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완곡 언어예절 말이 변하긴 하지만 두고 보기가 어려운 것들이 있다. 좋은 말을 버려놓는 노릇도 그렇다. “옛날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그래서 평소 소신대로 방송 정책의 독립을 위해서 애써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자료실 많은 이용 바라겠습니다.” "고객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라겠습니다.” 흔히 보고 듣는 말인데, 뭔가 맞갖잖고 어설프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그 화근이 ‘-겠-’인 것을 짚어낼 수 있겠다. ‘-겠-’은 때(미래)를 전제로 ‘추측·예견·의지·가능성·능력’ 따위를 나타내는 서술 보조사다. 듣는이를 생각하여 말투를 누그러뜨리고자 할 때도 쓴다. 위 따온말들을, 될수록 부드럽게, 당장보다는 나중 어느 시점부터 그렇게 하겠다는 다짐 정도로 헤아려 읽을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바라다’는 ‘현재 의지’로 진행되는 것이지 현재를 뛰어넘은 ‘미래 의지’로 쓸 말이 아니다. 그냥 ‘바란다·바라네·바랍니다’로 써야 솔직하고 간곡해지며 자연스럽다. 같은 계열로 ‘희망하다·소망하다·원하다·기대하다·빌다’ 들이 있는데, 이들도 ‘-겠-’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옆자리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 주신다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문 좀 닫아 주시겠어요? 자네 좀더 열심히 해야겠어!”처럼 부탁·명령·판단이 개입될 때 ‘-겠-’을 쓰면 좀 간드러지고 조심스런 말투가 되지만, 잘못 쓰면 자칫 과공이 비례가 된다는 말을 듣는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코끼리 짐승이름 몹시 어려운 일을 비겨 “코끼리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라 이른다. 백제 ‘금동용봉봉래산향로’에도 코끼리가 들어 있다. 현명하며 신중하고 신성함, 힘의 상징으로 코끼리는 우리 문화 속에도 자리잡고 있다. 흰코끼리는 석가의 화신으로도 통하는데, 어머니 마야 부인 꿈에 어금니 여섯 달린 흰코끼리가 부인에게 일렀다. “소자는 다생의 인연으로 부인께 잉태하오니 어여삐 여기소서!” 하면서 옆구리로 들어와 석가를 잉태하게 됐다는 이야기. 공자 제례를 ‘석전대제’라 한다. 이때 코끼리 모양 술항아리를 쓰는데, 이를 상준(象奠)이라 이른다. 힌두교에서는 코끼리가 거북을 밟고 우주를 등에 지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는데, 거룩한 존재임을 상징한다. 코끼리를 옛말로는 ‘고키리’라 했다.(월인석보) ‘고’는 히읗 종성이 붙은 형태로서, 고ㅎ기리에서 고키리>코끼리로 바뀐다. 그러니까 이는 고(코)와 ‘길’에 ‘이’가 붙어 된 말이다. 말 그대로 ‘코가 긴 짐승’이다. 오늘날에도 고뿔 감기라 하거니와 여기 ‘고’는 고>코의 과정을 겪은 뒤에도 여전히 쓰이고 있다. ‘갈치’가 쓰이지만 동시에 ‘칼치’가 함께 쓰임과 같은 경우다. 한자말이지만, 어느 분야에서 가장 선구적인 사람을 일러 비조(鼻祖)라 한다. 짐승이 어미의 태반에서 가장 먼저 그 모습과 기능이 활성화되는 조직이 코이기에 그렇게 쓴다. 그러니 코가 생명의 상징으로 떠오름 또한 이상할 것이 없다. 정호완/대구대 교수·국어학
