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뛰는 놈 위에 나는 자슥 이 사연은 14년 전인 1983년의 한 일화입니다. 제 나이 한창이던 21세. 머나먼 제주시에서 대학에 다닌다고 대구에서 조금 떨어진 하양읍이란 곳까지 와 2년째를 맞고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군입대 전이기 때문에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소주 모가지만 빨고 인근에 있는 여대생들과 미팅도 자주하며 맘껏 수컷임을 과시하고 다녔습니다. 그런 결과로 이미 확실한 애인이 생겼고, 그 후론 돈이 지출되는 미팅은 참석 자체가 의미없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친구들이 주선하는 미팅에 참석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피팅'일 경우만 아르바이트 삼아 참석했고, 다른 어떠한 방식의 미팅도 거절하며 지냈습니다. 피팅이란 것을 아시는 지요? 혹시나 하는 노파심으로 간단히 언급해 둡시다. 미팅에는 기팅, 베팅, 소개팅, 폰팅... 등 종류도 부지기수지만 피팅이란, 남자가 여자보다 한 명 더 많게 참석하여 여자가 남자를 지명하는 식으로 파트너가 되고, 맺어지지 못한 남자에게 위로금조로 얼마씩 주는 방식입니다. 일부지역에 따라 '피보기 미팅'이라고도 합니다. 저는 본 사건 이전에도 이미 여성이 선택권이 있어 당시 한창 유행하던 피팅에 아르바이트로 두 번 참가해 조금은 치사한 수법으로 지명 받지 못한 남자가 되어 매회 1-2만원 정도의 순 수익인 짭짤한 위로금을 받았고 그 돈으로 애인과 함께 당시의 저에겐 최고급 요리인 통닭을 먹곤 했습니다. 괜찮은 아르바이트지요?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한 친구로 부터 피팅 참석을 요청 받아 애인에게 저녁 먹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고는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이번 피팅은 5팀의 커플이 탄생하여 위로금으로 쌍 당 5천원씩 주기로 돼 있으니 커피 값을 계산하고도 2만원은 족히 올릴 수 있는 또 한번의 기회였습니다. 드디어 약속시간이 임박해짐에 따라 서서히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세면 청소를 하지 않아 텁수룩한 뒷머리에는 큼지막한 까치 집이 하나 지어져 있었고, 분장을 통해 입가에는 침이 조금 말라붙은 자국, 그리고 왼쪽 속눈썹엔 누르티티한 눈곱이 힘겹게 붙어 있었으며, 런닝띠가 조금 보이도록 목이 푹 패인 T셔츠, 이 꾀죄죄한 모습은 확실한 자신감을 주었고, 일 마치고 막을 통닭이 눈앞에 어른거렸습니다. 정각 오후 5시. 저는 발걸음도 가볍게 다방 문을 열고 다섯 명의 남자 친구들이 얘기하고 있는 널찍한 구석 자리에 앉았습니다. 주선한 친구가 저를 보고 말하더군요. "니, 꼴이 그게 뭐고?" "으응, 강의도 없고 해서 자다보니 지금 일어나서 달려오는 거야, 하마터면 못 올 뻔했어." 침도 안 바르고 능청을 떠는 저의 모습에 저 자신도 투철한 직업의식은 참 무시 못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슥, 세수라도 좀 하지. 내 체면도 있는데...." "흐흐흐...." 이윽고 우리들의 파트너가 될 여대생 다섯 명이 우르르 앞 자리로 와 "좀 늦었어요." 하며 여성들의 상투적인 수법으로 앉았습니다. 주선자인 친구는 상대를 둘러보더니 어느 정도 만족하는지 싱글벙글하며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자- 다 모였으니 슬슬 시작해 볼까요? 아가씨! 여기 커피 돌리세요." "아니, 아가씨! 제꺼 한잔은 소젖으로 주소." 이 같은 저의 외침은 쪼다가 되기 위한 기선제압이었습니다. 상대 여대생들은 밖에서 짜고 온 것 같은 모습으로 가위.바위.보를 하여 지명 순서를 1분도 채 걸리지 않고 결정했습니다. 