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서
언어예절
‘공손함’을 한자락 걸치는 말이 여럿 있다. 그 중에서도 ‘주다’는 젖먹이 때부터 익은 말로서, ‘주시다·드리다·올리다·바치다’란 높임말이 있고, ‘달라·다오’는 주로 평대에 쓴다. 하느님·임금 …한테 비는 ‘~ 주시옵소서’ 꼴이 맏높이는 말이다. 이는 남에게 베푸는 맛을 풍기는 까닭에 잘못 쓰면 곤란을 당할 수도 있다. 예컨대 집안 청소를 하면서 “오늘은 어디 청소 한번 해 줄까?”란다면 가족이 듣기에 거북할 터이다. 자기집 일을 하면서 무엇을 베푸는 말투인 까닭이다. 무엇을 요청·애원·청원할 때 ‘-어 주다’ 꼴을 특히 많이 쓴다. 공손한 느낌을 주면서 바라는 뜻을 강조하는 구실을 하는 까닭이다. 문제는 그럴 것까지 없는 말에서도 버릇으로 쓴다는 점이다.
인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앉아서 하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타 사항은 배부해드린 유인물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말씀해 주시지요/ 저희에게 제일 좋은 학교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주문해 주신 제품은 오늘 발송됩니다 ….(손질한 말 ⇒ ~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 참고하십시오/ 말씀하시지요/ ~ 허락하소서/ 주문하신 제품은 ~.)
여기서 ‘주다’는 높임꼴 명사형(주시기)으로 바뀌어 ‘바랍니다’란 말의 목적어가 됐다. 에둘러 말할 때 즐겨 쓰는 서술어(바랍니다)로도 모자라 공손까지 더했으니 ‘공손을 뜬다’는 말을 들을 법하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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