껌과 고무 외래어 껌(gum)은 원래 중앙아메리카의 원주민 일부가 사포딜라 수액이 굳은 치클을 씹던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1860년께 미국에 전해져서 상품화됐고, 두 차례 세계대전을 통해 미군이 세계로 퍼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껌의 본디 뜻은 ‘고무’여서 영어 사전에는 고무라는 풀이가 먼저 올랐다. 그렇다면 ‘고무’라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 고무가 외래어라는 의식은 많이 희박해진 듯하나,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프랑스어 ‘gomme’에서 왔다고 돼 있다. 그런데 바로 들어오지 않고 일본어 ‘ゴム’를 통해서 들어온 것으로 짐작된다. 여기에 흥미로운 사실 두 가지가 있다. 일본어 사전들을 보면 프랑스어 ‘gomme’ 또는 네덜란드어 ‘gom’에서 왔다는 서로 다른 내용이 나온다. 이렇듯 외래어의 공급처를 제대로 알아내기가 힘든 경우가 더러 있다. 또 한 가지는 프랑스어 ‘gomme’에 해당되는 영어가 ‘gum’인데, 이 두 낱말의 어원이 그리스어 ‘kommi’라고 한다. 곧 같은 말을 우리는 갈라서 쓰고 있는 것이다. 껌은 ‘걸’, ‘가이드’, ‘기어’처럼 ‘ㄱ’으로 소리 내지 않고 ‘가운’, ‘게임’, ‘골키퍼’처럼 대개 ‘ㄲ’으로 소리 내며, 더욱이 적을 때도 ‘ㄲ’으로 적는 관습이 있어서 ‘껌’으로 굳어졌다. 반면 ‘고무’는 일본어를 거쳐 들어오다 보니 ‘곰므’나 ‘곰’이 아닌 ‘고무’가 되었다. 이렇게 ‘껌’과 ‘고무’는 본디 같은 말인데, 어느 하나에 두 가지 의미가 다 붙어 들어오지 않고 의미에 따라 서로 나뉘어 들어왔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
가외·유월이 사람이름 성종 9년(1478년), 돈의문 밖에 한 여인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편지에 가외(加外)에게 물어 보면 알 것이라 했다. 삼사에서 가외를 데려다 물으니 ‘곱지’(古邑之)라는 여종이라 하였다. 가외는 사내·계집 이름으로 두루 쓰였다. 가외는 추석을 이르며, 가윗날/한가위라고도 한다. 加外(가외)는 ‘한도 밖’을 뜻하며, 중국말(자웨이)로는 옳지 못한 방법으로 잇속을 챙긴다는 뜻이다. 가외에 더하여 가외쇠·가외손이란 이름도 보인다. 서울 회현방(회현동)에 살던 김성하 선생 댁의 호구단자에 가외쇠는 나중에 가오쇠로 적었다. ‘가오’가 든 이름에 가오동·가오쇠·가오덕이가 있다. 충남 보령에 ‘가오데기’란 땅이름이 있음을 볼 때 가오는 추석 뜻만은 아닌 듯하다. 가오에 가까운 ‘가옷/가웃’은 반(半)이란 뜻이다. 정월·이월 따위를 사람이름으로 삼는 경우가 적잖다. ‘삼월이·유월이·구월이·시월이’ 따위는 계집이름이며, 이 밑말에 ‘-쇠’를 붙이면 사내이름이 된다. 계집이름에 유월에 태어난 유월금이도 있다. 유월에 난 유월쇠, 유월 유두에 난 유두와 유두쇠, 칠월 칠석에 태어난 칠석쇠도 있다. 망죵이·망죵개에 보이는 밑말 ‘망죵’은 24절기 하나인 망종(芒種)으로 보인다. 망종은 달리 사람 목숨이 끊어지는 때, 또는 몹쓸 종자를 이르기도 한다. ‘사오리’는 일본 여성 이름에도 널리 쓰이는데, ‘사월이’를 닮았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유 고장말 “아부지, 돌 굴러가유!” 어린 시절 충청도 말씨가 느린 것을 빗댈 때 자주 듣던 말이다. “아녀유, 지년이 원제유?”(<공산토월> 이문구) ‘-유’는 글자꼴로 보아 표준어의 높임토 ‘-요’에 대응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충청도 말 ‘-유’는 경상도의 ‘-예’, 전라도의 ‘-라우’, 제주도의 ‘-마씀/양’처럼 말끝에 두어 들을이를 높이는 말이다. “할아버지 손님 왔슈.” “뉘라느냐?” “위떤 뇌인양반유.”(<관촌수필> 이문구) ‘-유’ 앞에서 말끝에 쓰여 반말을 나타내는 ‘-어’는(밥 먹었어. 집에 갔어) ‘-이’로 바뀌기도 한다. “귓싸대기를 쌔려번질까 허다가 확 집어 저리 내던져 버렸슈. 붸가 여간 안 나더랑께유. 뒈지는 시늉 허길래 살려 줬이유.”(위 책) “농사먼 지었이유.” “보리쌀 팔아 왔이유.” 잘 했쥬(<했지유), 왔슈(<왔어유), 그류(<그리유)와 같이 ‘-유’ 앞에 ‘ㅣ’가 탈락하고, 앞에 있는 소리와 합쳐져 ‘-슈/쥬/류’와 같이 발음하기도 한다. 다만 ‘-슈’는 때에 따라서 ‘어서 오시우 > 어서 오슈’와 같이 ‘시우’가 줄어든 말이기도 하다. 이때 ‘-우’는 두루높임을 나타내는 표준어 ‘요’가 아니라, 예사높임을 나타내는 ‘-오’다. “정신 좀 드슈? 