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구디·실구지 사람이름 세종 10년(서기 1428년), 평안도 사는 분이(夫隱)라는 여인은 남편 유인수가 시앗과 함께 있는 것이 시기가 나 그의 아들 실구디(失仇知)와 친정오빠 됴텬(趙天)을 시켜 두 사람과 딸린 식구 여섯을 죽이게 했다. 법에 따라 능지처참에 해당한다고 하니 임금이 따랐다. 이름접미사에 ‘-구디’(仇知)가 있는데, 구디·거구디·그믐구디·돌구디·동구디·똥구디·막구디·멍구디·명구디·모구디·물구디·시구디·실구디·옥구디·을구디·어구디 따위 이름이 보인다. 돌구디·똥구디·믈구디·옥구디 따위의 이름은 돌구덩이·똥구덩이·물구덩이·옥구덩이처럼 들린다. ‘구덩이’를 경상 방언에서 ‘구디/구디이’, 충청 방언에서는 ‘구딩이’라고 한다. 중세 말에서 구덩이는 ‘굳’이라 했는데, 호칭접미사 ‘-이’가 붙은 ‘구디’가 이름접미사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두 사람이 하는 실뜨기 노래에 ‘실구대 소리’가 있는 것을 보면 실구디를 실꾸리라고 잘라 말하기는 힘든 듯하다. 거구디·명구디·모구디·시구디·을구디·어구디 따위에서 구덩이라는 뜻을 찾기 힘들며 이름접미사 ‘-구디’가 들어간 이름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1554년의 <명종실록>을 보면 함경도 영흥 백성 김실구지(金實仇之)가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기사가 있다. <사리영응기>에서조차 사뭇 ‘실구디’로 나타나던 이름이 함경도 지방에서는 입천장소리되기가 되어 실구지로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름은 서울말로만 지어진 것이 아니라 고장말로도 지어졌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드러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강냉이 북녘말 강냉이는 남북이 같이 쓰는 말로 북녘말로 보기 어렵다. 하지만 남북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다. 밭에서 나는 열매를 가리킬 때, 남녘에서는 옥수수를 주로 쓴다. 그래서 강냉이는 ‘옥수수 알을 튀겨서 부풀게 만든 것’으로 쓰는 경향이 있다. 강냉이가 본디 자리를 옥수수에 내주고 좀 다른 뜻으로 쓰이는 것이다. ‘옥수수튀김’, ‘강냉이튀김’(북녘말은 ‘강냉이튀기’)이라는 말도 있지만 통상적으로 ‘강냉이’로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강냉이는 옥수수와 동의어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 예문을 보면 ‘옥수수튀김’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 “바스락바스락 고소한 강냉이를 먹고 싶은 생각에 내 입 안에서는 어느새 군침이 흐르고 있었다.”(최일남·너무 큰 나무) 예문에서 화자가 먹고 싶은 고소한 ‘강냉이’는 ‘옥수수’가 아니라, ‘강냉이튀김’이라고 하겠다. 사전에서 해석에 중의성이 있는 예문을 든 것은 그만큼 ‘옥수수’와 동의어인 ‘강냉이’의 예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반면, 북녘에서는 옥수수보다 강냉이를 주로 쓴다. <조선말대사전>에 실린 말은 ‘옥수수떡, 옥수수털, 옥수수과자’가 전부인데, 모두 비문화어로 보고 있다. 강냉이가 붙은 말은 ‘강냉이가루, 강냉이국수, 강냉이과자, 강냉이기름, 강냉이떡, 강냉이수염, 강냉이엿, 강냉이죽, 강냉이지짐’ 등 많이 있다. 