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말 언어예절 음식과는 상관없이 때는 불로서, 요즘의 난방 에너지가 군불이다. 군일·군것질 따위는 일자리 늘리기 또는 큰 사업거리가 됐고, 사람따라 군살 빼는 일로 시끄러운 시절이다. 군말도 쓰임이 폭넓다. 정당한 말이 듣는이에 따라서는 군소리, 곧 불평으로 들을 때가 있다. 이때 인격·소통 문제가 불거진다. 말본에서, 제자리 아닌 데 가져다 쓴 말을 ‘군더더기’ ‘군글자’라고 한다. “몸에 오른 열이 아직 식지가 않았다/ 도대체가 말도 안 된단 말이에요/ 그 방은 아무리 불을 때어도 따뜻하지를 않다 …” 숨을 고르고 강조하는 효과가 있어 여기서 군더더기를 짚어낼 이는 많지 않을 성싶다. 흔히 베풀어 설명할 때 “생각건대, 예컨대, 아마, 실로, 비록, 끝으로, 듣건대, 말하자면, 이른바 …” 들을 끼워넣는다. 나아가 “에, 음, 저기, 보세요, 어떻습니까, 그렇잖습니까 여러분! …”에다 침묵이나 몸짓·눈짓들도 잘만 쓰면 말을 아끼고 성검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리고, 한편, 그래서, 따라서, 그러니, 아울러, 이에 따라, 이와 관련해 …” 따위 이음말(접속어)들도 흔히 쓴다. 문제는 잦을수록 글이 늘어지고, 괜찮은 말도 값싸게 들리게 하거나 군말로 만들 때가 많다. 듣는이나 읽는이가 불편해진다. 전날, 일노래에서 ‘메기는 소리’를 군말이라고 했다. 듣는이는 짧은 군말에도 ‘예이, 그렇지, 얼씨구 …’처럼 추임새를 준다. 연설에서도 사설이 길어서는 옳소나 손뼉치기 같은 반응을 얻기 어렵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사리원과 원효 땅이름 땅이름에 쓰이는 ‘새’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두 마을 사이에 있는 마을을 ‘새말’이라 부르며, 새로 만든 보금자리를 뜻하는 ‘새터’가 있다. 새말이나 새터는 보편적으로 쓰이는 땅이름이기에 전국 각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새’의 옛말은 ‘삿’이나 ‘사‘△ㅣ’ ’였다. ‘사‘△ㅣ’ ’는 ‘사이’를 거쳐 ‘새’로 변화한다. 또한 ‘삿’은 ‘살’을 거쳐 ‘사리’로 변화해 갈 수 있다. ‘사리’의 다른 형태로는 ‘사라’가 있다. <삼국유사> ‘원효불기’ 조항에는 재미있는 기사가 있다. 원효의 세속 성씨는 설씨로 본디 압량군 사람이었다. 압량군은 지금의 경북 경산으로 후에 삽량과 압량이 나누어졌는데, 삽량은 지금의 양산이다. <삼국유사>에서는 삽량 사람인 원효가 ‘사라수’ 아래서 태어났는데, 그의 어머니가 만삭이 되어 집에 귀가하지 못한 채 갑자기 출산하게 된 데서 붙은 이름이라고 하였다. 또한 이 책에서는 원효는 스스로 법명을 지었는데 시골말(향언)로 ‘새벽’을 뜻한다고 하였다. 원효의 출생지가 ‘사라’였고 그의 법명이 ‘새벽’을 뜻한다고 할 때, ‘사라’는 ‘새’에 해당하는 고대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양주동이 밝혔듯이 ‘향가’를 ‘사뇌가’라 부른 까닭도 동쪽을 뜻하는 ‘새’와 관련을 지었음을 고려할 때, ‘새’의 여러 의미인 ‘동쪽’, ‘사이’, ‘새로움’의 뜻을 갖는 ‘사라’가 있었으며, 이 말은 ‘사라곡’(전남 광양)이나 ‘사리원’ 등과 같이 땅이름에 오래도록 남아 있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막덕·바리데기 사람이름 <세종실록>을 보면, 배천 사람 유을미의 아내 ‘막덕’이 한배에 세 아이를 낳았기로 나라에서 쌀을 내렸다. 