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전혜린편"(1934~1965) 수필가. 평남 순천 출생. 독일 뮌헨대 독문과 수료. 여러 대학의 강사를 거쳐 성균관대 교수 역임. 31세로 자살함. 자유로운 정신과 현실 세계와의 치열한 대결 속에 불꽃처럼 살다가 간 지식인이었다. 끈기와 탄력과 집중력을 갖고 생을 긍정했고 생의 완벽성을 구했다.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삶에 대한 그의 강렬한 사랑과 일종의 필수적인 비애의 기록으로서 수많은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독일로 가는 길 - 그 당시 언제나 내 입에는 '출발하기 위해서 출발하는 것이다'라는 누군가의 시 구절이 떠나질 않았다. 왜 하필 독일에 가게 되고 또 독문학을 공부하게 되었는가? 라고 간혹 질문받을 때마다 나는 한 마디로 대답을 못 한다. 그리고 '우연이지요'라고 대답할 때가 대부분의 경우였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나의 유학의 동기는 막연했고 또 우연의 별의 지배 밑에 놓여 있었던 것 같기만 하다. 나는 국민 학교 때부터 대학까지를 관립 학교만을 나오았었고 다녔었다. 또 점수따기와 책상버러지와 독서광의 부류에 속해 왔었다. 따라서, 이러한 경로를 밟은 사람이면 알 수 있는 온갖 관료적, 점수주의적 암기식 교육에 대해서 맹렬한 반발과 자유로운 학문에 대한 끝없는 갈망을 품고 있었다. 부산 영도의 피난 가교사에서 졸업식을 마치고 아버지의 간곡한 권유와 또 커트라인 높은 학교에 대한 우등생다운 유치한 무의식의 흥미로 법대에 입학하고 난 후부터 나는 몹시도 혼란한 정신상태 속에 살고 있었다. 배우는 학과마다 'du sollst'였고 로마 제국의 법언과 양피지 냄새가 났었다. 조금도 리얼하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가장 리얼한 시스템인 정치 체계 위에 세워진 학문이 가장 공소하게 나에게는 느껴졌었다. 그것이 없으면 절대로 안 되는 유일의 것, 궁극적인 것이 빠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유일의 것은 그 때의 나에게는 정신 또는 철학이라고 느껴졌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때부터인지 철학을 공부하려 마음먹게 되었고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러나 외국에 간다는 것은 언젠가의 꿈으로 돌려져 있었다. 대학 3학년, 내가 스물한 살 때였다. 나의 둘도 없는, 그 때 미국에 가 있던 주혜라는 친구가 독일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느냐고 편지를 했었다. 주혜는 그의 아버지의 친구인 독일인을 서신을 통해 나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 다음은 수없는 서류 작성과 독일어 공부, 유학생 시험... 그리고는 한국이 세계에서도 그 복잡성과 번거로움에 첫째 간다는 출국 수속으로 바삐 돌아다녔다. 언제나 내 입에는 '출발하기 위해서 출발하는 것이다'라는 누군가 시인의 시 구절이 떠나지 않았고 갑자기 지평선이 무한대로까지 넓어진 느낌이 났었다. 그 때의 그 신선한 흥미와 이유 없는 마음의 약동을 아마 나는 일생 다시는 가져 보지 못할 것이다. 다시 어디고 가게 되더라도. 맏딸로서 정신적으로 미숙하고 늘 양친에만 매달려 온, 말하자면 어리광둥이인 나에게 출발의 날은 어제까지의 분주와 약동과 흥미와는 딴판으로 암담했다. 갑자기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만 같았고 절대로 내 집을 떠날 수 없는 것 같았다. 자신이 없었다. 그보다도 무서웠다. 그 때까지 국내에서도 피난 때의 왕복 이외에는 여행이라고는 해 본 일이 없는 나였고 내 집 이외에는 친척집에서도 자 본 일이 없는 나였다. 미칠 듯이 울었던 생각이 아직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비행기가 뮌헨에 닿았을 때도 그 암담은 또 한 번 내 마음을 덮었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라고는 없었고, 그 때만 해도 독일에 유학가는 한국인이 거의 없을 때였다. 더구나 여자로는 아무도 마중나올 사람이 있을 리 없었고 독일어도 자신이 전연 없었다. 