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서 언어예절 ‘공손함’을 한자락 걸치는 말이 여럿 있다. 그 중에서도 ‘주다’는 젖먹이 때부터 익은 말로서, ‘주시다·드리다·올리다·바치다’란 높임말이 있고, ‘달라·다오’는 주로 평대에 쓴다. 하느님·임금 …한테 비는 ‘~ 주시옵소서’ 꼴이 맏높이는 말이다. 이는 남에게 베푸는 맛을 풍기는 까닭에 잘못 쓰면 곤란을 당할 수도 있다. 예컨대 집안 청소를 하면서 “오늘은 어디 청소 한번 해 줄까?”란다면 가족이 듣기에 거북할 터이다. 자기집 일을 하면서 무엇을 베푸는 말투인 까닭이다. 무엇을 요청·애원·청원할 때 ‘-어 주다’ 꼴을 특히 많이 쓴다. 공손한 느낌을 주면서 바라는 뜻을 강조하는 구실을 하는 까닭이다. 문제는 그럴 것까지 없는 말에서도 버릇으로 쓴다는 점이다. 인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앉아서 하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타 사항은 배부해드린 유인물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말씀해 주시지요/ 저희에게 제일 좋은 학교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주문해 주신 제품은 오늘 발송됩니다 ….(손질한 말 ⇒ ~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 참고하십시오/ 말씀하시지요/ ~ 허락하소서/ 주문하신 제품은 ~.) 여기서 ‘주다’는 높임꼴 명사형(주시기)으로 바뀌어 ‘바랍니다’란 말의 목적어가 됐다. 에둘러 말할 때 즐겨 쓰는 서술어(바랍니다)로도 모자라 공손까지 더했으니 ‘공손을 뜬다’는 말을 들을 법하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핀과 핀트 외래어 디지털 카메라가 세상을 뒤덮고 있다. 앙증맞은 ‘똑딱이’(디지털 자동 카메라)로부터 거무튀튀하고 묵직하게 생긴 전문가형의 ‘디에쎄랄’(DSLR, 렌즈 교환식 “)이 들과 산·거리를 누빈다. 필름 카메라 쪽의 현상·인화가 불필요해 간편하기도 하거니와 비용도 저렴해진 덕분이라는 의견도 있고, 사람들의 자기표현 욕구가 강해져 그렇다는 진단도 있다. 어쨌건 현대인은 자기 감성에 따라 온갖 사물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구도를 잡고 ‘핀’을 맞춘다. 찍고 나면 바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고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찍는다. 그런데 ‘핀’이라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 다른 말로 ‘핀트’다. 얼핏 ‘핀트’가 영어 단어처럼 느껴지는데, 이 말의 철자를 꿰맞추며 영어 사전을 뒤져봐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국어사전에는 있으며, 네덜란드어 ‘브란트퓐트’(brandpunt)에서 만들어진 일본어 ‘핀토’(ピント)에서 왔다고 돼 있다. ‘브란트’는 ‘타다’, ‘퓐트’는 ‘점’이라는 말이므로 ‘초점’이 된다. 이것이 외국어를 잘라내는 일본인 습관대로 ‘핀토’로 바뀌고(디파트먼트→데파토), ‘사이트’를 ‘사이토’, ‘다이아몬드’를 ‘다이아몬도’ 등으로 받아들이는 일본어의 차용 방식에 비춰 우리가 이것을 ‘핀트’로 수입한 것으로 보인다. ‘핀트’는 다시 ‘핀’으로 줄었는데, 이것이 ‘세트’를 ‘셋’, ‘커트’를 ‘컷’으로 줄이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지만 확실치 않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
