으로 도망가고 말았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 마씨가 여상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전엔 끼니를 잇지 못해 떠났지만 이젠 그런 걱정 안해도 될 것 같아 돌아왔어요.” 그러자 여상은 잠자코 곁에 있는 물그릇을 들어 마당에 엎지른 다음 마씨에게 말했다. “저 물을 주워서 그릇에 담으시오.” 그러나 이미 땅 속으로 스며든 물을 어찌 주워 담을 수 있단 말인가. 마씨는 진흙만 약간 주워 담았을 뿐이었다. 그러자 여상은 조용히 말했다.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고[覆水不返盆]’ 한번 떠난 아내는 돌아올 수 없는 법이오.”
Board 고사성어 2023.02.03 風文 R 1074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박완서편" 여류 소설가. 경기도 출생. 서울대 문리대 중퇴. 1970년에 장편 소설 "나목"으로 문단에 나온 후 장편 "휘청거리는 오후" 등으로 일약 각광을 받아, 가장 설득력 있는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로 평판을 얻었다. 감각적인 묘사가 섬세하면서도 예리한 분석력으로 지목되고 있다. 40대의 비 오는 날 앉은뱅이 거지 비가 오는 날이었다. 요즈음은 꼭 장마철처럼 비가 잦다. 청계천 5가 그 악마구리 끓듯하는 상지대도 사람이 뜸했다. 버젓한 가게들은 다 문을 열고 있었지만 인도 위에서 옷이나 내복을 흔들어 파는 싸구려판, 그릇 닦는 약, 쥐잡는 약, 회충약 등을 고래고래 악을 써서 선전하는 약장수, 바나나나 엿을 파는 아줌마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인도가 텅 빈 게 딴 고장처럼 낯설어 보였다. 이 텅 빈 인도의 보도 블록을 빗물이 철철 흐르며 씻어내리고 있어 지저분한 노점상도 다 빗물에 떠내려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딱 하나 떠내려가지 않는 게 있었다. 앉은뱅이 거지였다. 나는 한 달에 두어 번씩은 그 곳을 지나칠 일이 있었고, 그 때마다 그 거지가 그 곳 노점상들 사이에 앉아서 구걸하는 걸 봤기 때문에 그 거지를 알고 있었다. 그 날 그는 외톨이였고 빗물이 철철 흐르는 보도 블록 위에 철썩 앉아 있는 그의 허리부터 발끝까지의 하체가 물에 홈빡 젖어 있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한 손으론 비닐 우산을 펴들어 머리를 빗발로부터 가리고 한 손은 연방 행인을 향해 한 푼만 보태 달라고 휘젓고 있었다. 나는 전에 그를 봤을 때 각별하게 불쌍히 본 적도 없었고 그가 앉은뱅이라는 것조차 믿었던 것 같지가 않다. 앉아서 주춤주춤 자리를 옮기는 것도 봤고, 앉아서 다니기 편하게 손에다 슬리퍼를 꿰고 있는 것도 봤지만 그게 반드시 앉은뱅이란 증거가 될 순 없었다. 허름한 바지 속의 양다리는 실해 보였고 아마 아침엔 걸어나와 온종일 저렇게 흉물을 떨다가 밤이면 멀쩡하니 털고 일어나 걸어들어가겠거니 하는 추측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약아 빠졌달까, 닳아 빠졌달까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 날도 물론 그가 앉은뱅이란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앉은뱅이가 아니란 증거 또한 없었다. 그냥 빗속의 모습의 충격적으로 무참했다. 찬 빗물에 잠긴 누더기 속의 하체가 죽어 있는 물건처럼 보였고 그래서 행인을 향해 휘젓고 있는 한쪽 손이 비현실적이리만치 끔찍하게 느껴졌다. 나는 한순간 무참한 느낌으로 숨이 막히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리곤 잠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거리에서 거지에게 돈을 주어 본 일이 거의 없었다. 한 겨울에 벌거벗고 울부짖는다거나 끔찍한 불구라든가 너무 늙었거나 해서 도와 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나게 가엾은 거지를 보고 주머니를 뒤적이다가도 문득 마음을 모질게 먹고 그냥 지나친다. 이렇게 마음을 모질게 먹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그 날도 나는 빗속의 거지 앞에서 핸드백을 열려다 말고 이 거지 뒤에 숨어 있을 번들번들 기름진 왕초 거지를 생각했고, 앉은뱅이도 트릭이란 생각을 했고, 빗물이 콸콸 흐르는 보도 위에 저렇게 질펀히 앉았는 것도 일종의 쇼란 생각을 했고, 그까짓 몇 푼 보태 주는 것으로 자기 위안을 삼는 것 외에, 도대체 무엇을 해결할 수 있나를 생각했다. 