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엉덩이 힘 빼세요 이 시간에도 무역수지 적자 때문에 깊은 고뇌에 빠져 있는 이곳 공단 산업역군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미소를 머금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띄웁니다. 우선 이 사건은 본인의 경험이 절대로 아니고 친구의 사건임을 밝혀둡니다. 무지무지 황당하고 허망한 인간사 '세옹지마'임을 실감케 하는 사건이 있는데 들어 보실라우! 얼마 전 사건의 주인공인 친구가 오후의 따스한 가을 햇살에 식사후의 나른함과 싸우며 핸들을 잡고 신호대기 중이었습니다. 무심코 룸미러를 보니까 뒤쪽에서 신모델 차 한 대가 조금 빠른 속도로 오더래요. 속으로 '야! 차 좋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 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더래요.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계속 룸미러를 주시하면서, '브레이크가 좋으니까 바싹 붙어서 정지하겠지.'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불안하게 차 후미를 향해 계속 돌진해 오더랍니다. 이때 이 친구 속마음이 어떨런지 상상이 되십니까? 살인무기가 무방비로 서 있는 자리를 처치하려고 돌진하는데, 자기는 차안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운명의 순간을 지켜봐야 하는 심정! 상상이 되십니까? 이마엔 땀이 맺히고, 등골은 오싹해지고, 오금이 저려오면서 아랫도리는 축축해지고.... 그러나 인간은 대단하데요. '아! 이제 죽는구나. 그러나 결혼도 못해 보고 죽을 수는 없다. 살아야 되겠구나.' 그 와중에도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면서 어느새 오른손은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기면서 양발은 발판에 붙이고, 양손은 핸들을 휘어지도록 쥐고, 머리는 좌석 받침대에 밀착시키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를 취하는 순간, '끼-이-익 쾅!' 충격에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보니 웬 사람이 차문을 열고 밖으로 끌어내더래요. 앞은 캄캄하도 하늘은 누르스름한데 별은 둥둥 떠있고.... 잠시후 정신을 수습하고 보니 천당은 아니더래요. 현장에서 사고를 대충 정리하고, 병원에서 진찰받고 X-ray찍고 검사를 받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 한 줄기 서광이 비치더니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숨이 턱에 차서 말문이 탁 막히더래요. 그 와중에 자기 앞에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간호사 한 분이 꿈에도 그리던 이상형이더래요. 순간 갑자기 뇌리를 스치면서 뒷골을 때리는 전율을 느끼며 생각했대요. '아! 하늘이 이런 기회를 주시려고 사고가 나게 했구나.' 겨우 흥분을 진정시키고 입원하라는 것도 마다하고 통원치료 하기로 하고 집에 와서는 아픈 건 둘째 문제고 내일 병원 갈 생각에 잠도 오지 않더래요. 참고로 이 친구는 3주 진단이 나왔습니다. 다음날 부푼 가슴을 안고 병원에 도착해서 진찰하고 물리치료 받고 주사 맞고 약 타는 순간까지도 어제 그 천사의 모습은 볼 수가 없더랍니다. 병원 문을 나서서 도로를 걸어가면서도 미련이 남아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다음날 다시 벌렁대는 가슴을 안고 병원을 찾았는데 역시 진찰이 끝나고 물리치료가 끝날 때까지 그녀의 모습은 보이질 않더래요. 이름도 모르니 물어볼 수도 없고, 혼자서 벙어리 냉가슴만 태우면서 주사실로 들어갔는데, 그 순간 천지간에 광명의 빛이 비치더니 동공이 확장되고 코가 벌렁벌렁거리는가 싶더니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고 폐활량이 '황영조' 선소의 몇 배가 되더랍니다. '아!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 그녀가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녀는 솜사탕 같은 목소리로 "침대에 기대서 바지 내리세요." '이런 낭패가 있나?' 