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쳇말로 … 언어예절 난데 곧 출처는 ‘언제·어디서’에 드는 말의 기본 성분이다. 따온 말글의 출처를 밝히는 일도 기본 예절로 친다. 재미있는 것은 그 바탕에 도사린 ‘차별’ 의식이다. 차별 중에도 ‘언어 차별’은 뿌리 깊다. 우리만 해도, 문자·언문·상소리·쌍말·속어·이언 …을 갈라 글자부터 말에 이르기까지 차별이 별스러웠다. 로마자·영어 차별도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고, 남녀·인종·지역 …에 이르면, 사물을 분별하는 데 언어 차별이 큰 부분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 스스로 바르고 곱고 점잖은 말을 쓴다고 여기면서 속된말·유행어·요즘말·시쳇말 따위로 초를 드는 것도 그렇다. 시체(時體)는 요즘 거의 쓰이지 않지만 ‘시쳇말’은 흔히 쓴다. “현재 의회 내에서 정말 한국을 위해 시쳇말로 ‘총대를 메줄’ 의원이 누가 있느냐?” “시쳇말로 벽지에 필이 꽂힌 것.” “시쳇말로 죽을 맛일 게다.” “시쳇말로 ‘쪽팔림’은 순간이고 성공은 영원한가.” “시쳇말로 비즈니스 프렌들리에 MB노믹스라던가?” “시쳇말로 ‘좋은 대학’들에서만 논술고사를 치르려고 하는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돈 될 것 같은’ 영화들이 시쳇말로 ‘죽 쑤고’ 있을 때.” “된장은 시쳇말로 ‘웰빙 오리엔탈 소스’다.”(신문글에서) 쓰임새를 보면 형식에서 낱말·마디를 가리지 않고, 종류에서 익은말·외래어·숫자를 가리지 않는다. 범위는 속된말·유행어 …를 포괄해 모자만 씌우면 ‘시쳇말’ 아닌 게 없다. 글자꼴이나 발음도 꺼림칙하다. 시간으로 치면 속된말〉시쳇말〉요샛말〉신조어 차례겠다. 아는 체하는 이들이 즐겨 쓰는 말투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인왕산 땅이름 회사나 상품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하는지는 광고에서 매우 중요한 관심사다. 이름 붙이기에 따라 회사 인상이나 상품 경쟁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보통 이름을 붙일 때는 ‘부르기 쉽고, 바른 뜻이 담기거나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을 조건으로 한다. 사람이름이나 땅이름을 붙일 때도 마찬가지다. 땅이름은 오랜 전통을 이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생성되고 변화한 특징을 지닌다. 그런데 인위적이고 의도적으로 땅이름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 특히 행정상 필요에 따라 임의로 땅이름을 만들거나 이민족과의 접촉 과정에서 생성된 땅이름은 부자연스러울 경우가 많다. 인왕산(仁王山)에 들어 있는 ‘임금 王’을 ‘성할 旺’으로 바꾸어 쓴 것은 일제 강점기라고 한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강점한 뒤 대규모 토지조사 사업과 임야조사 사업을 벌이면서, 우리 조상의 얼이 담겨 있는 땅이름을 상당수 바꾸어 버렸다. 그 방식은 대체로 한자의 음은 같지만 뜻이 다른 글자로 바꾸거나 둘 이상의 땅이름에서 한 자씩을 떼어 새로운 땅이름을 만드는 형식이었는데, 그 결과 땅이름에 담긴 뜻은 사라지고 만다. 우리말 가운데 ‘남녀노소’, ‘밤낮’이라는 낱말들은 조선시대까지 ‘노소남녀’, ‘낮밤’이었다. 말 속에 ‘노소’가 ‘남녀’보다, ‘낮’이 ‘밤’보다 중시되던 사회 모습이 담겼으며, 그 말을 사용한 조상들의 정신이 담겨 있는 셈이다. 같은 인왕산일지라도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아는 일은 뜻있는 일일 것이다. 허재영/단국대 인재개발원 교수