강냉이라는 말은 옥수수가 중국 양자강 남쪽의 강남에서 전래했기 때문에 ‘강남이’로 부르다가 변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단말, 쓴말 언어예절 “단말은 귀에 달고 쓴말은 귀에 거슬리나 마음에 이롭다.” ‘좋게 말하기’도 어렵지만 ‘듣기 좋은 말’을 하기도 쉽지 않다. 단말을 감언·미언·감사, 아양·아첨·아유에다 입발림, 말치레, 립서비스 …처럼 갖가지로 달리 일컫는 걸 보면 우리나라나 동양 사람들은 단말·단소리를 오래도록 아랫길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쓴말·쓴소리란 ‘하기 거북한 말’, ‘듣기 싫은 말’로서 충언·고언·간언(諫言)·훈계 따위로 일컬어 윗길로 쳤다. 입바르고 부정적이며 비판적이어서 사랑·용기가 뒷받침돼야 하는 까닭이다. 요즘 ‘칭찬하기’ 바람이 부는 모양이다. 그것이 말할이, 들을이 두루 힘을 내게 하는 성금이 있다는 교육·심리 이론이 뒷받침되면서 학교 밖으로도 번지는 판세다. ‘듣기 좋은 말’ 하기다.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을 가려 추어올리고 치켜세우면 그만큼 자신감이 생기고 우쭐해질 터이다. 깔아뭉개고 나무라기만 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방법일 수 있겠다. 칭찬에 인색할 일도 아니지만 말이 헤프다고 느껴지게 하거나 일삼아 한다면 이는 우스개로 떨어진다. 헐뜯고 흉보기를 즐긴다면 이는 ‘나쁘게 말하기’로서 쓴말과는 격이 다르다. 돌아서서 욕하기는 못난이한테 밴 버릇이다. 쓴말이든 단말이든 사물과 사람을 제대로 보지 않고는 나올 수 없다. 단말도 듣기에 따라 부끄럽고 거북할 때가 있고, 쓴말 또한 좋게 받아들이면 허물을 고칠 수 있다. 칭찬할 일은 칭찬하고 잘못된 짓을 했을 때는 나무라야 마땅하다. 대개는 단말을 먼저 하고 쓴말을 나중에 한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죽전과 삿대수 땅이름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황해북도 서흥군은 도호부가 있던 곳으로 동쪽은 신계현, 서쪽은 봉산군, 남쪽은 평산부, 북쪽은 수안군 사이에 있었다. 서흥부 동쪽 30리에 죽전(竹田)이란 곳이 있는데, 화살을 뜻하는 ‘죽전’(竹箭)으로도 불렀다. <용비어천가>에는 이 땅이름을 ‘전죽수’(箭竹藪)라고 했는데, ‘화살과 대나무와 늪’이란 뜻이다. 그런데 화살과 대나무, 그리고 늪은 아무 관련이 없는 사물들이다. 토박이 땅이름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우리말과 중국어의 말소리 차이를 살필 수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소리가 바뀐 한자음을 본음과 같게 만들고자 펴냈던 <동국정운>에서, 우리말 한자어 중 ‘리을(ㄹ) 받침’으로 끝나는 말들은 중국어의 경우 ‘디귿(ㄷ)’처럼 들리는 말들이었다. 이른바 이영보래(以影補來)는 한자음 영(ㆆ)으로 래(ㄹ)음을 보충함으로써 중국음에 가깝게 낸다는 뜻이다. <용비어천가>에서 ‘전죽수’를 한글 ‘삿대수’로 표기한 점은 매우 흥미롭다. 왜냐하면 ‘전’(箭)은 우리말 ‘살’인데, 이를 ‘삿’으로 적었으므로 ‘전죽수’에서 ‘전’(箭)의 의미는 화살과는 관련이 없는 셈이다. 이 말은 ‘사이’를 뜻하는 ‘사△ㅣ’의 옛말 형태로 볼 수 있다. ‘삿’은 ‘사이’나 ‘새’로 바뀔 수도 있지만 ‘삿[또는 삳]’이 ‘살’로 바뀔 수도 있다. ‘전죽수’가 ‘여러 지형에 놓인 늪’을 뜻하는 말이라면, ‘죽전’(竹田)은 ‘전죽’의 어순이 바뀌어 형성된 동음이의어 ‘죽전’(竹箭)에서 온 말이 된다. 