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물림 북녘말 “벼수확의 10 이상이 교복물림처녀의 가느다란 팔에 실리였다.”(한웅빈·금수강산을 수놓는 처녀) 요즘 남녘에서는 선배가 후배에게 교복을 물려주는 일이 활발하다는데, 북녘에서도 그런 일이 많은 것일까? 그런데 ‘교복물림처녀’를 ‘교복을 물려받은 처녀’로 보면, 문장이 잘 해석되지 않는다. 농사를 짓는 일과 교복을 물려받는 일이 별로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북녘 말 ‘교복물림’은 ‘학교를 갓 졸업하여 사회 경험이 부족한 사람’을 홀하게 이르는 말이다. 남북에서 쓰는 ‘책상물림, 글방물림’과 같은 말이다. ‘물림’은 ‘밥상을 물리다, 책상을 물리다’처럼 ‘무엇을 다른 곳으로 옮기다’를 뜻하는 ‘물리다’의 명사형이다. ‘책상물림’은 공부하는 책상을 물렸으니 금방 공부를 마쳤다는 뜻이고, 이는 곧 실제 경험이 부족하다는 뜻이 된다. 글방은 옮길 수 없기 때문에 ‘물림’의 대상이 될 수 없으나, ‘책상물림’의 영향으로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글방을 금방 나왔다면 역시 경험이 부족할 것이다. 북녘에서는 ‘교복물림, 학생물림’도 쓰는데, 교복을 금방 벗은 것, 학생을 금방 벗어난 것 역시 ‘경험이 부족하다’로 연결된다. 재미있는 것은 남녘의 ‘교복물림’이다. ‘물리다’는 ‘재산을 아들에게 물리다’처럼 ‘무엇을 다른 사람에게 주다’의 뜻도 있는데, 남녘에서는 이 뜻으로 ‘교복물림’을 쓴다. 사실 ‘무엇을 옮기는 것’이나 ‘무엇을 누구에게 주는 것’이나 ‘대상물이 이동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그 미묘한 차이를 남과 북이 다르게 쓰고 있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널다리와 너더리 땅이름 충남 아산시 용화동의 옛 이름은 ‘판교리’다. 이 이름은 우리말로 ‘널다리’에 해당하는데, 널다리가 생겨나기까지 재미있는 전설이 남아 있다. 이 마을은 비가 오면 앞내가 넘쳐 아수라장이 되곤 했는데, 고을에 부임한 사또가 홍수 대책을 내놓는 사람에게 큰 상을 주기로 했다. 이 마을에 열 살 남짓한 꽃분이는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었는데, 신령의 도움을 받아 개울에 널빤지로 다리를 놓으면 물난리를 피할 수 있다고 제안하여 홍수를 피하게 했다고 한다. ‘널다리’는 ‘널빤지로 만든 다리’를 뜻하며, 이로부터 ‘판교’라는 땅이름이 생성되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판교’라는 땅이름이 비교적 많이 나타나는데, 서산이나 아산뿐만 아니라 경기도 광주, 평안도 영유현에도 판교포가 있었다. ‘널빤지’의 ‘널’은 ‘너르다’에서 온 말로, ‘널빤지’는 ‘너른 판지’를 뜻한다. 판지(板紙)는 본래 종이로 만든 재료이지만 차츰 나무를 넓게 켠 것도 판지라 했다. 그런데 ‘널다리’와 비슷한 ‘너더리’라는 땅이름이 있다. ‘너더리’는 산비탈에 널리 흩어져 있는 돌밭을 가리키는 말인데, 지역에 따라 ‘너덜겅’이라 이르기도 한다. 당진군 정미면 산성리의 닭발너더리는 닭발처럼 생긴 돌무더기이며, 웽이너더리는 괭이처럼 생긴 너더리다. 이 말은 ‘널리 흐트러지다’라는 뜻을 가진 ‘너르듣다’에서 온 말인데, 자갈돌이 널리 흩어진 곳을 일컬어 ‘너더리’ 또는 ‘너덜겅’이라고 한 셈이다. 널다리와 너더리는 발음은 비슷하지만 다른 뜻을 가진 땅이름이다. 허재영/단국대 인재개발원 교수
무적쇠·구즉이 사람이름 성종 15년(1484년), 한성부 금란(禁亂)의 서리와 조예가 종묘서의 종 其叱同(기질동)의 집을 뒤져 쇠가죽 두 장을 찾아냈다. 그를 묶어 가는 길목을 지키던 풍산군 심응(沈應)이 쇠가죽과 종을 낚아채어 자기 집에 숨겼다. 이 일로 풍산군이 불려가 국문을 받았다. <동국신속삼강행실>을 보면 無其叱金(무기질금)을 ‘무적쇠’로 적고 있다. 따라서 無其叱同·無其只는 ‘무적동·무저기’를 적는 것임이 분명하다. 이름표기에 其叱金·其叱達·其叱同(기질금·기질달·기질동)은 낱낱 적쇠·적달·적동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其叱伊(기질이)는 어찌 읽어야 할까? 이름 표기에서 叱(질)은 첫째, 받침 ‘-ㅅ’을 적는다. 