초계의 약비가 세 아들을 낳았는데 둘이 숨졌다. 셋을 낳았으니 쌀 열 섬을 줘야 한다. 둘은 죽고 하나만 살았으니 어째야 할지 임금과 신하들이 논의했다. 예조에서 닷 섬만 주는 것이 옳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중종실록>에도 안변 사는 쇳덩이 아내 은금, 충청도 회덕의 일비, 전라도 창평의 늦덕(芿叱德/於叱德)이 세 쌍둥이를 낳았다. 이름접미사 ‘-덕’(德)은 계집이름에 주로 쓰였는데 “가오덕·가지덕·감덕·개덕·거믈덕이·검덕이·계덕·골덕·곰덕·곱덕·곶덕·구덕·구관덕·굿덕·귀덕·금덕·긋덕·난덕·납덕·넙덕·논덕·늦덕·니덕·뎡덕·돌덕·두리덕·뚠덕·막덕·만덕·망덕·모로덕·문덕·뭉덕·믜덕·믠덕·바리덕/‘ㅂ.리덕’·반덕·발늦덕·보덕·본덕·부억덕·분덕·불덕·사덕·산덕·삼덕·사랑덕·생덕·서덕·설덕·션덕·손덕·솟덕·수덕·순덕·쉰덕·시덕·신관덕·앙덕·야랑덕·야무덕·어리덕·어목덕·언덕·엇덕·연덕·오덕·오목덕·옴덕·울덕·움덕·은덕·의덕·이른덕·인덕·일덕·자이덕·작덕·잣덕·쟈근덕·졈덕·존덕·죵덕·죽덕·진덕·쳔덕·쳥덕·큰덕·톨덕·한덕·헌덕·후리덕·흔덕·흘리덕이 …” 따위가 있다. 난덕·니덕·사랑덕·구관덕(舊官-)·신관덕(新官-)·큰덕이 따위에서 ‘-덕’은 덕택의 뜻으로 쓰였다. 죽은 사람의 넋을 저승으로 보내는 오구굿, 그 주인공 ‘바리데기’가 ‘바리덕/‘ㅂ.리덕이’’의 다른 소릿값임을 볼 때 막덕·부억덕·작덕이는 낱낱 ‘막대기·부엌데기·작대기’를 적은 것으로도 생각된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사변 북녘말 사변(事變)은 남북이 같이 쓰는 말인데, 쓰임에서 남북 차이가 있다. 남녘에서는 ‘만주사변, 을미사변’과 같이 주로 역사적이고 부정적인 일에 쓰는데, 북녘에서도 ‘을미사변’을 쓰지만, 일상적인 일과 긍정적인 일에도 ‘사변’을 쓴다. “‘허! 이건 굉장한 사변인데.’ 봉서는 쓰거운 웃음을 눈가에 띄우며 씨까부렸다.”(조선단편집, 3. 씨까부리다: 남의 비위를 건드리면서 놀려댄다는 뜻) “새 북부철길의 개통은 두메산간오지에서도 기관차의 기적소리 울려퍼지게 하는 또 하나의 커다란 사변이였다.”(조선말대사전) 남녘에서는 “우리나라의 가정은 사변 때 식구들의 생사조차 서로 모를 정도로 파괴되었다.”(김승옥, 역사)와 같이 ‘육이오 사변’을 ‘사변’으로 쓰기도 한다. 최근에는 ‘육이오 사변’ 대신 ‘한국 전쟁’을 쓰기도 하지만, ‘사변’이라는 말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은 남아 있다고 하겠다. 그 영향인지 몰라도 남녘에서 사변은 많이 쓰이지 않는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른 ‘사변’ 다섯 개 가운데 최근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말은 사변(思辨)으로 보인다. 이 사변은 주로 ‘사변적 방법, 사변적이다’와 같이 ‘-적’과 함께 쓰인다. 사변에 대한 미묘한 차이는 초기 북녘 사전에서도 확인된다. 1961년에 나온 <조선말사전>에서는 ‘변스러운 사건’, ‘비상한 사건’ 외에 ‘중대한 일’이라는 풀이가 있다. 남녘 사전에서는 최근 사전까지도 부정적인 뜻으로만 풀이한 것과 비교해 볼 때, 북녘에서는 오래전부터 긍정적인 뜻으로도 쓰인 것으로 보인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연설 언어예절 혼자서 큰 소리로 좀 길게 한다는 것 말고는 한 사람 앞에서 하는 얘기든 여럿 앞에서 하는 얘기든 다를 게 없다. 잘하자면 숱한 연습이 따라야 한다. 