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반대말 ‘낮’의 반대는 ‘밤’, ‘살다’의 반대는 ‘죽다’. 반대말은 어떤 상태의 양쪽 끄트머리로 우리의 시선을 잡아당긴다. 그 사이에 있는 우여곡절은 놓치게 하지. ‘깨끗하다-더럽다’ ‘따뜻하다-차갑다’ ‘다정하다-무정하다’처럼 사회문화적인 평가가 담긴 말은 한쪽으로 마음이 쏠리게 하지. '통일’의 반대말은 뭘까? ‘분단’이나 ‘분열’쯤 될 듯. 분단, 분열은 ‘쪼개지고 갈라졌다’는 부정적 감정을, 통일은 ‘하나되고 일치한다’는 긍정적 감정을 일으킨다. ‘우리의 소원’이기도 하니, 거역할 수 없는 지상명령이다. 통일만 된다면, 긴장과 대립은 사라지고 상처는 치유되며 온 세상에 일치와 단결의 함성이 드높아질 거라는 유토피아적 희망을 품게 된다. 그러다 보니, 분단, 분열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일상생활에서도 일사불란한 통일을 좋아한다. 식당에서 ‘짜장면으로 통일!’을 외칠 때 뿌듯한 일체감을 느낀다. 통일은 엄연히 존재하는 차이를 가려야 성립한다. 그런 점에서 획일화의 위험을 안고 있다. 반대편에 있는 ‘분단’, ‘분열’을 보자. 요즘 말로 바꾸면 ‘자유’나 ‘자치’라 하겠다. 각각의 자유가, 서로의 다름이 당당히 추구되고 성취되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그래도 함께할 구석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이 떠올라야 ‘같은 말과 피’라는 민족적·유전자적 차원보다 진일보한 통일이 가능하리라. 우리에게 더 많은 권력 분산, 더 많은 지방색, 더 많은 자치가 필요하다. 통일과 자유, 자치를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게 시대적 과제다. 반대말의 사이를 헤엄치며, 반대말을 뒤섞음으로써.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안병욱편" (1920~2013) 철학자. 수필가. 평남 용강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철학과 졸업. '사상계' 주간, 숭실대 교수 역임. 삶의 길잡이로 또는 사상의 안내자로 많은 젊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인물이다. "현대 사상" "사색인의 향연" "철학 노트" "알파와 오메가" 등 많은 저서가 있다. 생을 위한 사색 우리는 사색에는 반드시 내용이 있어야 한다. 사색은 언제나 무엇에 관한 사색이다. 무를 사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용이 없는 사색은 공허하다. 젊은 생명은 무엇을 위해서 사색해야 할 것인가. 청년은 인생의 제 2의 탄생의 시절이다. 청년의 눈은 밖에서 안으로 향하고 남에게서 나에게로 향하고 외적 대상에서 내적 자아로 향해야 한다. 청년의 사색의 초점은 주체적 자아의 자각과 확립에 있다. 내가 나를 알고 내가 나를 발견하고 나를 바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우리는 사색하는 것이다. 자아의 발견과 자아의 충실은 청년의 사색과 관심의 중심 목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22세의 젊은 키에르케고르는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어린이가 주위에서 자기를 구별하여 자아에 각성하게 되려면 상당한 세월이 필요하거니와 높은 정신 생활에 있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나는 이제야말로 참된 의미에 있어서 자아에 각성하고 깊은 의미에서 나라고 부를 수 있다. 지금까지 나에게 결핍되었던 것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자각하지 못한 점이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하기를 신은 바라고 있느냐. 그것을 위해서 내가 죽고, 또 내가 살 수 있는 그러한 이념을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나는 이제야말로 자아의 눈이 떴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고 나 자신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진지하게 행동하련다.' 고독과 성실의 실존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자아의 발견을 위해서 얼마나 진지하게 사색했는가를 엿볼 수 있는 유명한 구절이다. 어린아이가 '이것은 나의 집이다. 나의 손이다'하고 '나'라는 말을 쓰려면 여러 해가 걸린다. 자아의 발견과 자아와 타아의 구별은 어린애에게 대단히 중요한 정신적 사건이다. 높은 정신 생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마음 속 깊은 자각에서부터 '나는 나다'하고 자아에 각성한다는 것은 인간의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아의 탄생은 깊은 의미에서 진정한 인간의 탄생이다. 