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뒷집의 빠른 놈(?) - 윤일형(남.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천사의 말이라도 사랑이 없으면 한낱 꽹가리 소리에 지나지 않고, 그다지 향기롭지 못한 덩(?) 이야기라도 예술적으로 승화되면 함박꽃보다 더 환한 웃음꽃으로 핀다.' 물론 덩(?)이 예술적으로 승화될지는 미지수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직원이 고작 스무 명 남짓한 조그마한 회사에 디니고 있을 때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일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아주머니들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총각이 하나 있었으니 봉고차 기사인 바로 나. 또한 거기엔 아가씨까지 하나 있었으니 경리 일을 보는 문제의 그녀. 그녀는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춘향이와 잘 아는 사이이거나 아니면 양귀비를 하녀로 부리는 사람인 줄로 알았으니까요. 저 또한 미남 그 자체였구요. 물론 남들은 한사코 인정하지 않지만. 아가씨 하나에 총각 하나. 무언가 역사가 이루어질 것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그녀의 콧대는 그 미모만큼이나 도도하고 높았습니다. 그녀에게 제 마음을 전하려 할 때면 그녀는 여지없이 콧방귀로 저의 자존심을 어두운 구석으로 날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전 이렇듯 매번 구겨지는 자존심을 추스르다 보니 차츰 제 마음도 그녀에게서 멀어지고 오히려 미운 감정만 쌓여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기회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우습고 창피하고 또 엉뚱한... 그러나 알고 보니 그 것이 기회였습니다. 이야기에 앞서 저의 두 가지 특이한 버릇이랄까 습성에 대해 소개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그것은 아무도 못말리는 건망증과 또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뒷집(?)에서 빠른 놈(?)을 만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뒷집은 다 아시리라 믿고 빠른 놈에 대해 잠시 설명드리겠습니다. 본디 '덩'이라는 것이 성질이 제각각이라 무겁고 신중하게 내리 누르는 놈들이 있는 반면, 칼루이스처럼 빠른 속도로 내리 꽂히려는 놈들이 있습니다. 술마시고 탈날때 내려오는 놈들이 바로 빠른 놈들입니다. 운명의 그날 저는 거래처에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뱃속에서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간간이 들리더니 갑자기 엉덩이 쪽에서 빠른 놈이 출발 준비를 끝냈다는 신호가 왔습니다.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구야, 이러면 안 되는데. 회사에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이걸 어째. 회사까지 그냥 가? 아니야 이 놈은 보통 놈이 아닌 것 같아. 중간에 적당한 데 들러서 해결하는게 좋겠어. 이건 인간으로서 참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야. 어디 보자. 저 건물에는 화장실이 있겠다. 옳지, 여기다 주차해 놓고 으으- 차에서 내리는 것은 일단 성공. 이거 걷는 것도 어렵네. 그렇다면 팽귄같이 살살 걸어가 볼까. 혹시 문이라도 잠겨 있으면 안되는데. 어디 보자. 어라 잠겼네. 우리나라 이거 문제 있어. 살다보면 나처럼 급한 일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잠가 놓으면 어떻게 하란 말이야. 다른 데로 가 보자. 저 건물은 왠지 안 잠겨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옳지, 여기는 안 잠겼군. 