대선·총선을 거치면서 거리 연설도 들을 터이다. 때와 곳, 청중 따라 화제야 다르겠지만 인사는 비슷하다. 말 첫머리에 다중을 아울러 부르고 시작하는 건 만국의 관례다. 인사말은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로 단순해져 간다. 한편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에서 청중이나 상대 따라 ○○○이 달라진다. 이것이 부름말이다. 아이들은 ‘예!’라고 대답하지만 어른들은 시큰둥 마음으로 답한다. “여러 동포들/ 나의 사랑하는 삼천만 동포들이여, 친애하는 애국동포 여러분, 친애하는 5천만 동포 여러분/ …/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북녘땅과 해외에 계시는 동포 여러분, 친애하는 6천만 동포 여러분/ 친애하는 6천만 국내외 동포 여러분/ 친애하는 7천만 동포 여러분/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역대 대통령들 연설에서 나온 부름말들이다. 민족·동포·국민에 사랑·친애·존경하는 등의 모자를 씌워 ‘여러분!’으로 뭉뚱그린다. 말 중간에서는 그냥 ‘국민 여러분’이다. 이승만·윤보선·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을 ‘나·내’, 최규하·전두환 대통령은 ‘본인’, 노태우 대통령은 ‘저·제’,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저’라고 일컬었으며, 두루 말끝은 ‘합쇼체’로 높였다. 치우친 보기이긴 하나 60여년 사이 형편을 짚을 수 있다. 좀더 마땅한 부름말을 찾는 것도 숙제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은냇골 이야기 땅이름 땅이름도 사람이 살면서 만들어 놓은 것인 만큼 삶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오영수의 <은냇골 이야기>는 전설적인 마을인 은냇골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소설에는 후손을 이어갈 수 없게 된 은냇골 전설을 배경으로, 머슴살이를 하다가 주인집 조카딸과 눈이 맞아 아이를 갖게 된 김 노인, 형의 노름빚을 갚고자 자신도 노름에 끼어든 뒤 줄행랑을 친 박 생원처럼 숨어살게 된 사람들의 삶이 애절하게 그려져 있다. 이와는 달리 땅이름에 남아 있는 ‘은냇골’ 전설은 대체로 지사적인 면모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조선 때 이름난 선비가 사화(士禍)를 피해 은둔하면서 생긴 이름이 ‘은냇골’이며 ‘은천동’이라는 식이다. ‘은냇골’은 ‘숨다’를 뜻하는 한자어 ‘은’과 토박이말 ‘내’, 그리고 마을을 뜻하는 ‘골’(고을)이 합쳐진 말이다. ‘고을’ 대신에 ‘골짜기’를 뜻하는 ‘골’이 합쳐질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은냇골은 ‘은천동’이나 ‘은천곡’으로 변화한다. 문헌에 나타나는 은천동으로는 <삼국유사> 권5의 혜통 설화가 있다. 혜통은 신라 신문왕 때 스님으로, 사람을 해치는 교룡을 쫓아냈다는 설화의 주인공이다. 그가 살았던 곳이 경주 남산의 은천동이다. 또한 지금의 경상북도 황간면에 합쳐진 ‘청산현’의 ‘은천소’도 이 유형의 땅이름이다. 혜통이 수도하던 땅이 은천이었으며, 백운정을 짓고 은둔하던 땅이 청산현의 은천이다. 