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1 언어예절 말을 들어 보아 사람됨을 짐작한다. 헤아리고 분별하는 단계다. 분별하는 마음이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나면서 차별로 이어진다. 말하는 이의 분별·차별 의식이 듣는 이에게 가닿고 반응하는 까닭이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두드러진 차별은 제도와 관습으로 이어진다. 제도·관습은 일종의 공인된 차별인 셈이고, 이는 강고하여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 소집단이나 개인 사이 거래는 달리 손대기가 어렵다. 예절은 어지러운 사회에서 다름과 같음을 헤아리고, 같이 대우하고 달리 대우하기를 적절히 하는 데서 나온다. 말로 비롯된 두드러진 차별 사례를 든다면? 우선 사투리에 따른 차별이 있다. 사람·지역마다 말씨가 조금씩 다른 까닭이다. 헤아림 폭이 얕은 사람일수록 자신과 다른 것에 민감하다. 흔히 인종 차별을 들추지만 생김새보다 낯선 말이 더 거리를 두게 한다. 말 차이로 생기는 계층·계급이 무섭다. 전날의 문자(한문) 차별, 요즘의 외국어(영어) 차별이 심각한 사례다. 이는 진학과 취업에 큰 영향을 줄 만큼 공공연하다. 필요악이지만 거품이 너무 많이 끼었다. 결혼 이민이나 이주 노동자는 언어 불통으로 겪는 어려움이 크다. 아이·어른, 직업·직종, 세대·성별 따라 쓰는 말이 달라서 오는 차별도 있다. 전자말을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도 갈린다. 남북은 언어규범에 따른 차이·차별이 심각하다. 온갖 집단의 따돌림은 차별의 두드러진 보기다. 이처럼 말글 차이는 나라와 말겨레를 나누기도 하고, 계층·계급을 나누기도 하며, 개인 사이도 버르집게 한다. 이런 차별과 차이를 녹여내는 것은 서로 다름을 헤아리고 존중하는 공부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홀아비바람꽃 풀꽃이름 이런저런 사정으로 ‘홀아비’가 되었겠지만, 찬 겨울에 이름만 들어도 측은한 사람이 ‘홀아비’ 아닐까 싶다. ‘홀아비바람꽃’에서 ‘홀아비’는 한개씩 자라는 꽃대에 꽃이 한 송이씩만 피어서 붙은 이름이다. 홀쭉한 목을 쭉 빼들고 외롭게 서 있는 모습에 비유한 것이다. ‘홀아비꽃대’라는 풀꽃도 꽃대가 한줄기씩 올라와서 붙은 이름이다. ‘바람꽃’은 주로 높은 곳에서 자라서 가늘고 여린 풀꽃이 바람에 많이 흔들리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여러 종류의 ‘바람꽃’을 흔히 그리스말 ‘아네모네’라고 부르는데, 이도 ‘바람의 딸’이라는 뜻이라고 하여 서로 통하나 우리말로 ‘바람꽃’이라고 부르면 더 좋겠다. 결국 홀아비바람꽃은 모양과 자라는 곳을 함께 담은 이름이다. 홀아비바람꽃은 우리나라 특산이라서 한자말로는 ‘조선은련화’(朝鮮銀蓮花)라고 하며, 현재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사람 사회는 그렇지 않은 듯 싶다. 예로부터 홀아비는 이가 서 말, 과부는 은이 서 말이라고 했으나, 홀아비바람꽃은 홀로 서 있을 뿐 깔끔하고 산뜻하며 군락지의 모습은 아름답고 기품까지 내뿜으니 부디 홀아비들께서는 끼니 잘 챙겨 드시고 힘내시길 …. 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사진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대장금②·신비 사람이름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대댱금(大長今)과 댱금, 대복쇠(大卜金)와 복쇠, 대계향(大桂香)과 계향이 낱낱 쓰이는데, ‘대’(大)가 성씨임이 분명하다. 