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언어예절 관청·정당·기업·사회단체 두루 자체 행사나 용무, 업적을 알리거나 밝혀야 할 일이 많다. 기업체는 상품이 나왔음을 알리거나 회사 선전·홍보가 큰 일거리인데, 이쪽은 ‘광고’로 갈래를 잡았다. 간추린 보고, 요약 보고로 일컫는 브리핑도 알림의 한 방식이다. 관청이나 단체에서 대변인이란 사람이 나와 그냥 적어온 글을 읽는 때가 많다. 왜 말로 하지 않는 것일까? 또 친절하게도 글로 요약한 것을 ‘보도자료’란 이름으로 낸다. 이 알림도 특이한 관행과 틀로 굳어져 가는 듯하다. 그 문투는 신문기사를 닮았는데, 아마도 언론사의 수고를 들어주고자 그런 방식을 택한 듯하다. 관행이야 그렇다 해도 그 서술 문투를 뜯어보면 ‘아니올시다’다. “검찰총장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있었다). 내일 오전 중으로 법사위원들의 의견을 듣고, 원내대표단에서 결정을 (하겠다). 신중하게, 하지만 냉철하게 (결정하겠다).” “삼성전자는 … 거대 신흥 시장인 인도에 현지 생산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인도·서남아 이머징마켓 공략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한 정당과 기업의 보도자료 한 구절이다. 우선 누가 누구에게 말하는지가 불확실하다. 국민·소비자·손님 또는 기자들에게 하는 말인데도 도무지 ‘해라 마라, 이렇다 저렇다’ 식이다. ‘해라체’는 사건·소식을 전달하는 기사에서나 쓸 일이다. 아무리 기형적인 형식이라지만 격은 지켜야 말이 통한다. 보도자료의 적절한 종결토는 ‘합쇼체’(습니다/입니다 따위)다. 흔히 내는 성명도 그렇다. 무슨 일이든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소와리골 땅이름 김유정은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토속 작가다. 그래서 그런지 안성 쪽 박두진 문학관이나 경주의 김동리 문학관과 대비할 때, 그의 생가를 배경으로 조성된 유정 문학관은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봄봄> <동백꽃> <소낙비> <만무방>과 같이 제목에서부터 정감을 드러낸다. “제-미 키두. 개돼지는 푹푹 크는데 왜 이리도 사람은 안 크는지.” 딸이 크면 성례를 올려 주겠다는 마름의 말을 믿고 데릴사위 노릇을 하는 <봄봄>의 ‘나’가 뱉어놓은 바보 같은 중얼거림에서 우리는 안타까움보다는 부드럽고 상큼한 웃음을 지어낼 수 있다. 이런 김유정의 문학을 키워낸 바탕에는 그가 살았던 마을과 순박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의 마을 뒷산에는 유정이 다녔음직한 골짜기와 고개가 한눈에 보이는데, 이들 산에는 소나무·갈나무·생강나무 등이 아름답게 자란다. ‘소와리골’도 유정의 뒷산에 있는 골짜기의 하나다. ‘소와리’는 ‘송화’가 변한 말이라고 하는데, 어쩌면 ‘소아리’를 뜻하는 말일 수도 있다. ‘소아리’는 사전에 실리지 않은 강원도 토박이말로 ‘잎이 많은 소나무 가지’를 뜻하는 말이다. 이 말은 ‘소나무’를 뜻하는 ‘솔’에 ‘아지’ 계통의 ‘아리’가 붙어 된 말로, 어린 소나무일수록 잎이 짙고 무성하다. 