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다라는 언어예절 자기 생각을 말하면서 남말 하듯 하는 말투가 있다. 제말이든 남말이든 따서 말할 수 있으나, 말에서는 따옴표를 쓰지 못해 직접인용이 쉽지 않고, 웬만해선 보람을 거두기도 어렵다. 이로써 여러 회의·토론·대화 자리에서 듣는이도 말할이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말투가 두드러진다. “그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라고 봅니다만/ 정확한 숫자로 얘기를 하지 않았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부분을 명확하게 해 주는 게 좋다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이것에 대한 문제가 저는 심각하다라고 생각하는데/ 학부모들이 속을 수 있다라는 말씀 아닙니까?/ 치료감호를 또 한다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 한 회의록에서 따온 말인데, 일상에서도 가끔 듣는 말투다. ‘라고·라는’은 조사·어미 등 쓰임이 여럿이다. 여기서는 직접인용 표지로 쓰였다. “~ 아니다라고, ~ 않았다라고, ~ 좋다라고, ~ 심각하다라고, ~ 있다라는, ~ 한다라는”은 “~ 아니라고, ~ 않았다고, ~ 좋다고, ~ 심각하다고, ~ 있다는, ~ 한다는”으로 써야 걸맞다. ‘라’는 맺음씨끝이기도 해 ‘다’와 겹쳐 쓰기에는 거북살스럽다. 대체로 ‘이다·아니다’에서는 ‘다’를, 다른 데서는 ‘라’를 줄인다. 사람들이 말하고 듣기보다 읽고 쓰기를 많이 하는 까닭인가? 말·글이 ‘하나’되는 건 좋지만 말투와 글투에 어울리는 게 따로 있다. 그 경계를 분별없이 무너뜨리는 한 보기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카키색 외래어 ‘국방색’(國防色)이라는 표현이 있다. 그 하나는 얼룩무늬로 바뀌기 전 육군 군복의 색깔이었던 진초록이고, 다른 하나는 카키색이다. 페르시아어 ‘khak’가 어원인 ‘카키’(khaki)는 인도 힌디어를 통해 영어로 들어간 말이다. 그 뜻은 ‘흙·재’였고, 영어로 들어간 뒤에는 여러 직물을 가리킴과 동시에 그 빛깔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직물로서는 보통 면·모·소모, 이들끼리의 혼방, 또는 인조섬유와의 혼방으로 만들어지는데, 이것으로 만든 제복은 인도에 주둔했던 영국군들이 입었고, 이어서 여러 나라로 퍼졌다고 한다. ‘카키’가 1908년의 어떤 공문서에서 언급된 것으로 보아 우리말에 들어온 지도 100년이 넘은 듯하다. 그런데 영어와는 달리 색깔만을 가리키는데, 우리의 카키색은 그 범위가 모호한 면이 있다. 사전에서는 ‘누런빛을 띤 엷은 갈색’이라고 하지만, 언중은 황갈색·회녹색·암녹색 등 녹색 기운이 들어간 여러 가지를 카키색이라 일컫는다. 아마도 군복의 진녹색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 그런 것들을 카키색으로 부르게 되지 않았나 싶다. 사철이 뚜렷한 환경에 맞게 우리말 색깔 표현은 다양하다. 그러나 ‘갈색·녹색·회색·커피색·코발트색·곤색’ 따위 한자·외래어보다 고유어가 더 많이 쓰였으면 좋겠다. 그런 낱말은 ‘밤색·꽈릿빛·쪽빛·잿빛·풀빛 …’처럼 다른 말로는 흉내 내기 어려운 정감을 담아 내니까 말이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
