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룀글투 언어예절 전통적인 몇가지 ‘사룀글투’가 있다. 자손이 단출하나마 음식을 차려 제삿날 옛어른을 그리는 마음을 사뢰고, 드시라고 권하는 글이 축문이다. 언제·어디서·누가·누구에게·무엇을·왜·어떻게(여섯종자)를 한두 마디에 담아 사뢰고 비는 형식이다. “아무해 아무달 아무날 ○○은 삼가 사뢰나이다. 어느덧 해가 바뀌어 ○○님 가신 날을 다시 맞으니 하늘 같은 가없는 은혜를 잊지 못하여, 삼가 맑은 술과 포과를 올리오니 드시옵소서!” 모시는 대상이 성주나 산신령이라도 글틀은 비슷하고, 제를 지내는 연유 정도가 다를 뿐이다. 예컨대 뫼에 새로 상석이나 빗돌을 놓을 때 산신께 비는 말이라면 “아무해 아무달 아무날을 맞아 삼가 산신령께 사뢰나이다. 아무개의 봉분이 헐어, 돌과 흙을 더하여 상석을 놓고 손보고자 하오니 놀라지 마시옵고, 이로 말미암아 궂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돌보아 주시옵소서. 이에 몇 가지 음식과 술을 차려 올리오니 드시옵소서!” 틀과 내용이 썩 간략하고 곡진하다. 번거로움을 멀리하고 간략하고 진솔하게 하는 데서 예가 선다. 어떤 글자를 쓰든 사룀글도 여섯 종자가 바탕이 된다. 여기에 베풀어 자세히 하는 말과 바람들을 덧붙이는데, 고사문이나 고유문도 받들고 아뢰는 대상이나 연유를 달리할 뿐 틀과 뜻에서 다를 게 별로 없다. 길이를 조절하여 간곡한 마음을 더하고 덜할 뿐이다. 이런 틀은 전래굿을 비롯해 종교들에서 두루 비슷한데, 일 있을 때마다 써 버릇하고 행하면 한결 마음이 가다듬어진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곰 짐승이름 곰도 한 가지 재주는 있다. 우리나라에 가장 확실한 자원이 있다면 곧 사람인데, 일상에서 아웅다웅 살지만 사람마다 소중함이 더할 나위 없다. 겨레의 뿌리를 떠올리면, 곰은 신성한 상징성을 지닌다. 곰 여인(웅녀)이 단군의 어머니고 백두산을 달리 웅신산(熊神山)으로 일컬으며 공주의 본이름이 웅진 곧 곰나루임을 고려하면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옛말에 곰은 ‘고마’였다.(신증유합) 곰이야말로 경건하게 삼가서 흠모해야 할 대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마 敬 고마 虔 고마 欽) 단군의 어머니가 곰신이었고 이는 창조신화의 뿌리샘이니까. 오늘날 진해의 옛이름이 웅신(熊神)이었음도 암시하는 바가 크다. 일본말로 곰은 ‘구마’이고 가장 큰 축제의 하나인 아이누의 구마마쓰리(熊祭)가 곰의 신성함을 더해 준다. 아이누말에서 신이 ‘가무이’인데, 우리말에서 신은 ‘검’(신자전)이었다. 조물주가 검(geom)이라고 최남선도 적고 있다. 우리말에서 검이 신임을 아는 이가 적다. 그렇게 배우지도 가르치지도 않았으니 모르는 게 이상할 건 없지만, 자기 것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는 있겠다. ‘고맙다’란 ‘고마에 같다’는 말이 합친 형태로 “당신의 은혜가 곰 어머니 곧 조상신과 하느님과 같다”는 뜻이 된다. ‘고맙다’야말로 겨레의 화두이고 뿌리의식을 드러낸 말이다. 어머니란 말도 고마(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개연성이 높다. 고맙소 향 깊은 언덕 무지개는 피리니. 정호완/대구대 교수·국어학