밀양 대씨는 발해의 후손으로 전해지며 대장금 또한 밀양 대씨인 듯하다. 대장금과 함께 일한 의녀 가운데 신비(信非)와 은비(銀非)가 있었는데 이름 끝 ‘-비’(非)가 이름접미사임을 보여준다. 계집이름에 자주 쓰이는 이름접미사 ‘-비’는, 겨울비·논비·눈비·봄비 따위 이름을 보면 본디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갑·갓·개·굿·귿·글·금·기림·논·늦·달·돌·똥·막·움·잣·쟈근 따위 자주 쓰이는 밑말뿐만 아니라 강·경·관음·귀·디장·산·삼·션·영·옥·향·효/효양 따위 한자 또는 한자말까지도 ‘-비’와 어울려 이름을 이루었다. ‘-비’로 끝나는 이름 가운데 이름접미사가 아니라 밑말의 끄트머리가 ‘-비’인 것도 있다. 갈비·거비·거부비·도서비·두터비/둣거비·소비 따위는 요즘말로 낱낱 ‘갈비·겁·거북·도섭·두꺼비·속’에 해당한다. <계축일기>에도 ‘도서비’라는 이름이 보이는데, ‘도섭’은 옛말에선 곡두(幻影)나 요술을 뜻하였고, 방언형 ‘도십’은 ‘둔갑’이란 뜻으로 쓰이고 있다. 고비·부허비·서비는 낱낱 ‘곱다·부헙하다·섭하다’는 말에서 가지를 친 것이다. ‘고비’가 견훤왕의 둘째 부인 이름이었음을 볼 때 오랫동안 쓰인 이름임이 틀림없다. 속이 빈 듯 허전한 마음을 ‘부헙하다’고 한다. ‘-비’ 로 끝나는 이름에 ‘두다비/두더비/두대비’도 있는데 무슨 뜻인지 가늠이 어렵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소행·애무 북녘말 남북이 같은 말을 비슷한 뜻으로 쓰고 있지만, 그 느낌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는 말이 있다. 이런 말은 대화할 때 특히 주의해야 한다. 생소한 말을 듣게 된다면 그 뜻을 문맥에서 짐작하거나 뜻을 물어보아 확인할 수 있지만, 말에서 풍기는 느낌에 차이가 있다면 묻기도 곤란하고,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북녘말 ‘소행’과 ‘애무’에 그런 차이가 있다. “전날에, 렬녀의 소행을 찬양하고 기념하기 위하여 세우는 붉은 문.”(조선말대사전) “백락신이란 자의 소행을 보면 전수이 날도독놈의짓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계명산천은 밝아오느냐 1) 남녘에서는 소행(所行)을 부정적인 일에 쓰기 때문에 ‘열녀의 소행’을 기념하기보다는 ‘열녀의 행적’을 기념하여 열녀문을 세운다. 북녘에서는 ‘소행’을 긍정적인 일, 부정적인 일에 두루 쓰기 때문에 ‘어여쁜 소행, 아름다운 소행, 기특한 소행’이 가능하다. 남녘에서 이런 표현을 쓴다면 비꼬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전수이’는 ‘전적으로’의 뜻이다. “황소는 광섭의 지극한 애무에 반겨 어쩌지 못하듯 꼬리를 휘두르고 영각을 치기도 하였다.”(조선말대사전) “지쳤던 아이는 어머니의 다정한 애무에 그만 솔곤히 잠이 들었다.”(조선말대사전) 남녘에서 ‘애무’는 주로 ‘이성간의 사랑 표현’으로 쓰이지만, 북녘에서는 글자뜻 그래로 ‘쓰다듬다, 어루만지다’처럼 포괄적으로 쓰인다. 단순히 ‘사랑하고 귀여워하며 어루만지는 것’이어서 황소를 애무하기도, 어머니가 아이를 애무하기도 한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에두르기 언어예절 돌려 말하거나 날을 누그러뜨려 하는 말법들(완곡어법·헤지)을 ‘에두르기’라 싸잡는다. 