늦가을이나 이른 봄에 시간이 날 때면, 담장 대신 소아리를 베어다 울타리를 만들던 풍습이 사라진 지 오래 되었는데, 유정의 문학지도에 ‘소와리골’은 토속어 ‘소아리’의 쓰임새를 생각하게 하는 그림이라고 할 만하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벌개미취 풀꽃이름 꽃값이 비싸다 싸다 얘기하지만, 어버이날이나 졸업식날 등 특별한 날을 빼고는 한결같다. 여름에는 싸지만 금방 피었다 시들고, 겨울에는 비싸지만 오래 볼 수 있으니 결국 시간당 누리는 꽃값은 같다. 엊그제 외국인 학생들의 한국어 과정 수료식을 마치고 국화꽃다발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 중에 보니 ‘벌개미취’도 들어 있다. 우연으로 그랬겠지만 서양식 꽃말이 ‘그대를 잊지 않으리!’라니 고맙다. ‘벌개미취’에서 ‘벌’은 ‘넓은 벌 동쪽 끝으로~’에 나오는 그 벌이다. ‘벌노랑이/ 벌씀바귀’처럼 들판에 나는 풀꽃 이름에 붙인다. ‘개미’는 꽃잎 하나 하나가 개미를 닮은 듯하고, ‘취’는 어린잎을 나물로 먹기애 붙었다. ‘벌개미취’는 사는 데, 생긴 모양, 쓰임이 두루 어울린 이름이다. 미국 도시이름 ‘시애틀’은 본디 원주민 추장 이름이었다고 한다. ‘합법적’으로 헐값에 땅을 팔라는 그쪽 대통령의 제안에 시애틀 추장은 “우리가 어떻게 공기와 시냇물을 소유할 수 있으며,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사고 판다는 말인가?” 하고 반문했다. 더욱이 ‘들꽃은 우리 누이고, 말과 독수리는 우리 형제’라고 했다니, 시애틀 추장이 보기에 벌판에 있는 꽃을 꺾어 파는 일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일까. 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사진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금덩이·은덩이 사람이름 금성대군은 수양대군의 동생으로 단종 복위 운동을 하다 나중에 사약을 받은 이다. 첩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갓동(加叱同)은 충주에 속한 종이 되어 세 아들을 뒀는데, 金叱丁·鐵丁·銀丁(금질정·철정·은정)이라고 한다. 金叱丁을 金丁이라고만 썼다면 ‘-丁’은 어김없이 한자이름 돌림이다. 金叱丁으로 적은 것은 이두표기임을 가리킨다. 丁은 본디 ‘뎡’이란 소릿값을 지녔으나 이름접미사로 쓰일 때는 ‘덩’을 적는다. 갓동의 세 아들은 금떵이·쇠덩이·은덩이로 읽힌다. 이름 표기에서 金(쇠 금)은 ‘쇠’ 또는 ‘금’을 적고, 鐵(쇠 철)이 ‘쇠’ 또는 ‘텰’을 적으므로 金叱丁는 쇠덩이가 아닌 ‘금떵이’임이 분명하다. ‘-덩이’(丁·貞·加應)가 붙은 사내이름에 ‘그믐덩이·귿덩이·금덩이/금떵이·돌덩이·두덩이·만덩이·모덩이·벽덩이·블덩이·쇠덩이·수덩이·은덩이·일덩이·큰덩이·한덩이·후덩이’ 따위가 있으며, ‘금덩이·돌덩이·옥덩이·움덩이·흙덩이’는 계집이름으로 쓰인다. ‘덩이’는 작게 뭉쳐 된 것을 일컫고, 한 덩이, 두 덩이 따위 세는 말로도 쓰인다. 접미사로 쓰일 때는 밑말의 성질을 가진 사람의 뜻을 나타내며, 고집덩이(고집쟁이), 원수덩이 따위가 있다. 이름접미사 ‘-덩이’는 세 가지 뜻 모두로 쓰인다. 단단하다고 ‘돌덩이’, 몸에 열이 많아 ‘블덩이’로 지었을 법하다. 두덩은 눈두덩에도 쓰이는데, ‘그믐덩이’는 뭘까? 그믐은 달이 없는 캄캄한 밤이다. 