은둔하는 선비 이야기든 평범하게 살아가는 민초들의 이야기든 도처에서 발견되는 ‘은내’에는 사람들의 삶과 혼이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쑥돌·감돌·몽돌 땅이름 성종 8년(1477년) 윤필상의 종 熟石(숙석)이 뒷배를 믿고 장리쌀을 빌미로 백성의 재산을 빼앗으니 충청도 관찰사가 죄를 주라 임금께 장계를 올렸다. 조선시대에 화강암은 관악산 화강암처럼 붉은 빛이 도는 ‘익은 돌’(熟石)과 포천 화강암처럼 알갱이가 곱고 흰빛을 띠는 ‘잔돌’(細石=세석), 흑운모가 많아 쑥색이 도는 ‘쑥돌/‘ㅄㅜ돌’(艾石=애석), 세 가지로 나뉘었다. 叔石·叔突(숙석·숙돌)이란 이름은 ‘쑥돌’인 게 분명하다. ‘-돌/돌히’(石乙/乭/乭屎)로 끝나는 사내이름에 돌히/돌이·감돌·강돌·검돌이·고돌·공돌·귀돌·귿돌·금돌·논돌·늦돌·댱돌·둑돌·둔돌·또돌·막돌/막돌히·만돌·먹돌·메돌·몽돌·뭉돌히·복돌·봉돌·붓돌·빙돌·산돌/산돌히·삼돌·새돌이/새돌히·샹돌·셕돌·쇠돌/쇳돌·수돌·쉬돌·시돌·쑥돌·약돌·어늑돌·억돌·오돌·옥돌히·우돌이·원돌·육돌·윤돌·은돌·일돌·장돌·재돌·쟈근돌이·졈돌·조돌·죽돌이·진돌·차돌/차돌히·한돌이·허롱돌·험돌·후돌/훈돌이 있고, 계집이름에 몽돌·옥돌이 있다. 금·은·쇠 따위가 든 돌은 금돌·은돌·쇳돌, 이런 쓸모 있는 광석을 감돌이라고 한다. 옥으로 된 옥돌, 썰물과 밀물에 씻겨 동글납작하게 닳은 바닷가 몽돌, 낚싯바늘이 가라앉도록 낚싯줄 끝에 매다는 봉돌도 이름으로 쓰였다. 커다란 바윗돌이 ‘뭉우리돌’인데 ‘뭉돌’이라고도 한 듯하다. 돌이 있는 곳에 따라 강돌·논돌·둑돌·메돌/산돌이 있는데, 강돌은 강이나 냇물에 닳은 돌로, 고장에 따라서는 호박돌을 이르기도 한다. ‘-돌’로 끝나는 이름은 온통 지질학 용어로, 요즘 되살려 써도 모자람이 없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푸석수염 북녘말 남북은 ‘겨레말 큰사전’ 편찬에 쓸 새말을 조사하고 있다. 새말이란 최근 들어 만든 말(신어)을 가리킨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에서는 국어사전에 미처 실리지 못한 말(미등재어)도 새말에 포함한다. 새말 조사는 2006년부터 시작됐고, 공동 편찬 회의에서는 지금까지 5차에 걸쳐 5000여 새말이 교환됐다. 북녘에서 나온 새말 가운데 ‘푸석수염’이 있다. “광대뼈가 두드러진 아래로 길쭉하니 내리패인 호물때기 볼에 한도리 감아붙인것 같은 구레나루와 입술이 푹 파묻힌 푸석수염에는 잔고드름들이 그득 매달렸다.”(류근순 <병기창에서>, <조선문학> 1968년 2-3호) 푸석수염은 ‘푸석푸석하게 자란 수염’이다. 이는 ‘푸석푸석한 피부에 거칠게 난 수염 혹은 수염 자체가 푸석푸석한 것’ 등을 함께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푸석’과 관련된 말로 ‘푸석돌·푸석살·푸석이·푸석흙’ 등이 있다. 모두 ‘푸석푸석한 무엇’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북녘에서는 ‘푸석돌’과 같은 뜻의 ‘퍼석돌’도 쓴다. ‘푸석이’는 북녘에서 ‘푸서기’로 쓰고, 물건과 사람을 모두 가리킨다. 곧 ‘부서지기 쉬운 물건’, ‘옹골차지 못한 사람’을 이른다. ‘푸석흙’은 ‘경조토’(輕燥土)를 다듬은 말로 보인다. ‘푸석푸석하다’와 ‘퍼석퍼석하다’는 비슷한 뜻인데, ‘퍼석퍼석하다’는 ‘원래 물기가 좀 있다가 없어진 상태’에 쓰인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사과가 퍼석퍼석하다”, “무가 오래되어 퍼석퍼석하고 맛이 없다” 등에서 ‘푸석푸석하다’를 대신 쓰면 좀 어색하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