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사람들이 묻더라. 지금 하는 일을 어떻게 하게 되었냐고. 뭔가 필연적이고 운명적인 이유를 기대하면서. 이를테면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다거나(풉), 공부에 필요한 끈기를 타고났다거나(우웩) 하는 거 말이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식으로 미래를 쫀쫀하게 설계하며 사는 건 거짓말이거나 자기애가 강하거나 겁이 많은 게 아닐까. 중3 때 금오공고를 가려고 했다. 박정희의 전폭적 지원으로 세운 학교라 학비와 기숙사비가 전액 면제였다. 거길 갔다면 노숙한 기능공으로 살고 있겠지(그것도 괜찮았겠다). 담임이 피식 웃으며 일반고를 가랬다. 갔다. 대학도 그랬다. 적당히 국어 선생이나 하며 살려고(미안, 국어 선생님들) 국문과에 가고 싶다고 하니 담임은 무심히 허락을 해줬다(상담 없이!). 어쩌다 보니 대학원에 갔다. 졸업하자마자 몇년을 직장생활을 했다. 어찌저찌하여 다시 선생을 했다. 나도 배운 적 없는 글쓰기를 허덕대며 가르치고 있다(미안, 학생들). 매주 이 칼럼을 쓰는 것도 어쩌다 보니 하게 된 일. 이 모든 것의 출발은 그게 아주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싫지만은 않아서였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자기 힘으로 돌파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이 삶의 우연성과 복잡성을 깨닫기란 발가락으로 귀를 파는 일보다 어렵다. 운명은 타인들과의 우연한 만남과 조응으로 이루어지나니, 지금 내 모습이 어찌 나의 것이겠는가. ‘현실’을 받아들이되 얽매이지 않으려면, 순간순간 만났던 타인의 음성을 다시 듣고 싶다면, ‘어쩌다 보니’라는 말을 내뱉어보시라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셋 - 사랑으로 풀어내는 웃음보따리 내 인생 책임져 이종환, 최유라씨 안녕하십니까? 저는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며 이 한몸 불살라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제 손으로 지켜 나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불철주야 학업에 열중하고 있는 복학 2학년의 영남대 학생입니다. 제가 오늘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은 제게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이 한몸 희생하면 이종환, 최유라씨는 물론 전국의 수많은 애청자들이 잠시라도 더위를 잊고 마음껏 웃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펜을 들었습니다. 얘기를 시작하면 이렇습니다. 며칠 전이었죠. 6월말에 기말고사가 끝남과 동시에 방학을 맞이한 저는 이번 대학은 절대로 헛되이 보낼수 없다는 굳은 결심 하나로 학업에 열중하기 위해 도서관행을 결정했습니다. 남들은 피서다 뭐다 난리겠지만 요즘 대학교는 취업난 때문에 공부를 하느라 정신이 없거든요. 저도 그래서 도서관에서 여름을 나기로 했던 겁니다. 날씨가 더운지라 저의 옷차림은 헐렁한 반바지에 T셔츠 그리고 공부할 책 몇 권을 넣은 가방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만원버스에 시달리지 않으려고 일부러 출근시간이 지난 느지막한 시간에 집을 나선 저는 학교로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버스안에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앉을 자리가 하나도 없더군요. 그런데 버스 중간쯤에 웬 낯익은 얼굴 하나가 눈에 들어오길래 자세히 보니 우와 아니나 다를까. 평소 흠모해 마지않던 그 아가씨가 앉아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아가씨는 한 학기 동안 같은 강의를 들었던 같은 학교 여학생인데 얼굴 이쁘죠, 성격 명랑하죠, 게다가 목소리까지 최유라씨 뺨칠 정도로 간드러지는 바로 꿈에 그리던 저의 이상형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소심함 때문인지 몇 번이고 고백해야지 하는 마음만 먹었을 뿐 한 학기가 지나도록 같이 강의를 들으면서도 말 한마디 못 붙여 봤습니다. 그런데 바로 오늘 하늘이 저에게 기회를 준것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저는 결심했습니다. 오늘이야말로 사생결단을 내고야 말겠다구요. 저는 천천히 걸어가 그녀 앞에 섰습니다. 마음씨도 착하지 저의 가방을 받아주더라구요. “이거 여기서 당장 뭐라고 말을 걸어? 아냐 여긴 너무 시끄러우니까 버스에서 내린 다음 얘길 해야지, 근데 무슨 말부터 하지?” 저 커피나 한 잔? 아냐, 아냐, 이건 너무 촌스럽고 좀더 세련되고 근사한 말 없을까? 이런 저런 생각에 저의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져갈 무럽 그녀의 뒷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내리더군요. “그래, 아직 몇 정거장 남았으니까 앉아서 천천히 생각해 보자.” 