그녀 앞에서 어떻게 바지를 내리겠는가! 하지만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정신을 가다듬고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그녀 쪽으로 내밀었답니다. 그리고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며 두 손은 침대 시트를 꽉 쥐었구요. 양 다리는 감전된 것처럼 뻣뻣해지고, 그리고 다른 또한 곳은 야릇한 전율이 감돌면서 중추신경이 마비됨을 느꼈답니다. 그는 최대한 차분한 몸짓으로 바지를 내리니 그녀의 가냘픈 손이 한 쪽도 아니고 양쪽 엉덩이게 주사를 놓더랍니다. 그 기분을 이해하실런지요? 3주 진단이 3일만에 완쾌된 기분일 겁니다. 그날은 구름 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에 하루를 보냈지만, 병원이 쉬는 일요일은 하루 24시간이 240년 같고, 하루를 몽땅 굶어도 배고픔을 느낄 수 없었고, 하루라도 거르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던 술은 일주일을 안 먹어도 하늘에 뜬 기분이고, 시꺼면 매연도 한겨울 내리는 함박눈으로 보이고, 병원에 갈 때면 안하던 샤워를 하고.... 그러나 신이시여, 어찌 이런 잔인한 운명을 내리십니까? 열흘 가까이 물리치료를 받던 어느 날, 오전부터 속이 좀 이상하더래요. 하지만 천사와의 만남을 앞두고 불결한 행동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참고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조금씩 심해지더래요. 진찰이 끝나고 주사를 맞으러 주사실에 들어갔는데, 주사기를 들고 따라 들어온 사람은 꿈에도 그리던 그녀! 그녀 왈, "바지 내리시고 침대에 기대세요." 그러더니 손으로 엉덩이 탁탁 치면서 "힘 빼세요." 힘 빼라니.... 가스가 나오려는 걸 아랫배에 힘을 주어 간신히 참고 있는데.... 그러나 엉덩이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으니 주사 바늘이 두 번 세 번 찔러도 실패하고 피만 나는 겁니다. 그러자 그녀는 목소리를 더 높여서 말하더랍니다. "지금 저하고 장난하시는 거예요." 천사의 음성 같던 그녀의 목소리가 저승사자의 울림으로 다가오는 순간 이젠 어쩔 수 없군,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하며 아랫배에 힘을 빼니 잔뜩 움추렸던 괄약근은 열리고, 주사바늘이 엉덩이를 뚫고 들어오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 "뽀오-옹." 천사의 외마디. "엄마야." 그 이후로 이 병원에서 그 친구의 얼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Board 삶 속 글 2023.02.10 風文 R 654
불입호혈 부득호자 (不入虎穴不得虎子) 不:아니 불. 入:들 입. 虎:범 호. 得:얻을 득. 子:아들 자. [참조] 수청무대어(水淸無大魚). [출전]《後漢書》〈班超傳〉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는 호랑이 새끼를 못 잡는다는 뜻으로, 모험을 하지 않고는 큰 일을 할 수 없음의 비유. 후한(後漢) 초기의 장군 반초(班超)는 중국 역사서의 하나인《한서(漢書)》를 쓴 아버지 반표(班彪), 형 반고(班固), 누이동생 반소(班昭)와는 달리 무인(武人)으로 이름을 떨쳤다. 반초는 후한 2대 황제인 명제(明帝) 때(74년) 서쪽 오랑캐 나라인 선선국[누란(樓蘭)]에 사신으로 떠났다. 선선국왕은 반초의 일행36명을 상객(上客)으로 후대했다. 그런데 어느 날, 후대는 박대(薄待)로 돌변했다. 반호는 궁중에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하고 즉시 부하 장수를 시켜 진상을 알아보라고 했다. 이윽고 부하 장수는 놀라운 소식을 갖고 왔다. “지금 신선국에는 흉노국(匈奴國)의 사신이 와 있습니다. 게다가 대동한 군사만 해도 1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흉노는 옛부터 한족(漢族)이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아 침입을 막았을 정도로 영맹(獰猛)한 유목민족이다. 반초는 즉시 일행을 불러모은 다음 술을 나누며 말했다. “지금 이곳에는 흉노국의 사신이 1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와 있다고 한다. 