무슨 차를 타도 그것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1955년 가을이었다. 덧붙여 한 마디-내가 살았던 슈바빙 구의 분위기가 가르쳐 준 거. 언제나 아무도 안 사는 그림을 그리고 아무도 안 읽을 시를 쓰면서 굶다시피 살면서도 오만과 긍지를 안 버리는, 이 구역에 사는 모두가 가난했고 대개가 외국이나 타 지방에서 모여든 화가나 학생이었던 그들한테서 나는 자유로운 생활이 무엇인지를 배운 것 같다. 목적을 가진 생활, 그 일 때문이라면 내일 죽어도 좋다는 각오가 되어 있는 생활, 따라서 온갖 물질적인 것에서 해방되어 타인의 이목에 구애되지 않는 생활이 그것인 것이다. 또 나는 편견 없이 산다는 것인 무엇인가를 본 것 같다. 정신만이 결국 문제되는 유일의 것이라는 것도. 국적도 피부색도 아무것도 거기에는 문제가 되고 있지 않았다. 영혼의 교통이 가능하여 정신이 일치될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벗이냐 그렇지 않느냐만이 문제였지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문제되지 않았다. 슈바빙 구역은 가장 정신이 자유로운 곳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 곳에서의 몇 가지 일들이 생각난다. 내가 가장 깊이 연구했고 전 작품과 생애를 공부해야 했던 그릴파르처의 세미나에서 "사포와 탓소의 비교 연구"라는 테마를 받고 도서관에서 그릴파르처와 사포에 관한 책은 모조리 빌려서 겨우 타이프지 열 장의 레포트를 써 낸 생가, 늘 파우스트를 강의하는 보르헤르트 교수가 너무 노령이고 너무 사투리가 심하고 목소리가 작아서 언제나 속상했던 일, 또 라이스트 교수나 데쿠 교수나, 가장 많은 학생들로부터 인기를 모으고 있던 기독교적 실존에 관한 강의를 하는 구아르디니 교수, 강의 때 라틴어와 희랍어를 너무 많이 써서 나는 받아쓰지 못하고 있는데 다른 독일 학생들이 모두 원어로 척척 받아쓰는 것을 보고 통분했던 일. 추억은 괴로웠던 일로만 달리게 되는지도 모른다.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가스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성격이 순하고 내성적이어서 라디오 방송들을 듣기만 할 뿐 이렇게 편지를 쓴다는 건 상상조차 해본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직업상 국민 여러분들, 특히 가, 나, 다로 시작되는 아파트에 살고 계신 분들께 당부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 용기를 냈습니다. 제가 직업상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저는 L.P.G 가스를 배달하는 사람입니다. 다 아시죠? 떡 벌어진 어깨, 약간 낡은 청바지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쓰고 뒤에는 가스를 가득 실은 채 1톤 트럭을 운전하는 가스배달부. 무전기 옆에 차고 도심을 가르는 거친 사나이만의 직업. 저는 정말 이 직업이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직업에는 애로사항이 있기 마련.... 멋지게만 보이는 이 가스배달에도 몇 가지 애로사항이 있답니다. 이제부터 제가 하는 얘기를 귀담아 들으시고 특히 가, 나, 다동에 사시는 아파트 주민 여러분 앞으로 적극 협조 바랍니다. 며칠 전, 가스를 가득 싣고 시내를 질주하는 저에게 본부로부터 무전기로 긴급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XX아파트 가동 506호에 지금 밥짓다 가스가 떨어졌으니 밥이 죽되기 전에 빨리 가스를 갖다 주라는 거였습니다. 긴급명령을 하달받은 저는 고객의 밥이 죽이 되선 안된다는 프로정신과 가스배달부의 자존심을 걸고 문제의 XX아파트로 출동. 제가 1분이라도 늦으면 죽도 밥도 안된다는 생각에 출동 4분 만에 XX아파트 가동 앞에 도착한 저는 차를 세우고 문을 열어 땅에 발을 디뎠습니다. '음, 제시간에 도착했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가스 1통(약44Kg)을 어깨에 멘 저는 과감히 아파트 현관을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막상 5층까지 이걸 메고 올라가려니 눈앞이 캄캄해지더군요.