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과 진내을 금산은 본래 백제의 진내을군(進乃乙郡)이었다. 이 이름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경덕왕 때 진례군으로 고쳐 불렀다. 금산은 노령산맥과 소백산맥이 만나는 곳에 이뤄진 산지로, 금강이 굽이져 흐르는 명승지이자 인삼 재배지로 유명한 곳이다. 금산은 ‘경양’ 또는 ‘금계’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진내을’이 ‘금계’로 불린 까닭은 ‘진’이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는 덮어두더라도 ‘내을’이 ‘시내’를 뜻하는 ‘내’이기 때문인 것은 쉬 짐작할 수 있다. 구한말 채헌식의 문집인 <후담문집>의 ‘소계정기’에는 “대저 시내라는 것은 강과 물의 원류로, 그것을 사랑하여 취하는 사람이 많으니, 옛날 사람들이 이른바로 초계(苕溪) 삽계(?溪) 섬계(剡溪)는 은사들의 휴식처이며, 우계(愚溪), 원화계(院花溪)는 문장의 주제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는 구절이 나온다. 초계는 갈대가 무성한 시내이며, 삽계는 가랑비처럼 흐르는 시내, 섬계는 좁게 굽이져 흐르는 시내, 우계는 밋밋하게 흐르는 시내다. 또한 원화계는 끊이지 않고 흐르는 시냇물이니 ‘진내을’의 ‘진’은 ‘긴 냇물’이 변한 ‘진 냇물’인 셈이다. 금산의 역사를 살피건대 석기시대 유물도 나오지만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장 조헌, 그리고 이치 전투 등과 같이 우리 겨레의 끈기가 묻어나는 인물과 일들이 매우 많다. 후담 선생이 여러 종류의 시냇물이 은사들을 반길 만한 조건을 갖춘 것으로 표현했듯이, 고고한 선비 정신과 민족의 끈기 있는 삶의 모습이 금계 곧 진내을 속에 담겨 있음이 틀림없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통장을 부르다 “마지막 싸움이 될 이번 울돌목해전은 벌써 통장을 부른셈이나 다름없도다.”(김현구·‘리순신 장군’) ‘통장을 부르다’란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성과를 이룩하고 그것을 보란듯이 큰소리로 공포하는 것’이다. 통장을 부르는 것과 그 뜻에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통장은 ‘외통장군’이다. 장기에서 상대의 궁을 잡겠다고 선포할 때 ‘장군’이라 하고, 장군을 방어한 뒤에는 ‘멍군’이라 한다. 상대의 궁이 방어할 수 없는 수가 ‘외통수’인데, 외통수를 둔 뒤 부르는 장군이 ‘외통장군!’이다. 북녘에서는 외통장군을 ‘통장·통장훈·외통장·외통장훈’이라 한다. 통장을 부른 상황이라면 장기의 외통수만큼이나 확실하고 자랑스러운 상황이리라. 장기에서 ‘외통수’는 공격자의 생각이다. 통장을 불렀지만, ‘멍군’의 묘수가 나오면 ‘외통수’가 아닌 것이다. 또 장기에서는 통장으로 승부가 결정되면 장기를 다시 두면 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승부를 끝내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연속적인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의 ‘외통수’는 별로 긍정적이지 않다. 한편, ‘외통수’에 대한 남북 사전의 뜻풀이에 차이가 있다. 북녘 사전에는 번진 뜻으로 ‘외곬으로만 통하는 수나 방법’이란 풀이가 더 있다. 