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이어령편"(1934~2022) 평론가. 수필가. 충남 아산 출생. 서울대 문리대 및 대학원 졸업. 여러 신문의 논설 위원과 이화 여대 교수, 문화부 장관 역임. 사변 이후의 비평계에 이론적 기수로 등장하여 김동리와 '실존성의 논쟁'을, 조연현과 '전통론의 논쟁'을 벌여 크게 주목받았다. 그 후 칼럼니스트로 에세이스트로 맹렬히 활약하면서 신화, 전설, 풍속 기타 다방면의 재료를 토대로 한국인의 사고 방식을 해부하였다. 장편 에세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30만부 매진의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지게 지게는 우리 나라 고유의 것이다. 우리 겨레의 정이 배고 피가 도는 물건이다. 그것에는 운반 수단 이상의 의미가 깃들여 있다. 우선 지게의 모양을 보라. 그것을 져 온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들의 마음씨처럼 순박하기만 하다. 쇠못 하나 박은 흔적이 없다. 솜씨를 부린 데도 없다. 애초부터 지게 모양의 나뭇가지를 베어다가 대강 다듬고, 몇 군데 구멍을 뚫었을 뿐이다. 나는 이 순박을 사랑한다. 지게에는 노래가 있다. 지게꾼들은 작대기로 지겟다리를 치며 그 장단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외로운 숲길, 한적한 논두렁에서 그것은 다시 없는 위안이다. 악보를 보며 배운 노래가 아니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득한 할아버지 때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온 노랫가락이다. 지게에는 평화로운 휴식이 있다. 나무 그늘에 지게를 뉘어 놓고 그 위에 잠든 농부의 얼굴들. 안락 의자에 잠든 어느 신사의 얼굴이 이보다 평화로우랴! 지게에는 또 고운 마음이 있다. 나무꾼의 지게에는, 봄이면 진달래가, 여름이면 산딸기가, 가을이면 들국화와 단풍이 꽂힌다. 무엇을 생각하며 꽃을, 열매를, 잎을 꽂을 것일까?...그것은 우리의 멋이요 시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지게를 볼 때마다 기쁨을 느끼기보다는 먼저 한숨이 흘러나오게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지게는 어깨에 멜빵을 걸어 지는 1인용 운반 수단이다. 어깨에 걸어 지기 때문에 지게는 괴로운 것이다. 짐의 무게를 온통 몸으로 지탱해야 한다. 물보다 어렵다는 구절양장을, 짓누르는 짐을 지고 올라가 보라, 내려가 보라. 숨이 차다. 무릎 마디가 아프다. 뿐만 아니라 지게는 한 사람의 몸으로 지탱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짐을 운반할 수가 없다. 그래서 괴로운 걸음을 두 번, 세 번, 아니 열 번, 스무 번 반복해야 한다. 수레를 이용했던들 그런 괴로움은 쉽게 덜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어느 때, 그 어느 세상에서도 운반 수단은 필요했으리라.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들은 하필 이 괴로운 지게를 만들었던 것일까? 하기는 수레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너무 적었다. 아니, 많았다 하더라도 쓸모가 없었을 것이다. 수레가 다닐 만큼 넓은 길이 없었으니까. 우리 할아버지들은 힘들여서 넓은 길을 닦지 않았다. 다니다 보니 저절로 생겨난 그 비탈길, 그 오솔길, 그 논두렁길... 그러나, 날라야 할 짐은 많았다. 지게는 어디나 갈 수 있다. 사람이 갈 만한 길이면 어디나 갈 수가 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지게이리라. 왜 수레가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넓히려 하지 않았을까? 외 굴이라도 뚫으려 하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지게의 괴로움을 맛보지 않아도 좋았을 것을, '나'를 위하여 환경을 개선하기보다는, 주어진 환경에 '나'를 맞추려 했던 데서 지게가 생겨난 것이리라. 