(L.P.G를 사용하는 건물은 대부분 엘리베이터가 없음) 그러나 제가 누굽니까? 프로정신이 투철한 대한민국 가스배달의 자존심이 아닙니까? 1층? 가볍게 올라갔습니다. 2층? 약간 힘들데요. 3층? 힘을 냈습니다. 4층? 오기로 올라갔죠. 그리고 마지막 5층!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라는 승리의 미소가 저의 입술을 스쳤습니다. "딩- 동." "누구세요?" 맑은 아가씨의 음성. 아-음,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습니다. "가스 왔습니다." 그런데 당연히 문을 열고 반갑게 맞아 주어야 할 아가씨는 문을 꼭 걸어잠그고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희 가스 안 시켰는데요." 이 무슨 마른 하늘에 장작빠개지는 소린가? 어떻게 올라온 5층인데.... 오직 정신력 하나로 버티고 올라온 5층을 그렇게 쉽게 안 시켰다고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제가 잘못 왔나 하고 옆집 대문을 봤습니다. 가동 505호. 그렇다면 여긴 분명 가동 506호가 맞을텐데.... 다시 한번 벨을 눌렀지만 아가씬지 아줌만지는 얼굴도 비치지 않았고, 저는 비틀비틀 다시 내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겨우 진정시키며 허리의 무전기를 꺼내 본부에 확인을 했습니다. "본부 나와라 오바." "말하라 오바." "XX아파트 가동 506호 맞나?" "잠기 기다리기 바란다. 오바." "알았다." "가동이 아니라 다동인 것 같다 오바." "다시 한번 말해봐라." "미안하다. 가동이 아니고 다동이다. 오바." 미안하다? 아니 이 일이 미안하다고 해결될 일입니까? 가와 다의 발음이 비슷한 건 누구한테 하소연해야 합니까? 그렇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아직도 날 기다리고 있을 다동 506호야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간다.' 아직 후들거리는 다리로 엑셀을 밟고 다동에 도착하니 이미 10여 분의 시간이 지나 있었고, 다동 5층의 하늘은 멀기만 하더군요. 그대로 쓰러지고 싶었지만 제가 누굽니까? 프로정신과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대한민국의 가스배달부 아닙니까? 올라갔죠. 올라가야죠. 다시 어깨에 멧습니다. 벌써 통증이 오더군요. 1층? 힘을 냈습니다. 2층? 정신력을 버텼죠. 3층? 오기로 올라섰습니다. 4층? 깡으로 올라갔습니다. 드디어, 드디어 5층? 그대로 주저앉아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아주 많이 늙으신 할머니가 나오시더군요. "가스 불렸죠?" 할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앉아있는 저와 그 옆에 세워진 가스통을 번갈아 보시더니 이러시는 거예요. "가스 불르긴 불렀는디, 우리는 아저씨들 힘들께비 가스통을 현관 옆 화단에 놨는디, 그 무거운 것을 뭣헌다고 예까지 떼미고 온데요?" 그리고 결정적인 할머니의 한마디! "그나저나 아자씨가 늦게 오는 바람에 밥이 다 죽됐는디 어터켜-어?" 저의 투철한 프로정신과 가스배달의 자존심은 이 한마디에 완전히 날아가 버렸고, 저는 그걸 메고 다시 내려와 제가 차를 세워 놓았던 바로 옆 나무 뒤에 설치된 가스통을 교체해 주었답니다. 국민 여러분! 가, 나, 다동으로 시작되는 아파트 주민여러분! 가스 주문하실 때에 발음을 정확히 해 주십시오. 저, 집에서 가끔 쌍코피가 터집니다. 하루에 한두 개도 아니고 몇십 개씩 날라야 하는데, 제발 발음 좀 정확히 해 주세요.
Board 삶 속 글 2023.02.08 風文 R 566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전혜린편"(1934~1965) 수필가. 평남 순천 출생. 독일 뮌헨대 독문과 수료. 여러 대학의 강사를 거쳐 성균관대 교수 역임. 31세로 자살함. 자유로운 정신과 현실 세계와의 치열한 대결 속에 불꽃처럼 살다가 간 지식인이었다. 끈기와 탄력과 집중력을 갖고 생을 긍정했고 생의 완벽성을 구했다.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삶에 대한 그의 강렬한 사랑과 일종의 필수적인 비애의 기록으로서 수많은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사치의 바벨탑 - 여성의 가장 큰 본질적 약점은 사치의 광적 추구와 같은 생에 대한 비본연성인 것 같다. '여자는 전체로 보아서 아직도 하인의 신분에 있다. 