딜위·그믐딘이 사람이름 세종 12년(1430년), 보덕이란 여인이 永珍衣(영진의)와 싸우다 발길에 뺨을 차여 이레 만에 애가 떨어지고, 사흘 뒤 숨졌다. 사람을 때려죽이면 마땅히 목을 졸라 죽여야(교형) 하나 다친 곳도 없는데 때려죽인 죄로 보기는 어려웠다. 이에 임금은 한 등급 내려 벌을 주라 일렀다. 珍의 소릿값은 중세에 ‘딘’이었고 땅이름에서는 ‘돌’을 적을 때도 썼다. 중세 때 ‘술위’는 수레인데 이름에서 車衣(차의)로 적었다. 衣(의)는 ‘의/위/이’를 적는다. 珍衣는 ‘딘의/딘위/딘이’에 가까운 ‘딜위’를 적은 것으로 보인다. 딜위는 요즘의 찔레다. 딜위가 든 사내이름에 딜위·딜위대·늦딜위 따위가 있다. 永珍衣는 ‘영딜위/길딜위’였을 것이다. 1207년의 <대승선종 조계산 수선사 중창기>에는 딜위금(珍衣琴)이란 여인이 후원했다고 나온다. 세종 때까지만 보이는 ‘딜위’를 ‘珍衣’로 적은 표기는 고려의 내림으로 보인다. 珍(진)이 이름접미사로 쓰일 때 사내이름에 귀딘·그믐딘·금딘·똥딘·말딘·을딘이, 계집이름에 곰딘이 있다. 그믐진·똥진이란 이름도 있다. ‘-진’(進/眞)이 든 사내이름에 감진·귿진·문진·복진·손진·솔진·앙진·이진이, 계집이름에 논진·막진·망진·벽진·옥진이 등이 있다. ‘-딘/진이’는 ‘디다/지다’(넘어지다, 짐을 지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요즘말 ‘값지다·빚지다’는 중세 말에선 ‘귀하다·천하다’는 뜻으로 쓰였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닭알 북녘말 축산 농가의 시름이 깊다. 조류독감이 잦아들지 않았고, 미국 쇠고기가 무제한으로 수입된다는 소식도 있다. 먹잇값은 오르고 고깃값은 내려가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다행인 것은 닭·오리고기 소비 감소가 예전보다 덜하다는 점이다. 조류독감 미세균(바이러스)이 섭씨 75도 이상에서 죽는다는 사실이 알려진 까닭일 터이다. 달걀도 잘 안 먹는다는데, 감염된 닭은 3일 이내에 죽고 달걀을 낳지 못하므로 달걀은 안전하다고 한다. 달걀을 북녘에서는 ‘닭알’로 쓴다. 발음은 [달갈]이다. 달걀과 닭알은 남북 두루 쓰던 말인데, 각각 다른 말을 쓰게 됐다. 두 낱말은 같은 뜻이지만, 구조가 다르다. 닭알은 ‘닭’과 ‘알’이 합쳤지만, 달걀은 ‘닭의 알’이다. ‘ 앓’이 ‘ 앓’을 거쳐 ‘달걀’이 되었다. ‘ ’은 닭이고, ‘ ’는 조사 ‘의’이고, ‘앓’은 ‘알’이다. 남녘 지역어 ‘달개알, 달구알’은 ‘ 앓’에서 비롯된 것이다. ‘닭의어리’를 북녘에서는 ‘닭어리·닭의가리’로 쓴다. ‘어리’는 고유어로, 닭과 같은 새를 넣어 다닐 수 있게 만든 것을 가리킨다. ‘닭의어리’는 ‘휴대용 닭장’이다. 이와 반대로 북녘에서 조사 ‘의’가 결합된 말을 쓰는 것도 있다. ‘닭살’을 북녘에서는 ‘닭의살’로 쓴다. 발음이 [달기살]인데, 남녘의 조사 ‘의’ 발음과 비교된다. ‘닭의똥’의 발음은 [달긔똥] 혹은 [달게똥]이다. 한편, ‘닭의홰’와 ‘닭똥’은 남북 두루 쓰지만, ‘닭의똥’은 남녘에서만 쓴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사룀 언어예절 웃사람, 손아픈 사람에게 말하는 것을 아뢴다거나 사뢴다고 한다. 말글은 사람끼리 뜻을 주고받는 연장이지만 하늘이나 혼령에게 뜻을 전할 때도 쓴다. 토지신·산신령·삼시랑에게 쓰는 말이 달리 없다. 흔한 축문이나 제문, 손비비며 하는 말도 그렇다. 