그것은 나다운 '나'가 태어나는 것이요, 본래적 자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에 의하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다. 그것을 그리스어로 옮기어 '그노티 세아우톤'이라고 일기에 썼다. 영어로 옮기면 'Knowtheself'다. 옛날 그리스의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의 대리석 벽에는 그노티 세아우톤 즉 '너 자신을 알라'라는 인생의 금언이 조각되어 있었다. 이 말을 철학적으로 말하면 '자아를 자각하라'는 것이다. 청년들의 사색의 목표는 자각에 있다.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 사색하는 것이다. 그러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며, 또 의미해야 하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자기의 사명을 자각하는 것이다. 자기가 인생에서 해야 할 사명을 바로 깨닫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의 일기에 의지해서 설명하면 내가 그 때문에 살고 또 그 때문에 죽을 수 있는 인생의 이념을 발견하는 일이요, 신 또는 하늘이 나에게 정말 바라고 있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일이다. 인간은 사명을 느끼는 존재요, 사명을 위해서 사는 존재다. 인간은 사명을 자각할 때 위대해진다. 일간은 사명적 존재다. 우리는 이 역사적 현실 속에 내던져졌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또한 내던지는 자유를 갖는다. 우리는 이 세상에 무엇인가 보람과 빛을 던져 던지는 자유를 갖는다. 우리는 이 세상에 무엇인가 보람과 빛을 던져야 하고, 또 던질 수 있는 존재다. 인생은 가치를 창조하고 자아를 실현하려는 노력이다. 저마다 자기다운 천분을 발견하고 그것을 키우고 발휘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자아를 실현하고자 자기의 천분을 마음껏 발휘하는 데 있다. 영국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이 말한 것처럼 '행복을 얻는 유일한 길은 행복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지 말고 행복 이외의 다른 목적물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데 있다.' 높은 이상의 실현을 위해서 밤낮으로 헌신 몰두할 때 우리는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고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인생은 곧 창조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저마다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왔다 가는 이상 사회에 무엇인가를 남기고 가야 한다. 나의 피땀과 노력으로 인해서 사회의 한구석이 밝아지고 역사의 한 모퉁이가 달라져야만 할 것이다. 인생을 성실한 창조의 일터로 생각하고 그것을 위한 준비를 할 때가 곧 청년 시절이다. 사람은 모두 자기다운 방식으로 천분을 갖고 있다. 둥근 돌멩이는 둥글어서 쓸데가 있고 모난 돌멩이는 모가 나서 쓸데가 있듯이 사람은 각자 개성적 천분을 지닌다. 우리의 할 일은 그것을 올바로 발견하고 꾸준히 키우고 보람 있게 발휘하는 것이다. 사명이란 하늘이 나에게 보낸 명령이요 목숨이다. 그것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인간은 높은 사명을 자각할 때 생활에 일관한 목표가 생기고 정신의 확고한 자세가 선다. 행동의 뚜렷한 원칙이 생기고 튼튼한 신념이 박힌다. 인간은 높은 사명에 살 때 비로소 악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고 불의의 타락 속에 전락되지 않는다. 진실로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고 인생에 보람을 주는 것은 높은 사명의 자각과 실천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은 '너 자신의 사명을 알라'는 뜻이다. 자아의 자각은 자기의 사명의 자각이다. 젊은이의 사색은 오로지 여기에 집중되지 않으면 안 된다. 프랑스의 유명한 생의 철학자 베르그송은 '사색인으로서 행동하고 행동인으로서 사색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인간은 사색한다. 그러나 사색은 사색을 위해서 사색하는 것은 아니다. 사색은 행동을 위한 것이다. 행동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색한다. 옳게 행동하려면 옳게 사색해야 한다. 사색이 없는 행동은 혼돈과 방향 상실의 행동이 되기 쉽고 행동이 없는 사색은 공허와 현실 유리의 사색이 되기 쉽다. 모두가 불완전함을 면치 못한다. 중국의 저명한 유가 사상가 왕양명이 이미 갈파한 바와 같이 지는 행의 시초요, 행은 지의 이루어진 것으로서 지행은 합일해야 하는 것이다. 