내가 누구여, 누구여 내가 …… 알어보겄느냐먼?” “어디 갔다 오슈?” 말끝을 다소 느릿느릿 소리내야 그 말맛을 느낄 만하다. “말이 느리니께 행동두 굼뜬 거 가티유?”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도록 하다’ 언어예절 ‘말을 잘한다’면 자주 많이, 재미나게, 쉽고 바르게, 때와 곳에 걸맞게, 흐르는 물처럼 유창하게 한다 …처럼 여러 경우를 두고 이르겠다. 두루 갖추어 잘하기가 어렵고, 그런 사람도 드물다. 그러니 잘할 마음을 버리고 그냥 생각하는 바를 조리 있게 말하면 된다. 듣는 것도 미덕이지만 말할 짬을 잃어서는 곤란하다. 잘하는 사람의 말도 글로 옮겨놓고 보면 터무니없거나 버릇된 말투가 자주 드러난다. 눈귀로 보고 듣는 것과 글자에 실려 눈으로 비치는 말의 차이가 상당하다는 얘기다. 입말에서 자주, 이따금 글말에서도 보이는 어설픈 버릇투를 한 가지 들춰보자. “바쁘지만 꼭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작동 방법을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고 다음 회의는 내일 오전 10시에 개의해 청문회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들출 말이 ‘-도록 하다’다. 이 말은 제3자를 부리거나 시켜서 앞말(참석·예약·설명·청문회)의 행동을 하게 할 때 쓰는 말이다. 따온 말들은 자신이 그렇게 하겠다는 건데, 문제는 ‘-도록’으로 자릿수를 늘리고서 남에게 시켜 그렇게 ‘하도록 하겠다’는 말투와 같아진 점이다. 스스로 다짐하거나 노력하겠다는 뜻으로 쓴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우스개가 된다. 위에서 ‘-도록 하겠다’는 그냥 ‘-하겠다’로 끝낼 일이다. 그래야 주체도 살고 자릿수도 줄어든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거북 짐승이름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놔라. 만일 내놓지 않으면 불에 구워 먹으리라.” 가야노래 ‘구지가’다. 노래에서 거북은 김수로의 탄생과 관련된 영적 존재다. 그 지명을 구지봉이라 함도 관련이 깊다. 주몽의 고구려 건국 과정이나 바리공주 이야기에서도 거북이 등장한다. 갑골점이라 하여 거북뼈로 점을 친다. 갑(甲)은 거북을 뜻하는 글자다. 토템 신앙 중개자로서 거북을 신성시한 것이다. 이규보의 청강사자현부전(淸江使者玄夫傳)이나 별주부전의 거북은 모두 그 영험을 의인화해 드러내는 얘기다. 옛말로 거북은 ‘거붑’이었다. 끝 음절 ‘붑’에서 같은 비읍 소리 충돌 현상으로 거붑이 거북으로 바뀐 것이다. 한자말 귀복(龜卜)에서 거복-거북이 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거북 토템은 한자가 들어오기 이전에 있었다. 양산 지방의 모심기 민요 가운데 왕거미 노래에서 거미가 거북이었음을 떠올릴 수 있다. 우리말 거미(거무)-검에서 그 원형을 찾음이 더 온당하다. 여기 검(감)은 임금으로 이어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가미(神)가 되고 거북을 가메(game)라 함을 보면, 한자 기원이란 설득력이 떨어진다. 최남선의 <신자전>에서 ‘검’을 신으로 풀이하고 있음 또한 한 방증이다. 동아리하자면, 거미(거무)의 검에 -음이 붙어 거뭄-거붑-거북이 된 것이다. <본초강목>에서는 거북의 수컷을 뱀으로 상정한다. 거북은 때로 남근 혹은 태양 숭배를 드러내기도 하는 상징성이 많은 짐승이다. 정호완/대구대 교수·국어학