금·은을 아울렀거나 얼굴빛을 보고 지은 말일까? ‘흙덩이’는 屹加應(흘가응), 土塊(토괴)로 적었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갑작사랑 북녘말 ‘갑작’이 결합된 낱말은 북녘의 ‘말다듬기 사업’의 영향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조선말사전>(1960), <현대조선말사전>(1968)에는 ‘갑작스럽다·갑작스레’ 외에 ‘갑작바람·갑작병’만 있는데, 70년대에 남녘 사전에도 반영됐다. ‘갑작스럽다·갑작스레’는 남북이 같이 쓰는 말이다. 1975년에 나온 <새우리말 큰사전>(신기철·신용철)에서 ‘갑작바람·갑작병’ 외에 ‘갑작사랑’을 실었다. 여기서는 ‘갑자기 하는 사랑’이라는 뜻풀이, 속담 ‘갑작사랑 영 이별’과 그 뜻풀이만 싣고 있다. 이후 <우리말큰사전>(1991), <조선말대사전>(1992)에서도 추가된 내용 없이 다루었다. ‘갑작’이 결합된 낱말 가운데 남녘에서 사전에 추가하여 북녘 사전에 수용된 말은 ‘갑작사랑’이 유일하다. 북녘에서 만든 새말은 80년대 이후 사전에 반영되었다. <현대조선말사전> 2판(1981)에서는 ‘갑작달리기·갑작바람·갑작변이·갑작변이설·갑작병·갑작부자·갑작수·갑작죽음·갑작흐름·갑작끓기’가 추가되었고, <조선말대사전>(1992)에서는 ‘갑작변이고정·갑작변이종·갑작변이유발·갑작비·갑작사랑·갑작졸부·갑작출세’가 추가되고, <조선말대사전> 증보판(2006)에서는 ‘갑작벼락·갑작변이률·갑작변이체·갑작변이육종·갑작푸닥거리·갑작힘’이 추가되었다. ‘갑작’이 ‘갑자기’와 같은 뜻이라는 것만 알면, 각 낱말의 뜻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북녘 사전에 지속적으로 낱말이 추가되는 것을 보면, ‘갑작’의 조어력이 꽤 센 것으로 보인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떡값 언어예절 사람들은 선물을 주거나 받으며 인사한다. 행사 때 꽃다발을 선사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손수 짓고 거둔 옷·베·노리개·그림·글씨에다 건어물·고깃근 …들 마음과 손길이 스민 것이면 더욱 좋다. 그렇게 오가며 만나는 사이에 정이 도타워지고 예절이 가다듬어진다. 밥이나 술대접도 그렇다. 말품도 별로 들지 않는다. 사람살이가 무심하고 마냥 명경 같아서야 무슨 재미가 나겠는가. 떡은 제사·잔치 음식이었다. 밥도 귀한데 하물며 떡이랴. 본디 설이나 추석머리 명절 쇠는 데 보태 쓰라고 일터에서 일꾼들에게 주던 돈이 떡값이다. 요즘은 ‘상여금’으로 굳어졌다. ‘삼성 떡값 받은 검찰 고위층’이라면 녹봉은 나라에서 타면서 떡값은 엉뚱한 재벌 기업한테서 받았다는 얘기니, 우선 말이 안 된다. 괜찮게 쓰던 말이 때로는 이처럼 비뚤어진다. 그 돈머리도 서민들 연봉을 넘어서니 뇌물·봉물에 가깝다. 뜻풀이를 하나 더 늘려야겠다. 촌지·촌심도 실체는 돈봉투일 때가 많고, 뒷돈에다 역시 돈머리를 헤아리기 어려운 검은돈·비자금도 있다. ‘돈’이 말을 만들고 바꾸는 셈이다. 봉사료·거마비·접대비·중개료는 공인된 경비로 친다. 갖가지 거래에서 채택비·사례비·보상금은 랜딩비·리베이트란 말로 성행하고, 끼리끼리 짬짜미가 따른다. 그래도 김장값·술값·떡값 …들은 먹거리에서 비롯된 말들어서, 실물로 대신하면 선물은 될 터이다. 사람들은 에두르거나 비유하여 실체를 숨기기를 즐기고, 지칭하는 낱말도 그렇게 쓰일 때가 많다. 말을 하는 데서 썩 효과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자칫 진실을 가리는 폐단이 있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실레마을과 시루 땅이름 김유정이 태어난 마을 이름은 실레마을이다. 한자어로는 ‘증리’(甑里)라 하니 이는 곧 떡을 찌는 ‘시루’를 뜻한다. 