사색은 행동의 원동력이 되고 행동은 사색의 결정체가 되어야 한다. 옳은 사색에서 옳은 행동이 나오고, 옳은 행동은 사색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저마다 옳게 살기 위해서 옳게 사색하기를 힘쓰자.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마이카의 여인 - 김진옥(여.경기도 군포시 금정동) 안녕하세요?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삼수생인 40대 중반 아줌만데, 오늘은 초보때 사지 떨리던 얘기 좀 하면서 또 도전해보려 합니다. 재작년 옆집에 살던 변순자 꼬임에 넘어가 저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자동차 운전학원에 나가게 됐지요. 학원비도 변순자가 다 꿔주며 아무 때나 돈 생기면 갚으라는 바람에 얼떨결에 따라가기는 했는데 가던 날부터 하여간 후회 많이 했지요. 첫날부터 긴 몽둥이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한쪽 다리를 약간 절뚝거리며 나이도 몇 살 안먹은 선생이 옆에 올라앉더니, 톤이 굵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겁니다. "아줌마! 나는 원래 두 번 설명은 안하는 사람입니다. 잘 듣고 보고 배우세요.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성질도 좀 나쁩니다. 개중엔 악질로 머리가 나빠 엄청 골탕을 먹이는 사람들이 몇 명씩 있는데, 자기 머리 나쁜 건 생각 않고 내가 심하다며 사무실을 들락거리는데, 아줌마는 절대 그런 축에 끼지 마십시오." 그 선생은 오만 인상을 쓰며 제게 미리 엄포를 놓더군요. '앞으로 이 노릇을 어찌할꼬.' 저는 바짝 긴장하며 남자 선생의 설명을 잘 들으려 눈 깜빡이는 수도 줄여가며 무릎 밑에 있는 발동작을 자세히 보려는 동안 제 몸은 점점 숙여져 젊은 남자 선생 몸에 밀착되어 있었죠. 게다가 긴장 탓에 숨소리도 거칠어져 갔고, 아무리 죽이려 애를 써도 더욱 커져가는 제 숨소리에 애태울쯤 남자 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답니다. "아줌마! 저리 좀 떨어져 앉아요. 내가 눌려서 맘대로 동작을 할 수가 없잖아요." 저는 화들짝 놀라 얼른 몸을 뒤로 젖혔죠. "처음엔 브레이크니 클러치니 설명해도 나이 들은 아줌마들은 머리에 잘 들어가지 않으니 하여간 요거는 1번, 요것은 2번, 또 요게 3번입니다. 내가 구령 붙이는 대로 1번은 왼발로, 2번 3번은 오른발로 살짝 밟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날부터 저는 뼈를 깎는 것보다 더 아픈 후회와 번민으로 몇 달, 아니 거의 일 년을 보내며 하루에도 수십번 '때려 치워라, 때려 치워라'하는 또 다른 저와 싸워야 했습니다. 얌전히 들어앉아 살림 잘하는 저를 데려다 왜 이 '쌩고생'을 시키느냐구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10명 되는 단체에겐 굉장히 많은 할인혜택이 있었대요. 끌어모으다가 모자라는 한 명에 제가 걸려든 겁니다. 시퍼런 칼날이 허공을 가르며 내는 '획-익 휙'소리를 내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1번 3번 다시 2번 그렇게 척척 발이 떨어지나요? 1번 꽉 밟고 3번 살며시 누르고.... 그런데 선생이 느닷없이 제게 고함을 치는 거예요. "아줌마! 동시에 1번을 천천히 놓으라고 몇 번 말해야 알아듣겠어? 왼쪽 발에 본드 발랐어? 아줌마 도대체 학교 어디 나왔어? 유치원 애들도 그만큼 했으면 알아듣겠다. 에-이 혈압 올라." 이젠 숫제 '야, 자'하는 거예요. '야! 이놈아 니가 아무리 그런다고 내가 옛날 초등학교밖에 못 나와서 그렇다고 불 것 같으냐? 그리고 너만 혈압 오르냐? 나는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으이구-. 성질대로 하면 몇째 아래 동생 같은 너 면상 한방 갈기고, 천년 만년 잘 해먹고 살라고 소리치고 박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 굴뚝 같다만, 머 아직도 변순자에게 갚아야 할 고래 심줄보다 질긴 내 생돈 135000원이 남았길래 그냥 참는다. 그래, 참자. 개같이 배워 정승같이 합격하자.' 몇 끼를 굶어도 빠지지 않던 제 체중은 날로 쌓이는 스트레스와 상하는 존심 때문에 줄어들었고, 변순자에게 갚아야 할 빚 때문에 우리집 식탁은 날로 여위어갈 즈음, 드디어 안산으로 시험을 보러 떠나며 웬수 같은 저 얼굴 두 번 다시 안 보게 되길 기도했죠. 그리고 안산 시험장에 도착해 기다리는 40분 동안 12번이라는 기록적인 믿기지 않을 만큼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진은 다 빠지고 차에 올라 제대로 차체 한 번 움직여보지 못한 채 사지를 덜덜 떨며 내려와야 했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을 때 누군가 그러더군요. 누군 사정해서 한 번 더 봐서 됐다구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죠. 저도 한 번만 더 해보면 틀림없이 할 수 있을 것 같다구요. 