화장실 같아 보이지? 계단! 계단은 한 손으로 난간을 꽉 붙잡고 하체 쪽은 힘을 빼고 이러-케. 한 칸 성공. 또오 한 칸. 또오오 한 칸. 또오오오... 휴-. 땀이 비오듯 쏟아지누만. 세상에 계단에서 사우나 한다는 건 보다 듣다 처음이네. 이제 마지막 계단이지! 화장실이 바로 저긴데 예서 멈출 수 있나, 마지마악- 한 칸. 다 올라왔어. 삐그덕 문을 열고... '아이쿠 이런 하느님 맙소사. 창고잖아.' 아아! 더 이상은 못 참겠다. 미칠 것 같아. 이 일을 어쩐다. 기왕 들어왔으니 한층 더 올라가? 아니야. 계단은 빠른 놈에게 아주 치명적이야.내려가는 게 좋겠어. 후- 후- 후- 이제 내려가는 것도 만만치가 않네. 오- 빠른 놈이여. 아니 빠른 님이여,빠른 분이시여, 세상 구경이 그렇게도 하고 싶으시나이까? 제발 조금만 참아 주소서. 아이고 하느님 저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저는 천천히 운전해야 했읍니다. 차가 갑자기 덜컹거리면 빠른 놈이 주인도 모르는 사이에 난감한 사건을 터트릴런지 모르거든요. 가까스로 회사에 도착한 저는 화장실 앞에까지 차를 몰고 갔습니다. 뒷집들어가 앉자마자 시동도 걸지 않았는데 오토바이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힘을 줘도 오토바이는 쌩쌩 달렸고 기분은 날아갈 것처럼 좋았습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오토바이를 다 타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화장지를 들고 오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우째 이런 일이. 뭘로 해결한다. 그래 재활용이라는 게 있지. 어디 쓸만한 것이... 짜식들 좀 여유있게 쓰지 이게 뭐야. 순간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침에 옆칸에 들렀을 때 프로 야구 해태 타이거즈의 김 아무개 선수가 방망이를 들고 환하게 웃는 사진이 실린 스포츠 신문이 생각났던겁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사방은 조용했습니다. 일이 아직은 완전히 끝난 상태가 아니었으므로 엉거주춤한 자세로 옆칸으로 갔습니다. 김 아무개 선수는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음, 그런대로 쓸만 하겠어.' 신문을 집어들고 다시 처음에 일보던 칸으로 돌아서는 순간! 아뿔사, 이게 웬일인가! 그녀가 정면으로 들이닥친 것이었습니다. 순간 그녀는 이게 무슨 일인가 멍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더니 이윽고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습니다. "으아악-." 으이구. 이게 뭣 놈의 댄스(Dance)여. 엉거주춤도 무슨 춤이라고 추고 있는 것이여, 시방. 그때 제가 왜 처음 일보던 칸으로 돌아가려 했을까요? 까닭모를 일종의 동물적 회귀 본능이거나 아니면 제 것에 대한 본능적 애착일까요? 한마디로 정신없는 놈의 정신없는 짓이었습니다. 그후 그녀는 저를 보면 피식피식 웃거나, 무언가 못 볼 것까지 보았다는 듯 얼굴을 붉히거나, 혹은 손가락을 머리 근처에서 빙빙 돌려가며 미친놈 아니냐는 시늉을 하기도 했습니다. 일이 이것으로 끝났으면 저만 창피당하고 끝났을 일이지만 또 한번의 엉뚱한 사건이 저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신은 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날도 역시 거래처에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다시는 그런 수모를 당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저였기에 전날 회식자리에서 조금은 술을 자제했습니다. 그래도 주거니 받거니 했던 술이 과했던 탓인지 자꾸 엉덩이 쪽으로 신호가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무지막지한 놈은 아니었습니다. 차가 덜컹거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정도에서 회사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으니까요. 