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언어예절 물건이 넘치는 시대다. 이를 만들고 사고팔고 쓰게 하자면 말이 필요하다. 그 말을 엮은 게 ‘일러두기’다. 본디 내용이 복잡한 사전에서 책머리에 두어 그 읽는 법을 갖춘 글을 일컫는 말이다. 기계·기구를 켜고 끄고 다루는 원리와 방법, 컴퓨터 차림·소프트웨어 작동법, 음식·약물 조리법이나 먹는법 등을 베푼 글들을 ‘기술글’이라고 하는데, 성격상 ‘일러두기’와 맞아든다. 지침서·설명서·편람·안내문·매뉴얼 따위가 이에 든다. 산업과 무역 발달이 일렀던 서양에서는 이런 유형의 글쓰기 고민도 일렀다. 예컨대 비행기나 자동차를 만들어 팔아먹자면 물건도 좋아야 할 뿐더러 내외국인을 상대로 그 사용법을 알려야 했던 까닭이다. 물건을 만들 때나 사용법을 설명하는 데서 공통으로 갖출 것이 있다면 역시 ‘편하고 쉽게’가 될 터이다. 물건을 제대로 부려 쓰게 하자면 설명이 정확하고 쉬워야 하며, 오작동·오용 위험을 막자면 주의·지시·요구·경고하는 말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쉽고 적절한 용어를 가려 쓰면서 겸손하면서도 정중한 말투를 갖춰야 한다. 대우법이 발달한 말을 쓰는 나라에서는 적절한 높임말로 서술해야 하고, 명사와 동사는 일차적인 의미로 한정해 쓸 필요가 있다. 관형어나 부사어는 아껴 쓰되 제자리에 두고, 문장은 단문 위주로 쓸 것을 주문한다. 잘 다듬은 일러두기는 딴나라 말로 뒤치기도 쉽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돼지 짐승이름 꿈에 돼지를 보면 복이 온다는 말이 있다. 전날 돼지를 ‘돋·돝·도’라고 했다. ‘도’는 도-개-걸-윷-모의 도다. 도는 ㅎ종성으로 쓰이는 낱말로 ‘도’가 ‘돋-돝’으로 굳어진다. ‘도’와 ‘돼지’와의 관련은? 강아지·송아지의 접미사 ‘-아지’가 ‘도’에 붙어 도야지>돼지로 소리가 바뀌어 오늘에 쓰이게 되었다. 저(猪)의 고대음 ‘됴’가 바뀐 형태로 보기도 한다. 한편으로 돼지 돈(豚)이 우리말 ‘돈’과 소리가 같아서 돼지가 ‘재물’과 관련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고구려 유리왕 때 하늘제사에 쓰려고 기른 돼지 교시(郊豕)가 달아났다. 제수를 맡은 설지(薛支)로 하여금 달아난 교시를 잡아서 그 곳(국내성) 사람들에게 맡아 기르게 하였다. 설지는 임금에게 서울을 국내성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고 하자 임금이 답사한 뒤 서울을 옮겼다. 하늘에 바칠 돼지가 달아나 머물던 곳인 까닭이다. 고려 태조 왕건의 할아비 작제건(作帝建)은 서해 용왕을 돕고서 그 대가로 용왕의 딸과 돼지를 얻어서 고향으로 돌아온다. 왕건이 고려의 수도를 송악으로 정하게 된 데는 돼지와도 관련이 있겠다. 돼지는 열두 지지 가운데 마지막 짐승이다. 상해일(上亥日)이라 하여 매사를 삼가라는 가르침을 준다. 신라 소지왕이 겪은 사연에서 비롯된다.(삼국유사) 방위로는 북서북, 시간으로는 9-11시다. 먹거리로서보다는 상징으로 돼지가 우리와 가까운 짐승임을 깨닫는다. 정호완/대구대 교수·국어학