말째다 북녘말 다음은 <조선말대사전>에서 어떤 말을 풀이한 것이다. 어떤 말을 풀이한 것일까? ①(요구나 조건, 내용 같은 것이) 복잡하거나 말째서 풀기 어렵다. ②대하거나 다루기에 별스럽게 말째다. ③(말이나 글 같은 것이) 복잡하게 구성되고 엉키거나 걸려서 리해하기에 힘들다. 풀이에 ‘말째다’란 말이 들어 있어서 ‘말째다’가 무슨 뜻인지를 알아야겠다. 북녘말 ‘말째다’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거북하고 불편하다’는 뜻으로 “해가 마주 비쳐 와 사격하기에는 말쨀 것 같았다”와 같이 쓴다. 또 하나는 ‘사람이나 일이 다루기에 까다롭다’는 뜻으로 “그 부분품은 까다로운 것이여서 가공하기가 말째였다”처럼 쓴다. 남녘 국어사전에서는 ‘말째다’를 첫번째 뜻의 평안도·함경도 방언으로 보았다. ‘말째다’를 ‘말-’과 ‘째다’로 분석할 수 있는데, ‘말-’은 ‘말벌, 말버짐’과 같이 ‘큰’이란 뜻을 지닌 접두사이고, ‘째다’는 “몸에 꽉 째는 바지를 입다”와 같이 ‘옷 등이 몸에 좀 작은 듯하다’의 뜻이다. 이런 분석이 반드시 옳다고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말째다’가 ‘많이 째다’에서 ‘불편하다’로, 다시 ‘까다롭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위에 든 세 가지 풀이는 ‘까다롭다’를 풀이한 것이다. ‘말째다’가 ‘까다롭다’는 뜻인데 ‘까다롭다’에서 다시 ‘말째다’를 쓰고 있으니, 두 가지 말을 모두 모르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어사전에서 기본 낱말의 뜻을 풀이하는 일은 참 어렵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요샛말로 … 언어예절 글을 쓰면서 고전, 앞선 연구, 작품들에서 구절을 즐겨 따오는데, 권위 편승, 문자 취향, 현학 취미 …들을 보여줄 때가 많다. 출처만 제대로 댄다면, 그 솔직함에 이런 티들은 녹아든다. 고질병이긴 해도 자기 말인 것처럼 꾸미는 거짓보다는 나은 까닭이다. 짧은 낱말이나 말마디를 별스럽게 들출 때도 있다. 이때 듣기에, 옛말에, 시쳇말로, 속된말로, 요샛말로, 아니할 말로, 못할 말로, 까놓고 말해서, 이른바 …들을 끼워넣는데, 그 연유와 보람은 무엇일까? 역시 출처 밝히기의 한 방식이다. 그냥으론 밋밋해서 좀더 별스런 성금을 나타내고자 할 때 쓴다. 상대에게 한숨 고르도록 배려하면서 말을 마무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요샛말’은 국어사전에 올랐지만 ‘요즘말’은 아직 올리지 않았다. “그 아이는 요샛말로 그룹 회장집 아들이었다” “심려치 마시지요가 아닌 외래어인 요샛말 ‘노 프로블럼’이다” “요샛말로 ‘원천기술’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는 요샛말로 2%가 부족하다” “요샛말로 원조교제 냄새도 난다고 했다” “요즘말로 인재 풀을 넓혔고 교육 입국의 기초를 튼튼히 한 것이다” “요즘말로 하면 소외된 아웃사이더란 뜻이다” “요즘말로 하면 ‘아빠’ ‘엄마’라고 불렀다”(신문글들에서) 대체로 무엇을 설명하거나 화제를 들춘 뒤 이를 한마디로 뭉뚱그려 베풀 때 쓰는 것을 알 수 있다. 형식은 낱말·마디를 가리지 않고, 종류는 고유어·수치·외래어를 가리지 않는다. 요즘 얘기를 하면서 굳이 요샛말을 들출 건 없겠고, 온전히 쓰이는 말을 요샛말로 특정하는 것도 우스울 때가 있다. 