외래어란? 외래어 ‘볼펜·컵·시디·컴퓨터·스피커·마우스 …’ 들은 책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큰도시에는 ‘빌딩’들이 즐비하고 ‘버스’와 ‘택시’가 달리며, 농촌에서는 ‘콤바인’과 ‘트랙터’가 바삐 움직인다. 새삼스레 우리 생활에서 외래어가 흔히 쓰인다는 걸 깨닫게 된다. 국어사전에서는 외래어를 “외국에서 들어온 말로 국어처럼 쓰이는 단어”로 푼다. 그런데 ‘국어처럼’ 쓰인다는 게 무슨 뜻일까? 국어 문장 속에서 국어 낱말처럼 쓰인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곧 ‘아이스크림’이라는 말을 쓸 때 ‘나는 먹고 싶다 아이스크림’이라는 영어식 어순을 부려 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외래어는 발음이 원어와 달라지게 되고, 때로 뜻도 달라진다. 같은 ‘cut’이지만 ‘커트’는 머리 모양이고 ‘컷’은 영상 용어다. 그래서 학자들은 외래어가 어느 정도 국어화된 것이라 본다. 국어화가 끝난 것은 ‘귀화어’라고 부르며, ‘담배·남포·고무·가방’ 같은 보기를 든다. 국어화가 덜 된 말은 ‘외국어’라 일컫는다. 일반 언중은 ‘외래어’라고 하면 국어처럼 된 것인지 아닌지를 따지지 않는다. 그냥 우리말이 아닌 듯하면 외래어라 일컫는다. 국어사전이 언중의 언어 지식을 담는 것이므로 이런 뜻풀이가 첫째 것으로 실려야 할 것이다. ‘다른 언어에서 들어와 우리말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낱말’ 정도가 어떨까.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
숫구미 사람이름 조선 때 죄인에게 죗값으로 군역을 치르도록 하는 것을 ‘충군’(充軍)이라 했다. 세조 2년(1456년) 임금이 사헌부에 죄인들을 크게 풀어주라 했다. 그 가운데 검모포 충군으로 간 숫구미(守叱仇未)와 어리동이가 있다. ‘숫구미’는 문헌에서 ‘쉿구무/숫구무’로 나타나며, 요즘말로 숨구멍(간난아이 정수리께)에 해당한다. ‘궁기·개궁기’라는 이름에서 보듯 ‘궁기’가 이름의 밑말로 쓰였다. 중세말에서 구멍은 ‘ /구무’였다. 이는 ‘ ’에 호칭접미사 ‘이’가 더한 말이다. 개궁기는 개구멍일 터인데 담이나 울타리 밑에 터놓은 작은 구멍이다. 밑을 터 뒤를 보기 좋게 만든 어린아이 바지를 개구멍바지라고 부른다. 더불어 ‘구멍·똥구멍’이란 이름도 보인다. 고장말에는 구멍·구미·궁기뿐만 아니라 ‘구먹·구녁·구녕’도 있다. 요즘말을 옛말과 견줘보면 소리마디가 줄어든 것이 있다. 동냥치·양아치는 동냥아치에서 비롯됐고, ‘둥구미·골(腦)·대머리·예쁘다 …’들은 중세에 낱낱 ‘멱둥구미·대골·고대머리·어엿브다’로 쓰였다. 둥구미는 짚으로 둥글고 깊게 엮은 것인데, 고장 따라 퉁구먹이라고도 한다. 조선때 ‘어여분이/어엿분이’는 요즘 ‘예쁜이/이쁜이’로 변했다. 숨구멍은 나뭇잎이나 풀벌레의 숨쉬는 곳을 이르기도 하며, 답답한 상황에서 조금 벗어났을 때 숨구멍 트였다고 한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사이소예 고장말 부산의 아침을 가르는 ‘아지매’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이젠 들을 수 없게 됐지만, “재첩국 사이소예!”에서 나타나는 ‘-예’는 ‘-라우’(전라), ‘-마씀, -양’(제주)과 더불어 표준어 ‘-요’에 대응하는 말이다. 제주에서도 ‘-예’가 쓰이기는 하지만, ‘-예’는 경상도 지역의 전형적인 말투로 인식돼 왔다. 주로 말끝에 쓰여 들을이를 높이는 말이다. “울 오메 여기 왔지예?” “죽었어예? 울 아버지가 벌써 총살을 당했다 이 말이지예?”(<어둠의 혼>·김원일) ‘-예’는 “돈예? 점점 더 희한한 소리 다 듣겠네예.”(<아우와의 만남>·이문열)의 ‘돈예’에서처럼 명사나 대명사에 결합하여 표준어의 ‘이거요, 돈요’와 같이 쓰일 수 있다는 점에서 ‘-라우’와는 다르다. ‘-예’는 주로 아이들이나 여성들이 쓰는 말이다. 어렸을 때는 남녀 없이 쓰는 말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경상도 남정네들은 슬그머니 ‘-예’를 말끝에서 떼 버린다. 어렸을 때 “아제예, 어서 가이소예!”처럼 말하던 것에서 ‘-예’를 떼어 버리고 “아제, 어서 가이소”처럼 말하게 되는 것이다. 성인 남성들도 허물없는 사이에는 쓰기도 하지만 그 사용빈도가 성인 여성들보다는 현저하게 떨어진다. 더구나 남성들은 외지인 앞에서 ‘-예’를 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예’와 함께 경상도 아가씨를 떠올리는 것도 ‘-예’가 주로 여성들의 말투에서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