화장지도 잘 챙겼구요. 예전 같지 않게 정신도 말짱했죠. 전 천천히 화장실로 걸어 들어가 노크를 했습니다. "똑, 똑." "네, 들어오세요." 그녀의 목소리였습니다. 저는 아주 당당히 문을 열었습니다. 또 정신이 나간 겁니다. 그녀는 예전보다 눈이 더 둥그래지더군요. 그래도 저는 아무 생각없이 그녀 앞에 아주 태연히 서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그녀가 발딱 일어서 문을 쾅 닫았죠. 쾅 소리를 듣고 나서야 실성한 사람처럼 비실비실 웃음을 흘리며 옆칸으로 갔습니다. '오! 주여 감사합니다.' 저는 그 문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여자 엉덩이가 조그만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엄청 뚱뚱했습니다. 옆칸으로 들어간 저는 실실 웃어가며 오토바이를 사정없이 몰았습니다. 오토바이의 요란한 폭발음을 내며 예전보다 더 신나게 달렸습니다. 그런데-! 옆칸에서 그녀가 저보다 더 크고 요란한 속도로 오토바이를 모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고상하고 도도하고 콧대 높은 여자가 오토바이를 저렇게 인정사정 없이 몰다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푸하하하하하하." 저의 웃음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푸하하하하하하-." 한참 웃고 있는데 옆칸에서 그녀가 빽하니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만 해요" "그만 하라니까요." "자꾸 웃음이 나오는 걸 어떡해요." "창피하게시리 그만 해요." "좋아, 그만 하는 대신 나하고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지요?" "알았어요." "영화도 같이 볼 수 있지요?" "야! 이 야만인아." "내 입은 그렇게 무거운 편이 못 되는데요?" "좋아, 알았어요." "드라이브는?" "알았다니까요." 우리는 뒷집에서 서로에게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화장지 챙기는 걸 잊어버리듯, 그녀도 급하면 문고리 잠그는 걸 잊어버리는 건 물론이거니와 아무데서나 사무실로 착각해서 '네, 들어오세요.'라고 말하는 건망증이 닮았고, 또 과음한 다음날이면 둘 다 오토바이를 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후 우리는 아주 좋은(?)사이가 되었습니다.
Board 삶 속 글 2023.02.15 風文 R 429
사족(蛇足) 蛇:뱀 사. 足:발 족. [원말] 화사첨족(畵蛇添足). [출전]《戰國策》〈齊策〉,《史記》〈楚世家〉 뱀의 발. 곧 ① 쓸데없는 것. 무용지물(無用之物)의 비유. ② 있는 것보다 없는 편이 더 나음의 비유. ③ 공연히 쓸데없는 군일을 하다가 실패함의 비유. 전국 시대인 초(楚)나라 회왕(懷王) 때의 이야기이다. 어떤 인색한 사람이 제사를 지낸 뒤 여러 하인들 앞에 술 한 잔을 내놓으면서 나누어 마시라고 했다. 그러자 한 하인이 이런 제안을 했다. “여러 사람이 나누어 마신다면 간에 기별도 안 갈 테니, 땅바닥에 뱀을 제일 먼저 그리는 사람이 혼자 다 마시기로 하는 게 어떻겠나?” “그렇게 하세.” 하인들은 모두 찬성하고 제각기 땅바닥에 뱀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뱀을 다 그린 한 하인이 술잔을 집어들고 말했다. “이 술은 내가 마시게 됐네. 어떤가, 멋진 뱀이지? 발도 있고.” 그때 막 뱀을 그린 다른 하인이 재빨리 그 술잔을 빼앗아 단숨에 마셔 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발 달린 뱀이 어디 있나!” 술잔을 빼앗긴 하인은 공연히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후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주] ‘사족’은 제(齊)나라를 방문한 진(秦)나라의 사신 진진(陳軫)이 제나라 민왕의 요청으로, 초나라 재상 소양(昭陽)을 만나 제나라에 대한 공격 계획을 철회하라고 설득할 때 인용한 이야기임.
