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과 점잔 언어예절 버릇과 예의는 한가지다. 몸과 마음에 익으면 절로 우러난다. 발칙함이란 버릇없는 언행으로 괘씸한 느낌을 줄 때, 나아가 상식이나 격식을 뒤집는 기발한 말이나 행동을 두고 일컫는다. 대상은 주로 어린아이나 젊은층이다. 우리말이 서투른 외국인의 말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본디 그런 행동을 한 사람을 나무랄 때 썼으나 요즘은 이를 부추기기도 한다. 상식·격식도 터무니없거나 굳어서 쓸모가 없을 때가 있으므로 이를 뒤집고 깨뜨리는 맛이 있어서다. 예술·과학 쪽에서는 이로써 새로운 경지를 열기도 한다. 이웃하는 말로 되바라지다, 시건방지다, 주제넘다, 빤빤하다, 느닷없다, 버르장머리없다, 본데없다 …들이 있다. 계급·신분이 허물어지면서 분수를 지키라는 말도 듣기 어렵게 됐지만, 자유로운 만큼 책임·의무는 더 무겁고, 저마다 푼수가 다른 점은 엄연하다. 이에서 벗어나거나 어울리지 않는 언행은 여전히 거북한 느낌을 준다. 그 결과는 짜증, 괘씸, 웃음 … 따위로 드러난다. 뒤집고 튀는 생각도 갈피를 잡으면서 잘 다스려 말하면 ‘점잔’으로 이어지고 말에 힘이 생긴다. ‘점잔하다’와 이웃한 말로는 얌전하다·음전하다·듬직하다·의젓하다 …들이 있다. ‘잠잖다·점잖다’는 사람됨이 고상하며 의젓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거짓되고 꾸민 것이 아닌 한 이를 함부로 허물 일도 아니고 깨뜨리기도 어렵다. 점잖잖고 속되고 무잡한 것을 이기는 것은 너그러움과 부드러움이다. ‘젊잖다’는 ‘젊지 아니하다’는 뜻으로 쓸 수는 있겠으나 ‘점잖다’를 쓸 자리에 쓴다면 잘못이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오음산과 오름 땅이름 조선 효종 4년 제주 목사 이원진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탐라지>에는 제주 고장말에 관한 흥미로운 기록이 들어 있다. “촌민의 사투리가 난삽하여 말의 시작은 높고 끝은 낮은데, 김정의 <풍토록>에서는 토착민의 말소리가 가늘고 높아 바늘로 찌르는 것 같고 또한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고 하였다”라고 기록했다. 또한 촌민의 말 가운데 특이한 음이 많은데, 그 가운데 산을 ‘올음’(兀音)이라고 한다는 기록도 있다. 사람들은 제주 고장말이 뭍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때로는 의사 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라고 여기기도 한다. <탐라지> 기록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말소리·어휘·문법에서 제주말은 뭍과는 꽤 차이가 있다. 그러나 산을 뜻하는 ‘오름’이 제주에만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전국 각지에 ‘오음’이라는 산이름이 많기 때문이다. 간성의 ‘오음산’(五音山)이나 갑산의 ‘오음회령’(吾音會嶺)은 <여지승람>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이와 유사한 ‘오을동’(五乙洞) 같은 것도 적잖다. ‘오름’은 ‘오르다’에서 나온 말로, 한자어로 맞옮길 때는 ‘악’(岳)으로 대체된다. ‘성널오름’이 ‘성판악’으로, ‘거문오름’이 ‘거문악’으로 바뀌는 식이다. 그런데 함경도나 강원도 쪽에서는 ‘오을음’이나 ‘오음’의 형태를 취할 뿐 아니라 ‘다섯 오’[五]나 ‘나 오’[吾]가 쓰여 ‘오름’과 무관한 말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오음’도 그 지역에서 높이 솟아오른 산에 붙은 이름으로서 ‘오름’과 같은 계통이라 하겠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앗다’ 쓰임 북녘말 ‘앗다’는 남북에서 대략 다섯 가지 뜻으로 쓰인다. 