이처럼 ‘대밭’으로 풀이되는 죽전이라는 땅이름 속에 우리말의 또다른 모습이 담겼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망오지·강아지 사람이름 조선시대에 떼 지어 다니며 집에 불을 지르고 재물을 훔치는 불한당이 있었는데 명화도적(明火盜賊) 또는 화적으로도 불렸다. 1431년, 수구문 밖 벌아재에 중이 초막을 짓고 살았는데 화적패가 불을 지르고 살림살이를 들고 튀었다. 영서역에 나타난 여섯 사람 중 두 사람이 구실아치에게 잡혔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망오지였다. 망오지는 망아지와 비슷하나 중세 말로 망아지는 ‘ㅁ.야지’였다. ‘-아지/어지/오지’로 끝나는 이름에 가야지·干阿之(간아지)·간오지·강아지·도야지·동어지·망오지·명오지·벌거지·숑아지·?아지·큰벌어지 따위가 보인다. 가야지는 본디 잔가지로, 버들개지를 버들강아지로 재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중세 말은 ‘버들가야지’였다. 개와 강아지, ‘돝’과 도야지, 소와 송아지, 말과 망아지는 본디 어미와 새끼 관계다. 벌어지(버러지)/벌거지는 벌레의 다른 말로, 벌레/벌개라는 말에 ‘-어지’가 붙은 것이다. 干(간)이 생강을 가리킬 때는 ‘강’으로 읽는다고 하는데 干阿之는 간아지 아닌 강아지인 듯하다. 개오지(개호주)가 강아지 아닌 범 새끼임을 볼 때 간오지·동어지·망오지·명오지는 섣불리 뜻을 짐작하기 어렵다. 망오지가 국문받는 곳으로 가보자. 김경의 종 막산·두지 등이 화적으로 잡혀 형신을 받았으나 장물이 없었다. 박연 등을 문초하니 두지·막산·미마이·부존·셔듕 등과 장물을 나눠 가졌다고 불었다. 부존은 부전과 비슷하다. 아이들이 차고 다니는 노리개를 부전이라 하며, 부전나비는 예서 비롯되었다. ‘미마이’는 낯설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짝태 북녘말 짝태는 ‘명태의 배를 갈라서 밸을 꺼내고 소금에 절여서 넓적하게 말린 것’이다. 북어와의 차이는 ‘소금에 절여서 말렸다는 점’이다. 남녘에서는 짝태처럼 명태를 소금에 절여서 말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남녘에서 북어는 ‘통째로 말린 것’과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낸 뒤 넓적하게 말린 것’ 두 가지가 있다. 말리는 방식에 차이가 있는데, 둘 다 북어라 한다. 북녘에는 명태를 통째로 말린 북어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사전에서 ‘밸을 따서 바싹 말린 명태’로 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녘의 초기 사전 <조선말사전>(1961)에서는 북어를 ‘말린 명태’로 풀이하고 있어서 남녘 사전의 풀이와 같다. 북어 말리는 방식이 원래 달랐는데 나중에 사전에 반영된 것인지, 말리는 방식이 나중에 달라진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북녘에서는 북어를 ‘마른명태’로도 쓴다. 짝태는 어디서 왔을까? 북녘에서 짝태와 같이 쓰이는 말로, ‘짝명태·짜개명태·개명태’가 있다. ‘짜개다’와 ‘명태’가 결합한 ‘짜개명태’에서 ‘짝명태’, ‘개명태’로 줄었다가 ‘짝태’까지 간 것으로 보인다. ‘짜개다’는 ‘수박을 둘로 짜개다’와 같이 둘이나 그 이상으로 갈라지게 하는 것이다. <조선말대사전>(1992)은 ‘물고기의 배를 짜개다’처럼 ‘속이 드러나게 헤쳐놓다’는 풀이를 하고 있다. 생태·북어·동태·명란·명란젓·창난·창난젓 등은 남북 두루 쓰인다. 