이렇게 생각해 보면, 지게의 괴로움은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지게를 사랑한다. 그러나, 지게를 벗어 던질 수 있는 넓고 곧은 길을 더욱 사랑한다. 시원스럽게 뚫린 길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준다. 마을에서 마을로, 도시에서 도시로, 그리고 나라에서 나라로 길이 하나 생길 때마다 우리의 삶도 그만큼 넓어진다. 길을 닦아야 한다. 그래야 천 년 동안이나 져 온 그 괴로운 지게에서 벗어나, 새롭고 넓은 세계를 향해 우리는 마음껏 달려갈 수가 있는 것이다.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우리 엄마 누가 좀 말려줘요 저는 빛고을 광주에 사는 김용석이라고 합니다. 8남매 중의 막내가 나이가 서른이 다 되어 대학에 입학하고 중간에 휴학을 한번. 그래서 결국 지난 2월 10일 서른 넷의 나이게 졸업을 한 노총각입니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홀로 계신 어머니께 불효막심한 막내자식이 되었고 혼자 사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려 가끔 저에게 전화를 하곤 하십니다. 그런데 지난 가을 무렵의 일입니다. 그 무렵엔 졸업논문 준비로 자정을 넘겨서 들어오는 경우도 많고 해서 자동응답기를 설치해 놓았지요. 어느 날 저녁 늦게 우중충하고 총각냄새가 가득한 방 안에 들어오니 자동응답기에 누군가 메시지를 남겨 놓았더군요. 그래서 응답기의 메시지를 들어보던 저는 그만 까무러칠 뻔하고 말았습니다. 이유인즉, 저희 어머니는 제게 전화를 하셨는데 생전에 자동응답기를 사용해 보신 적이 없으셨으니 얼마나 답답하셨겠어요. 그날은 더욱이 마을 잔칫집에서 약주까지 한잔 하신 상태로 전화를 하셨던 모양인지, 온통 욕으로 도배를 해 놓으신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가 하신 얘기는 이랬습니다. 신호가 몇 번 울리더니 전화받는 소리가 들리고, 제 목소리가 들리더랍니다. "(자동응답기 인사말에)예... 들꽃나라입니다. 저는 지금 외출 중이오니 남기실 말씀이 있으시면..." "용석아! 엄마다."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어머니 말씀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 말만 계속하더라는 겁니다. "용석아 엄마당께... 왜 니 말만 혀...?" 그래도 제가 계속 제 말만 하더니 삐 소리가 나고 아무말도 없더랍니다. '이 녀석이 다른 일을 하던 중이었나보다...' 어머니는 이렇게 생각하시고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제가 아무 소리가 없자 답답해지셨답니다. "용석아... 엄마여... 엄마당께. 왜 말을 허다 말어... (조금 소리를 높여서) 나여, 엄마여... 엄마당께... 아, 우리 막둥이 아녀? 문딩이... 썩을 놈... 어째서 말을 안혀... 아, 막둥아! 왜 말을 허다가 끊어부러.... '삐'가 머시여... 먼 소린지 알아듣도 못허것고 죽것구만... 얼렁 대답 안혀...? 망할 것... 인자 대답도 안허네... 냅둬부러. 문딩아, 인자 니한테는 전화도 안 할랑께." 하시면서 전화를 끊으신 것이었습니다. 동네 분들과 약주를 조금 하신 후에 막내아들이 생각나셨고, 여러 번의 시도 끝에 통화를 성공하셨는데 자동응답기가 받은 후 아무말도 없으니 화가 나실 만도 하지요. 그런데 또 이 여러 번의 시도란 무엇이냐? 저희 어머니는 연세가 드셔서 눈도 어두워지신 데다가 약주까지 한 잔 하셨기 때문에 큰 글자로 적어드린 전화번호를 보고 다이얼을 늦게 누르시기 일쑤였습니다. 전화번호를 잘 못 누르면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국번이오니...'하면서 안내말이 나오지요. 어머니는 분명히 한자 한자 확인하고 거신다고 거셨는데 그 소리가 나오니 어이가 없고 황당하셨겠지요. 첫 실수 때는 이랬습니다. "문딩이 가시네. 우리 막둥이 집 걸었는디, 무엇이 없는 번호여..." 두 번째 실수에는 이랬답니다. "아 우리 용석이 집에 전화혔는디, 어째 니가 나와서 그려... 처녀가 우리 막둥이 애인이여?" "뚜- 뚜- 뚜-." "여보쇼... 거그 우리 용식이 집 아니여?" "뚜- 뚜- 뚜-." "음마, 전화가 염병 허든갑네. 어쩌이려 전화가?" 어머니와 관련된 사건은 이 것 만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4년 전. 