신선국왕은 우리를 다 죽이거나 흉노국의 사신에게 넘겨 줄 것이다. 그러면 그들에게 끌려가서 개죽음을 당할 텐데 어떻게 하면 좋겠나?”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야 없지 않습니까? 싸워야 합니다!” 모두들 죽을 각오로 싸우자고 외쳤다. “좋다. 그럼 오늘 밤에 흉노들이 묵고 있는 숙소로 쳐들어가자.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는 호랑이 새끼를 못 잡는다[不入虎穴不得虎子]’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날 밤 반초 일행은 흉노의 숙소에 불을 지르고 닥치는 대로 죽였다. 이 일을 계기로 선선국이 굴복했음은 물론 인근 50여 오랑캐의 나라들도 한나라를 상국(上國)으로 섬기게 되었다.
Board 고사성어 2023.02.10 風文 R 964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전혜린편"(1934~1965) 수필가. 평남 순천 출생. 독일 뮌헨대 독문과 수료. 여러 대학의 강사를 거쳐 성균관대 교수 역임. 31세로 자살함. 자유로운 정신과 현실 세계와의 치열한 대결 속에 불꽃처럼 살다가 간 지식인이었다. 끈기와 탄력과 집중력을 갖고 생을 긍정했고 생의 완벽성을 구했다.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삶에 대한 그의 강렬한 사랑과 일종의 필수적인 비애의 기록으로서 수많은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독일로 가는 길 - 그 당시 언제나 내 입에는 '출발하기 위해서 출발하는 것이다'라는 누군가의 시 구절이 떠나질 않았다. 왜 하필 독일에 가게 되고 또 독문학을 공부하게 되었는가? 라고 간혹 질문받을 때마다 나는 한 마디로 대답을 못 한다. 그리고 '우연이지요'라고 대답할 때가 대부분의 경우였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나의 유학의 동기는 막연했고 또 우연의 별의 지배 밑에 놓여 있었던 것 같기만 하다. 나는 국민 학교 때부터 대학까지를 관립 학교만을 나오았었고 다녔었다. 또 점수따기와 책상버러지와 독서광의 부류에 속해 왔었다. 따라서, 이러한 경로를 밟은 사람이면 알 수 있는 온갖 관료적, 점수주의적 암기식 교육에 대해서 맹렬한 반발과 자유로운 학문에 대한 끝없는 갈망을 품고 있었다. 부산 영도의 피난 가교사에서 졸업식을 마치고 아버지의 간곡한 권유와 또 커트라인 높은 학교에 대한 우등생다운 유치한 무의식의 흥미로 법대에 입학하고 난 후부터 나는 몹시도 혼란한 정신상태 속에 살고 있었다. 배우는 학과마다 'du sollst'였고 로마 제국의 법언과 양피지 냄새가 났었다. 조금도 리얼하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가장 리얼한 시스템인 정치 체계 위에 세워진 학문이 가장 공소하게 나에게는 느껴졌었다. 그것이 없으면 절대로 안 되는 유일의 것, 궁극적인 것이 빠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유일의 것은 그 때의 나에게는 정신 또는 철학이라고 느껴졌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때부터인지 철학을 공부하려 마음먹게 되었고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러나 외국에 간다는 것은 언젠가의 꿈으로 돌려져 있었다. 대학 3학년, 내가 스물한 살 때였다. 나의 둘도 없는, 그 때 미국에 가 있던 주혜라는 친구가 독일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느냐고 편지를 했었다. 주혜는 그의 아버지의 친구인 독일인을 서신을 통해 나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 다음은 수없는 서류 작성과 독일어 공부, 유학생 시험... 그리고는 한국이 세계에서도 그 복잡성과 번거로움에 첫째 간다는 출국 수속으로 바삐 돌아다녔다. 언제나 내 입에는 '출발하기 위해서 출발하는 것이다'라는 누군가 시인의 시 구절이 떠나지 않았고 갑자기 지평선이 무한대로까지 넓어진 느낌이 났었다. 그 때의 그 신선한 흥미와 이유 없는 마음의 약동을 아마 나는 일생 다시는 가져 보지 못할 것이다. 다시 어디고 가게 되더라도. 맏딸로서 정신적으로 미숙하고 늘 양친에만 매달려 온, 말하자면 어리광둥이인 나에게 출발의 날은 어제까지의 분주와 약동과 흥미와는 딴판으로 암담했다. 