김유정은 “춘천읍에서 한 이십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만 마을”로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득한 마을로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라고 묘사하였다. 땅이름 가운데는 땅의 모양에서 생겨난 것들이 많다. 실레마을이 시루를 닮은 데서 비롯된 것처럼 시루를 닮은 산을 ‘시루뫼’ 또는 ‘증봉’, ‘증산’이라고 부른다. ‘시루봉’은 분지를 이룬 마을에서는 비교적 자주 발견되며, 시루의 방언인 ‘시리’, ‘실리’, ‘실기’, ‘슬구’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시루의 겉모습이 둥긋한 데 비해 시루의 안쪽은 옴팍하게 파여 있으니, 김유정의 고향 마을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을 ‘실레’라 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집이라야 대개 쓰러질 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도 오십 호밖에 못 되는 빈약한 촌” 마을인 실레마을에서 “주위가 이렇게 시적이니만치 그들의 생활도 어디인가 시적이고 어수룩하고 꾸밈이 없다”는 김유정의 <봄봄> 마을. 땅이름은 사람이 붙인 것이지만, 사람들은 다시 그 이름을 닮아가며 살아간다. 생강나무를 동백꽃이라 하고, 지주와 빚쟁이들이 무서워 제 논의 벼를 수확하지 못한 채 몰래 베어 먹어야 하는 동생을 위해 밤새 도둑을 지키는 형을 ‘만무방’(염치없이 막돼먹은 사람)이라 부르는 순박함이 실레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였음을 김유정의 작품에서 읽어낼 수 있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다정큼나무 ‘다정큼나무’는 이름이 정말 정겨운데, 뭐가 그리 다정한 것일까? 바닷가 따뜻한 곳에서 늦여름에 하얀 꽃이 오밀조밀 모여 피는 모습이나, 가을에 까만 열매가 옹기종기 열린 모습을 보면, 한 가지에서 다정하게 꽃을 피우다 여러 열매를 맺는 까닭에 붙은 이름인 듯하다. ‘다정큼나무’라면 ‘다정’과 ‘큼’이 합쳐서 ‘다정하게 크는 나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많은 이들이 둥그스럼하고 윤기 나는 잎, 붙임성 있어 보이는 꽃, 많이 맺는 열매에서 전체적으로 정다운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집안으로 끌어들여 울타리 나무로 삼거나 담장 밑에 흔히 심었다. 나무 껍질은 비단실을 쪽빛으로 염색하는 데 써서 ‘쪽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람이 살면서 다정하기는 아주 쉬운 것도 같고 무척 어려운 것도 같다. 어찌 보면 다정한 품성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제대로 된 삶이어야 할 법한데, ‘인간에 대한 예의’마저 굳이 들먹이게 만드는 척박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필요 이상 정을 주거나 베풀면 결국 바보 같고 손해 보는 느낌을 우리 사회가 너무 많이 겪게 해준 것은 아닌지 …. 