돌쇠 사람이름 명종 3년(1548년), 평양 사는 이인필의 집 암소가 송아지를 낳았는데 뒷다리 밑은 흰색, 앞다리 위 등뼈 사이로 발 하나가 거꾸로 나왔다. 상원군 사는 ‘돌쇠’(突衰)네 집에서는 검은 암소가 낳은 송아지가 머리 하나에 눈이 둘, 귀가 셋, 허리 위로는 소 모양이고, 허리 밑은 소 두 마리의 모양으로 발이 여덟, 꼬리 둘에, 털이 없는 벌거숭이였다. 돌쇠는 石乙金(석을금)/乭金으로 사뭇 적는데, 위 기록에서는 특이하게 소리 나는 대로도 적었다. ‘돌’이 든 이름은 참으로 많다. 돌개바람·돌개구멍의 ‘돌개/돌가’, 돌기둥이란 뜻의 ‘돌기디’가 있고 ‘돌덩이·돌덕이’도 보인다. 이름에 쓰인 ‘돌망이·돌명이·돌뭉이·돌믜’는 돌멩이의 아재비쯤 된다. ‘돌작’은 돌멩이의 고장말이고, ‘돌무적’은 돌무더기다. ‘돌타내’라는 이름의 ‘타내’도 널리 쓰였다. 황해도 말에서 ‘타내’는 ‘귀걸이’다. 몽골말 ‘타나’는 ‘자개·진주모’다. 고려 때 원나라 사신에 ‘타나’(塔納=탑납)가 있으며, ‘타나·타내’는 서로 관련된 이름인 듯하다. ‘돌도리·돌두리·돌모치·돌모티·돌무태’는 무슨 말일까? 경상도말로 모퉁이가 ‘모티’이므로 ‘돌모티’는 ‘돌 모퉁이’인 듯도 하다. ‘의리의 사나이 돌쇠’라는 영화를 비롯해 돌쇠는 우직하고 의리 있는 사내의 보통명사로 쓰이곤 한다. 눈앞 잇속을 챙기느라 의리마저 저버리기 일쑤인 사회에서 ‘돌쇠 정신’이 아쉽다 할까?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니캉 내캉! 고장말 ‘-캉’은 경상도 사람임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말씨의 하나로, 표준어 ‘-와/과’와 대응되는 말이다. “니캉 내캉 이런 발버둥을 치고 있는 꼴이 ….”(<홍어> 김주영) “이모캉 형수 아이들은 잘 있십니까.”(<토지> 박경리) “어제 누캉 같이 갔띠이노?”(<경북동남부방언사전> 정석호) ‘-캉’의 또다른 형태는 ‘-카’이다. “야 이늠아, 니카 나와 강원도 총석정으로 빨리 가자.”(<한국국비문학대계> 대구시편) “내카 사지 누카 살아?”(위 책 예천군편) ‘-카/캉’이 ‘-와/과’에 대응하는 경상도 사람들의 전형적인 말씨라고 한다면, ‘-광’은 제주 사람들의 전형적인 말씨다. “성광 아시광 꼭 닮았수다.” “당신 우리광 무슨 원수 이수꽈?” “하늘광 따흘 래라, 몬첨.”(하늘과 땅을 보라, 먼저)(<한국구비문학대계> 남제주군편) ‘-카/캉’이나 ‘-광’은 자음·모음 뒤에서 두루 쓰인다는 점이 ‘-와/과’와 다르다.(성광, 아시광, 아들캉, 이모캉) 또 ‘-카/캉/광’은 서로 연결되는 두 단어에 모두 쓰일 수 있다는 점에서 표준어 ‘-와/과’와 그 차이를 드러낸다. 가령, 표준어에서 ‘니과 내과 같이 살어’ 하는 것은 어색하지만, 경상·제주말에서는 ‘니캉 내캉/니광 내광 같이 살어’와 같이 말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카’는 ‘-과’가 ‘과>콰>카’와 같이 변하여 생겨난 말이며, ‘-광’은 ‘-과’에, ‘-캉’은 ‘-카’에 ‘ㅇ’이 덧붙어서 쓰인다.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어떻게 언어예절 ‘어떻게 해서든지, 어떻게든’처럼 ‘어떻게’가 목적 제일주의를 부추기는 말로 쓰이기도 하지만, 말의 속성에 걸맞게 모호하게 쓰일 때가 적잖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오셨습니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기서 어떻게 사니?” “어떡해요?” “당신 생각은 어때?” “요즈음 어떻게 지내십니까?” “그만 용서하여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 자기 의견을 먼저 말하고 상대의 견해를 물을 때 흔히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말한다. 