최근 남녘에서 쓰이는 ‘외통수’를 확인해 보면 ‘선택의 여지가 하나밖에 없는 상황’의 뜻으로 쓰고 있어서 쓰임 차이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인사말 인사말이 복잡한 듯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관혼상제를 비롯한 큰일들이 잦을 뿐이지 말이 복잡한 게 아닌데다, 요즘은 어려운 한자말도 거의 쓰지 않고, 토박이 인사말은 삶의 바탕을 헤아려 짚는 까닭에 무척 진솔하다. 아침에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평안히 주무셨습니까?” 하면 “잘 주무셨는가? 잘 잤니?” 한다. 늦은 아침에는 “진지 드셨습니까? 아침 잡수셨습니까? 아침 드셨나? 밥 먹었나? …” 한다. 때에 따라 아침 대신 ‘점심·저녁’을 바꿔 말하면 그만이다. ‘밥 인사’를 낡았다고 여기는 이들이 적잖다. 우리가 언제부터 배불리 살았다고? 일부러 끼니를 거르는 이도 있다지만 이만한 인사말보다 나을 게 따로 있을 성싶지 않다. 그럭저럭 이런 인사말도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로 단순해지고 있다. 거의 사무·의례적인 인사말, 한국의 대표적인 인사말로도 굳어진 듯하다. ‘안녕’만 따로 떼 만나고 헤어질 때 두루 쓴다. 그렇다고 ‘반가워!’나 ‘잘 가! 또 봐!’ 들보다 낫다는 말은 아니다. 일터에서도 ‘안녕하십니까’면 통하는데, “일찍 나오셨습니다! 벌써 나오셨습니까? 좀 늦었습니다, 이제 나오십니까? …”로, 이웃을 만나거나 일터 밖에서는 “어디 가십니까? 들에 나가십니까? 어디 갔다 오십니까? …”처럼 때와 곳에 따라 말을 맞추어 쓴다. “아, 반갑네! 저기 갔다 오는 길일세! 별일 없는가? 여긴 웬일인가?”에 이르면 깊이 소통하는 수준이 된다. 인사는 가볍게 주고받고 넘어가는 버릇말이고, 절·악수·눈인사로 대신할 수도 있지만, 빠지면 사달이 난다. 마음이 불편해지는 까닭이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영양과 ‘고은’ 경상북도 영양(英陽)의 옛이름은 고은(古隱)이었다. 한자 뜻을 풀이하면, 산수가 화려하여 선비들이 은둔하기에 좋은 땅쯤 된다. 본디 이 지역은 고구려 우시군(于尸郡)을 신라 경덕왕이 유린(有隣)으로 고치고, 다시 고려 태조가 영양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오늘날의 행정구역을 고려한다면 육지의 섬처럼 외져 있으니 ‘고은’이라는 땅이름이 어울리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영양의 옛이름이었던 ‘고은’은 ‘곱다’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옛말에서는 어두운 홀소리와 밝은 홀소리가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으므로, ‘곱다’는 현대 국어의 ‘굽다’와 같은 뜻이 된다. 이를 고려할 때 ‘고은’은 ‘곱’에 ‘은’이 붙어 만들어진 이름으로 볼 수 있다. 특이한 경우지만 우리말에서 ‘은’이 명사를 파생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얼다’라는 말에 ‘은’이 붙어 ‘어른’을 만들어내며, ‘임시로 남의 행랑에 붙어 지내는 사람’을 뜻하는 ‘드난’은 ‘들다’와 ‘나다’를 합친 데에 ‘은’이 붙어 된 말이다. ‘고은’이 ‘굽다’에서 비롯된 말이었음은 영양을 감돌아 흐르는 ‘감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자 땅이름으로 ‘반변천’(半邊川)·곡강(曲江)이라 부르는 이 강을 달리 ‘감내·감들내’라 부르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지역은 금장산·백암산·명동산·일월산 등의 산과 장군천·장파천·반변천 등의 하천이 굽이져 만나는 곳이다. 