그러나 원서를 반납하는 조그만 창구엔 벌써 제 원서가 나와 있더군요. 하지만 전 용기를 내어 조그만 창문 안에 큰 얼굴을 들이밀며 애원했죠.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누구에게 부탁하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안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울먹였죠. "한 번만 더 보게 해주이소, 네. 오줌이 너무 자주 마렵고 너무 긴장해서 못했어예. 한 번만, 이번엔 자신 있어예. 에?" 저는 통곡을 하며 애원했지만 누구 하나 쳐다보는 사람도 없더군요. 저는 슬며시 원서를 잡아당겨 들고 돌아왔죠. 그리고 그 뒤로 지옥 같은 학원으로 세 번 더 되돌아간 뒤 드디어 면허증을 손에 쥐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저는 차가 갖고 싶어 미칠 것 같았어요. 설거지를 하다 바가지만 잡아도 운전대를 잡은 듯 돌려보고, 잠을 자려고 누우면 빨간 내 차를 타고 친정에도 갔다오고 시집에도 갔다오고 하는 그림이 천장에 환상처럼 보여 잠을 이룰 수 없었답니다. 차살 형편이 안되는 줄 알기 때문에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서 생가슴을 앓았죠. 그러다보니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어디 아프냐고 물었고, 전 잠을 못 자서 그런다고만 했죠. 시장엘 가도, 저 예쁜 차는 어떤 여자가 타고 시장엘 왔을까? 미장원엔? 목욕탕엔? 어딜 가도 차만 눈에 띄고..., 온통 내 머릿속에 차 생각밖에 없더군요. '아이구, 내 팔자야.' 전 한숨을 쉬며 팔자 타령도 해보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막상 무엇을 해 돈을 벌어야 할지 생각이 나질 않더군요. 그런데 구세주는 뜻밖에 가까운 곳에서 나타났어요. 과천에 있는 동생이 새차를 바꾸면서 쓰던 차가 아직 그런대로 쓸만하니 누나가 타려면 갖다 타라는 전화가 온 거예요. 그런대로 쓸만하지 않아도 굴러가기만 하면 황공하다는 생각에 당장 쫓아가 서류를 넘겨받아 시청에 가서 모든 수속부터 끝냈어요. 그리고 다음날 오후 동생이 몰고 온 차를 대면하는 순간, 새카만 선글라스와 빨간 모자를 쓰고 긴 머플러를 뒤로 휘날리며 드라이브하는 제 모습을 상상했던 저는 적잖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88년형 구형에다 페인트가 녹아 벗겨진 보닛은 완전히 흰머리 독수리의 머리같이 희끗희끗했고, 와이퍼 한쪽은 반 동강나 달아났고, 오른쪽 라이트는 반 애꾸였습니다. '그래, 좋다. 지금 내가 찬밥 더운밥 가리게 생겼느냐?' 토요일과 일요일 내내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동생에게 10시간 연수를 받고, 전 드디어 혼자서도 곧잘 하게 되었지요. '하- 드디어 마이카. 나도 마이카의 여인이 되었다.' 목에 힘을 주며 폼을 내며 끌고 나가 보지만 거리에 시선은 '쯧쯧 웬만하면 하나 거시기 하지. 그 연세에 형편이 그렇게 어렵나'하는 투더군요. 하지만 저는 아랑곳하지 않았죠. 월요일, 저는 큰 아들에게 말했죠. "얘야, 엄마가 데려다줄께." "엄만, 내 목숨이 엄마 건 줄 알아?" 단박에 퇴짜를 맞았고, 다시 둘째에게 부탁했죠. "엄마가 학교까지 태워다 주면 안되겠니?" "엄마! 나도 아직 갈 때가 안됐잖아?" 그래서 저는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애원했어요. "여보-옹, 제가 역전까지 태워다줄게요." "니 미쳤나? 아들이 아직 저렇게 어린데, 둘 중 하나라도 남아서 끝까지 책임져줘야 안되겠나?" 남편은 콧속에 큰 덩어리가 튀어나올 만큼 코방귀를 뀌더군요. "흥." 주인 잘못 만난 '똥차'는 하루가 다르게 그 기능과 몸체게 쇠약해져 갔고, 여기저기 박히고 찌그러지고.... 하여튼 그 동안 깨진 돈만 해도 엄청나나, 그럴 때마다 저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여보-옹, 오늘 또 어떤 나쁜 놈이 내 차를 박고 메모지 한 장 없이 내뺀 거 있지?" 이런 저의 변명이 처음엔 남편에게 효과가 있었지요. "어떤 나쁜 놈들이 그런 몹쓸 짓을 하고 그냥 내빼! 우리 나라는 그런 양심없는 인간들이 많아서 아직도 멀었어." 그러나 이렇게 말하던 남편도 나중엔 왜 허구 많은 차중에 맨날 우리 차만 박고 긁고 도망 가냐며 약간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부부생활에 크나큰 위기까지 몰고 온 사건이 터지고 말았답니다. 우리 집은 역에서 걸어서 20분 거린데, 그날은 폭우가 쏟아졌고, 우산을 써도 옷이 다 젖어버리겠다는 생각에 저녁을 일찍 준비해 놓고 저는 역으로 마중을 나갔죠. 뜻밖의 마중에 억수로 쏟아지는 빗속에서 남편을 부르며 차문을 열어주니, 남편은 그리 싫지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한마디 하더군요. "길 미끄러운데 뭐하러 나왔노." 저는 달렸죠. 자랑스럽게 남편을 태우고 빗속을 달렸어요. 그런데 차가 좌회전 신호를 받아야 하는 곳까지 왔을 때 갑자기 시동이 스르르 꺼져버리는 거예요. 