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이어령편"(1934~2022) 평론가. 수필가. 충남 아산 출생. 서울대 문리대 및 대학원 졸업. 여러 신문의 논설 위원과 이화 여대 교수, 문화부 장관 역임. 사변 이후의 비평계에 이론적 기수로 등장하여 김동리와 '실존성의 논쟁'을, 조연현과 '전통론의 논쟁'을 벌여 크게 주목받았다. 그 후 칼럼니스트로 에세이스트로 맹렬히 활약하면서 신화, 전설, 풍속 기타 다방면의 재료를 토대로 한국인의 사고 방식을 해부하였다. 장편 에세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30만부 매진의 기록을 세운 바 있다. 네 잎의 클로버 현대인에게 있어 행복은 잃어버린 숙제장이다. 누구나 이제는 행복이란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기를 주저한다. 그것은 하나의 장식 문자가 되어 버렸다. 사기 그릇 뚜껑이나 아이들 복건이나 시골 아이들의 금박 댕기, 그리고 돗자리와 베갯모와 주머니와 방석... 그런 것들 위에 어쩌다가 수놓여진 복자를 보면 이미 사지가 되어 버린 옛날 금석문을 대하는 느낌이다. 옥편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글자 같다. 실상 철이 든다는 말과 행복이란 말은 역비례한다. 행복을 장식품처럼 생각하며 세상을 살아 갈 수 있게 될 때 사람들은 비로소 어른이라고 불러 준다. 이웃집 개 이름만 하더라도 해피이다. 행복은 그렇게 전락하고 만 것 같다. 책상 머리에 불이 켜지는 그런 시각에 나는 이따금, 이웃집에서 그 개를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해피--" "해피--" "해피--" 어둠의 조수가 잔잔하게 밀려오는 골목길을 향해서 기침을 하듯 혹은 각혈을 하듯 이웃집의 미망인은 개를 부른다. 여운도 없이 번져나가는 목소리다. 나에게는 그것이 처량하면서도 모질게만 들린다. 개를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아직도 체념하지 못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 어둠을 향해 고함치고 있는 소리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혹은 좌초된 깨진 선박 위에서 치맛자락을 찢어 흔들고 구원을 청하는 한 여인의 광경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녀는 구원을 청하고 있다. 시꺼먼 파도가 밀려오는 막막한 바다 가운데서 찢어진 치맛자락을 기폭처럼 내흔들고 있다. 더구나 그 개의 이름 '해피'는 '해피니스(행복)'의 형용사이다. 형용사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그것에는 반드시 수식해야 할 실체가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해피의 부름 소리는 수식해야 할 실체를 찾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축축한 저녁 공기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행복한--' '행복한--' '행복한' 그 다음 올 말은 실종된 채 영원히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물론 이런 영상들은 내 상상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미망인은 치맛자락 같은 것을 찢어 휘두르지는 않는다. 밀려오는 검은 파도도 없다. 다만 여인의 손에는 쭈그러진 양은 그릇이 하나 들려져 있을 뿐이다. 그 속에 생선 가시를 담아 가지고, 개가 돌아올 때까지 잠시 동안, 아주 잠시 동안 그녀는 어둠을 지켜 보고 어 있는 것뿐이다. 더구나 그 미망인은 16밀리 흑백 영화나 무슨 연재 소설이나 혹은 유랑 악극단에 등장하는 파란 많은 미망인, 젊고 아름다운 극적인 그런 미망인이 아니다. 사람은 평범할수록 현실적으로 보인다. 결혼할 때 가지고 온 혼수가 이제는 걸레가 된 것처럼, 그녀에겐 지금 생활에 대한 기대나 소망도 또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무거운 짐을 져 나르는 사람의 어깨에는 굳은 못이 박여 단단한 근육이 생기게 되는 법이다. 그 굳은 살결은 아픔을 견뎌 낸다. 고된 나날은 보드랍던 그녀의 마음에도 감각이 통하지 않는 굳은 못을 박아 놓았을 것이다. 남편에 대한 생각조차 잊어버린 지 오래일 것이다. 그러나 일몰의 시각이면 숲 속의 맹수들도 헤슬피 우는 것이다. 낮과 밤이 옮겨 가는 그 경계선에는, 노동과 휴식이 엇갈리는 그 경계선에는 깊은 공백의 단애가 있다. 누구나 때때로 이 단에 속에 떨어지면 일상적인 평원을 회의하게 된다. 그 미망인도 예외일 수는 없다.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부엌문을 열었을 때 그리고 개를 부르며 잠시 어둠을 지켜 보고 있을 때 분명히 그녀는 무엇인가 발자국 소리 같은 것을 들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옛날 그 남편이 돌아오던 발자국 소리 같은 것을...자기는 지금 개가 아니라 분명히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 때부터 참으로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고 독백을 했을 것이다. 사람들에겐 누구나 '그 때'라는 것이 있다. 다른 것은 다 시골의 간이역처럼 기억도 없이 지나쳐 버리고, 언제든 변하지 않는 '그 때'가 말뚝간이 박혀 있다. '그 때보다...''그 때처럼...''그 때와 같이...' 그렇게 마음 속으로 온갖 생애의 내용과 견주어서 말할 수 있는 '불변의 시간'이란 게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미망인이 '해피'라고 부를 때 돌아오는 것은 그 때의 행복이 아니라 한 마리의 개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피'는 지쳐 있다. 온종일 쓰레기통을 뒤지다가-하수구 속에서 죽은 쥐를 뜯다가 해피는 배를 척 늘어뜨리고 그렇게 지쳐서 돌아오는 것이다. 눈은 언제 보아도 진벅거리고 잔등이는 멀겋게 헐어서 털이 빠져 있다. 병든 개-수척하고 게으르고 눈치만을 살피는 돌림병을 앓고 있는 늙어 빠진 개-이것이 '해피'이다. 미망인의 해피는 그런 꼴을 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수술대 위에 마취된 환자'처럼 하늘로 저녁놀이 번져 가는 엘리엇 씨의 그 일몰 시각에 해피는 쩔뚝거리면서 온다. 한 토막의 생선 가시와 먹다 버린 밥 찌꺼기를 찾아 해피는 쩔뚝거리며 온다. 우리들의 행복도 그러한 꼴을 하고 쓰레기통과 질퍽한 하수구와 연탄재가 깔려 있는 음산한 골목길로 해서 문득 우리 곁으로 온다. 