산세와 물이 좋은 땅이므로 ‘굽다’의 다른 의미인 ‘곱다’의 뜻이 강화되어 아름답고 독특한 지역 문화를 일구어 온 셈이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인사 사람을 만나고 헤어질 때 하는 말이나 몸짓, 처음 만난 사람끼리 이름을 알리는 말짓, 은혜를 갚거나 고마움을 나타내는 말과 몸짓을 일컫어 ‘인사’라 한다. 언어예절의 고갱이를 이루는 게 ‘인사’인 셈이다. 이는 흔히 “인사는 잘해야 본전이다, 인사 이동, 정실 인사, 인사 파동, 코드 인사, 인사철 …’에서 쓰는 ‘인사’(人事)와는 좀 다르다. 그런데, 둘을 갈라 올린 국어사전도 있고, 한곳에 두 가지 풀이를 겸한 사전도 있다. 문제는 말밑(어원)을 한결같이 인사(人事)로 박아놓은 점이다. 몇 해 전 정재도님은 ‘인사말씀’의 뜻으로는 중국·일본어에서도 ‘인사’(人事)란 말을 쓰지 않음을 밝히면서 이를 고유어로 봤다. “인사깔(인삿결·인삿성), 인사발림, 인사수작, 인사치레(인사닦음·인사땜), 인삿빚, 인삿술 …”들의 ‘인사’는 인사(人事)와 무관하므로 달리 다루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소리에서도 차이가 난다. 하나는 앞의 ‘인’에 힘을 주어 짧게 [인사]라 하고, 하나는 길게 [인:사-]로 소리 낸다. “인사를 드리다, 인사가 빠지다, 인사가 밝은 사람, 인사가 아니다, 인사를 나누다, 인사를 받다, 인사를 시키다, 인사가 없다, 감사 인사, 인사를 차리다, 인사가 늦다, 반갑게 인사하다, 인사할 새도 없다 ….” 여기서 쓰는 ‘인사’는 소리와 뜻 두루 인사(人事)와는 거리가 있는 말들이다. 인사로 시작하고 인사로 끝내니 그 말짓이 숱할밖에 없다. 때·곳·사람 따라 온갖 인사가 있다지만 서로 편안하게 주고받는 것을 윗길로 친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거제의 옛이름 ‘상군’(裳郡) 거제도(巨濟島)는 남해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이 섬 이름이 한 때는 ‘상군’(裳郡)이라 불렸다. 뜻으로 본다면 ‘치마’인 셈인데, 이 섬을 ‘치마’와 연관지어 부를 만한 연유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최남선의 <동경통지>에서는 거제를 상군으로 부른 연유를 두고 한 구절 설명을 덧붙인 바 있다. ‘치마’를 뜻하는 속어로 ‘두룽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두룽이’라는 말을 문헌에서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비가 올 때 입는 ‘도롱이’는 짚이나 띠로 만들어 허리에 매어 입었으므로 ‘치마’를 뜻하는 ‘두룽이’가 속어로 쓰였다는 이야기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두룽이’의 한자 표기는 ‘독로’(瀆盧)인데 우리말의 ‘도랑’에 해당하는 말이다. ‘도랑’이나 ‘두룽이’, 그리고 ‘도롱이’는 모두 ‘두르다’ 또는 ‘돌다’에서 파생된 명사다. 우리말에서 ‘두르다’에서 나온 명사는 흔치 않지만 ‘돌다’에서 파생된 말은 비교적 자주 쓰인다. 예를 들어 ‘도리’는 ‘둘레’를 뜻할 때와 ‘주기’를 뜻할 때 쓰인다. ‘도리 기둥’이나 ‘두리 기둥’은 기둥과 기둥 사이에 돌려 얹히는 나무를 뜻한다. 거제의 땅이름이 치마나 비옷을 뜻하는 ‘두룽이’ 또는 ‘도롱이’였던 까닭은 섬 주위로 물길이 돌아들기 때문이었다. 