요컨대 나는 내 눈앞의 앉은뱅이 거지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있지를 못하면서 거지라는 것에 대한 일반적이고 피상적인 예비 지식을 갖출 만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예비 지식 때문에 나는 거지조차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내 눈으로 확인한 그의 비참조차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치 속아만 산 사람처럼, 정치가의 말을 믿지 않던 버릇으로, 세무쟁이를 믿지 않던 버릇으로, 외판원을 믿지 않던 버릇으로, 장사꾼을 믿지 않던 버릇으로 거지조차 못 믿었던 것이다. 그 날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통증과 함께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누를 수 없다. 믿지 못하는 게 무식보다도 더 큰 죄악이 아닌가도 싶다. 거지에 대한 한두 푼의 적선이 거지를 구제하기는커녕 이런 적선이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구제책이 늦어져 거지가 마냥 거지일 뿐이라는 제법 똑똑한 생각을 요즈음은 어린이까지도 할 줄 안다. 사람들이 갈수록 더 똑똑해지고 있다. 그럴수록 불쌍한 이웃을 보면 이런 똑똑하고 지당한 이론 대신 반사 작용 겨울철의 뜨뜻한 구들장이 그립듯이 그리워진다. 나이를 먹고 세상 인심 따라 영악하게 살다 보니 이런 소박한 인간성은 말짱하게 닳아 없어진 지 오래다. 문득 생각하니 잃어버린 청춘보다 더 아깝고 서글프다. 자신이 무참하게 헐벗은 것처럼 느껴진다.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앞과 뒤의 엄청난 차이. 전 30대 중반의 여성입니다. 아울러 안양시 여성의 건강을 책임지고 에어로빅 지도자의 길을 가고 있기도 합니다. 눈치 빠른 분은 벌써 헬스복 차림의 여자를 떠올릴지도 모르겠군요. 그렇습니다. 저희 체육관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 드리려 합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와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이라고도 밝히지 않겠습니다. 지난 겨울 어느 날, 저녁 수업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그분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분은 마치 여자 마피아 의상이었어요. 검은 코트를 팔도 끼우지 않은 채 걸치고 있었고 코트 자락 밑으로는 헬스 스타킹과 하얀 운동화 차림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저분도 미리 옷을 입고 오셨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집이 가까운 분들은 와서 옷을 갈아입지 않고 미리 입고 오시곤 했습니다. 어쨌든 그분은 우아하게 코트를 벗고 맨 뒤쪽에 섰고 저는 수업 중이었으므로 거울 속에 비친 그분에게 눈인사나 하려던 순간 저는 그만 입을 쩌억 벌리고 말았습니다. 왜인지 밝혀야 하는 제가 쑥스럽네요. 글쎄 푹 패인 헬스복 앞자락 사이로 두 젖가슴이 다 쏟아져 나와 있는 게 아니겠어요? 자세히 보니 헬스복의 앞과 뒤를 바꿔 입고 있었어요. 원래 헬스복이란 것이 수영복과 비슷해서 등이 많이 파여 있는 게 기본형인데 그것을 돌려 입은 거예요. 검정색 헬스복은 하얀 피부와 형광등 조명 아래 더욱 검게 돋보였습니다. 헬스복의 가장자리는 고무줄 처리가 되어 탄탄히 누르고 있어 처음에는 거의 가슴의 정상부분까지만 노출이 되었는데, 그 가장자리가 누르고 있는데다 마구 흔들어대는 바람에 조금씩 조금씩 밀려 급기야는 완전히 쏟아져나올 지경이었습니다. 거기에다 오늘 처음 오셨으니 잘 되지도 않는 동작을 단단히 각오라도 하고 오신 듯 상.하.좌.우로 열심히 흔드는 거예요. 상상이 되십니까? 다음 순간 저는 어찌해야 이 난관을 처음 나온 분에게 무안을 주지 않고 넘기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그 동안에도 그분은 열심히 뛰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곳에서 오래 감춰질 수는 없었지요. 