그 결과 여성은 자기로서 살려고 하지 않고 남성으로부터 이렇다고 정해진 자기를 인식하고 자기를 선택하도록 된다. 남자의 손에 쥐어진 경제적 특권, 남자의 사회적 가치, 결혼의 명예, 남자에 의존하는 것에서 얻는 효과, 이러한 모든 것이 여자들로 하여금 남자의 마음에 들도록 애쓰고 있다.' 여성에 관해서 말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남성에 대한 여성의 관계에 있어서 언급되어야 한다. 우리 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여성과 남성 간의 사회적 차이와 대립이 완전히 제거된 곳은 없으며 앞으로도 사회 구조의 전적인 변화가 없는 한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몹시 느린 속도로 향상되어 가는 과정에 있고 아직도 우리는 평균적으로 보아서 여자가 사회에 한 발을 디디고 서기가 마치 미국에서 한 흑인이 그렇게 하려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힘드는 처지에 있다. 그러한 남성과 여성 간의 커다란 차이를 미리 고려하면서만 우리는 여성의 제문제 또는 약점을 파고들어갈 수가 있을 것이다. 여성의 가장 본질적 약점으로 나는 생 전반에 대한 비본연적 태도를 들고 싶다. 자기 자신을 순간순간마다 의식하고 사회와 세계에 대해서 자기를 투기하고 초월하면서 사는 것이 본연적인 생활 태도라면 태반의 여성의 생활은 그와 반대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보다 큰, 보다 진실한 문제-유는-에 빠져 있고 그 곳에서 아무런 타격도 전율도 반응 없이 흘러가듯이 사는 생활 태도, 말하자면 비진정하고 불성실한 생활 태도가 대부분 여자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남녀를 막론하고 인간이라는 무서운 조건하에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유일의 일은 우리의 삶을 규명하는 것일 것이며 적어도 그러한 근본적인 생활 감정에 지배된 생활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유일의 진실하고 엄숙한 문제는 회피하고 자그마한 일들, 물진, 사치스런 생활, 남자에게 의존 또는 기계와 같은 나날의 틀 속에 안면하는 의식, 이러한 것들 속에 자기를 소외해 버리는 생활은 허위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생과 사에 자기를 똑바로 응시하고 산다는 것은 무서운 용기와 신경력을 요한다. 특히 이 사회의 구조와 한국적 풍토 속에서는 너무나 신경이 긴장되는 작업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 없이는 전생의 의의가 무로 화하는 것이니까 그것을 회피하는 것은 일회적으로 주어진 우리 삶에의 죄인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기를 좀더 응시할 수 있을 것, 자기를 견딜 수 있을 것이 결과적으로는 다 비극인 우리의 생의 소상을 긴박한, 팽팽하게 차 있는 참된 순간으로 지속시키는 방법일 것이다. 우리가 존재에서 외면하고 사실의 세계로만 눈을 향하는 데에 여성에 대한 사회의 비난의 근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자기 과제를 느끼지 못하는 삶에는 필연적으로 공허가 따르고 따라서 오락의 필요가 생긴다. 최신 유행의 여성들에게 갖는 매력은 거기에 있다. 왜냐하면, 물건을 사는 것-특히 몸에 붙일-은 어느 나라 여성을 막론하고 남자들에게 있어서 바와 필적할 만한 상쾌한 오락인 까닭이다. 가장 유행이고 가장 비싼 물건을 입거나 신을 여자의 얼굴에는 반드시 어떤 빛나는 생기가 떠 있다. 그 순간은 그 여자는 살고 있는 까닭에 자기가 이룰 수 없는 사회 내의 일이나 지위나 가치의 인정을 완전히 보상해 주어서 하고 있다. 사치스러운 복장에 대한 여성의 판타직은 억눌려진 야심 사회 내에서 해당하고 싶은 본질적 욕망과, 자기는 다른 여자와 다르다고 어떤 여자든지 반드시 믿고 있는 오신, 또 누구나 다소 가지고 있는 나르시즘(자기 연애) 등의 혼합물인 것이다. 