출타한 여인이 불의의 시각에 비단옷 구겨지는 소리를 내며 문턱 앞에 와 앉듯 그렇게 돌아오는 행복이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평범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에 꿈꾸던 행복의 이미저리를 갖고 있다. 그것은 푸른 언덕길, 이슬 속에서 숱하게 빛나던 클로버의 잎사귀들이다. 누나는 그 때 말했다. "이것들은 모두 잎사귀가 세 개밖엔 없잖아...그런데 지금 우린 네 개짜리 클로버를 찾는 거야! 저 흔해 빠진 세 잎 클로버들 사이에서 그것은 몰래 몰래 숨어 있거든...그래서 행복하게 될 사람만이 숨어 있는 그 네 잎의 클로버를 찾아 낼 수 있다는 거지...이 길섶에도 지금 그것들은 숨어 있을 거지만 보통 사람 눈에는 뜨이지 않는 거야. 남들이 뜯어 가기 전에 우리는 빨리 그 숨어 있는 행복의 잎새를 찾아 내야만 된단다." 우리는 말이 없었다. 풀숲을 헤치면서 정신없이 네 이파리의 클로버를 찾고 있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던가 보다. 그러나 손에 잡히는 것은 모두가 흔히 빠진 세 잎의 클로버뿐이었다. 아주 기진해서 머리를 들었을 때, 하늘에는 온통 하얀 클로버 잎들의 환영이 둥둥 떠서 사라져 가고 있었다. 거기에도 네 잎짜리는 보이지 않았다. 전나무 끝에서는 솨솨 바람 소리가 울렸다. 광산으로 뚫린 산길을 따라 파란 클로버들은 한없이 뻗쳐 있다. 흰 꽃도 피어 있었다. 누나도 나처럼 지쳐 있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풀숲만을 뒤지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그 클로버를 찾는 거야? 누나, 나는 이제 멀미가 났다. 해가 넘어가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우리는 있지도 않는 네 잎짜리 클로버를 찾는 거야?" 누나는 풀어진 단추를 잠가 주면서 어른처럼 나를 달래는 것이었다.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만 행복하게 되려고 애쓰고 있는 거야. 일순이는 말이다... 누나 친구말야...일순이는 책 갈피 속에 네 잎짜리의 클로버를 잔뜩 넣고 다닌단다. 벌써 열 개가 넘어... 이제 두고 보려무나, 일순네는 가난해도 그 애는 다음에 부자가 될 꺼야. 공주처럼 말이다. 우리도 져서는 안 돼. 누가 먼저 따나 나와 경주를 해야 돼. 분명히 네 잎사귀 클로버는 어디엔가 숨어 있으니까..." 나는 빨리 클로버를 따고 싶었다. 그래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누나보다 그것을 일찍 따서 놀라게 해 주고 싶었다. 이러다가 해가 기울면 더 이상 풀숲을 헤치지는 못할 것이다. 누나는 먼 데까지 갔다. 비탈진 둔덕에 엎드려서 풀 냄새를 맡듯 머리를 풀숲에 박고 엎드려 있었다. 아직도 행복의 클로버를 찾지 못한 것이다. 그 때 문득 나는 전나무 사이에서 반짝거리는 선교사의 붉은 양옥집 유리창을 보았다. 저녁 햇살을 받고 보석처럼 그것은 빛나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이 세상에 네 잎 달린 클로버란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없다면-없다면 만들 수밖에 없다. 누나는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보지는 못 할 것이다. 가짜라도 네 이파리의 클로버를 만들어야 한다. 클로버의 잎사귀 하나를 줄기째 찢어 내서 세 잎 달린 클로버의 줄기에 갖다 붙였다. 아주 그럴 듯하게 침을 발라서...숨을 죽이고 몰래 숨어서 행복의 모조품을 만들어 낸 셈이다. 창조와 속임수는 피가 같은 쌍생아이다. 창조나 속임수나 그것은 다 같이 숨어서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리고 약간의 수줍음과 오만이 서로 미묘한 갈등을 이룬다는 점에 있어서도 그것은 아주 유사한 것이다. 다만 창조는, 예술과 같은 그런 창조는 신에 대한 속임수이지만 우리가 단순히 '속임수'라고 하는 것은 노름판에서 도박사들이 트럼프 장을 속이는 것처럼 다만 인간의 눈을 속이는 데에 불과하다. 그 점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예술가는 '보상 없는 모조품'을 만들어 낸다는 면에서 도박사나 가짜 보석 상인과 구별될 따름이다. 어쨌든 나는 그 날 애매하게 행복을 '속여서 창조'했다. 속임수이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창조이기도 했다. 네 잎사귀 클로버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낸 것이니까. 딱하게도 누나는 속아 넘어갔다. 너무 지쳐 있던 탓이었을까. 놀랍고 부러운 표정을 하고 누나는 내 손끝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는 클로버의 이파리는 세어 보는 것이었다. "하나...둘...셋...넷...그...그래, 그래. 정말 이파리가 네 개가 있구나...네가 이겼다. 나보다 빨리 찾아 냈으니까. 그런데 대체 어디서 그것을 땄니?" 애초에는 장난이었지만 누나가 속고 있다는 것을 알자 내 태도는 달라지고 말았다. 무엇을 훔친 것처럼 가슴이 두근댔다. 속아 넘어 가게 한 것이 기뻐서였을까? 그렇지 않으면 남을 속였다는 가책 때문이었을까. 남이 완전히 믿어만 준다면, 남을 끝내 속일 수만 있다면 이것은 진짜 네 잎의 클로버와 다를 것이 없다. 나는 다시 보다 완벽하고 멋진 모조품들을 만들어 냈다. 속임수도 창조도, 기도도 그것은 다 같이 남의 눈에 뜨이지 않는 자리를 택한다. 착한 일도 악한 일도 그 산실은 남이 보지 않는 어두운 밀실에서 생겨난다. 몰래 뒤돌아 앉아서 그렇게 나는 행복의 클로버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누나는 나의 속임수에 넘어가고 말았다. 마지막엔 잎사귀들을 확인해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얼굴이 핼쑥했던 것을 보면 누나는 몹시 초조했던 모양이다. 그 때까지 끝내 하나도 따지 못했던 것이다. 전나무 가지 사이에서 누렇게 빛나던 선교사 집 양옥의 유리창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가야 할 시간인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다가 누나는 울먹이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너는 나보다 행복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너는 세 개씩이나 가지고 있으니까 그 중에서 하나만 자기에게 달라는 것이었다. 