갓=加叱, 굿=仇叱, 긋/긎/귿=末叱 따위. 둘째, 된소리를 적는다. 똥은 叱同/同叱/?, 뿐은 叱分/? 따위로 쓴다. 셋째, 받침 ‘-ㅈ’이 든 ‘늦’은 芿叱/?/?으로 적는다. 넷째 앞서 본 바와 같이 받침 ‘-ㄱ’을 적는다. ‘눅이’라는 이름은 訥叱伊(눌질이) 또는 訥叱只(눌질지)로 적었다. 그러므로 其叱伊는 ‘적이’를, 訥叱之는 ‘눅지’를 적는다. 이두와 구결 연구에서는 이렇게 叱의 표기가 다양하다고 밝혀진 적은 없는데, 이름 표기에서 나타난다. 只(지)는 받침 ‘-ㄱ’으로 끝나는 이름에 호칭접미사 ‘-이’가 붙을 때 ‘기’로 소리 나는 것을 적을 때 쓰인다. 가막이는 加莫只(가막지), 구즉이는 仇則只(구즉지), 국이는 國只(국지)로 적었다. 옛말 ‘구즉, 구즈기, 구즉?다’는 요즘 말로 낱낱 ‘우뚝, 우뚝하게, 우뚝하다’이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애리애리 북녘말 ‘애리애리하다’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북녘말로 실렸다. 사전에 ‘북’으로 표시된 말이 모두 남녘에서 쓰이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사전은 남녘 사전 4종과 북녘 사전 2종을 기본 자료로 했기 때문에, 북녘 사전에 실린 말이 남녘 사전에 없으면 ‘북’으로 표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전 편찬 과정에서 말뭉치(각종 언어 자료를 파일로 모아 놓은 것)를 검토하기도 했는데 규모가 크지 않았고, 그때는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말뭉치에서도 확인이 안 되면 남녘말로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애리애리하다’는 ‘아주 여리다’, ‘애티가 나게 젊다’의 뜻으로, 북녘에서는 1981년 발행된 사전에, 남녘에서는 <토박이말 쓰임사전>(2001)에 실렸다. 예문은 박상륭의 <남도>(1969년 발표)에서 인용했다. 적어도 경상도 지역에서는 이 말을 쓰고 있고, 여러 작품과 인터넷에서도 쓰임이 확인된다. 꽤 오랫동안 쓰였으나 사전에 실리지 못한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출판사에서 주로 사전을 만들다 보니 전면적인 어휘 조사를 하지 못했고, 방언 연구가 낱말의 사회적 특성을 밝히는 데 소홀했던 탓도 있다. 무엇보다도 국어사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이 크다 하겠다. 사전은 꾸준한 수정과 증보 작업이 중요한데도, <표준국어대사전> 출판 이후 3년 동안 사전 관련 예산이 전혀 없었고, 최근에는 몇 명의 인원이 수정 증보판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명실상부한 대표 사전을 만들기 위한 조사와 확인, 전면적인 수정과 증보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아름다운 말 언어예절 애써 고운 말, 깨끗하고 아름다운 말을 골라 쓰는 시기가 있다. 젊은날의 편지들에서 그렇다. 다른 사람한테 속마음을 터놓기가 부끄러운데다 말을 골라 쓰기도 어렵고 답답도 한 때다. 그것이 발전한 것이 ‘말꽃’ 곧 노래와 시다. 마음을 주고받는 연장이 종이 편지에서 이젠 전자말·그림·전화로 달라지고 말글도 짧아지는 듯하다. 나아가 서로 사귀는 연장은 여전히 말글인 까닭에 일상에서도 멋스럽고 아름답게 말하고자 애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아름답고 우아한 말, 멋진 말, 정다운 말은 어떤 말일까? 아리땁고 우아하게, 멋지게, 정답게 말하기는? 다른 말도 많겠으나 흔히 이런 동사들을 들춘다. 반가워! 고마워! 미안해! 잘했어! 내탓이야! 좋아! 애썼어! …. 관·혼·상·제에서 쓰는 말은 대충 격식화돼 더듬거리면서도 넘어가는 편이다. 병문안을 가거나 슬픔이나 고통에 잠긴 사람을 위문한다면 하루바삐 쾌차하시라거나 슬픔을 털고 일어나시라는 간단한 인사 말고 별스런 말이 없을 터이다. 무슨 포럼·조찬회·발표회·기념회, 온갖 잔치에다 서양식 ‘파티’도 성행하는 모양이다. 먹고 마시는 데는 말이 성하지만, 이쪽에서만 굳어져 쓰이는 특별한 인사말이나 혀와 입술을 달리 놀리는 말이 따로 있지는 않을 터이다. 