맵토이 사람이름 현종 2년(1661년), 임금께 의금부의 문서(계)를 올렸다. 경차관의 보고서(계본)와 형조의 붙임문서들(점목)을 살펴보니, 주인을 죽인 원주의 갑술이·귿놈이·기토리 등이 삼강오륜을 어겼으므로, 잡아오고자 하니 허락해 주십사는 내용이었다. ‘토리’가 든 사람이름에 토리·가토리·도토리·검토리·먹토리·무토리·뭉토리·사토리·유토리·이토리·지토리·험토리가 있는데, 모두 사내이름이다. 가토리는 암꿩인 까투리, 도토리는 참나무 열매다. 거뭇거뭇하여 검토리, 멍 자리가 있어 멍토리, 험이 있어 험토리라 불렀을 법하다. ‘토리’는 실을 감은 뭉치이나, 밤 한 톨 두 톨 세는 ‘톨’과도 관련 있는 듯하다. 민요가락은 고장마다 다르다. 모심기노래를 옛날에는 메나리라고 했다. 강원·충청 일부와 경상도 메나리조 노래를 메나리토리라고 한다. 전라 육자배기토리, 서울 쪽 경토리, 황해 수심가토리 또한 잘 알려져 있다. 금토이·맵토이·멍토이·을토이와 같이 ‘토이’로 끝나는 이름도 있는데, 토이는 토리가 바뀐 말이거나 또다른 이름접미사일 것으로도 보인다. 성종 9년(1478년), 충주 향리 석맵토가 충주 동쪽 덕산리 놀오골·시물골 두 곳에서 석유황(石硫黃)을 찾아냈다. 사람을 보내 확인하려 하니 못 들어가게 하라는 기록도 보인다. 맵토이는 ‘맵토리’와 맵토 사이에 놓이는 듯하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어디 가여? 고장말 ‘-여’는 충청도말의 ‘-유’와 같이 ‘-요’가 그 형태를 달리하는 방언형이다. ‘-여’는 경북 일부 지역과 강원·경기·충청 일부 지역에서 쓰이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여’는 주로 중부 지역에서 쓰인다. “이연이 어매가 그렇게 갔잖아여.”(웰컴투 동막골) “우리 삼촌이 나버다 두 살 위잖아여.”(서울토박이말자료집) “다숫 번 하는 늠이 없더래여.”(한국구비문학대계 강원편) “고마 솥에다 넣어 삶아가지고 시어머이 믹있디이 고만 먹고 빙이 나아여.”(위 책 경북편) 우리말에서 높임토 ‘-요’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이후로 본다. 따라서 ‘-유’나 ‘-여’가 쓰이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요즘은 매체가 발달하고 교육 수준이 높아져 ‘-요’가 널리 쓰이지만, 그 이전에는 ‘-요’와 유사한 구실을 하는 ‘-라우, -예, -마씀/양, -이다’ 등이 널리 쓰였을 것이다. 최근 피시통신에서 ‘-여’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때 ‘-여’는 성격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가상공간에서 상대의 나이·지위 등을 알기 어렵기에 사회적 실재감이 결여되기 마련이다. 곧, 들을이에게 말을 낮춰야 할지 높여야 할지 종잡기가 어렵다. 이런 때 ‘-여’를 쓰는데, 이때 ‘-여’는 표준어 ‘-요’와 대응하는 말이 아니다. 사이버 공간에서 ‘-여’는 얼버무려 쓰는 말로 보인다. 따라서 ‘-여’는 높임말도, 낮춤말도 아닌 셈이다. “즐여!” “즐감 하세여.”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되겠습니다 언어예절 장차 무엇이 ‘되겠다’면 의지·추측을 실어 하는 말이다. 무엇이 이뤄지고, 바뀌고, 어떤 수준·지위에 오르고, 때가 오고 …처럼 ‘되다’는 ‘하다’에 버금가는 갖가지 쓰임을 보인다. 