정말로 수많은 여인은 이 광신의 추구를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아끼지 않고 있다. 월급의 전액을 차지하는 값의 지갑을 태연히 들고 다니고 연봉에 해당되는 값의 외투도 서슴지 않고 해 입는다. 현실에서는 발견하거나 인정되지 않는 자아의 가치를 이러한 방법으로나마 가상적으로라도 만들어 보려는 것이다. 외투도 신도 곧 닳아 버리는 물건이고 유행도 바뀐다. 즉 가상적 자아의 '바벨탑'은 너무나 빨리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면 또 새로운 투쟁이 시작된다. 이렇게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여성의 물질에 대한 애착은 웃거나 비난하기에는 너무나 어둡고 심각한 근원이 여성의 내재 속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비본질적 존재로 여성을 만든 것은 여성의 지능 계수도 생리도 아니고, 다만 사회의 상황인 것으로 사회와 가정은 여성을 가능한 한 비본질적으로 교육하기에 전력을 다해 왔다. 여성의 자주성을 찾으려는 가장 조그만 움직임이나 생각까지도 조소되고 비난받아 왔고 다만 두 사람의 합의에 의해서 공동하게 생활을 건설해 가고 둘이 다 자아의 생장을 지속시켜 가는 공동체라고 보아야 할 결혼을 사회는 여자의 궁극적인 숙명, 여자의 자아 발전의 무덤으로서 또 어떤 절대적인 영광스러운 예속으로서 가르쳐 주어 왔다. 말하자면 비진정하면 할수록 여자다운 여자일 수 있다. 그러한 전통에 닦인 여자도 자연히 그러한 사고 방식을 갖게 되었고 그것에서 이익을 끝내어 줄 것까지도 알게 되었다. 즉 자기의 삶 전부를 실존을 스스로 순간마다 결단하고 세계로 향해서 투기하는 생활 대신에 한 남성에게 자신을 꽉 맡겨 버리고 자기는 더 이상 사고할 필요 없이 사소하고 무상하게 흘러가는 일상성과 사실성의 세계에 파묻히는 편이 얼마나 편하고 또 사회에서 잘 받아들여진다는 것을의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느 여자도 그것에 완전히 만족하거나 행복을 느끼지도 않을 것이다. 적어도 그런 생활에는 일순 일순의 팽팽한 충일감과 초월의 느낌이 없을 것이다. 어느 주부든지 어떤 순간에는 반드시 자기를 부조리하게 느낄 것이다. 쌀 씻고 빨래하고 옷 꿰매고, 나날의 무서우리만큼 단조한 반복 속에서 그 여자의 인식은 엷게나마 눈을 뜰 것이다. 이것이 나의 생활인가 하고, 그럴 때 우리는 그 의식의 각성을 소중히 포착해야 한다. 그리고 파고 들어가야 한다. 분명 그것은 나의 생활이 아닌 것이다. 누구냐의 생활에 불과한 것이지 자기를 사물이나 타자의 속에 소외 해 버린 일반적인 아무나의 삶이지 그것은 이 일회적인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삶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것을 의식할 때 우리는 생이 진정한 것이 아니었고 불성실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보다 한 발자국 나와 가까워진다. 자아에 대해서 비로소 눈을 뜬 느낌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도 자아에 자기의 감정과 이성과 신경에게 충실한 것, 그것 이외에 우리가 자아에 이를 수 있는 길은 없다. 그것만이 사치, 허위, 소극성, 아첨, 비굴, 수다 등등의 여성에 붙여진 비난의 제 레테르를 벗는 길로 한 걸음 나아가는 길이다. 이 모든 레테르는 남성들의 사회에서 남성에 의해서 붙여진 레테르이다. 그러나 사회 상황의 변화에 의해서 남녀가 정말로 동등한 입장이 되고 여자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세계를 향해서 자신을 초월하는 행위 속에 자기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여성은 개인적으로라도 무서운 고독과 절망과 싸우면서 자아를 좇는 길을 걸어가지 않을 수 없으며 현재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 숨은 곳에 많으리라고 확신한다. 지엽적인 여성의 결점은 모두 이러한 비실존적 생활 태도에서 나온 것이므로 우리는 여성의 결점을 열거하는 것보다도 우선 우리의 존재의 문제를 좀더 밝혀야 한다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경제적으로 비의존적으로 투기가 가능해진다면, 아니 한 마디로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남성의 그것과 동등해진다면 여성의 근본 결함인 비진정, 불성실한 생활 태도는 자연 소멸하고 여성도 보다 높은, 보다 참된 과제를 자기의 생활 과제로 삼게 될 것이다.