신라적 ‘사뇌가’(詞腦歌)를 학자 김인환은 ‘사뢰는 노래’라 푼 바 있고, 화백(和白)도 사람들이 모여 ‘사뢰는 모임’이라고 했는데, 슬기로운 견해라 하겠다. 사뢰는 방식은 말뿐만이 아니라 노래·춤·풍류일 수도 있다. 사람끼리도 서로 존중하고 제대로 알린다면 여러 문제가 풀린다. 사과와 용서, 꾸짖음, 달램, 폭로 … 들도 사뢰는 방식의 하나다. 법률과 문학·음악·제도들이 결국은 이 사룀의 갈래들이다. 비손도, 선전·선동도, 선거도 사룀에서 비롯한다. 전달 방식도 무척 발달되었다. 붓 아닌 전자말이 큰 변화다. 신문·방송 등 언론이 대표 매체다. 공공기관·기업에서도 다양한 연장으로 손님들에게 사뢴다. 인터넷 매체도 버금가는 연장들이다. 그만큼 낱사람의 의견 발표·발언이 잦아지고 전달이 쉬워졌다. 저마다 사랑방·카페를 내거나 집을 지어 그림을 그리고 말글을 써댄다. 그렇다고 소통이 고급해지고 온전해졌는지는 의문이다. 말글보다 직접 실천하는 삶이 진정한 사룀의 방식일 수도 있다. 입이 온갖 허물이나 화근의 바탕이라는 말이 있다. 함부로 말하고 쓰기를 삼가라는 얘긴데, 이로써 반드시 말을 많이 한다거나 글을 자주 쓴다고 소통이 잘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모량리와 모량부리 땅이름 경북 건천읍 모량리는 ‘양곡·역촌·모양’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역’이 붙은 것은 중앙선 기차역이 생긴 이후의 일이므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름은 ‘모량’ 자체다. 토박이 사람들은 모량에도 안 모량과 밖 모량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모량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삼국사기> 땅이름에서 ‘모량’이 나타나는 곳은 무진주다. 이곳의 옛 이름은 ‘모량부리’였는데, ‘부리’는 마을을 나타내는 땅이름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차자 표기에서 ‘량’(良)은 처소나 방위를 나타낼 때 쓰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향가에 나타나는 ‘차량’(此良)은 ‘이에’, ‘수량’(手良)은 ‘손에’로 풀이할 수 있다. 이를 고려한다면 ‘모량’도 ‘모’에 해당하는 이름말과 처소나 방위를 나타내는 말로 풀이할 수 있다. 이런 이치를 참고할 때 ‘모량’은 ‘산’을 뜻하는 ‘뫼’에 처소를 나타내는 ‘에’로 분석할 수 있다. ‘모량리’가 산을 배경으로 형성된 마을이듯이, ‘모량부리’도 무등산을 끼고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을 갖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임진 옛 이름의 ‘모화’(毛火)나 동래의 ‘모등변’(毛等邊)도 ‘묏벌’이나 ‘묏가’를 뜻하는 말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까닭은 이들 땅이름이 산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 일이 두루 그러하듯, 소리와 뜻이 바뀌면서 먼 후일에는 무엇을 나타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은 땅이름이라고 하여 다를 바가 없다. 허재영/단국대 인재개발원 교수