갑자기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만 같았고 절대로 내 집을 떠날 수 없는 것 같았다. 자신이 없었다. 그보다도 무서웠다. 그 때까지 국내에서도 피난 때의 왕복 이외에는 여행이라고는 해 본 일이 없는 나였고 내 집 이외에는 친척집에서도 자 본 일이 없는 나였다. 미칠 듯이 울었던 생각이 아직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비행기가 뮌헨에 닿았을 때도 그 암담은 또 한 번 내 마음을 덮었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라고는 없었고, 그 때만 해도 독일에 유학가는 한국인이 거의 없을 때였다. 더구나 여자로는 아무도 마중나올 사람이 있을 리 없었고 독일어도 자신이 전연 없었다. 무슨 차를 타도 그것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1955년 가을이었다. 덧붙여 한 마디-내가 살았던 슈바빙 구의 분위기가 가르쳐 준 거. 언제나 아무도 안 사는 그림을 그리고 아무도 안 읽을 시를 쓰면서 굶다시피 살면서도 오만과 긍지를 안 버리는, 이 구역에 사는 모두가 가난했고 대개가 외국이나 타 지방에서 모여든 화가나 학생이었던 그들한테서 나는 자유로운 생활이 무엇인지를 배운 것 같다. 목적을 가진 생활, 그 일 때문이라면 내일 죽어도 좋다는 각오가 되어 있는 생활, 따라서 온갖 물질적인 것에서 해방되어 타인의 이목에 구애되지 않는 생활이 그것인 것이다. 또 나는 편견 없이 산다는 것인 무엇인가를 본 것 같다. 정신만이 결국 문제되는 유일의 것이라는 것도. 국적도 피부색도 아무것도 거기에는 문제가 되고 있지 않았다. 영혼의 교통이 가능하여 정신이 일치될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벗이냐 그렇지 않느냐만이 문제였지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문제되지 않았다. 슈바빙 구역은 가장 정신이 자유로운 곳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 곳에서의 몇 가지 일들이 생각난다. 내가 가장 깊이 연구했고 전 작품과 생애를 공부해야 했던 그릴파르처의 세미나에서 "사포와 탓소의 비교 연구"라는 테마를 받고 도서관에서 그릴파르처와 사포에 관한 책은 모조리 빌려서 겨우 타이프지 열 장의 레포트를 써 낸 생가, 늘 파우스트를 강의하는 보르헤르트 교수가 너무 노령이고 너무 사투리가 심하고 목소리가 작아서 언제나 속상했던 일, 또 라이스트 교수나 데쿠 교수나, 가장 많은 학생들로부터 인기를 모으고 있던 기독교적 실존에 관한 강의를 하는 구아르디니 교수, 강의 때 라틴어와 희랍어를 너무 많이 써서 나는 받아쓰지 못하고 있는데 다른 독일 학생들이 모두 원어로 척척 받아쓰는 것을 보고 통분했던 일. 추억은 괴로웠던 일로만 달리게 되는지도 모른다.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가스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성격이 순하고 내성적이어서 라디오 방송들을 듣기만 할 뿐 이렇게 편지를 쓴다는 건 상상조차 해본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직업상 국민 여러분들, 특히 가, 나, 다로 시작되는 아파트에 살고 계신 분들께 당부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 용기를 냈습니다. 제가 직업상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저는 L.P.G 가스를 배달하는 사람입니다. 다 아시죠? 떡 벌어진 어깨, 약간 낡은 청바지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쓰고 뒤에는 가스를 가득 실은 채 1톤 트럭을 운전하는 가스배달부. 무전기 옆에 차고 도심을 가르는 거친 사나이만의 직업. 저는 정말 이 직업이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직업에는 애로사항이 있기 마련.... 멋지게만 보이는 이 가스배달에도 몇 가지 애로사항이 있답니다. 이제부터 제가 하는 얘기를 귀담아 들으시고 특히 가, 나, 다동에 사시는 아파트 주민 여러분 앞으로 적극 협조 바랍니다. 며칠 전, 가스를 가득 싣고 시내를 질주하는 저에게 본부로부터 무전기로 긴급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XX아파트 가동 506호에 지금 밥짓다 가스가 떨어졌으니 밥이 죽되기 전에 빨리 가스를 갖다 주라는 거였습니다. 