갈두·갈헌 사람이름 세조 2년(1456년), 단종 복위 운동과 관련하여 앞 못 보는 점바치 나갈두(羅加乙豆)를 국문하였다. 부엉이가 대궐 북쪽에서 우는데 무슨 까닭이냐 봉보부인이 사람을 시켜 물었는데, 상왕(단종)이 오래지 않아 임금 자리로 돌아올 징조라고 대답했다고 하였다. ‘갈두’는 땅이름에도 보인다. 외국 사신들이 천하명승으로 꼽던 서울 서강의 加乙頭(가을두)는 ‘갈두’ 아닌 ‘덜머리’(乫頭里)이며 절두산 성지로 더 알려졌다. 꼭두각시놀음과 봉산탈춤에서 박첨지와 영감의 시앗이 덜머리집이다. 결혼한 여인은 친정 고장 이름을 따 춘천댁·금산댁·공류골네 따위로 불린다. ‘덜머리댁’을 예전엔 덜머리집으로 부른 듯하다. 전남 해남의 葛頭(갈두)는 ‘땅끝마을’로 더 알려졌는데,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칡머리’라고도 부른단다. ‘갈헌’이라는 사람에 성종 때의 임갈헌과 숙종 때의 이갈헌, 궁녀 갈헌 등이 있다. <고종실록>을 보면 청나라가 초소를 철수하여 봉화를 올릴 일이 없게 되자 평안도 강가 초소를 거두는데, 그 가운데 짓골과 갈헌골이 있다. 아울러 함경도 정평에 갈헌천이 있다. 사람이름 갈두와 갈헌은 야인이름에도 갈두/갈투, 갈헌/갈한으로 나타난다. 야인 지역에서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쓰인 갈두와 갈헌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아직 밝혀진 바 없다. 갈두(碣斗)로 적는 한자말은 ‘이치에 어긋남에도 자기 주장을 끝까지 관철시키려고 무리지어 다투는 것’을 이르는 불교 말이라고 한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보게‘마씀’ 고장말 “혼디 모앙 살아 보게마씀.”(한데 모여 살아 보게요) ‘-마씀’은 제주에서 말끝에 붙여 쓰는 말이다. 말맛을 표준어로 바꿔 살리기는 어렵지만, 굳이 대어 보자면 들을이를 두루 높이는 데 쓰는 ‘-요’에 가장 가깝다. ‘-마씀’은 제주에 간들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말할이와 들을이가 절친한 관계가 아니면 잘 쓰지 않기 때문이다. “고 선생은 무슨 큰일을 헌다고 야단인고마씀.”(<불과 재> 현길언) “어들 감수광?”(어디 가십니까?) “나마씀?”(나요?) ‘-마씀’은 ‘마슴·마시·마씨·마씸’과 같이 쓰이기도 한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우꽈? 순이 삼춘이 돌아가셔서마씸?” “이장님마씸, 우리 사촌동상이 금녕지서에 순경으로 있우다. 김갑재라고마씸.”(<순이 삼촌> 현기영) ‘-마씀’과 바꿔 쓸 수 있는 제주말은 ‘-양’이나 ‘-예’다. ‘-예’는 제주말보다는 경상도 사람들의 전형적인 말투로 더 알려진 고장말이다. “삼춘, 어들 감수광?” “서울에 감수다양.” “자윈 혼저 감저양.”(저 아이는 혼자 가네요.) 다만 ‘-마씀’은 표준어 ‘-습니다’의 제주말 ‘-수다, 우다’와 함께 쓸 수 없지만, ‘-양’은 그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 제주 사람들은 “난 서울에 감수다마씀.” “버리밧(보리밭)이 사뭇 해영허게(하얗게) 눈이 덮였는디 말이우다마씀”과 같이 말하지 않는다. ‘-마씀’은 전라도말 ‘-라우’나 충청도 말 ‘-유’와 같이 제주말의 한 전형을 드러낸다.