누나네 반 아이들은 모두 네 잎사귀 클로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 개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자기 혼자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오늘은 일부러 숙제도 하지 않고 깜깜할 때까지 네 잎 클로버를 따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네가 졸라서 집으로 가는 것이니 한 개만 달라고 했다. 내가 싫다고 하니까 누나는 꿔 달라고까지 했다. 언젠가 재수 좋은 날 자기도 틀림없이 한 개쯤은 네 잎 클로버를 딸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소중하게 책 갈피 속에 넣어 두었다가 돌려 줄 터이니 그 때까지만 꿔 달라는 것이었다. 누나는 울고 있었다. 분해서 울고 있었다. 비로소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가짜였다고,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는 가짜 네 잎사귀의 클로버였다고...나는 그렇게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 나는 겉으로는 완강히 거절했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내가 딴 그 클로버가 진짜였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를 일이다. 그랬더라면 나는 그 때 모든 것을 누나에게 주었을 것이다. 왜 나는 끝내 진실을 말하지 않았던가? 누나가 너무도 모조 클로버를 진짜라고 믿어 주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누나는 나를 원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는 절대로 행복하게 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슬퍼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누나는 지금도 그 때의 일을 잊지 않고 있다.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었던 모조의 행복, 모조의 클로버. 누나는 전쟁 때 남편을 잃었다. 젊은 나이로 가난하게 그리고 외롭게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쩌다 지금도 내 집에 들리면 그 때의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피아노를 들여왔구나. 어딧제니? ...너는 어려서 네 잎 클로버를 잘 찾아 내더니만... 정말 그래서 잘 사는가 보구나. 그러고서도 욕심은 또 얼마나 대단했니... 글쎄 한 개만 달래는데도 끝내 그 클로버를 움켜쥐고 보여 주지도 않았지... 정말 이상스러운 일이었다. 남들은 누구나 다 찾아 내는 그 네 잎 클로버를 나만 한 개도 찾아 내질 못했으니 말이다. 언제나 뒤늦었어. 남들이 뒤지고 간 뒷자리만 쫓아다녔었어. 그래서 지금도 이렇지 않니..." 나는 말하고 싶었다. 위로를 해 주기보다도 진실을 말해 주고 싶었다. "누님, 이게 어디 행복인가요. 가짜지요. 전부 가짜지요. 그 때 내가 땄다는 클로버도 가짜였어요. 이 피아노도, 번쩍거리는 자개 장롱도, 서재의 이 자개 화병과 그 꽃까지도 모두가 행복의 모조품입니다. 행복의 모조품...모조품은 남이 속아 줄 때만이 진짜처럼 행세할 뿐입니다. 누님, 자기 자신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모조품의 비극입니다. 이것들은 남에게 자신을 행복한 체 보이려고 꾸며 낸 속임수들이지요. 남들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어 주면 자기가 행복한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이 인간들입니다. 누님, 왜 사람들은 큰 대문을 세우고 싶어하는지를 아십니까? 페르시아의 왕처럼 왜 사람들은 자기가 다 소유할 수도 없는 많은 방을 원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아무리 불행한 사람도 여러 사람들 앞에서는 억지로라도 웃는 법입니다. 남들한테 그렇게 보이고 싶은 거예요. 모조품인 줄 알면서도 남에게 들키지 않으면 진짜와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지요. 제 스스로 제 행복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 때의 클로버는 누님! 가짜였어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누나는 내 이야기를 곧이들어 주지 않을 것이다. 자기 행복을 또 나누어 달라고 할까 봐서 공연히 변명을 늘어 놓는 것이라고 오해할는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개 행복의 모조품으로 자신을 속이면서 살아가고 있다. 사실 행복을 느끼는 순간 벌써 우리는 행복 그 밖으로 나가게 된다. 설령 진짜 행복을 고백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언제나 과거형일 경우, 또는 미래형일 경우다. 지금 당장 자기가 행복과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행복은 '내'가 아니라 '나의 대상'이다. 그것은 '앞에' 혹은 '뒤에'있다. 나는 단 하나 행복과 같이 있는 사람, 행복과 손잡고 있는 사람을 알고 있다. 그는 시골의 기독교인이었다. 새벽마다 설화산 둔덕에 있는 황새 바위에 올라 천주께 기도를 드렸다. 예수교를 믿는 사람인데도 마을 사람들은 그를 '산 부처'라고들 했다. 천한 농부의 자식이었지만 얼굴에는 온화한 희열의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그는 늘 아이들과 하께 놀았다. 나는 몇 번인가 그의 등에 업혔던 기억이 있다. 그의 입에서 언제나 샘물처럼 찬송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내가 고향에 들렀을 때는 이미 그는 천치의 불구자가 되어 있었다. 공산군이 이 마을을 휩쓸고 지나갔을 때 그는 예수를 믿는다는 그 이유 하나로 모진 매를 맞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장난으로 시작된 고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신을 믿지 않습니다'라고 한 마디만 말하면 풀어 준다고 했는데 끝내 그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러다가 내리치는 몽둥이에 머리와 중추 신경을 다쳤던 것 같다. 기억 상실증에 걸려 버렸고 전신은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아무것도 이 지상의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만 천주와 함께 살기를 원했던 사람이다. 그들은 그에게서 신을 빼앗아 갔던가? 