차가 나온 직후 상대에게 잘 보이려 흘러내린 머리칼 하나라도 끌어올리려 노력하는 친구, 점잖게 보이려 받침접시까지 들고 커피를 마시는 친구, 지그시 웃음만을 흘리고 있는 친구 등등 제각기 지명 받으려는 몸짓은 저와는 정반대였습니다. 급기야, 눈이 작으면서도 귀엽게 보이는 첫 번째 아가씨가 6명의 후보 중 1차 지명을 하려는 순간 옆자리 친구들의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얼굴이 호형이고 아담한 체구를 가진 친구가 선택당하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저쪽 끝에 앉아 있던 친구 하나가 은근히 생각했던 아가씨의 지명이 자신을 피해가자 돌연 제 영업에 심상치 않은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커피잔 옆에 씹던 껌을 놓아둔 것까지는 좋았는데 아, 이 놈이 글쎄 그 껌을 손가락으로 넓게 펴서 '따다닥'소리를 몇 번 내더니 다시 입에 넣어 씹는 게 아닙니까? 앞 자리의 지명권자들은 이내 고개를 살래살래 젓고 있었습니다. '아니 강적이군. 그러나 흥, 손가락으로 껌 장난하다 다시 씹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거야? 혹 콧구멍에 놓였다 다시 씹는다면 모르겠지만. 만반의 준비를 해온 나에게 도전을 하다니 어림도 없지.' 이렇게 생각하며 저는 그 정도엔 개의치 않고 새로운 작전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런닝끝을 조금 더 당기며 태연히 성냥개비로 귀를 후비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윽고 2차, 3차, 4차. 지명이 저와 그 친구를 피해간 후 미간이 꽤나 넓고 인자하면서도 조금은 어리숙하게 생긴 여대생이 마지막으로 지명할 차례가 남았을 때 그 강적이 엄청난 내공으로 공력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잠깐만요, 긴장하니까 갑자기 소변이 마렵네요. 화장실에 갔다 와서 합시다." 이렇듯 저의 경쟁자는 급히 뛰어갔습니다. 2분이 지났을까? 다시 자리에 돌아온 그는 의자 뒤로 몸을 최대한 젖혀 앉아 있었고, 앞 좌석 지명권자의 얼굴이 갑자기 당황해하는 눈치였습니다. '왜 저럴까?' 순간 불길한 예감이 저의 뇌리를 스쳤고, 옆에 앉은 경쟁자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는데 앗! 그가 남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는데 아닙니까? 그것도 안이 누리끼리 하게 비치는 팬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자취하며 빨래하기 싫어 속옷을 보름 입고 다시 뒤집어 보름 입은 뒤 버려버리는 그의 습성에서 오늘은 뒤집어 입은 날이었습니다. '앗, 졌구나!' 이렇게 깨닫는 순간 그 느낌은 신음소리로 변해 '으으...'하는 소리가 이 사이를 비집어 나오고 있었고, 다리가 떨리는 것을 느끼면서 임기응변 식 흠집내기로 다리를 꼬아 앉아 양말을 반쯤 내리고 발 뒤꿈치를 서너 번 힘차게 긁어 보았지만 이미 대세는 결정 난 것 같았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던 마지막 지명권자의 손가락이 결국 저를 가리킬 때 저의 눈은 졸지에 사팔이 되었고, 이내 쏟아지는 참패의 허망함 그것은 생돈 5천원의 지출이었습니다. 그것도 다행히 낙승을 예상하고 그냥 나올까 하다 만원 권 한 장을 갖고 왔으니 만정이지, 하마터면 정말 개망신당할 뻔했습니다. 돈을 챙겨 찻값을 계산하고 여유 있게 지퍼를 올리며 사라지는 그를 부러운 눈초리로 물끄러미 바라보다 웬수 같은 앞 자리의 아가씨에게 미소를 억지로 띠우며 오늘은 몸이 좋지 않아 다음에 보자고 한 후 맥 풀린 저의 발걸음은 자취 방을 향했습니다. 결국 그날 애인과 함께 통닭 대신 닭 똥집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끝으로 사연을 마칠까 합니다.