하며 아가씨의 바로 뒷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순간 저의 눈에 한 아주머니가 들어오더군요. 그때 버스 안에 서 있던 사람을 그 아주머니와 저 둘뿐이었거든요. 그 아주머니도 그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벌써 스타트를 한 상태였죠. 저는 이 아주머니께 자리를 양보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대사를 앞두고 있는 제가 이런 사소한 일로 그르쳐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사건은 거기서 시작되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마치 맹수가 먹이감을 사냥하듯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고 때맞춰 급출발을 해버린 버스 덕에 더욱더 스피드를 얻은 아주머니는 그만 중심을 잃어버렸습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아주머니는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식으로 엉겹결에 움켜쥔 것이 하필이면 저의 반바지였습니다. 반바지 고무줄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고무줄 반바지는 저의 무릎 아래로 내려가 있었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지요. 그러나 저는 침착했습니다. 오늘 아침 나올 때 팬티를 갈아입고 나오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나오기 전에 입고 있던 삼각팬티를 벗어버리고 사각팬티로 갈아입 었었거든요. 하긴 반바지나 사각팬티나 망신스럽기는 거기서 거기지 뭐 별차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바지를 올리려던 저의 눈에 그제서야 파악이 된 사건현장.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하겠더군요. 저는 더 이상 침착할 수가 없었습니다. 믿고 있던 팬티마져 있어야 할 위치에서 벗어나 허벅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제서야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더군요. 버스 안에 있던 수십 개의 눈들이 모두 제쪽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시선들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그녀의 시선. 저의 바로 앞에 앉아 있던 그녀는 정면에서 그것도 바로 그녀의 코앞에서 일어난 사건을 그 누구보다도 더 생생하게 보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아주머니는 제게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말씀을 하셨지만 그게 어디 제 귀에 들어오기나 하겠습니까. 달리는 버스 안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당황했었는지 이해가 안되시는 분은 버스안에서 반바지를 한번 무릎까지 내려 보세요. 죽고 싶으실 겁니다. 마침 버스가 정차하길래 그냥 내려버렸죠. 그곳에서 내려 학교까지 걸어간 저는 그녀와 마주칠까봐 도서관에도 가지 못하고 학교 앞을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삐삐가 한 통 들어와서 확인해보니 그녀가 제 가방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며 찾으러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 가방을 그냥 맡겨둔 채 내려버렸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고 잠시 망설임 끝에 가방을 찾으러 갔습니다. 보여줄 거 못 보여줄 거 다 보여줬는데 더 이상 창피할 게 뭐 잇겠느냐고 생각을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며 이것이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만나기로 결심했습니다. 도서관 앞 벤치에서 저를 기다리던 그녀에게서 가방을 건네 받고는 다짜고짜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책임지십시요." 그녀는 놀란 눈을 치켜뜨며 묻더군요. "예? 뭘 책임져요?" "볼 거 다 봤으니까 책임지시라구요." "연락처를 몰라서 가방 안에 수첩 본 거밖에 없어요. 다른 건 아무것도 안 봤어요." "그게 아니라 아까 버스 안에서 본 거 말이에요. 제가 24년간 고이 간직해온 순결을 아가씨한테 송두리째 뺏긴 거라구요. 그러니까 책임져요." 그제서야 그녀는 무슨 얘기인지 알겠다는 듯 웃으면서, 그것도 마치 최유라씨처럼 웃으면서 어떻게 책임지면 되냐고 하더군요. "그건 중요한 문제니까 지금 결정할 수 없고 앞으로 자주 만나면서 서로간의 협의를 거쳐서 결정하도록 하죠." 그렇게 되어 저는 그녀와 지금도 매일 만나고 있으며 저의 인생을 그녀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습니다.