Board 고사성어 2023.02.15 風文 R 891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그래, 나는 초보다 - 이순연(여. 대전시 대덕구 법2동)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의 일입니다. 운전면허증이 뭔지... 일상생활의 필수라는 둥, 지금 안따면 어렵다는 둥, 온갖 이유를 대며 법석을 떨었다는 거 아닙니까. 다리도 짧고 뱃살이 많아 운전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비아냥거리는 남편에게 보란 듯이 낙동강 오리알을 거듭, 또한 여덟번 만에 눈물어린 면허증을 저의 패스포드에 끼워 넣었지요. 그 날의 감격은 팔일오 광복절을 압도하고도 남았습니다. "흥, 주민등록증 한 개 더 만들고 뭘 그리 좋아하고 그래." 남편의 말이 김샜지만 어디 그게 주민등록증으로 보입니까? 자고로 지금도 낙방을 밥 먹듯이 해서 얼굴이 노랗게 돼버린 사람들이 그렇게 갖고 싶어하는 '자동차 운전면허증'이라는 거 아닙니까. 친구들하며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당장 차 끌고 다닐 듯이 호들갑을 떨었지요. 그런데 현실은 저의 환상과 착각을 긴 한숨으로 내뿜어 버리더라구요. "나 면회갈 일 없으니까 운전대 만질 생각도 말어." 면박주는 남편이 얄미웠습니다. 옆집에 나보다 더 뚱뚱한 송이엄마도 하는데 나라고 못하냐, 당장 연수등록을 하고 운전을 배우겠다고 부산을 떨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휴일이었어요. 간밤에 남편을 살살 꼬여 운전 한번 해 보자고 했지요. 그래서 남편을 옆에 태우고 도로로 나섰습니다. 남편의 오른발이 브레이크 밟듯이 힘이 들어가며 들썩들썩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더니 이내 얼굴이 탈색이 돼가고 꼴깍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갑자기 앞차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스톱'소리를 지르기에 팍 서버렸지요. 유리에 박치기를 한 남편은 죽으려고 환장했다느니, 그렇게 둔해가지고 무슨 운전을 하냐느니 성질을 내면서 그렇잖아도 긴장하고 있는 절 주눅들게 하더라구요. 내 참 치사하고 아니꼽고 더럽고 매스꺼워서 당장 내려 차를 뻥 차고 싶었지만 '고진감래' 문자가 뇌리를 스치면서 '인내'라는 두 글자를 가슴에 새겼습니다. 한 두어 시간 진땀을 빼고 구박만 잔뜩 먹고 돌아왔지요. 남편의 말투가 은근히 화가 나더라구요. 주방에서 요란스럽게 그릇을 씻으며 화풀이를 했습니다. 그런 저의 등을 향해 남편은 일장 연설을 하데요. "이 사람아, 자동차 운전이 전자오락인 줄 알어? 사고를 내 본 사람이 운전을 잘하지만 그렇다고 사고를 낼 순 없잖아. 아까 같은 경우는 조금만 늦게 브레이크 밟았으면 범퍼 물어 줄 뻔했어. 운전은 경력이야. 경력은 곧 경험이고.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다 재산이 되니까 그런 상황이 되면 조심하란 말야. 차라는 것은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단 말야. 그리고 내가 초보운전 써 줄 테니까 차 뒤에 붙이고 다녀." 그러더니 도화지에 정성들여 글씨를 쓰더라구요. '초보운전(출발시 말처럼 펄쩍펄쩍 뜀)' "아니, 이런 걸 어떻게 붙이고 다녀요?" "다 생각해서 써주는 거야. 초보의 결함을 구체적으로 써야 다른 차들이 협조를 해 주지. 잘 될 때까지 붙이고 다니고 그거 안 붙이려면 차 만지지 마." "치사하고 더러워서 나도 차 한 대 장만할까 보다." 그러나 국가적 차원에서 아니 가정경제 차원에서 우리집 거덜날 것 같아 할 수 없이 좀 창피했지만 붙이고 다녔습니다.지나가는 차들이 웃느라 정신이 없고 교차로 신호대기 때는 다를 멀찌감치 서더라구요. 남편은 일주일 정도 지난 다음 또 하나를 써 주더군요. '초보운전(앞 보기도 바빠! 백미러 있으나마나!)' 나 원 참! 갈수록 태산이네요. "기가 막혀! 날 뭘로 아는 거야. 이거 너무 무시하는거 아냐. 