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시’와 ‘지긋이’ ‘지그시’와 ‘지긋이’는 소리가 같아서 적을 때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소리대로 적는 ‘지그시’는 ‘슬며시 힘을 주는 모양’ 또는 ‘느낌이나 감정을 억누르는 모양’을 나타낸다. “지그시 눈을 감은 환수 씨의 기억 속에 오랜 옛일이 떠올랐다.”(최일남, 거룩한 응달) ‘지그시’ 대신 ‘자그시’나 ‘재그시’를 쓰기도 한다. 이 말들은 ‘지그시’보다는 정도나 세기가 덜함을 나타낸다. “봉실이는 손을 들어 그의 입술을 자그시 누르며 다정한 눈길로 쳐다보았다.”(정기수, 아버지의 고뇌) ‘지긋이’는 ‘지긋하다’의 ‘지긋’과 접미사 ‘-이’가 결합한 말이어서 소리대로 적지 않고 원형을 밝혀 적는 것이다. ‘지긋이’는 ‘나이가 비교적 많아 듬직하게’ 또는 ‘느긋하고 참을성 있게’라는 뜻을 나타낸다. “엉뚱한 생각 말고, 이 사설로 한가락 읊을 테니 지긋이 앉아 듣게.”(송기숙, 녹두장군) ‘반드시’와 ‘반듯이’도 함께 알아 두면 좋다. “다음엔 반드시 성공하고 말겠다.”와 같이 ‘틀림없이, 꼭’의 뜻으로 쓸 때는 ‘반드시’를 쓰고, “벽에 기대지 말고 반듯이 서 있어라.”와 같이 ‘기울거나 굽지 않고 똑바르게’, 즉 ‘반듯하게’의 뜻으로 쓸 때는 ‘반듯이’를 쓴다. ‘반듯이’보다 큰 느낌으로 말하고 싶을 때는 ‘번듯이’를 쓰면 된다. “이쁜이는 … 풀밭에 번듯이 드러누운 채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김유정, 봄봄) ‘번듯이’는 ‘버젓하고 당당하게’라는 뜻으로도 쓸 수 있다. “어머니께 옷 한 벌 번듯이 해 드리지 못했다.” ‘어연번듯이’라는 말도 있다. ‘세상에 드러내 보이기에 아주 떳떳하고 번듯하게’라는 뜻이다. “늙으신 아버지와 이 어미를 보더라도 어연번듯이 그 사람과 부부가 되어 다오.”(현진건, 무영탑)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Board 말글 2024.09.10 風文 R 1135
국민을 궁민으로 발음하는 이유 국어의 자음은 조음 방법에 따라 분류할 수 있는데, 코로 공기를 내보내면서 내는 비음(ㄴ, ㅁ, ㅇ)과 폐에서 나오는 공기를 막았다가 막은 자리를 터뜨리며 내는 파열음(ㄱ, ㄲ, ㅋ, ㄷ, ㄸ, ㅌ, ㅂ, ㅃ, ㅍ), 입안이나 목청 사이의 통로를 좁혀서 마찰시켜 내는 마찰음(ㅅ, ㅆ, ㅎ), 입안의 날숨을 막았다가 터뜨리며 마찰시키는 파찰음(ㅈ, ㅉ, ㅊ), 혀끝을 잇몸에 댄 채 날숨을 그 양 옆으로 흘려보내면서 내는 유음(ㄹ)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서로 조음 방법이 다른 자음들이 함께 이웃하게 되면 연이어 발음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예를 들어 ‘국민’에서 받침 ㄱ은 파열음인데 반해 다음에 오는 초성 ㅁ은 비음이기 때문에 받침 ㄱ과 초성 ㅁ을 연이어 발음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발음의 편의를 위해 이웃한 말소리가 서로 영향을 받아 비슷하거나 같은 소리로 바뀌게 되는데, 이를 ‘소리의 동화’라고 한다. ‘국민’의 발음이 [궁민]이 된 것은 받침 ㄱ이 이웃한 초성 ㅁ의 영향을 받아 ㅁ과 조음 방법이 같은 비음인 ㅇ으로 소리가 바뀐 경우이다. 그럼 ‘협력’을 [혐녁]으로 발음하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협력’은 소리의 동화가 앞뒤로 함께 이루어진 경우인데, 먼저 ‘협력’의 첫째 음절 받침 ㅂ 뒤에서 둘째 음절 초성 ㄹ이 ㄴ으로 바뀌어 [협녁]으로 동화된 다음 그 ㄴ 때문에 첫째 음절의 받침 ㅂ이 다시 ㄴ과 조음 방법이 같은 비음인 ㅇ으로 역행동화되어 [혐녁]으로 발음된 것이다. ‘협력’을 글자 그대로 [협력]으로 발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앞으로는 [혐녁]으로 소리를 동화시켜 발음하도록 하자.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9.09 風文 R 1203
화장실 그림문자 다음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호들이다. 누구나 잘 알듯이, 순서대로 비상구, 소화기, 화장실을 뜻한다. 이와 같이 그림을 통해서 어떤 정보를 나타내는 기호를 픽토그램(pictogram)이라고 한다. 픽토그램은 가장 원시적인 문자인 그림문자의 일종이다. 쉽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불조심, 흡연 금지, 물놀이 금지, 노약자석, 에스컬레이터, 올림픽 종목 표시 등 일상생활에서 널리 사용된다. 의사소통의 문자적 수단이라는 점에서 픽토그램도 크게 보면 우리말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주위에서 들은 아이디어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위의 세 번째 예처럼 화장실 픽토그램은 남녀 사람의 모습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 그림에다 장애인 칸 유무도 표시하자는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작지만 참신한 발상이다. 몸이 불편한 이가 급한 용무로 힘들게 화장실까지 갔는데 장애인 칸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무척 난감할 수밖에 없다. 이때 멀리서도 장애인 칸 유무를 알 수 있는 그림 표지가 있다면 그런 곤란함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화장실에 장애인 칸을 갖추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 픽토그램만이라도 개선하면 좋을 것이다. 작은 그림문자 하나로 소수자를 배려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따뜻한 우리 사회를 나타내는 또 하나의 픽토그램이 되지 않을까.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과 교수
Board 말글 2024.09.09 風文 R 1311