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글 언어예절 편지·연설문, 평론글·논문, 기사·보도문, 일기·행장·비문·제문, 광고·알림글, 법률·조약·조례, 과학·기술글 …. 갈래가 다양한 실용글들이다. 수학·물리·의학·공학을 쉬운 말글로 풀어쓴다면 일반에 이바지하는 바 많을 터이다. 전문·학술 분야 연구라도 사람들에게 베풀어 알리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문제는 저런 분야에 종사하면서 글쓰기를 겸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과학·이공학 이론이 앞선 나라 말로 돼 있어 대중이 다가가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 우리말로 학문·철학하기에 이어 과학·기술 쪽에서도 글쓰기에 애쓰는 움직임이 있어 다행스럽다. 컴퓨터 시대로 오면서 자연어·인공어(통제·기계언어)란 말을 쓴다. 기계나 연장은 사람 수고를 덜어준다. 말글은 소통 수단이자 걸림돌이기도 한데, 전자말 시대에 등장한 것이 기계·자동번역이다. 이는 언어 장벽에서 오는 수고를 더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나라 안팎의 온갖 언론·학술·기업 누리집을 시각을 다투어 읽거나 전자우편을 주고받을 일이 많아졌다. 날이 갈수록 실용글에서 기계번역의 수요가 늘어날 터이다. 주요 언어 문틀과 낱말, 다양한 말뭉치를 맞대고 엮어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사용자에게 익은말로 뒤치어 소통하게 하는 방식인데, 여기서 완벽을 바라기는 무리다. 80% 성능이면 나머지는 사람 몫이겠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말 짐승이름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 사람 욕심이란 끝 간 데를 모르니 삼가야 함을 이른다. 두어 해 전에 몽골 울란바토르에 갈 때 몽골 비행기에 말대가리가 그려져 있어 인상적이었는데, 들판에도 공연장에도 테릴지 국립공원에서도 예외 없이 말이다. 말은 동력의 원천이자 탱크였다. 말을 몽골말에서 모린(morin)이라고 한다. 제주 고장말로는 지금도 ‘모리’라 하는 이가 있음을 보면 몽골과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우리말에서 ‘말’로 소리가 나는 말 세 가지가 있다. 사람이 타고 다니는 말(馬),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고 할 적의 말(斗), 입으로 생각과 느낌을 전하는 말(言)이 그렇다. 소리가 같고 뜻은 달라도 옮김과 전달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지난 일과 관련지어 보면, 신라시조 혁거세와 날아오르는 흰말, 고구려 주몽과 비루먹은 말, 동부여 부루와 금개구리(금와) 모양의 어린아이, 경주 황남동 고분의 천마도 …들이 드러난 대표적인 말 관련 신화소들이다. 여기 천마는 땅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하늘과 땅의 만남으로 거룩한 말의 속내를 드러낸다. 달리 윷놀이에서 도·개·걸·윷·모라 할 때 걸(geol)이 지명 대응성 등으로 보아 말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거룩하다’의 ‘거룩’이 말을 뜻하는 ‘걸’에서 갈라져 나온 형태임을 짐작할 수 있다. 삼한 마한(馬韓)의 ‘마’도 말의 신성함과 으뜸감을 이른다. 따라서 말이 접두사가 되어서 ‘크다-거룩하다’로 쓰임을 알 수가 있다. 초인의 말울음 소리에 솜다리는 꽃피네. 정호완/대구대 교수·국어학
삭부리 사람이름 숙종 7년(1681년), 기병(騎兵)의 보인(保人)인 허협이 한글로 쓴 글을 가지고 승정원에 와 역모가 있다고 발고했다. 평안병사를 지냈던 이간이 이남과 함께 반역을 꾀할 때 감사 유하익과 순변사 정유악이 끼었는데, 문서가 그때 일을 알고 있던 양국정에게서 나온 것이라 하였다. 양국정을 문초하니 이간이 이남에게 편지를 보낼 때 이를 은밀히 숨겼으나 이간에게 신임을 받은 삭부리(朔夫里)가 몰래 본 것이었다고 했다. 사내이름으로 자주 보이는 ‘삭부리’는 어디서 나온 말일까? 조선 후기로 오면서 성 상징이 이름으로 쓰인 것이 자주 보인다. 그 가운데 개부리/개불이·괴불이·말불이·쇠불이/쇼부리 …들이 있는데 낱낱 개·괴/고이(고양이)·말·소 따위와 잇닿아 있다. 