자기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운전 잘했어? 그래 난 앞만 보기도 바빠서 백미러 없어도 된다 왜?" '나 운전 안해'하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또 다시 붙였습니다. 그걸 붙이고 다니는데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낄낄거리며 웃더라구요. 신호대기중이었어요. 택시가 다가오더니 그 기사는 우스워 죽겠다며 이러는 겁니다. "백미러 필요없으면 저 줘요." 택시 안에 있던 손님들이 배꼽을 잡고 웃더라구요. 그리고 또 제가 다리가 짧다보니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아 있었습니다. 핸들을 꼭 껴안고 고개를 꼿꼿하게 앞만 주시하는 초보모양새 말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핸들이 배에 닿더라구요. 그 옷 부분이 보푸라기가 일어났겠지요. 그걸 보고 남편은 '구멍나기 전에 가죽을 대'라고 놀려 대지 않겠습니까. '그래 놀려라. 나는 오직 고진감래라는 신조 아래 인내로 버티고 산다.' 남편은 망신을 톡톡히 줄 작정이었는지 또 한 가지 써주었습니다. '초보운전(옆에서 불러도 안 들림)' 정말 미치고 펄쩍 뛰겠더라구요. 내가 이렇게까지 수모를 당하며 운전을 배워야 되나 싶더라구요. 한 번은 급히 정지하느라 시동이 꺼졌는데 그것도 모르고 출발하려니 차가 움직여야지요. 뒤에서는 빵빵거리며 야단이지요, 정신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또 써 준 것이 있습니다. '초보운전(시동이 켜졌는지 꺼졌는지 잘 모름)' 이래저래 갈 때까지 간 망신. 이젠 망신 불감증에 걸려 신경도 안쓰였습니다. 제 생각엔 어느 정도 운전 실력이 느는 것 같았고 제법 초보티를 벗는 것 같았어요. 그래도 남편은 못 미더워서 신경을 엄청 쓰더군요. "당신말야, 갈수록 겁없이 운전하는데 겁이 많은 사람이 조심하더라구. 당신 그런 식으로 했다간 큰 코 다쳐. 마지막으로 하나 더 붙이고 다녀." '초보운전(뵈는 게 없음)' 짓궂은 남편 배려에 초보를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남편은 제가 운전하고 다니며 욕 먹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나요. 여성 운전자를 눈꼴시럽게 보는 한심한 세태에 그렇게 보는 편견을 꼬집듯이 또 한 장이 굴러다니더군요. '초보운전(밥 해놓고 나왔음)' 지금은 속도도 낼 줄 알고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고 지나가는 초보들을 비웃는 저를 발견한답니다. 친구들이 운전을 배운다고 하면 선생님인 양 떠들기도 하구요.
Board 삶 속 글 2023.02.13 風文 R 411
사면초가(四面楚歌) 四:넉 사. 面:낯/겉/대할 면. 楚:초나라 초. 歌:노래 가. [준말] 초가(楚歌).[동의어] 사면초가성(四面楚歌聲). [참조] 건곤일척(乾坤一擲), 권토중래(捲土重來), 걸해골(乞骸骨). [출전]《史記》〈項羽本紀〉 사면에서 들려 오는 초나라 노래란 뜻. 곧 ① 사방 빈틈없이 적에게 포위된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 ② 주위에 반대자 또는 적이 많아 고립되어 있는 처지. ③ 사방으로부터 비난받음의 비유. 진(秦)나라를 무너뜨린 초패왕 항우(項羽)와 한왕(漢王) 유방(劉邦)은 홍구[鴻溝:하남성(河南省)의 가로하(賈魯河)]를 경계로 천하를 양분, 강화하고 5년간에 걸친 패권(覇權) 다툼을 멈췄다(B.C. 203). 힘과 기(氣)에만 의존하다가 범증(范增) 같은 유일한 모신(謀臣)까지 잃고 밀리기 시작한 항우의 휴전 제의를 유방이 받아들인 것이다. 항우는 곧 초나라의 도읍인 팽성[彭城:서주(徐州)]을 향해 철군(撤軍) 길에 올랐으나 서쪽의 한중[漢中:섬서성(陝西省)의 한강(漢江) 북안의 땅]으로 철수하려던 유방은 참모 장량(張良)/진평(陳平)의 진언에 따라 말머리를 돌려 항우를 추격했다. 