그럴는지도 모른다. 그는 다 쓰러져 가는 초가의 양지 바른 곳에 쪼그리고 앉아서 세월을 보낸다고 했다. 이제는 청년이 아니라 40 고개를 넘어서고 있었지만 그는 젖먹이 아이처럼 말을 하지도, 알아듣지도 못하게 되고 가끔 또 무슨 생각이 나면 벙실거리며 웃는다는 것이다. 내가 그 집을 찾아갔을 때에도 그는 햇볕이 드는 뜰 아래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 마치 아이들이 뒤를 보는 것 같은 자세를 하고 눈은 어딘가 먼 데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리를 잡힌 베짱이가 방아를 찧듯 머리를 끝없이 끄덕이고 있었다.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그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앉아 있던 자리에 그늘이 지자 짐승처럼 두어 발자국 햇볕이 드는 곳으로 옮겨 앉았다. 그는 온종일 소리 하나 지르지 않고 이렇게 해바라기처럼 햇볕을 따라 옮겨다니는 것이다. 그는 알고 있을까? 지금 그의 아내가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를. 그렇게 효성을 바쳤었던 그의 부모가 모두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을 것인가. 또 그는 알고 있을까, 천주가 있다는 것을...아니, 아니, 저 성서의 말을, 마태 복음 제 5장 5절에 적힌 예수의 말을 기억하고 있을 것인가. 짐승처럼 졸고 있는 이 시골의 기독교도 앞에서 나는 행복을 정의한 성서의 구절을 외어 보았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음이 청결한 자는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그렇다. 그는 의에 주리고 또한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았다. 그런데 그는 행복한가? 과연 천국이 그의 곁에 있는 것일까? 지금 저 희끄무레한 눈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하나님인가? 아니면 텅 빈 하늘인가? 그는 가난하며 애통하며 목마르다 하는 자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조차도 지금 느낄 수가 없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 무서운 고독과 절망과 억울한 그 핍박에 대해서도 아무 원한이 없는 것이다. 백치는 왜 웃는가. 모멸과 고통 속에서도 백치는 어째서 웃는가. 백치는 행복과 같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체 그러한 행복을 누가 원할 것인가. 물론 그것은 정반대로 만들어진 행복의 모조품이다. 사람들은 불구가 된 그 무명의 기독교인이 불행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자신은 자기가 비참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자기가 불행을 의식하지 않는 한 그는 불행하지 않다. 남이 행복하다고 믿어 주는 한,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는 것과는 정반대로...네 잎사귀 클로버는 흔하지 않기 때문에 찾아 내려고 한다. 행복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가 가지려고 애쓰는 것이다. 행복은 순수한 주관 속에서도 살지 않으며 따라서 객관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속되어서도 안 된다. 마테를링크는 아무래도 잘못을 저지른 사람 같다. 행복의 궁전에서도, 미래의 나라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던 파랑새를 자기 집 울타리 새장 속에서 찾아 냈다는 그 이야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 비참해졌던가? '여러분, 그 새를 찾은 사람은 우리에게 돌려 주셔요.'하고 치루치루 소년이 소리치는 데서 "파랑새"의 막은 내린다. 하지만 관객들은 아무리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어도 막이 다시 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 새를 찾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파랑새"의 연극은 다시 계속할 수 없는 까닭이다. 우리는 치루치루에게 돌려 줄 새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마테를링크는 '파랑새란 먼 데 있지 않고 바로 가까운 자기 집 울타리 안에 있다'고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더 근시안적으로 행복을 찾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치루치루와 미치루처럼 긴 환상의 여로를 더듬지 않고서도 개와 고양이와 설탕, 또 빵의 요정 같은 것을 데리고 가지 않더라도 마법의 다이아몬드가 빛나는 초록빛깔의 모자를 쓰지 않고서도 손쉽게 행복은 우리 곁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하여 '행복'이란 말은 '모험'의 뜻을 상실하고 '동경'의 뜻을 상실했고 '영원'의 뜻을 상실했다. 사람들은 가까운 곳의 행복만 찾아다니다가 행복이란 말까지 상실해 버린 것 같다. 보잘것없는 녹슨 새장에 모조품 파랑새를 사육해 가면서 자위하고 있는 거다. 행복의 개념도 나날이 줄어들어서 이젠 연하장 한구석에 깨알만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월급 봉투의 숫자나 또는 출근부에 적힌 이름의 서열, 까 나가는 월부 액수, 때묻어 가는 보험 통장... 이런 것들의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행복의 물거품을--떴다 꺼지는 그 물거품을 바라보고 있다. 멀고 먼 나라, 칼 부세의 '산 너머 마을'보다도 한층 더 멀고 먼 마을에 살고 있을 찬란한, 거대한, 영원한, 그 미지의 행복을 말하는 사람은 아무데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몰의 시각에 실종된 우리들의 행복은 돌아오는 것이다. 비에 젖은 들개처럼 온종일 쓰레기통을 쑤시다가 뱃가죽을 늘어뜨리고 어둠을 질질 끌면서, 그리고 눈곱이 낀 눈을 껌벅거리면서 털 빠진 붉은 잔등이에 희미한 별빛을 받으면서 우리 곁으로 그것은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억지로 찢어 붙인 네 잎사귀 클로버처럼 들킬까 조바심을 내는 모조의 그 클로버처럼... 