첫째 ‘빼앗다’는 뜻이다. 이제는 ‘앗다’보다는 ‘빼앗다’가 주로 쓰이는 탓에 ‘앗다’의 쓰임이 좀 줄어들었다. 둘째는 ‘(낟알의) 껍질을 벗기다’의 뜻으로 “절구로 수수를 앗다”와 같이 쓴다. 셋째는 ‘목화의 씨를 빼다’의 뜻으로 “씨아로 목화를 앗다”와 같이 쓴다. ‘씨아’는 목화의 씨를 빼는 기구다. 1번부터 3번까지는 약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껍질을 벗기는 것, 씨를 빼는 것, 무언가를 빼앗는 것’은 무엇이 원래 가지고 있던 것 가운데 일부를 떼어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앗다’의 넷째 뜻은 ‘두부나 묵 같은 것을 만들다’이다. 이는 북녘에서만 쓰인다. “어제밤 두부를 앗겠다고 콩을 불쿠시더니 어느새 망에 갈아 콩물을 낸 것이다.”(박유학·그리운 조국 산천·문예출판사) ‘두부 등을 만든다’는 뜻은 위의 세 뜻과 차이가 좀 있지만, 콩을 불리고 갈아서 만든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고도 보인다. 그래서 남·북 사전에서 네 가지 뜻을 좀 다르게 처리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1∼3번 뜻을 하나의 ‘앗다’에서 갈라진 뜻갈래로 보았다. <조선말대사전>에서는 2∼4번 뜻을 묶어 하나의 ‘앗다’로 보고, 1번 뜻을 별도의 ‘앗다’로 구별하였다. 한편, ‘앗다’의 다섯째 뜻은 ‘품으로 도와준 일을 품으로 갚다’란 뜻으로 “모심기할 때마다 동네 사람들이 품을 앗아 주었다”와 같이 쓴다. ‘품앗이’는 품을 서로 앗아 주는 것에서 온 말이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옥쌀·강낭쌀 북녘말 옥쌀은 “강냉이농마와 강냉이가루, 밀가루를 한데 섞어서 흰쌀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강냉이농마는 ‘옥수수 녹말가루’의 북녘말이다. 옥쌀은 1981년에 나온 <현대조선말사전>(제2판)에 처음 실렸다. 옥쌀은 197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사전에 추가된 말로 ‘옥쌀기계·옥쌀공장·옥쌀혁명’ 등이 있다. 북녘에서 옥쌀기계와 옥쌀공장을 만들어 생산량을 늘린 것은 식량난을 해결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겠다. 강낭쌀·강냉이쌀은 “강낭알을 타개서 겨를 벗기고 만든 쌀”이다. 강낭알은 옥수수 알을 가리키고, ‘타개다’는 “낟알을 망돌(맷돌)로 갈아서 쪼개는 것”이다. 남녘에서는 “콩을 타서 콩국수를 만들다”와 같이 ‘타개다’ 대신 ‘타다’를 쓴다. 강낭쌀은 ‘옥수수쌀’이다. 지금은 음식물 쓰레기가 너무 많아 문제지만, 남녘도 식량난에서 벗어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불과 삼십 년 전만 해도 보릿고개, 춘궁기가 있었다. 남북 국어사전을 보면, ‘강피쌀·상수리쌀·핍쌀(피쌀)’ 등이 있다. 이제는 곡식으로 여기지 않는 강피·상수리·피의 열매를 식량으로 먹었던 것이다. ‘귀리쌀(귀밀쌀)·기장쌀·녹쌀·메밀쌀·밀쌀·보리쌀·생동쌀·수수쌀·율무쌀·좁쌀’ 들도 있는데, ‘쌀’이라는 말이 붙은 것을 볼 때, 이들을 쌀처럼 중히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이제는 건강을 생각해 잡곡밥을 먹고, 잡곡이 쌀보다 비싼 것도 있다. 