다만, ‘황태’, 반쯤 말린 ‘코다리’, 명태 새끼 ‘노가리’는 북녘에서 쓰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좋게 말하기 언어예절 “좋은 말만 하며 지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다보면 나쁜 말도, 싫은 말도 하게 된다.” 여기서 ‘좋은 말’은 ‘듣기 좋은 말’이다. ‘싫은 말’을 떠올리게 한다. ‘좋게 말해’는? 긍정적으로, 좋은 뜻으로 말해서 정도인데, 역시 ‘나쁘게 말해’가 따라붙는다. 사물은 양면성이 있어서 ‘기다·아니다, 좋다·나쁘다’처럼 둘로 나뉜다. 나아가 다섯, 열 길로도 가를 수 있다. “기다, 아니다, 긴 것 같다, 아닌 것 같다, 긴 듯도 아닌 듯도 하다, 긴 것도 아닌 것도 아니다, 잘 모르겠다, 말하지 않겠다 …”처럼 갖가지로 느끼고 말할 수 있다. ‘두 길’로는 모자라지만 알아듣고 넘긴다. 이처럼 우리는 말을 부정확하게 쓰고도 넘어갈 때가 많고, ‘나쁘다, 싫다’를 연상해 좋은 것을 ‘좋지 않은’ 말로 버려놓기도 한다. 좋은 점이든 나쁜 점이든 제대로 알자면 사물을 속속들이 들추고 살피고서야 좀 보이는 법이고, 이로써 한가닥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리 하고서 말을 하고 글을 쓴다면 그 말글은 들을 만하고 읽을 만할 터이다. 사물을 정확하게 보아 고갱이를 끌어내 제대로 짚어주는 말하기란 쉽지 않다. 아첨, 칭송, 꾸미기, 판박이 덕담보다 마음을 밝히고 힘을 주며 일을 이루게 하는 말하기가 제대로 된 ‘좋게 말하기’다. ‘좋은 것’을 제자리로 돌리는 운동과 연습이 아쉽다. 우리는 오래도록 ‘그래!’보다 ‘아니야!’에 이력이 났다. 이 정도면 큰 어려움 없이 ‘좋게 말하기’로 나아갈 수 있다. 둘은 한가지인데, 얼마나 사랑과 이해가 담겼느냐로 갈린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샘골과 시암실 땅이름 ‘샘’은 땅에서 물이 솟아나는 곳을 말한다. 물이 솟듯이 힘이 솟는 것도 ‘샘솟다’라고 표현한다. 샘이 있는 곳이면 사람들이 모여 살기에 적합한 땅이다. 그래서 샘과 관련된 땅이름도 매우 많다. 다만 ‘샘’은 솟아오르는 물이 적으며, 모여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에 행정 지역의 이름으로 쓰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래서 큰 고을 이름은 ‘샘’에 해당하는 한자어 ‘천’(泉)이나 ‘정’(井)이 붙는다. 예를 들어 ‘뒷샘골’을 북천동(北泉洞)으로 맞옮겼으니 ‘북’은 방향으로 볼 때 뒤쪽에 해당하며, ‘천’은 ‘샘’을 뜻한다. ‘샘’은 지역 따라 발음 차이가 심하다. ‘시암’이라고 일컫는 지방이 많은데, 전북에서는 ‘통시암’[桶井], ‘시암내’[元泉里], ‘참시암골’[寒泉]은 익산이나 정읍 지역에서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는 땅이름이다. ‘참시암골’에서 ‘참’은 ‘차다’의 ‘찬’이 바뀐 것이다. 또한 ‘시암’은 ‘시양’으로 바뀔 수도 있다. ‘시양골’도 전북 지역에서 비교적 자주 찾을 수 있는 땅이름이다. ‘샘’에 ‘골’(고을)이 붙으면 ‘샘골’을 이루며, 이때의 ‘샘’은 ‘골’에 있는 여린입천장소리 기역을 닮아 ‘이응’으로 바뀌면서 발음이 ‘생골’로 된다. 이렇게 바뀐 ‘생골’은 ‘생사 관념’을 만들어내며, 관련된 전설이 생겨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죽음에 다다른 사람이 살고 싶어 한 마을’, 또는 ‘괴로운 삶을 벗어나고자 한 사람이 꿈속에서 다녀왔던 마을’이라는 이야기는 이름에서 우물이 사라진 생골에서 생겨날 수 있는 이야기 형태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