아니 그렇지 않으면 백치와 같은 표정으로 침을 질질 흘리며 쪼그리고 앉아 있는 무명의 그 시골 기독교인처럼--고개를 끄덕이면서 햇볕을 따라 옮겨다니면서 싱그러운 미소를 짓는 그 시골의 기독교인처럼... 그런 꼴을 하고 행복은 우리들 곁으로 온다. 어느 일몰의 시각에.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셋 - 사랑으로 풀어내는 웃음보따리 특명이다! 밑을 막아라 이종환, 최유라씨! 안녕하세요? 이렇게 지면으로나마 인사드리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언제나 소박한 일상의 얘기로 전 국민의 웃음을 책임지시는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만약 두 분이 저희 지역구에 출마하신다면 웃음이 묻어나는 새로운 정치 구현을 위해 소중한 저의 한 표를 이행할 것입니다. 저는 서른 네살의 주부로서 사랑스런 일곱 살박이 아들과 바로 이 얘기의 주인공인 동갑내기 남편과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 우선, 그이의 특이한 체질을 소개해야겠네요. 덩치는 김국진, 식성은 강호동 즉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않는 희귀한 체질입니다. 저희가 결혼한 지 1년이 조금 넘었을때, 그이는 스물 여덟이라는 나이에 군대를 가야만 했습니다. 아직 신혼이던 그 당시, 3년이라는 긴 시간의 이별을 결코 받아들일수 없었습니다. 고민 고민 끝에 그이는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육군학사 장교를 지원하였고, 장교의 자격 요건을 판정키 위한 신체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그런데 문제는 몸무게였습니다. 장교가 되기 위한 Cut-Line은 54kg, 그이의 몸무게는 48kg. “우째 이런일이-!!” 신체검사 일을 겨우 한 달 남겨둔 시점에서 무려 6kg의 체중을 늘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저는 무지하게 먹였고, 그이는 무지하게 먹었습니다. 한끼에 밥 2그릇과 고기 1접시씩, 하루에 5끼. 간식으로 아이스크림 큰 것 1통, 초코릿 1박스. 그 외에도 살이 찔 만한 음식은 무조건 먹였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그이의 체중이 저녁이면 1kg정도 늘었다가 다음날 아침 응아를 하고 나면 도로 원상태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이의 신기한 소화기관은 먹는 모든 것을 응아로 생성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이의 체중은 응아의 무게만큼 늘었다줄었다 하는 것이죠. 그러기를 20여일, 그이의 몸무게는 겨우 2kg이 늘어난 50kg이 되었습니다. 신체검사는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늘려야 할 몸무게는 4kg. 절망적인 그 순간에 저는 비장한 결심을 하였습니다. 몸무게를 늘리는 것은 살만이 아니다! 부족한 4kg을 응아로 채우자! 그이는 다음과 같은 행동강령 아래 남은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첫째, 눈으로 밥풀이 튀어나올 때까지 먹는다. 둘째, 국물은 뽑되 건더기는 절대 뽑지 않는다. 셋째, 체중이 소모될 만한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특히 밤엔 딴짓 않고 잠만 잔다. 밑빠진 독에 밑을 막은 채 저는 그이의 예술품을 계속 만들어갔고, 그이가 뿜어대는 예술의 향기는 하루가 다르게 독해져 갔습니다. 저는 그이의 그 향기를 맡으며 먼저 것이 석나 보다 라고 태연히 여겼으며 오히려 제 노력에 대한 보람으로 느꼈답니다. 드디어 신체검사 당일 아침. 아침 밥을 잔뜩 먹은 그이의 몸무게는 52.5kg 이미 그이의 대장, 아니 소장까지도 거시기로 가득 찼을 텐데, 무슨 수로 1.5kg을 채우나 그래 기왕에 채우기 시작했으니, 위장, 십이지장, 맹장, 식도에 오줌보까지 꽉꽉 눌러 채우는 거야! 급기야 저는 이런 엄청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이와 함께 타고 갈 승용차에 바나나 8개와 물이 가득 찬 한 말짜리 석유통을 싣고 신체검사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입장 15분 전, 그이는 물과 바나나를 정신없이 먹었고, 승용차 안의 그런 진풍경을 구경하게 된 행인들은 우리를 마치 외계인 보듯 하였습니다. 물 반통과 바나나 8개를 먹은 그이는 목구멍까지 바나나 주스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누렇게 뜬 얼굴로 엉거주춤하게 걸어가던 그이는 화이팅이라는 한마디를 남긴 채 결전의 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앞뒤로 밀려나오려는 고통을 겨우겨우 견뎌내며 입장한 그이에겐 또 하나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군대는 줄을 잘 서야 한다 라는 말 아시죠? 불쌍한 그이는 몸무게를 맨 마지막으로 측정하는 지옥의 줄에 섰답니다. 그 사실을 안 순간, 그이는 재빨리 줄을 바꾸려 했으나 야속한 통제 요원들이 허락지 않았습니다. 속사정을 설명할 수도 없는 딱한 처지의 그이는 양손으로 거시기의 두 출구를 꼭 부여잡은 채 한 시간이 넘도록 기다렸답니다. 이종환, 최유라씨! 그이의 고통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고통으로 흘린 식은땀을 뒤집어쓴 채 체중계에 올라섰고, 그이는 54.5kg이라는 훌륭한 신기록으로 악몽의 관문을 통과하였답니다. 장하다 내 남편. 위대하다 내 남편. 체중 측정이 끝나자마자 그이는 화장실로 달려갔고, 다리가 저리도록 그곳에서 나오지 못했다는군요. 그해 7월, 그이는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입관하였고, 3년 뒤 중위로 무사히 전역하였습니다. 그 일이 있은뒤, 그이는 제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참기 힘든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고, 그 다음은 그 무지막지한 자연의 힘을 막고 버티는 것”이라고.
Board 삶 속 글 2023.03.09 風文 R 558