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설명글 언어예절 자연과학과 공학을 합쳐 이공학이라고 한다. 이쪽 글은 여러 수식·기호·그림들로 연구·실험 과정과 결과를 엮고 설명하는 부분이 많다. 그렇다고 인문학 글과 이공학 글이 형식에서 특별히 다를 것은 없다. 대체로 이공학 쪽은 사물의 이치와 법칙, 성질, 검증된 결과를 밝히고 설명하는 까닭에 쉽고 간략하며 딱딱한 편이다. 글쓰기를 본업으로 여겨 힘을 기울이지만 아무래도 비유와 꾸밈이 잦고 복잡하며 대상이 추상적인 인문학 쪽과는 경향에서 좀 대비되는 편이다. 어떤 분야든 글이 지녀야 할 조건은 비슷하다. 그 조건을 갖추며 글을 쓰는 게 최소한의 예의다. 쉽게·정확하게·간략하게·틀에 맞게 …들이 그것이다. 여기서 하나만 내세우라면 ‘쉽게’가 될 터이다. 쉬운글을 쓰라는 얘기다. 그러자면 내용을 잘 알아 정확하게 써야 하며, 그 결과는 짧고 간략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선 ‘읽기가 쉽다’면 성공한 셈이다. 쉬운글을 쓰자면 상당한 훈련과 노력이 따라야 한다. ‘정확하게’란 개념 혼란이 없는 용어, 맞춤법에 맞는 표기, 조리에 맞는 서술들과 관련이 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읽혀서는 곤란하다. 읽기에 혼란을 준다면 이는 전달에 실패했다는 말이 된다. 했던 말을 되풀이한다거나 상투적인 말, 군더더기 표현들은 글을 늘어뜨리고 읽기를 싫증 나게 하는 요소들이다. 버릴 것은 버리고 갖출 것을 갖춘 글은 외국어로 뒤치기도 쉽다. 요즘은 외국어로 쉽게 번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도 더해지는 듯하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용 짐승이름 해동에 여섯 용이 나타나시니 모든 일에 하늘의 뜻 아님이 없도다.(용비어천가) 여기서 용은 조선 건국과 관련한 세종 임금의 선대들을 이른다. 용포·용루·용안·용상 …들이 모두 임금과 관련한 말들이다. 용의 옛말은 ‘미르’(훈몽자회)다. ‘미르’는 물(水)이니 ‘밀-물’로 이어지는 낱말 겨레라 할 수 있다. 용은 물과 불을 다스리는 상징이었다. 농경 시기에 물이란 신격일 만큼 소중한 것이었다. 한자음으로 용은 영(靈)과 상통하는 바 있다. 땅이름에도 ‘용 계열’이 숱하다. 용산(미르기메)·용천(미리내)·용소(미르기물)에다 용강·용전·용지·용성·용담·용두 …들이 곳곳에 있다. 단군신화의 풍백·우사·운사도 용의 의인화 과정 아닐까? 고주몽도 마찬가지. 해모수와 오룡거에서 용이 끄는 수레가 바로 용과의 관련을 드러낸다. 석탈해 임금도 용성국(龍城國) 사람이다. 백제 무왕이 연못의 용과 어머니 사이에서 났다.(서동요) 용건(龍建)의 아들 고려 태조 왕건, 용의 후손이란 창녕 조씨 시조 조계룡 …두루 같은 범주들이다. 용은 주로 임금과 같은 권위의 화신으로 받들린다. 이서의 마경초집(馬經抄集)에 동계(東溪) 선생이 곡천(曲川) 선생에게 말의 계보를 물어본다. 용에서 토끼로, 토끼는 기린으로, 기린은 말로 계보를 이어간다. 말도 천마사상과 같이 하늘과 통하는 신령성을 부여함을 보면 두루 짐승을 인간의 조상으로 믿는 토템의 한 얼 안에 넣어야 할 것이다. 용 날아 빛나는 거기 온갖 사랑 강물처럼. 정호완/대구대 교수·국어학