Board 삶 속 글 2023.04.13 風文 R 568
새옹지마(塞翁之馬) 塞:변방 새. 翁:늙은이 옹. 之:갈 지(…의). 馬:말 마. [원말]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塞翁之馬). [동의어] 새옹마(塞翁馬), 북옹마(北翁馬). [유사어] 새옹득실(塞翁得失), 새옹화복(塞翁禍福), 화복규목(禍福糾?), 화복규승(禍福糾繩). [출전]《淮南子》〈人生訓〉 세상 만사가 변전무상(變轉無常)하므로, 인생의 길흉 화복(吉凶禍福)을 예측할 수 없다는 뜻. 길흉화복의 덧없음의 비유. 옛날 중국 북방의 요새(要塞) 근처에 점을 잘 치는 한 노옹(老翁)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 노옹의 말[馬]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애석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말이 오랑캐의 준마(駿馬)를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치하하자 노옹은 조금도 기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화가 될는지.” 그런데 어느 날, 말타기를 좋아하는 노옹의 아들이 그 오랑캐의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슬픈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오랑캐가 대거 침입해 오자 마을 장정들은 이를 맞아 싸우다가 모두 전사(戰死)했다. 그러나 노옹의 아들만은 절름발이었기 때문에 무사했다고 한다.
Board 고사성어 2023.04.13 風文 R 835
'김'의 예언 말은 시간과 닿아 있다. 경험과 기억이 쌓이기도 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그려 보게도 한다. 정신적 뼈와 살이 되는 말은 육체에 버금간다. 만져지는 말. 우리 딸은 2000년에 태어났다. 미인가 대안학교를 나온 그는 준채식주의자로 살고 있다. 매 순간 행복을 유예하지 않고, 사회가 미리 짜놓은 경쟁의 허들 경기에 불참하고 있다. 아비를 따라 합기도(아이키도) 수련을 하며 틈틈이 노래를 지어 부른다. 한동안 스파게티집 주방에서 종일 설거지 알바를 하더니 몇달 전부터는 채식요리(비건) 식당에 들어가서 고단한 노동자의 삶을 시작했다. 요즘 그는 틈나는 대로 운다. ‘김’ 때문이다. 얇고 까무잡잡한 ‘김’. 올해 봄이나 여름부터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에 쏟아붓는다는 소식과 겹쳐 ‘김’이란 말을 뱉을 때마다, 김이 눈앞에 보일 때마다, 그의 머릿속엔 파국적 상황이 연상되나 보다. 다시 먹지 못할 김. 어디 김뿐이랴. 오염수는 늦어도 4~5년 뒤엔 제주 밤바다에 도달한다고 한다. 국경을 모르는 물고기들은 그 전에 피폭될 테고(이미 봄비는 내렸다). 일본 시민사회와 교류하고 있는 옆방 선생이 전하기를, 일본 지인들한테서 ‘안전한’ 한국산 다시마를 보내달라는 연락이 온다고 한다. 일본의 어느 아침 밥상에서는 ‘다시마’를 앞에 두고 우는 이들이 있나 보다. 원전 마피아들은 오염수 방류의 파국적 미래에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있다. 아니, 무조건 ‘안전하다’고 떠든다. 생태에 대한 책임감을 찾을 수 없는 엘리트들보다 우리 딸의 감각이 더 믿음직스럽다. 늦지 않게 종말론적 체념의 감각을 익혀야겠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