이로 보면 삭부리는 삵과 잇닿은 듯도 하다. 영조 6년(1730년), 궁방의 화약을 훔치려 한 禾古伊·周老味·介助之(화고이·주노미·개조지) 등을 국문하였다. 禾古伊는 실록에 禾塊(화괴)로도 적으며, <승정원일기>에는 雄猫(웅묘)와 禾介(화개)로도 나온다. 禾古伊는 ‘수고이’(수고양이)이다. 이익 선생댁 호구단자에서는 ‘수리놈이’를 愁里男(수리남)으로 적다가 나중에 禾里男(화리남)으로도 적었다. 禾(화)는 ‘벼 화, 쉬 화’인데, 자주 ‘수’를 적을 때 쓰인다. ‘불알·불거웃’ 들에서 보듯이 예부터 성 상징은 ‘불’이라 한 듯하다. 사내이름에 감불이·돌부리·살부리·외불이·억불이·육부리도 있고, ‘곰부리’라는 계집이름도 보인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아니어라우! 고장말 “아니요. 쪼깨 아플라고 혀서 칙간에 갔어라우.” 소설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 들몰댁 큰아들이 변소에서 나오며 내뱉는 말이다. ‘-라우’는 전라도 사람들이 듣는 사람에게 존대 뜻을 나타낼 때 말 끝에 붙여 쓰는 고장말이다. 표준어에서 존대 보조사 ‘-요’와 쓰임이 비슷하다. “선상니임, 선상니임, 손님 오셨어라우.”, “애기씨는 암만해도 내일은 못 가실 것맹이여라우.” 그러나 “남말허고 앉았네.” “언저역(엊저녁) 본께 못쓰겄데”와 같이 ‘-네’와 ‘-데’로 끝나는 말 끝에는 붙여 쓰지 못한다는 점에서 표준말 쪽 ‘-요’와 좀 다르다. ‘-라우’는 ‘-(이)라 허우(-이라 하오)’와 같은 말에서 ‘-허’가 떨어져 나간 ‘-(이)라우’가 굳어져서 생겨난 말인 것으로 보인다. “머 땀시 넘 제사에 배 놔라, 감 놔라 허우?” “고런 맘 묵을 사람이 아니란 것을 믿기 땀세 두 번씩이나 알은 체럴 했는디 몰라라 허우.” 나이가 지긋한 어른이 처음 보는 젊은 사람에게 반말을 쓰기도 그렇고 존댓말을 쓰기도 뭣할 때나, 나이 차이는 있지만 아주 절친한 사람들 끼리는 ‘-라우’ 대신에 ‘-라’를 쓰기도 한다. 이때 ‘-라’는 반말도 존댓말도 아니다. “아이고메, 이러나저러나 논 뺏기기는 매일반인디, 고런 것 알아 워디 쓰게라.”, “정 사장네 굿을 헐랑갑제라?” “-잉”(워메, 들몰댁! 살아왔소잉)과 마찬가지로 ‘-라우’는 그 말을 쓰는 순간 전라도 사람임을 드러내고 마는 표지다.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이력서 언어예절 자신이 배운 내력이나 한 일, 경험들을 적은 문건이다. 햇수 따라 해 온 일을 적는데, 삶이 마감되면 해적이(연보)로 정리된다. 제대로 갖춘 이력서를 보면 사람 됨됨이까지 엿볼 수 있다. 자신을 간추려 정리해 보인다는 점에서 주관이 스밀 수 있지만 관련 자료가 뒷받침하므로 객관성을 지닌다. 10대 후반, 20대 중반이면 대체로 학업이 끝난다는 점에서 학력 말곤 기록거리가 많지 않다. 30대 중반은 가야 비로소 경력·경험 거리가 늘어난다. 문틀은 입학·졸업·입사 따위 낱말투와 명사형(-ㅁ) 끝내기가 있고, ‘하다’ 원형 서술투가 있다. 여기서 나아간 형식이 ‘자기 알림글’이다. 이력을 아우른 자신의 환경·생각·취미·희망 …들을 글로 풀어서 기워넣을 여지가 있다. 글투는 진솔하고 간략함을 으뜸으로 치고, 국내용이라면 반드시 읽는이 높임(아주높임) 말씨를 갖추어야 한다. 내용은 이를 요청하는 쪽의 주문에 걸맞게 써야겠으나, 거짓과 과장은 금물이다. 이력서나 자기 소개서는 취업이 아니라도 누구나 살면서 몇차례는 쓰게 되는 전형적인 사룀글이다. 남이 어떤 사람을 올릴 때 쓰는 글이 추천서다. 주로 본인 이상으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잘 아는, 격이 높은 사람이 쓴다. 인격과 권위를 걸고 쓴다는 점에서 고결·간략함을 으뜸으로 치는데, 역시 경어법을 갖춘다. 학력 위주 아닌 겪고 치른 일, 하고 싶은 일들 중심으로 저런 글들을 꾸린다면, 양식도 달라지고 재미도 더할 터이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범 짐승이름 범(호랑이) 모르는 길을 생쥐가 안다. 저마다 남모르는 능력과 정보가 있다는 얘기다. 단군신화에는 곰과 함께 범이 등장한다. 범과 곰은 두루 환웅에게 사람이 되기를 빌었는데, 곰은 됐으나 범은 못 됐다. 토템이란 관점에서 보면, 상징으로 곰을 내세우는 겨레가 범을 내세우는 겨레를 이겨낸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범은 만주어 비럼(bir m)에서 비롯한 것으로 본다. 