저는 클러치를 너무 약하게 밟고 있었나 생각하며 다시 힘주어 클러치를 밟고 시동을 걸어 보았지만 그렁-그렁- 소리만 요란하지 시동이 걸리지 않았어요. 좌회전 화살표시는 그려졌지, 시동은 안 걸리지, 뒤차들은 난리라도 난 듯이 경적을 울려대지, 정말이지 암담하더군요. 옆자리 남편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어떻게 된 거냐고 다그치는데, 전들 알겠어요. 할 수 없이 저는 쏟아지는 빗소리 때문에 더욱 목청을 돋우며 소리쳤죠. "오라이- 오라이, 왼쪽으로 완전히 꺾어요. 예 예 됐어요. 스톱." 이렇게 소리치며 차를 주먹으로 쾅쾅 쳐가며 대충 차들을 빼주고 난 다음, 제 몸을 내려다보니 세상에 얇은 여름 옷들은 거머리같이 제 몸에 찰싹 달라붙어 그렇게도 처절하리만치 애써 감추려 평소 거리를 걸을 때 숨도 안 쉬고 입술이 파리해질 정도로 들이밀고 다니던 중년 부인의 '똥배'는 생긴 대로 적나라하게 튀어나와 빗속에서 바가지가 춤을 추듯 상하좌우로 중심없이 흔들렸고, 속알머리는 다 빠져버린 지 오래인 테두리 몇 가닥 머리들은 물먹은 창호지처럼 자꾸만 밑으로 처져 제 시야를 가렸어요. 정말이지 오늘의 이 모욕은 죽을 때까지 잊혀질 것 같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와중에도 남편은 차 속에서 꼼짝도 않고 눈에 독기가 서린 채 앉아 있더군요. "보이소. 이게 뭐 내 잘못인교? 나와서 차 좀 밀어주이소. 옆에다 대 놓고 가야지예?" 그러자 남편은 소릴 지르는 거예요. "내 언제 이 똥차 몰고 나 마중나오라고 삐삐 쳤더나?" "아니예. 나는 당신 옷 젖을까봐 생각해서 나왔지예." "시끄럽다! 그래도 뭘 잘했다고. 내 다시 이차 한 번만이라도 타면 내 인간이 아이다." 그러더니 양말 속에서 담뱃갑을 꺼내더니 '에이씨'하면서 담뱃갑을 길 옆 숲에 내동댕이치곤 뒤도 안 돌아보고 혼자 가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화가 나서, 뒤따라가 말했어요. "내가 무신 죽을 죄졌나? 이 밴댕이 속 같은 인간아. 소갈머리라곤 여자만도 못한 인간아 내가 뭐 잘못했나. 말해봐라. 그기 그렇게 화낼 일이가?" 악이 나서 고래고래 소릴 지르자 용감하게 걸어가던 남편이 갑자기 돌아섰어요. "이기 그래도 잘했다고, 니 여기서 한번 죽어볼래?" 그러면서 그의 손이 쏟아지는 빗속으로 번쩍 치켜 올려지는 거예요. "아유, 성질대로 하면 그냥 콱!" 하지만 못 때리지요. 그 이후로 이날까지 남편은 밤마다 벽을 사랑하게 되었고, 저는 허구헌날 그의 등짝만 바라보며 잡니다. 그날 굉장히 화가 많이 났나봐요. 여간해서 가슴을 보여주지 않네요. 이미 쌀쌀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데. 언제면 남편의 넓은 가슴에 안겨 잠들 수 있을지, 두 분 무슨 묘약 없나요? PS. 자동차 병원비라도 벌려고 조그만 전자회사에 취직했지요. 하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크네요.
Board 삶 속 글 2023.01.15 風文 R 612
백면서생(白面書生) 白:흰 백. 面:얼굴 면. 書:글 서. 生:날 생. [출전]《宋書》〈沈慶之傳〉 오로지 글만 읽고 세상 일에 경험이 없는 젊은이를 이르는 말. 남북조(南北朝) 시대, 남조인 송(宋)나라 3대 황제인 문제(文帝:424~453) 때 오(吳:절강성) 땅에 심경지(沈慶之)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힘써 무예를 닦아 그 기량이 뛰어났다. 전(前)왕조인 동진(東晉:317~420)의 유신(遺臣) 손은(孫恩) 장군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는 불과 10세의 어린 나이로 일단(一團)의 사병(私兵)을 이끌고 반란군과 싸워 번번이 승리하여 무명(武名)을 떨쳤다. 그의 나이 40세 때 이민족(異民族)의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장군에 임명되었다. 문제에 이어 즉위한 효무제(孝武帝:453~464) 때는 도읍인 건강(建康:南京)을 지키는 방위 책임자로 승진했다. 그 후 또 많은 공을 세워 건무장군(建武將軍)에 임명되어 변경 수비군의 총수(總帥)로 부임했다. 어느 날 효무제는 심경지가 배석한 자리에 문신들을 불러 놓고 숙적인 북위(北魏:386~534)를 치기 위한 출병을 논의했다. 먼저 심경지는 북벌(北伐) 실패의 전례를 들어 출병을 반대하고 이렇게 말했다. “폐하, 밭갈이는 농부에게 맡기고 바느질은 아낙에게 맡겨야 하옵니다. 하온데 폐하께서는 어찌 북벌 출병을 ‘백면서생’과 논의하려 하시나이까?” 그러나 효무제는 심경지의 의견을 듣지 않고 문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출병했다가 크게 패하고 말았다.