신조어·유행어·익은말도 자주 쓰면 식상해진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사음동과 마름골 땅이름 <용비어천가>의 땅이름 표기 가운데 ‘마름골’은 ‘사음동’(舍音洞)과 대응된다. ‘마름’이 ‘사음’으로 바뀐 연유는 ‘차자 표기’ 원리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자를 빌려 우리말 단어를 적을 때 적용된 원리 가운데 하나는 ‘훈주음종’(訓主音從)이다. 이 원리는 우리말 단어의 뜻을 담고 있는 한자를 찾아 표기하고 그 다음에 우리말 단어의 음과 일치하는 한자를 덧붙여 표기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예를 들어 ‘마음’을 표기할 때는 ‘마음 心’에 ‘소리 音’을 붙여 ‘심음’이라고 쓰고, ‘가을’을 표기할 때는 ‘가을 秋’에 ‘살필 察’(옛음은 ‘△·ㄹ’)을 붙여 쓰는 방식이다. ‘사음’의 舍’는 일반적으로 ‘집’이나 ‘관청’을 뜻하지만, ‘그치다’, ‘말다’의 뜻도 갖고 있다. 한글학회 <우리말큰사전>에서는 ‘마름’을 ‘지주의 위임을 받아 소작인을 관리하던 사람’으로 풀이하고, ‘사음’과 같은 뜻의 말이라고 하였다. 이는 한자 사(舍)에 ‘마름’이란 뜻이 있었음을 의미하는데, 대부분의 자전류에는 이런 풀이가 없다. 아마도 ‘말다’의 훈을 차용한 ‘사’에 ‘소리 음’을 덧붙여 ‘마름’ 대신에 사용한 한자어가 ‘사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기철·신용철의 <새우리말큰사전>에서는 ‘마름’이 조선 중기 이후에 생겼다고 하였는데, <용비어천가>를 고려한다면 이 말이 생성된 시점은 훨씬 오래 전이며, 이기영의 <고향>이나 문순태의 <타오르는 강>에서도 ‘마름’ 대신 ‘사음’을 즐겨 사용한 것을 보면, 말의 생명력이 얼마나 끈질긴지 짐작할 만하다. 허재영/단국대 인재개발원 교수
다락밭 북녘말 “높은 비탈의 흙을 파서 낮은 비탈에 성토하고 다락밭을 만들어갔다.”(조선말대사전) 다락밭은 어떤 밭일까? 다락밭은 계단밭이다. 남녘 사전에 없고 북녘 사전에만 있으니 다락밭을 북녘말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남녘에서도 다락밭을 종종 쓴다. 계단식으로 된 논은 다락논이라고 하는데, 남녘 사전에 다락논은 없고, 다랑논이 있으니 두 말이 같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남북 두루 쓰는 다랑논은 ‘좁고 작은 논배미’를 뜻하는 ‘다랑이’에서 온 것이다. 대부분의 남녘 사전에서 ‘산골짜기 같은 곳에 층층으로 된 좁고 작은 논배미’로 풀이하는데, ‘층층으로 되었다는 것’보다는 ‘좁고 작은 것’이 더 중요하다. <큰사전>(1947)에서 ‘다랑이’를 ‘좁고 작은 논배미’로 풀이했는데, 이후의 사전에서 뜻풀이를 덧붙이면서 오해가 생기기 시작했다. 다락논·다락밭은 다락방을 뜻하는 ‘다락’에서 온 것으로, 다락이 방보다 높이 있다는 점과 층이 지도록 되어 있다는 점에서 연유한 것이다. 다락논과 다락밭이 산비탈에 있으므로 다락처럼 일반적인 논밭보다 높은 곳에 있고, 산비탈에 만들다 보니 층이 생긴다는 점에서 다락과 비슷하다. 다락논과 다락밭은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논은 물이 있어야 하므로 수평을 맞추자면 층이 지기 마련이지만, 다락밭은 물이 없어도 되므로 비탈을 따라 비스듬하게 만든 것도 있다. 북녘에서는 비탈을 따라 만들어 층이 지지 않은 밭을 ‘비탈밭’이라 한다. 다락논 가운데 좁고 작은 것은 다랑논이 된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