이는 껄끄런 말을 부드럽게, 아닌 걸 긴 것처럼 베풀거나 말꼬리를 흐리는 등으로 그 얼안이 넓어진다. 말글로 먹고 사는 이, 판단·분석·주장을 전문으로 하는 법조인·학자·정치인 두루 그 애호가들이다. 선거 유세 쪽은 에두르기가 좀 덜하다. “여러분께서 저를 ○○○으로 뽑아주신다면 …/ 제가 된다면 …”을 깔고 있으니 굳이 에둘러 말할 게 없다. 거짓일지언정 믿음과 확신을 주자면 에두를 짬이 없는 까닭이다. 에두르기에 종사하는 말과 말투는 갖가지다. 입음꼴, 인용, 겹부정, 갖은 비유, 도움토들이 대표선수다. 딱히 한정하기는 어려우나 두드러진 표지들을 들추면 “-적(的), -성(性), 보여진다, 여겨진다, 생각된다, 생각에 따라서는, 하나의, 일종의, -ㄹ 수, -겠-, 이른바, 가능성, 어쩌면, -ㄹ 것이다, -고 하겠다, 아마도, 거의, 주로, 크게, 비교적, 그리, 다소, 적잖다, 지나치지 않다,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 곤란하다, 무리가 있다, 필요성이 제기된다, 필요로 한다, 우려가 있다, 하고도 남는다, 알려져 있다, 판단되어진다, 듯하다, 성싶다 ….” 재미있는 것은 외래말투가 많다는 점이다. 에두르기는 잘만 쓰면 상대에게 겸손·공손·헤아림으로 다가가는 방편이 된다. 문제는 버릇으로 막 쓴다는 현실이고, 비겁·부정직·무책임을 드러내는 말투로 떨어질 위험이 높으며, 결국 꼬리가 몸통을 흔들어 군말이나 다리아랫소리가 되게 한다는 점이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수자리와 정지 땅이름 고려가요 <청산별곡>에 나오는 ‘에정지’는 양주동의 <여요전주> 이후로 경상 방언 ‘부억’을 뜻한다고 푼다. 부엌에 해당하는 ‘정지’가 있다고 해서 “가다가 가다가 드로라 에정지 가다가 드로라”를 ‘부엌에 가다가 듣는다’로 푸는 건 부자연스럽다. 땅이름에는 정자·군막 같은 인조물에서 비롯된 것들도 많다. 넓은 들이나 수려한 경관을 배경으로 정자를 짓고 나그네들의 쉼터로 이용하거나 은둔의 근거지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정자가 있던 마을에는 으레 ‘정자골’이 생겨난다. ‘정’(亭)은 또한 역참·군막을 일컫기도 했으니 ‘수자리’와도 관련이 깊다. 신라 때 군사 제도인 ‘9정’ 역시 수자리와 관련을 맺는다. ‘수자리’의 수는 ‘지킬 수’[守]와 음이 같고, 이는 ‘술·숯’과 음이 유사하다. 따라서 ‘수자리’ 대신 ‘술골·숯골’이 생겨나며, 이런 땅이름은 ‘술 주’[酒], ‘숯 탄’[炭]을 가져다 ‘주곡·주동·탄곡·탄동’으로 바꾼다. 이쯤 되면 ‘수자리’의 본뜻은 사라지고 술이나 숯과 관련된 땅이름처럼 여겨진다. ‘에정지’는 ‘어정지’(於亭地)로 보는 게 타당할 듯싶다. 고시조에서 한자어 ‘어혈지다’를 ‘에혈지다’로 표기한 사례가 있듯, 어조사 ‘어’(於)를 ‘에’로 발음하는 것은 흔하며, ‘정지’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청산별곡>은 ‘사슴탈을 쓴 배우가 장대에 올라 해금 켜는 것을 듣는 장면’을 그렸으므로, 굳이 부엌에 가다가 들었다기보다 ‘정지’에 가다가 들었다는 뜻으로 푸는 게 자연스럽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대장금①/능금 사람이름 중종은 1488년에 나서 1506년부터 1544년까지 서른아홉 해나 임금 자리에 있었다. 타계 때까지 곁에서 중종을 모신 이 가운데 의녀 대장금(大長今)이 있었다. 