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새댁, 니 봤나? - 문상자(여.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2동) 저는 지금으로부터 약 16, 7년 전에 있었던 얘기를 들려 드릴까 합니다. 저희는 결혼한 지 3년 만에 조그마한 가게 하나, 방 하나, 부엌 하나가 딸린 집을 세 얻어 장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가게를 어렵게 얻어서 들어가고 보니 한 건물 안에 저희처럼 생긴 가게가 여섯이나 되었어요. 닭집, 횟집, 칼국수집, 건재상, 그릇 가게, 건어물 가게, 그런 것 중에서도 네 집은 부인들이 전부 연령이 저와 같은 또래였어요. 한 지붕 여섯 가족에 아이들끼리 싸움도 잦았지만그런 아이들 때문에 생긴 일들은 그래도 서로 이해하며 잘 견뎠어요. 오히려 심각한 문제는 연탄창고 문제, 화장실 문제, 마당청소 문제, 쓰레기 문제, 전기세 문제 등등이었지요. 먼저 연탄창고 문제부터 말씀드릴게요. 50장씩 넣으면 6집이 다 넣을 수 있는 연탄창고에 어느 한 집이 100장이라고 넣으면 한집은 자리가 없게 되죠. 그것까지는 좋았어요. 어떨 땐 연탄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그러면 전부 나와서 숫자 세어 가면 집집마다 연탄 숫자를 헤아려 각자 고유의 표시를 하는 거예요. 일자니 열 십자니 하며.... 한번은 연탄창고 제일 안쪽 좋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 이사를 나가면서 서로 그 자리를 잡으려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죠. 그리고 공동 화장실 문제. 청소는 늘 하는 사람만 해요. 아예 6개월, 1년 동안 이사 나갈 때까지 화장실 청소 한번 안하고 나가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 땐 6개월이나 1년이 계약기간이었어요.) 그 다음 전기세 문제. 지금은 건물 안에 여러 가구가 거주하면 집집마다 계량기를 부착하지만 그 땐 한 건물 안에 하나씩. 그러다 보니 대충 누구 집은 전구가 몇 개니 얼마, 늦게까지 장사하니 얼마, 다달이 말썽이었어요. 그 말썽은 요금을 안 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적게 내려고 하다보니 생긴 거라지만, 전기세 걷는 이층에 사는 주인은 아예 자기 집은 전기세를 내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세 들어 사는 죄로 모두들 말 못했어요. 그럭저럭 싸우며 이해하며 이사 온 뒤 한겨울을 지내고, 초여름 어느 저녁 무렵 바로 문제의 그 날을 말씀드릴게요. 문제 중의 문제, 그것은 수돗물이었어요. 물이 잘 안 나왔거든요. 부엌은 전부 재래식이었습니다. 수도꼭지는 한 개, 마당에 놓인 하나의 꼭지에 여섯 가구가 번갈아가며 순서대로 물을 받아 썼어요. 지금이야 수돗물이 안 나오면 며칠 전에 TV나 라디오 방송 혹은 신문에서 미리 알려주지만 정말 그 땐 예고 없이 물이 이틀 사흘씩 안 나오는 게 허다했어요. 그러니 집집마다 물을 받는 갈색 고무물통은 필수품이었죠. 사건의 그 날도 아침에 우리 차례가 되어서 받는데 물통에 절반쯤 받았을까, 물이 졸...졸...졸 조금씩 나오더군요. 그래서 한통 받을 수 있을까 걱정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물이 뚝 끊기더라구요. 그래서 대충 기저귀랑 빨래들을 물을 최대한 아껴서 한 후, 곧 나오겠지 한 것이 하루도 아니고 이틀째 물이 나오질 않는 거예요. 우리는 기저귀 때문에도 걱정이었지만 식당, 통닭집들은 물 없으면 난리 나잖아요. 모두 물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아랫집에서 조금씩 얻어다 쓰며 이제나 저제나 수도꼭지만 바라보게 됐지요. 드디어 사흘째 되는 날. 그 날도 밤까지 물 걱정하면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자니 어찌 그리 잠은 쏟아지는 지요. 앉아서 꾸벅꾸벅 하는데 앗! ‘쏴아- 주르르륵.’ 물소리가 콸콸 나는 겁니다. 