흘리대·흘리덕이 사람이름 예종 1년(1469년), 장사치 이길생이 왜인 ‘시난이라’를 꾀어 은 마흔 냥을 금 여덟 냥 닷 돈과 바꾸기로 계약하고 금을 받아온 뒤 은 열여덟 냥과 인삼 쉰 근만 주었다. 이에 형조에서는 이길생의 목을 치고 살림살이는 관아의 것으로 하며, 주인인 소금장이 流里大(유리대)의 살림과 이길생의 명주 400필을 거두어 왜인 시난이라한테 줄 것을 임금께 아뢰었다. 이두 책을 보면 流伊(유이)는 ‘흘리/흘니’, 流音(유음)은 ‘흘님/흘림’으로 읽는다. ‘흐르다’에서 비롯된 말이다. 流里 또한 ‘흘리’이므로 流里大(유리대)는 ‘흘리대’가 된다. 비슷한 이름의 밑말 流衣(유의)가 쓰였다. 문종실록에 流衣德(유의덕), 성종실록에 流衣萬(유의만)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良衣와 良里가 ‘A리’를 적었듯이 流衣는 ‘흘의/흘레’ 아닌 ‘흘리’를 적었던 것 같다. 위 두 사람은 ‘흘리덕이·흘리만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흐리금’도 있는데 ‘흘리’와 비슷한 ‘흐리’라는 밑말도 있었음을 에워 보여준다. 옛문서를 살피면 꾼 돈 따위를 여러 번 나눠 갚을 때 ‘흘리’(流伊) 낸다 했으며 요즘에도 흘림흘림 낸다는 말이 남아있다. 흘림/흘님은 초고(草稿)라는 뜻도 있다. ‘자하 흘님’은 한 해 동안 쓸 쌀·베·돈 따위의 예산안(장부)을 가리킨다. 이두에서 上(위 상)은 ‘자’로 읽었다. 外上(외상)은 ‘외자’라 하였으며 上下(상하)는 ‘자하’로 읽고 준다는 뜻이었다. 조선 때 글말은 한자 뜻만으로는 가늠키조차 어렵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궂긴인사 북녘말 “상주님을 그대루 보여서 쓰겠소. 새루 궂긴인사하고 보입시다.”(홍명희, 림꺽정) ‘궂긴인사’는 상주를 위문하는(조문) 말이다. 이는 홍명희의 <임꺽정>에도 쓰인 말이니 굳이 북녘말이라 할 것은 없겠다. 다만 남녘에서는 ‘궂긴 인사’처럼 띄어서 쓰고, 한 낱말로 보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한 낱말로 보느냐, 두 낱말로 보느냐’는 국어사전에 올랐느냐와 관련이 있다. 국어사전은 보통 하나의 낱말을 올림말(표제어)로 삼는 까닭에 두 낱말은 실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겨레말큰사전> 새말 조사 과정을 보면, 남북 모두 같은 소설(임꺽정)을 조사했지만, 북녘에서만 ‘궂긴인사’를 새 낱말로 봤다. 궂긴인사는 ‘궂기다’와 ‘인사’가 합친 말이다. ‘궂기다’는 남북 사전에 두루 실렸지만, 남녘에서 널리 쓰이지는 않는다. <한겨레> 신문에서는 2003년께부터 부음·부고 대신 ‘궂긴소식’을 쓰고 있다. 그 덕에 ‘궂기다’도 꽤 알려져서 쓰이고 있음을 인터넷에서도 볼 수 있다. ‘궂기다’는 ‘돌아가시다’처럼 ‘윗사람이 죽다’를 완곡하게 이르는 뜻과 ‘일에 헤살이 들어 잘 되지 않는다’는 뜻 둘로 쓰인다. 형태만 보면, ‘궂다’에 접미사 ‘-기-’가 붙어서 ‘궂기다’가 된 것으로 여길 수 있지만, 그렇게 보기도 어렵다. ‘궂다’의 뜻이 ‘나쁘다’임을 생각할 때, 관련성이 있기는 하지만 ‘궂기다’의 의미폭이 많이 좁기 때문이다. 헤살은 ‘일을 방해하는 것’이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