Board 삶 속 글 2023.02.04 風文 R 466
부마(駙馬) 駙:곁말 부. 馬:말 마. [원말] 부마도위(駙馬都尉). [출전]《搜神記(수신기)》 임금의 사위. 공주의 부군(夫君). 옛날 농서[감숙성(甘肅省)] 땅에 신도탁(辛道度)이란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이름 높은 스승을 찾아 옹주(雍州)로 가던 도중 날이 저물자 어느 큰 기와집의 솟을대문을 두드렸다. 이윽고 하녀가 나와 대문을 열었다. “옹주로 가는 나그네인데 하룻밤 재워 줄 수 없겠습니까?” 하녀는 잠시 기다리라며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그를 안방으로 안내했다. 방 안에는 잘 차린 밥상이 있었는데 하녀가 사양 말고 먹으라고 한다. 식사가 끝나자 안주인이 들어왔다. “저는 진(秦)나라 민왕(閔王)의 딸이온데 조(曹)나라로 시집을 갔다가 남편과 사별을 하고 이제까지 23년 동안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처럼 찾아 주셨으니 저와 부부의 인연을 맺어 주세요.” 신도탁은 그런 고귀한 여인과 어찌 부부의 인연을 맺을 수 있겠느냐고 극구 사양했으나 여인의 끈질긴 간청에 못 이겨 사흘 낮 사흘 밤을 함께 지냈다. 다음날 아침에 여인은 슬픈 얼굴로 말했다. “좀더 함께 지내고 싶지만 사흘 밤이 한도예요. 이 이상 같이 있으면 화를 당하게 되지요. 그래서 헤어져야 하지만 제 진심을 보여 드릴 수 없는 게 슬프군요. 정표로 이거라도 받아 주세요.” 여인은 신도탁에게 금베개[金枕]를 건네주고는 하녀에게 대문까지 배웅하라고 일렀다. 대문을 나선 신도탁이 뒤돌아보니 그 큰 기와집은 간데 없고 잡초만이 무성한 허허 벌판에 무덤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품속에 간직한 금베개는 그대로 있었다. 신도탁은 금베개를 팔아 음식을 사 먹었다. 그후 왕비가 금베개를 저잣거리에서 발견하고 관원을 시켜 조사해 본 결과 신도탁의 소행임이 드러났다. 왕비는 그를 잡아다가 경위를 알아본 다음 공주의 무덤을 파고 관을 열어 보니 다른 부장품(副葬品)은 다 있었으나 금베개만 없어졌다. 그리고 시체를 조사해 본 결과 정교(情交)한 흔적이 역력했다. 모든 사실이 신도탁의 이야기와 부합하자 왕비는 신도탁이야말로 내 사위라며 그에게 ‘부마도위(駙馬都尉)’하는 벼슬을 내리고 후대했다고 한다.
Board 고사성어 2023.02.04 風文 R 1183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박완서편" 여류 소설가. 경기도 출생. 서울대 문리대 중퇴. 1970년에 장편 소설 "나목"으로 문단에 나온 후 장편 "휘청거리는 오후" 등으로 일약 각광을 받아, 가장 설득력 있는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로 평판을 얻었다. 감각적인 묘사가 섬세하면서도 예리한 분석력으로 지목되고 있다. 버스 바닥에 흩어진 동전 이것도 비 오는 날 얘기다. 버스를 타고 있었다. 타고 내린 많은 사람들의 젖은 신발과 우산에서 흘러내린 빗물로 버스 바닥은 질펀한 진창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내가 내릴 정거장을 하나 앞두고 갑자기 앉은 자리에서 안절부절 불안해졌다. 잔돈이 하나도 없고 오백 원짜리 밖에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요즈음 오백 원권은 그가 처음 탄생할 때 지녔던 가치를 어느틈에 오천 원권한테 빼앗기고 형편없이 타락한 건 사실이다. 오백 원권을 가지고 큰 돈 대접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나는 아직도 버스에서 내릴 때 오백 원권을 낼 때만은 그게 큰 돈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차장 아가씨한테 미안해하는 버릇이 있다. 아마 옛날 옛적 오백 원권이 위풍당당하게 최고액권 행세를 하던 시절, 그것으로 버스 요금을 내면 차장이 짜증을 내며 구박까지 하던 때의 기억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오백 원권으로 요금을 내려면 한 정거장쯤 미리 앉은 자리에서 차장한테 가는 걸 내 나름의 예절로 삼아 왔다. 그 날도 나는 미리 차장 아가씨한테 가서 미안한 얼굴을 하며 오백 원권을 내밀려고 했다. 그런데 차장 아가씨는 꼿꼿이 선 채 머리만 약간 창틀에 기대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우리집 셋째딸만한 나이의 연약한 아가씨였다. 짙은 피로가 앳된 얼굴과 심한 부조화를 이루고 있어 측은했다. 그 잘난 오백 원권 때문에 이 아가씨의 달디단 잠을 깨울 수도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그녀의 피곤하고 불안한 낮잠에서 그녀의 중노동, 불량한 생활 환경, 불결한 잠자리, 조악한 식사, 업주로부터의 인간 이하의 모욕적인 대접, 그리고 그녀가 도망친 가난한 농촌 등 버스 차장이란 직업에 대해 갖고 있던 일반적이고 알량한 상식을 한꺼번에 확인한 것처럼 느꼈고, 그래서 얼싸안고 내 품에 편히 재우고 싶으리만큼 감상주의에 흠뻑 젖어들었다. 