여기서 ‘어떻게’보다는 ‘어떻다고’가 정확하겠다. 생각은 ‘머리로’ 하는 까닭이다. 생략된 것을 갖추면 “(당신은 이것을) 어떻다고 생각하느냐”가 된다. 집이나 일터로 찾아온 사람을 두고 ‘어떻게 오셨습니까?’ 한다. 수단·방법·과정, 곧 ‘무엇을 타고 오셨습니까?’, ‘걸어서 오셨습니까?’ 하고 묻는 말인데도 사람들은 보통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왜 오셨습니까?’로 알아듣는다. 용무를 바로 묻는 게 야박해 흐릿하게 에두르는 말하기로 풀이한다. ‘어떻다, 어떻게’는 불분명한 대상이나 행위를 들추어 의문문을 만든다. ‘어찌하다’는 의문동사인데, ‘어찌하여’보다는 ‘어떻게 하여’로 자릿수를 하나 더 늘린 표현을 많이 쓸 정도다. 이런 관용적이고 중의적인 표현이 재미있기는 하나 소통 과정에서 오해를 부르기도 하고, 다른 외국어로 뒤칠 때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토끼 짐승이름 “흰 이슬 비꼈는데 밝은 달 돋아온다/ 봉황루 묘연하니 청광은 뉘를 줄꼬/ 옥토(玉兎)의 찧는 약을 호객(豪客)에게 먹이고자.” 고산 윤선도의 시조에 나오는 토끼. 옥토끼는 달에 살면서 떡방아를 찧거나 불사약을 만든다고 믿고 있다. 이처럼 토끼는 장생불사의 상징 동물로 여겨졌다. 그 민첩함으로 심부름꾼으로 나서는 일이 더러 있다. 경북 문경에 토천(兎遷)이란 곳이 있는데, 고려 태조 왕건이 길을 잃고 헤맬 때 토끼가 나타나 절벽 길을 안내하였다고 한다. 문경에 ‘왕건’ 드라마 촬영장이 마련된 것도 우연은 아니겠다. “거부긔 터리와 톳기의 쁠와”(龜毛兎角, 두시언해)에서는 토끼를 ‘톳기’라 적었다. ‘톳’에 접미사 ‘-기’가 붙어 된 말로 볼 수 있다. 중국어에서는 토끼를 토자(兎子)라 한다. 여기 -자(子)는 작다는 뜻을 중심으로 하는 지소사로 보인다. -자(子)가 흔히 우리말로 토착하는 과정에서 ‘-지’로 바뀌어 쓰인다. 이르자면 가지(茄子), 종지(鍾子), 장지(障子)의 ‘-지’와 같다. 이 ‘-지’가 다시 소리 유창성을 꾀하려는 부정회귀를 통하여 ‘-기’로 바뀐 것으로 본다. 몽골말로는 ‘톨아이’(tulai)인데 말의 뿌리는 ‘톨-’이 된다. 받침소리에서 유연성을 보면 ‘톨-톧-톳’으로 유추할 수 있다. 한자어 어원으로 보는 견해보다는 알타이말 계통으로 보아 몽골말과 궤를 함께하는 우리말일 개연성이 더 높겠다. 정호완/대구대 교수·국어학
내비게이션 외래어 불과 몇 해 사이에 달라진 자동차 관련 풍속도를 꼽으라 하면 단연 지도를 들고서 길을 찾아가는 운전자가 거의 없어졌다는 게 아닐까. 이것은 전자·정보통신 기술 덕분에 지도를 대신하면서 지름길이나 우회로를 알려주는 전자기기 내비게이션(navigation)이 일반화된 덕이라고 할 수 있다. ‘내비게이션’은 영어를 바탕으로 한 우리식 외래어, 이른바 콩글리시에 해당한다. 영어권에서는 ‘지피에스 내비게이터’(GPS navigator)로 쓰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지피에스(GPS·Global Positioning System)란, 인공위성을 이용하여 지도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장치, 곧 ‘위성항법장치’를 뜻한다. 그런데 우리가 지피에스라고 일컫는 것은 원래의 위성항법장치를 뜻하지 않는다. 