어둔이 사람이름 숙종 22년(1696년) 평안도의 굶주린 백성 이어둔(李於屯)이 사람고기를 먹었는데, 임금은 굶주려 실성해 한 일일 거라며 죽음은 면케 했다. 울산에서 마흔 명이 울릉도에 고기잡이 갔는데, 왜인들이 박어둔·안용복 두 사람을 잡아갔다. 두 사람은 일본 막부에서 울릉도가 조선땅임을 강력히 주장하고 막부로부터 울릉도가 조선 영토라는 ‘서계’를 받아냈다. 돌아오는 길에 대마도주에게 이를 빼앗겼는데, 대마도주는 죽도(竹島)가 일본땅이므로 고기잡이를 금지시켜 달라는 내용으로 위조해 사신을 조선으로 보냈다. 일본은 울릉도를 죽도라 했다. 1694년, 조선은 울릉도가 조선 영토임을 밝히는 문서를 일본에 보냈다. 이태 뒤, 안용복과 박어둔은 다시 울릉도에 고기잡이 갔다가 일본 어선을 발견하고 송도(松島)까지 따라가 정박시킨 뒤 조선 바다에 들어와 고기를 잡지 말라고 꾸짖었다. ‘울릉·우산 양도 감세관’이라 칭하고 일본 호키주(시마네현)에 들어가 번주에게 범경 사실을 알려 사과를 받고 돌아왔다. 사람이름에 어둔이·어둔개·어둔복이·어둔쇠(사내), 어둔이·어둔덕이(계집)가 있다. ‘어둔’은 어둡다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 ‘어둔이’라는 땅이름도 여럿 있다. 울릉도 동쪽에 죽도(우산도)가 또 있다. 일본은 ‘죽도’라는 이름에 한때는 울릉도, 요즘은 독도를 꿰맞준다. 독도 문제를 분쟁화하려는 일본, 그들이 말하는 ‘다케시마’는 ‘그때 그때 다르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오시소마! 고장말 “어서 오시소마!” 자갈치시장 ‘아지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릴라치면, 으레 시장 한쪽에서는 흥정이 시작된다. “보이소. 아지매여, 생선 드려 가이소마! 이 눈깔 좀 보소 아직도 살아 있지예? 집에 가져다예, 회 처서 초고추장 발라 묵으면 그 맛이 일등이라예. 아지매여, 퍼뜩 사가이소마.”(<백일홍>·이영숙) ‘-마’는 주로 경상도 사람들이 말끝에 붙여 쓰는 전형적인 말이다. 생선을 사 주었으면 하는 시장 아주머니의 간절한 마음을 ‘-마’가 적절히 담아내고 있다. ‘-마’는 말할이의 간절한 마음을 싣기도 하지만, 야속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할매 지금 머라 했능교? 큰일 날 말씀 하지 마이소마. 지금이 어는 땐데 그런 말씀 하능교?”(<하얀 기억 속의 너>·김상옥) 이처럼 ‘-마’는 애절하거나 야속한 심정을 드러내어 상대의 행동을 가볍게 만류하거나 재촉할 때 쓰는 말이다. “나는 와 엄마가 없소.” “죽었제. 니를 낳아놓고 병이 나서 죽었구마.”(<토지>·박경리) “아이고메 시상에나. 고런 징헌 놈이 어디가 또 있을꼬. 사람을 옴지락 딸싹 못허게 몰아쳐서 잡아묵었구마. 어쩔다, 어쩐댜, 이 일얼 어쩐댜.”(<아리랑>·조정래) ‘죽었구마’와 ‘묵었구마’의 ‘마’는 고장말 ‘-마’와는 다르다. ‘죽었구마’나 ‘묵었구마’에 나타나는 ‘마’는 ‘-구먼’의 고장말 ‘-구마’의 ‘마’다. 전라도 쪽 ‘-잉’과 마찬가지로 ‘-마’는 전형적인 경상도 말투다.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