내가 내릴 정거장이 되고 버스가 멎는 것과 동시에 그녀는 반짝 눈을 떴다. 잠에서 깨어난 게 그녀가 아니라 나였던 것처럼 나는 놀리면서 어설프게 오백 원권을 내밀었다. 그녀는 재빠르게 동전이 짤랑대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백원짜리와 십원짜리 동전을 건네 주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이런 우리의 주고받음 사이를 뚫고 두어 명의 승객이 버스를 내렸다. 그 바람에 누구의 잘못인지도 모르게 동전이 질퍽질퍽한 버스 바닥에 흩어졌다. 나는 그것들을 주우려고 엎드리면서 차장 아가씨가 상냥하게 미안하다고 하면서 같이 줍든지, 그냥 내리라고 하고는 새로운 거스름 돈을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녀는 발까지 구르며 나에게 호통을 쳤다. "아이 속상해. 그것 하나 제대로 못 받고 속을 썩여, 빨리 빨리 주워 가지고 내려욧. 빨리 발차시켜야 한단 말예욧." 질퍽한 버스 바닥의 동전은 용용 죽겠지 하는 듯이 차고 희게 빛나며 좀처럼 주워지지를 않았다. 마치 침으로 붙인 우표 딱지 모양 버스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나를 약올렸다. 나는 거지처럼 헐벗은 버스 바닥을 엉금엉금 기며 손톱으로 이리저리 집어 겨우 백원짜리 동전만 주워 가지고 허리를 좀 펴려는데 차장 아가씨가 나를 잽싸게 문 밖으로 떠밀었다. 아니 내던졌다. 나는 곤두박질을 치면서 겨우 진창에 엎어지는 것만은 면했다. 그것만으로 내가 받은 수모가 부족했던지 버스는 흙탕물까지 나에게 끼얹어 주고 떠나갔다. 옷도 옷이지만 네 닢의 동전을 주워 올린 내 손과 손톱 사이는 말이 아니게 더러웠다. 나는 어느 가겟집 홈통에서 흘러내리는 빗물로 손을 씻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차장 아가씨한테 몹시 화를 내지는 않았다. 나이 탓인지도 모르겠다. 꼿꼿이 선 채 불안하고도 달게 자던 소녀에 대한 한 가닥 모성애 같은 게 그 때까지도 내 내부에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 철거되는 대학 건물 또 비 오는 날이었다. 또 버스간 속이었다. 나는 돈암동 쪽에서 시내로 버스를 타고 나오고 있었다. 버스가 조용한 대학로로 접어들었다. 비 오는 날, 그 곳의 가로수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연두빛 어린 잎들이 신기한리만치 정갈하고 싱그러워, 덩달아서 살아 있다는 게 그저 고맙고 축복스럽게 여겨졌다. 젖어 있는 나무들 사이로 문리대 건물이 보였다. 철거 작업중임을 알 수 있었다. 벽은 그대로 서 있는데 지붕과 내부가 헐어져 뻥 뚫린 창으로 저편 하늘이 보였다. 아아, 드디어, 문리대가 철거당하는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생각에는 현실감보다는 달콤한 감상이 더 짙었다. 나는 문리대 자리에 아파트가 선다는 소식도, 이를 반대하는 쪽의 서울대 보존 운동에 대한 소식도 남이 아는 것만큼은 알고 있었다. 나는 어느 편도 아니었다. 그냥 담담한 방관자의 입장이었다. 학문과 사상의 전당이요, 젊은이들의 꿈과 야망의 고장인 유서 깊은 건물이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게 못마땅했지만 아무리 떠들어도 종당에는 그렇게 되고 말걸 하고 체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지금의 대학로가 이루고 있는 풍경 외에 어떤 딴 풍경도 그곳에서 바꿔 놓고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 곳은 누구에게나 그리운 풍경의 고장이었다. 또 내 자식이거나 손자이거나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 곳에서 입학식을 갖고 졸업식을 가졌으면 하고 벼르던 누구나의 희망이 고장이기도 했다. 아아, 마침내 헐리는구나, 나는 신음처럼 되뇌이었지만 축축이 내리는 비 때문일까, 좀처럼 현실감을 가지고 그 문제가 나에게 다가오진 않았다. 나무들은 다 제 자리에 청청하게 서 있고, 시계탑도 보였다. 버스가 정문을 지났다. 그리고 마침내 낯설은 게 보였다. 아마 건설 회사의 현장 사무소 같았다. 일자형의 흰 건물에 함석 지붕이 짙고 독한 주황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아아, 하고 나는 다시 한 번 신음했다. 나는 평생 그렇게 독하고 추악한 주황색을 본 일이 없다. 더군다나 그 주황색은 비에 젖어 번들대고 있었다. 그 주황색이 내 뇌를 갈고 지나가는 듯한 충격을 나는 내 뇌수에 느끼고 진저리를 쳤다. 