외형상으로 전혀 무관해 보이는 ‘독로’, ‘상군’, ‘거제’가 모두 섬의 지형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이러한 말이 변화해 가는 과정에서도 고유어와 한자어의 대응 관계가 성립된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일이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곧은밸 “2∼3달나이 작은 타조들에서는 … 가는밸 특히 십이지장점막에는 심한 삼출성출혈이 있었고, 막힌밸과 곧은밸의 장액막면에는 침상출혈점이 밀집되여있었다.”(2000년, 수의축산1) ‘곧은밸’은 ‘곧은창자, 직장’을 말한다. 남녘에서는 주로 ‘창자’를 쓰지만, 북녘에서는 ‘밸’을 쓴다. ‘장’(腸)이 붙은 이름은 남북 모두 쓴다. 남녘: 큰창자(대장), 작은창자(소장), 잘록창자(결장), 돌창자(회장), 샘창자(십이지장), 막창자(맹장), 막창자꼬리/충양돌기/충수 북녘: 굵은밸/통밸(대장), 가는밸(소장), 불룩밸(결장), 구불밸(회장), ㄷ자밸(십이지장), 막힌밸(맹장), 충양돌기/충수 이런 남북의 차이는 ‘밸’과 ‘창자’에 대한 견해 차이로 말미암은 것이다. 남녘에서는 ‘밸’을 ‘배알’의 준말로 보는데, ‘배알’은 ‘창자의 비속한 표현’으로 보기에 결과적으로 ‘밸’ 역시 비속한 표현으로 보아서 잘 쓰지 않는다. 그런데, 북녘에서 ‘창자’는 ‘위장’과 같은 뜻으로, ‘위(胃)와 밸’을 함께 가리킨다. 또 ‘배알’은 ‘밸의 속된 표현’으로 보지만, ‘밸’은 속된 표현으로 보지 않는 까닭에 ‘밸’을 널리 쓰고 있다. 남북의 사전에서는 ‘곧은밸’과 ‘곧은창자’의 다른 뜻으로 ‘매우 고지식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거나, ‘음식을 먹고 금방 뒤를 보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른다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 문헌에서는 그 적절한 쓰임이 확인되지 않는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일벗 사이 일터에서 일벗의 어버이 등 가족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사람을 높여 부르고 말하는 데 아래위가 따로 없다. 요즘처럼 개인의식이 드셀수록 나이·직급이 아래라고 마냥 ‘해라체’를 쓰기도 어려운데다, 전통적으로 아랫사람한테도 말대접을 그렇게 했던 까닭이다. 다만 나이 차례를 강조한데다 일터·일·위계에 따라 ‘말놓기’가 꽤 통용되기는 한다. 턱없이 권위적인 호칭이나 지칭을 깨자는 논의가 나온 지는 꽤 오래 됐다. 절로 쓰지 않게 된 말도 숱하다. 예컨대 타계한 제 아비를 ‘선친·선고·선부·선대인’, 제 아비를 높여 ‘가군·가친·엄친·가대인’, 남의 아비를 높여 ‘부친·춘부장·춘당·영존’, 남의 아내를 ‘부인·어부인·여사·영부인·귀부인·합부인’에다 ‘영규·영실·퍼스트레이디 …’로 써 무척 어지러웠다. 아내보다는 부인이, 남편보다는 부군이, 부인보다는 여사·사모님 …이 높인말로 인식된 연유는 다분히 작위적이지만, 그리 알고 써 온 바가 있어 마냥 무시하기는 어렵다. 여기서 ‘선친·부친·부인·여사·부군’ 정도는 상대를 가려 쓸 만한 말이다. 일벗의 아들딸은 아드님·따님으로, 어버이는 어머님·아버님 또는 안어른·밭어른·어르신이면 듣기에 좋다. 그 밖의 걸림말·일컫음말도 집안말을 가져다 쓰면 된다. ‘사모님·사부님’(師母-·師父-)은 윗사람 또는 스승의 아내를 높이거나, 스승을 높여 일컫고 부르는 말로 치지만, 그 조합이 ‘스승 어미, 스승 아비’로 되어 맞갖잖다. 학교 쪽이라면 안선생님·바깥선생님 또는 스승님·선생님 정도가 자연스럽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