그러나 그런 행사에서 하는 인사말이라면 다소 꾸미고 과장하거나 재치를 부릴 수는 있겠다. 때와 장소, 형편을 가려 듣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즐겁고 편안하게 하는 말 이상의 아름다운 말이 뭐겠는가. 품위는 대체로 절제에서 나오고, 아취도 헤아림·이해·배려에서 나올 때가 많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공목달·웅섬산 땅이름 공주의 옛이름인 ‘웅진’의 어원이 ‘고마나루’였음은 널리 알려졌다. ‘고마’는 ‘곰’을 뜻하는 한자 ‘웅’(熊)과 대응 관계를 이루며, ‘나루’ 또한 ‘진’(津)으로 맞옮겼다. 그런데 ‘고마’는 ‘곰’보다는 ‘제사장’을 뜻하는 ‘검’과 관련이 깊은 말이다. 단군 왕검에 들어 있는 ‘검’이나 백제의 백성들이 왕을 ‘건길지’로 불렀다는 기록도 ‘검’과 ‘고마’가 제사장에서 비롯된 ‘임금’을 뜻하는 말이었음을 나타낸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고마’와 관련된 땅이름으로 ‘고미현’(곤미현으로 개명), ‘고마미지현’(무진주의 땅이름), ‘고마지’(고노현으로 개명), ‘고마며지현’(마읍현으로 개명)이 더 나타난다. 또한 <북사>에는 백제의 도읍지를 ‘고마성’이라고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이처럼 ‘고마’는 주로 백제와 관련된 땅이름에 남아 있으며, 경기도 하남시의 ‘검단산’도 한성 백제시대의 진산(鎭山)으로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곳으로 알려졌다. ‘고마’가 음이 비슷한 ‘공목’으로 표기되면 전혀 다른 땅이름처럼 보인다. <삼국사기>에는 한산주에 ‘공목달’이라는 땅이 있었는데, ‘웅섬산’으로 개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공목달은 지금의 연천에 있던 땅이름이다. ‘공목’은 ‘고마’의 다른 표기였으므로 ‘웅’과 대응 관계를 이루며, ‘달’은 고구려계 땅이름에서 ‘산’이나 ‘고’(高)와 대응되는 말이었다. 백제가 부여의 또다른 종족이었으며, 고구려 또한 부여에서 나온 나라이니 두 나라의 땅이름 표기가 섞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허재영/단국대 인재개발원 교수
깜빠니야 북녘말 깜빠니야는 캠페인의 북녘말이다. 캠페인은 영어에서, 깜빠니야는 러시아어(кампания/kampaniya)에서 온 말이다. 남북 표기가 다른 것 가운데 어원이 영어와 러시아어로 다른 것이 있다. ‘카약/까야크(каяк/kayak), 카탈로그/까딸로그(каталог/katalog), 캐비닛/까비네트(кабинет/kabinet), 트랙터/뜨락또르(трактор/traktor), 콤바인/꼼바인(комбайн/kombain)’ 등이 그렇다. 북녘은 러시아와 가까워 그쪽에서 들어온 말이 남녘보다 많다. 이런 표기 차이는 자음 표기 원칙 영향도 크다. 남녘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파열음 표기에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북녘 ‘외국말 적기법’에서는 “외래어를 표기할 때 그 나라 사람들이 발음하는 대로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래서 같은 러시아어에서 온 말을 쓰더라도 ‘печка(pechka)’를 ‘페치카/뻬치까’로, ‘колхоз(kolhoz)’를 ‘콜호스/꼴호즈’로 달리 적게 된다. 외래어를 한글로 적는 방법은 ‘우리말 체계에 맞게 적는 방법’과 ‘외국어 발음과 최대한 비슷하게 적는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영어 발음 /b/와 /v/를 한글에서 구별할 수 없고, /f/와 ‘ㅍ’의 발음 방법이 다른 것처럼 외국어와 우리말의 발음 체계가 달라 후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말 똑같이 표기하려면 한글 자모를 추가해야 하는데, 이득보다 손해가 많다. 외국어는 외국 문자로 공부하고, 우리말과 함께 쓰는 외래어는 우리말 체계에 맞게 적는 것이 낫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