나는 그런 충격은 청각의 자극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독한 쇳소리의 마찰음을 들었을 때 뇌 속에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 주황색 지붕 너머로 미래의 아파트 단지의 투시도가 선명하게 보였다. 비로소 문리대가 헐리고 속악하고 호사스러운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게 된다는 현실감이 나에게 왔다. 그 현실감은 고약하고 고통스럽게 왔다. 나는 지금도 그 빗속에 번들대던 주황색 지붕을 생각하면 혐오감으로 진저리가 쳐진다. 그 혐오감은 유서 깊고 자랑스럽던 대학 자리에 호화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사실에 대한 혐오감과도 일치하는 혐오감이다.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수갑차던 날 때는 지금으로부터 십수 년 전, 제가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일입니다. 예비고사에서 학력고사로 제도가 바뀌는 시기라 방학이라도 방학이 아니었습니다. 보충수업에 모의고사에 정신을 못 차리며 방학을 보내고 있던 어느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저는 민수라는 친구집에 공부를 하러 갔습니다. 날씨는 덥죠, 휴가철이라고 여기저기서 휴가얘기죠, 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있겠습니까? 둘은 웃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쭈쭈바만 빨아대며 뭔가 재미있는 일이 없나하며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민수 어머니께서 외출을 하신다고 나가시더군요. 우리들은 거실바닥을 몇 바퀴 뒹굴거리다 민수녀석이 문득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야! 너 수갑한번 차볼래?" 수갑이란 말에 좀 찜찜하긴 했지만 수사반장 같은 데서 수갑채우는 모습을 생각해보니 좀 멋있어 보이는 것도 같더군요. 민수아버님께서 당시 파출소 소장님이셨고, 집에 미제 수갑이 하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심심했던 차에 그러마고 했습니다. 잠시후 민수녀석이 수갑하나를 덜렁거리며 들고 왔습니다. 좀 섬뜩하데요. 민수녀석은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아가며 제 손목에 수갑을 철컥 채웠습니다. 종환형님, 유라씨! 수갑 차보신 적 있습니까? 그거 기분 별롭니다. 녀석과 나는 수갑을 차고 '한판의 탈주극'놀이 비슷한 걸 했습니다. 더워서 땀이 흐르니까 손목이 아프더군요. "야! 이거 이제 풀어줘." 민수녀석은 알았다며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한참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전 궁금해서 안방문을 열고 빼꼼이 들여다 보니 이녀석이 글쎄 장롱을 발칵 뒤집어 놓은 채 열쇠를 찾느라고 허둥대고 있었습니다. 전 순간 몹시 불길한 예감에 몸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야! 없냐?" 조심스레 묻는 저의 물음에 아무리 찾아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영화에서 본건 죄다 흉내를 내며 수갑을 풀어보려 안간힘을 다 썼습니다. 성냥개비로 쑤셔도 보고 클립을 펼쳐서 찔러도 보고 핀으로 돌려보고 온갖 짓을 다해도 끄떡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미제 수갑 그거 품질 좋데요. 하는 수 없이 우리는 민수아버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으신 민수아버님은 빨리 뛰어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민수네집이 교대앞이었고, 아버님 계신 파출소가 해운대였습니다. 거길 어떻게 뛰어갑니까? 그것도 두 손 묶고 말입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가진 거라곤 회수권 몇 장 뿐이니 택시도 못타고 버스로 가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 여름에 해운대 가는 버스는 말도 못하게 비좁다는 거 짐작으로도 아실 겁니다. 특히 그날은 토요일이었습니다. 저는 민수를 최대한 증오어린 눈빛으로 째려보며 빨리 가자고 재촉했습니다. 민수녀석은 T셔츠를 입더니, 제겐 겨울 잠바를 던져주는 겁니다. 그 더운 여름에 그걸 망토처럼 걸치라는 겁니다. 생각해보니까 두 손 묶고 옷을 입을 방법이 없더군요. 전 미친놈처럼 그 더운 여름에 잠바를 걸치고 손엔 수건을 감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는 또 왜 그렇게 붐비는지 앉을 자리는 고사하고 손잡이 하나 비어 있는 게 없더군요. 하긴 손잡이가 있어도 그걸 어떻게 잡습니까? 