Board 고사성어 2023.01.15 風文 R 839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안병욱편" (1920~2013) 철학자. 수필가. 평남 용강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철학과 졸업. '사상계' 주간, 숭실대 교수 역임. 삶의 길잡이로 또는 사상의 안내자로 많은 젊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인물이다. "현대 사상" "사색인의 향연" "철학 노트" "알파와 오메가" 등 많은 저서가 있다. 생각하는 갈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프랑스의 근대 합리론 철학자 데카르트의 이 말은 인간의 본질과 핵심을 드러낸 명언이다. 인간을 동물의 질서에서 엄연히 구별하는 근본 특색은 생각하는 능력에 있다. 인간은 사고하는 존재자다. 동물은 본능적 충동으로 살아간다. '먹고 자고 생식하고 죽는다.' 동물의 생은 이 네 개의 단어로 요약된다. 그러나 인간은 살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생각하는 것은 이성의 능력이요, 양식의 기능이다. 이성은 인간이 날 때부터 갖고 있는 자연의 빛이다. '양식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되어 있다.' 데카르트 철학의 명저 "방법 서설"의 제일 서두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데카르트가 여기서 말하는 양식, 즉 봉상스란 곧 이성을 의미한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모든 인간에게는 날 때부터 이성이라는 자연의 빛이 가장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다. 이성이란 '사물을 바로 판단하고 거짓을 분별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이성이라는 능력을 올바로 사용하여 사물에 대해서 옳고 그른 판단을 똑똑히 가져야 한다. 생각하지 않는 머리는 머리가 아니다. 바로 사색하고 옳게 판단할 줄 모르는 이성은 이성이 아니다. 이성의 이성다운 속성은 '생각하는 힘'에 있다. 진리와 허위를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이 이성의 생명이다. 사색하는 능력과 이성의 빛에서 인간의 본질을 찾으려고 한 데카르트의 호모사피엔스의 인간관은 분명히 인간의 핵심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는 데카르트와 더불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을 다시 한 번 강조해서 선언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생각하기를 그만둔다면 그는 인간의 본질을 포기하는 것이다. '코키토 에르고 숨'은 인간이 인간임을 당당하게 선언하는 말이다. 데카르트와 거의 비슷한 사상을 우리는 파스칼에서 본다. 파스칼은 데카르트보다 27년 후에 출생해서 12년 후에 별세하였다.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한 파스칼의 말은 너무나 유명하다. 인간은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처럼 지극히 약한 존재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생각하는 힘이 인간을 위대하게 한다. 인간의 품위는 생각하는 점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옳게 생각하도록 힘써야 한다고 파스칼은 주장했다. 파스칼의 "팡세"에서 사색에 관한 유명한 단장을 몇 개 인용해 보기로 한다. '인간은 한 개의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 속에서 가장 약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사색이 인간의 위대성을 이룬다.' '나는 손도 발도 머리도 없는 인간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는 인간을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런 것이 있다고 하면 돌멩이나 짐승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품위는 생각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잘 생각하기로 힘쓰자. 이것이 도덕의 원리다.' 분명히 인간의 인간다운 품위와 존엄성과 위대성은 인간이 이성을 갖고 생각하는 점에 있다. 파스칼이나 데카르트는 누구보다도 그것을 강조하고 선언한 사상가들이다. 그러나 나는 현대인의 사색에 관해서 하나의 위기를 지적하고 싶다. 현대인은 매스컴의 위력에 눌려서 자기 머리로 끈기 있게 생각하는 자주적 사고력을 점점 상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매스컴의 복잡한 체계 속에서 살고 있다. 매일같이 신문을 읽어 보아야 하고 라디오를 들어야 하고, 또 TV와 마주 앉고 영화를 보게 된다. 날마다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고 외부에서 강한 자극을 받는다. 사물에 의해서 나의 사색을 정리하고 나의 판단을 갖기 전에 남의 판단을 받아들이고 남의 의견을 읽게 된다. 우리의 머리는 자주적으로 생각하는 기관에서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기관으로 전략하기 쉽다. 생각하는 갈대에서 감각하고 수용하는 갈대로 변질한다. 