삼십육계주위상계(三十六計走爲上計) 十:열 십. 六:여섯 륙. 計:꾀할 계. 走:달아날 주. 爲:할 위. 上:위 상. [유사어] 주여도반(走與?飯). [출전]《資治通鑑》〈卷百四一〉,《齊書》〈王敬則專〉 서른 여섯 가지 계책 중에서 피하는 것이 제일 좋은 계책이란 뜻으로, 일의 형편이 불리할 때는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 남북조 시대, 제(齊:南齊, 479~502)나라 5대 황제인 명제(明帝) 소도성(蕭道成)의 종질(從姪:사촌 형제의 아들)로서 고제의 증손(曾孫)인 3대/4대 황제를 차례로 시해하고 제위를 찬탈(簒奪)한 황제이다. 그는 즉위 후에도 고제의 직손(直孫)들은 물론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은 가차없이 잡아 죽였다. 이처럼 피의 숙청이 계속되자 고조 이후의 옛 신하들은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개국 공신인 회계(會稽) 태수 왕경측(王敬則)의 불안은 날로 심해졌다. 불안하기는 명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대부 장괴(張壞)를 평동(平東)장군에 임명하여 회계와 인접한 오군(五郡:강소성 내)으로 파견했다. 그러자 왕경측은 1만여 군사를 이끌고 도읍 건강(建康:南京)을 향해 진군하여 불과 10여 일 만에 건강과 가까운 흥성성(興盛城)을 점령했다. 도주에 농민들이 가세함에 따라 병력도 10여 만으로 늘어났다. 한편 병석의 명제를 대신하여 국정을 돌보던 태자 소보권(蕭寶卷)은 패전 보고서를 받자 피난 준비를 서둘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왕경측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단장군(檀將軍)의 ‘서른 여섯 가지 계책 중 도망가는 것이 제일 좋은 계책[三十六計走爲上計]’이었다고 하더라. 이제 너희 부자(父子)에게 남은 건 도망가는 길밖에 없느니라.” 이 말은 ‘단장군이 위(魏:北魏)나라 군사와 싸울 때 도망친 것을 비방한 것이다’라고 주석을 붙인 책도 있다. 그 후 관군에게 포위 당한 왕경측은 난전중(亂戰中)에게 목이 잘려 죽었다. [주] 단장군 : 송(宋:420~479)나라 무제(武帝:420~422)의 건국(建國)을 도운 명장 단도제(檀道濟)를 가리킴.
Board 고사성어 2023.03.09 風文 R 838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셋 - 사랑으로 풀어내는 웃음보따리 책상을 지켜라 - 이현지(여.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진입에 실패하고 외곽에서만 7년째 돌고 있는 30대 주부입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건만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대단한 기업에서 10년째 근무하고 있는 남편의 엄청난 월급만으로는 서울 진입은 커녕 제 드레스비도 안나오는 것 같아 몇 푼이라도 보태볼 요량으로 조무래기들도 가르쳐보고, 조그만 사무실에서 잡일도 해봤는데, 점심값 내고, 파마하고, 스타킹 사신고, 가끔 보건복지부에 좀 내고, 교통부에 보태고 하고 나니 남는게 없더라구요. 이럴바엔 부족하지만 남편 월급만으로 알뜰살뜰 쪼개서 꾸려보는 게 현명하겠다는 생각읗 했습니다. 매달 25일이면 꼬박꼬박 월급봉투 가져다 주는 남편이 내심 든든했습니다. 사업하는 남편을 둔 친구들의 피를 말리는 궁핍을 지켜보면서 '내가 뽑긴 잘 뽑았지! 다달이 쥐꼬리만큼이라도 받아오는 게 어디야?' 고맙고 대견했죠.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 신문이나 드라마에서만 듣던 명퇴나 조퇴의 바람이 남편의 회사에도 불기 시작했다는 비보를 접한 건 작년말, 몹시도 춥고 바람이 사납게 불던 어느 날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7시면 '땡'하던 사람이 20분이 지나서야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내 기다리지 마라." "언제까지." "정년퇴직 때까지." "그렇게 오래?" "오늘 김차장 보따리 쌓다 아이가. 명퇴국 묵었다." 명퇴국! 순간! 바람을 등진 채 절벽 끝으로 내몰린 듯 명치끝이 시리고 다리가 떨려왔습니다. 아침에 골목 끝에 세워져 있던 버려진 군고구마통이랑 시장통 어귀에서 풀빵굽던 지치고 초라한 아낙네의 뒷모습이 퍼뜩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우짜노, 우짜노. 자기 회사는 괜찮다고 안했나?" "기습당했다. 이게 폭탄이라 카믄 내도 쓸리갔다 아이가. 김차장은 바로 내 뒷자린데... 아이구 무시라. 나쁜 놈들이 그새 책상까지 다 치웠다 아이가. 니 각오 단디 하그라. 내는 절대 못 나간다. 여기서 묵고 자고 해서러도 내 자리 지켜야 안되겠나." 언제는 자기가 차세대 주자며, 본부장의 오른팔이며, 팀 내의 아이디어 뱅크에 떠오르는 전설이라더니... 해서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가 물밀듯 들어와 본부장이 긴장한다는 둥, 자기 없으면 회사는 셔터 내린다는 둥, 여차하면 사표 던지고 나온다는 둥, 큰소리칠 때는 언제고 지금은 잘난 책상 하나 지키자고 저렇게 목숨거나 싶어 무지 실망스럽더라구요. '주변머리 없는 인간, 그래도 회사에서는 인정받는구나 싶어 든든했는데... 믿었던 내가 나쁘지... "그래 자기야, 집은 걱정마그라. 무슨 일이 있어도 틈을 보이면 안된데이." 잘난 남편이 직장에서 떨려 나왔을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저는 몹시 붕안했습니다.1 그리 똑똑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혹은 물려받을 재산도 없고, 벌어논 돈도 없고, 누구처럼 처가가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건강하기나 해? 위장병에, 편도선염에, 축농증에, 꽃가루 알레르게에 치질까지... 밝혀낸 것만 해도 종합병원 수준인데. 성격이나 좋아? 7남매 막내라 독선적이고 이기적인데다 고집은 얼마나 쎄? '아부'절대 못하잖아? 아무리 생각 해도 그이의 퇴직은 곧 저의 불행이자 재난이었습니다. 건강하고 성격좋은 제가 바로 군고구마통 끌고 나가거나 모래등짐이라도 날라야 할 판이라구요? 7년이나 살았으니 물릴 수 도 없고. 지캉 살다보면 드레스 입고 파티에 참석할 날도 있을 거라며, 봄이면 필드에서, 여름이면 해변에서, 가을이면 별장에서, 겨울이면 스키장에서 벽난로에 장작불 '따닥따닥' 치워가며 인생 즐길 날 있을 거라더니 벽난로에 장작불은 커녕 장작불 때서 군고구마 굽게 되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어요. 10시가 넘어서야 기진맥진해서 돌아온 남편은 힘 없이 제 품에 쓰러지며 "자기야, 내는 자기만 믿는데이..." 이러는 겁니다. 머리에서 김나데요. 뭐시라, 내만 믿는다고? 자기만 믿으라고 큰소리칠 때는 언제고, 자기만 믿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그럴 땐 언제고. 먹을 거 안 먹고, 입을 거 안 입고, 3년이나 부은 내 적금! 내 피 같은 700만원 해약해서 가져가더니 그게 우째 됐노? 떡은 커녕 고물도 없더라. 내 말대로 튼튼건설이나 양심상사에 넣었으면 이자돈은 벌었지. '한보'는 와 사노? 와 사? 자기만 믿고 떡 700만원어치 잘 묵었다. 