과속 탐지 카메라의 위치를 알려주는 기기에서 출발한 지피에스는 단순히 그런 카메라 주위에 숨겨진 전파 발신기 가까이에 갔을 때 경고음을 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지피에스 수신기를 내장시켜서 해당 도로의 제한속도나 사고 위험성도 알려주는 것으로 발전했고, 전자지도를 담은 컴퓨터와 연결하면 내비게이션 구실을 하는 것도 나타났다. 이렇게 내비게이션과 유사한 기능을 하지만 화면이 없어 더욱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 우리가 일컫는 ‘지피에스’이므로, 원래의 의미와는 많이 동떨어진 외래어라고 할 수 있다. ‘내비게이션’은 ‘길도우미’로 다듬어 쓴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
강쇠 사람이름 ‘가루지기타령’은 옹녀와 변강쇠의 활달한 성 행각을 다룬 판소리로, 영화와 만화의 밑감이 되기도 하였다. 몽골 사람이름에 ‘간토모르’가 있다. 말 그대로 강철, 바로 강쇠다. 몽골말 ‘간’과 우리말 ‘강’이 서로 만나고 있다. ‘강’이 든 이름에 강이·강가히·강고리·강돌이·강마·강만이·강비·강상이·강치가 있다. 강골(强骨↔약골)은 단단하고 굽히지 아니하는 기질을 이르며, 강돌은 강이나 냇가에 있는 호박돌이다. ‘강생이’(강상이)는 고장말로 강아지고, 강치는 몸집이 물개와 비슷한 바다 동물로, 지느러미 모양의 다리를 갖고 있다. 쇠를 만들 때 쇳돌(철광석)과 횟돌(석회석)을 용광로에 넣고 가열하면 쇳돌 찌끼와 횟돌이 엉긴 슬래그는 위로 뜨고 쇳물만 아래로 고인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무쇠(주철)다. 무쇠는 단단하나 탄소가 많아 잘 부러진다. 달군 쇠를 두드려 단련하는 것을 불린다고 한다. 무쇠를 불린 것이 시우쇠(정철)다. 탄소량이 0.035∼1.7%가 되게 불린 것이 강쇠(강철)로, 질기고 녹도 덜 슨다. 탄소의 함량이 매우 적은 ‘무른쇠’(연철)는 ‘뜬쇠’라고도 한다. 사람이름에 ‘무쇠·믈쇠’가 있다. 수철(水鐵)로도 불리는 무쇠는 ‘믈쇠’에서 비롯된 듯하다. 첫가을에 부는 바람이 하필이면 강쇠바람일까? 용광로 같은 여름 끝, 열기에 그을린 강쇠 같은 사내들 사이로 부는 바람인 모양이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쇠르 몰구 가우다! 고장말 ‘-르’는 앞 말이 목적어임을 나타내는 말로, 주로 함경과 강원 영동지역에서 쓰인다. ‘-르’는 모음 뒤에 온다는 점에서, 표준말 ‘-를’과 대응하는 고장말이다. 자음 뒤에서는 ‘-으’가 오는데, ‘-으’는 표준말 ‘-을’과 같다. “빨래르 누가 씻나 봐라”(<한국구비문학대계> 강원편) “괴기르 하나 붙잡아 가주 와서 가매다 물으 한 댓 동이 붓고 그놈으 끓이.”(위 책) “쇠여물으 많이 장만했스꼬마”(함경) ‘-으/르’는 표준말 ‘-을/를’의 받침 ‘ㄹ’이 떨어져 된 고장말이다.(을>으, 를>르) 또한 ‘-으’는 ‘ㅁ, ㅂ, ㅃ, ㅍ’과 같은 입술소리 다음에 ‘우’로 바뀌기도 한다. 마치 전라도 사람들이 ‘남의 집’을 ‘남우 집’처럼 말하는 것과 같다. “쪼꼬만한 것두 이름우 부르면 영 대다이 놉아했습니다.(노여워했습니다)” 경상도에서도 비슷한 형태 ‘-로’가 쓰이는데, 경상도 동해안과 남해안에 인접한 지역에서 주로 쓰인다. “나로 믿고 자네는 잠주꼬 있그라.”(<경북동남부 방언사전>) “애로 묵고 재와(겨우) 만들었다.”(위 책) “아들로 둘 뒀니이다.”(경남 통영) ‘-로’도 표준말 ‘-를’에서 받침 ‘ㄹ’이 탈락하고 ‘르’가 ‘로’로 바뀐 것인데, ‘ㄹ’ 받침과 모음 뒤에서만 쓰인다. ‘-으, -르, -로’는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한반도 동쪽 지역에서 쓰이는 고장말이다.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