그 소리에 저는 “물이다.” 하고 아기를 방바닥에 눕히고 “아줌마, 물 나와요. 수돗물.” 하면서 벽 하나 두고 살고 있는 옆집 아줌마를 부르니 그 아줌마도 “물이 나와?” 하면서 뒷마당으로 나왔고, 다른 집 아줌마들이 순식간에 우르르 나왔어요.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런데 우르르 뛰어나왔던 여섯 아줌마들은 눈이 튀어날올 기막힌 상황에 직면한 겁니다. 이른 오후부터 통닭집에서 맥주 한잔 하고 닭 한마리 드시고 거나하게 취하신 손님 한분이 화장실을 물으니 뒤쪽 마당에 있다고 가게 아줌마가 가르쳐 줬는데, 이 양반 화장실은 못 찾고 꺼진 연탄에 얹혀 있던 구멍난 양은 양동이에 실례를 한 거예요. 양동이에 물 버리면 소리가 좀 큽니까? 그 소리가 '쏴아- 주르르륵!'하고 날 수밖에요. 그런데 아줌마들이 "물이다." 하고 여섯 명씩이나 막 뛰어나오니까, 실례를 하던 그 아저씨가 더 놀라셨습니다. 그리고 아저씨는 당황에서 돌아서다가 구석에 파놓은 조그마한 시궁창 맨홀에 한쪽 발을 빠뜨리고 말았어요. 소변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 흐르고(?) 한쪽 발은 시궁창에 빠지고.... 아저씨는 도망도 못 가고 그렇다고 옷도 못 추스르고 정말 황당해 하더라구요. 우리 역시, 그 아저씨를 붙잡아 드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안서고 눈을 어디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렇다고 잡아드릴 수도 없었어요. 왜냐구요? 글쎄요.... 그날 저녁 가게 문을 닫을 무렵 연세 약간 드신 횟집 아줌마 왈, "새댁, 니 봤나?" "뭘요...?" "하하, 호호."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우리들은 눈만 마주치면 웃었고 혼자서 밥하다가도 비실비실, 빨래하다가도 비실비실 웃었습니다. 지금은 모두들 뿔뿔이 헤어져 잘살고 있지만 가끔은 그때가 그립네요. 곤롯불에 시커멓게 그을린 냄비...등등 모두가 추억이네요.
Board 삶 속 글 2023.02.06 風文 R 682
불구대천지수(不俱戴天之讐) 不:아니 불. 俱:함께 구. 戴:머리에 일 대. 天:하늘 천. 讐:원수 수. [준말] 대천지수(戴天之讐), 불공대천(不共戴天). [동의어] 불구대천지원수(不俱戴天之怨?), 불공대천지수(不共戴天之?). [출전]《禮記》〈曲禮篇〉,《孟子》〈盡心篇〉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란 뜻으로, 반드시 죽여야 할 원수를 일컫는 말. ①《예기(禮記)》〈곡례편(曲禮篇)〉에는 ‘불구대천지수’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아버지의 원수와는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고 [父之讐弗與共戴天(부지수불여공대천)] 형제의 원수를 보고 무기를 가지러 가면 늦으며[兄弟之讐不反兵(형제지수불반병)] 친구의 원수와는 나라를 같이해서는 안된다. [交遊之讐不同國(교유지수부동국)] 즉, 아버지의 원수와는 함께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으므로 반드시 죽여야 한다. 형제의 원수를 만났을 때 집으로 무기를 가지러 갔다가 놓쳐서는 안 되므로 항상 무기를 휴대하고 다니다가 그 자리에서 죽여야 한다. 친구의 원수와는 한 나라에서 같이 살 수 없으므로 나라 밖으로 쫓아내던가 아니면 역시 죽여야 한다. 오늘날 이 말은 아버지의 원수에 한하지 않고 ‘더불어 살 수 없을 정도로 미운 놈’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또 이 말은《맹자(孟子)》〈진심편(盡心篇)〉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맹자의 말과 비교가 되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 이제야 남의 아비를 죽이는 것이 중한 줄을 알겠노라. 남의 아비를 죽이면 남이 또한 그 아비를 죽이고 남의 형을 죽이면 남이 또한 그 형을 죽일 것이다. 그러면 스스로 제 아비나 형을 죽이지는 않겠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이니라.”
Board 고사성어 2023.02.06 風文 R 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