뭐? 내만 믿는다꼬? 툭하면 '니가 뭐 아노?' '니가 뭘 안다고 나서노?' '니 그래 잘 아나? 그라믄 니가 남편 하거라.' 요러더니 바등에 불 떨어지니까 내만 믿는다꼬? 어림없다. 당장 나가서 돈 벌어 오거라 마!' 하고 등 떼밀어 내 쫓고 싶은 마은 굴뚝 같은 걸 수양한다 생각하고 침 한번 '꿀꺽' 삼킨 후 말했습니다. "그래. 자기야 내만 믿어라." 그리고 등 두들겨 재웠습니다. 그날따라 다리도 못 뻗고 옆으로 잔뜩 오그린 채 새우잠을 자는 남편을 보며 측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도 구슬픈 가락으로 힘없이 골더군요. 드디어 아침이 어김없이 밝아오고 저희는 머리를 맞대고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첫째, 절대 책상은 고수한다. 둘째,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한다. 셋째, 되도록 윗사람 눈에 뜨이지 말되 사적인 자리에서는 손이 발이 되도록 아부한다. ... 등등. 일단 마음을 정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담담하고 당당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책상 뺏어가도 문제없어. 내 뒤에 소파 있어." 엊그재까지만 해도 꽁지 내리고 제 품에 쓰러지더니 하룻새 용기백배한 남편은 보무도 당당하게 새벽길을 달려나갔습니다. '불쌍한 인간, 빽도 줄도 없이 몸으로 막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구나.' 이런 남편이라 생각하니 가슴 시리게 측은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다면 한다는 거 아닙니까. 힘으로 버티겠다는데 누가 건드리겠습니까? 그날부터 남편은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서 책상 앞에 앉았으며, 본부장, 전무, 이사, 팀장까지 다 퇴근하고 야근하는 직원들까지도 다 나가야 비로소 안심하고 책상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점심시간엔 도시락 시켜먹구요. 틈을 보이면 안되니까요. 위에서 보기에도 열심히 일하는 것 같잖아요. 어쩌다 외출할 일이 생기면 차마 발길이 안 떨어져서 저만치 가다 돌아보고 또 저만치 가다 돌아보고... 거래처 가서도 10분마다 전화를 한대요. "나 금방 들어갈 거다." "나 지금 출발한다." "나 거의 다 왔다." 하루는 예기치 않은 접촉사고로 출근시간에 10분 늦게 도착하게 됐더래요. 현관에서 3층 사무실까지 뛰어 올라가는데 불과 2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머리끝이 서고 등에서 땀이 나더래요. 사무실 문을 벌컥 여는 순간 햇살 한점 들어오지 않는 구석진 자리에서 초라하게 웅크리고 있는 남편의 책상이 눈에 들어오더래요. 그 감격이란! 잃었던 자식을 찾은 양 책상에 볼을 비비며 가슴으로 울었대요. 그 광경을 보고 실장님이 그러셨더래요. "은행나무 침대가 따로 없구마!" 그러던 중 또 한명의 조퇴자가 발생했습니다. 사장으로부터 '친전' 이라고 뻘건 도장이 찍힌 편지가 조부장 앞으로 날아들었던 겁니다. 속칭 그네들끼리 통하는 '폭탄' 이었습니다. 생각없이 봉투를 연 조부장은 '찍' 외마디 비명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이틀 후였어요. 나른한 오후를 가르고 전화벨이 짜증스레 울렸습니다. 왠지 불길한 예감에 손이 떨렸습니다. "여보세..." 전화를 받고 제가 미처 '요!' 도 끝나기 전에 "자, 자, 자, 자기야, 와, 와, 와 왔다..." 울음섞인 남편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오긴 뭐가 왔다고?" "치, 치, 친전... 내만 받은 거 아이다. 김과장, 오과장, 정차장도 받았다." "그 사람들도 뜯어봤대?" "정차장만! 쫙 찢어서 쓰레기통에 내삐리고 담배 한 대 빼서 밖에 나갔다. 마음 정리하고 있지 싶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싶어 막막하다면서도 후련한 감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자기야, 낙심 말거라. 이게 제 2의 기회가 될지 누가 아노? 오히려 잘됐다. 자기도 확 찢어서 내버리고 온나. 소주 한 잔 하자." 대답도 없이 수화기 저쪽에선 '니가 뜯어라, 내가 뜯는다.' 웅성웅성 소란한 소리가 나더니 남편은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충격받고 쓰러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1시간 후 제가 전화를 걸었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남편의 목소리는 침착했습니다. "자기 괜찮아?" "괜찮지 그럼 뭐..." "뜯어 봤어?" "별거 아니다." "뭐라고 쓰여 있는데?" "뭐. 별로..." "뭔데?" "아! 그냥 뭐... 보... 보름달싸롱에서... 내부수리 끝났다고..." 저! 그냥 뚜껑 열렸습니다. 남편은 소파를 점거당하는 줄 알고 불안해 했지만 그는 오히려 웃으며 떠났습니다. 모두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채. "지는 벌써 맘 묵고 있었더라. 사업을 할랑께요. 마누라가 미장원 하믄서 좀 모아논 게 있었더라." 그날부터 저에게도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저랑 눈만 마주치면 한숨을 들익쉬고 내쉬고... 바늘 방석이 따로 없었어요. 분위기 좀 역전시켜보려고 "자기 말대로 괜히 여자가 몇 푼 벌어볼려고 나서면 집안 꼴이 어수선해지고, 이 불경기가 쪽박차기 딱이지뭐. 남편 기만 죽이고 그지?" 그러자 남편은 저를 빤히 보더니 말했습니다. "남편 기 안죽더라. 이대리 봐. 기고만장하던데 뭐. 보따리 싸서 집에 들어가자마자 마누라가 통장 두 개를 '척' 내놓으면서 '당신 하고 싶은 거 하이소.' 하더래잖아. 되는 집안이지. 영업부 임과장 알지? 마누라 보험회사 다니잖아. 1년 좀 넘었는데 보수가 임과장보다 훨씬 많대지 아마. 그자식은 요즘 배짱이잖아. 오늘 전무실에 고개 바짝 들고 들어가더라니까. 뭘 믿고 그러는지..." “당신은 그게 그리 부럽나?” “부럽기는 나 그런 놈 아니야, 마누라 덕보고 살 놈으로 보여? 나 절대 그런 놈 아냐!” “그래 자기야, 돈 한 푼 안 벌어와도 살림 잘하고 건강하면 그게 버는 버는 거야. 아직 젊은데 뭐.“ 그러나 남편은 제 말을 듣는지 마는지 신문만 신경질적으로 뒤적거리더니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봐라! 여기 구민회관에서 실비로 도배기술 가르쳐 준단다. 아이구! 취업 알선까지. 부업으로 하면 짭짤하겠다. 이런! 남자면 내가 가겠구만 주부대상이라네, 의욕있고 건강한 주부들만 모신단다.” 