長今(장금)으로도 적었는데, 당시에는 ‘댱금’이라고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그가 적어도 마흔 해 넘게 중종을 모신 것으로 나온다. ‘-금’(今/金)으로 끝나는 계집이름에 간금·개금·계금·굿금·귀금·근금·난금·논금·늦금·니금·단금·당금·댱금·달금·대금·뎡금·도금·돌금·돗금·듕금·디금·똥금·막금·만금·멍금·명금·목금·무‘△ㅡ ㄹ’금이·뭇디금·밀금·보금·봉금·빌금·산금·사금·셩금·셰금·쇠금·솔금·수금·슌금·신금·쌍금·씨금·애금·야금·양금·어리금·어목금·어위금·업금·여금·연금·엳금·영금·옥금·온금·원금·은금·일금·잣금·쟈금·쟈근금·조논금·존금·죵금·진금·쳔금·쳔이금·초금·최금·츈금·칠금·텰금·큰금·팽금·학금·현금·흐리금 따위가 있다. 이름접미사로 쓰인 ‘-금’은 今(이제 금)으로 주로 적으나 기록에 따라서는 金(쇠 금)으로도 적었다. 금은 시세나 흥정에 따라 정해지는 물건값이나 품값을 이르기도 하고, 접거나 긋거나 하여 생긴 자국, 방언에서는 그믐을 가리키기도 한다. 글금·마금·말금·믈금·복금·야금 따위도 있는데, ‘긁다·막다·맑다·묽다·볶다·약다’에서 가지친 것으로 보인다. 광해 때 펴낸 <동국신속삼강행실>에 ‘능금’(能今)이 나온다. 중종 때 <훈몽자회>에 닝금/림금(林檎)이라고 한 것을 보면 <중종실록>에 보이는 이름은 ‘닝금’, 광해 때는 ‘능금’으로 바뀌었을 법도 하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다듬은 말 북녘말 어려운 한자어나 외래어를 쉬운 토박이말로 바꾼 것으로, 남녘의 순화어와 같은 말이다. 남쪽에서도 순화어뿐만 아니라 ‘다듬은 말’ ‘쉬운말’이란 표현을 아울러 쓰기도 한다. 북녘에서는 1966년 7월부터 73년 5월까지 신문과 잡지를 통해 말다듬기 사업을 크게 벌였다. 5만여 가지를 다듬었는데, 86년에 발행된 <다듬은 말>에서는 2만5천여 가지로, 92년 발행된 <조선말대사전>에서는 1만4천여 가지로 정리된다. 이 사업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지만, 수치를 단순하게 계산하면 20년 동안 30% 정도 살렸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대단한 성과다. 일반에서 쓰는 말을 다른 말로 바꾸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북녘에서 발표한 모든 다듬은 말이 북녘 사회에서 실제로 정착한 말은 아니다. 북녘에서도 본디 쓰던 말로 돌아간 것이 많이 있다. 또 정책적으로도 ‘인민들이 따라오지 않으면 다시 본말로 되돌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1997년 1월 <로동신문>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국제 공용어를 잘 살려 쓸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국제 공용어’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말을 말한다. 그 후 북녘에서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의학, 전자 기기, 컴퓨터, 스포츠 등의 용어를 원어에 가까운 형태로 쓰고 있다고 한다. 남녘의 일부 기사에서 특이하게 다듬은 말을 골라서 북녘말로 나열하고 남북의 언어 차이가 심각하다고 하는 것은 자료에 대한 이런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남녘에서 보기에 좀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말은 북녘에서도 정착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