저는 이 곳 광주에 있는 극단에서 연극을 한 적이 있는데 제가 연극을 한다니까 둘째 형님께서 어머니를 모시고 연극관람을 오셨습니다. 어머니는 연극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시골에서 '굿'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오셨는데, 이 연극이라는 것이 조명은 괜히 켜졌다 꺼졌다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으시거니와 당신이 낳으시고 키우신 제가 연기라는 것을 하고 있으니 도무지 시큰둥해져서 흥미가 일어나지 않으신거지요. 그래서 어서 집으로 돌아가 키우는 개 밥도 주고, TV 연속극이나 보는 쪽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어머니께서는 서울이나 어디 멀리 출타를 하시게 되면 그 개밥 때문에 어서 돌아가시지 못해 안달을 하신답니다. (이건 비밀인데, 어머니께서는 당신이 기르신 개이면서도 여름에는 멍멍탕을 무지 즐기시거든요...) 아무튼 공연 중 흥미를 높이기 위해 중간에 장터 장면에서는 배우들이 객석까지 드나들며 엿이며 전통과자를 팔기도 하고, 무대 위 주막에서는 나이 드신 분들에게 막걸리도 한 잔씩 팔기도 했는데, 평소에 막걸리하면 주무시다가도 일어나실 정도인 어머니께서는 '이게 왠 술이냐'하시며 막걸리를 맛있게 드신 것입니다. 장터 장면은 끝나고 다시 연극은 시작되고 무대의 조명은 어두워지고 모두 숨을 죽이고 집중하고 있는데 아니 이게 왠 일입니까? 갑자기 무대와 객석이 환해진 것입니다. 무대 뒤에 있던 나머지 배우와 스탭들은 화재가 났다며 온통 비상이 걸렸습니다. 조명실에 인터폰으로 연락을 하는가 하면 소화기를 가지러 가는 등 야단이 났습니다. 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입니까? 오, 하늘이시여!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 엄마가 세상에 울 엄마가... 장터 장면에서 막걸리를 한잔 드신데다 지루하기도 해서 담배가 한 대 생각이 간절하시던 차에, 극중에 배우들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나오자 당신께서도 '옳지... 담배를 태워도 돠는구나'하시며 한 대 태우실 양으로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켜신 거지요. 우째 이런 일이... 곁에 앉아 있던 형님께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하시고 황급히 담배를 빼앗아 껐지만, 장내는 온통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공연분위기는 어수선해지고 전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운명의 여신이 하는 장난은 그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겨우 분위기가 수습되고 공연이 다시 무르익을 무렵이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있던 다섯 살 조카녀석이 갑지기 오줌이 마려워진 것입니다. "할머니, 오줌 마려워요..." "곧, 끝난께 조깨만 참그라..." "할머니 오줌이 막 나오려고 그래 못 참겠어요." "그럼 오줌 나오지 말라고 꼬추 끝터리를 꼭 잡고 있어부러라." 하셨으니 어찌 되었겠습니까? 곁에 있던 관객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리고 만 것입니다. 물론 공연이 끝나갈 무렵이기는 했지만 이제 분위기는 완전히 산만해지고 말았습니다. 연극은 제가 맡은 역할이 죽음으로써 끝나는데 제가 연기가 제대로 될 리가 있었겠어요? 어떻게 연기를 했는지도 모르고 그냥 빨리 시간이 자나기만을 바랄 수 밖에요. 마지막 죽는 연기도 평소에 누워서 죽다가 그 날은 엎드려서 죽어야 했다는 거 아닙니까? 저희 어머니 정말 별난 분이시지요.