현대인은 자기의 머리로 줄기차게 사색하는 습관과 능력을 잃어버리기 쉽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지식'은 많아도 '지혜'는 적다. '의식의 과잉'과 '예지의 빈곤'이것이 현대의 지식인이 빠지기 쉬운 결합이다. 남의 판단과 의견을 비판과 사고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정신의 노예요 사상의 종이다. 우리는 자기의 머리로 생각하고 자기의 판단과 의견을 가져야 한다. 옛날의 철학자들처럼 스스로의 머리로 줄기차고 끈기있게 사색하는 습관과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러기에 철인 칸트는 청년들에게 언제나 다음과 같은 경고를 잊지 않았다. '스스로 사색하고 스스로 탐구하고 자기 발로 서라.' 이것은 사색에 관한 귀중한 헌장이요, 계명이 아닐 수 없다.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형님, 빨리 나오세요 - 이규옥(여.충북 제천시 화산2동) 바야흐로 연말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세개의 큰산을 넘어야 하는 연말. 후딱가는 나이와 후회와 그리고 음주단속, 특히 음주단속에 대해서는 무지막지하게 할말들이 많을 거예요. 전국적으로 하루에 1500명이 걸렸느니 어쩌느니 하는 음주단속. 5년 전 음주 합동 단속에 걸려 거금 5십만원을 낸 간 큰 제 남편 얘깁니다. 며칠전 함박눈이 오살지게 내리던 날이었어요. 금요일이었죠.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이면 음주단속을 합니다. 그래서 되도록 마시더라도 그날만은 기필코 잠시 쉬어 보라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까마귀 고기를 먹었는지, 간에 금이 갔는지 마신 거예요. 친구 다섯 명이 1차 삼겹살에 소주 예닐곱 병을 떠끔 해치우고 2차로 포장마차에 갔다가 입가심으로 어묵에 소주를 약간 곁들여 세 병을 마시고는 나오니까 눈이 푸짐하게 내리더래요. 시계를 보니까 꼭두새벽-. 창걸이란 친구가 말하더랍니다. "오늘 니들의 안전 귀가는 내가 책임지겠어. 설마 지들이 이 눈 맞아가며 단속할라고? 야, 타." 하고는 걱정반 장난기반인 친구들을 태우고는 큰 도로를 피해 음주 단속한 적이 절대 없다는 골목을 찾아 요리조리 섭렵해가며 자그마한 언덕배기 밑에 사는 동철이를 1호로 내려주려고 기분 좋게 밟는데 갑자기 뒤에서 다급한 소리로 "야, 차 세워. 짭새 떴다. 빨리 세워 임마." 친구들이 모두 어디, 어디를 연발하다 보니까 앞에 뻘건 몽둥이가 왔다갔다 하더라는 거예요. 차를 찍 세우고 고개를 부르르 떨고 보니까 앞에 차는 두 대밖에 없었고, 경찰과는 불과 20미터도 안되게 대치가 되었더랍니다. 옆으로 샐 골목도 안 보이고 앞뒤로 차는 있고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서 창걸씨가 "야, 다 내려. 빨리 빨리."하더랍니다. 영문도 모르고 둘 더하기 둘이 넷이라는 것도 모를 것 같은 사람들이 쭈루룩 내려서 차 옆 인도에 일렬로 쭉 섰대요. 시나브로 앞차를 다 보낸 경찰이 공포의 뻘건 몽둥이를 들고 두 사람이 저벅저벅 내려와서 몽실몽실 잘도 내리는 눈 사이로 다섯 사람의 얼굴을 죽 훑어보더니 "어느 분이 운전했어요. 긴 말 안할 테니 얼른 나와요. 추운데 시간 끌지 맙시다." 하니까 모든 시선들이 창걸씨에게 갈 수밖에요. 도합 6명, 12개의 눈동자가 불똥튀기며 쳐다보니까 이 친구가 갑자기 길건너의 집을 쳐다보면서 "형님, 거 얼른 좀 나와요. 왠 볼일을 그렇게 오래 봐요. 여기 경찰분들이 추운데 기다리시는구만요. 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길건너 집으로 쏠렸고 그중 네 사람은 무슨 영문인지 감을 못 잡고 있다가 뒤늦게 알아듣고는 말하더랍니다. "정말, 아까 저녁을 너무 많이 먹더라니...." "저 형님이 원래 장이 좀 안 좋아. 그래서 들어가면 바로잖아."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중요한 시간에." "형님, 엔간히 했으면 나왔다 다시 가시우." 저마다 한마다씩 거들었지만 불꺼진 집에서는 잠잠..., 다섯 명이 그렇게 수선스럽게 했는데도 경찰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안하고 있더랍니다. 뒤에 와서 서는 차들은 음주 측정도 안하고 그냥 보내기를 10여분, 영락없이 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경찰들은 친구들의 얼굴에서 뭔가 구린 냄새를 맡았는지 의심스런 얼굴로 물어보더랍니다. "이봐요, 댁들 혹시 거짓말하는 거 아니오? 이중에 운전한 사람 있지요?"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갔고, 다섯의 입에서 헉헉거리며 뿜어내는 술냄새는 안 불어도 영락없는 구치소감이었고, 전과자인 남편의 꽁지는 점점 내려가고, 다급해지니까 탈출구를 찾을 수밖에요. 창걸씨가 정말로 형님을 찾을 듯이 투덜거리며 길을 건너 담도 없는 집앞에서 현관문을 '톡'소리가 나게 두드리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형님, 빨리 나와요."