그러다 통상의 영역을 넘거나 군더더기(잉여 표현)로 쓰이는 사례도 생겼다. △요금은 만원 되겠습니다. △다음은 서울역 되겠습니다. △공직 후보자에 대한 질의 순서가 되겠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증인은 ○○당 측에서 신청한 증인이 되겠습니다. △부족한 부분을 추가 질의할 기회가 되겠습니다. △여왕님 되겠습니다. △정답은 3번이 되겠습니다. △고기압의 영향으로 맑은 날씨가 되겠다. △믿는 의정 되겠습니다. 보기말들에서 서술마디 ‘만원 되겠습니다’ ‘서울역 되겠습니다’ ‘순서가 되겠습니다’ ‘증인이 되겠습니다’ …들은 그냥 ‘만원입니다·순서입니다·서울역입니다·증인입니다·기회입니다·여왕님입니다·3번입니다’로 써야 할 말이다. ‘믿는 의정 되겠습니다’는 ‘믿는 의정을 꾸리겠습니다’, ‘맑은 날씨가 되겠다’는 ‘날씨가 맑겠다’는 얘기다. 여기서 ‘되겠다·되겠습니다’를 씀으로써 말수, 곧 자릿수를 하나 더 늘리는 구실에다, ‘이다·입니다’가 ‘단정하는 말투’라면 이를 좀 무디게 하는 성금은 있겠다. -겠-이 상대를 배려할 때 끼워넣는 표지로 쓰이기도 하나, 여기서는 그것도 아니다. 이래저래 ‘말장난’ 수준인 이런 말투는 쓰기를 삼가야 할 터이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개 짐승이름 개한테도 오륜이 있다. 주인에게 덤비지 않으니 그 첫째요, 큰 개한테 작은 개가 덤비지 않는다는 게 둘째다. 셋째는 아비의 털빛을 새끼가 닮는다. 넷째는 때가 아니면 어울리지 않는다. 다섯째는 한 마리가 짖으면 마을 개들이 따라서 짖는다. 더러는 개를 일러 삼육(三育)의 짐승이라 한다. 지혜로움, 어짊과 덕, 용(勇)과 체(體)를 이른다. <계림유사>에서 개를 가희(家)라 하였다. 오늘날도 충청 지역에선, ‘가이’라 이른다. 가이>개를 보면 우리말 변화와 궤를 함께한다. 만주어로는 구리(kuri)라 하고, 길랴크말로 가늰(kanyn)이라 한다. 한자어로는 구(狗) 소리와 유연성이 있음을 말하기도 한다. 가희라 함을 보면, 개가 흔하지 않은 짐승임을 암시하고 있다. 한자의 자원으로 보자면, 개는 신한테 바치는 제수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르자면 헌신(獻身)의 ‘헌’이 그러한 경우다. 흔히 이바지라고 한다. 뒤로 오면서 희생(犧牲)에서 제물이 소로 바뀌었지만. 보훈의 달인 유월을 살아가면서 겨레와 나라를 위하여 고귀한 목숨을 바쳐 순국한 이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내 안의 내가 얼마나 속 좁고 왜소한 존재인가를 되돌아볼 때가 있다. 밤을 지새워 짖어대며 어렵고 힘든 주인의 처지를 헤아리는 개도 있음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정호완/대구대 교수·국어학
핫도그와 불독 외래어 나무 막대기에 소시지를 꽂고 밀가루 반죽을 둘러 기름에 튀겨 만든 음식이 ‘핫도그’다. 겉에 케첩을 두르기도 한다. 본디 핫도그는 긴 빵을 길게 갈라 소시지를 넣고 겨자 소스 같은 것을 쳐서 만든다. 개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영어 이름에 ‘dog’가 들어가며, 우리는 이를 번역하거나 새말을 만들지 않고 원어 형태대로 받아들여 ‘핫도그’라 일컫는다. 이렇게 영어의 ‘g’로 끝나는 단어는 대개 ‘그’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의 습관이다. ‘개그’(gag), ‘머그’(mug), ‘스모그’(smog), ‘아날로그’(analog) 등이 그렇다. 그런데 같은 ‘g’라도 ‘그’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있다. 가방을 뜻하는 ‘백’(bag)이 대표적이고, 비록 아직 규범표기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불독’(bulldog)과 야구말 ‘덕아웃’(dugout)이 그렇다.