Board 삶 속 글 2023.02.11 風文 R 456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전혜린편"(1934~1965) 수필가. 평남 순천 출생. 독일 뮌헨대 독문과 수료. 여러 대학의 강사를 거쳐 성균관대 교수 역임. 31세로 자살함. 자유로운 정신과 현실 세계와의 치열한 대결 속에 불꽃처럼 살다가 간 지식인이었다. 끈기와 탄력과 집중력을 갖고 생을 긍정했고 생의 완벽성을 구했다.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삶에 대한 그의 강렬한 사랑과 일종의 필수적인 비애의 기록으로서 수많은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몽환적 시월 - 10월이 되면 레스토랑이나 다방에서 '데운 맥주'를 요구한다. 뮌헨의 10월이 그립다. 거기에 있을 때는 언제나 이렇게 추운 가을은 처음 보았느니 한국의 가을 하늘을 못 본 사람이 가엾느니 하면서 새파란 하늘,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 석류, 추석 보름달, 독서의 계절 천고마비 등의 이미지와 불가분인 한국의 가을을 그리워했었다. 끔찍한 김장 시즌조차가 못 견디는 향수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지 2년째 되는 요즘 웬일인지 자꾸 뮌헨의 가을이 생각난다. 뮌헨의 10월은 벌써 본격적인 털외투가 필요해지는 계절이다. 한달 중 20일은 비가 오는 계절이기도 하다. 언제나 하늘을 뒤덮고 있는 짙은 회색 구름과 언제나 공기를 무겁게 적시고 있는 두꺼운 안개, 안개비, 보슬비 등과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이 뮌헨의 10월이다. 벽이 두껍고 방 안에서 이중창에 세 겹 커튼을 두르고 난로를 때고 앉으면 독서의 계절이라는 슬로건이 없어도 누구나가 마치 회색 안개에 눌린 듯이 생각과 책읽기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내가 살던 슈바빙이라는 뮌헨의 한 구는 일부러 옛날 것을 그대로 놔 두는 파리식인 예술가 촌이었다. 거기서만은 형광등 대신 여전히 가스등이 가로등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저녁때의 짙은 안개 속에 가물가물 어렴풋이 보이는 가스등의 아름다움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자전거를 탄 할아버지가 긴 막대기로 유유히 한 등 한 등 켜 가는 박모의 광경은 이런 계절에는 더욱 몽환적으로 동요적으로 보였던 것 같다. 10월이 되면 레스토랑이나 다방에서 손님들이 '데운 맥주'를 요구하는 수가 늘게 된다. 그러나 추위를 덜기 위해서 그보다 흔히들 마시는 것은 물과 설탕을 끓이고 럼주를 섞은 그로크라는 음료와 또 붉은 포도주에 계피, 사향, 레몬, 설탕 등을 넣고 끓인 '굴류와인'이라는 음료다. 둘 다 북극다운 침침하고 검소한, 음악도 없는 뮌헨의 학생 다방에서 마실 때 무척 맛있게, 또 추위에 대해서 유효하게 생각된 음료지만 한국에서 마시면 어떨는지? 아직 한 번도 시험해 보지 못했다. 아마 그 우울한 안개비의 포장과 뜨거운 사기 난로, 구운 소시지 냄새,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을 날라다 주는 금발의 프로일라인의 친절한 미소 없이는 맛없는 음료일지도 모르겠다.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엉덩이 힘 빼세요 이 시간에도 무역수지 적자 때문에 깊은 고뇌에 빠져 있는 이곳 공단 산업역군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미소를 머금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띄웁니다. 우선 이 사건은 본인의 경험이 절대로 아니고 친구의 사건임을 밝혀둡니다. 무지무지 황당하고 허망한 인간사 '세옹지마'임을 실감케 하는 사건이 있는데 들어 보실라우! 얼마 전 사건의 주인공인 친구가 오후의 따스한 가을 햇살에 식사후의 나른함과 싸우며 핸들을 잡고 신호대기 중이었습니다. 무심코 룸미러를 보니까 뒤쪽에서 신모델 차 한 대가 조금 빠른 속도로 오더래요. 속으로 '야! 차 좋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 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더래요.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계속 룸미러를 주시하면서, '브레이크가 좋으니까 바싹 붙어서 정지하겠지.'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불안하게 차 후미를 향해 계속 돌진해 오더랍니다. 