참고로 몽골어로는 발스(bals)라 한다. 오늘날의 범은 [벋]에서 [벌]로, 다시 벌엄-버럼-버엄-범으로 바뀌어 굳어졌다.(서정범) 옛말에 호랑이는 달리 갈월(훈몽자회)이라고도 이른다. 갈월은 갈범에서 비롯된다. 일본말로 호랑이는 도라(dora)다. 그 원형은 돋>돌로 바뀌었으며, 같은 소리의 틀로 재구성할 수 있으니, 그 형태는 닫(dat)이었다. 향약구급방에서는 호랑이를 둘흡(地頭乙戶邑)이라 적고 있다. 기원적으로 보아 닫과 ㅼㅏ-다(C)로 그 대응성을 상정할 수 있다. 견훤이 어렸을 때 어머니가 밭일을 하는 사이에 범이 내려와 견훤에게 젖을 먹여 길렀다고 한다. 높고 깊은 산골짜기에 세운 산신각에는 호랑이가 산신을 태운 그림들이 걸려 있다. 이는 범이 사는 산의 신을 숭배함에 그 뿌리를 둔다. <후한서> 동이전에, 범한테 제사를 지내고 그것을 신으로 섬긴다고 하였다. 특히 흰호랑이를 영험한 신으로 모시며, 서쪽을 상징한다. 12지신의 하나이기도 하다. 신과 자연과 생명을 경건히 여기는 문화 복원이 시급하다. 정호완/대구대 교수·국어학
쟈근아기 사람이름 상산군 황효원은 신씨가 아이를 못 낳는다고 버렸다. 임씨를 맞아 두 아들을 낳자 화목지 못하다며 임씨를 버리고 다시 신씨와 살았다. 신씨가 죽자 호적에 구사(종)인 ‘쟈근조이’를 아내로 올렸다. 상산군의 일을 사헌부에서 여러 차례 아뢰어 풍속을 바로잡도록 명을 내려 달라고 했으나 성종 7년(1476년), 임금은 더 논하지 말고 이씨(쟈근조이)를 상산군의 ‘움아내’(후처)로 삼도록 해 주라 일렀다. 중세 말 ‘쟉다·혁다·다’는 모두 작다는 뜻의 말이었다. 그러나 이름에서는 한결같이 ‘쟉다’에서 비롯된 ‘쟈근’(者斤/小斤)이 이름의 밑말로 쓰였다. 쟈근이·쟈근개·쟈근대·쟈근도티·쟈근만·쟈근모디·쟈근올미·쟈근토리 따위 사내이름과 쟈근이·쟈근가이(히)·쟈근금·쟈근년(녜)·쟈근덕이·쟈근비·쟈근아기·쟈근장이 …들 계집이름이 있다. <정종실록>을 보면 몸종을 ‘쟈근이’(小斤)로 부른다. ‘쟈근’이란 말이 작다는 뜻과 다른 뜻도 있음이 엿보인다. 크다는 말에 ‘한’과 ‘큰’이 있다. 땅이름에서는 ‘한’이 자주 쓰이고 사람이름에서 ‘큰’(大隱/大/大 )이 더 쓰였다. 사내이름에 큰가히·큰난이·큰노미·큰동이·큰쇠·큰아기·큰아희·큰이 따위가, 계집이름에 큰이·큰덕이·큰벌어지·큰비·큰아기 …들이 있다. ‘한’이 든 이름에 한이·한덕이·한덩이·한돌히·한비·한섬이·한쇠 …들이 쓰였는데, ‘한’이 꼭 ‘크다’는 뜻은 아닌 듯하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참 이뿌죠잉! 고장말탐험 ‘-잉’은 주로 전라도 사람들이 말 끝에 붙여 쓰는 말로,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경상도 쪽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이’가 쓰이지만, ‘잉’과는 그 쓰임이나 분포에서 차이가 있다. ‘-잉’은 받침 ‘ㅇ’이 탈락하면서 ‘이’가 콧소리로 실현되기도 한다. “가지 말어라이~.” 최명희 <혼불>이나, 채만식 <탁류>에서도 ‘잉’이 흔하다. “밀지 말어. 자빠지겄네잉.” “문 열어요, 잉? 나두 들어가게 ….” “끼니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먹어라잉.” ‘차 조심허고잉.’ 여기서 ‘잉’에는 타관 땅 자녀를 걱정하는 어미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친구 사이 혹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위협적인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도 한다. “시기는(시키는) 대로 히라(해라)잉.” “딴소리허믄 재미없을 줄 알아라잉.” 이처럼 ‘-잉’은 마음을 더 간곡하게 혹은 위협적으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공감해 주기를 바라거나, 공감할 것이라고 예상될 때도 쓴다. “아따, 그 자석 드럽게 싸가지 없는 놈이구만. 그러지잉.” “참, 이뿌죠잉.” ‘-응개, 긍개, 근디’ 등과 함께 ‘-잉’은 전라도말의 한 지표가 되는 말이다. 타관에서 ‘-잉’을 쓰는 사람을 만나면 왠지 반갑고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고장말이 주민 사이 유대나 동질감을 확보하는 수단이자 정체성을 나타내는 표지인 까닭이다.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