(‘불독’과 ‘덕아웃’의 규범표기는 각각 ‘불도그’와 ‘더그아웃’이다) ‘불독’은 나이 지긋한 분 중엔 ‘부르도그’라 쓰는 이도 있고, 북녘에서도 ‘부르도그’라고 하니 ‘불독’은 형태가 매우 특이한 셈이다. 이런 불규칙한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를 두고선 확실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어 현상과 마찬가지로 외래어의 형성도 이처럼 불규칙한 면이 있음은 분명하다. 이런 예외적인 것을 ‘관용’이라고 하며, 표기 차원에서는 ‘백’(bag)처럼 뿌리가 깊은 것을 규범으로 인정하기도 한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
뒷간이 사람이름 성종 2년(1471년), 영흥사람 효산은 안막삼·임갈헌·황을생·北叱間(북질간) 무리와 막동이를 죽이고 옷과 말을 빼앗았다. 법에 따라 효산은 참부대시, 안막삼 등은 참형에 해당한다고 형조에서 아뢰었다. 조선 때 법에, 사형은 추분 지나 집행하는 것이 원칙이나 큰 죄인에게는 지체 없이 행하였으니 참부대시라고 한다. 北叱間은 ‘뒷간’이며 ‘둣간이/두간이/둑간이’라는 이름도 이에 잇닿아 있다. ‘-간’(間)은 집안의 한 공간을 이르는 말인데, 사람이름에 막간·솟간·숫간/수간이·엇간·잿간·종간·헛간이가 보인다. 막간은 뒷간의 고장말 ‘소막간’, 솟간은 외양간 또는 솥을 두는 곳인 듯도 하다. 숫간은 몸채 뒤에 자그마하게 지은 광이나 객실을 이른다. 잿간은 재를 부려두는 곳이다. 하필 사람이름을 뒷간이라 했을까? 짐작건대 마당이·마당덕이·마당복이·마당쇠, 부엌이·부엌놈이·부엌덕이·부엌석이·부엌쇠는 마당과 부엌에서 났을 법하다. ‘길갓티’라는 사람은 길가에서 난 모양이다. 옛말에서 앞·뒤는 남·북을, 왼쪽·오른쪽은 동·서를 이르기도 한다. 외양간의 ‘외양’은 본디 오 양/오희양(廐)으로, 말과 소가 있던 곳이며, 달리 ‘멀험·쇠멀험’이라고도 했다. 뒷간과 처가는 멀수록 좋다 했던가? 외양간은 바깥채에 있으며 돼지우리·헛간이 함께 꾸려지기도 한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참 좋지다 고장말 ‘-이다’는 서남부 경남인 하동·남해·통영·거제 등과 전남 동부인 광양·여천·순천 등지에서 말끝에 붙여 쓰는 말이다. ‘-이다’는 표준어의 ‘-요’처럼 들을이를 높이는 말이다. “요 동니 당골들은 다 떠나갔어이다.”(<한국구비문학대계> 경남 거제도 편) “옛날에 우리 할부지가이다, 여 등너메 조그만 논도가리가 있었는데 ….”(위 책) “지끔 가몬 은제 오십니까이다?” 모음 뒤에서 ‘-이다’는 ‘-다’로 쓰이기도 한다. “닭장사하는 사람이 있어다.” “야, 그 질로는 없어, 없었어다.”(위 책) ‘-이다’의 또다른 형태는 ‘-이더’인데, 창원·함안·의령·김해 등지에서 쓰인다. “으제 갔어이더.” 모음 뒤에서는 ‘-더’로 쓰이기도 한다. “참말로 좋지더.” 이때 ‘-이더’는 표준어 ‘-ㅂ니다/습니다’와 대응하는 경상도말 ‘-이더’와는 다른 것이다. “괜찮으이더. 걱정 마이소!” “그 날짜를 내가 어긋치이 미안하이더.”(위 책 경주·월성군 편) 동사 어간에 붙여 쓰는 경상도말 ‘-이더’는 경기도말 ‘-이다’와 같다. “어머니, 나 장가가이다.”(위 책 경기 강화 편) “당신도 소용없이다.”(위 책) 경남·전남 일부에서 쓰이는 ‘-이다’는 ‘-요’와 대응하는 ‘-라우(전라도), -마씀/양(제주도), -유(충청도), -예(경상도)’ 등과 같이 어느 지역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말은 아니다. ‘-이다’는 섬진강 주변에서 쓰이는 특징적인 말이다.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