하면서 등에 진땀이 삐질삐질 나는 걸 느끼며 제발 운전할 줄 아는 남자가 나와주길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빌고 서 있는데 뒤에서 경찰이 창걸씨에게로 걸어오더랍니다. 그 친구 벼랑 끝에 선 거죠. 길건너 네 명의 친구는 한 명의 경찰 앞에서 도망도 못 가고 뻔한 거짓말에 술땀을 빼며 서 있고, 저승사자 마냥 걸어오는 경찰의 공포를 온몸으로 느끼며 창걸씨는 조금 더 세게 두드리며 "형님, 형님"을 두 번쯤 불렀는데 안에서 기척이 나면서 현관 불이 켜지면서 나오는데 머리가 길더랍니다. 그사이 경찰은 옆에 버티고 서 있고, 속바지 바람으로 웬 소란인가 싶은 듯 멀뚱하게 나오는 아줌마 앞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형수님, 깨셨군요. 형님이 볼일보러 가서 영 안 나오시길래 왔어요. 볼일 다 안 끝나셨대요, 형님은?" 연신 눈을 찡긋하며 입을 좌우로 움직이며 눈짓을 하며 제발 알아채주길 바랐건만 그 아줌마 하는 소리 "뭔 소리래요, 우리집 양반 오늘 장삿집에 밤샘하러 갔는데. 집을 잘못 찾은 갑네요. 그라구 우리집 양반은 외아들이구 키도 커요." 야멸차게 한마디 던지고는 펑퍼짐한 방뎅이를 돌리는데 그곳에 붙어 들어가는 천국과 자기 몸에 쩍 달라붙는 지옥이 보이더랍니다. 20*8의 비애(160cm)의 짊어진 창걸씨의 머리엔 앞으로의 수많은 고난들과 함께 마나님의 얼굴이 쏟아져 들어왔고 도다리 눈을 하고 째려보던 경찰이 "내가 차에서 다 내려 쭉 서 있을 때부터 알아봤지. 이젠 수를 쓰다쓰다 별수를 다 써. 귀신을 속이지 나를 속여 먹을라고? 차로 갑시다." 창걸씨는 현관문을 한 번 째려보고는 코낀 소마냥 어그적 오면서 아무리 궁여지책 머리를 굴려도 살아날 구멍이 보이질 않더래요. 당연히 방법이 없죠. 음주단속이 얼마나 강화됐는데요. 술마시면 택시 타고 올 것이지 겁도 없이 음주운전을 했으니 도리가 있겠어요. 다섯 사람은 다시 쭉 차 옆에 서서 운전한 사람 나오라는 소리를 들으며 차마 창걸이 저 녀석이 주범이라고 입으로는 말 못하고 눈으로 쟤라는 눈짓을 하며 오는 눈 다 맞아가며 뭐 마려운 강아지 마냥 어정거리는데 저만치서 남아있던 경찰 한 사람이 왜 안 오느냐고 채근을 하며 내려오는데 남편은 하마터면 전지전능하신 부처님인 줄 착각을 할 뻔 했대요. 주위가 환해지면서 얼굴에는 광채가 나고 주위가 환희의 빛으로 가득하더래요. 다름 아닌 그는 고등학교 한해 후배였다는 거죠. '선배 알기를 하느님같이.'라는 훈령이 그 순간 머리를 오싹거릴 정도로 스치고 지나갔으니 사막에서 물을 만난 듯 손을 덥석 잡고는 고생이 많구먼 하면서 저쪽으로 끌고가서는 아버지라도 봐줄 수 없다는 후배를 협박반, 애원반 해서 머리를 90도 각도로 절을 해대고는 무사히 탈출을 했답니다. 친구들이 다 운전을 하는 직업들이라 생명줄이었거든요. 갈수록 면허 따기가 힘들어지잖아요. 또 그 벌금은 어쩌구요. 2-3일 후 남편은 그 후배 친구를 불러내 고맙다고 한턱내는 자리에서 후배가 그러더랍니다. 마셨으면 깨끗하게 불고 벌금내면 되지 남에 집에 대고 형님 찾는 일은 하지 말라구요. 어떤 사람은 단속 경찰 앞에서 턱 내리더니 네발로 엉금엉금 기어서 도망가길래 당신 음주 측정 좀 합시다 했더니 그 사람이 요즘은 개도 음주 측정하남? 하더라며 그 짝 아니냐구요. 차후로 이런 일이 있으면 절대 아는 척은 사절한다고 하더래요. 그후 남편은 거나하게 한잔하고 들어오면서 자랑스럽게 한마디 하죠. "자기야, 나 택시 타고 왔다." 애주가 여러분 음주운전은 절대 하지도 생각지도 맙시다!
Board 삶 속 글 2023.01.14 風文 R 641
백년하청(百年河淸) 百:일백 백. 年:해 년. 河:물 하. 淸:맑을 청. [원말] 백년사하청(百年俟河淸). [동의어] 천년하청(千年河淸).[유사어]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 [출전]《春秋左氏傳》〈襄公八年條〉 백 년을 기다린다 해도 황하(黃河)의 흐린 물은 맑아지지 않는다는 뜻. 곧 ①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사물(事物)이 이루어지기 어려움의 비유. ② 확실하지 않은(믿을 수 없는) 일을 언제까지나 기다림(기대함)의 비유. 춘추 시대 중반인 주(周)나라 영왕(靈王) 7년(B.C. 565), 정(鄭)나라는 위기에 빠졌다. 초(楚)나라의 속국인 채(蔡)나라를 친 것이 화가 되어 초나라의 보복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곧 주신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으나 의견은 초나라에 항복하자는 화친론(和親論)과 진(晉)나라의 구원군을 기다리며 싸우자는 주전론(主戰論)으로 나뉘었다. 양쪽 주장이 팽팽히 맞서자 대부인 자사(子駟)가 말했다. “주나라의 시에 ‘황하의 흐린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린다 해도 인간의 짧은 수명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 진나라의 구원군을 기다린다는 것은 ‘백년하청’일 뿐이오. 그러니 일단 초나라에 복종하여 백성들의 불안을 씻어 주도록 합시다.” 이리하여 정나라는 초나라와 화친을 맺고 위기를 모면했다.
Board 고사성어 2023.01.14 風文 R 1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