그런 풍토가 무색해지도록 부디 ‘다정큼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사진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망이·망쇠 사람이름 고려 명종 때, 공주 명학소에서 망이·망소이 형제가 신분제를 없애라 일어났다. 명학소는 대전 유성 봉명동 또는 만년교 건너 동쪽에 있었다. 조선시대 사람이름에도 망이와 망쇠가 있는데, 밑말 ‘망’에 ‘-쇠’가 붙어 ‘망쇠’로 분화되었다. 이름접미사 ‘-쇠’는 ‘소이’에 가까워 金伊 또는 金(쇠 금)으로 적었다. ‘소이’라는 이름은 사내·계집이름으로 쓰였다. ‘소이’와 함께 ‘소유’(所由)라는 이름도 있는데, 고구려 고국원왕의 이름 사유/쇠(斯由/釗)와 비슷함이 놀랍다. ‘-쇠’로 끝나는 이름은 사내이름인데, 가말쇠·가오쇠/가외쇠·가이쇠·간쇠·감쇠·갓쇠·강쇠·거리쇠·거인쇠/건쇠·걸쇠·걸음쇠·검쇠·고도쇠·곰쇠·구디쇠·구리쇠·구지쇠·굳쇠·귀쇠·그리쇠·그믐쇠·귿쇠·글쇠·금쇠·길쇠·꺽쇠·날쇠·낫쇠·넛쇠·넙쇠·논쇠·뇽쇠·눅쇠·늦쇠·니쇠·단쇠·댱쇠·덕쇠·덩쇠·덩어쇠·돌쇠·돗쇠·두라쇠·두리쇠·두지쇠·둘쇠·득쇠·똥쇠·마름쇠·막쇠·망쇠·맵쇠·머흘쇠·멍쇠·모디쇠·모로쇠·모리쇠·몽고쇠·무쇠·무적쇠·믈쇠·바다쇠·박쇠·밤쇠·보롬쇠/보름쇠·복쇠·봉쇠·부쇠·북쇠·붓쇠·삼쇠·샹쇠·아당쇠·아리쇠·알쇠·어둔쇠·어리쇠·어오쇠·어위쇠·억쇠·연쇠·열쇠·오마쇠·올미쇠·욀쇠·울음쇠·유월쇠·윤쇠·은쇠·일쇠·작난쇠·잣쇠·쟉쇠·적쇠·조막쇠·죽쇠·줄쇠·직쇠·짝쇠·쪽쇠·찹쇠·통쇠·큰쇠·한쇠·흔쇠·흰쇠 따위가 있다. 필암서원 문적에는 고장이름이 붙은 장성쇠·무안쇠도 보인다. <사리영응기>에 보이는 ‘망‘ㅿ+외’·은‘ㅿ+외’·뫼리‘ㅿ+외’’는 망쇠·은쇠·모리쇠의 실제 소릿값이다. 조선 후기에는 돌셰·어린셰·억셰처럼 쇠를 셰(世)로도 적었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갑작힘 북녘말 “큰 고기가 물렸다고 덤비면서 갑작힘을 주면 물고기는 낚시끝에 찢긴 제코를 남겨놓고 도망친다우.”(장편소설 <참대는 불에 타도>) 갑작힘은 ‘갑자기 쓰는 힘’이다. ‘갑작’은 ‘갑작스럽다’에서 확인되는데, ‘갑작’에 대한 남북의 견해가 다르다. 남녘에서는 어근으로 보고, 북녘에서는 부사로 본다. 부사 ‘갑자기’의 준말로 보는 것이다. 여기서의 어근은 자립하지 못하는 어근을 말한다. 어근을 ‘자립 어근’과 ‘비자립 어근’으로 나눌 수 있고, 여기서는 ‘비자립 어근’을 가리킨다. 북녘말에서도 용언을 꾸미는 말로 ‘갑작’을 쓰는 일은 드문 것으로 보인다. 사전에 보기가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녘말에서 ‘갑작’은 주로 명사나 명사형과 결합하여 낱말을 만드는 기능을 한다. 이를 고려하면, ‘갑작’은 ‘낱말을 만드는 어근’(단어 형성 어근)일 것으로 생각된다. ‘갑작’이 결합된 말로, 갑작달리기(급출발), 갑작바람(돌풍), 갑작변이(돌연변이), 갑작부자(벼락부자), 갑작비(갑자기 내리는 비), 갑작수(갑자기 꾸며 낸 수), 갑작죽음(돌연사), 갑작출세(벼락출세) 등이 있다. 이들 낱말은 대부분 ‘다듬은 말’로, 실제 북녘말에서 정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갑작’과 ‘갑자기’가 같은 뜻이라는 사실만 알면 이들 낱말을 이해하는 데 별 문제가 없다. 최근 남쪽에 ‘급인사·급유행·급칭찬’처럼 접두사 ‘급-’을 붙여 말을 만드는 걸 본다. 접두사 ‘급-’은 1음절인 낱말과 결합하거나 고유어와 결합하면 어색해지는 문제가 있으므로 ‘갑작’을 활용해 보는 것도 좋겠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