이윽고 해하[垓下:안휘성(安徽省) 내]에서 한신(韓信)이 지휘하는 한나라 대군에 겹겹이 포위된 초나라 진영(陣營)은 군사가 격감 한데다가 군량마저 떨어져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밤중에 ‘사면에서 초나라 노래[四面楚歌]’ 소리가 들려오니 말이다. 초나라 군사들은 그리운 고향 노랫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다투어 도망쳤다. 항복한 초나라 군사들로 하여금 고향 노래를 부르게 한 장량의 심리 작전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항우는 깜짝 놀랐다. ‘아니, 한나라는 벌써 초나라를 다 차지했단 말인가? 어찌 저토록 초나라 사람이 많은고?’ 이미 끝장났다고 생각한 항우는 결별의 주연을 베풀었다. 항우의 진중에는 우미인(虞美人)이라 불리는 애인 우희(虞姬)와 추라는 준마가 있었다. 항우는 우희가 애처로워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시를 읊고 또 읊었다. 힘은 산을 뽑고 의기는 세상을 덮지만 때는 불리하고 추는 가지 않누나 추가 가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은고 우야 우야 그대를 어찌할 거나 우희도 이별의 슬픔에 목메어 화답했다. 역발산을 자처하는 천하장사 항우의 뺨에는 어느덧 몇 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좌우에 배석한 장수들이 오열(嗚咽)하는 가운데 우희는 마침내 항우의 보검을 뽑아 젖가슴에 꽂고 자결하고 말았다. 그날 밤, 불과 800여 기(騎)를 이끌고 중포위망을 탈출한 항우는 이튿날, 혼자 적군 속으로 뛰어들어 수백 명을 벤 뒤 강만 건너편 당초 군사를 일으켰던 땅, 강동(江東)으로 갈 수 있는 오강(烏江:안휘성 내)까지 달려갔다. 그러나 항우는 800여 강동 자제(子弟)들을 다 잃고 혼자 돌아가는 것이 부끄러워 스스로 목을 쳐 자결하고 말았다(B.C. 202). 그때 그의 나이는 31세였다.
Board 고사성어 2023.02.13 風文 R 947
남친과 남사친 말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감정을 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처음엔 얌전히 화를 내던 사람이 자기 말에 취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걸 본 적이 있을 거다. “보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이 더 보고 싶어지는 경우도 많다. 말은 감정을 격동시킨다. 들쑤신다. 안 믿기겠지만, ‘사랑’이라는 말 속에는 ‘우정’의 요소가 들어 있다. 사랑의 감정 속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일이 잘되기를 바라고 그에게 더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애인은 친구이자 동지이다. 사랑 속에 우정이 들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남자친구, 여자친구’란 말이다. 맹랑하게도 이 말은 그냥 친구 사이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뜻한다. 사랑 속에 우정의 가능성이 없다면, ‘친구’라 쓰고 ‘애인’이라 읽을 수는 없다. 사랑 속에 있는 우정의 요소를 실마리 삼아 사랑을 대신 뜻하게 된다(환유). 한국 사회는 우정과 사랑을 대립시키고, 친구와 애인을 엄격히 구분해왔다. 이성애적 시각에서 남녀 간에는 우정이 성립될 수 없다고 믿어왔다(‘그게 본능이야. ‘결국’ 사랑하게 돼!’). ‘남사친’, ‘여사친’이란 말은 관계의 입체성을 상상하지 못하는 사회에 바치는 젊은이들의 항복 선언이다. 사랑의 본원적 의미 속에 있는 우정을 분리 독립시켰다. ‘남친’이 사랑을 먼저 차지했으니, 사랑 없는 우정의 자리는 ‘남사친’이 채웠다. ‘남친’과 ‘남사친’이라는 두개의 말을 갖춤으로써 사랑과 우정은 합법적으로 갈라섰다. 하나 어쩌랴. 여전히 ‘남친’ 속엔 우정이, ‘남사친’ 속엔 사랑이 숨어 있는 것을.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