하지만 세계에는 북녘을 포함한 여러 나라가 식량난에 허덕이고, 식량이 무기가 될 날이 온다는 점도 알아둬야겠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말과 생각 언어예절 마음과 느낌과 생각은 말 앞의 단계다. 사상·표현의 자유는 이를 겉으로 드러내고 펴는 자유를 일컫는다. 말과 글은 물론, 그림·음악·연극 등 드러내는 갈래와 틀은 갖가지다. 생각은 어떤가? 이는 드러나기 이전 단계여서 실체를 알 수 없으므로 자유니 부자유니로 얘기할 성질은 아니겠다. 그 영역 또한 드러낸 것 이상이다. 생각은 자주 바뀌고 먹기도 놓기도 잘하며, 삿됨과 욕심에 휘둘리기도 쉽다. 마음공부란 이 생각 동네를 규제하는 일이다. 그 주체는 생각 스스로일 수도 있고, 책과 경험, 관습·믿음들로 억누르고 갈피를 잡는다. 수련한다거나 갈고닦는다고 한다. 그 공부가 말과 몸짓으로 드러난 한 모습이 인사요 예절이다. 이는 사회나 공동체가 오랜 세월에 걸쳐 다듬고 익혀야 드러나는, 사람이 만든 자연스러움이다. 정치도 경제도 학문도 그런 바탕에서 벗어나면 탈이 생긴다.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할까 보냐!” “지나침은 모자람만 같지 못하다.” 답답하거나 나무랄 때 흔히 들추는 말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무섭고 끔찍한 말들이 자주 들린다. 예컨대 ‘영어 몰입교육’이니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니 하는 말들은 넘쳐도 한참 넘친다. 국민이 자기 말글만으로도 불편 없이 잘살도록 힘쓰는 게 위정자가 먼저 할 노릇이다. 이미 온갖 말로 겨레의 자존심을 깊이 헤집었는데, 그 상처를 무엇으로 아물리겠는가. 아이 밴 어미나 아비는 삿된 생각이나 행동을 스스로 조심한다. 하물며 그 영향이 만인에게 미치는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야 두말해 무엇하랴.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손돌과 착량 땅이름 ‘솔다’는 ‘너르다’와 반대로 공간이 좁을 때 쓴다. ‘저고리 품이 솔다’, ‘솔아 빠진 방’이라는 표현이 있다. 관련을 맺는 말들도 적잖은데, 말의 형태가 심하게 바뀌어 ‘솔다’에서 온 말인지 알기 어려울 때가 많다. ‘솔다’에 ‘곶’[串]이 합친 ‘송곳’이나, ‘솔다’에 ‘나무’가 합친 ‘소나무’가 있다. ‘송곳’의 옛말 형태가 ‘솔옷’이었음은 <훈몽자회>에서도 확인되는데, ‘솔옷 쵸[錐]’라고 풀이하였고, 어휘 사전인 <유합>에서는 ‘송곳 츄[錐]’라고 했다. ‘소나무’도 ‘솔다’에서 비롯된 말임은 낱말 짜임새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대체로 토박이말은 토박이말끼리, 한자어는 한자어끼리 어울린다. 이를 고려한다면 ‘소나무’는 한자어 ‘송’(松)에서 비롯된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솔’과 ‘송’의 발음이 유사하고 뜻이 같아 두 말이 뒤섞여 쓰인다. 그래서 ‘솔고개’, ‘솔내’를 ‘송현’(松峴), ‘송천’(松川)으로 고쳐 부르고, ‘솔골’은 ‘송곡’(松谷)으로 부른다. 순조 때 김매순이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열양세시기>에는 “강화 바다 가운데 험한 암초가 있으니 ‘손석항’이라 부르는데, 손석항이라는 초공이 원통하게 빠져 죽은 곳으로, 그가 죽은 날이면 바람이 차고 전율을 일으켜, 뱃사람들이 경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른바 ‘손돌바람’과 관련된 전설이다. 그런데 사실 ‘손돌’은 ‘솔다’와 ‘돌다’가 합쳐진 말로, ‘좁은 목’을 뜻하는 ‘착량’(窄梁)을 ‘손돌’이라고 표기한 보기를 <용비어천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