긴급명령을 하달받은 저는 고객의 밥이 죽이 되선 안된다는 프로정신과 가스배달부의 자존심을 걸고 문제의 XX아파트로 출동. 제가 1분이라도 늦으면 죽도 밥도 안된다는 생각에 출동 4분 만에 XX아파트 가동 앞에 도착한 저는 차를 세우고 문을 열어 땅에 발을 디뎠습니다. '음, 제시간에 도착했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가스 1통(약44Kg)을 어깨에 멘 저는 과감히 아파트 현관을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막상 5층까지 이걸 메고 올라가려니 눈앞이 캄캄해지더군요.(L.P.G를 사용하는 건물은 대부분 엘리베이터가 없음) 그러나 제가 누굽니까? 프로정신이 투철한 대한민국 가스배달의 자존심이 아닙니까? 1층? 가볍게 올라갔습니다. 2층? 약간 힘들데요. 3층? 힘을 냈습니다. 4층? 오기로 올라갔죠. 그리고 마지막 5층!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라는 승리의 미소가 저의 입술을 스쳤습니다. "딩- 동." "누구세요?" 맑은 아가씨의 음성. 아-음,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습니다. "가스 왔습니다." 그런데 당연히 문을 열고 반갑게 맞아 주어야 할 아가씨는 문을 꼭 걸어잠그고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희 가스 안 시켰는데요." 이 무슨 마른 하늘에 장작빠개지는 소린가? 어떻게 올라온 5층인데.... 오직 정신력 하나로 버티고 올라온 5층을 그렇게 쉽게 안 시켰다고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제가 잘못 왔나 하고 옆집 대문을 봤습니다. 가동 505호. 그렇다면 여긴 분명 가동 506호가 맞을텐데.... 다시 한번 벨을 눌렀지만 아가씬지 아줌만지는 얼굴도 비치지 않았고, 저는 비틀비틀 다시 내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겨우 진정시키며 허리의 무전기를 꺼내 본부에 확인을 했습니다. "본부 나와라 오바." "말하라 오바." "XX아파트 가동 506호 맞나?" "잠기 기다리기 바란다. 오바." "알았다." "가동이 아니라 다동인 것 같다 오바." "다시 한번 말해봐라." "미안하다. 가동이 아니고 다동이다. 오바." 미안하다? 아니 이 일이 미안하다고 해결될 일입니까? 가와 다의 발음이 비슷한 건 누구한테 하소연해야 합니까? 그렇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아직도 날 기다리고 있을 다동 506호야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간다.' 아직 후들거리는 다리로 엑셀을 밟고 다동에 도착하니 이미 10여 분의 시간이 지나 있었고, 다동 5층의 하늘은 멀기만 하더군요. 그대로 쓰러지고 싶었지만 제가 누굽니까? 프로정신과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대한민국의 가스배달부 아닙니까? 올라갔죠. 올라가야죠. 다시 어깨에 멧습니다. 벌써 통증이 오더군요. 1층? 힘을 냈습니다. 2층? 정신력을 버텼죠. 3층? 오기로 올라섰습니다. 4층? 깡으로 올라갔습니다. 드디어, 드디어 5층? 그대로 주저앉아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아주 많이 늙으신 할머니가 나오시더군요. "가스 불렸죠?" 할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앉아있는 저와 그 옆에 세워진 가스통을 번갈아 보시더니 이러시는 거예요. "가스 불르긴 불렀는디, 우리는 아저씨들 힘들께비 가스통을 현관 옆 화단에 놨는디, 그 무거운 것을 뭣헌다고 예까지 떼미고 온데요?" 그리고 결정적인 할머니의 한마디! "그나저나 아자씨가 늦게 오는 바람에 밥이 다 죽됐는디 어터켜-어?" 저의 투철한 프로정신과 가스배달의 자존심은 이 한마디에 완전히 날아가 버렸고, 저는 그걸 메고 다시 내려와 제가 차를 세워 놓았던 바로 옆 나무 뒤에 설치된 가스통을 교체해 주었답니다. 국민 여러분! 가, 나, 다동으로 시작되는 아파트 주민여러분! 가스 주문하실 때에 발음을 정확히 해 주십시오. 저, 집에서 가끔 쌍코피가 터집니다. 하루에 한두 개도 아니고 몇십 개씩 날라야 하는데, 제발 발음 좀 정확히 해 주세요.
Board 삶 속 글 2023.02.08 風文 R 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