이때 이 친구 속마음이 어떨런지 상상이 되십니까? 살인무기가 무방비로 서 있는 자리를 처치하려고 돌진하는데, 자기는 차안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운명의 순간을 지켜봐야 하는 심정! 상상이 되십니까? 이마엔 땀이 맺히고, 등골은 오싹해지고, 오금이 저려오면서 아랫도리는 축축해지고.... 그러나 인간은 대단하데요. '아! 이제 죽는구나. 그러나 결혼도 못해 보고 죽을 수는 없다. 살아야 되겠구나.' 그 와중에도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면서 어느새 오른손은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기면서 양발은 발판에 붙이고, 양손은 핸들을 휘어지도록 쥐고, 머리는 좌석 받침대에 밀착시키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를 취하는 순간, '끼-이-익 쾅!' 충격에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보니 웬 사람이 차문을 열고 밖으로 끌어내더래요. 앞은 캄캄하도 하늘은 누르스름한데 별은 둥둥 떠있고.... 잠시후 정신을 수습하고 보니 천당은 아니더래요. 현장에서 사고를 대충 정리하고, 병원에서 진찰받고 X-ray찍고 검사를 받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 한 줄기 서광이 비치더니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숨이 턱에 차서 말문이 탁 막히더래요. 그 와중에 자기 앞에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간호사 한 분이 꿈에도 그리던 이상형이더래요. 순간 갑자기 뇌리를 스치면서 뒷골을 때리는 전율을 느끼며 생각했대요. '아! 하늘이 이런 기회를 주시려고 사고가 나게 했구나.' 겨우 흥분을 진정시키고 입원하라는 것도 마다하고 통원치료 하기로 하고 집에 와서는 아픈 건 둘째 문제고 내일 병원 갈 생각에 잠도 오지 않더래요. 참고로 이 친구는 3주 진단이 나왔습니다. 다음날 부푼 가슴을 안고 병원에 도착해서 진찰하고 물리치료 받고 주사 맞고 약 타는 순간까지도 어제 그 천사의 모습은 볼 수가 없더랍니다. 병원 문을 나서서 도로를 걸어가면서도 미련이 남아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다음날 다시 벌렁대는 가슴을 안고 병원을 찾았는데 역시 진찰이 끝나고 물리치료가 끝날 때까지 그녀의 모습은 보이질 않더래요. 이름도 모르니 물어볼 수도 없고, 혼자서 벙어리 냉가슴만 태우면서 주사실로 들어갔는데, 그 순간 천지간에 광명의 빛이 비치더니 동공이 확장되고 코가 벌렁벌렁거리는가 싶더니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고 폐활량이 '황영조' 선소의 몇 배가 되더랍니다. '아!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 그녀가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녀는 솜사탕 같은 목소리로 "침대에 기대서 바지 내리세요." '이런 낭패가 있나?' 그녀 앞에서 어떻게 바지를 내리겠는가! 하지만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정신을 가다듬고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그녀 쪽으로 내밀었답니다. 그리고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며 두 손은 침대 시트를 꽉 쥐었구요. 양 다리는 감전된 것처럼 뻣뻣해지고, 그리고 다른 또한 곳은 야릇한 전율이 감돌면서 중추신경이 마비됨을 느꼈답니다. 그는 최대한 차분한 몸짓으로 바지를 내리니 그녀의 가냘픈 손이 한 쪽도 아니고 양쪽 엉덩이게 주사를 놓더랍니다. 그 기분을 이해하실런지요? 3주 진단이 3일만에 완쾌된 기분일 겁니다. 그날은 구름 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에 하루를 보냈지만, 병원이 쉬는 일요일은 하루 24시간이 240년 같고, 하루를 몽땅 굶어도 배고픔을 느낄 수 없었고, 하루라도 거르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던 술은 일주일을 안 먹어도 하늘에 뜬 기분이고, 시꺼면 매연도 한겨울 내리는 함박눈으로 보이고, 병원에 갈 때면 안하던 샤워를 하고.... 