초보자들은 얼마간은 거울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거의 벗다시피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과 공개된다는 게 쑥스러워서인가봐요. 그런 까닭에 그분은 자신의 가슴팍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 반란은 눈치도 못채고 열심히 제 동작을 쫓아 하고 있었습니다. '안되겠다. 가서 얘기해 줘야지.' 하고 제가 그분 쪽으로 걸어가는 것과 동시에 체육관 안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입술을 깨물며 참던 회원들이 풋!풋!하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털썩 주저앉는 사람, 거울에 기대어 몸부림치는 사람, 마루를 내려치는 사람, 모두 눈물을 닦아내며 웃어댔습니다. 사정을 뒤늦게 눈치 챈 뒤 그분은 이러더군요. "집에서 입고 거울을 보면서 헬스복이 야하다는 말만 들었는데 야하긴 진짜 야하네. 이게 무슨 망신이야." 그날 이후로 저녁반 회원들은 그분만 나타나면 웃음을 참아내며 그분의 옷차림을 몰래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러던 며칠 후 어느날, 그날도 그분은 검은 코트를 걸치고 들어왔고 밤무대 댄서처럼 벗어던지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더욱 빨리 뒤집혔습니다. 또 다시 체육관 안이 숨이 넘어갈 듯한 웃음과 몸부림으로 들끓었습니다. 이번에는 아랫도리에서 일이 벌어졌습니다. 헬스복 중에는 외국 모델들이 많이 입는 아슬아슬한 비키니 수영복 같은 것이 있습니다. TV에서 세계 에어로빅 대회 같은 데서 선수들이 즐겨 입기도 합니다. 엉덩이 쪽은 1.5cm 쯤 되는 하얀색 가느다란 띠로 처리된 헬스복이지요. 오늘은 그 팬티의 앞뒤를 바꿔 입은 것입니다. 회원들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다 이젠 안면도 생겼고 해서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까놓고 웃어댔습니다. 장미꽃 한송이가 가슴에 활짝 핀 흰 탑을 받쳐입고 아랫도리는 1.5cm 가량의 가느다란 흰 끝이 묘하게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했으니 양옆으로 어지럽게 흩어진 검은 무엇인가를 고탄력 스타킹만으로는 가릴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지난번 모습까지 떠올리다 보니 저조차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분은 지난번 일을 만회해보고자 헬스복 매장에 가서 예쁘면서 야한 옷으로 달라고 졸라 몸매에 무리인 줄 알면서도 초보자들은 감히 입을 수 없는 문제의 그 원라인을 사다가 앞뒤 바꿔입은 것입니다. 에어로빅은 다들 잘 아시다시피 90% 이상이 다리를 벌리고 하는 동작입니다. 오랫동안 상상하지는 마세요. 사실 이 내용이 방송불가가 될까봐 걱정했는데 며칠전 치질로 고초를 겪게 된 동네 아저씨 얘기를 해주신 어느 분 편지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사실 제 편지의 내용은 위치상으로 볼 때 항문보다는 덜 은밀한 곳에 있지 않습니까? 다시 얘기로 돌아갑니다. 그 상황이 더욱 우습게 된 것은 그분이 이번에는 당당하게 맞섰다는 겁니다. 뭐가 잘못이냐는 거지요. 다 알고 있는 이유를 혼자만 몰라 하더니 결국 나중에야 하시는 말씀이 더 걸작이었습니다. "앞 동네가 좀 쑥스럽기는 했지만 팬티란 무조건 앞쪽이 좁고 뒤쪽이 넓은 것 아니야?" 이겁니다. 그러나 사실을 아시고 난 후 울상을 지으시며 말하더군요. " 왜 헬스복과 수영복만이 예외여서 내게 이런 수난을 겪게 하느냐!" 그리고 그분은 그날 이후로 날마다 맨 먼저 와서 제게 복장 검사를 마친후 운동을 하게 됐답니다. 덕택에 지각하는 습관을 고치게 됐지요. 이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 중에 에어로빅을 시작하시려는 분이 계신다면 제가 감히 충고 한마디 하지요. "헬스복 예쁘다 방심말고 입은 옷도 다시 보자." 그럼 계속해서 즐겁고 유익한 방송 부탁드립니다.
Board 삶 속 글 2023.02.02 風文 R 429
Board 고사성어 2023.02.02 風文 R 8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