수갑 차고 그 위에 수건까지 감았는데.... 민수녀석은 저를 꼭 껴안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흘금흘금 훔쳐보며 별 이상한 녀석도 다 있다는 시선을 보내더군요. 정말 참기 힘들었습니다. 덥죠, 중심 못잡으니까 넘어질까 불안하죠, 손목은 아프죠, 옆에 서 있는 민수녀석 발을 밟아버렸습니다. 순간 녀석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게 그제야 속이 좀 풀리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버스가 철도건널목 앞에서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민수녀석은 절 놓쳐 버렸고, 저는 격렬한 "어-어-어." 소리만 반복하며 사정없이 앞으로 넘어졌고, 걸치고 있던 잠바는 옆에 서 있는 아가씨가 넘어지지 말라고 붙들어주는 바람에 훌렁 벗겨져 버리고, 손에 감았던 수건은 바닥에 떨어져, 수갑의 알몸이 그대로 드러나 버렸습니다. 그 순간 여자들은 무슨 괴한이나 만난 듯 비명을 질렸습니다. 사람들이 절 피하면서 웅성거리고, 급기야는 버스기사님이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차를 세우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기막힌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민수녀석이 글쎄 제 뒤통수를 불이 번쩍할 만큼 딱! 후려치더니 소리를 빽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똑바로 서있어 임마! 뭘 잘했다구...."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이녀석은 제법 형사나 된 것처럼 사람들과 기사님께 소란을 피워서 죄송하다는 요지의 사과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할말도 없고 창피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죽은 듯이 있었습니다. 아, 정말 지금 생각해도 생각하기 싫은 그때였습니다. 우리는 아버님께 가서 장난친 죄로 1시간 벌을 서고 나서야 수갑에서 풀릴 수 있었습니다. 정말 원없이 수갑 차봤습니다.
Board 삶 속 글 2023.02.03 風文 R 589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覆:엎을 복. 水:물 수. 不:아니 불. 返:돌이킬 반. 盆:동이 분. [동의어] 복배지수(覆杯之水), 복수불수(覆水不收). [유사어] 낙화불반지(落花不返枝), 파경부조(破鏡不照), 파경지탄(破鏡之歎). [출전]《拾遺記(습유기)》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다는 뜻. 곧 ① 한번 떠난 아내는 다시 돌아올 수 없음의 비유. ② 일단 저지른 일은 다시 되돌릴 수 없음의 비유. 주(周)나라 시조인 무왕(武王:發)의 아버지 서백(西伯:文王)이 사냥을 나갔다가 위수(渭水:황하의 큰 지류)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 초라한 노인을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학식이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서백은 이 노인이야말로 아버지 태공(太公)이 ‘바라고 기다리던[待望]’ 주나라를 일으켜 줄 마로 그 인물이라 믿고 스승이 되어 주기를 청했다. 이리하여 이 노인, 태공망(太公望:태공이 대망하던 인물이한 뜻) 여상[呂尙:성은 강(姜) 씨, 속칭 강태공]은 서백의 스승이 되었다가 무왕의 태부(太傅:태자의 스승)?재상을 역임한 뒤 제(齊)나라의 제후로 봉해졌다. 태공망 여상은 이처럼 입신 출세했지만 서백을 만나기 전까지는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던 가난한 서생이었다. 그래서 결혼 초부터 굶기를 부자 밥 먹듯 하던 아내 마(馬)씨는 그만 친정으로 도망가고 말았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 마씨가 여상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전엔 끼니를 잇지 못해 떠났지만 이젠 그런 걱정 안해도 될 것 같아 돌아왔어요.” 그러자 여상은 잠자코 곁에 있는 물그릇을 들어 마당에 엎지른 다음 마씨에게 말했다. “저 물을 주워서 그릇에 담으시오.” 그러나 이미 땅 속으로 스며든 물을 어찌 주워 담을 수 있단 말인가. 마씨는 진흙만 약간 주워 담았을 뿐이었다. 그러자 여상은 조용히 말했다.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고[覆水不返盆]’ 한번 떠난 아내는 돌아올 수 없는 법이오.”
Board 고사성어 2023.02.03 風文 R 10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