치사하고 더러워서 구민회관도 찾아갔지요. 영세민 우선이라 자격 미달이었어요. 남편의 노이로제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동문선배라고 호형호제하며 따르던 박차장마저 회사를 떠나자 의지할 데 없는 남편은 개발부 김차장처럼 6년 전 창립기념일에 받은 우수사원 표창장을 복사해서 책상 밑에 끼워두겠다고 우겼습니다. “사장 표창장 붙은 책상을 어느 놈이 치우겠어?” 그런데 옆자리의 오과장은 책상보다 명패에 신경을 더 많이 쓰는 모양이었습니다. 각자의 책상위엔 부서명과 직함 그리고 이름이 새겨진 명패가 올려져 있는데, 부서와 직함은 고정돼 있지만 이름은 카드처럼 끼웠다 뺐다 할 수 있게 돼 있대요. 사장과 사돈의 팔촌의 이웃사촌인 오과장도 내심 불안했던지 퇴근할 때면 명패를 캐비닛 위 저 높은 곳에 까치발로 올려놓고 가면서 말한답니다. “명패만 있으면, 내는 소파에 앉아도 떳떳해!” 덩치 큰 책상보다 관리하기 쉬운 명패를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죠. 그러나 히트는 엉뚱하고 순진하기로 유명한 김대리였습니다. 명패에다 아예 이름카드를 절대 못 빼게 종이를 꾸겨서 열심히 끼워 넣고 있었대요. 옆에서 실장님이 지켜보는 줄도 모르고서. “봐라, 김대리! 니는 평생 대리로 있을끼가? 과장 시키줄라 했더니 안되겠구마.” “실장님, 지는 진급 안 해도 되는구만요. 만년 대리라도 월급만 매달 주면 되지라. 어제 20년 만기적금 넣었응게 적금 탈 때까지 버텨야지라.” 그럭저럭 한달이 지나 고맙게도 월급을 타게 되었습니다. 봉투를 내밀면서 남편은 말했습니다. “내 피와 땀이다. 한 푼 쓸때마다 내 살 뜯어간다 생각하고 애끼쓰거라.” 지난달과 달리 봉투가 좀더 두툼해진 것 같아 세어보니, 야근수당이 꽤 붙어 있었습니다. “자기야, 이러면 안되지, 화를 자초하는 거다.” “왜?” “안그래도 회사에거 경비절감한다고 책상들 빼가는데, 자기는 거기다 수당까지 받아가니 위에서 알아봐라. 감원대상 0순위다.” 준비상사태였습니다. 해서 그 다음날부터는 나의 야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마라. 일명 이순신 작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성공적이었습니다. 평소 나는 야근이 싫어요. 라고 외치고 다녀 이승복으로 통하던 남편이 매일같이 야근을 하는데다 수당을 신청하지 않으니 주위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쯧쯧...! 사람 하나 버렸어.” “돈도 싫고 인간도 싫대.” “집에서 쫓겨났잖아.” 등등 별의별 루머가 돌았지만 남편은 끄떡 없었습니다. 대쪽같고 무뚝뚝하던 남편은 명퇴의 위기 앞에서 얼굴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부장님에게 결재판으로 뒤통수를 얻어맞아도 눈 한 번 꼴시는 일이 없이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남편은 이런 마음으로 읏으며 물러나와 영광스럽게도 전무님과 식사라고 함께 할라치면 옆에 앉아서 젓가락까지 숟가락 옆에 놓아주고, 물수건은 오른쪽에, 생선토막은 밥그릇 앞에 당겨드리고, 고기는 타지 않게 잘 뒤적여 앞에다 쌓아드리고..등등 그러나 결정적인 아부의 극치는 여기 또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100% 미국산 면행주를 들었다 놨다 눈독을 들이기 시작하길래 연유를 물어보니, 전무님이 난을 애지중지하시는데, 잎이라도 닦아드리는게 도리 아니겠냐고... 집안의 유일한 녹색식물인 행운목 수반에 담배꽁초 끄는 사람이 그렇게 얘기하더군요. 아부도 이쯤되면 질환의 경지에 온 게 아닌가 해서 요즘은 잠이 오지 않습니다. 차라리 군고구마통 끄는 게 마음 편할 거 같기도 하고... 혹시 MBC앞에 목 좋은 자리라도 있으면 연락 주세요. 지루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Board 삶 속 글 2023.03.08 風文 R 683
삼년불비우불명 (三年不飛又不鳴) 三:석 삼. 年:해 년. 不:아니 불. 飛:날 비. 又:또 우. 鳴:울 명. [원말] 삼년불비 우불명(三年不飛又不鳴). [동의어] 삼년불비불명(三年不飛不鳴). [유사어] 자복(雌伏). [출전]《呂氏春秋》〈審應覽〉,《史記》〈滑稽列傳〉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훗날 웅비(雄飛)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음을 이르는 말. 춘추시대 초엽, 오패의 한 사람으로 꼽혔던 초(楚)나라 장왕(莊王:B.C. 613~591)이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장왕은 신하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선언했다. “앞으로, 과인을 간하는 자는 사형(死刑)에 처할 것이오.” 그 후 장왕은 3년간에 걸쳐 국정은 돌보지 않은 채 주색(酒色)으로 나날을 보냈다. 이를 보다 못한 충신 오거(五擧)는 죽음을 각오하고 간언(諫言)할 결심을 했다. 그러나 차마 직간(直諫)할 수가 없어 수수께끼로써 우회적으로 간하기로 했다. “전하, 신이 수수께끼를 하나 내볼까 하나이다.” “어서 내보내시오.” “언덕 위에 큰 새가 한 마리 있사온데, 이 새는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사옵니다[三年不飛又不鳴].’ 대체 이 새는 무슨 새이겠나이까?” 장왕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3년이나 날지 않았지만 한번 날면 하늘에 오를 것이오. 또 3년이나 울지 않았지만 한번 울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오. 이제 그대의 뜻을 알았으니 그만 물러가시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났으나 장왕의 난행(亂行)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대부 소종(蘇從)이 죽음을 각오하고 이전에 나아가 직간했다. 그러자 장왕은 꾸짖듯이 말했다. “경(卿)은 포고문도 못 보았소?” “예, 보았나이다. 하오나 신은 전하께서오서 국정에 전념해 주신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알았소. 물러가시오.” 장왕은 그날부터 주색을 멀리하고 국정에 전념했다. 3년 동안 장왕이 주색을 가까이했던 것은 충신과 간신을 선별하기 위한 사전 공작이었다. 장왕은 국정에 임하자마자 간신을 비롯한 부정 부패 관리 등 수백 명에 이르는 반윤리적 공직자를 주살(誅殺)하고 수백 명의 충신을 등용했다. 그리고 오거와 소종에게 정치를 맡겨 어지러웠던 나라가 바로잡히자 백성들은 장왕의 멋진 재기를 크게 기뻐했다.
Board 고사성어 2023.03.08 風文 R 1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