그러나 신이시여, 어찌 이런 잔인한 운명을 내리십니까? 열흘 가까이 물리치료를 받던 어느 날, 오전부터 속이 좀 이상하더래요. 하지만 천사와의 만남을 앞두고 불결한 행동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참고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조금씩 심해지더래요. 진찰이 끝나고 주사를 맞으러 주사실에 들어갔는데, 주사기를 들고 따라 들어온 사람은 꿈에도 그리던 그녀! 그녀 왈, "바지 내리시고 침대에 기대세요." 그러더니 손으로 엉덩이 탁탁 치면서 "힘 빼세요." 힘 빼라니.... 가스가 나오려는 걸 아랫배에 힘을 주어 간신히 참고 있는데.... 그러나 엉덩이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으니 주사 바늘이 두 번 세 번 찔러도 실패하고 피만 나는 겁니다. 그러자 그녀는 목소리를 더 높여서 말하더랍니다. "지금 저하고 장난하시는 거예요." 천사의 음성 같던 그녀의 목소리가 저승사자의 울림으로 다가오는 순간 이젠 어쩔 수 없군,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하며 아랫배에 힘을 빼니 잔뜩 움추렸던 괄약근은 열리고, 주사바늘이 엉덩이를 뚫고 들어오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 "뽀오-옹." 천사의 외마디. "엄마야." 그 이후로 이 병원에서 그 친구의 얼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Board 삶 속 글 2023.02.10 風文 R 644
불입호혈 부득호자 (不入虎穴不得虎子) 不:아니 불. 入:들 입. 虎:범 호. 得:얻을 득. 子:아들 자. [참조] 수청무대어(水淸無大魚). [출전]《後漢書》〈班超傳〉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는 호랑이 새끼를 못 잡는다는 뜻으로, 모험을 하지 않고는 큰 일을 할 수 없음의 비유. 후한(後漢) 초기의 장군 반초(班超)는 중국 역사서의 하나인《한서(漢書)》를 쓴 아버지 반표(班彪), 형 반고(班固), 누이동생 반소(班昭)와는 달리 무인(武人)으로 이름을 떨쳤다. 반초는 후한 2대 황제인 명제(明帝) 때(74년) 서쪽 오랑캐 나라인 선선국[누란(樓蘭)]에 사신으로 떠났다. 선선국왕은 반초의 일행36명을 상객(上客)으로 후대했다. 그런데 어느 날, 후대는 박대(薄待)로 돌변했다. 반호는 궁중에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하고 즉시 부하 장수를 시켜 진상을 알아보라고 했다. 이윽고 부하 장수는 놀라운 소식을 갖고 왔다. “지금 신선국에는 흉노국(匈奴國)의 사신이 와 있습니다. 게다가 대동한 군사만 해도 1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흉노는 옛부터 한족(漢族)이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아 침입을 막았을 정도로 영맹(獰猛)한 유목민족이다. 반초는 즉시 일행을 불러모은 다음 술을 나누며 말했다. “지금 이곳에는 흉노국의 사신이 1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와 있다고 한다. 신선국왕은 우리를 다 죽이거나 흉노국의 사신에게 넘겨 줄 것이다. 그러면 그들에게 끌려가서 개죽음을 당할 텐데 어떻게 하면 좋겠나?”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야 없지 않습니까? 싸워야 합니다!” 모두들 죽을 각오로 싸우자고 외쳤다. “좋다. 그럼 오늘 밤에 흉노들이 묵고 있는 숙소로 쳐들어가자.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는 호랑이 새끼를 못 잡는다[不入虎穴不得虎子]’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날 밤 반초 일행은 흉노의 숙소에 불을 지르고 닥치는 대로 죽였다. 이 일을 계기로 선선국이 굴복했음은 물론 인근 50여 오랑캐의 나라들도 한나라를 상국(上國)으로 섬기게 되었다.
Board 고사성어 2023.02.10 風文 R 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